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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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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기문의 <헌화가> ·<안민가> 해독
                홍기문의 <헌화가> ·<안민가> 해독

                                                        전경원(田京源)

<獻花歌> - "꽃흘가"

1. 紫布岩乎邊希 / 블근 바호    // 붉은 바위 가에서
2. 執音乎手母牛放敎遣 / 자 모손 어미쇼 노耽竝챨 // 손에 잡은 어미소 놓으시고
3. 吾 不喩  伊賜等 / 나  안디 붓그리샤  // 나를 부끄러워 아니 하시면
4. 花 折叱可獻乎理音如 / 곶  것거 받 호리미다 // 꽃을 꺾어 드리오리다
* 해독법 ;
1. 紫布-岩乎-邊希
① 紫布 : 소창진평의 연구에서는 "붉은"으로 읽었다. 여기서 "紫"를 "불그"로 해독한 예는 많음을 제시한다. 양주동의 연구에서는 "붉은"으로 읽는 것을 단념하고 홍기문의 말에 의하면, 양주동은 이 "紫布"라는 말을 해독하면서 "이리저리 휘둘러서"는 결국 "딛배" 라는 두 음을 끌어왔다고 한다. 그러나 홍기문은 이에 대해 그렇게 믿기 어렵고 "紫布" 역시 "불근"으로 읽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布"자는 轉寫 내지 印刷에서 "斤"의 誤字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② 岩乎 : 소창진평과 양주동의 연구에서 모두 "바회"라고 읽었지만, '乎'를 '회'로 읽을 근거는 조금도 없으며, 용비어천가의 '岩房'을 '바홧방'이라 읽은 예를 제시하면서, 반드시 '바회'라고 쓴 것도 아님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岩乎'는 '바호'라고 읽는 것이 좋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③ 邊希 : 소창은 ' 에'라고 읽었는데, 양주동은 '  '라고 읽었다. 15세기 문헌에서 '갓'이란 말이 ' '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양주동이 지적한 바와 같이 현대어의 '끝'이란 말도 이 말과 같은 어원에서 나온 것이다. '希'는 'ㅎ'의 첫소리를 가지고 있으니 그 음을 있는 대로 읽는 것이 타당하다. 단지 '희'라고 하지 않고 ' '라고 한 것은 모음조화에 맞추기 위한 것이다.
2. 執音乎 - 手 - 母牛 - 放敎遣
① 執音乎 : 소창은 '잡은'으로 읽고, 양주동은 '자 온'으로 읽었다. 15세기 문헌에도 '잡다'는 이미 현대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憂音', '夜音' 등에서 분명히 '음' 내지 'ㅁ'로 내던 '音'자를 여기서만 '으'로 낸다는 것은 수긍될 수 없다. 양주동은 그 불합리성을 지적하면서 15세기 문헌으로부터 비음(鼻音) 삽입의 현상과 연결해서 그 관계를 설명하였으나 15세기의 삽입된 비음은 'ㆁ'이지 'ㅁ'이 아니다. 그런데 이 'ㆁ'이 'ㅁ'음으로 나타난 경우도 있다. 무엇무엇부터의 '부터'를 '부텀', 무엇무엇보다의 '보다'를 '보담'으로 내는 등이다. 이것은 비음의 끝소리가 생긴 이후 새로이 나타난 현상일 것이나 비음 중에서도 'ㆁ'이 'ㄴ', 'ㅁ' 보다 훨씬 나중에 생겼다. 그에따라 처음에는 'ㅁ'이 이런 비음화의 역할을 수행하다가 나중에는 'ㆁ'에 그 역할을 인계한 것으로 추적된다.
'執音乎'의 '音'이 바로 그러한 'ㅁ'이다. 양주동의 경우처럼 'ㅁ'을 'ㆁ'로 끌어붙이려고 수고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한다.
② 手 : '소창'과 '양주동' 모두 '손'으로 읽는 데는 일치한다. 그러나 '양주동'은 '乎'를 '온'으로 읽는 것까지를 취하지 않는다. 그 끝소리는 버려야 할 것이다.
