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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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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동과 선화공주의 자아실현을 돕고 있는 <서동요>의 감응력 연구
* 일  시 : 2000학년 제1학기
* 과목명 : 향가문학 연구
* 지  도 : 신재홍 선생님
* 발표자 : 전경원(박사과정)

서동과 선화공주의 자아실현을 돕고 있는 <서동요>의 감응력(感應力) 연구
- 두 인물의 정체성(正體性) 확립과정을 중심으로 -




1. 서론

<무왕설화>에서 문제를 삼고 있는 남·녀 결연의 상황은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서도 끊임없이 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말하자면, 신분 내지 계층의 차이를 극복하고 혼인 당사자들의 의사에 따라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유형의 이야기들은 주변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일이다. <무왕설화>에서는 '서동'과 '선화공주'의 결연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서동요>라는 노래가 존재한다. 결과적으로 보면, '서동'과 '선화공주'의 결연을 가능케 한 것은 바로 <서동요>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뿐만아니라, 결연 이후 전개되는  상황에서도 <서동요>라는 노래는 엄청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이같은 점에 주목하여, <서동요>를 중심으로 노래가 지닌 '감응력(感應力)'의 실체는 무엇이며, 그 힘에 의해 두 주인공인 '서동'과 '선화공주'는 어떠한 방식으로 자아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고 있으며, 자아를 실현하게 되는가 하는 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서동요>에 대한 기존 연구결과는 이제 '연구사(硏究史)'만으로도 몇 권의 책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성과가 축적되어 있다. <서동요>에 대한 연구사를 시기별로 정리하자면, 우선 제1기에 해당하는 시기로 이 시기에는 주로 '서동(薯童)'의 정체에 대한 연구가 주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논의로는 '薯童'을 역사적 실존인물로 보는 견해와 설화적 창조인물로 보는 견해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의 견해로는 이병도외에도 양주동, 조윤제, 김사화, 김동욱, 정규동, 이능우, 구자균, 조지훈, 김기동, 정병욱, 김준영 등이 있었다.
반면, '薯童'을 설화적 인물로 보는 견해는 사재동을 비롯하여 김종우, 이명선, 김열규, 박용식, 최철, 김학성 등의 논의가 있었다. 이처럼 <서동요> 연구의 제1기에는 주로 '薯童'을 역사적 인물로 볼 것인가, 설화적 인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었다.
그 후, <서동요> 연구의 제2기에는 주로 <서동요>가 포함된 《무왕설화》의 설화적 측면에 주목하는 논의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논문으로는 송재조, 지헌영, 박노준, 박용식, 임재해 등의 논의를 토대로 이와 관련된 논의가 계속되었다.
마지막으로 <서동요> 연구의 제3기는 근래에 대두되기 시작한 경향으로 이제는 '서동'의 정체에 대한 논의나 설화적 관심의 측면보다《무왕설화》의 서사적 줄거리와 <서동요>라는 노래 그 자체에 주목한 논의가 서서히 주목받기 시작하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연구성과로는 신배섭, 엄국현, 강혜선, 정운채 김난주등의 논의가 주목을 요한다.
그러나 여전히 향가 <서동요>가 지니고 있는 내적 질서나 노래의 본질에 다가서고자 하는 노력은 미흡한 감이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서동요>가 지니고 있는 노래 자체의 '감응력'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선, 기존의 <서동요> 해독에 관한 성과를 비교, 검토하면서 올바른 해독의 가능성을 탐색할 것이다. 그런 후에, <서동요>라는 노래가 서동과 선화공주의 자아실현을 위해 어떠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 하는 점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2. 해독(解讀)의 문제

<서동요>에 대한 해독은 '소창진평' 이래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학자에 따라 다소의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해독의 전체적인 방향은 크게 어긋나지 않고 있다. 향가 해독에 있어서 유의해야 할 점은 '어학적 분석' 못지 않게 설화의 서사적 문맥과의 상관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어학적 접근에만 집착하는 해독은 자칫 서사적 문맥을 놓치는 경우를 종종 목도하게 된다. 따라서, 어학적 분석의 치밀함 못지 않게 서사적 문맥과의 연관성을 충분히 고려할 때, 온당한 해독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원문(原文)>
善化公主主隱
他密只嫁良置古
薯童房乙夜矣卯乙抱遣去如
<서동요>의 원문에서는 3행으로 끊어서 표시하였으나, 논의의 편의상 이를 4행으로 나누어 살펴보겠다.
〔도표1〕 <薯童謠> 해독


