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재 전경원과 함께 고전시가를 통해 여는 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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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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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용가(處容歌)-노래로 보듬은 세상, 아름다운 청년 '처용處容'
노래 처용가(處容歌)는 오늘날 우리에게 너무도 많은 화두(話頭)를 던진다. 갈등과 대립, 분열과 다툼이 횡행하는 세상. 그러나 결국 우리가 만들어야 할 세상의 모습은 용서(容恕)와 화해(和解), 상생(相生)과 조화(調和)가 넘실대는 세상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현실을 돌아보면 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 개념이란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처용가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실로 엄청난 것이다. 우리는 처용을 통해 무엇을 고민하고 깨달아야 하는가?

신라 제49대 헌강대왕 때는 서울인 경주에서 지방에 이르기까지 집과 담장이 연하였다. 그 가운데 초가(草家)는 한 채도 없었다. 그런가 하면 음악과 노래가 길에서 끊기질 않았다. 바람과 비도 사계절 적당하였다. 그만큼 태평성대를 누리던 시절이었다.
하루는 낮에 헌강왕이 개운포(開雲浦)에서 놀이를 즐기다가 돌아가려고 물가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해서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기이한 일인지라 일행은 모두 당황해 하고 있었다. 왕이 괴상하게 여기곤 좌우 신하들에게 물으니, 일관(日官)이 아뢰었다. "이는 동해 용(龍)이 부리는 조화이오니 마땅히 좋은 일을 해서 풀어야 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에 왕은 일을 맡은 관원에게 명하여 용을 위하여 근처에 절을 짓게 했다. 왕의 명령이 내리자 구름과 안개가 걷혔다. 그곳이 지명이 '개운포'가 된 것은 바로 그와 같은 연유에서였다.
그러자 동해의 용은 기뻐서 아들 일곱을 거느리고 왕의 앞에 나타나 덕(德)을 찬양하여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했다. 그 가운데 한 아들이 왕을 따라 경주로 들어가서 왕의 정사를 도왔는데, 그를 '처용(處容)'이라 이름했다. 왕은 아름다운 여자를 처용의 아내로 삼아 계속해서 머물러 살도록 하고, 급간(級干)이란 관직까지 주었다.
그런데 처용(處容)의 아내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모든 남성들이 그녀를 흠모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날 처용의 아내를 흠모하던 역신(疫神)이 사람으로 변해서는 처용이 없는 틈을 타 처용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는 처용의 아내와 동침을 하고 있었다. 때마침 처용이 밖에서 자기 집에 돌아와 방문을 열었더니, 자신의 아내와 사람으로 화한 역신이 동침하고 있었다. 엄청난 장면을 목격한 처용은 잠시동안 우두커니 섰다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물러나왔다. 그때 처용이 불렀던 내용은 이러했다.

東京 밝은 달에/ 밤들이 노니다가/ 들어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러라/ 둘은 내해였고/ 둘은 누구핸고/ 본디 내해다마는/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오.

