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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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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문단편소설에 구현된 '규범(規範)'과 '욕망(慾望)'의 갈등양상
* '99. 12/17(金)
* 설화소설문학론 최종보고서
* 지도 : 신동흔 선생님
* 발표 : 전경원(박사4기)

한문단편소설에 구현된 '규범(規範)'과 '욕망(慾望)'의 갈등양상
- 남·녀 주인공의 결연을 중심으로 -  


1. 서론
문학작품 연구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는가? 아니, 연구자는 작품을 통해 무엇을 읽어내고, 어떠한 측면에서 인간의 삶에 하나의 활력 내지 용기를 끌어낼 수 있는가? 하는 현실적, 효용적 측면의 물음에 직면할 때마다 당황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달리말해 그만큼 문학연구가 현실과 동떨어진 채, 공허한 논의에 지나지 않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이글에서 사용하는 '정(情)'과 '이(理)'의 개념은 흔히 사용하고 있는 '욕망(慾望)'과 '규범(規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정'과 '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이유는 '정'과 '이'의 범주를 단순히 '욕망'과 '규범'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감당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논문은 한문단편소설을 대상으로, 한 시대의 성격을 규정짓는 '정(情)'과 '이(理)'의 실상을 살피고자 한다. '정'과 '이'가 대립하고 갈등을 빚어내는 양상, 그리고 그러한 갈등상황을 해결하는 방식 등을 통해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제시하리라 기대한다.    

2. 정(情)과 이(理)의 상호견제 및 작용
우리는 흔히 '정(情)'과 '이(理)'보다는 '욕망'과 '규범'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정'과 '이'의 개념에는 '욕망'과 '규범'이 포함된다. '욕망'과 '규범'은 '정'과 '이'의 하위범주에 해당하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情)'의 범주에는 '기쁨(喜)', '분노(怒)', '슬픔(哀)', '즐거움(樂)', '애정(愛)', '미움(惡)', '욕망(慾)' 등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理)'의 범주에는 '관습', '윤리'또는 '도덕', '법' 등이 있다.
이를 잘 살펴보면 하나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는데, 정은 자연발생적인데 비하여, 이는 인위적인 요소에 의해 발생함을 알 수 있다. 이말은 정과 이가 상호작용을 통해 적절히 견제와 균형을 이룰 경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정이 이의 견제력보다 강한 경우는 마찰과 갈등이 야기되고 새로운 규범을 요구한다. 사회적 갈등도 이와 같다. 규범이 요구하는 범위를 초월하여 그 이상을 요구할 때, 사회는 규범이라는 칼날을 들이대면서 정(情)의 흐름을 막으려 하는 것이고, 여기서 '정'과 '이'의 정면충돌이 생기게 된다. 이때, 정(욕망)이 이(규범)를 무너뜨리는 경우, 사회는 변혁이 일어나는 것이고, 규범이 욕망을 억제할 수 있는 경우에는 사회적 규범이 여전히 유효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그러나 문학작품은 언제나 한 시대의 금지된 욕망을 지향하기 마련이고 다양한 소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창작되고 있는 것임을 인정한다면 정과 이의 대립과 갈등은 불가피한 현실인 것이다. 우리는 작품 연구를 통해 어떠한 정이 어떠한 이와의 대립과 갈등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현실에 대처하는가?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하는 점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오늘날 우리 자신도 정과 이가 치열하게 대립하고 갈등하는 현실의 소용돌이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3. 작품에 구현된 실상

3.1. 심생(沈生)
<심생>은 담정 김려(金 )가 편찬한『담정총서( 庭叢書)』중에 수록된 것으로 이옥의 작품이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된 조선 후기 상황에 대하여, "18세기 이후 소설의 발달은 소설 독자층의 확대와 밀접하게 연관된 현상이었다. 특히 유교적인 도덕 관념에 깊이 젖어 있지 않고 생활에 여유를 누렸던 사회 계층의 성장에 의해서 새로운 소설 독차층이 확대되어 간 것이다. 새로운 독자층으로서는 우선 서울의 중인층 내지 상인층이 꼽히게 된다. 이 작품의 여주인공이 바로 이 새로운 소설 독자층의 한 사람일 것이다."라고 기술한다. 이 작품은 신분이 다른 두 남녀의 사랑을 소재로 삼고 있다. 작품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심생'은 서울의 양반으로 고귀한 신분을 타고난다. 심생은 어느날 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처녀에게 강렬한 애정을 느끼고는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전심전력 우직하게 노력한 결과 일단은 두 남녀의 결합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양반층의 자제와 중인층의 자녀라는 신분적 갈등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사랑은 결국 죽음으로 치닫고 만다. 심생이 처녀의 유서(遺書)를 받은 뒤 붓을 던지고는 무관(武官)의 자리로 나아갔다 하였는데, 이는 그 충격 때문에 무던히 고민하다가 학업을 중단하고 문과에는 급제가 안되어 마지못해 무관으로 나아간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그 고민 끝에 죽고 만다.