위의 도표를 토대로 해독의 경향을 살펴보면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대개가 일치하고 있으나, 부분적으로 해독의 견해를 달리하는 부분이 포착되기도 한다. 상이한 해독을 보이는 부분을 먼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善化公主-主隱
: 첫 행에 대한 해독에서는 모든 연구자들의 견해가 대략 일치하고 있다. '善化公主'에 대해서는 고유명사인 한자 어휘로 보는 데 일치된 견해를 보인다. 다만, '主隱'에 대하여 소창진평, 양주동, 서재극, 신재홍은 '니믄'으로 읽고 있으나 홍기문은 '니 ', 김완진은 '니리믄'으로 읽고 있다. 홍기문은 '은(隱)'을 ' '으로 수정하였는데, 이는 모음조화를 염두에 둔 해독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김완진의 경우는 일본측의 자료를 참고로 '님'의 고대형이 '니림'일 것이라며, '니리믄'으로 읽고 있다. 하지만 이는 고대로부터 '主'를 '님'으로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측의 자료를 토대로 '니림'으로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기존의 해독과 같이 '니믄'으로 해독하여, '善化公主님은'으로 읽는 것이 온당하다.  

2. 他-密只-嫁良-置古
: 둘째 행에서도 크게 쟁점이 되는 해독상의 이견은 포착되지 않는다. '他'는 소창진평만이 '남'으로 읽고, 나머지 양주동, 홍기문, 서재극, 김완진, 신재홍 등은 ' '으로 읽었다. '密只'에서는 소창진평과 홍기문, 신재홍 등이 '그 기'로 읽었고, 양주동은 '그 지'로 서재극은 '그슥'으로, 김완진은 '그 '으로 해독하였다. 다소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공통된 의미는 '(남/타인/다른 사람) 모르게/비밀리에/은밀하게'의 의미를 지닌 부사형으로 읽어야 함에는 공통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2행의 해독은 '  그 기 어러두고'로 읽고서 '남 몰래 사랑(결합)해 두고' 정도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한 신재홍의 해독에서, "본 단어 '얼어두다'는 '얼'의 원뜻에 따라 '시집갈 나이가 되다, 시집갈 마음이 들다, 시집가도 좋을 만큼 어른스러워지다, 시집갈 나이가 되어 사랑스런 모습을 띠다' 정도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순탄하다. 제1, 2행을 연결하면,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성숙해 있다가(시집갈/사랑할 마음을 두고 있다가)'로 풀이된다. 여기서 '남 몰래'라는 말도 사통이나 음탕함과 관련된 은밀한 행위에 대한 수식어가 아니라, '남들도 모르는 사이에, 주위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어느새, 어느덧' 정도의 의미일 따름이다. 이 단어 속에는 오히려 선화공주의 수줍어하는 모습, 어린아이 티에서 막 벗어나 시집갈 나이가 됨으로 해서 나타나는 신체적·정신적 각성(이른바 제2의 탄생)을 주위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않으려는 모습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화공주의 성숙이 바탕이 되어 제3, 4행에서 선화공주와 서동의 '교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독은 서사문맥과 어학적 분석 사이의 균형을 잃은 것으로 판단된다. 이같은 견해가 성립된다면, 그것은 신라 궁중의 경사(慶事)이자 경하(慶賀)할 일이지, 백관들이 극구 간(諫)하여 공주를 유배까지 보내야 할 사건은 될 수가 없다. 물론, 제3행과 4행에서 언급되는 상황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도 역시 서사문맥과는 상치(相馳)되는 해독일 수밖에 없다. 서사문맥에 주목할 때, 선화공주가 그와 같은 견해대로, 성숙되어 있었던 여인이었다면, <서동요>가 궁중에 가득하게 퍼져서 백관(百官)들이 극렬하게 간하고, 아버지인 진평왕이 분노하여, 아무런 잘못도 없었던 그녀를 유배보내는 상황에서, 그처럼 수동적이며, 일방적으로 쫓겨나는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있는 선화공주의 무기력한 행동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견해는 자칫 <서동요>라는 노래가 지닌 본원적 힘의 원천을 간과(看過)하고 있다는 판단을 주기에 충분하다. 오히려, 선화공주는 <서동요>라는 노래가 불려지기 전까지는 '성숙'과는 거리가 먼 상태로, 말 그대로 아직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미숙한 상태에 있었던 '공주'였다고 보는 것이 온당한 견해인 셈이다.
  
