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재 전경원과 함께 고전시가를 통해 여는 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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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전경원 
Subject >>  
 서동요(薯童謠)-노래 하나로 꿈을 이룬 남자, '서동薯童'
서동(薯童)은 출생부터 기이했다. 어머니는 과부로 백제국 익산 남쪽 못 가에 살았다. 설화에 따르면 '서동'은 과부로 살던 어머니가 못 속의 용(龍)과 관계하여 탄생했다고 한다. 이는 주인공 '서동'이 그만큼 비범한 인물임을 강조하기 위한 설화적 포석이라 여겨진다. 어려서부터 집이 무척 가난하여 '마(薯)'를 캐다가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였기 때문에 '서동(薯童; 마를 캐는 아이)'이라 불렸다.
서동은 가난했지만 재주와 도량이 커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만큼 큰그릇의 인물이었던 셈이다. 그런 그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사건이 벌어진다. 평상시와 다름없이 아침 일찍 마를 캐기 위해 집을 나선 서동이 산언저리에서 한참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잠시 짬을 내어 쉬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든 심마니들 틈을 지나려는데, 서동의 걸음을 얼어붙게 만드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여보게들, 거 내 말좀 들어보게..."
"무슨 말인데 그러나?"
"아, 글쎄 자네들 이웃나라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를 본 적 있는가?"
"여보게, 이 사람아! 우리가 어찌 이웃나라 공주를 보겠는가? 우리나라 공주님도 보지 못했는걸, 평생가야 한번 볼 수 있을까?"
"내, 지난 번 신라국 경주 고을에 물건을 팔러갔다가 어가(御駕) 행차시에 보았단 말이지. 내 평생 그런 아름다움은 처음일세,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고 그 자리에 엎드려선 고개를 숙이는 것도 잊었다네......"
하고는 눈을 지그시 감고 그때를 회상이라도 하는 양, 뜸을 드리고 섰자니,
"아, 이 사람아! 어떻게 생겨 먹었길래 그러나? 아, 그만 뜸드리고 냉큼 말하지 못하겄나?"  
"거 참, 성미하고는, 그때를 회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뛰는구만. 얼굴이 얼마나 뽀얗던지 눈이 부실 정도였지, 게다가 곱게 빗어올린 머리하며, 고운 눈매와 붉그스레한 뺨과 가녀린 입술은 차마 말로 할 수 없네, 게다가 백성들에게 던지는 그 따사로운 미소를 무어라 형언하겠는가!"
그리고는 아직도 황홀함이 가시지 않은 듯, 눈을 뜨지 못하고 그 사내는 소리 죽여 음미할 뿐이었다. 서동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우두커니 서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서동은 그 자리에 서서 눈을 지그시 감고 자신의 머리 속에 '선화공주'를 그려보았다. 그리고 또 그려보아도 도무지 어떤 모습일지 손에 잡히질 않았다. 한참만에 눈을 떠 보니, 옹기종기 앉아 떠들던 심마니 패거리는 간 데 없고, 혼자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서동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다리에 힘이 빠져버린 게다. '공주님!, 공주님!!, 선화공주님!!!'
아무리 맘속으로 불러보아도 입안을 맴돌 뿐. 허무함이 가득 밀려와 텅빈 가슴을 훑어내곤 어느새 저만치 밀려나가곤 했다. 서동은 저물도록 선화공주 생각에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하루 종일 산속을 헤매고 다닌 탓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낮에 패거리들한테 들었던 '선화공주'에 대한 이야기 탓에 더더욱 지친 몸을 이끌어 집에 들어섰다.
영문도 모르는 어머니는 연거푸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연방 물었지만 서동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제 방으로 들어섰다. 그리곤 드러누웠다. 작은 창 밖에 달은 어째 그리도 밝던지 서동의 마음을 후비고 있었다.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잠은 오지 않았다. 시커멓던 밤은 창살에 창호지를 통해서도 비쳤다. 어느새 시커멓던 밤이 푸른 기운을 뿜더니 이내 아침이 훤하게 밝았다. 잠 한숨 청하지 못한 채 날이 밝았다.