결국 이 작품에서 심생의 죽음은 한 여성에 대한 사랑 때문에 끝끝내 현실에 순응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이같은 서사맥락을 지닌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남녀 주인공의 성격 및 갈등의 양상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심생은 전형적인 양반 가문의 자제로 용모가 매우 준수하고 풍정(風情)이 넘치는 청년이다. 그는 매우 활달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처녀에게 접근하며, 갖은 노력을 다하여 처녀와의 결연을 이루어 내는 우직함과 인내심을 겸비한 인물로 묘사된다. 그러나, 여성과의 결연을 이룬 후부터는 소극적이며 자신의 행위를 주도해 나가지 못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결국은 심생의 우유부단함이 처녀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하나의 요소로 작용한다.
반면 처녀는 호조(戶曹)에서 일하는 중인 신분이었던 계사(計士)의 딸로 부유한 가정환경 아래서 한가롭게 소설을 읽으며 지낼 수 있었던 인물로 묘사된다. 또한 처녀는 나이에 비해 매우 사려가 깊고 이성적이며 조숙함을 지닌 현숙한 여인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작품 내에서 심생의 계속된 월장 끝에 부모님께 그간의 상황을 설명하는 대목을 보면 처녀의 이러한 성품이 잘 드러난다.

... 저분은 양반댁 도령으로 지금 바야흐로 청춘이라 혈기가 아직 정치 못하여 다만 나비와 벌이 꽃을 탐낼 줄만 알고 바람과 이슬에 맞음을 돌보지 않으니 며칠 못가서 병이 나지 않겠습니까. 병들면 필야 일어나지 못하리니, 그렇게 되면 제가 죽이지 않았어도 제가 죽인 셈입니다. 비록 남이 모르더라도 반드시 음보(陰報)가 있게 됩니다. 또 제 몸은 한낱 중인(中人) 집 딸에 불과합니다. 제가 무슨 절세의 경성지색(傾城之色)으로 꽃이 부끄러워할 만한 용모를 지닌 것도 아닌데, 도련님께서 솔개를 보고 매로 여기시어 제게 지성을 바치되 이토록 부지런히 하옵십니다. 제가 만을 도련님을 따르지 않으면 하늘이 반드시 싫어하시어 복을 제게 주시지 않을 거에요. 제 마음을 정하였습니다. 부모님께서는 근심하지 마옵소서.

위에 제시된 바와 같이, 처녀는 나이에 비해 조숙한 여성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심생의 처지와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인간에 대한 기본적 애정과 배려를 소유한, 현숙한 인물로 묘사된다.
이들의 만남은 운종가에서 임금의 행차를 구경하고 오던 길에서 이루어진다. 어떤 건강한 계집종이 자줏빛 명주 보자기로 한 여자를 덮어씌워 업고 가는데, 그 뒤를 한 계집애가 붉은 비단신을 들고 따라가고 있었다. 심생은 그 뒤를 바짝 따라붙었는데, 갑자기 부는 바람에 보자기가 걷힌 사이로 처녀의 얼굴을 본다.

봉숭아 빛 뺨에 버들잎 눈썹, 초록 저고리에 다홍치마, 연지와 분으로 가장 곱게 화장을 하였다. 얼핏 보아서도 절대가인임을 알 수 있었다.

심생은 말 그대로 첫눈에 반해서는 처녀의 뒤를 밟아서는 그 신분과 집을 알아낸다. 그런 후, 그는 매일밤 그녀의 집 담장을 넘어들어갔다가는 처마 밑 바깥벽에서 기대 앉았다가는 새벽 종이 울리면 도로 넘어나오기만을 20일 이나 반복한다. 스무날 째 되던 밤, 처녀는 이미 알고 있었던 듯이 놀라지도 않고 심생에게 가서 설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생은 포기하지 않고 비가 오는 날에는 옷이 흠뻑 젖은 채로 개의치 않고 찾아간다. 이렇게 다시 열흘이 지나자 처녀는 심생을 방으로 들인 후, 부모님을 모신 자리에서, 위에서 인용한 인용문과 같이 말씀을 드리고, 양친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심생과 동침을 이룬다.
둘 사이의 결연이 이루어진 후에도 처녀는 변함없는 마음으로 심생을 지아비로 생각하면서 정성을 다한다. 그러나 결연을 이룬 후, 심생은 결연 이전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상황을 처리하지 못하는 듯한 인상을 심어준다. 결연과정에서 보이던 주도적이며 우직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다만 밤마다 나가서 처녀와 동침을 하고 아침에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이 발각이나 되지 않을까 하며 근심하는 태도만을 취한다.
처녀의 집이 부유했기에 심생을 위해 산뜻한 의복을 정성껏 마련해 주어도 그는 집에서 이상하게 여길 것이 근심되어 입어보지도 못한다. 그러면서도 밤이면 계속 몰래 집을 나와 자고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그러던 어느날 심생의 부모는 아들의 행적을 수상쩍게 여기고는 절(寺)에 가서, 공부하기를 명한다. 그는 내심으로는 불만이었으나 부모님의 명령과 친구들에게 이끌려 책을 싸들고 북한산성으로 올라간다. 이러한 과정에서 '심생'은 전통적 가치관, 말하자면 '효(孝)'나 '문벌의식' 등에 얽매여 자신의 심정을 확고부동하게 결단 내리지 못하고 욕망과 규범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전개된다. '여인'과의 관계를 밝히고, 혼인의 의사를 밝힐 경우에 초래하게 될 파문, 부모님의 입장, 신분제도의 일탈 등등 수 없이 그를 둘러싸고 있는 규범적 현실 앞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우유부단한 면이 부각된다.
처녀와 연락이 끊어진 채, 선방에 머문지 한달 가량이 되었을 무렵, 심생에게 처녀의 편지(遺書)가 한통 전달된다.