3. 薯童房乙
: 이 부분의 해독에서는 전체의 의미가 변화될 정도의 커다란 차이를 보이지는 않고 다만, '서동방을(소창진평)', '맛둥방을(양주동)', '서동이를(홍기문)', '마퉁놈을(서재극)', '薯童 방을(김완진)', '맛둥이 서방을(신재홍)' 등의 해독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앞의 제2행과 뒤의 제4행과의 연관성을 고려하는 동시에 서사 문맥을 배려한다면, 이에 대한 해석은 '서동 서방을'로 해독해야 자연스러운 문맥적 의미를 형성할 수 있다.

4. 夜矣-卯乙-抱遣-去如
: 이 부분에서 해독의 쟁점은 '卯乙'이었다. 이 부분에 대한 해독의 난해함을 입증하듯이 홍기문은 이 '卯'를 '卵'의 오각으로 파악하는가 하면, 김완진의 경우는 '卵乙'로 보고서, '알 '로 읽고 '알을'로 해독하는 우를 범하기도 하였다. 이 부분을 '알(卵)'로 해석할 때는 문장이 성립되지도 않을뿐더러, 아이들이 쉽게 익혀서 부르던 동요(童謠)였다는 점등을 고려할 때 다소 무리한 해독이었음이 분명하다. 또, 신재홍은 김완진 등 근래의 해독이 다소 지나친 부회적 요소가 있음을 인식하여 다시 '卯乙'로 돌아간 것은 진일보한 해독의 성과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에 대한 의미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진지한 천착(穿鑿)의 결과, 두 가지의 근거에 의해 이를 '무턱/덥석(무턱대고/불쑥)' 등의 의미로 훈독(訓讀)하였다. 그 근거의 하나는 서사문맥에서 착안하였고, 다른 하나는 '卯'의 뜻을 <중문대사전>에 기록되어 있는 '冒也, 茂也'에 주목하여 해독의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 역시 자연스럽지 못하고, 부차적인 점에 지나치게 집착한 해독의 결과라고 판단된다. <중문대사전>에 '卯'의 뜻을 추적해 나가는 과정에서 해독의 단서를 발견한 것은 큰 성과라고 할 수 있으나, 다소 부회적 요소가 없지 않다는 판단이다. 또한 서사문맥에도 해독의 근거를 삼고 있는데, 이 논문의 제4장에서도 다시 언급하겠지만, 공주가 유배지로 가는 도중에 서동이 나와서 공주를 모시고 가겠다고 했을 때, 공주는 그의 '소종래(所從來)'를 알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동을 믿고 기뻐하면서, 서동과 '잠통(潛通)'까지 하게 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선화공주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절대로 '성숙'되어 있던 여인이 아니라 여전히 미성숙한 상태에 있었던,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하지도 못할 정도로, 사태의 파악조차 하지 못했던 '미성숙'한 여인이었다. 그러기에 백관들의 주장과 아버지인 진평왕의 명령에 따라 한마디 말도 못하고 궁중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러한 점은 바로 그 서사문맥에서도 제시되어 있듯이, 선화공주가 서동을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이에 대해서는 제4장에서 구체적인 논의가 있을 것이다.
'抱遣去如'에 대한 해독은 대략 일치된 견해를 보인다. 이는 소창진평과 양주동, 홍기문, 김완진 등의 견해와 같이 '안고 가다'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신재홍은 '안고거다'로 읽으면서 '안을거다/안을게다/안을 것이다'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하면서, '미래시제의 추측형'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이러한 시각은 전체의 서사문맥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전체의 서사문맥과 <서동요>의 전문을 고려해 볼 때, 아이들이 부르는 <서동요>의 내용이,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성숙해 있다가/ 맛둥이 서방을/ 밤에 덥석 안을거다" 로 정리된다. 그런데, 과연 과거의 확실한 사건이거나 현재에 벌어지고 있는 진행형의 사건이 아닌, 선화공주가 훗날 성숙한 뒤에 미래에 일어날 수도 있는 추측형의 상황을 노래한 <서동요>를 가지고 과연 한 나라의 공주를 신하들이 다 함께 유배 보내야 한다고 극구 간(諫)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에 유의한다면 다소 회의적인 시각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서동요>의 시제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걸쳐있는 현재 진행형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선화공주가 궁중에서 쫓겨나게 되는 인과관계를 설득력있게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논의를 토대로 <서동요>를 현대어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시집가고는(=사랑하고는)
서동 서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3. 서동의 들끓는 욕망 표출과 <서동요>

