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재 전경원과 함께 고전시가를 통해 여는 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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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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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성가(彗星歌)> 해독
1.
* 舊理 : 소창은 '녜로'라고 읽었고, 양주동은 '녜'로 읽었다. '理'를 '로'로 보는 것은 무리지마는 그렇다고 그 자를 전연 무시하는 것도 곤란하다. 15세기 문헌에는 '녜'로 나타나고 있으나 이 말의 외형이 벌써 오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대체 이 '녜'는 '가다'로부터 '지나가다'의 뜻으로까지 쓰인 '녈'과 동일한 어원일 것이니 '舊理'의 '理'는 바로 그 'ㄹ'음의 기사였던 것이다.
* 東尸 : 소창은 '東ㅅ'이라고 읽어서 '尸'를 'ㅅ'으로 보았고, 양주동은 다시 '東'의 옛말이 ' '라고 해서 ' ㅅ'이라고 읽었다. '東'의 옛말을 ' '로 주장하는 근거는 본래 충분치 못한 것이어니와 '尸'를 'ㅅ'의 음으로 기사한 예도 달리는 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두에서 '等', '冬'의 끝소리를 모두 'ㄹ'로 바꾸며 <경국대전> 공전(工典) 경공장(京工匠)에서는 '빗솔' 만드는 사람을 '梳省匠'으로 쓰고 있다. 옛날 어느 한 때 'ㆁ' 끝소리의 전부 내지 일부가 'ㄹ'끝소리로 난 일이 없었다면 이런 현상은 해석될 수 없다. 이렇게 본다면 '東'도 어느 한 때 'ㄹ' 끝소리로 되었을 수 있다. '東尸'의 '尸'를 바로 그런 끝소리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 뿐 아니라 '東尸'는 바로 아래로 '汀叱'과 계속되고 있다. 우의 '尸'와 아래의 '叱'이 서로 뒤바뀌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 汀叱 : 소창은 '믈 ㅅ'이라 읽었고, 양주동은 'ㅅ'을 빼어 '믈'아래에 넣어 읽었다. 양주동은 일찍이 <찬기파랑가>의 '汀理'를 '나리'로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의 '汀'을 왜 '믌 '이라고 고치기에 이르렀냐면 그는 바로 '叱'자가 붙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叱'자가 '尸'자와 뒤바뀐 것이라고 볼 때는 모든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될 것이다. 즉 '叱'은 '동ㅅ'의 'ㅅ'음으로 되는 동시에 '尸'는 '리', ' ' 등의 음으로 된다는 말이다.

2.
* 乾達婆矣 : 소창과 양주동에서 모두 '乾達婆의'라고 읽었고 이 해석은 타당하다.
* 遊烏隱 : 소창은 '노온'으로 읽고, 양주동은 '놀온'으로 읽었다. 15세기 문헌에 비추어 보면 양주동의 해석이 더 타당하다.
* 城 良 : 소창은 '잣 '로 읽고, 양주동은 '잣흘란'으로 읽었다. 근대에 이르러 '城'을 '재'라고 새기고 또 현대어에서 큰 고개를 '재'라고 하는 등은 모두 '잣'이 변해진 말이다. ' 良'은 곧 이두 토의 '乙良'에 해당한 것이니 즉 '으란'의 기사이다. 소창이 '良'의 음을 전연 빼버린 것은 한자음에 충실치 못한 반대로 양주동이 '흘란'으로 읽은 것은 도리여 한자의 음에 지나치게 충실하였다고 지적한다. 물론 '으란'의 토를 '을란'으로 쓴 문헌이 있다. ' 良'도 역시 아래 위로 'ㄹ'음이 포개지고 있는 것만 사실이다. 그러나 'ㄹ'음이 포개져서 측음(側音)으로 되는 현상은 아주 후대의 일이요, 또한 음의 이중적 기사는 이두의 통례인 것이다. ' 良'을 '흘란'으로 읽기보다 '흐란' 또는 '帑'으로 읽는 것이 타당하다.
* 望良古 : 소창은 '바라고'라고 읽고 양주동은 ' 라고'라고 읽었다. 15세기 문헌에 비추어 양주동의 철자가 옳다.