봄추위가 아직도 쌀쌀하온데 절간의 글공부에 옥체 평안하시옵니까. 항상 사모하옵는 바 어느날이라 잊으리까. 소녀는 도련님께서 떠나신 이후로 우연히 큰 병을 얻어 점점 골수에 사무쳐 백약이 무효하온지라 이제 필경 죽음밖에 없는 줄 알았사옵니다. 소녀처럼 박명한 몸이 살아본들 무엇하오리까만은, 우선 세가지 큰 한(恨)을 가슴에 안고 있으니 죽음에 당해서도 눈을 감지 못하옵니다. 소녀 본래 무남독녀로 부모님의 사랑하옵심을 받자와 장차 부모님께서는 적당한 사위를 구하여 만년(晩年)의 의지를 삼고 후일의 계책을 마련코자 하였더니, 호사다마라 뜻밖에 악연에 얽히었군요. 제가 외람되게 높은 소나무에 붙었으나 혼인이 이제는 끊어진 바람이옵니다. 이는 소녀가 아무 낙이 없이 시름하다가 마침내 병으로 죽음에 이른 까닭이옵고, 이제 늙으신 부모님은 영원히 의지할 곳이 없게 되었사오니, 이것이 첫째 한(恨)이옵니다.
여자가 출가하면 비록 종년이라도 문에 기대어 손님을 맞는 기생의 몸이 아닌 다음에야 남편이 있고, 또 시부모가 있겠지요, 세상에 시부모가 모르는 며느리가 있사오리까. 소녀 같은 몸은 남의 속임을 받아 몇 달이 지나도록 일찍이 도련님댁의 늙은 여자 하인 하나도 보지 못하였사오니, 살아서 부정한 자취를 남겼고, 죽어서 돌아갈 곳이 없는 귀신이 될 것이라 이것이 둘째 한(恨)이옵니다.
부인이 남편을 섬기매 음식을 장만하여 공궤하고 의복을 지어서 입으시도록 하는 일보다 큰 일이 있을까요. 도련님과 상봉한 이후 세월이 오래지 않음도 아니요, 지어드린 의복이 적다고 할 수도 없는데, 한 번도 도련님에게 한 사발 밥도 집에서 자시게 못하였고, 한 벌 옷도 입혀드리지 못하였으며, 도련님 모시기를 다만 침석(枕席)에서 뿐이었습니다. 이것이 셋째 한(恨)이옵니다. 그리고 상봉하온 지 얼마 아니되어 문득 길이 이별하옵고, 병으로 누워 죽음이 다가왔으나 대면하와 영결을 못하옵니다. 이러한 여자의 슬픔을 어찌 족히 군자에게 말씀드리오리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러 창자가 이미 끊어지고 뼈가 녹으려하옵니다. 비록 연약한 풀이 바람에 쓰러지고 시들은 꽃잎이 진흙이 된다 하온들 끝없는 이 원한은 어느날이라 다하리오.
오호라! 창 사이의 밀회는 이제 그만입니다. 바라옵건대 도련님은 소녀를 염두에 두시지 마옵시고 더욱 글공부에 힘쓰시어 일찍이 청운의 뜻을 이루소서. 옥체를 내내 보중하옵기 천만 비옵니다.

처녀가 남긴 이 유서(遺書)는 처녀의 심정을 곡진하게 전하고 있다. 심생은 편지를 받아보고는 통한의 눈물을 흘린다. 자신의 무책임함, 처녀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 등 다양한 감정이 뒤엉켜 결국은 심생도 그로 인해 일찍 죽고만다.
그렇다면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필자의 견해로는 신분제도로 인한 신분갈등의 모순을 문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판단된다. 젊은 남녀의 순수한 애정이 사회규범에 의해 저지당하고, 구속된 채, 질곡된 삶을 살아가는 당대의 실상을 꼬집고 있는 작품이라고 판단된다. 물론, 이 작품을 사회규범(理)이 욕망(情)을 억누름으로써 사회의 체제를 더욱 공고히하고자 하는 보수적 이념을 지향하는 작품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처녀의 죽음 그자체에 주목하여 비극적 결말이므로 곧 규범의 승리라고 인식하는 것은 너무도 단선적 측면에 주목하는 것이 아닌가 판단된다. 작가가 진정 말 하고자 했던 의도는, 서로가 그토록 갈망하면서도 밝은 대낮에는 함께 있을 수 없는 사회적 규범, 양반의 경우, 신분이 낮은 중인층과는 혼인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왜곡된 사회, 결국은 한(恨)만을 품고 죽어가야 했던 당시의 수많은 여인들의 응어리를 작가는 고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판단된다.  