이 때에 역신은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고 처용 앞에 꿇어앉아서 하는 말이, "제가 공의 부인을 흠모하여 지금 범했는데, 공이 보시고도 노여워하시질 않고 도리어 노래를 부르시니, 이후로는 공의 화상만 있는 곳이라도 결코 들어가지 않고, 피하리다." 하고 사죄하였다. 그로부터 나라 풍속에 처용의 화상을 문간에 붙여 인간에게 해악(害惡)을 끼치는 역신의 해를 피하곤 하였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처용(處容)이 보인 태도에 의아함을 갖게 된다. 자신의 아내가 다른 사람과 함께 동침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도 이처럼 빼앗긴 아내를 어찌하겠는가! 하는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는 상황. 도대체 이 장면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처용이 선택한 방식은 상극(相剋)이 아닌 상생(相生)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고 멸시하며 복수하려는 방식이 아니었다. 처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극도의 상처를 너그러움과 관용의 미덕으로 대처했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를 밀쳐내는 '상극(相剋)'이 아닌 서로 더불어 상생하는 '상생(相生)'의 방식이었다. 그야말로 관용(寬容)과 용서(容恕)가 빚어낸 한 편의 완벽한 드라마였다. 분명 처용은 아내와 동침하던 역신을 그 자리에서 죽이고 싶을 정도로 마음 상한 상태였을 것이다. 그러나 처용은 그처럼 극단적 방식은 결국에 가서 온전한 해결책이 아님을 미리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관용寬容'과 '용서容恕'가 지닌 미덕美德이야말로 조화로운 세상을 여는 지름길임을 처용가는 보여주고 있다. 신라시대 이후로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조,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처용과 관련된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이 시대의 또 다른 처용(處容)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들 마음 속 깊은 곳에 간직되어 있는 '처용(處容)'을 이젠 용감하고 슬기롭게 끄집어 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고려시대의 속악가사 <처용가>는 신라 향가 <처용가>와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변모는 원래 향가인 처용가가 주술적 효력을 발휘해 역신을 물리치는 기능을 발휘하자, 그것을 전승시킨 무당들이 굿이라는 행사에 적합하도록 길게 고쳤기 때문일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고려속요 <처용가>의 현대어 해석을 보면 다음과 같다.

(신라 성대(新羅 聖代) 밝고 거룩한 시대)
천하태평(天下太平) 나후(羅候:해와 달을 가리는 신, 처용 위용을 빗댐)의 덕 처용 아비여
이로써 늘 인생에 말씀 안 하시어도
이로써 늘 인생에 말씀 안 하시어도
삼재(三災:물·불·바람의 재앙)와 팔난(八難:많은 괴로움)이 단번에 없어지시도다.
아아, 아비의 모습이여, 처용 아비의 모습이여.
머리 가득 꽃을 꽂아 기우신 머리에
아아, 목숨 길고 멀어 넓으신 이마에
산(山)의 기상(氣象) 비슷 무성하신 눈썹에
애인상견(愛人相見:사랑하는 사람을 서로 봄)하시어 온전하신(원만하신) 눈에
바람이 찬 뜰에 들어 우굴어지신 귀에
복사꽃같이 붉은 모양에
오향(五香) 맡으시어 우목하신 코에
아아, 천금을 머금으시어 넓으신 입에
백옥 유리같이 흰 이에
사람들이 기리고 복이 성하시어 내미신 턱에
칠보(七寶)를 못 이기어 숙어진 어깨에
길경(吉慶)에 겨워서 늘어진 소매에
슬기 모이어 유덕하신 가슴에
복과 지(知)가 모두 넉넉하시어 부르신 배에
홍정을 못이겨 구부러진 허리에
태평을 함께 즐겨 기나긴 다리에
계면돌아(무당이 돈이나 쌀을 얻으러 집집이 돌아다니다.) 넓으신 발에
누가 만들어 세웠는가. 누가 지어 세웠는가? (또는 계면조에 맞추어 춤추며 돌아)
바늘도 실도 없이, 바늘도 실도 없이
처용의 가면을 누가 만들어 세웠는가?
많고 많은 사람들이여
모든 나라가 모이어 만들어 세웠으니
아아, 처용 아비를 많고 많은 사람들이여,
버찌야, 오얏아, 녹리야(綠李)야,
빨리 나와 나의 신코를 매어라
아니 매면 나릴 것이다 궂은 말이
신라 서울 밝은 달밤에 새도록 놀다가
돌아와 내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
아아, 둘은 내 것이거니와, 둘은 누구의 것인가?
이런 때에 처용 아비가 보시면
열병신(熱病神) 따위야 횟감이로다.
천금을 줄까? 처용 아비여,
칠보를 줄까? 처용 아비여,
천금도 칠보도 다 말고
열병신을 나에게 잡아 주소서.
산이나 들이나 천리 먼 곳으로
처용 아비를 피해 가고 싶다.
아아, 열병대신(熱病大神)의 소망이로다.

