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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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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경별곡(西京別曲)>의 향유층에 따른 치료적 효과
* 일  시 : ' 99. 6. 4.(金)
* 과  목 : 향가·고려가요연구
* 발표자 : 전  경  원

<서경별곡(西京別曲)>의 향유층에 따른 치료적 효과


  1. 서론
고려속요의 정체성을 해명하는데 걸림돌이 되어 온 것 가운데 하나는 담당층에 얽힌 문제이다. 고려속요가 궁중악으로 사용된 점으로 미루어보아 고려조의 권문세족 및 여말 선초에 중앙으로 진출한 신진사대부들이 주된 담당층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일반적 견해는 '속요(俗謠)'라는 장르명이 말해주듯, 일반 민중을 그 주된 담당층으로 보는 것이다. 확실한 것은 고려속요가 일반 민중들 사이에서 불려졌을 뿐만 아니라 궁중에서도 연행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특성에 대해 김대행은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한다.

"고려시가는 민요이면서 동시에 궁중음악이기도 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말하자면, 계층의 차별 없이 이 노래를 공유했다는 뜻이다. 문학이나 예술을 이야기할 때 흔히 언급되는 계층성의 문제가 고려시가에서는 예외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를 생각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이 논문은 이같은 사실에 착안하여 고려속요의 하나인 <서경별곡>이 일반 민중들 사이에서 향유될 때와 궁중에서 연행될 때, 그 주된 담당층인 민중들과 귀족계급에게 각각 어떠한 의미로 수용되었는가? 하는 점을 문학치료학적인 측면에서 고찰해보고자 한다.
<서경별곡>이 '낮은층'에서 불려질 때와 '높은층'에서 연행될 때, 과연 텍스트 상의 변화가 없었겠는가 하는 문제가 있지만, 노래로 불려질 때와 궁중악으로 연행될 때는 형식상 약간의 변화가 불가피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궁중악으로 연행되기에 걸맞게 여음과 후렴구의 삽입 등 음악적 효과를 살리기 위해 약간의 변화가 있었겠지만, 전체적인 텍스트는 크게 훼손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동일한 텍스트가 낮은층에서 불려질 때와 높은층에서 불려질 때 과연 그 치료적 효과가 동일했겠는가? 하는 의문이 대두된다. 이 논문은 이점에 주목하여 '낮은층'과 '높은층'에서 <서경별곡>이 향유될 때, 담당층에 따라 어떠한 치료적 효과를 획득하게 되는지 살펴보겠다.
우선, 이 논의는 작품의 기본이 되는 제목에 주목하여 기록에 전하는 '고려속요(高麗俗謠)'의 정체성을 점검하는 동시에 작품의 제목으로 설정되어 있는 '서경(西京)'에 대한 논의로부터 출발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일정한 성과를 바탕으로, 작품의 치료적 효과를 고찰하겠다.

2. 고려속요(高麗俗謠)의 정체성과 서경(西京)의 의미
《高麗史樂志》의 '속악(俗樂)'條에는 "고려의 속악은 여러 악보를 참고해서 실었다. 그 중에서 동동(動動) 및 서경(西京)이하의 24 편은 다 이어(俚語)를 쓰고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 '속악을 사용하는 절도(用俗樂節度)'條의 기록을 보면 서두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① "원구( 丘)와 사직(社稷)에 제사하고 태묘(太廟)·선농(先農) 및 문선왕묘에 제향을      드릴 때 아(亞)·종헌(終獻) 및 송신(送神)에는 다 향악(鄕樂)을 번갈아 연주한다.".....
② "공민왕 15년 12월 갑인에 재추가 하남왕의 사자 곽영석을 향연하면서 향(鄕)·당악      (唐樂)을 연주하여 우리 음악의 관람을 청했다." .....
③ "공민왕 21년 정월 을묘에 왕이 인희전에 나아가 제사를 지냈는데 향(鄕)·당악(唐樂)      을 연주했다"