3.2. 소설(掃雪)
이 작품은 『계서야담(溪西野談)』권4에 실려있다.『선언편』,『청야담수』권5, 『동패낙송』권상(上)에도 수록되어 있고,『청구야담』권2의 '聽妓語 悖子登科'와 『동야휘집』권6의 '掃雪庭 獲窺故情'도 같은 내용이다. 작품의 기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느 재상이 평양감사로 있을 때 외아들이 따라가 있었다. 외아들은 동갑내기 기생이 너무나 아름다워 서로 좋아하게 되었다. 어느덧 둘 사이의 정(情)이 두터워질 무렵, 감사의 임기가 끝나서 돌아갈 때가 되었다. 그런데, 그 기생과의 관계를 알고 있던 부모는 아들이 기생과 쉽게 情을 끊고 떠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이에 아들은 한갓 풍류호사에 불과한 것이라며 여자를 단순한 기생으로 희롱했던 것임을 말하고, 그 기생도 기생이라는 자신의 처지에 순응하여 큰 문제없이 이별하였다.
그후, 소년은 책을 짊어지고 절(寺)로 들어가 학업에 힘쓰게 된다. 그러던 어느 겨울밤, 눈이 하얗게 내린 뜰에 혼자 난간에 비껴 앉았다가 쓸쓸한 심정이 일었는데, 그때 갑자기 평양 기생이 간절하게 떠올랐다.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아 선한 용모가 떠오르면서 그리움이 샘솟듯하여 잠을 못이루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그러다 새벽녘에 곧바로 평양으로 향한다. 아침에 동학(同學)들이 그가 사라진 것을 알고 백방으로 수소문해 보았지만 행방을 알 수 없어 결국은 호랑이에게 물려간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소년은 연정을 못이기고 당장에 평양으로 찾아가는 다소 충동적인 행동을 범한다. 소년의 이러한 행동은 이성을 잃은 행동이었으며, 반사회적이며 반도덕적인 패자(悖子)의 짓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모든 사회적 이념이나 통념을 걷어낸 순수한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순진한 인간의 애정표현이었고, 이에 기생도 기생이 아닌 인간으로 돌아와서 소년의 가장 인간적인 순수한 사랑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일단 인간적인 사랑을 구가할 수 있었으나, 그 결과는 세상에 용납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 그들은 숨어살지 않으면 안되었고, 그같은 상태로는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없었다.
그러나 기생의 헌신적 노력으로 소년은 학업에 전념할 수 있었고, 몇 년후 열린 별시(別試)에서 소년이 장원을 한다. 그들의 성실한 노력에 의해 소년이 과거에 급제함으로써 사회적, 도덕적으로 구제되고, 그로인해 그들의 관계가 떳떳해질 수 있어서 비로소 행복한 인생을 얻게된다.

이 작품은 양반과 기생이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통해 인생의 최종목표라 할 수 있는 참된 행복을 이루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앞의 작품 <沈生傳>과는 달리 신분갈등이 존재하지만 이를 과감히 이겨내고 행복을 성취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소년'은 아직은 충동적이며 즉흥적인 성격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진지하면서도 매우 열정적인 성격도 아울러 지니고 있다. 자신의 순수한 애정을 지키기 위해 사회규범을 초월할 줄도 아는 용기를 지닌 인물이다.
또한 '기생'은 자신의 신분을 숙명론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인간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는 인물로 묘사된다. 깊은 그리움에 자신을 찾아 달려온 한 남자를 위해, 신임사또 자제의 수청을 들던 기생으로서가 아닌 한 여인으로서 다가설 줄 아는 순수한 존재이다. 또한 기생은 매우 희생적이며 소년을 성숙시켜가는 조력자의 역할도 훌륭하게 수행한다. 가령, 자신을 찾아 평양까지 온 소년과 함께 먼곳으로 떠나와서 생활하는데, 어느날 기생은 소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낭군은 부모를 배반하고 이렇게 되었으니 죄인이올시다. 속죄할 길이란 오직 과거급제에 있고, 급제하는 길은 부지런히 공부하는 데 있지요, 의식 걱정은 제게 맡기시고, 이제부터 학업에 전력하시면 뒤에 방법이 생기겠지요.

이처럼 기생은 매우 사리판단이 밝으며, 헌신적인 인물로 형상화되어 있다. 또한 아직은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소년을 적절하게 돕고 있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오히려 소년이 훗날 성공할 수 있는 확고한 토대의 구실을 하고 있다. 결국은 그러한 성품으로 말미암아 규범과의 갈등에서 규범을 초월하여 일탈했으면서도 인정을 받고 하나의 질서를 이루는데 성공하게 된다. 이 작품은 앞에서 보았던 <심생전>과 달리 신분차이를 극복하고 결연에 성공한 이후로 인물의 적극적, 주체적인 상황타개 의지와 능력에 힘입어 규범을 초월하면서도 행복을 구가할 수 있었다.  

3.3. 피우(避雨)
이 작품은 『해동야서(海東野書)』에 실려있고, 『청구야담(靑邱野談)』권4에도 실려있다. 원 제목은 '權斯文 避雨逢奇緣'인데 <피우>만으로 제목을 삼았다. 작품의 기본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상처(喪妻)를 하고 혼자 살고 있는 '권생'이라는 선비가 과거를 보러 가던 중, 소나기를 만나 한 초가집 추녀 밑에서 비를 피하다가 그 집에 사는 한 여인과 만나게 된다. 젊은 나이의 여인은 소복이 정결하고 용모가 단정하며 언사나 품행이 민첩하고, 더불어 이야기 나누는데 조금도 부끄러운 기색이 없었다. 그녀는 응시장에 다녀오려면 날이 저물어 문이 닫쳐 아무래도 집에 가기 어려울테니 돌아가는 길에 들려도 좋다는 말을 건넨다.
권생이 응시장을 다녀오다가 그 말이 생각나 들려보았더니, 과연 저녁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저녁을 들고 유숙하였다. 권생은 밤에 젊은 미녀와 한방에 마주 앉았는데 주위에는 사람도 없고 풍정(風情)이 동하여 동침을 하였다. 그런데 그 여자는 별로 희색(喜色)도 없고, 그저 쓸쓸히 한숨만 짓곤 하였다. 그 이유를 물어도 여자는 묵묵부답이었다. 그후로 권생은 그 집에 자주 왕래하며 몇 달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날 권생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 집에 들렸는데, 한 노인이 문앞에서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고 인사를 하는데 그 노인은 여인의 시아버지였다. 그러면서 노인은 자신의 뜻을 권생에게 설명한다. 며느리가 열다섯에 혼인하여 미처 합궁(合宮)도 못하고 죽어 청상과부가 된 사실, 그리고 지금 스물 넷이 되도록 혼인은 했다지만 아직 음양의 이치를 모르는지라 며느리 신세를 생각하면 측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아 늘 개가할 것을 권해왔다는 등, 지금까지 8, 9년이 되도록 수절을 해와서 마음이 편하지 못했는데, 권생이 왕래하는 사실을 진작에 알았는데, 인사가 늦어 죄송하다며 감사를 표시한다. 이로부터 권생은 아무 거리낌 없이 왕래한다.
그런데, 그 뒤 3년만에 노인은 병으로 죽고 권생은 몸소 주관하여 초종장례를 다 치른다. 모든 장례가 다 끝나고 졸곡(卒哭)마저 끝났을 때, 그 여자의 안색이 매우 처참해 보였다. 권생이 조심스레 물었더니, 여인은 자신이 권생을 받아들이고, 동침했던 이유를 설명한다. 시아버지의 소망대로 음양의 이치를 안 뒤에 죽고자 하였으나, 자신이 죽으면 아무 의지할 데 없는 시아버지의 신세가 가엾어 죽지 못했는데, 이제 시아버지께서 천수를 다하시고 장례도 마쳤으니 더 무슨 소망이 있어 세상에 오래 머무르겠냐며 이별을 말한다. 권생은 놀라움을 이기지 못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득하고 달래어 보았지만 끝내는 마음을 돌리지 못하고 권생이 없는 틈을 타 자결해 죽는다.

