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재 전경원과 함께 고전시가를 통해 여는 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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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원 
Subject >>  
 상고가요(上古歌謠)
구지가(龜旨歌)

거북아 거북아                龜何龜何
머리를 내놓아라             首其現也
만약 내어 놓지 않으면     若不現也
구워서 먹으리                燔灼而喫也

  龜 거북 구   何 어찌 하    首 머리 수    其 그 기
  現 나타날 현 也 어조사 야  若 만약 약    燔 구울 번
  灼 구울 작   而 말이을 이  喫 먹을 끽

● 구간 등은 왜 <구지가>를 불렀을까?
이 노래가 실려있는 <삼국유사>에 따르면 여러 사람이 땅을 구르면서 이 노래를 부르자, 가락국의 시조가 태어났다고 한다. 구간 등은 자기네들의 새로운 왕을 맞이하기 위해 이 노래를 불렀다.

● 집단 서사무가
  이 노래는 가락국의 건국 신화에 삽입되어 있는 영신군가(迎神君歌-임금을 맞이하는 노래)이다. 설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술적이고 서사적이며, 노래와 춤이 분화되지 않은 집단 서사 무가(舞歌)이다.

● <구지가> 배경설화 - 삼국유사에 이 구지가가 전한다.
천지가 개벽한 후로 이 지방에는 아직 나라 이름도 없고, 또한 왕과 신하의 칭호도 없었다. 이 때 아도간(我刀干), 여도간(汝刀干), 피도간(彼刀干), 오도간(五刀干), 유수간(留水干), 유천간(留天干), 신천간(神天干), 오천간(五天干), 신귀간(神鬼干) 등의 구간(九干)이 있었다. 이들 수장(首長)이 백성을 통솔했는데, 대개 1백호 7만 5천명이었다. 그 때 사람들은 거의 스스로 산과 들에 모여 살면서 우물을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서 먹었다.
후한의 세조 광무제(光武帝) 건무 18년 임인(A.D. 42) 3월 상사일(上巳日)에 (그들이) 사는 곳의 북쪽 구지(龜旨-이것은 산봉우리의 이름인데 거북이 엎드린 형상과 같으므로 구지라 했다.)에서 수상한 소리가 불렀다. (구간들과) 마을 사람들 2, 3백명이 거기에 모이니, 사람 소리 같기는 한데 그 모습은 보이지 않고 소리만 들렸다.
"여기 누가 있느냐?"
구간들은 대답했다.
"우리들이 여기 있습니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이냐?"
"여기는 구지입니다."
또 말했다.
"하늘이 나에게 명령하여 이 곳에 나라를 새로 세워 임금이 되라 하셨다. 그래서 내려왔다. 너희들은 이 산꼭대기를 파며 흙을 집으면서 '신이여, 신이여, 수로(首露)를 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겠다' 하고 노래하고 춤을 추어라. 그러면 곧 (하늘에서) 대왕을 맞이하여 (너희들은) 매우 기뻐서 춤추게 될 것이다."
구간들은 그 말을 따라 마을 사람과 함께 모두 기뻐하면서 노래하고 춤추었다.
얼마 후, 자주색 줄이 하늘로부터 드리워져 땅에 닿았다. 줄 끝에는 붉은 단이 붙은 보자기에 금합이 쌓여 있었다. 열어보니 황금색 알이 여섯 개가 있는데 해처럼 둥굴었다. 여러 사람은 모두 놀라고 기뻐하여, 함께 수없이 절했다. 조금 있다가 다시 보자기에 싸 가지고서 아도간의 집으로 돌아와서 탑(榻- 깔거나 눕는 좁고 기다란 의자) 위에 두고 무리들은 모두 흩어져 갔다. 12일을 지난 그 이튿날 아침에, 마을 사람들이 다시 모여서 합을 열어보니 알 여섯이 모두 화하여 어린이가 되어 있었는데, 용모가 심히 컸으며, 이내 평상(平床)에 앉았다. 여러 사람들은 모두 절하고 하례하고는 극진히 공경했다. (어린이는) 나날이 자라 열며칠을 지나니 키가 9척임은 은나라 천을(天乙-탕왕)과 같았고, 얼굴이 용안임은 한나라 고조와 같았으며, 눈썹이 팔채(八彩)임은 당나라 요임금과 같았고, 두 눈동자를 가짐은 우나라 순임금과 같았다. 그 달 보름날에 왕위에 올랐다.
세상에 처음 나타났다고 하여 이름을 수로라하고 혹 수릉(首陵-죽은 뒤의 시호)이라 했다. 나라를 대가락(大駕洛) 혹은 가야국(伽倻國)이라고 일컬으니 곧 육가야(六伽倻)의 하나이다.

