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재 전경원과 함께 고전시가를 통해 여는 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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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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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도록 안타까운 젊음, 아! 어쩌란 말인가? <규원가(閨怨歌)>
시리도록 안타까운 젊음, 아! 어쩌란 말인가? <규원가(閨怨歌)>

오늘날과 달리 옛 사람들은 자신의 의사대로 결혼을 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경우는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부모가 맺어 준 사람과 혼인을 해야만 했다. 평생 좋으나 싫으나 함께 살아야만 했다. 하지만 오늘날은 자신의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 서로 사귀고 뜻이 맞으면 혼인을 통해 가정을 이룬다. 그러다가도 서로 뜻이 맞지 않게 되면 쉽게 헤어져 각자의 길을 걷는다. 어떤 방식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서로 인연이 아닌 경우에 발생하는 상황이 문제다. 어떻게 그 상황을 극복해야만 할까?

去年喪愛女   작년에 사랑하는 딸을 잃더니,
今年喪愛子   올해는 사랑하는 아들 잃었네.
哀哀廣陵土   슬프고도 슬픈 광릉의 땅이여!
雙墳相對起   두 무덤이 마주 보고 서 있네.
蕭蕭白楊風   백양나무엔 쓸쓸한 바람 일고,
鬼火明松楸   도깨비불 무덤가 나무 밝히네.
紙錢招汝魂   지전을 살라 너희 혼을 불러도,
玄酒存汝丘   정화수만 너희 무덤에 있구나.
應知第兄魂   응당 알겠구나, 남매의 혼백이,
夜夜相追遊   밤마다 서로 따라 놀고 있음을.
縱有服中孩   비록 뱃속에 아이가 있다고 한들,
安可冀長成   어찌 성장하길 바랄 수 있으리오.
浪吟黃坮詞   눈물 흘리며 <황대사>를 읊조리고,
血泣悲呑聲   소리 죽여 슬퍼하며 피눈물 흘리네.

딸아이를 하늘로 떠나보낸 상처가 채 가시기도 전 아들마저 잃었던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의 슬픔이 곡진하게 베어 있는 작품이다. 그녀가 광릉 땅을 슬프다고 한 이유는 죽은 두 아이의 무덤이 광릉에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경기도 포천군 소흘 읍과 남양주시 진접 면 일대가 그 지역이다.
무덤 앞에서 종이돈을 태우며 정화수(玄酒)를 떠놓는다고 해서 죽은 자식들이 살아 돌아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죄 많은 어미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그것뿐이었다. 눈물겹게 안타까운 어미의 몸짓이다.
그 어린 나이에 어미 곁을 떠나 저 세상에 갔다. 하지만 혼백만이라도 둘이 꼭 붙어 다니며 남매의 정을 나누기 바라는 마음이다. 금쪽같은 두 아이를 잃은 상태임에도 뱃속에는 또 다른 생명이 잉태되어 있다. 죽은 두 아이를 생각하며 뱃속에 있는 생명을 위해 <황대사(黃坮詞)>를 읊조려야 하는 어미 마음을 지켜보자니 처절하다 못해 가슴 한 구석이 아려 온다.
<황대사(黃坮詞)>는 당(唐)나라 숙종(肅宗) 때의 사건과 관련이 있는 작품이다. 당시 광평왕(廣平王)은 숙종의 맏아들이었다. 숙종이 작은 아들인 건녕왕(建寧王)을 죽였는데, 이를 두고 이필(李泌)이 맏아들 광평왕도 화를 당할까 염려하여 숙종에게 이렇게 고했다.
“측천무후(則天武后)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큰 아들을 독살하자 둘째 아들인 태자 현(賢)이 자신도 죽게 될까봐 두려워 황대사(黃臺辭)를 지어서 무후(武后)를 감동케 하려 했으나, 그도 마침내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폐하께서는 지금 오이 한 개를 이미 따시었으니 두 번 따지는 마소서!”라고 했다고 한다.
그녀는 지금 이 고사를 빌어 자식 둘을 모두 잃은 어미의 처절한 심정과 새로 잉태한 핏줄에 대한 애타는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죽은 두 아이를 생각하며 통곡한다는 내용의 <곡자(哭子)>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짧고도 기구한 26년간의 한(恨) 많은 삶을 살다간 그녀의 생애가 농축된 듯한 작품이라 보는 이의 마음이 아프기만 하다.