이 작품은 개가(改嫁)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에게 많은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많은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는 우선, 충분히 개가(改嫁)를 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여인이 결국 자결을 택하는 이유,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작가의 의식의 한계라고 지적할 수 있는 개가(改嫁)에 대한 인식 등과 같은 점 때문일 것이다.
작품의 내적 구조에 주목해보면, 시아버지의 입장은 '음양의 이치'도 모르고 살아가는 며느리에 대한 안타까움을 갖고 며느리에게 계속해서 개가(改嫁)할 것을 권하고 있으며, 며느리는 시아버지를 친부모 못지 않게 정성껏 섬기는 모습이 형상화되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들 - 특히 시아버지의 며느리에 대한 태도 - 은 이미 당대의 윤리적 문제나 이데올로기를 초탈한 인간 본연의 지고지순한 아름다움을 획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며느리'의 모습을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철저하게 이데올로기에 의해 희생된,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인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좀더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관계에 주목해보면, 그 단계를 벗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왜냐하면, 며느리의 행동에 주목할 때, '권생'과 수작을 하고 권생을 받아들인 것도 사실은 시아버지의 부탁 - 음양의 이치를 알아야 한다는 - 때문이었고, 음양의 이치를 안 연후에도 죽지 않았던 것은 자신이 죽으면 의지할 곳이 없는 시아버지 때문이었다.
물론, 이러한 모습을 두고서도 역으로 그러니까 그만큼 작가는 음양의 이치라고 상정된 인간의 기본적 욕망보다 개가 금지라는 사회 규범을 우위에 두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론이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로는, 작가의 의도 및 표면적인 정황으로는 당대의 규범을 욕망의 우위에 두고 있는 듯 보이는데, 이는 당대의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인물의 의식에 내면화된 행동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 생각된다.    

3.4. 상녀(孀女)
이 작품은 『청구야담』에 실려있고, 『계서야담』과 『청야담수』에도 실려 있다. 제목이『청구야담』에는 '憐孀女 宰相囑窮弁',『청야담수』에는 '擲鏡大哭 更逢良人'이라 되어 있다. 여기서는 상녀(孀女) 두 자가 초점이 되고 있는 점을 들어 '상녀'라고 제목을 붙였다. 작품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 재상의 딸이 출가(出嫁)했다가 1년도 못되어 남편을 잃고 친정에 와서 홀로 지내고 있었다. 하루는 재상이 퇴궐하여 들어오다가 딸이 어찌 지내는지 궁금하여 딸이 거처에 잠시 들렀는데, 때마침 딸이 곱게 몸단장을 하고는 자신을 거울에 물끄러미 비춰보다가 거울을 내던지고는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는 것을 보게 된다. 재상은 그 모습을 보고 어찌나 측은한 마음이 드는지 도로 사랑으로 나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때마침 문하(門下)에 출입하던, 몹시 한미한 젊은 무관 한 사람이 문안을 드리러 왔다. 그는 집도 없고 아내도 없었는데, 나이 젊고 건강한 사람이었다. 이에 재상은 이 무관에게 자신의 사위가 되어달라고 부탁하고 무관은 황송하여 어쩔 줄 몰라 하는데, 궤 속에서 한 봉의 은덩이를 주면서 함경도 외진 곳에 가서 잘 살아달라며 이른 새벽녘에 아무도 모르게 딸을 떠나보낸다.
재상은 돌아와 아랫방으로 들어가 통곡을 하며 딸이 자결했다고 하니 집안 사람들이 모두 경황없이 애통해한다. 이에 재상은 "이 애가 평소 누구에게도 자신을 보이려 하지 않았으니, 내가 직접 염습(斂襲) 하겠으니, 남매간이라도 아예 들여다보지 말아라"고 해두고서는 혼자 이불을 싸서 묶어가지고는 시체 모양을 만들어 사돈집에 부고(訃告)를 알리고 입관하여 그 시댁의 선산에 장사지냈다.
그로부터 수년 뒤, 재상의 아들이 수의어사가 되어 함경도 지방을 돌았다. 어느 고을에 당도하여 인가에 들렸더니, 주인이 나와 맞는데 방에서 책읽는 두 아이가 얼굴이 맑고 준수하여 자기집 전형(典型)과 유사했다. 속으로 이상한 느낌이 들고, 날도 저물고 하여 그 집에 유숙하게 되었는데, 야심한 시간에 한 여자가 들어오더니 손을 잡고 우는 것이었다. 깜짝놀라 자세히 보니 죽은 자기의 누이가 아닌가, 더욱 놀라 물어보니 아버지의 말씀으로 여기와서 살고 있으며, 아들 둘을 낳았는데 바로 그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재상의 아들은 임금께 암행결과를 보고 드리고 집으로 돌아와 밤에 부친을 모시고 있다가 마침 조용한 틈을 보아 소리 낮춰 "괴상한 일이 있었다"는 말을 꺼내자, 재상이 두 눈을 부릅뜨고 뚫어지게 노려보며 말이 없었다. 아들은 이후로는 감히 입밖에 내지도 못했다.