③ 母牛 : 소창과 양주동 모두 '암쇼'로 읽었다. '암'은 본래 '어미'와 같은 어원의 말일 것이다. 이 말은 글자 그대로 '어미쇼'라고 읽는 편이 옳다고 주장한다.
④ 放敎遣 : 소창은 '노흐이시고'로 읽었고, 양주동은 '노 시고'라고 읽는다. 모음조화에 의해서 '노흐' 보다는 '노'가 옳다. 소창은 명확치는 않으나 마치 그 늙은 노옹이 소를 놓은 것처럼 말했다. 그렇다면 '놓는다'는 말에 '敎'자를 붙인 것이 이해될 수 없다. 여기서 양주동은 경칭의 '이시'가 사역상과도 통한다는 문법의 역사적 발달을 들어서 '놓는다'는 말을 사역상으로 만들려고 하였다. 설사 그렇게 한다고 해도 말은 우습다. '遣'은 이두로서 <전율통보>, <유서필지> 등에서 모두 '고'로 읽고 있다.  
3. 吾  - 不喩 -   伊 - 賜等
① 吾  : 소창은 '날'로 읽고, 양주동은 '나 '로 읽었다. 한편 '나 '이란 말도 나온다. '吾 '의 두 글자는 한 음절보다 두 음절로 읽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더구나 ' '자에는 'ㅎ'음이 존재한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15세기 문헌에 '나'란 말은 격토를 붙일 때, 'ㅎ'음이 나타나지 않았으나 그 이전으로 올라가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우선 이 노래에서 '吾 '이라고 ' '자를 쓴 것도 그 증거가 된다. 단지, '吾 '이 모음조화에 의해서 '나흘'은 아니다. '나 '로 읽어야 한다.  
② 不喩 : 소창은 '아닌지'로, 양주동은 '안디'로 읽었다. 양주동은 그것을 다수의 예를 들면서 '안디'의 두 음절로 개정하였다. 물론 '아닌디'의 세 음절이 줄어 '아니'의 두 음절로 되었으며, 현대어에서는 '아니'의 두 음절이 다시 술어 '안'의 한 음절로 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은 음절의 발달과정에서 '안디'라는 두 음절의 말이 사용되었다고 상정할 근거는 충분하다.
③   伊 : 소창은 '붓글어워이'라고 읽었는데, 양주동은 '븟糖'로 읽었다. 15세기부터 현대까지 이 말은 별로 변동을 보이지 않고 있다. '붓그리'의 '글'이 ' '로 기사된 것은 물론 주목을 요하나 'ㄱ, ㅎ'의 두 음은 흔히 뒤바뀌여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한자의 관습음과 옥편음의 차이중 이 두 음의 관계가 가장 많다는 사실로 보더라도 의심할 것 없다. 물론 고대와 현대간에는 어음 체계의 적지 않은 변천이 가로 놓여 있다. 'ㄱ, ㅎ'의 두 음이 그렇게 뒤바뀌는 것도 바로 거기 기인되는 바가 크다. 양주동과 같이 ' '의 자음을 기준 삼아서 어음이 'ㅎ'에서 'ㄱ'으로 바뀌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  伊'의 석 자는 '붓그리'의 기사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④ 賜等 : 소창은 '샤든'이라고 읽었고, 양주동은 '샤 '으로 읽었다. '等'의 음을 '든' 또는 ' '의 어느 편으로 보느냐가 다를 뿐이다. '等'은 바로 ' '의 의미로 어떠어떠한 경우를 상정하는 토이다.