'무왕설화(武王說話)'에는 서사문맥 가운데 노래 <서동요>가 실려 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서동요>를 중심으로 서사문맥을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설화의 서사문맥과 노래 <서동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제30대 무왕(武王)의 이름은 장(璋)이다. 그 어머니가 과부(寡婦)가 되어 서울 남쪽 못 가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못 속의 용(龍)과 관계하여 장을 낳았다. 어릴 때 이름은 서동(薯童)으로 재주와 도량이 커서 헤아리기 어려웠다. 항상 마(薯 )를 캐다가 파는 것으로 생업(生業)을 삼았으므로 사람들이 서동이라고 이름지었다.
② 신라 진평왕의 셋째공주 선화가 아름답고 농염함에 짝이 없다는 말을 듣고는 머리를 깎고 서울로 가서 마를 아이들에게 먹이니 이내 아이들이 친해져 그를 따르게 되었다. 이에 동요를 지어 아이들을 꾀어서 부르게 하니 노래는 다음과 같다.
③ "선화공주님은/남 몰래 시집가고는(=사랑하고는)/서동 서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④ 동요가 서울에 가득 퍼져서 대궐 안에가지 들리자 백관(百官)들이 임금에게 극력 간해서 공주를 먼 곳으로 귀양보내게 하여 장차 떠나려 하는데 왕후(王后)는 순금(純金) 한 말을 주어 노자로 쓰게 했다.
⑤공주가 장차 귀양지에 도착하려는데 도중에 서동이 나와 공주에게 절하면서 모시고 가겠다고 했다. 공주는 비록 그가 어디서 왔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저 우연히 믿음직스럽고 기뻐하니 함께 가면서 비밀히 정을 통했다. 그런 뒤에 서동의 이름을 알았고, 동요가 맞는 것도 알았다.
⑥ 선화공주는 함께 백제로 와서 모후(母后)가 준 금을 꺼내 놓고 살아 나갈 계획을 의논하자 서동이 크게 웃고 말했다. "이게 무엇이오?" 공주가 말했다. "이것은 황금이니 이것을 가지면 백 년의 부를 누릴 것입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마를 캐던 곳에 황금을 흙덩이처럼 쌓아 두었소" 공주는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면서 말했다. "그것은 천하의 가장 큰 보배이니 그대는 지금 그 금이 있는 곳을 아시면 우리 부모님이 계신 대궐로 보내는 것이 어떻습니까?" "좋소이다." 이에 금을 모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용화산(龍華山) 사자사(師子寺)의 지명법사에게 가서 이것을 실어 보낼 방법을 물으니 법사가 말한다. "내가 신통(神通)한 힘으로 보낼 터이니 금을 이리로 가져 오시오" 이리하여 공주가 부모에게 보내는 편지와 함께 금을 사자사(師子寺) 앞에 갔다 놓았다. 법사는 신통한 힘으로 하룻밤 동안에 그 금을 심라 궁중으로 보내자 진평왕은 그 신비스러운 변화를 이상히 여겨 더욱 서동을 존경해서 항상 편지를 보내어 안부를 물었다. 서동은 이로부터 인심을 얻어서 드디어 왕위에 올랐다.
⑦ 어느날 무왕이 부인과 함께 사자사에 가려고 용화산(龍華山) 밑 큰 못가에 이르니 미륵삼존(彌勒三尊)이 못 가운데서 나타나므로 수레를 멈추고 절을 했다. 부인이 왕에게 말하기를 "모름지기 여기에 큰 절을 지어 주십시오. 그것이 제 소원입니다." 왕은 그것을 허락하였다. 곧 지명법사에게 가서 못을 메울 일을 물으니 신비스러운 힘으로 하룻밤 사이에 산을 헐어 못을 메워 평지를 만들었다. 여기에 미륵삼존의 상(像)을 만들고 회전(會殿)과 탑(塔)과 낭무(廊 )를 각각 세 곳에 세우고 절 이름을 미륵사(彌勒寺) -<國史>에서는 '王興寺'라고 했다- 라고 했다. 진평왕이 여러 공인(工人)들을 보내서 그 역사를 도왔는데, 그 절은 지금도  보존되어 있다. <三國史>에는 이 분을 法王의 아들이라고 했는데, 여기에서는 과부의 아들이라고 했으니 자세히 알 수 없다.