이 작품은 '개가(改嫁)'를 금지하던 시대에, '개가'의 문제가 하나의 중요한 갈등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재상(宰相)은 자신의 딸을 개가시킴으로써 당시의 규범에는 역행하였지만 그의 행위는 인간의 정(情)에 대한 남다른 인식이 전제되고 있다. 사회의 기강을 바로잡고 솔선수범을 해야 할 한나라의 재상이 현실의 당위규범을 무너뜨려 버리는 일탈행위를 소재로 삼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많은 문제를 제기한다.
이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사후적(事後的) 관점에서 바라볼 때, 당연히 재상의 행위가 백번 잘한 행동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당시의 실정법을 위반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후적 관점에서 팔짱을 끼고 바라볼 것이 아니라 당대의 현실 속에서 사건을 바라보아야 한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서, 결혼한지 1년도 못되어 남편을 잃고 돌아와 방구석에서 한숨만 내쉬며 괴로워하는 딸을 바라보는 재상의 심정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을 것임은 작품을 통해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 어린 나이에 평생을 혼자 살아야 할 생각을 하면 부모로서 견디기 힘든 아픔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재상은 당시의 규범인 개가(改嫁)금지를 부정한 방법으로 어기면서까지 딸을 개가시키고 만다. 당대의 규범인 개가금지를 어기면서까지 딸을 개가시킨 재상의 고민도 이해가 된다. 그런 행동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는 자신도 너무나 잘알기 때문에 무관과 딸아이를 저 함경도 오지에 가서 살라고 했던 것이고, 염을 하는 과정에서도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했으며, 훗날 암행어사로 함경도에 다녀온 아들이 동생의 이야기를 말하려고 하자 다시는 입밖에 내지 못하게 한 점등을 보더라도 그러한 재상의 행위가 얼마나 큰 일탈행위인가를 반증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개가'와 관련된 갈등상황에서, 결국 개가(改嫁)를 갈망하는 인간의 '정(情)'이 개가를 금지하는 규범, 즉 '이(理)'를 초월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4. 현재적 의미고찰