4. 花  - 折叱可 - 獻乎 - 理音如
① 花  : 소창은 '곳 '로 읽고, 양주동은 '곳 '로 읽었다. 나중 책에서 '곶'의 끝소리를 교정한 것 뿐이다. 그런데, 양주동이 '花 '의 'ㅈ, ㅎ'으로써 'ㅊ'음을 기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본말 전도의 고찰이라 주장한다. 'ㅊ'음을 기사하기 위해서 그러한 두 음의 연속상태를 일부러 만든 것이 이니고, 우리 어음 가운데 그런 연속상태의 출현과 함께 점차 'ㅊ'음이 발달한 것이다. '곳'을 '곶'으로 고친 것은 옳으나 ' '을 '흘'로 고친 것은 옳지 않다. ' '의 음은 '흘'이지만 우리말로 읽을 때는 모음조화에 맞추어야 한다.
② 折叱可 : 소창은 ' 거'로, 양주동은 '것거'라고 읽었다. 후자가 15세기 문헌에 나오는 책과 일치한다. "東門밧긔 독소리 것그니"(용비어천가 89장)
③ 獻乎 : 소창은 '드리오'라 읽었고, 양주동은 '받 오'로 읽었다. '獻'자는 근세에 이르러 '드릴 헌'으로 읽었으나 <훈몽자회>에서는 '받 올 헌'이다. '받 ㅸ' 내지 '받 '은 '받다'는 말 아래 존칭의 ' ㅸ' 또는 ' '을 붙인 것이니 15세기 이전에는 '받다'란 말이 남에게서 가져오는 것과 함께 남에게 주는 것까지 의미하였던 것이다. 이두어로서 상납(上納)을 '봉상(捧上)'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받자'로 읽는 것도 바로 그 까닭이다. 양주동이 '獻'을 '받 '으로 읽은 것은 정당한 해석이다. 그러나 '乎'를 '오'라고 한 것은 또한 잘못이다. 그 음 그대로 읽어야 한다. <월인석보>의 표기에서 '대숩'의 'ㅂ' 끝소리는 '대수히'의 'ㅎ' 첫소리로 나타나고 있다. '받 '의 'ㅂ'도 그와 마찬가지로 '호'의 'ㅎ'으로 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④ 理音如 : 소창과 양주동 모두 '리 다'로 읽었다. 이는 15세기 문헌에서 흔히 보인다. 여기서 '音'을 ' '에 해당한 비음으로 본 데는 이의가 없으나 그것을 곧 ' '라고 본 데는 반대한다. '音'의 음이 뚜렷이 '음' 내지 'ㅁ'으로 쓰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 ' 음의 기사라고 주장할 근거는 찾기 어렵다. 요컨대 향가 시대에는 'ㆁ'음이 아직 발달되지 못했다.  따라서 당시에 삽입되는 비음은 'ㆁ'음이 아니라 'ㅁ'음이었다. '如'는 바로 '다 '라는 뜻이다. 그 새김의 첫음절에 따서 '다'라고 읽는 것이다. 더구나 고대어에서는 'ㄷ' 과 'ㄹ' 두 음이 서로 통용되고 있었다. 뜻과 음이 거의 일치된다고도 볼 수 있다.

<安民歌> - "백성가"
1. 君隱父也   /  군(君)은 어비야  //  임금은 아비여
2. 臣隱愛賜尸母史也  /  신(臣)    샬 어 야  //  신하는 자애로운 어미여
3. 民焉狂尸恨阿孩古爲賜尸知 / 민(民)  어리한 아 고 太5 // 백성은 어린 아이라 할지
4. 民是愛尸知古如 / 민(民)이   리 알고다 // 백성이 사랑하는이 압내다
5. 窟理叱大 生以支所音物生/구릿 대 나히 고이솜 갓나히//윤회의 차축을 괴고 있는 갓난이
6. 此  惡支治良羅 / 이  머거디 다 라라 // 이들을 먹여서 편안히 하여라
7. 此地 捨遣只於冬是去於丁爲尸知 / 이    리고디 어드리 가뎌 디 // 이땅을 버리고
   어디로 가는가 할지
8. 國惡支持以支知古如 / 나라아디 디니디 알고다 // 나라를 보존할 길 아노라
9. 後句君如臣多支民隱如爲內尸等焉 / 아야 군다  신다히 민  다  鐸  // 아야 임금답         게,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한다면
10. 國惡太平恨音叱如 / 나라아디 태평榻球都 // 나라가 태평하오리다
* 해독법 ;
1. 君隱 - 父也
① 君隱 : 소창은 '임금은'으로 양주동은 한자 그대로 읽어서 '君은'으로 읽었다. 홍기문은 <삼국유사> 소재 기록을 토대로 '尼叱今'의 칭호와 함께 '임금'이란 말이 오랜 연원에 근거함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 말은 아래에 나오는 '臣隱'과 '民焉' 등과 관련해서 생각해야 함을 주장한다. 즉 '君'을 '임금'으로 읽고, '臣' 및 '民'만 한자음으로 쓰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런 점은 당시 우리말에 상당한 한자어가 유입된 상황이었고 다른 향가에서도 입증되는 바이므로, 그대로 '君'으로 읽어야 함을 주장한다. '隱'은 향가 전체를 통해서 여러 군데 발견되듯이 현대어 '은/는'이 유래되어 온 곳이다.