위의 서사문맥과 같이, '무왕설화'는 크게 보아 일곱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이를 요약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서동의 출생과 성장
② 서동의 욕망(慾望) 표출
③ <서동요>의 존재
④ 선화공주의 축출
⑤ 서동과 선화공주의 결연
⑥ 선화공주의 삶의 본질 자각(自覺)과 서동의 등극
⑦ 미륵사(彌勒寺) 창건

이처럼, '무왕설화'의 서사구조는 <서동요(薯童謠)>의 창작을 중심으로 그 이전과 이후의 상황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렇게 구분할 수 있는 근거는 <서동요>를 중심으로 주도적인 행위의 주체가 노래를 중심으로 명확하게 대별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서동요>의 창작 이전 상황이 '서동'에 의하여 주도되었다면, <서동요>의 창작 이후의 상황은 중심이 '서동'에서 '선화공주'로 전이(轉移)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우선, 서사문맥의 ①에서는 서동의 어머니가 못 속의 용과 교통하여 서동을 낳았다는 서동의 기이한 출생과 어릴 적부터의 비범함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서술은 전체의 서사문맥에서 앞으로 벌어질 사건에 대한 하나의 포석(布石)으로 작용한다. 예컨대, 미천한 신분에 속한 서동이 한 나라의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독자의 설득력을 마련하기 위한 장치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서사문맥 ②에 이르면, 드디어 서동의 고귀한 신분의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욕망이 표출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② 신라 진평왕의 셋째공주 선화가 아름답고 농염함에는 짝이 없다는 말을 듣고는 머리를 깎고 서울로 가서, 마를 아이들에게 먹이니 이내 아이들이 친해져 그를 따르게 되었다. 이에 동요를 지어 아이들을 꾀어서 부르게 하니 노래는 다음과 같다.(聞新羅眞平王第三公主善花(一作善化)美艶無雙 剃髮來京師 以薯 餉閭里 童  童親附之 乃作謠 誘群童而唱之云)