● <구지가> 정리
* 출전 : 삼국유사 (김수로왕 강림신화 중의 삽입가요)
* 연대 : 신라 유리왕
* 형식 : 4언 4구체의 한역가, 서사시
* 성격 : 의식요, 집단가요, 주술요, 노동요
* 다른 이름 : 영신군가(迎神君歌)
* 주제 : 왕이 나타나기를 바람
* 구성
   1 ~2행 : 신의 강림 기원
   3 ~4행 : 주술적 위협

해 가 (海歌)

● <구지가>와 비슷한 작품이 또 있다
  이러한 이야기 속에서 고대인들은 군중이 모여 합창을 하면 그 뜻이 이루어진다고 믿었음을 엿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주술적 무가(巫歌) 계통의 노래로 신라 성덕왕 때 수로 부인과 관련된 '해가(海歌)'가 있다. 수로부인이 해룡에게 잡혀가자 남편인 순정공이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서 불렀다. '해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龜乎龜乎出水路 (구호구호출수로)
         남의 아내 앗은 죄 그 얼마나 큰가?  掠人婦女罪何極 (약인부녀죄하극)
         네 만약 어기고 바치지 않으면       汝若悖逆不出獻 (여약패역불출헌)
         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으리라        入網捕掠燔之喫 (입망포략번지끽)



● <해가> 배경설화
신라 성덕왕 때에 순정공(純貞公)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는 도중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바위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바다를 둘렀다. 높이가 천 길이나 되고, 그 뒤에 철죽꽃이 만발하여 있었다. 수로가 좌우를 향해
"누구 꽃을 꺽어 올 사람이 없느냐 ?"
하였다. 주위에서 모시던 사람들은 사람이 올라 갈 수 없는 곳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하였다. 마침 그 때 한 늙은이가 암소를 끌고 지나가다가 부인의 말을 듣고 꽃을 꺾어, 노래(헌화가)와 함께 부인에게 바쳤는데, 그 늙은이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그 이틀 뒤에 임해정(臨海亭)이라는 곳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문득 바다에서 용이 나타나서 부인을 끌고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공이 허둥지둥 발을 구르나 계책이 없었다. 또 한 노인이 있어 말하되
"옛날 말에 여러 사람의 입은 쇠도 녹인다고 하니, 바다 속의 물건인들 어찌 여러 입을 두려워하지 않으랴 ? 경내의 백성을 모아서 노래를 지어 부르고 막대기로 언덕을 치면 부인을 찾을 수 있으리라."
하였다. 공이 말대로 하였더니 용이 부인을 받들고 나와 도로 바치었다. 공이 부인에게 바다 속 일을 물으니 부인이 말하기를
"칠보(七寶)로 꾸민 궁전에 음식이 맛이 있고 향기로우며 깨끗하여 속세의 요리가 아니다."
라고 하였다. 부인의 옷에서는 세상에서 일찍이 맡아 보지 못한 특이한 향기가 풍기었다.
  수로부인은 절세의 미인이라, 매양 깊은 산과 큰 못을 지날 때마다 여러 번 신물(神物)에게 붙들림을 당하였다. <삼국유사>

● <해가> 정리
* 형식 : 4구체 한역 시가
* 성격 : 주술요, 노동요
* 주제 : 수로부인의 귀환을 기원
* 구성
   1 ~ 2행 : 수로부인의 귀환 기원
   3 ~ 4행 : 소망 성취를 위한 주술적 위협

● '구지가'와 '해가'의 공통점과 차이점
공통점
(거북이를 대상으로 한) 주술적, 집단적 가요, 노동요, 주술성을 가진 국문학 발생 시기의 노동요  

차이점
구체적 사건이 없음 / 왕(신군)의 강림을 빎 / 현전하는 최고의 무요
구체적 사건이 있음 / 부인을 되찾음을 기원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 임이여 강을 건너지 마세요 ; 여 옥

    公無渡河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公竟渡下      임이 그예 물을 건너시네.
    墮河而死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當奈公何      임이여, 이 일을 어찌할꼬.