뒤척이던 몸을 벌떡 일으킨 것은 닭이 두어 번 홰를 치고 나서였다. 서동은 무엇인가 결심한 듯, 걸망 하나에 옷가지 몇 벌과 짚세기로 엮은 짚신 두어 켤레를 챙겼다. 방을 나서서는 부엌에 계신 어머니께 나아가서는,
"엄니, 지 며칠 집을 비워야 할 것 같구만유"
"무슨 일 있냐?" 어머니는 세파에 찌든 쇳소리를 겨우 내뱉는다.
"별일 아니여유, 그저 제때 끼니 거르시지 마시구유, 잘 챙겨드시소, 엄니."
이따금씩 먼 고장까지 마를 캐러 가는 경우가 곧잘 있었기에 서동 모는 아무 생각없이,
"그려, 걱정말고 몸 성히 댕겨오너라" 한다.
서동은 그 길로 곧장 머리를 깎고는 신라국을 향해 발 길을 옮겼다. 보름이 지나 신라국에 당도했다. 또 며칠을 더 가서는 경주에 이를 수 있었다. 서동은 급한 마음에 선화공주를 보기 위해 곧장 궁(宮)을 향해 달음질쳤다. 으리으리한 궁궐 문에 이르자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번잡한 시정 모습이 생기 넘쳤다. 들며나는 많은 상인들과 아이들, 남녀노소할 것없이 무어 그리 바쁜지 정신 없이들 드나들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모두들 몸에 호패를 지니고 있었다. 출입증 없이는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임을 서동은 이곳에 다다러서야 알게 되었다. 서동은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선화공주님을 보기 위해 여기까지 이렇게 왔구먼....,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찌 먼 발치에서나마 공주님 모습조차 볼 수 없단 말인감!, 이래서 구중궁궐(九重宮闕)이라 했단 말이 헛말이 아니었구나!....'
내리 이틀 가슴만 조리며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러다 정신을 가다듬고 선화공주를 만나기 위한 자신의 의지를 다지자, 묘책이 떠올랐다. 대궐 출입문이 보이는 건너편 언덕에 앉아 유심히 살펴보니, 동틀 무렵, 새벽녘에 성문이 열리면 제일 먼저 바지런한 장사치들이 등짐을 짊어지고 도성문을 황황히 드나들었고, 아침이 되면 궁 안에 사는 아이들이 대여섯 놈씩 떼를 지어 몰려나와서는 놀다가 끼니때가 되면 다시 궁안으로 들어가곤 하는 것이 보였다. 이 모습을 보며 서동은 스스로 놀랄 정도의 탄성을 내며, 무릎을 쳤다.
'옳거니! 그렇지..., 내가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지?' 하며 여유있는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리곤 그날부터 아이들이 노는 산자락을 향했다. 처음 서동은 멀찌감치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아이들이 노는 양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아이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서로 모이면 장난삼아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짝 지어주려고 이런 저런 노래를 불러댔다. "얼래 꼴래리, 영순이는 철수하고 뽀뽀했대요∼"하며 떼지어 몰려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흘리다가 불연 듯 번쩍하며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떠올랐다.
서동은 아이들과 멀지 않은 곳에 짐짓 망태기를 풀어해쳐두고는 '마'를 하나씩 씹어대고 있었다. 그러자 한 녀석이 다가서서는 안에 있는 것이 무어냐, 먹어도 되느냐, 이런 저런 이유로 다가서자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며칠동안 반복했다. 그렇게 아이들과 친해지자 이제는 아이들이 되레 아침이 되면 '서동 아저씨'를 찾아나서게 되었다.
서동과의 친밀함이 형성되자 이제 아이들은 제 친구인 양, '서동아저씨'를 연방 불러대며 귀찮게 굴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날 서동은 아이들에게 노래 하나를 가르쳐 주겠다며 아이들을 불러모았다. 노래는 이러했다.

