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재 전경원과 함께 고전시가를 통해 여는 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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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전경원 
Subject >>  
 <서동요>를 중심으로 본 선화와 서동, 그리고 관계 기록들
仙化公主主隱          선화공주님은
他密只嫁良置古       남 몰래 정을 통해 두고
薯童房乙                맛둥 도련님을
夜衣卯乙抱遣去如    밤에 몰래 안고 간다  (양주동식 해석)

<서동요>의 주인공인 백제 30대 무왕(600-640)의 이름은 장으로, 어머니가 홀로 되어 집을 서울 남쪽 못가에 짓고 살았는데 못에 있는 용과 관계하여 그를 낳았다고 합니다. 어릴 때 이름은 서동(맛둥)이며, 항상 마를 캐어 팔아 생활해 나갔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답니다. 그는 신라 진평왕의 셋째 선화공주가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머리를 깎은 중의 행색으로 서라벌로 갑니다. 그가 동네 아이들에게 마를 나누어주며 가까이 따르자 <서동의 노래>를 지어 여러 아이들에게 부르게 하였습니다. 이 동요가 장안에 퍼져 궁중까지 알려지니 모든 신하들이 탄핵하여 공주를 시골로 유배시킵니다. 공주가 대궐을 떠나려 할 때 왕비가 차마 딸을 그냥 떠나 보낼 수가 없어서 왕 몰래 순금 한 말을 주어 보냅니다. 귀양가는 길에 서동이 나와서 모시고 가겠다고 하자, 공주는 그가 어디에서 온 사람인지 알지 못하지만 기뻐하며 동행하도록 했다. 동행하는 사이에 공주는 서동이 믿음직스러운 것을 알고는 그에게 마음이 끌리게 됩니다. 마침내 두 사람은 결혼을 했고 공주는 그제서야 그가 서동이라는 것과 자기가 쫓겨나게 된 까닭을 알게 됩니다. 공주는 어머니가 준 금을 내놓으며 함께 백제로 가서 이것으로 생활을 시작하자고 합니다. 서동이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공주는 "황금인데 백 년 동안 부자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답니다. 서동이 마를 캐던 곳에는 이것이 진흙처럼 쌓였었다고 하자, 공주가 놀라며 금을 캐서 공주의 부모에게 보내자고 하였습니다. 서동이 동의하여 금을 모으니 그것이 구릉처럼 쌓였다고 합니다. 용화산 사자사(익산군 미륵산 사자암) 지명법사에게 금을 보낼 계책을 부탁하고, 법사는 신통한 힘을 써서 그 금을 하룻밤 사이에 신라 궁중으로 실어다 놓습니다. 진평왕은 그 신통한 변화를 이상히 여기고 항상 서신으로 안부를 묻는 등 서동은 이로 인해서 인심을 얻게됩니다.

그렇다면 삼국유사에 실린 <서동요>에는 어떤 허점이 있습니까? 먼저 외간남자와 사랑에 빠졌다고 하더라도 공주를 귀양보낸다는 것은 너무 터무니없어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당시 백제에서는 위덕왕이 죽자 왕위를 둘러싸고 치열한 정권쟁탈전이 벌어지던 시기이며, 무왕은 위덕왕 사후 3년 만에 왕위에 올라 가장 먼저 단행한 것이 신라 침공이었습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의하면, 무왕 3년(602)부터 30여 년에 걸쳐 백제와 신라 사이에는 큰 싸움은 무려 열 두 차례나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무왕과 선화공주의 로맨스는 꾸며진 것이라느니, 딴 사람의 얘기가 와전된 것이라느니 하는 추리도 적지 않습니다. 다른 설을 살펴보면, 백제 동성왕의 이름이 서동이라 하고 그가 신라와 통혼한 사실을 근거로 동성왕의 이야기를 극화한 것으로 보는 경우도 있으며, 왕실의 원찰이었던 미륵사를 신라의 군졸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두 나라가 과거부터 깊은 관계가 있었음을 꾸며 퍼트린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리고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편>에는 재미있는 기록이 있습니다. "가야파를 대표하는 각간 김무력의 아들인 김서현(김유신의 아버지)이 만명공주와 사랑에 빠졌다.  만명공주의 어머니 만호태후는 둘의 사랑을 극렬히 반대해서 만명공주가 궁밖에 출입하는 것을 전면 금지했다.  그러나 만명공주는 밤에 몰래 궁궐의 담을 넘어 서현랑과 정을 통하곤 했는데 그 소문이 세간에 퍼지면서 아이들의 입에서 노래가 될 정도였다. 이 사실을 안 만호태후는 진평왕과 의논하여 서현랑을 변방 만노군의 태수로 발령하여 서라벌을 떠나게했다." 김서현의 모친은 진흥왕의 누이인 아양부인으로서 김무력에게 시집가서는 가야파의 정신적 지주노릇을 했고, 그로 말미암아 진골정통을 옹호하는 만호태후와 사사건건 정치적 마찰을 빚게 되는데 만호태후가 김서현의 집안을 싫어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한편 만호태후에 의해 반연금 상태가 된 공주는 암암리에 호위무사들을 매수하여 궁궐을 탈출하여 임지로 떠나는 서현을 뒤쫒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두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머나먼 변방에서 보금자리를 갖게 됩니다. 만호태후는 진노하여 공주와 의절을 하지만 불과 몇 년 후에 마음을 고쳐먹게 되는데 그 계기를 만든 사람이 바로 김유신입니다.