위대한 여성 시인의 삶

그녀는 강릉(江陵)에서 출생했다. 당대 유명한 문필가이자 <홍길동전>의 저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허균(許筠)보다 6년 먼저 태어난 누이였다. 그녀는 어린 시절 조선 중기 삼당시인의 한 사람이었던 이달(李達)에게 시를 배워 천재적인 시재(詩才)를 발휘했다. 1577년(선조 10) 열다섯 살 어린 나이에 김성립(金誠立)과 결혼했다. 그러나 부부생활이 원만하지 못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로인해 불행한 자신의 처지를 시작(詩作)으로 달래어 섬세한 필치와 여인의 독특한 감상을 노래했다. 그 결과 애상적 시풍의 특유한 시세계를 이룩하였다. 작품 일부를 동생 허균이 명나라 시인 ‘주지번(朱之蕃)’에게 주어 중국에서 시집《난설헌집》이 간행되어 격찬을 받았다. 또한 1711년에는 일본인 ‘분다이야지로(文台屋次郞)’에 의해 일본에서도 간행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애송되었다.

이팔청춘(二八靑春), 꽃다운 나이에 백년가약을 맺다.

김성립의 나이 16세 그리고 허난설헌의 나이 15세. 그들은 말 그대로 이팔청춘 꽃다운 나이에 혼인을 했다. 오늘날로 보면 신랑은 중학교 3학년, 신부는 중학교 2학년 정도의 나이였다. 어린 나이에 서로 평생을 함께 하기로 다짐하고는 혼례를 치렀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일인지라 뜻대로 되지 만은 않았던 듯하다. 둘이 1577년 혼인을 해서 허난설헌이 1589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함께 했던 시간은 고작 12년에 불과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3년 후 김성립 또한 임진왜란이 터지던 해에 숨을 거둔다. 이들이 함께 한 12년의 세월 동안 앞에서 보았던 <곡자(哭子)>라는 작품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어머니로서 젊은 나이에 두 아이를 잃은 가슴 아픈 시절이 있었다.

남편 김성립 역시 문학적 재능이 월등했다.

김성립과 허난설헌은 부부가 모두 문학적 성취가 뛰어났다. 허난설헌의 문학적 명성이 워낙 드높았기에 많은 조명을 받았다. 어찌 보면 남편 김성립에 비해 시인으로서의 명성이 더 높은 듯하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김성립 또한 그녀에 뒤지지 않는 문장력과 시인으로서 명성이 자자했음이 확인된다.

예조가 아뢰기를, “정시(庭試)의 글제를 대신에게 의논하였더니, 영의정 기자헌은 ‘일찍이 본 바로는, 문신 정시는, 황정욱(黃廷彧)·윤탁연(尹卓然)·이덕형(李德馨) 등이 으뜸을 차지했을 때는 모두 20운 배율(排律)이었고, 남응운(南應雲)이 으뜸을 차지했을 때는 10운 배율이었고, 김성립(金誠立)이 으뜸을 차지했을 때는 표(表)였으며, 또 논(論)과 부(賦)로 시험한 격례(格例)도 있다 하나 이에 대해서는 신의 견문이 미치지 못한 바이고, 시관에 대해서는 승정원과 해조가 전례를 참조하여 조처할 일입니다.’ 하였고, 판부사 심희수는 ‘일찍이 본 바로는, 문신 정시 때 2품 가승지(假承旨) 3원을 차출하는데, 현임 승지 중에 가선(嘉善)의 관원이 있으면 2원만 가차(假差)하여, 때에 따라 했으며, 승정원에서 주의(注擬)하여 차출했고 인원은 본래 정수(定數)가 없습니다. 문신 정시는 통정(通政) 이하를 시취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승지를 차출하는 변례가 생긴 것으로, 가주서(假注書)도 음관(蔭官)을 임용했습니다. 한림(翰林)의 경우는 임시로 할 수 없는 것이므로 입시(入試)를 불허했으나, 상·하번 이외에는 역시 입시토록 허락했습니다. 대개 이런 것입니다.’ 하였고, 우의정 정창연은 병으로 수의하지 못했습니다.” 하니, 전교 하시기를, “구례에 따라 살펴서 거행하라.”
                                                            - 광해군 7년(1615년), 5월 14일 기사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기사에서도 확인되듯이 문장에 있어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그가 아내였던 허난설헌과의 사이에서 자식을 셋이나 두었던 점에 비추어보면 부부 관계가 처음부터 원만하지 못했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어떤 사건이나 계기가 있지 않았을까? 두 내외가 12년 동안 함께 살면서 두 명의 어린 아이가 세상을 떠난 슬픔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남편을 원망하는 마음 담아 규방에서 울부짖다.