작품의 출전은『악장가사』와 『악학궤범』에 전하고 있다. 축사(逐邪)의 노래, 무가, 희곡적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연 구분이 없는 '비연시'로 향가 <처용가> 중 일부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향가 <처용가> 여덟 구 가운데 앞 여섯 구가 내용이 약간 바뀌어 34∼36행에 삽입되어 있다. 향가 <처용가>로부터 45행으로 부연되면서 역질疫疾을 쫓는 완벽한 무가巫歌로서의 기능을 갖추게 되었다고 본다.
내용상 4개 단락으로 나눌 수 있는데, 서사(序詞)로서의 첫째 단락과 처용의 위압적인 모습을 그린 둘째 단락, 처용의 가면을 제작하는 과정을 이야기하는 셋째 단락, 역신에 대한 처용의 위용을 말함으로써 역신을 물리치고 접근을 방지하고자 하는 넷째 단락이 그것이다. 역신을 몰아내는 처용의 위용과 기상, 벽사진경( 邪進慶)을 노래한다.
고려 속요 <처용가>는 향가 <처용가>와 마찬가지로 처용이 역신을 몰아 내는 축사(逐邪)의 내용을 지닌 일종의 무가(巫歌)이다. 처용의 모습이 자세히 묘사되고, 역신에 대한 처용의 분노가 절실하게 나타나 있어서 희곡적 분위기가 강하다. <처용가>의 일부분이 들어 있으며, 처용희(處容戱)의 일부로서 가창되었다.
신라의 향가인 <처용가>는 고려에 와서 궁중의 나례(儺禮:잡귀를 쫓기 위한 의식)와 결부되어 '처용희(處容戱)', '처용무(處容舞)',로 발전되었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제야(除夜)에 '구나례(軀儺禮)'를 행한 뒤 두 번 처용무를 연주하여, 그 가무(歌舞)와 노래가 질병을 몰아내는 주술적(呪術的) 양식으로 바뀌었다. 민간 풍속에서는 '제웅'과 관련(정월 열 나흗날)된다. '구나(驅儺)'는 '나례(儺禮)'라고도 하며, '나희(儺戱)'라고도 불린다. 민가나 궁중에서 묵은 해의 악귀를 쫓기 위해 음력 섣달 그믐날에 벌이던 의식. 세밑의 바쁜 와중에서도 각 가정에서는 집안에서 불을 피워 잡귀를 모두 몰아내고, 깨끗하게 새해를 맞기 위해서 부뚜막의 헌 곳을 새로 바르고, 거름을 치워내고, 가축 우리를 치워 새로 짚을 넣어 깔아주며 집안을 청소하고 정돈한다. 또한 궁중에서는 대궐 안을 청소하고 정돈하는 한편, 벽사( 邪;사악함을 물리침)를 위해 나례의식을 거행했다. 이 행사는 중국에서 비롯되었는데 <후한서> 예의지에 의하면 남일 하루 전에 질별을 쫓는 큰 행사가 있었고, 우리나라에서의 궁중 나례의식은 고려 정종 6년 무렵에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처용희(處容戱)'는 신라·고려·조선 시대에 걸쳐 계속 전승되어 온 구나의식무(驅儺儀式舞)이면서 연극으로서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 가면을 쓰고 잡귀를 물리치는 것은 구나 의식의 보편적인 방식의 하나이며, 부락 굿에서도 그러한 예를 흔히 찾을 수 있다. 처용은 신(神)인 동시에 인간이며, 인간적인 감정을 지니고 역신(疫神)과 대결한다는 점에서는 처용희를 '연극'이라고 말한다. 굿에서 연극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것이 처용희의 근본적 성격이겠으나, 여러 가지 다른 요소들이 복합되어 실제 공연하던 처용희를 이루었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신라의 처용희는 용신(龍神), 산신, 불교 의식의 복합이고, <악학궤범>에 전하는 처용희는 처용이 오방(五方) 처용으로 되어 연화무학무(蓮花舞鶴舞)와 복합되어 있으며, 여기(女妓)가 처용가에 있어서 봉황음삼진작(鳳凰吟三眞勺) 등의 다른 노래를 하도록 되어 있다.
고려와 조선의 처용희는 주로 궁중에서 거행되는 세말(歲末)의 나례(儺禮)에서 공연되었으나, 민간의 처용희도 있었다. 의식무(儀式舞)로서의 기능이 유지되기는 했으나, 놀이로서의 성격이 확대되었다. 영조 이후에는 중단되었다가 <악학궤범>에 의거해서, 1920년대에 다시 시작해 오늘날에 전한다.
현대에 와서는 김춘수 시인에 의해 <처용단장(處容斷章)>이라는 작품으로 변모한다. 김춘수는 그의 작품을 통해 다음과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1의 1
바다가 왼종일
새앙쥐 같은 눈을 뜨고 있었다.
이따금
바람은 한려수도에서 불어오고
느릅나무 어린 잎들이
가늘게 몸을 흔들곤 하였다.
날이 저물자
내 근골(筋骨)과 근골 사이
홈을 파고
거머리가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베꼬니아의
붉고 붉은 꽃잎이 지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다시 또 아침이 오고
바다가 또 한 번
새앙쥐 같은 눈을 뜨고 있었다.
뚝, 뚝, 뚝, 천(阡)의 사과알이
하늘로 깊숙히 떨어지고 있었다.
가을이 가고 또 밤이 와서
잠자는 내 어깨 위
그 해의 새눈이 내리고 있었다.
어둠의 한쪽이 조금 열리고
개동백의 붉은 열매가 익고 있었다.
잠을 자면서도 나는
내리는 그
희디흰 눈발을 보고 있었다.