公 2인칭 대명사로 쓰임, '당신', '임' 정도로 해석됨 無 말 무/ 없을 무  
竟 마침내(드디어) 경 墮 떨어질 타 當 마땅할 당, 당할 당 奈 어찌 내

● <공무도하가> 배경 설화

공후인은 조선 진졸 사람인 곽리자고의 아내 여옥이 지었다. 곽리자고가 새벽에 일어나 배를 젓고 있었는데 머리가 센 미친 사람(백수광부) 하나가 머리를 풀고 술병을 낀 채 물살을 헤치며 건너가려 했다. 그의 아내가 뒤따르며 막아보려 했으나 막지 못하고 결국 미친 이는 물에 빠져 죽었다. 이에 그의 아내는 공후를 타며 공무도하(公無渡河)의 노래를 지었다. 그 소리가 매우 구슬펐는데 노래를 마치고는 스스로 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
  곽리자고가 돌아와 아내 여옥에게 그 노래 소리를 들려주며 이야기를 하였더니, 여옥은 이를 슬퍼하여 공후를 타며 그 소리를 그대로 내었는데 듣고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여옥은 그 소리를 이웃에 사는 아낙인 여용에게 전해 주었는데 이를 이름하여 <공후인>이라 불렀다.

● <공무도하가> 작품 정리
* 출전 : 해동역사
* 연대 : 고조선
* 형식 : 4언4구체의 한역가, 서정시
* 중심소재 : 물
* 작가 : 백수광부의 처, 또는 여옥
* 다른 이름 : 공후인
* 주제 : 물에 빠져 죽은 남편의 죽음을 애도함
* 의의 : 1) 서사시에서 서정시로 넘어가는 시기의 작품
        2) 문헌상 가장 오래 된(최초의) 서정시

● <공무도하가>의 의미
문헌상 우리나라의 최고(最古)의 서정 가요인 <공무도하가>는 원시 서사 문학에서 개인 서정 문학으로 넘어 가는 과도기에 있는 작품이다.  이 가요에서 첫 구는 이별의 거부 의지를 나타내고 있어 비장감을 조성하고 있다. 여기서의 물은 임과 사랑을 의미한다. 둘째, 셋째 구는 이별을 의미한다. 따라서 여기서의 물은 임의 부재와 사랑의 종말(둘째 구)과 임의 죽음(셋째 구)을 나타낸다. 넷째 구는 이별의 정서가 나타난다. 결국 이 가요는 정읍사, 가시리, 서경별곡, 진달래꽃 등으로 그 정서가 이어져 오는 한국 정서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 백수광부는 어떤 사람인가?

   이 시가의 배경 설화에 나타난 주인공 백수 광부의 모습이나 행동은 평범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서 상징적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백수 광부의 기이한 외모나 사건이 발생한 새벽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고려하여 신화적 입장에서 해석하면 그는 일종의 주신(酒神)이라 할 수 있으며, 노래를 부른 후 따라 죽었다는 그의 아내는 악신(樂神)의 성격을 지닌다. 또 백수 광부의 행위를 일종의 황홀경에 든 무당의 모습이라 보고, 강물에 뛰어드는 행위 자체는 죽음을 이기고 새로운 권능을 확인하는 의식을 거행하다가 실패한 것으로 해석하여 그의 아내 역시 무당이라 추론하는 견해도 있다.
  또 다른 견해로 모습이나 거동이 예사롭지 않은 점을 보아 죽은 사람이 무당일 것이라고 하는 견해가 특히 주목된다. 머리를 풀어 헤치고, 술병을 들고, 미치광이 짓을 하면서 강물에 뛰어들기도 하는 것은 황홀경에 든 무당의 모습이라야 이해가 된다. 강물에 뛰어들어 죽음을 이기고 새로운 권능을 확인하는 의식이 거행되었겠는데, 그렇게 하는 데 실패했으니 문제이다. 서툰 무당인 탓이라고 하면 심각한 사태가 가볍게 처리되고 만다. 실패에서 어떤 역사적인 의미를 찾으면서 새로운 견해를 덧보탤 필요가 있다. 무당으로서의 권위가 추락했기 때문에 죽음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하고, 그렇게 된 이유가 고조선이 국가적인 체계를 확립하면서 나라 무당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지 못한 민간 무당은 불신되거나 배격되는 사태가 벌어진 데 있었을 법하다. 그 자리에서 공후를 탄 아내도 무당인 것 같으며, 그래서 굿노래 가락에 얹어 넋두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지식산업사, 1988