그녀의 <규원가(閨怨歌)>를 보면 남편에 대한 단상이 드러난다. “삼생(三生)의 원업(怨業)이오, 월하(月下)의 연분(緣分)로, 장안유협(長安遊俠) 경박자(輕薄子) 치 만나 잇서, 당시(當時)의 용심(用心)기 살어름 디듸는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남편의 사람됨을 호탕한 풍류객이자 경거망동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풍류객들끼리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방탕한 생활로 소일하는 모습을 “삼삼오오(三三五五) 야유원(冶遊園;일종의 기생집)의 새 사람이 나단 말가. 곳 피고 날 저물 제 정처(定處) 업시 나가 잇어, 백마금편(白馬金鞭)으로 어어 머무는고.”라며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그래도 그리움만 쌓이는 건…

하지만 이렇게 원망으로만 점철된 노래가 아니었다. “인연(因緣)을 긋쳐신들 각이야 업슬소냐. 얼골을 못 보거든 그립기나 마르려믄, 열두  김도 길샤 설흔 날 지리(支離)다. 옥창(玉窓)에 심 매화(梅花) 몃 번이나 픠여 진고.”
이 부분에서 우리는 그녀의 남편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을 엿볼 수 있다. 아마도 <규원가>를 쓸 무렵에는 남편이 집을 떠난 지 몇 년이 흐른 뒤였던 것으로 보인다. 인연이 끊겼다는 표현과 규방에 만들어 놓은 작은 창문 앞에 매화나무가 있는데, 그 매화가 몇 번이나 피었다가 졌는가? 라는 표현을 통해 남편이 집을 떠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아이를 낳으며 함께 보낸 시간이 있었는데 어찌 남편에 대한 생각과 그리움이 없었겠는가! 남편 얼굴을 볼 수 없는 신세라면 차라리 그립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야속한 마음 속절없이 남편 생각에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다. 소식조처 끊긴 상태지만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의 절절한 심정이 느껴진다. “청등(靑燈)을 돌라 노코 녹기금(綠綺琴) 빗기 안아, 벽련화(碧蓮花) 한 곡조를 시름 조 섯거 타니, 소상야우(瀟湘夜雨)의 댓소리 섯도 ” 하다며 심경을 드러냈다. 청사초롱을 돌려놓고 거문고를 비스듬히 안고 벽련화(碧蓮花) 한 곡조를 시름에 섞어 연주하니, 소상강(瀟湘江) 밤비에 댓잎 소리 섞여 도는 듯하다는 의미다. 녹기금(綠綺琴)은 한나라때 사마상여(司馬相如)가 <봉구황곡(鳳求凰曲)>을 연주하여 탁문군을 아내로 맞이했던 고사가 있다. 소상강 밤비에 댓잎을 언급한 것은 순임금과 아황, 여영의 고사가 관련된 표현이다. 순임금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두 부인이었던 아황과 여영이 소상강에서 슬피 울다 몸을 던져 죽었다. 그 뒤에 소상 강변의 대나무에는 붉은 반점이 생겨났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아황과 여영이 흘린 피눈물이라고 믿게 되었다. 소상강과 댓소리 등이 등장하는 경우는 남편에 대한 애정이나 군주에 대한 충성을 언급할 때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가인박명(佳人薄命)이라 했던가?

남편과 인연이 끊긴 후 규방에서 외로이 살아가는 여인의 신세와 한탄 그리고 지난 날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남매에 대한 그리움과 한(恨)이 집약된 <규원가(閨怨歌)>는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다. “세상의 서룬 사람 수 업다 려니와, 박명(薄命) 홍안(紅顔)이야 날 가니  이실가. 아마도 이 님의 지위로 살동말동 여라.” 라는 말을 남기고 스물여섯이라는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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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한 날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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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민예찬(農民禮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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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산별곡(還山別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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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8 2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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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도록 안타까운 젊음, 아! 어쩌란 말인가? <규원가(閨怨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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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내자고? 나랑 똑같은 여자나 다시 만나라! <서경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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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2 5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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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을 통해 이룬 사랑, 이제 그만 헤어집시다! <조신몽(調信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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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9 4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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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6 4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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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전 축의금 만삼천원을 내기 위해 땅끝마을에서 상경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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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9 3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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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부(夫婦)들만의 내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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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6 4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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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동요>를 중심으로 본 선화와 서동, 그리고 관계 기록들

전경원
2005/01/19 5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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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대를 고민하다. 허균의 <유재론(遺才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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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9 4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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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균은 천지 사이의 한 괴물입니다.

전경원
2003/12/18 4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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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리공주(바리데기) 무가

전경원
2003/12/18 6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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