3.
* 倭理叱 : 소창은 '예내ㅅ'이라고 읽어서 '理'로써 복수를 의미하는 '내'의 기사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倭'는 '내'를 붙이여 쓸 말이 못 되며 또 '理'를 '내'의 음으로 볼 수도 없다. 그에 따라 양주동은 '내'를 빼버리고 오직 '예ㅅ'이라고만 읽었다. 그러나 필요없이 '理'자를 덧붙였을 까닭은 없는 일이다. 옛날에 '倭'를 '예'라고 부른 것은 이로써 명백하거니와 그 말이 역시 고대로부터 내려 오는 원상이 아님은 그 외형으로써 벌써 판단할 수 있다. 대개 한 음절이 더 있었거나 적어도 어떠한 끝소리가 있다가 결국 그것이 탈락하는 대신에 현재와 같은 음을 이룬 것이 아닐가 한다.
* 軍置 : 소창과 양주동 모두 '軍'은 병사를 의미하는 한자 어휘로 보았다. 오직 서로 틀리는 것은 소창의 경우는 '軍도'라고 읽은 것을 양주동은 '軍두'라고 읽은 것이다. 현대어에서 '농사꾼', '말썽꾼' 등과 같이 사람의 각종 부류를 가리킬 때, '군'이란 말을 쓰는데 <계림유사>에서는 병사를 '軍'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맨 처음 한자 어휘의 '軍'은 병사를 가리키던 것이나 후대로 내려와서 사람의 각종 부류를 가리키게 된 것이다.
* 來叱多 : 소창은 '왓다'라고 읽으면서 괄호 안에 '고'를 삽입하였는데 양주동은 단지 '옷다'라고만 읽고 말았다. '오다'의 뜻인 '來'를 '와'로 볼 수는 없으므로 글자의 음대로 '옷다'로 고친 것이다. 향가 당시 벌써 '옷다'와 '오다'는 혼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따라 이 노래에서는 특히 '옷다'의 음을 명백하게 하기 위하여 '來'자 아래 '叱'자를 붙였다고 판단한다.

4.
* 烽 : 소창은 그대로 한자 어휘라고 인정하였는데, 양주동은 '燧'라는 다른 한자 어휘를 가지고 바꾸어 놓았다. '烽'을 '燧'로 바꾼 데는 약간의 인증도 없지 않지만 극히 근거가 박약함을 면치 못한다. 16세기 이전에는 '烽火'를 '봉호'라고 읽었으니 이것은 '火筒'을 '호통'으로 읽은 것과 같이 'ㅘ'를 'ㅗ'로 바꾸어 낸 예의 하나이고 <훈몽자회>에서는 '烽'은 물론이고 '燧'까지도 '봉호'라고 새겨 놓았다. '烽'은 글자 그대로 읽는 것이 극히 타당하다. 그것을 다른 한자 어휘로 바꾸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다.
* 燒邪隱 : 소창은 '살은'이라고 읽어서 '邪'자의 음을 전연 빼버렸는데, 양주동은 그 음을 찾아 넣어서 ' 얀'이라고 읽었다. 규정어의 토로서 '언' 내지 '안'이 쓰인 예도 있다. 단지 15세기 문헌 전체를 통해 'ㆀ'는 개음절 아래에 쓰인느 것이지, 페음절 아래 쓰이는 것이 아니다. 또 '邪'의 음으로써 꼭 'ㆀ'의 첫소리가 기사된 것이라고 증명할 아무런 근거도 찾아 내지 못한다.
* 邊也藪耶 : 소창은 ' 애고자'라고 읽으면서 '국경에 이르다'는 뜻으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고자'를 '이르다'는 뜻으로 볼 수 없고, 또 누가 이르렀다는 것인지 그 말도 분명하지 못하다. 그에 따라 양주동은 '  이슈라'라고 읽어서 위와 아래의 문맥을 잘 연결지었다. 그러나 '也'를 '이', '藪'를 '슈', '耶'를 '라'로 보는 데는 한 글자도 타당하다고 인정할만한 음이 없다. 그러지말고 '邊也'를 '  '라고 읽는 동시에 '藪耶'는 기파랑가에서와 같이 '고야'로 읽을 것이다. 즉 어떤 곳이냐 하면, 일본군이 들어 왔다고 봉화를 올린 국경이라는 의미이다.

