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재 전경원과 함께 고전시가를 통해 여는 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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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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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사학 전공자들과 일부 고전문학 전공자들조차도 탁지부와 탁지원외랑을 도지부로 읽고 있는 현 세태에 대한 비판 고증 자료
지관(地官)·지부(地部)·탁지부(度支部)라고도 한다.

호구(戶口)·공부(貢賦)·전곡(田穀) 등에 관한 사무를 관장했다. 조선 성립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에 6조제가 확립되면서 6조의 하나로 설치되었다. 당시의 규정에 의하면 호조는 토지와 호구 및 재용(財用)을 관장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와 의흥삼군부(義興三軍府)가 실질적인 국정운영을 책임지고 있었으므로 호조는 단순히 실무적인 차원의 일만 담당하고 있었다. 1405년(태종 5) 2월 전곡(錢穀)에 관한 재정을 맡고 있던 사평부(司平府)를 호조에 병합하고 상서사(尙瑞司)에서 관장하던 관리의 인사업무를 이조와 병조에서 나누어 장악하는 등의 조치로 인해 6조의 지위가 높아지고 그 정치적 기능이 강화되었다.

이에 6조에는 각각 3개의 속사(屬司)를 설치하여 그 업무를 분담하게 했으며, 그해 3월에는 속아문(屬衙門)의 제도를 확립하여 몇몇 주요한 관서를 제외한 대부분의 관아를 6조에 분속시키는 조처가 잇달아 취해졌다. 이러한 일련의 제도개편은 〈경국대전〉이 편찬되면서 일단락되었다. 이에 의하면 호조는 정2품 아문으로서 호구·전지(田地)·조세·재물 등을 관장했다.

그의 실제 사무를 전담하는 속사로는 판적사·회계사·경비사(經費司)가 있는데, 판적사는 호구·전지·조세·부역·공물·진상 및 농사와 양잠업의 권장, 풍흉(豊凶)의 조사, 그리고 미곡을 봄에 빌려주고 가을에 거두어들이는 진대(賑貸) 등을 맡았다. 회계사는 중앙과 지방관청에 저축된 금전·식량의 수지계산 및 사무인계 등의 일을 맡았다.

경비사는 서울의 모든 경비 지출과 일본인에게 식량을 지급하는 일 등을 맡았다. 속아문으로는 내자시·내섬시·사도시·사섬시·군자감·제용감·사재감·풍저창·광흥창·전함사(典艦司)·평시서(平市署)·사온서·의영고·장흥고·사포서(司圃署)·양현고·5부 등이 있었다.

관원을 보면 장관인 판서(정2품 1명)를 비롯하여 참판(參判:종2품 1명)·참의(정3품 1명)가 있어 정무를 관장했다. 그 밑에 낭청(郎廳)이라는 실무에 종사하는 정랑(정5품 3명)·좌랑(정6품 3명)이 있어 각 사를 주관했다. 그리고 호조에는 특별히 산학교수(算學敎授:종6품 1명)·별제(別提:종6품 2명)·산사(算士:종7품 1명)·계사(計士:종8품 2명)·산학훈도(算學訓導:정9품 1명)·회사(會士:종9품 2명) 등을 두었다.

그런데 산사 이하는 체아직(遞兒職)으로서 1년에 양도목(兩都目:매년 6, 12월의 2번에 걸쳐 관리의 陞級 또는 轉任 등의 정기 인사이동을 행하는 것)이다. 근무일수 540일이 만료되면 품계를 올려주는데 종6품이 되면 그 직에서 떠나야 했다. 그 직에서 그대로 근무하기를 원하는 자는 그때부터 근무일수 900일이 차면 다시 품계를 올려주는데 정3품에서 그치고 아직 거관(去官:근무하던 관직에서 물러나는 것)하지 않은 자들과 협의해서 재능을 시험하여(和會試才) 체아직을 주었다.

또한 교수·별제·훈도는 각기 그 학을 본업으로 삼는 사람(本業人)을 뽑아서 임명했다. 회계사무를 위해 산원(算員) 30명을 두었다. 이속으로 서리(書吏) 등이 약간명 있었는데 여러 차례의 변동이 있었다. 조선 후기에는 경비사를 별례방(別例房)이라 개칭하고 전례방(前例房)을 두어 종묘와 사직 등의 제물, 왕에게 진상하는 물건, 사신이 가져가는 물건, 예장(禮葬)의 용품 등에 관한 사무를 관리하게 했다. 판별방(版別房)은 때 없이 특별하게 매상(買上)하는 사무를, 별영색(別營色)은 훈국(訓局) 병사의 급료지급에 관한 사무를, 별고색(別庫色)은 공물의 지급에 관한 사무를, 세폐색(歲幣色)은 각 절계(節季)에 사신이 중국 황제에게 헌상하기 위해 가지고 가는 예물에 관한 사무를, 은색(銀色)은 금과 은에 관한 사무를 관장했다.

그리고 겸교수(兼敎授:종6품 1명)를 추가하고, 그 대신 별제 1명, 계사 1명, 회사 1명을 감축했으며 산원의 정원을 30명에서 56명으로 늘렸다. 호조는 1894년(고종 31)에 행해진 갑오개혁으로 혁파되었고, 이로 인해 봉건적 재정관리제도가 근대식 제도로 바뀌게 되었다.

임백우(任伯雨) : 1047~1119. 중국 북송(北宋)의 신하로, 자는 덕옹(德翁)이다. 진사시에 합격한 후 좌정언에 올라 장돈(章惇)과 채변(蔡卞)을 탄핵하였다. 휘종(徽宗) 때 원우(元祐)와 소성(紹聖) 양 당(黨)이 손잡으려는 것에 반대하면서 군자와 소인은 함께 갈 수 없다고 하였다. 간관(諫官)으로 취임한 후 반 년 동안 108건의 상소를 올렸으니, 대신들이 그가 말이 많은 것을 두려워하여 급사중(給事中)으로 자리를 옮겼다. 증포(曾布)를 탄핵하려는데 증포가 미리 알고 탁지원외랑(度支員外郞)으로 옮겼으며, 이어 괵주(虢州)ㆍ통주(通州)ㆍ창화(昌化) 등의 지방관으로 전전하였다. 저서에 《춘추역성신전(春秋繹聖新傳)》이 있으며, 시호는 충민(忠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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