● 노래에 나오는 '물'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이 작품에서 작자는 사랑하는 남편을 잃게 되는 과정을 자신의 감정 변화와 함께 애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전체 4행 중에서 세 번에 걸쳐 나오는 '물(河)'이라는 이미지는 작자의 감정에 따라 변화하며 작자의 심리적 상태를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첫 행에서 작자는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라고 행동의 중지를 요구한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자연의 일부인 '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작자가 넘지 않길 바라는 것은 '물'로서 표현된 자신의 사랑인 것이다. 물론 표현된 임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물을 건너듯 저버리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둘째 행에 나오는 '물'은 그 의미가 조금 더 변화한다. 둘째 행에서 작자는 '임이 그예 물을 건너시네'라고 하여 물을 건너는 임을 묘사한다. 이것은 물을 건너 버린 임과 작자와의 이별을 의미하는 것이다. 언제 다시 만나게 될 지 모르는, 그저 애절하기만 한 이별을 하게 된 것이다.
한편, 셋째 행에서 임은 '물'에 빠져 죽게 된다. 생과 사의 갈림이자 불가항력인 물로 임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 물론 들어간 임을 이제는 다시 볼 수 없게 되어 셋째 행에서의 '물'은 죽음의 이미지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의 '물'의 이미지는 사랑 → 이별 → 죽음의 의미를 차례로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황조가(黃鳥歌) - 유리왕

翩 翩 黃 鳥                  펄펄 나는 꾀꼬리는
雌 雄 相 依                  암수 서로 정다운데
念 我 之 獨                  외로운 이 내 몸은
誰 其 與 歸                  그 누구와 함께 돌아갈꼬.

翩 : 가볍게 날 편  雌 : 암컷 자   雄 : 수컷 웅    依 : 의지할 의    
念 : 생각 념       誰 : 누구 수   與 : 더불어 여  歸 : 돌아갈 귀

● <황조가> 배경 설화
고구려 제2대 유리왕 즉위 2년 겨울 10월에 왕비 송씨가 세상을 떠나매, 왕은 다시 두 여자를 맞아 계실로 맞았다. 그 하나는 골천 사람의 딸 화희였고, 또 하나는 한나라 사람의 딸인 치희였다. 이 두 여자는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으므로 왕은 할 수 없이 동서 두 궁궐을 지어 따로 살게 하였다.
  한번은 왕이 기산으로 사냥을 나가 이레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그 사이에 두 여자가 서로 다투어 화희가 치희를 욕하되,
  "너는 한나라 비첩(婢妾)의 몸으로 어찌 이렇게 무례히 구느냐?"
하였다. 치희는 부끄럽고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제 고장으로 돌아가 버렸다. 왕이 사냥에서 돌아와 그 소식을 듣고 말을 달려 그 뒤를 쫓았으나 치희는 노여움을 풀지 않고 끝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왕이 일찍이 나무 밑에서 쉬다가 나뭇가지에 꾀꼬리들이 날고 있는 것을 보고 느낀 바 있어 노래불렀다.  <삼국사기>

● 유리왕은 어떤 사람이지?