(얼래리 꼴래리/얼래리 꼴래리)
선화공주는/ 남모르게 사랑해놓고/ 서동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간데요/
(얼래리 꼴래리/얼래리 꼴래리)
<善花公主主隱/ 他密只嫁良置古/ 薯童房乙/ 夜矣卵乙抱遣去如>

아이들은 노래말에 얼마나 엄청난 사건이 담겨있는 줄조차 모르고 신나게 따라 불렀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녀석들은 흥에 겨워 우쭐거리며, 궁궐 밖에서뿐만 아니라 궁궐 안에서 저희들끼리 어울려 떼지어 다니면서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불러대곤 하였다. 이런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는 서동은 모든 일이 자신의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음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기어코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저녁 무렵 정신 없이 놀던 한 무리의 아이들이 퇴청하던 조정관료들 앞에서 그 노래를 부르며 서로 장난치며 놀았던 것이다. 백관들은 무심코 지나치려다가 노래 내용 중에 '선화공주' 라는 말이 귀에 들렸다. 그래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자세히 들어보았다. 그러자 함께 들었던 가사가 실로 입에 담기도 어려운지라 신하들은 얼굴빛이 달라지며 놀라서는 어쩔 줄을 몰랐다.
다들 속으로만 생각하기에,
'아니, 저 어린 아이들 입에서 오르내릴 정도라면 이는 필시 까닭이 있음이로다. 정숙하고도 조신해야할 일국의 공주가 밤마다 음란을 일삼았으니, 이는 국가의 수치가 분명하다', 하면서 어찌해야할 줄 몰랐다. 결국 신하들 사이에서도 이 문제가 불거지자, 모든 신하들이 진평왕에게 끊임없이 상소문을 올리며 선화공주에게 벌을 내리라고 강력하게 주청하였다.  
진평왕은 선화공주를 믿으면서도 한편으론 이처럼 빗발치는 상소문이 이르기까지는 선화도 일정 부분 거동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는 일단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아무것도 모르는 딸에게 죄값을 물어 '유배' 명했다.
선화공주는 난생 처음 부모 곁을 떠나는 신세가 되었다. 걱정과 두려움에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그저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과 궁을 떠나야만 하는 서러움이 북받쳐 오를 뿐이었다. 채비를 갖춘 딸을 왕비가 잠시 불러들였다.
"가엾은 내 딸아!...., 어쩜 세상이 이렇게도 험악하단 말이냐... 흐흑",
목구멍까지 치받쳐 오르는 설움을 누르고 왕비는 선화공주의 어리디 어린 얼굴을 애처로이 바라보며 눈물만 떨구고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선화도 함께 목놓아 울 뿐이었다. 두 손을 움켜쥐고 한참을 울더니, 왕비는 미리 쌓아둔 빨간 비단보를 내 놓으며,
"이걸 가져 가러라."
"어머니, 이게 무엇입니까?"
"워낙 시절이 수상하니, 언제 다시 너를 불러주실까 모르겠다. 아버지께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인지라 너를 잠시 보내는 것이니, 너무 상심치 말고 잘 견디도록 해라. 그러면 곧 다시 불러주실 것이다. 그때까지 생활하려면 어느 정도 돈이 필요하지 않겠니? 이건 이 애미가 보관하던 황금이란다. 필시 긴요하게 쓸 곳이 생길 것이다. 그때 유용하게 사용하도록 하렴, 애미가 할 수 있는 게 고작 이것뿐이구나....."
"어머니,...."
"아가, 울지마라. 죄없이 쫓겨가는 신세인데 오래 머물기야 하겠니, 다 잘 되리라 믿는다. 부디 다시 부를 때까지 몸 성히 잘 지내도록 하여라"
"네, 어머니. 다시 뵈옵는 날까지 강녕하옵소서...."
흐르는 눈물을 감추며 일어서 작별 인사를 드리곤 성을 나섰다. 죄인 신분으로 궁궐에서 쫓겨난 선화는 두려움에 떨며 폐서인의 복장을 하고 시녀 둘과 함께 유배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서동은 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먼 거리였지만 서동은 첫눈에 선화공주를 알아보았다. 그토록 염원하고 간절히 바라던 선화공주가 눈 앞에 현실로 나타난 것이었다. 자신이 꿈꾸고 상상했던 그 모습보다 더 빛나는 아름다움에 그만 숨이 딱하고 막힐 지경이었다. 서동은 꿈이 아니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분명, 꿈은 아니리라. 스스로 다짐하고 재차 되뇌이며, 선화의 뒤를 따랐다. 도성을 벗어나자 서동은 미리 앞질러 돌아가서는 공주 일행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는, 강건하지만 온화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었다.