위의 인용문에서 제시되었듯이, 서동이 '선화공주'를 향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그것은 다름아닌 '아름답고 농염함에 짝이 없다는 말(美艶無雙)'에 기인한다. 서동이 선화공주를 자신의 아내로까지 맞이하기 위해서 결심을 하게 되는 동인은 바로 선화공주의 아름다움에 대한 들끓는 욕망인 셈이다. 그리고는 '머리를 깎고 서울로 가는(剃髮來京師)'는 구체적 행위로 형상화된다. 그런데, 여기서 '머리를 깎는다'는 행위에 대한 해석에서 연구자에 따라서는 이것이 서동의 신분이 '스님'이었음을 의미한다고 하여, '서동'이 '원효'일 가능성을 지적하는 등의 견해가 있었으나, 여기서의 '머리를 깎는 행위'는 그러한 측면에서 보기 보다는 서동이 처한 현실 질서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으로 봄이 타당한 해석이라 판단된다.
자신이 처해 있는 현실의 질서에 순응해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새로운 세계의 질서를 자아화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했던 단절 내지는 단호한 의지의 표현으로 보는 것이 온당한 해석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 늘 그러하듯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아와 세계의 대립과 갈등이 불가피하다. 서동도 역시 자신의 들끓는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앞에 가로놓인 세계의 장애를 넘어서지 않고서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신라의 수도인 경주에까지는 잠입할 수 있었으나, 정작 문제는 그 이후로부터 전개된다. 서동의 욕망은 제어되지 않은 충동적인 욕망이었기에 그만큼 그의 앞에 가로놓인 장애 또한 쉽사리 해결되기 어려운 난관을 그에게 부여한다. 하지만, 서사문맥의 서두에서 사전에 포석(布石)을 깔아두었던 서동의 '재주와 도량'은 바로 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 서동이 스스로의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어주기에 충분하게 작용한다. 그래서, 서동은 궁중의 아이들을 '마(薯)'를 통해 꾀어낸다. 그리고는 지엄(至嚴)한 궁중의 법도에 강력한 윤리적 타격을 입히고도 남는 내용의 노래인 <서동요>를 가르쳐서, 아이들로 하여금 온 궁중에 노래가 퍼지게끔하는 지략을 발휘한다.
노래의 내용은 현실의 질서와는 전혀 무관한 아니 오히려 상반된다고 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상황을 전개하고 있는 욕망의 주체는 서동임에도 불구하고, <서동요>에서 '서동'은 '객체'로 존재할 뿐, 마치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듯한 노래를 지어 부르게 한다. 이는 처음부터 당연하고도 철저하게 서동 자신의 계략에 의한 것이었다.
이 노래가 궁안에 가득 퍼지자 결국, 지엄한 법도를 무너뜨린 선화공주는 백관(百官)들의 빗발치는 상소와 아버지의 분노를 사서는 궁중에서 축출되고 있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선화공주'의 태도에 주목해야 한다. 과연, 선화공주가 이미 자신의 성숙함을 준비해 두고서, 결연의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던 성숙한 여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에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만약 선화공주가 내적으로 성숙한 여인이었다면 이러한 문제상황에서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할 수 있어야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준비된 여인으로서 적당한 기회이었기에 자신이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명했어야 할 것이다. 그와 같은 행동이 형상화되었을 때야 비로서 선화공주가 성숙한 여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궁중에서 쫓겨나는 선화공주의 행위에 주목하면 그녀는 여전히 부모의 권위나 체제의 원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미성숙의 상태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모후인 어머니가 유배생활이 걱정되어 건네주는 금덩이를 받고는 아무런 의사표시도 없이 무기력하게 궁중에서 축출되기에 이른다.
위에서 전개된 일련의 서사문맥에 주목할 때, 모든 행위의 주체에는 서동이 배후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사건의 전개 또한 서동의 의도대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단 서동의 자신의 선화공주에 대한 욕망 표출이 성사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마련한 셈이다.
미천한 신분이었던 서동으로서는 일단 선화공주를 신라(新羅)라는 국가체제의 질서와 진평왕이라는 아버지의 체제, 그리고 궁중이라는 폐쇄적이며 닫힌 공간의 질서로부터 분리시켜 냄으로써 무엇보다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을 달성하게 된 셈이다. 그런 뒤, 서동은 다신 유배지로 향하는 공주에게 또 다른 인물이 되어 다가서고 있다.      