5.
* 三花矣 : 소창과 양주동 모두 '三花矣'라고 읽었다. '三花'는 세 화랑을 의미하는 한자어휘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 노래 전체의 어휘와 대조해서 이런 한자어휘가 쓰였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三'은 '세', '花'는 '곶'으로 새겨 읽어야 할 것이다.
* 岳音 : 소창은 <耽羅志>에 적혀 있는 제주 방언 가운데 산악을 '兀音'이라고 한다는 마디를 이끌어서 '岳音' 곧 '오름'이요, '오름'이 곧 산의 옛말이라고 해석하였다. '  ', '사 ', '구름', '  ' 등과 같이 이 종류의 명사가 상당히 많이 존재한 것을 보거나 보호하는 산림을 '말림', 적은 '초원'을 '깎음' 등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 산을 '오름'이라고 하였을 것도 의심이 없다. 양주동도 그를 좇았다. 단지 모음조화에 맞추어 '름'을 ' '으로 고쳤을 뿐이다.
* 見賜烏尸 : 소창과 양주동 모두 '보샤올'이라고 읽었다. 물론 글자의 음대로 읽은 것이다. 그러나 '尸'는 'ㄹ' 끝소리와 함께 '리'의 음도 기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의 '尸'를 'ㄹ' 끝소리로 보다 '리'의 음으로 읽는 것이 좋다고 주장한다.
* 聞古 : 소창과 양주동 모두 '듣고'로 읽었고, 이 해석은 타당하다.

6.
* 月置 : 소창은 ' 도'로 읽고, 양주동은 ' 두'라고 읽었다. 구지 모음조화까지 무시해 가면서 '도'를 '두'로 바꿀 것은 없다.
* 八切爾 : 소창은 '발쎠'라고 읽었느데, 양주동은 ' 질이'라고 읽었다. '발쎠'라고 읽는 데는 '발'과 '八'이 유사한 음이라고는 오직 그런 박약한 이유밖에는 없는 반대로 ' 질이'라고 읽는 데는 공교롭게도 석 자가 모두 아주 근사한 음으로 대비되는 것이다. '브즈러니'라는 말도 '브즐브즐'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브즈러니'도 '브즐'을 부사로 쓴 것이지마는 '브즐'에 '이'를 붙여서 부사로 쓸 수 있다. '브즈리'는 바로 그렇게 된 부사이다. '쉬지 않고' 또는 '바쁘게' 등의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 數於 : 소창은 아래의 '將來尸'의 석 자까지 끌어 올려 '쉴'의 한 음절로 읽었다. 그것은 '쉴'의 음을 표시하기 위해서 '數於將來尸'의 다섯 글자를 포개여 놓았다는 것과 같은 의미의 해석이 된다. 이에 비해 양주동은 '數於'만 '혀'로 읽었다. 아직도 '於'는 아무런 의미 없는 덧붙이기의 글자로 되고 있다. 그러나 계산의 뜻인 '혀'가 '혜' 내지 ' ' 등으로 변해서 쓰인다는 것은 이미 앞서 설명한 바가 있다. 이 말도 본래는 두 음절이었거나 적어도 끝소리를 가졌던 것으로서 '於'는 곧 그런 음과 연계되어 들어간 글자일 것이다. 물론 아직 그 관계를 명백히 밝힐 수는 없다. 우선 '數於'를 '혜'로 읽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양주동은 '數於'를 '혀'로 읽으면서 그 뜻은 '불을 켜다'의 '혀'로 해석하였다. 즉 위의 말과 관련하여 보면 '달을 켜다'는 말로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말은 있을 수 없다. 위의 '月'을 년월의 달로 해석하는 동시에 여기의 '數'는 어디까지 그 글자의 본 뜻 대로 해석하여야 한다.
* 將來尸 : 소창은 '將來'를 시칭으로 해석한 것은 옳았으나 그 시칭을 'ㄹ'로 인정하기 때문에 아래의 '尸'자로서 표시될 'ㄹ'과 중첩되는 모순에 부닥치고 말았다. 그 책은 이두 가운데 한 음의 이중 기사적 현상이 있음을 들고 그 모순을 변호하려 하였으나 한 음의 이중기사는 그런 경우와 전연 다르다. 양주동은 '將來'를 '려'에 해당시키고 따라서 '將來尸'를 '렬'로 읽었다. 비록 '려'와 'ㄹ'이 결국 동일한 어원에서 분화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향가 시대에 이미 그 분화가 행해졌다고 볼 때에는 양주동의 해석이 그대로 타당하게 되는 것이다.
* 波衣 : 소창과 양주동 모두 '바에'로 읽었고, 이 해석은 타당하다.