김유신은 태어나면서부터 기이한 조짐을 보였고 성장하면서는 범인과 차별되는 언행으로 주위를 놀라게 했습니다. 김유신에 대한 소문은 서라벌의 만호태후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고, 마침내 만명공주는 서라벌을 떠난 지 수 년 만에 유신을 데리고 궁에 돌아오게 됩니다. 유신을 본 태후는 출중한 기상과 빼어난 자태에 감탄을 금치 못하여 고집을 꺾고 두 사람의 혼인을 인정하게 됩니다. 대략 여기까지가 서현과 만명공주와의 러브스토리인데 서동요의 내용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무왕과 선화공주는 분명히 결혼했고 그 사이에는 딸도 있었습니다. 백제의 마지막 임금인 의자왕은 <삼국사기>에 의하면 무왕의 원자지만 그가 선화공주의 아들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딸만은 선화공주와 무왕 사이에 태어났음이 일본측 각종 문헌에 의해 드러납니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무왕이 돌아간 해(600)에 백제엔 정변이 일어난 흔적이 엿보입니다.
"이때 대좌평(최고위층의 백제 관리) 지적이 죽었고, 이듬해 정월에 의자왕의 어머니가 죽었으며,  또 무왕의 아들이요 의자왕의 동생인 교기왕자와 그 어머니, 여동생 등 여자 넷, 그리고 고위관료 40여명이 섬으로 추방되었다" 섬이란 그 무렵의 백제가 일본을 가리킨 통칭이며 당시 일본은 백제 분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죽었다는 백제 고관 지적이 이듬해 7월 일본서 왜왕과 만나고 있고 교기와 함께 잔치에도 참석하고 있습니다. 이상한 일이지만 지적 등 백제 고관들은 무왕이 죽자 교기를 백제왕으로 추대하려다 실패하자 일본으로 가서 다시 왕가를 세운 것으로 이해되기는 하지만, 필자는 지적이 당시 일본의 철강왕으로 불리던 가마타리가 아닐까 합니다.
622년 쇼토쿠태자(聖德太子)가 죽은 후 소가씨(蘇我氏)가 실권을 장악하고, 백제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 할 즈음 ,무왕은 가마타리 일행을 왜로 보내서 소가씨를 제거하고, 고토쿠(孝德)천왕을 세우는 다이카개신(大化改新)이 일어납니다. 이 쿠데타의 주역인 가마타리는 당시 정치의 최고 실권자였으며, 백제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봅니다. 교기왕자와 함께 일본으로 추방되었다는 그의 어머니는 일본에 가자마자 왜왕으로 등극한 황극여왕이요, 동반 망명한 여동생 중 하나가 선화공주의 딸인 경왕녀입니다.
그리고 교기는 어머니 뒤를 이어 왜왕이 되는데 그가 천지왕(재위 661∼71)입니다. 백제왕과 신라공주 사이에 태어나고  선화공주를 닮아 뛰어난 미인이었던 경왕녀는 그 후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이 됩니다. 서동요의 주체가 누구였든간에 이후 경왕녀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먼 무왕과 선화공주의 관계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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