"잠시 여쭙겠사옵니다."
말을 마치자 곁에서 호위하던 시녀가 앞을 가로막고는
"뉘시온데, 여인네들의 행차를 무례하게 가록막는고?"
서동은 짐짓 넉넉한 미소를 던지며,
"제가 공주님께서 가시는 길을 호위하고자 하오니,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짧고도 간결했지만 강건함과 진실함이 묻어나왔다. 그저 멍하니 한참을 서서 사내를 훑어보고 있었다. 신장이 팔척 장신이고 기골은 장대했다. 게다가 진한 눈썹과 중심이 선 콧날에 가지런한 곧은 입술은 그야말로 한 시대를 이끌만한 인재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선화는 그가 어디서 온 누구인지도 모르고 이름도 묻지 않았건만, 왠지 모를 믿음이 생겨났다. 선화는 주저없이,
"내 그대에게 일행의 안전을 부탁하겠소", 하며 한마디를 던졌다. 두 시녀 또한 선화의 말에 따라 더 이상 서동을 의심하지 않았다. 서동은 그렇게 선화 행차를 호위하며 동행하였다. 동행하면서 선화는 계속해서 서동을 살펴보고 또 보았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선화는 서동에게서 다른 사람에게선 볼 수 없는 신비로운 힘을 느꼈다.
서동과 동행한지 며칠이 지나지 않은 어느날 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 선화는 그날따라 마음이 심란하고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다. 객주집 토방에 나와 앉은 선화는 심란한 마음에 배꽃 아래에서 그림자를 뒤로하며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는데 서동이 머무는 방에서는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희미한 불빛과 함께 낭낭한 서동의 글읽는 소리또한 들려왔다. 야심한 밤에 서동이 글 읽는 소리는 그야말로 달빛과 어우러진 장관이었다. 한참을 멍하니 서 듣고 있던 선화는 자신도 모르게 서동의 침소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그날 밤 서동의 방에서는 더 이상 글 읽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동이 트고 닭이 홰를 치기 전 선화공주는 서동의 처소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간밤엔 무슨 맘이었는지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던지 자신도 모를 기이한 끌림이었다. 아침이 밝자 일행은 또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길을 나서자, 선화는 그제서야 자신이 받아들인 그 사내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제서야, 선화는 부끄러움에 취해서 말을 건넸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신라국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라고 하옵니다. 낭군의 성함은 어찌되옵니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내는 짧으면서도 단호하게,
"예, 저는 이웃나라 백제국 익산현에 살고 있는 '서동'이라 합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선화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얼굴에 핏기가 걷혔다.
'그 노래로만 듣던 서동이 바로 이 사람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그 노래는 나의 삶을 예언했던 노래였단 말인가!', 선화는 숨이 막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곁에 있던 시녀 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센 폭풍우가 한 차례 휩쓸고 간 뒤의 정적이랄까.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어찌된 일인지 복잡하게 뒤얽힌 실타래가 마디를 풀어낸 듯 선화는 화평한 얼굴로 머뭇거리더니 서동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이제 당신은 제 서방님이시옵니다. 제 지아비로 섬기겠사옵니다. 이는 제 뜻이 아니오라 하늘이 맺어주신 것이옵니다. 감히 인간의 뜻으로 어찌할 수 없을 것이옵니다. 저는 이제 지금부터 유배지로 가지 않으렵니다. 나를 따르던 시녀 둘은 본국으로 돌려보내겠사옵고, 이 몸은 서방님을 따라 백제로 가겠사옵니다."
서동은 너무도 빠르게 벌어지는 일에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론 자신이 뜻한 대로 일이 진행되자 속으로 기쁘기 한량없었다. 서동은 지체하지 않고 발길을 돌려 고향으로 향했다. 보름이 가제 지나 고향집에 당도했다. 늙은 어머니는 선화공주를 보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리 가난한 집에 누가 시집올까 늘 근심했는데 이렇게 귀한 사람이 오니 하늘이 도운 게다. 하늘이 도운 게야' 몇 번이고 속으로 감사를 드렸다.