② 父也 : 소창은 '아비요', 양주동은 '어비여'라고 읽는다. '아비'란 말의 더 오랜 형태가 '어비'라고 볼 수 있는 근거가 없고, 심지어 그런말이 존재했던 사실을 주장하기 위해서도 <용비어천가>의 단 한 군데의 예로는 근거가 미약하다. '也'는 그 음이 '요'도 아니고 '여'도 아닌 '야'이다. 그 글자의 음 그대로 읽어야 한다.
2. 臣隱 - 愛賜尸 - 母史也
① 臣隱 : 소창과 양주동 모두 '臣은' 으로 읽었다. '은'을 ' '으로 고치고 있다.
② 愛賜尸 : 소창과 양주동 모두 '  샬'로 읽었다. '愛'를 '  '로 본 다음 '賜'는 존칭의 '샤', '尸'는 'ㄹ'로 하여 '  샬'이라고 보았는데, 홍기문도 이 견해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③ 母尸也 : 소창은 '어미라'로 읽었고, 양주동은 '어 여'라고 읽는다. <계림유사>에서도 '母'를 ' 彌'라 한 것으로 보아 '어미'란 말이 오랜 것은 사실이지만 '母史'의 '史'로 '미'의 음을 기사했다고는 볼 수 없으므로, 양주동의 연구에서 '어미'를 버리고 '어 '를 취한 것이다. 하여튼 '어 '란 의미가 모친이란 의미로 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현재의 각 방언을 끌어오지 않더라도 '母史'는 '어 '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3. 民焉 - 狂尸恨 - 阿孩古 - 爲賜尸知
① 民焉 : 소창과 양주동이 모두 '民 '이라고 읽었다. '隱'을 '은', '는'으로 보았음에 대하여 '焉'은 ' / '으로 본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첫째 '焉'이 바로 ' '의 음도 아닐 뿐 아니라, 둘째, 향가 전체를 통해서 조사의 모음조화가 거의 반영되어 있지 않다. 더구나 셋째로는 위의 '臣'과 여기의 '民'이 같은 모음임에 불구하고 한 군데는 '은'을 쓰다가 다른 한 군데와서 ' '으로 기사한다는 것도 조리에 맞지 않음을 주장한다. 대개 '焉'은 '隱'의 통용자이다. 같은 ' ' 또는 '은'으로 읽을 것이다.
② 狂尸恨 : 소창은 '밋칠은'으로 읽었고 양주동은 '얼'으로 읽는다. <훈몽자회>에서 '狂'을 '미친'이라고 새기고 있으니 '미치다'란 말도 오랜 것이나 15세기 문헌에서는 많이 '미치다'의 의미로 '어러운', '어러이' 등을 썼다. 본래 우리말에서 나이가 몇 살 되지 못한 것, 총명치 못한 것, 미친 것 등을 모두 '어리다'라고 하였다. '尸'는 꼭 끝소리만 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리'의 음으로도 된다. 굳이 '얼'이란 말을 만들어 낼 것 없이 우리말에서 쓰이고 있는 '어리'에 해당시킬 것이다. '恨' 은 한자 그대로 '한'으로 읽었다.  