7.
* 道尸 : 소창은 '길 '이라고 읽고, 양주동은 단지 '길'이라고 읽었다. 양주동의 해독이 옳다.
* 掃尸 : 소창과 양주동이 모두 ' '이라고 읽었고 이 해석은 타당하다.
* 星利 : 소창과 양주동 모두 '별'이라고 읽었다. 15세기 문헌에도 별은 단음절로 나타나는 것이나 '星利'를 '별'의 단음절로 보기는 어렵다. '별'도 본래는 '벼리'이던 것인데 후대에 내려 와서 'ㅣ'가 탈락된 것으로 상정된다.
* 望良古 : 소창은 '바라고'라고 읽고 양주동은 ' 라고'라고 읽었다. 15세기 문헌에 비추어 양주동의 철자가 옳다.

8.
* 彗星也 : 소창은 괄호 안에 '이'를 삽입해서 '彗星(이)라'로 읽었는데, 양주동은 '彗星여'로 읽었다. 양중동이 '也'자를 음으로 읽은 것이 타당하지만 이왕이면 '야'로 읽는 것이 옳다.
* 白反也 : 소창은 '反'을 '외', '也'를 '라', 그래서 ' 욀'이라고 읽었다. '反'을 '외다'의 '외'로 읽는 것은 모르되 '也'를 '라', 더구나 'ㄹ'로 읽을 수는 없다. 양주동은 '反'과 '也'를 다 함께 음으로 읽어서 '  여'라고 읽었다. <풍요>에서 '哀反'을 '셜 '로 읽었으며 '也'는 음이 '야'이니, '白反也'는 '  여'라고 읽을 것이다. 또한 법토는 어떠한 말에든지 직접 붙어 쓰인다. '  ' 아래 직접 '여'가 붙은 것도 조금도 괴이할 것은 없다.
* 人是 : 소창과 양주동 모두 '사 이'라고 읽었다. 이 해석은 타당하지만 철자만은 15세기 문헌의 예에 따라 '사 미'로 고친다.
* 有叱多 : 소창과 양주동 모두 '잇다'라고 읽었고 이 해석은 타당하다.
* 後句 : 소창은 한자 그대로 두었고 양주동은 '아으'라고 읽었다. '後句'는 '뒤의 구' 즉 '끝구'의 뜻이나 이렇게 끝구를 명기하는 것은 거기 일정한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른 노래에서는 바로 이 자리에 반드시 '阿耶', '阿邪', '阿邪也' 등의 말이 들어 가 있으니 '後句'의 명기도 그런 말이 들어가야 할 자리임을 표시한 것으로 볼 것이다. 그러나 향가의 예로 미루어서는 '아야' 또는 '아야야'이다. '아으'라고 고칠 근거가 없다.

9.
* 達阿羅 : 소창은 '達阿羅'를 ' '이란 말로 보고, 다시 그 아래 괄호 안의 '이'를 붙여 놓았다. 없는 음을 괄호에 싸서까지 보충하는 반면에 '達阿羅'의 석 자를 ' '의 한 음절로 본다는 것은 확실히 불합리한 태도이다. 여기서 양주동은 '達'의 한 자만을 ' '로 보고 '阿羅'를 '아래'란 말로 고쳤다. 즉 그 책에 의하면 '達阿羅'는 '  아래'란 의미의 말로 되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위에서 ' '을 이미 '月'로 기사하였으며 또 이 마디에서 '  아래'라고 운운하는 것이 꼭 적절한 말로도 되지 않는다. 이 석 자는 전체 의태어(擬態語)로 보아야 한다. 즉 혜성이 떠가는 형용을 '드르르' 내지 '다  '라고 한 것이다.
* 浮去伊叱等邪 : 소창은 ' 갔더라'로 읽었고, 양주동은 ' 갯더라'로 읽었다. 소창은 '伊'의 음을 전연 빼던졌으나 양주동은 '갓'을 '갯'으로 만들어 그 음을 기어코 넣은 것이다. 향가 시대에 ' 갯더라'란 말이 벌써 성립되었다고 볼 근거는 없다. 이것은 ' 가 잇다라'로 읽는 것이 타당하다.

