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재 전경원과 함께 고전시가를 통해 여는 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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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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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연(因緣)과 운명(運命) 사이 「그 여자네 집」
넷. 인연(因緣)과 운명(運命) 사이 「그 여자네 집」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피천득의「인연(因緣)」이라는 작품 마지막 부분이다. 사람은 한 평생을 살면서 많은 인연을 맺고 살아간다. 작가의 언급처럼 평생 그리워하면서도 한 번 만나고 다시는 못 만난 채 살기도 하고, 죽는 순간까지도 잊지 못하면서 차마 만나지 않고 살기도 한다. 어쩌면 그것이 인연인지 모르겠다.

민족의 수난과 함께 힘없이 주저앉은 개인들

어린시절 한 마을에서 곱고 아름다운 사랑을 키워가던 장만득과 곱단은 마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인정하는, 흔히 말하는 동네 커플이었다. 그러나 1945년 일본 제국주의 망령이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을 무렵, 만득은 읍내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본에 의해 강제 징용에 끌려가게 된다. 만득이 사랑하는 곱단을 두고  살아 돌아올지 모르는 전쟁터로 끌려가게 되자, 곱단은 그럼 미리 혼례를 치르자고 만득을 설득한다. 하지만 만득은 자신이 살아서 돌아올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혼사를 거부하고 곱단을 설득한다. 만약의 경우에 자신이 전쟁터에서 숨을 거두게 된다면 곱단이 평생 과부로 살아야 하는데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만득의 생각이었다. 만득이 곱단을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만득이 그렇게 떠나간 후, 일본 제국주의 망령이 다시 한번 부활하여 이번에는 나이 어린 처녀들을 대상으로 일본 본토나 남태평양 섬으로 보낼 정신대 모집에 혈안이 되었고, 곱단이 살던 시골 마을에까지 영향이 미쳤다. 딸 가진 부모들은 전전긍긍하며 정신대에 강제로 끌려가지 전에 시집을 보내기에 급급하였다. 곱단이도 정신대를 피하기 위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첫 장가 든 부인이 십 년 넘도록 아이를 못 낳자,  부인을 내치고 새장가를 든다는 신의주의 재취 자리로 시집가게 된다.

엇갈리는 인연

시집 간 곱단이 처음으로 친정에 오기도 전에 해방이 되었고, 그녀의 나이 열아홉에 떠난 지붕 노란 고향집을 다시 돌아오기도 전에 고향은 아슬아슬하게 삼팔선 이남이 되어 북한의 신의주와는 영영 길이 막히고 만다.
엇갈린 인연인지 만득이 살아서 돌아와 그 이듬해 봄 행촌리 처녀 순애와 혼사를 치른다. 만득과 순애가 결혼을 한 후 서울로 이사를 갔다. 그 사이  6·25 전쟁이 발발하고  삼팔선 대신 휴전선이 그어지자 행촌리는 휴전선 이북 땅이 되어버린다.

서술자 ‘나’와의 만남과 만득의 진심

서술자 나는 훗날 군민회에서 만득과 순애 부부를 만난다. 그리고 순애와 친해져서 개인적 만남을 가졌다. 그때마다 순애는 남편이 아직도 곱단이를 잊지 못해서 괴롭다며 이런 저런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그러던 어느 날 순애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평소 순애의 하소연을 들었던 나는 순애가 가엾고 불쌍했다.
그 후, 나는 정신대 할머니를 돕기 위한 모임에서 우연히 만득이를 다시 만난다. 순애가 불쌍하다는 생각에 나는 곱단이를 아직도 못 잊어서 여기에 왔느냐며 만득이를 몰아댄다. 그러자 장만득은 이렇게 자신의 심정을 표현하며 작품을 맺는다.
“내가 곱단이를 그리워했다면 그건 아마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젊은 날에 대한 아련한 향수였겠지요. 아름다운 내 고향에서 보낸 젊은 날을 문득문득 그리워하는 것도 죄가 되나요. 내가 유람선 위에서 운 것도 저게 정말 북한 땅일까? 남의 나라에서 바라보니 이렇게 지척(咫尺)인데 내 나라에선 왜 그렇게 멀었을까? 그게 서럽고 부끄러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복받친 거지, 거기가 신의주라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요. (중간 생략) 삼천 리 강산 방방곡곡에서 사랑의 기쁨, 그 향기로운 숨결을 모조리 질식시켜 버리니 그 천인공노할 범죄를 잊어버린다면 우리는 사람도 아니죠. 당한 자의 한(恨)에다가 면한 자의 분노까지 보태고 싶은 내 마음 알겠어요?” 장만득 씨의 눈에 눈물이 그렁해졌다.

역사 속의 개인, 개인 속의 역사

우리는 ‘역사(歷史)’라고 하면 흔히 과거형으로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역사는 한 순간도 멈춰있지 않다.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 심지어 지난 과거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E·H 카아(carr)와 같은 역사학자는 역사에 대해 정의하기를, “역사는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내 삶도 역사의 커다란 수레바퀴 속에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하근찬의「수난이대(受難二代)」라는 작품에도 그러한 상처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박만도는 일제 강제 징용에 끌려갔다가 왼쪽 팔을 잃고 돌아온다. 그의 아들 박진수는 6·25 전쟁에 참전하여 오른 쪽 다리를 잃고 귀향한다. 아버지와 아들, 이대(二代)에 걸친 수난은 개인의 수난인 동시에 민족사의 아픔이었다. 역사 속에 개인은 따로 존재할 수 없고, 개인 속의 역사 또한 그렇다. 작가는 이런 민족의 아픔과 상처, 그리고 두 부자의 험난한 인생역정을 외나무다리에서 서로 고통을 헤쳐 나가는 형상을 통해 극복하고 있다. 아버지가 한 팔로 아들을 업고 하나 뿐인 아들의 다리를 감싸 안는 장면을 통해 민족의 강인함을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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