③ 阿孩古 : 소창은 '  고'로 해석한 다음 다시 '라'를 한 자 보충해서 '  (라)고'로 읽었는데, 양주동은 '아 고'로 읽었다. 불필요한 음의 보충을 빼내 버린 것이다. 결국 '아'와 ' '의 차이뿐이다. 홍기문은 양주동의 견해에 따라 '아 고'를 따르고 있다.
④爲賜尸知 : 소창과 양주동 모두 '太5'로 읽었다. '爲'는 많은 경우에 ''로 새기고 있다. '賜尸'는 '샤'에 'ㄹ'을 붙인 것이다. '知'의 '디'는 '디 '로부터 ' '가 다시 탈락된 것이다. '爲賜尸知'의 '지'가 바로 이와 같은 '디'에 해당한다. 향가시대로부터 'ㅸ'음이 탈락되는 현상이 이미 존재하였다는 것은 다른 곳에서도 들어난다.
4. 民是 - 愛尸 - 知古如
① 民是 : 소창과 양주동 모두 '民이'로 읽었다. 이러한 견해에 동감하고 있다.
② 愛尸 : 소창은 '  '를 동사로 보기 때문에 그것을 명사로 만들기 위해서 'ㅁ'을 붙이여 '  '이라고 읽었다. 'ㅁ'음에 해당한 글자가 있는 것이 아니요, 현대어 문법에 맞추어 말을 만든 것이다. 양주동은 15세기 문헌으로부터 동사 아래 대격토를 붙여 명사로 쓴 예를 들면서 '尸'를 곧 대격토로 삼아서 '  '로 읽었다. 그런데, '尸'는 오직 'ㄹ'의 끝소리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리'로도 되고 있다. 만일 '愛尸'를 '  리'로 본다면 아주 의미가 완전해진다.
③ 知古如 : 소창과 양주동 모두 '알고다'로 읽고 있다. 이러한 해석에 공감하며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5. 窟理叱 - 大  - 生以 - 支所音 - 物生
① 窟理叱 : 소창은 아래의 '大'까지 연결해서 '굴ㅅ대'라고 읽으면서 '굴'은 '轉', '대'는 '所'이고, 합해서는 추기(樞機)의 뜻으로 해석했다. 의미는 통하지 않지만 글자의 음은 어느 정도 합치된다. 양주동은 그 해석을 근본부터 뒤집어서 아래의 '大 '과 관련해서 '구믈ㅅ다히'라고 읽었다. 의미로는 그럴듯하게 맞지만 글자의 음을 따지는 데 이르러서는 억지가 많다. '窟'을 '구무'로 대고 '理叱'로 'ㄹ'의 끝소리로 삼는 것도 무리이고 '大'를 '다'로 하고, ' '을 '히'로 삼는 것도 무리다. '窟理'는 '구리'로 읽고, '窟理叱'은 '구리ㅅ'로 읽어야 함을 주장한다.      
② 大  : 소창은 '大'를 '대'로 ' '은 'ㄹ'로 보아서 '댈'이라고 하였다. 위의 '窟理'와 합해서는 '굴ㅅ댈'로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大'는 '대'로 읽더라도 ' '은 ' '로 읽어야 한다. 따라서 두 말을 합해서 '구리ㅅ대 '로 되는 것이다.
③ 生以 : 소창은 '生으로'라고 읽었다. 양주동은 '支'자를 끌어올려 '生以支'의 석 자를 '살'의 한 음절로 읽었다. '살'의 뜻을 표시하기 위해서는 이미 '生'의 한 자로도 되는 것을 음도 뜻도 아무 관계도 없는 '以支'의 두 자를 채워서 그렇게 읽을 까닭이 없다. 여기의 '生'은 '낳'이고 '以'와 관련하여 '나히'로 된다.