4. <서동요>와 삶의 본질에 눈 뜨는 선화공주

앞의 제3장에서 언급했듯이 궁중에서 축출되기 이전의 선화공주는 그야말로 잠자고 있는 공주에 불과한 여인으로 형상화되고 있었다. 달리말하자면, 선화공주는 아직까지 부모의 권위와 위엄 앞에서 자신의 정당한 의사를 피력할 수 없을 정도로 자아의 정체성을 획득하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이같은 상태에 있었던 '선화공주'에게 축출이라는 결과는 그야말로 스스로 감당하기조차 어려운 어마어마한 세계와의 대결이자 맞섬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두려움에 떨면서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던 선화공주가 아버지의 체제에서 쫓겨나 어떻게 자아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⑤ 공주가 장차 귀양지에 도착하려는데 도중에 서동이 나와 공주에게 절하면서 모시고 가겠다고 했다. 공주는 비록 그가 어디서 왔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저 우연히 믿음직스럽고 기뻐하니 함께 가면서 비밀히 정을 통했다. 그런 뒤에 서동의 이름을 알았고, 동요가 맞는 것도 알았다.(公主將至竄所 薯童出拜途中 將欲侍衛而行 公主雖不識其從來 偶爾信悅 因此隨行 潛通焉 然後知薯童名 乃信童謠之驗)  

인용문은 서사문맥의 다섯 번째 단락이다. 서동과 선화공주가 결연을 이루는 과정에 대한 서술과 동요의 징험함을 믿게 되는 과정을 언급하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궁중에서 쫓겨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선화공주는 전혀 성숙되지 못한 채, 아버지의 체제 아래에서 아무런 문제없이 평온한 나날을 보내던 여인이었다. 그런데, 서동의 지략에 의해 만들어진 <서동요>가 궁궐 내에 가득 퍼지게 되자, 결국은 부모의 곁을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떠나야만 하는 고단한 신세가 되어버린다.
이 과정에서 선화공주는 매우 불안한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지고 만다. 만약 선화공주가 조금이라도 성숙된 상태에 있었다면 오히려 아버지의 체제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계획할 수 있었던 호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선화공주는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두려움과 불안함으로 유배지를 향하게 된다. 성숙되지 못한 상태의 선화공주에게 부모와 같은 절대적 체제의 보호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욱 옥죄고 있을 뿐이었다.
그와 같은 와중에 익명(匿名)의 서동은 마침내 선화공주에게 다가선다. 미성숙된 상태에 놓여 있던 선화공주는 아버지와 같이 믿음직스럽고 듬직한 체제의 필요성을 느끼던 차에 때마침 등장한 '서동'이야말로 그녀에게는 훌륭한 또 하나의 체제로서 작용하기에 충분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선화공주는 서동이 어떤 사람인지,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면서 막연히 믿음직스러워하고 기뻐하게 된다. 이는 곧 미성숙의 상태에 머물러 있던 선화공주에게 상실한 아버지의 체제를 대신하는 새로운 서동의 체제가 확립되었음을 뜻한다.
선화공주는 서동의 질서에 재편되면서, 서로 "비밀스럽게 정을 통하면서(潛通)" 결연까지 이루게 된다. 한편 익명(匿名)으로 다가섰던 서동은 그제서야 자신의 본명을 공주에게 밝힌다. 그러자 선화공주는 <서동요>라는 노래를 시발(始發)로 자신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일련의 사건들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가를 자각하기에 이른다. 말하자면, <서동요>라는 노래의 징험(徵驗 : "然後知薯童名 乃信童謠之驗")함을 새롭게 자각하기에 이른다.
이같은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선화공주는 자신의 삶을 운명적으로 자각하면서, 삶의 본질에 한 발 다가서게 되고, 비로서 성숙한 여인으로서의 형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본질을 자각한 선화공주가 취했던 첫 번째 행동은 아버지가 명령했던 유배지로의 이동을 거부하고 바로 자신의 남편이된 서동과 함께 백제로 돌아가버린 행동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만한 사실은 서동과의 결연 이후에 보이는 선화공주의 태도이다. 결연 이전까지만 해도, 아직은 아버지의 권위와 체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지극히 수동적이고 소극적이기만 하던 선화공주가, 자신이 진평왕의 '딸'이라는 종래의 질서로부터 서동이라는 한 남성의 '아내'로서 자리매김되던 순간 이후로는 그 전의 소극적이며 수동적인 모습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고, 적극적이며 주도적인 위치에서 사건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점은 다음과 같은 서사문맥에서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⑥ 선화공주는 함께 백제로 와서 모후(母后)가 준 금을 꺼내 놓고 살아 나갈 계획을 의논하자 서동이 크게 웃고 말했다. "이게 무엇이오?" 공주가 말했다. "이것은 황금이니 이것을 가지면 백 년의 부를 누릴 것입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마를 캐던 곳에 황금을 흙덩이처럼 쌓아 두었소" 공주는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면서 말했다. "그것은 천하의 가장 큰 보배이니 그대는 지금 그 금이 있는 곳을 아시면 우리 부모님이 계신 대궐로 보내는 것이 어떻습니까?" "좋소이다." 이에 금을 모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용화산(龍華山) 사자사(師子寺)의 지명법사에게 가서 이것을 실어 보낼 방법을 물으니 법사가 말한다. "내가 신통(神通)한 힘으로 보낼 터이니 금을 이리로 가져 오시오" 이리하여 공주가 부모에게 보내는 편지와 함께 금을 사자사(師子寺) 앞에 갔다 놓았다. 법사는 신통한 힘으로 하룻밤 동안에 그 금을 심라 궁중으로 보내자 진평왕은 그 신비스러운 변화를 이상히 여겨 더욱 서동을 존경해서 항상 편지를 보내어 안부를 물었다. 서동은 이로부터 인심을 얻어서 드디어 왕위에 올랐다.(同至百濟 出母后所贈金 將謀計活 薯童大笑曰 此何物也 主曰 此是黃金 可致百年之富 薯童曰 吾自小掘薯之地 委積如泥土 主聞大驚曰 此是天下至寶 君今知金之所在 則此寶輸送父母宮殿何如 薯童曰可 於是聚金 積如丘陵 詣龍華山師子寺知命法師所 問輸金之計 師曰 吾以神力可輸 將金來矣 主作書 幷金置於師子前 師以神力 一夜輸置新羅宮中 眞平王異其神變 尊敬尤甚 常馳書問安否 薯童由此得人心 卽王位)