선화는 초라한 움막을 둘러보고는 한숨을 쉬며, 서동과 어머니를 방으로 모시고는 궁중에서 떠나올 때 왕비가 마련해 준 금덩이를 꺼내 보이며 그것으로 집도 새로 짓고 살림살이도 장만하고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그러자 서동은 금덩이를 한참 바라보더니, 손에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며 큰 소리로 웃었다.
"아니, 이 무거운 돌을..... 힘들게 여기까지..."
안타까워 하는 서동의 말에 선화는 어이가 없어,
"서방님, 이것은 그냥 돌이 아니옵니다. 이것은 금(金)인데, 아주 값비싼 물건입니다."
"그럴 리가... 내가 마 캐러 다니는 저 뒷산에 가면 인적이 드문 큰 굴이 하나 있는데, 그 안에 이런 돌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서동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서방님, 그럼 제게 그 돌무더기가 쌓여있다는 곳을 좀 안내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러자 서동은 미소를 띄우며, "아, 그 정도야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하며, 선화를 데리고 평상시 자신만이 다니던 숲속 길을 뚫고 산 정상에서 조금 아래에 자리잡은 동굴로 향했다. 동굴은 생각보다 컸다. 사람 하나가 허리를 펴고 걸어다닐 수 있는 높이 였고, 햇빛도 제법 환하게 비춰주었다. 선화는 미심쩍은 마음으로 따라들어가 살펴보니, 그것은 정말 금덩어리들이 수북하게 쌓인 금광이었다. 선화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순간, 선화공주의 머리에 번개처럼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는 서슴없이 서동에게 다가가서는, "서방님, 이곳에 쌓여있는 금덩이를 반만 신라국에 계신 아버님께 보내드리면 안되겠습니까?..." 혹시나 안된다고 하면 어쩌나 하는 근심스런 마음으로 조심스레 말을 던졌다. 그러자 서동은 아무 거리낌 없이, "무어 그리 주저하십니까? 당신께서 그토록 원하신다면 안될 것이 뭐 있겠소? 그럽시다. 용화산 사자사에 계시는 지명법사께서 쉽게 보내주실 것이니, 내 부탁해 보겠습니다."
서동은 그날로 지명법사에게 청했다. 지명법사는 신통한 힘으로 하룻밤 동안 그 금덩어리들을 신라 궁증으로 보냈다. 금덩이를 보내며 선화는 한 장의 편지를 함께 보냈다. 그 편지에는 자신이 유배지로 가면서 평생동안 지아비로 생각하고 함께 해로할 배필을 만나 백제국으로 오게 된 사연을 물론이고, 배필이 된 사내는 그야말로 남자 중의 남자인 호걸이며, 기골이 장대하고 훌륭한 인물임을 누차 적은 내용이었다.
편지와 산처럼 수북하게 쌓인 금덩이를 받은 신라국 진평왕은 그간의 신비스러운 변화에 놀랐고, 서동의 인물됨을 존경하여 항상 편지를 보내어 안부를 묻고 극진한 대우와 예(禮)를 표시하곤 했다. 서동은 이런 일로 인해 백제국 사람들의 인심을 얻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백제의 무왕(武王)으로 등극하기에 이른다.

이상이『삼국유사三國遺事』「무왕武王」조에 수록된 설화와 노래의 내용이다. 우리는 위에서 살펴본 이야기를 통해 '서동'이라는 미천한 신분의 사내 아이가 일국의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그런가 하면, 결국에는 자신이 살던 '백제국'의 왕이 되어 등극한다는 놀라운 사건의 주인공과 대면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그같은 일련의 사건 뒤에는 <서동요薯童謠>라는 노래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어찌보면 하찮은 노래일 수도 있지만 그 노래 한 곡이 사람의 일생을 바꾸어 놓기도 하고, 운명을 뒤바꾸기도 한다.
<서동요>는 우리에게 노래에는 그런 힘의 원천과 정체가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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