④ 支所音 : 소창은 '支'를 '괼', '所'를 '바', '音'을 '인'으로 해서 '괼 바인'으로 읽었는데, 양주동은 이미 '支'자를 위로 올려서 음이 없는 자로 처리한 다음 '所音'의 두 자만을 '손'으로 읽었다. 그런데, 여기의 '支'는 뜻으로 읽어야 의미가 통한다. 이 말이 현대어에서는 '고이다'와 '괴다'의 두 가지로 사용되는데, 이런 경우 음절이 많은 편이 적은 편보다 더 오래된 말이 된다. 따라서 '支'는 '고이'로 읽어야하고, '所音'은 굳이 '손'으로 고쳐 읽을 것 없이 그 음대로 '솜'으로 읽을 것이다.
⑤ 物生 : 소창과 양주동 모두 한문 그대로 둔 것이 마치 한 개의 한문 성어로 생각한 것같다. 의미도 막연하게 '중생'이라고 생각한 것 같은데, '物生'이란 성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말은 '갓나히'로 읽어야 한다. 이는 현대어의 '갓난이'와 같은 말이다. '物'을 '갓'으로 새긴다. 현대어의 '이것', '저것' 하는 그 '것'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여기의 '物'이 '물건'이라는 뜻의 '갓'은 결코 아니다.
6. 此  -  惡支 - 治良羅
① 此  : 소창은 '이 '로 읽었고, 양주동은 '이흘'로 읽었다. ' '의 음을 따라 'ㅎ'음을 그대로 두는 것은 좋지만 그와 함께 모음조화를 참작하여 '흘'보다 ' '로 읽는 것이 좋다. 따라서 '이 '로 읽어야 한다.
②  惡支 : 소창은 '먹어'로, 양주동은 '머기'로 읽었다. 전자는 '支'의 음을 묵살하였고, 후자는 '惡'의 음을 묵살하였다. ' '은 본래 옥편에 없는 글자로 일본에서는 최근까지 먹는다는 의미로 이 글자를 썼다. 글자의 모양으로 보거나 문맥으로 보거나 역시 '먹는다'는 의미밖에 없다. 따라서 이 세 글자 ' 惡支'는 '머거디'로 읽어야 한다. '惡'의 음은 '악'이나 끝소리는 읽지 않는다. 향가에 사용된 한자의 'ㄱ, ㅂ'의 끝소리는 많은 경우에 읽지 않는 것으로 된다.  
③ 治良羅 : 소창은 '다 리라'로 읽었고, 양주동은 '다 라'로 읽었다. '治'는 '다 라'의 뜻이요 '다 '은 실상 백성의 생활상태인 것이니, '먹'이 '먹이', '웃'이 '웃기'로 되듯이 '다 '이 '다 이'로 된다. '良羅'는 '어라' 내지 '아라'에 해당하는 것으로 '다 라라'니 즉 상기 '더듸여라', '당치 못 하여라' 등과 같은 어감을 주는 말이다.
7. 此地  - 捨遣(只) - 於冬是 - 去於丁 - 爲尸知
① 此地  : 소창은 '이  '로 읽고, 양주동은 '이 흘'로 고치였다. 이렇게 고친 이유는 향가 시대에 모음조화가 없었다는 것이 아니고 ' '의 음이 '흘'아라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양주동은 <헌화가>에서 '希'를 ' '로, '等'을 ' '으로 읽어서 모음조화에 맞추고 있다. 만일 '希'를 ' '로, '等'을 ' '으로 볼 수 있다면 ' '도 ' '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로 읽어야 한다.