  유리왕은 기원전 19년에 즉위하였다. 왕의 이름은 유리(類利) 혹은 유류(孺留)라고 일컬어지는데 고구려 시조 주몽(동명왕)의 원자(元子)이고 어머니는 예씨(禮氏)이다.
  처음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예씨에게 장가를 들어 임신이 되고 주몽이 망명한 후에 유리가 태어났다. 유리가 어릴 때에 거리에 나와 놀며 참새를 쏘다가 잘못하여 물을 길어 가던 여인의 물동이를 깨뜨리자, 여인이 꾸짖기를, 이 아이는 아비가 없어 이같이 미련한 짓을 한다고 하였다. 유리는 부끄러워 하면서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내 아버지는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가를 물었다. 그 어미가 말하기를
"너의 아버지는 보통 사람이 아니며 이 나라에서 용납되지 않으므로 남녘 땅으로 망명하셔서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셨다. 망명하실 때에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만일 사내아이를 낳으면 내가 가졌던 유물을 일곱 모가 난 돌 위 소나무 밑에 감추어 두었으니 이것을 찾아 가지고 오면 나의 아들로 맞겠다.'고 하셨다."
유리는 이 말을 듣고 곧 산골짜기에 가서 찾았으나 얻지 못하고 돌아왔다. 어느 날 아침, 집에 있노라니까 소나무 기둥과 주춧돌 사이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살펴보니 주춧돌이 일곱 모로 되어 있었다. 마침내 기둥 아래에서 끊어진 칼 도막을 하나 찾았다.
이것을 가지고 옥지(屋智), 구추(句鄒), 도조(都祖) 등 3인과 더불어 길을 떠나 졸본(卒本)에 이르러 부왕(父王-주몽)을 뵙고 끊어진 칼을 바치자 왕이 가지고 있던 칼과 맞추어 보니 비로소 한 자루의 칼이 이루어져 왕은 크게 기뻐하며 유리를 세워 태자(太子)로 삼아, 이 때(기원전 19)에 이르러 왕위를 계승하였다.  <삼국사기>

● 고구려 사람들도 우리말로 노래했을까?

삼국사기에 실려 있는 <황조가>의 원문은 한자이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삼국사기가 나온 고려 시대에 한글은 없었으므로, 이러한 <황조가>를 오늘날 이해하기 쉽게 만든 것이 번역시이다. 그러나 <황조가>를 처음 불렀던 유리왕은 한시로 이 노래를 부른 것이 아니다. 그는 지금의 우리들처럼 우리말로 노래했다. 다만 우리말로 부른 노래가 기록으로 정착되는 과정에서 아직 우리만의 독자적인 표기 수단을 지니고 있지 못했기에 중국의 문자인 한자를 빌려 기록하게 된다. 예를 들어, 날아가는 새의 모습을 보고 유리왕은 '펄펄'이라 노래했을 것이다. 이를 기록하기 위해 한자어 중 '펄펄'의 의미를 지닌 의태어 '편편'을 빌려온 것이다. 따라서, <황조가>는 처음부터 한자로 기록한 한시가 아니라 우리말로 불리던 노래가 정착의 과정에서 한자로 기록된 한역시이다.

● 이 시가 최초의 '개인 서정시'라니?

이 노래의 지은이는 유리왕이다. 그는 고구려를 세운 동명왕의 아들로, 부여에서 아버지를 찾아 고구려로 가서 왕위를 계승하였던 인물이다.
한 개인에 의해 지어졌다는 점에서 이 노래는 전해져 내려오는 노래 중 가장 오래된 개인 서정시로 알려져 있다. '개인의 심정을 노래하지 않는 노래도 있단 말이야?' 하고 반문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바로 앞에서 살핀 <구지가>에서도 드러나듯이 이 노래 이전의 노래들은 모두 집단적인 필요(풍요 기원, 권력의 획득 등)에 의해 지어진 것이었다. 눈물을 흘리며 따라할 만한 유행가 가사, 그것의 시초는 고구려 2대왕 유리왕이 지은 <황조가>였다.

● <황조가> 작품 정리
  * 출전 : 삼국사기
  * 연대 : 유리왕 3년 (B.C. 17)
  * 형식 : 4언4구체의 한역가, 서정시
  * 주제 : 실연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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