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재 전경원과 함께 고전시가를 통해 여는 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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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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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서시(序詩)」「지조론(志操論)」
셋.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서시(序詩)」「지조론(志操論)」

‘앙불괴어천(仰不愧於天)’, 이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다.’는 말이다. 사람은 아무리 스스로를 변명하고 위로하려하고 합리화 하려해도 ‘양심(良心)’이 있기에 자신마저 속일 수는 없다. 그래서 괴로워하고 온전한 정신을 잃어버리고 하는 것이다. 혹 어떤 이는 양심이 없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악몽을 꾸면서 땀을 흘리며 스스로 두려움에 떨게 된다. 증자는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 세 가지를 성찰했다고 한다. 남을 위해 일할 때 진실한 마음으로 나를 모두 소진했는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남을 믿고 나를 신뢰하게 행동했는가? 매일 매일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나의 것으로 만들었는가? 이렇게 자기 연찬의 시간들이 누적되었기에 부끄럽지 않은 인물이 된 건 아닐까?

윤동주도『맹자(孟子)』를 읽었다?

『맹자(孟子)』라는 책의「진심장(盡心)」장(章)을 보면 군자삼락(君子三樂)과 관련된 이야기가 등장한다. 군자삼락은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을 뜻한다. 첫째가 부모님이 살아계시고 형제에게 변고가 없는 것(父母俱存 兄弟無故)이고, 둘째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이 없고, 땅을 굽어보아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셋째 천하에 영특한 인재를 얻어 그를 가르치는 것(得天下英才而敎育之)이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이라 했다.
세 가지 즐거움 가운데 두 번째 즐거움인 ‘앙불괴어천(仰不愧於天)’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스물여덟 짧은 생애를 마감한 천재 시인 윤동주의「서시(序詩)」첫 구절에는 바로 이 구절의 향기가 짙게 베어난다. 그는 안타깝게도 빼앗긴 조국이 광복되기 1년 전인 1944년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 차디찬 감옥에서 숨을 거둔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서시(序詩)」

그의 시는 이처럼 끊임없이 자아를 성찰하는 듯하다. 하지만 시의 밑바닥에는 민족에 대한 성찰과 역사에 대한 인식 또한 깊이 스며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어의 결에서 섬세하고 예민한 감수성이 느껴진다. 투명한 영혼에 자꾸만 성찰이 가해지니 생채기만 남아 결국은 스스로 삶의 끈을 놓아버렸던 건 아닐까? 안타까운 마음이 문득 밀려온다. 그의 죽음이 이토록 안타까운 이유는 너무 낮은 목소리로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낮은 목소리의 저항 시인, 윤동주

자아성찰을 통해 시대적 소명에 응답하고자 치열한 정신적 삶을 살았던 윤동주. 그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지식인이 짊어져야할 삶의 무게를 거부하지 않고, 애써 외면하지도 않았다. 끊임없는 자기 침잠을 통해 자신의 몫을 다하려 했던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답게 그만의 낮은 목소리로 밤새워 노래했다.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작용(風化作用)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 윤동주,「또 다른 고향」