② 捨遣只 : 소창은 '버리고'라고 읽었는데, 양주동에서는 아래의 '只'자까지 올려서 ' 리곡'이라고 읽었다. 현대어의 '버리다'를 15세기 문헌에서 ' 리'로 쓴 것이 사실이나 ' 리곡'의 '곡'은 그 가부에 대하여 의논이 많을 수 있는 문제이다. 양주동은 이것을 '강세의 첨미소(添尾素)'라고 일컬으면서 향가의 '只'자가 바로 그런 음의 기록이라고 단정하였다. 한편으로는 향가시대에 처음부터 'ㄱ'음의 끝소리가 있어서 그것을 '只'로 기록했다고 보는 견해도 성립될 수 있는 것같이 그 당시 '只'의 음으로 나타나던 토가 후대에 이르러 'ㄱ'으로 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설 수 있다. 이두어를 해석하는 체계에서 후자의 견해가 더 타당할 뿐만 아니라 향가의 해석을 체계적으로 정리함에서도 후자의 견해가 훨씬 유리한 것이다.
③ 於冬是 : 소창은 '어듸'로 읽었고, 양주동은 '어드리'로 읽었다. '冬'의 음은 '들'이니 '於冬'은 '어들'이고, '是'는 '이'니, '於冬是'는 '어드리'이다. '어드리'는 '이리', '저리'와 같이 방향을 가리키는 말로 일부 방언에서는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④ 去於丁 : 소창은 '가 뎡'으로 읽었고, 양주동은 '갈뎌'로 읽었다. 양주동은 소창의 주장인 '去於'를 '가 '으로 읽는 데 대해서 '가 '은 '去隱'으로고 표기할 수 있는 것을 왜 굳이 그렇게 표기했겠느냐고 말했다. 그런 논리에 홍기문도 양주동의 주장인 '갈'도 '去尸' 또는 '去乙'등의 일반적 표기방법이 있는 것을 어째서 '去於'로 표기했느냐고 반문한다. '去於'의 '於'는 '가다'란 말이 일찍이 가지고 있던 어떤 끝소리를 그 첫소리로 받아서 이룬 음절이다. 지금 그 첫소리는 소실되고 오직 모음에 해당한 '於'만 남아 있으므로 그 존재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앞서 <모죽지랑가> 중 '哭屋尸'의 '屋'에서도 이미 소실된 음의 위치 관계 뿐이다. '丁'은 '뎡'으로 읽지 말고, '뎌'로 읽어야 한다.
⑤ 爲尸知 : 소창은 ' '이라고 읽으면서, 아래 말의 규정어로 해석했는데, 양주동은 ' 디'로 읽어서 위의 '愛賜尸知'와 같은 의미로 해석하였다. 사실 '愛尸知'는 '愛賜尸知'로부터 존칭의 '賜'를 뺀 것 - ' 디' - 이라고 밖에 더 달리 볼 수 없다.
8. 國惡支 - 持以支 - 知古如
① 國惡支 : 소창은 '나라해'라고 읽었고, 양주동은 '나라악'이라고 읽었다. 전자는 '惡支'를  
' '로 읽는 것도 무리이고 후자의 '惡支'를 '악'으로 읽는 것도 무리이다. '國惡支'를 주격으로 보고, '持以'가 타동사라고 하더라도 직접보어가 빠졌다고 볼 때에는 훌륭한 문장으로 성립된다. 애초부터 이 노래는 백성들을 제목으로 삼은 것이므로 지니는 주체를 나라로 삼고 그 대상을 백성으로 삼아서 말할 수도 없지 않다.
② 持以支 : 소창은 '持以'만을 떼여서 '디녀'로 읽고, '支'는 아래로 내려서 '괴'로 읽었는데, 양주동은 '디니디'로 읽었다. 전자는 '以'를 '여'의 음으로 읽는 것도 타당한 것은 아니지마는 '支'를 아래로 내려 보낸 것은 더 큰 착각이다. 양주동과 같이 '디니디'로 읽어야 함을 주장했다.
③ 知古如 : 소창은 위의 '支'와 연결해서 '괼고다'라고 읽었는데, 양주동은 위에서 이미 나온 바와 같이 '알고다'라고 읽었다. 마찬가지로 '알고다'로 읽어서 의미가 훌륭하게 통하는 것을 일부러 달리 읽을 필요가 없다.