이같은 기록을 보면, 해당 조의 명(條名)은 속악이라 명하고서 본문의 내용에서는 향(鄕)이란 용어만을 사용하고 있다. 결국, "속악(俗樂)을 사용하는 절도(用俗樂節度)"조(條)를 보면 '속악(俗樂)'의 개념이 '향악(鄕樂)'과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속악'이란 말은 하나도 없고 '속악'이라는 말이 들어갈 자리에 모두 '향악'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은 <서경별곡>이 연행되는 시간과 공간이다. 고려속요가 위의 ①, ②, ③의 기록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국가의 종묘사직에 제사를 지내는 엄숙한 공간에서 연행되었다는 점이다. 고려말 궁중의 분위기가 아무리 퇴폐해질대로 퇴폐해졌다고 하더라도 선왕에게 제사를 지내는 자리에서, 조선조 유학자들이 말하는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의 노래를 부르며 연주했겠는가? 그렇다면 과연 그들은 조선조 유학자들이 해석했던 것처럼 속요가 음탕한 노래인줄 알면서도 '제사(祭祀)'를 지내는 엄숙한 순간에 연행했겠는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이점은 뒤에 작품을 논의하면서 다시 다루기로 한다.
한편, <서경곡(西京曲)>과 <서경별곡(西京別曲)>과의 관계 또한 살펴보아야 한다. <서경곡>은 작자, 연대미상의 고려가요로 《고려사악지》에는 <서경>으로 전하고, 《동국문헌비고》에는 <서경곡>으로 각각 제목과 유래만 실려 있고, 가사는 전하지 않는다. 그 내용의 대강은, "西京(현재의 '평양')은 고조선의 기자(箕子)가 자리 잡았다는 곳으로, 그곳 백성의 풍습이 예양(禮讓)을 익히고, 임금을 섬기는 뜻으로 이 노래를 지어 어진 은혜가 초목에까지 미치어 꺾여 쓰러진 버들도 산다는 뜻"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현재까지 연구된〈서경별곡〉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노래로 보인다.
또 한가지, 그동안의 연구에서 다소 소홀히 다루었던 것 가운데 한가지는 작품의 제목으로 등장하는 '서경(西京)'이라는 공간이다. 고려시대에 '서경(西京)'-오늘날의 '평양'-이 지녔던 의미는 각별했다. 그 점은 태조 왕건의 유훈(遺訓)인 '훈요십조(訓要十條)'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훈요십조의 다섯 번째 항목이 명당인 '서경'을 중시하라는 내용이다. 그리하여 고려조의 역대 왕들은  1년 중에 몇 달 이상의 시간을 서경에 머물며 지내곤 하였다. 또 고려사의 기록을 통해 보더라도 서경(西京)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대단했다. 그런가하면 서경을 둘러싼 수도 이전의 문제로 말미암아 묘청의 난까지 발생하였다. 그후 "묘청의 난이 실패하자 서경 세력은 위축되어, 이제는 개경과 대등한 자리를 유지할 수 없도록 제도적인 제재가 가해졌다." 서경에 대한 개경세력과 중앙지배층의 견제는 고려 초기부터 있어왔다. 근거로 <고려사>를 보면 광종 代에 이미 "개경을 황도(皇都)로, 서경을 서도(石)로 고쳤다"는 기록 등에서도 확인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경에 대한 당시 민중들의 자부심과 긍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점은 <서경별곡>의 초반부에서도 확인된다. "西京이 셔울히 마르는 닷곤대 쇼셩경 괴요마란..." 하는 부분에서도 확인된다. 서경(西京)은 오래 전부터 이미 천도(遷都)를 위해 착실하게 준비해 온 도시이면서 당대에 가장 번화했던 도시 가운데 한 곳이었다.  
앞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서경>과 <서경별곡>의 상호 관련성을 통해 풀어나가는 것이 보다 쉽게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 여기서 <서경>와 <서경별곡>을 고찰해보면, 우선 상황설정이 <서경>은 군(君)과 민(民) 사이의 관계였는데 반해, <서경별곡>은 남·녀의 관계로 파악하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러나 앞서 살핀《고려사(高麗史)》의 기록에 주목해 본다면, <서경별곡> 역시 남녀(男女)의 관계라기 보다는 군민(君民) 혹은 군신(君臣)의 관계로 볼 수도 있는 여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3. 낮은층에서 획득하는 치료적 효과

이제는 구체적인 작품을 통해 그 치료적 효과를 살펴야 할 차례이다. 구체적인 작품의 실상을 접하기에 앞서, 음악적 효과를 위해 삽입된 '아즐가'와 같은 여음과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디링디리'하는 규칙적 후렴은 제외하고, 3연 구성의 텍스트에 한정하여 살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1.
西京이 셔울히 마르는
닷곤  쇼셩경 괴요마른
여 므논 질삼뵈  리시고
괴시란  우러곰 좃니노이다

2.
구스리 바회예 디신 
긴힛  그츠리잇가
즈믄 를 외오곰 녀신 
信잇  그즈리잇가

3.
大洞江 너븐디 몰라셔
 내여 노愎 샤공아
네가시 럼난디 몰라셔
녈 예 연즌다 샤공아
大洞江 건너편 고즐여
 타들면 것고리이다

많은 연구자들이 이 3연으로 구성된 시의 연계성이 매우 이질적인 특성으로 말미암아 당시 유행하던 세 가지 노래를 하나로 합쳐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렇다는 뚜렷한 근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설령 세 개의 독립된 곡을 하나로 편사하였다손 치더라도 편사자 나름대로의 일관성이 전제된 결과물이었을 것임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논의의 편의상 1연을 '서경노래', 2연을 '구슬노래', 3연을 '대동강노래'로 칭하겠다. 우선 이 작품의 제목인 <서경별곡>은 1연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물론 대동강이 '서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3연의 '대동강노래'와도 관련이 있다. 그리고 2연은 이제현의 소악부에도 전하듯이 당시의 유행하던 노래의 관용적 표현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같은 <서경별곡>이 낮은층에서 불려졌을 때, 이 낮은층은 또 다시 두 개의 층위로 구분이 될 수 있다. 즉 '서경'지방에 살던 낮은층의 민중들과 '서경'이라는 특정한 공간과는 관련없이 살고있는 당대의 낮은층을 생각할 수 있다.  

4. 높은층에서 획득하는 치료적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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