1연에서 말하는 ‘고향’은 누구나가 자란 삶의 터전이다. 또 언제나 다시 돌아가고픈 공간이자 영혼의 쉼터일 게다. 그런 나만의 현실 공간에까지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 방에 나란히 누워있다. 시인이 ‘백골’을 대하는 태도는 어떤가? 마지막 연을 근거로 살펴보면, 백골은 내가 남겨두고 떠나야만 하는 대상으로 그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백골 몰래” 가야만 한다. 따라서 백골은 시인에게 긍정적 의미를 주지 못한다. 백골은 시인이 몰래 두고 가고 싶을 정도로 부정적 의미를 지닌 대상이다. 그렇다면 시인에게 백골은 어떤 의미일까?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 아니면 소극적이며 현실에 안주하려는 마음? 대충 이런 의미로 읽어낼 수 있겠다.
2연에서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한다고 했다. 어두운 방은 두려움과 답답함, 암담함, 폐쇄된 공간 등의 의미를 지닌다. 이런 공간이 우주와 통한다고 했으니 닫힌 공간과 열린 공간을 연속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닫혀 있으나 상황에 따라서는 언제든지 열린 공간이 되는 셈이다. 그런 공간에서의 바람은 고향이라는 자신만의 공간에 침잠해 있는 시인을 현실 앞에 맞서게 하는 구실을 한다. 시대와 역사 그리고 민족의 현실 앞에서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음을 암묵적으로 제시하는 바람이다.
3연의 “어둠”은 현실 인식에 근거한 시어로 볼 수 있다. 시인이 인식하고 있는 현실은 그야말로 암흑이다. 그런 현실 속에서 “곱게 풍화작용(風化作用)”을 한다는 말은 무엇인가?  풍화작용은 암울한 현실 속에서 삶의 터전과 영혼의 뿌리를 점점 상실한 채, 무너지고 있는 상황을 의미하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하는 대목에 이르면 분열된 자아의 모습이 엿보인다. 내가 현실적 자아라면, 백골은 안주하려는 일상적 자아이고, 아름다운 혼은 역사의식을 자각한 이상적 자아를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4연에서는 “지조 높은 개”와 “어둠” 그리고 “나”의 이미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조 높은 개는 암담한 현실에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내 영혼을 깨워주는 개일 것이다. 그리고 어둠은 말 그대로 암담한 현실일 게다. 그리고 나는 소극적인 자아를 가리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마지막 5연에서 “쫓기우는”과 같은 표현에서 풍기는 주체적이며 적극적이지 못한 자세가 못내 마음에 걸린다. 주체적이거나 자발적이진 못했지만 현실에 안주하려는 무기력한 자아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는 시인의 목소리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이 살짝 엿보인다. 조금만 더 굳건하게 말했다면, 조금만 더 단호하게 확신했다면. 조국의 독립을 보고도 남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아쉬움이 밀려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조(志操)란 무엇인가?

지조란 것은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確執)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 지조가 교양인의 위의(威儀)를 위하여 얼마나 값지고, 그것이 국민의 교화에 미치는 힘이 얼마나 크며, 따라서 지조를 지키기 위한 괴로움이 얼마나 가혹한가를 헤아리는 사람들은 한 나라의 지도자를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먼저 그 지조(志操)의 강도(强度)를 살피려 한다.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가 없고, 믿을 수가 없는 지도자는 따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 조지훈,「지조론(志操論)」가운데

조선(朝鮮)은 유교 이념을 국시로 내세운 나라였다. 유교 이념의 핵심을 한마디로 정의 내린다면 충(忠)과 효(孝)라고 할 수 있다. 선비라면 누구나 나라를 위해 기꺼이 한 목숨을 바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모든 이면에는 지조(志操)라는 것이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대나무 꼬챙이로 조총과 싸운다?

임진왜란 당시 책만 보던 선비들이 의병을 일으켰다. 말이 의병이었지, 그들은 칼자루 한 번을 쥐어보지 못했던 백면서생(白面書生)이었다. 적과 싸우기 위해 그들에게 주어진 병기(兵器)는 고작해야 대나무 끝을 뾰족하게 깎은 죽창(竹槍)이 전부였다. 그런 그들이 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에 맞섰다.
그렇다면 우리 선비들은 조총의 위력을 몰랐기에 그처럼 무모할 수 있었나? 그렇지 않다. 그들에게 왜놈들은 귀를 베어가고, 머리 가죽을 벗기는 극악무도한 무리들로 인식되었다. 이 땅의 선비들은 죽창을 들고 왜군에 맞서기로 마음을 먹은 순간 자신의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했단 말인가?
그 이유가 바로,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確執)이요, 고귀한 투쟁”을 위해서였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지조(志操)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지식인들이 목숨을 끊었던 이유

병자호란이라는 국치를 당하여 임금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죄책감에 분신자결 했던 김상용과 서포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 또 구한말「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매천 황현, 어디 그 뿐이겠는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자 스스로 자결한 민영환 등등 우리 역사에서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선비들이 초개와 같이 자신의 목숨을 던졌다. 선비들이 목숨을 끊었던 것은 목숨이 아깝지 않다거나 죽음이 두렵지 않아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죽음의 공포를 초월하면서도 지켜내고자 했던 그 무엇인가가 있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혹 그것이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나마 작은 불씨를 지펴서 거대한 분화구에서 용암이 용솟음치듯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릴 수만 있다면 그래서 결국 세상을 변화시킬 수만 있다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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