9. 後句 - 君如 - 臣多支 - 民隱如 - 爲內尸等焉
① 後句 : 소창은 한문 그대로 두었는데, 양주동은 '아으'라고 읽었다. 그것은 다른 향가에서 이와 꼭같은 위치에 '阿耶', '阿邪', '阿也' 등을 썼으니, 후대의 노래로부터 나오는 '아으'를 가지고 그것을 교정할 이유는 없다. 신라시대의 '아야'가 고려 또는 조선으로 내려와서 '아으'로 변할 수도 있다. 현대어의 감동사로서는 '아으'보다 '아야'가 여러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② 君如 : 소창은 '임금이다'로 읽었는데, 양주동은 '君다이'로 읽었다. '如'가 이두로는 흔히 '다'로 쓰이기 때문에 전자는 '이다'로 보았지만 실상 '如'가 '다'로 쓰이는 것이 '다 '라는 뜻에서 나온 것이라 '다'로 해석하는 것보다 '다 '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단지 '다이'는 '다 '의 'ㅸ'이 탈락한 뒤의 말이다. '다 '를 버리고 '다이'로 해독할 필요가 없다.
③ 臣多支 : 소창은 '臣이다'로 읽었는데, 양주동은 '臣다이'로 읽었다. 해석은 다르지만 '多支'를 위의 '如'와 동일하게 본 것에는 일치한다. 그러나 '如'를 '다 '로 본다면 '多支'가 '다 '란 음의 표기가 될 수 없다. '다 '의 ' '는 '다히'로도 변하였는 바, '多支'는 곧 '다히'란 음의 표기일 것이다.
④ 民隱如 : 소창은 '民이다'로 읽었고, 양주동은 '民다이'로 읽었다. 여기서도 역시 '隱'자를 무시하고 '如'자만을 읽는 점에서 일치한다. 그러나 '隱'자를 넣어서 '民 다 '로 해도 말이 된다. 현대어에서도 '무엇은 답지 못하다' 등의 말을 쓰고 있다. 또 전체로 보더라도 '君다  臣다히 民 다 '라고 하는 것이 말을 놓는 편으로나 글귀를 만드는 편으로나 모두 더 다채롭게 된다. 있는 '隱'자를 구지 빼고 읽어야 할 이유는 없다.
⑤ 爲內尸等焉 : 소창은 ' 든'이라 읽었고, 양주동은 '鐸 '이라고 읽었다. 만일 ' 든'으로 해석한다면 '內'자는 전연 무시되어 버리고 만다. '等隱'은 끝소리가 음절화한 것으로서의 발음을 기사한 것이 아닐가 한다. 여기의 '等焉'의 '焉'도 곧 '隱'의 음으로 쓰인 글자이다. 따라서, 양주동의 견해와 같이 '鐸 '으로 읽고 있다.
10. 國惡 - 太平恨音叱如
① 國惡 : 소창은 '나라해'로 읽었고, 양주동은 '나라악'으로 읽었다. '惡'에 대한 해석은 근본적으로 틀리지만 그것을 위의 '惡支'와 꼭 같이 보고 있는 점에서는 완전히 동일하다. 그러나 '惡'과 '惡支'가 무조건 같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惡'자 아래의 '支'자가 누락되었다고 보아야한다. 따라서 '나라아디'로 보는 것이다.
② 太平恨音叱如 : 소창은 '太平(이) 하와 다'라고 하고, 양주동은 '太平榻區〈'라고 읽었다. 전자는 공연한 주격 토를 괄호에 넣어서 첨가한 반면 실상 '叱'자의 음은 빼놓았고, 후자는 그것을 교정하면서도 <헌화가>의 '理音如'와 비교해서  'ㅣ'음이 하나 부족하다고 걱정하고 있다. '恨', '音' 등의 끝소리가 현대어에서와 같이 발음된 것이 아니고 음절화할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ㅣ'음의 부족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어느 책에서나 '音'을 'ㆁ'음에 해당시킨 것이 옳지 않다. 그 본래의 음 대로 두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태평榻球都'로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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