우리는 지금까지 네 편의 이야기를 살펴보았다. 이 이야기들은 모두 정(情)과 이(理)가 상호작용을 통해 때로는 '정(情)'이 우세한 결과로 나타난 작품과 때로는 '이(理)'가 우세한 결과로 형상화된 작품들을 보았다. 그런데, 이러한 정과 이는 서로 독립적이고 개별적이라기 보다는 상호보완적이며 절충적인 요소가 다분한 것이 현실이다. 사회가 변화되는 것도 이 '정'과 '이'의 흐름에 따라 비례한다. '정(情)'이 규범으로 가득한 당위적 현실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힘을 지닌 '원심력'이라면, '이(理)'는 자연스럽게 흘러 다니는 정(情)을 규범 안으로 끌어당기는 '구심력'에 해당한다. 이처럼 '정'과 '이'의 밀고 당김에 따라 한 사회의 성격이 결정된다.
그렇다면 이제는 앞에서 살펴본 네 작품을 대상으로 현재적 의미를 고찰하는 작업을 할 차례이다. 우선, 이 네 작품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정리해 보면, 앞에서 다루었던 두 작품, <沈生>(3.1)과 <掃雪>(3.2)은 신분 갈등을 중심소재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그러나 결말의 양상은 서로가 상이하다. <심생>의 경우는 남녀 주인공이 모두 죽음으로써 끝을 맺는 비극적 결말을 취하고 있는 반면 <소설>의 경우는 신분 갈등을 극복하고 행복을 성취함으로써 행복한 결말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뒤의 두 작품, <避雨>(3.3)와 <孀女>(3.4)의 경우는 개가(改嫁)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그러나 여기서도 결말의 양상은 서로가 판이하게 다르다. <피우>의 경우에는 여인의 자살로 비극적 결말로 끝을 맺는데 비하여, <상녀>의 경우는 그렇지 않고 개가(改嫁)를 하고도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행복한 결말구조를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신분갈등(身分葛藤)'과 '개가(改嫁)'라는 동일한 소재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작품의 결과는 이처럼 상반되는 것일까? 모든 상황과 조건은 동일한데 결과가 다르다는 것은 어떤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내부적 요인에서 찾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말하자면, 그 원인을 작중 인물의 내부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작중 인물들의 심리와 그 행위에 주목하여 살펴볼 차례이다.
우선, <심생>과 <소설>의 경우이다. 두 작품의 남녀 주인공은 신분의 차이를 드러낸다.
<심생>은 양반과 중인이라는 신분적 차이가, <소설>은 양반과 기녀라는 신분적 차이가 존재한다. 신분적 격차는 <심생>보다도 <소설>의 경우가 현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남녀결연에 성공하는데 비하여 <심생>은 비극적인 패배로 귀착된다. 그렇다면 그 원인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그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등장인물의 행위에 주목하면, <심생>의 경우, 주인공 '심생'은 입체적 인물로 등장한다. 작품의 전반부에서 처녀와의 결연과정까지는 매우 적극적이며 앞뒤를 가리지 않는, 용기있고 우직한 인물의 형상을 창조한다. 그런데, 막상 처녀와의 동침을 이루고 암묵적인 혼인이 이루어진 이후부터는 전에 보이던 적극적이며 용기있는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소극적이며 피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혼인을 위한 준비를 하지도 않고 여인과의 관계가 밝혀질까 전전긍긍하는 모습, 여인이 마련해준 옷가지는 남에게 의심을 받을까 두려워 입지도 못하고, 아들의 행위가 의심스러워 산사로 가서 공부할 것을 명하는 부모님께 아무런 말씀도 못드리고, 친구들에게 이끌려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심생의 모습은 작품의 전반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형상이다. 이러한 무책임한 행동을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봐야 했을 처녀가 겪은 심적 고통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심생의 입장에서 보면 또한 많은 고민과 번뇌의 과정이 있었으리라 예측할 수 있다. '중인층' 여성과의 경우는 신분제도의 파탄을 의미하는 것이고, 또한 부모의 동의도 없이 혼인을 치루는 것 또한 전통적 윤리인 '효(孝)'에 정면으로 상치되는 것이고, 이러한 과정에서 심생은 많은 고민을 하게 되며, 그로 인해 급진전되고 있던 상황 속에서 적절한 대처 방식을 마련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의 일면이 드러나게 된다.   결국 이로인해 처녀는 마음의 병을 얻고 세상을 떠나게 됨으로써 이루어질 수 없는 비극적 사랑으로 남게 된다.
반면 <소설>의 경우는, 철없던 소년의 한때 풍류가 결국인 행복한 사랑으로 열매맺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양반 자세인 소년과 기생과의 사랑은 <심생>에서 보인 양반과 중인의 결합보다도 더욱 실현가능성이 없는 상황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이 이루어지는데는 남녀 주인공의 행위가 <심생>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 소년은 평양에서 기생과 지내던 시절이 자신도 처음에는 한갓 풍류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날 문득 그녀의 얼굴과 이름이 떠오르면서 소년은 그것이 단순한 풍류가 아니라 사랑임을 깨닫고 조금은 무모하지만 곧장 평양으로 향한다. 이러한 소년의 행위에는 어떠한 이념적, 윤리적 규범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기녀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만이 존재했던 것이다. 재상의 자제로서 기녀를 연모하여, 학문의 길을 저버리고 기녀에게 가버린 것은 당대의 질서체계에서는 실로 패륜적인 자식에 해당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의 연정은 그같은 규범으로는 담아둘 수 없는 커다란 물줄기를 이루고 있었다. 그랬기에 기녀 또한 소년의 순수한 사랑을 받아들이고는 함께 숨어사는 고통을 선택하게 된다. 이 지점까지는 <심생>과 남녀결연이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그러나 그 차이는 결연 이후의 상황에서부터 전개된다. <심생>에서 심생이 결연 이후 소극적인 행동으로 일관했던 데 비해, 이 작품의 소년은 반사회적이며 반도덕적인 패자의 행위를 했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녀와 함께 많은 노력을 한다. 기녀는 소년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한다. "낭군은 부모를 배반하고 이렇게 되었으니 죄인이올시다. 속죄할 길이란 오직 과거 급제에 있고, 급제하는 길은 부지런히 공부하는 데 있지요. 의식걱정은 제게 맡기시고, 이제부터 학업에 전력하시면 뒤에 방법이 생기겠지요." 기녀의 당부를 받아들여 노력한 결과,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임금을 알현하는 기회가 생긴다. 소년은 그 자리에서 호환(虎患)으로 죽은 줄 알고 있는 재상이 된 아버지와 상봉하면서 과거의 잘못을 임금 앞에서 사실대로 고백을 하는데, 임금은 소년에게, "너는 패자(悖子)가 아니라 효자로다. 네 처의 절개와 지모는 누구보다 탁월하도다. 천한 창기 중에 이런 인물이 있을 줄은 몰랐다. 이런 사람을 천창(賤娼)으로 대접할 수 없느니라. 부실(副室)로 맞이하는 것이 옳도다"라고 하면서 그날로 평양감사에 하명(下命)한다.
결국, 이 두 작품에서 동일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한 작품은 행복한 결말을 이루고, 다른 작품은 비극적 결말을 이룰 수밖에 없었던 요인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점이 밝혀졌다.