위의 인용문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이제 선화공주는 더 이상 수동적이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가난한 현실 속에서 앞으로 세 식구가 함께 살아갈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하는가 하면, '황금(黃金)'의 가치를 아직 모르고 있던 서동에게 그 값어치를 일깨워 주기도 하고, 또 그런가하면 자신의 아버지인 진평왕에게 황금과 서찰을 보내서는 서동의 존재를 알리고, 결국은 그로인해 자신의 미천했던 남편 서동을 한 나라의 임금의 지위에까지 오르게 하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미륵사(彌勒寺)'를 창건하는 데에도 적극적인 자세로 주청하는 모습 등을 포착할 수 있다. 이처럼 결연 이후 전개되는 선화공주의 형상은 그 이전의 소극적이며 수동적인 입장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같이 변화된 모습의 근원적 힘은 물론 <서동요>가 지닌 노래의 감응력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4. 결론

이 논문의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감응력(感應力)'이란, '마음'이 '무엇'에 느껴 '어떤 반응'이 생기는 힘을 의미한다. 이제 이를 '무왕설화'를 중심으로 환언하여 말한다면, '선화공주'는 '<서동요(薯童謠)>'에 느낀 바가 있어서, '삶의 본질'을 자각하는 힘을 얻게 되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서동'은 '선화공주가 아름답다'는 말에 자신의 '욕망'을 느끼고는 신라의 수도인 경주로 가서, 아이들을 꾀어 <서동요>라는 노래를 부르도록 하고, 결국은 선화공주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는 힘을 얻고 있다. 이같은 일련의 과정에서 향가 <서동요>는 두 주인공인 '서동'과 '선화공주'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하고, 자아를 실현하게 하는 동시에 삶의 본질을 자각하게끔 이끌어 낸 감응력을 지닌 노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이 향가 <서동요>가 지닌 감응력(感應力)의 실체라고 할 수 있다.
충분하지 못한 연구의 성과를 무리하게 진행하다 보니, 다소 부회한 면이 없지 않은가 걱정이 된다. 부족한 면은 충분한 토론 과정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가다듬으면서 더욱 발전된 후고를 다짐한다.


* <참고문헌>은 각주로 대신하는 것을 양해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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