10.
* 此也友 : 소창은 '此也'만을 떼여서 '이에'로 읽고, '友'는 다시 아래의 '物北'과 붙여 '밧갓듸'로 읽었다. 각개 글자의 음이 합당하게 해석되었느냐도 문제거니와 그러한 해석으로서 의미가 투철히 통하지도 못한다. 양주동의 경우 '此'는 역시 '이'로 읽으나 '也友'는 따로 떼내어 '어우'라고 읽었다. 양주동에 의하면 '어우'란 것은 '이바', '어와'와 같은 감동사이거나 또는 '가히'의 옛말인 '어루'이거나 두 말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어루'와 함께 '어와'도 꼭 들어맞지 않는 말로 되기는 마찬가지이다. 반드시 그 두 말 중 어느 하나에 해당된다고도 말할 수 없다. '友也'의 두 자가 뒤집혀서 '也友'로 된 것이라고 추정된다. '此友也'는 '이버댜'란 말이고, '이버댜'는 현대어의 '이벗아'에 해당한 말이다. 일정한 어떤 사람을 부르는 의미가 아니다. 후대 시조에서 '님이여', '아 야'와 같이 들떼놓고 사람을 부르는 것으로 된다.
* 物北所音叱 : 소창은 '物北'을 '友'아래에 붙여서 '밧갓듸'라고 읽는 동시에 '所音叱'을 '밤ㅅ'이라고 읽었다. 그러나 지적한 바와 같이 글뜻이 잘 들어 맞지 않는다. 거기서 양주동의 '物北所音叱'의 다섯 자를 '므슴'으로 읽어서 이미 감동사로 해석한 '어우'를 받게 하였다. 그러나 '北', '叱'의 두 글자를 무조건 빼 내버리기 이전 그렇게 읽기도 곤란하다. '物北所音叱'의 '叱'자는 '物'자 바로 아래 있어야 할 것이 잘못 박혀진 것이다. '物叱北所音'은 곧 '  솜'이고, '  솜'은 또한 15세기 문헌에서 나타나는 '껄 손'이다. ' 이 '를 ' 리'라고 섰고, '所音'에 대해서는 <안민가>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규정어로 되는 토에 해당한다.
* 彗叱只 : 소창은 '비질악'으로 읽고 다시 괄호 안에 '이'를 붙였는데, 양주동은 '彗ㅅ기'라고 읽었다. 설사 '彗'는 꼬리 있는 별이요, 그 꼬리는 빗자루와 같다고 하더라도 '彗'를 곧 '비질악'으로 샛길 수 없을 것은 말 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彗ㅅ기'의 'ㅅ기'가 무슨 뜻이냐고 파고 덤비면 그 역시 대답할 근거를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백암사 고문서 제1호와 제2호에서 '僧矣段'과 같이 '矣段'으로 나타나는 말은 15세기 노산부인성문(魯山夫人成文)에 '成文事叱段'과 같이 '叱段'으로 나타나고 있다. '叱段'이 '矣段'과 같은 것으로 미루어 '叱只'가 곧 ' 只'라는 이두 토와 같은 것이라고 상정된다. ' 只'는 현대어의 '으로서'라는 토에 해당한다. 그것을 다시 '있을 가'라는 의문과 결부해 쓸 때는 '무어랄 것이 있느냐'라는 의미로 될 것이다.
* 有叱故 : 소창은 '잇고'라고 읽으면서 반문(反問)의 뜻이라고 해석하였고, 양주동은 애초부터 반문의 뜻을 취하여 '이실꼬'라고 읽었다. 만일 '叱'이 'ㄹ' 끝소리 내지 '르'음으로도 기사된 예가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실꼬'의 '꼬'는 현대어의 어음 현상이다. '이실고'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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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혼(申混)의 한시(漢詩)에 나타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흔적

전경원
2003/12/25 3897
21
 고려시대 한시의 사대부여성·서민여성·천민여성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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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25 3680
20
 고려시대 한시의 궁중여성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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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25 4038
19
 한시 작품 가운데 남성과 여성의 대화식 화자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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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25 3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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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유악부> 소재 樂府詩에 형상화된 예외적 기생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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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문집총간 고려시대 문집 한시에 등장하는 여성형상 도표 [4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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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25 3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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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사절요> - 태조에서 예종까지 '서경' 기록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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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립 장군 설화의 세계 인식"에 관하여-질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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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고려시대 한시 작품에 형상화된 여성의 형상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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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25 3451

 <혜성가(彗星歌)> 해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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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25 4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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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동과 선화공주의 자아실현을 돕고 있는 <서동요>의 감응력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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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25 5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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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기문의 <헌화가> ·<안민가> 해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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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문단편소설에 구현된 '규범(規範)'과 '욕망(慾望)'의 갈등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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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25 4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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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케의 죽음에 대한 시누이의 원통하고 애절한 사연"-祭文硏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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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25 4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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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와 전상(前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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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25 3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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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중문학비교연구 질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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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25 3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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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옥(李鈺) 한시의 원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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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25 3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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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25 3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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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玄氏兩雄雙麟記」에 그려진 귀족사회의 실상" 발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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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25 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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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四書의 <詩經> 인용에 대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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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25 3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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