다음은 '개가(改嫁)'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두 작품을 살펴볼 차례이다. <피우(避雨)>(3.3)와 <상녀(孀女)>(3.4)의 경우, 두 작품이 공통점과 차이점을 지닌다. 우선 공통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개가(改嫁)'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개가의 당사자인 여주인공 주변에 조력자가 존재한다. <피우>의 경우에는 '시아버지', <상녀>의 경우에는 '아버지'가 그 역할을 담당한다. 그런데 이 두 작품의 차이점은, 한 여인은 개가를 하여 가정을 이루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데, 다른 여인은 개가를 하지 않고 자결함으로써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다. 그러나, 어쩌면 '비극적 결말'이라는 말도 자결한 여인의 말을 들어볼 수 있다면(?), 필자의 '착각'일 수도 있다는 점을 배제할 수 없다. 하여튼 사후적(事後的) 시각으로,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비극적이다. 그렇다면 그 원인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그것은 단적으로 말해서 당사자의 의지 여하에 달려있다는 점이다. 달리말하면, 본인의 의지에 따라 수절(守節)이 행복이 될 수도 있고, 개가(改嫁)가 행복이 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단, 여기에는 양쪽 모두에게 전제조건이 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과 자신에게 주어질 고난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전제된다. 그렇지 못하다면, 자신이 선택한 '수절'은 <유훈(遺訓)>에 등장했던 장씨부인처럼, "수절할 자신이 있으면 수절을 하고, 그렇지 못하겠으면 위로 어른께 고하고 개가(改嫁)하는 것도 좋은 방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은 개가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개가'라는 것도 반드시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개가'라는 새로운 질서에 적응할 마음 가짐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겪게 될 엄청난 고통을 이겨낼 각오가 되어 있을 때, 비로소 행복을 성취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위의 두 작품에서도 그러한 점은 명확하게 드러난다. <피우>의 경우, 그 여인은 시아버지의 부탁에도, 그리고 새로운 남편이라 할 수 있는 '권생'의 부탁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자결을 택함으로써, 개가(改嫁)를 거부하였다. 그녀는 '죽음'이라는 고통과 두려움을 감내하면서까지 '개가'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상녀>의 경우, 여주인공은 자신의 삶- 과부로서의 - 에 독한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한 점을 눈치 챈 아버지는 규범을 파괴하면서까지 딸을 개가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결국, 이 작품의 주인공은 자신의 선택에 따른 개가였고, 그렇기 때문에 작품 내에 자세히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정황적으로 보아 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 것이다.
지금까지는 작품을 대상으로 논의하였다. 이제 작품이 주는 의미와 관련하여 우리의 삶을 반추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우리는 남녀의 만남과 결연에서 불합리한 이(理)에 의해 정(情)이 억압되고 있지는 않은지 반문해 볼 시점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관습, 도덕, 법과 같은 사회규범(規範)이 우리의 자연스런 욕망의 흐름을 막아서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한편, 여기서 한가지 신중해야 할 것은 '욕망'이라해서 무엇이든 바람직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이다. 욕망에도 두 가지 층위가 존재한다. 긍정적이며 바람직한 욕망이 있을 수 있고, 사회의 건전한 정신을 갉아먹을 수 있는 부정적 욕망이 있다. 이를 잘 가려내어 적당한 크기의 규범에 담아두려는,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비유한다면, 인간의 '정(情)'은 자연스런 물의 흐름과 같고, '이(理)'는 인위적으로 물을 담아두려는 댐과 같다. 물의 흐름이 거대하다면 댐의 물을 방출하거나 더 큰 용량의 댐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 조그마한 댐(理)으로 거대한 물의 흐름(情)을 담아가두려 하다가는 댐이 무너져 내리는 참사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5. 결 론
이상에서 네 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의 욕망과 규범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그 해결 양상을 살펴보았다. 작품 분석을 통해서도 일정 부분 드러났듯이, 우리 사회는 정과 이의 상호작용에 의해 그 성격이 규정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정과 이가 상호 대립적이라기 보다는 상호보완적이라 보는 견해가 옳다. 왜냐하면 어느 하나가 일방적으로 다른 것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에 의해 사회적 성격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한 양상을 구체적 작품을 통해 살펴보았다.
'심생(沈生)'과 '소설(掃雪)'의 경우는 초혼(初婚)과 관련된 남녀의 결연담이었고, '피우(避雨)'와 '상녀(孀女)'의 경우는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 개가(改嫁)와 관련된 결연담이었다. 그런데 동일한 상황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서로가 대비되었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과연 그 원인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에서 출발하여, 인물의 행위적 측면에 주목하여 그 원인을 밝혀보았다.
그 결과, '심생'에서 남녀의 결연이 실패로 귀결되고 비극적 결말로 끝을 맺게 되는 것은 결연 당사자인 '심생'의 행위가 지극히 소극적이며 문제상황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매우 부족하였으며,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고자 하는 의식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등의 원인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반면, '소설'의 경우는 '심생'에 비하여 더욱 실현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무리한 상황설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결연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당대의 규범을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의 용기와 책임감, 그리고 결단력 등을 지닌 주인공들의 행위가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개가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피우'와 '상녀'의 경우도 대비적인 결론의 구조를 취하고 있었는데, '피우'에서의 여주인공은 이데올로기가 철저하게 내면화된 인물로 파악하는 것이 옳은 듯하다. 개가를 이루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택하는 것은 당시의 이데올로기가 한 개인을 얼마나 집요하게 옥죄고 있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반증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상녀'의 경우는 남편을 잃고서 친정에 와 있으면서도 자신의 신세를 받아들이지 않고 현실의 질서를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형상을 제시함으로써 결국은 자신의 또 다른 삶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결국은 자신의 뜻대로 일가를 이루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결말의 구조를 취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문단편에 나타난 '남녀 결연담'을 중심으로 규범과 욕망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그 해결의 양상을 살펴보았다.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하여 작위적인 해석 및 꼼꼼한 인물의 성격 분석이 부족한 느낌이다. 이와 같은 시론(試論)을 토대로 보다 심도있는 논의로 발전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부족한 점은 계속해서 보강해 나가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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