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재 전경원과 함께 고전시가를 통해 여는 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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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전경원 
Subject >>  
 법정, 오두막편지
고2짜리인 그는 자신을 ‘왕따’라고 한다. 왕따란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이라는 자기네 속어라고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한 친구를 생각하면 즐거워진다고 했다. ‘그 애 생각을 하면 전 살고 싶어요.’라고 할 만큼 사랑하는 친구다. 자기네가 남쪽으로 이사를 오는 바람에 지금은 멀리 떨어져 지낸다. 그 친구는 중1 때 사귀었는데 1년 반을 함께 지내고 3년이나 떨어져 있지만 항상 같이 있는 거나 다름없이 서로 소식이 오고가는 모양이다. 최근에 친구네 형편이 안 좋아 많이 울고 가슴 아파한다. 직장에서 실직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친구네 아버지는 제일 먼저 해고를 당했다. 정신이 좀 부실한 것 같다고 했다. 어머니도 공장에 다니는데 척추 장애자라고 한다. 이런 가정환경인데도 친구는 성격이 명랑하고 공부도 잘한다고 했다. 그는 그 친구를 위해서 자기 엄마 아빠도 모르는 일 하나를 혼자서 은밀히 꾸미고 있다. 친구의 몫으로 통장을 하나 만든 것이다. 학교 안에 있는 농협출장소에서 만든 통장인데 지금은 얼마 되지 않지만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는 꼭 1백만 원을 만들겠다고 한다. “…학교에서 점심과 저녁밥을 다 먹는데 점심은 도시락 싸 가고 밥값으로 엄마가 매일 2천 원 정도를 주셔요. 3백 원짜리 빵 하나 먹고 1백 원짜리 요구르트를 마시면 그 남은 돈은 매일 저금해요.” 빵 한 개와 요구르트로 저녁을 때우고 친구를 돕기 위해 나머지 돈은 저금한다는 그 착하고 기특한 마음씨에 콧잔등이 찡했다. 그는 <산에는 꽃이 피네>를 다 읽고 나면 그 책을 친구에게 보내주려고 행여 구겨질까 봐 읽을 때에도 활짝 펼치지 않고 30도 각도로만 펴서 읽었다고 했다. 나는 번거로운 왕래를 싫어하고 게을러서 독자의 편지에 대해서 답장을 거의 안 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 학생의 편지를 받아보고는 즉시 회신을 보냈다. 책을 한 권 서명해 보내면서 이 책은 마음 놓고 180도 각도로 활짝 펼쳐 놓고 읽으라고 했다. 그리고 너와 나, 둘이만 마음속에 담아두자고 하면서 한 가지 약속을 해두었다. 그 친구를 돕기 위해.
요즘처럼 약삭빠른 세태에, 더구나 ‘학교 지옥’에서 말할 수 없이 시달리고 부대끼면서도 친구를 위해 세심하게 마음 쓴, 그토록 순수하고 아름다운 어린 소녀의 우정 앞에 엎드려 절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는 자나 깨나 친구 걱정이다. 친구를 사랑하는 그 순수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인해, 학교에서 받는 억압과 고통을 이겨 내고 있는 것 같다.
우리들이 지나온 생애의 과정에도 한때는 그와 같은 순수한 우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얼마나 무디어지고 건조해지고 삭막해졌는가. 육신은 비록 세월의 풍상에 씻겨 구겨졌을지라도 젊은 날에 지녔던 순수한 그 우정을 잃지 않고 꾸준히 가꾸고 있는 이가 있다면, 그는 우리가 부러워하고 우러러야 할 행복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가꾼 삶의 서늘한 그늘을 메마른 이웃의 뜰에 내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 법정, 『오두막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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