1의 2
삼월(三月)에도 눈이 오고 있었다.
눈은
라일락의 새순을 적시고
피어나는 산다화(山茶花)를 적시고 있었다.
미처 벗지 못한 겨울 털옷 속의
일찍 눈을 뜨는 남(南)쪽 바다,
그 날 밤 잠들기 전에
물개의 수컷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삼월(三月)에 오는 눈은 송이가 크고,
깊은 수렁에서처럼
피어나는 산다화(山茶花)의
보얀 목덜미를 적시고 있었다.

시인은 고향인 '바다'를 떠나 서라벌 땅에서 소외감(또는 고독) 속에서 살아온 처용의 생애가, 동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외톨이로 지낸 시인의 유년기와 상통한다고 생각했기에 '처용'의 이미지를 끌어왔다. 향가 배경설화 속 인물인 '처용'을 제목으로 빌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처용'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는 대신, 암울하면서도 몽환(夢幻)에 가득 찬 시인의 어린 시절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고 알려진 작품이다.






15
 이상곡(履霜曲)-아름다운 구속! 그녀가 선택한 수절(守節)

전경원
2003/10/21 5724
14
 만전춘(滿殿春)-얼음마저 녹여버린 뜨거운 사랑!

전경원
2003/10/21 6164
13
 쌍화점(雙花店)-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다! 만두가게, 절, 우물가, 술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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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01 6553
12
 고려 사회의 분위기, 계층이동, 민중들의 삶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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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30 5459
11
 3. 사랑과 자유를 향한 몸부림 : 고려속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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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18 5589

 처용가(處容歌)-노래로 보듬은 세상, 아름다운 청년 '처용處容'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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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16 6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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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동요(薯童謠)-노래 하나로 꿈을 이룬 남자, '서동薯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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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16 5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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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킨 노래 : 향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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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16 7310
7
 황조가(黃鳥歌)-한 남자와 두 여자가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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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16 6280
6
 구지가(龜旨歌)-겸양의 미덕? 무욕(無慾)의 경지?

전경원
2003/09/16 5879
5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풀리지 않는 죽음, 그 의문의 수수께끼

전경원
2003/09/16 6457
4
 1.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 상고가요

전경원
2003/09/16 5632
3
 고전문학산책(운문부문) 집필항목

전경원
2003/03/10 6081
2
 시(詩)와 노래(歌)는 어떻게 해서 생겨나는 것일까?

전경원
2003/01/06 5255
1
 옛날 시인과 오늘날 자작곡을 부르는 가수들의 공통점

전경원
2003/01/06 413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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