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재 전경원과 함께 고전시가를 통해 여는 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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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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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경강의(詩經講義) 보유(補遺)-주남1
<정현의「시보(詩譜)」에, "주와 소는 기산 남쪽의 지명이다. 문왕이 풍읍을 세울 적에 주·소 라는 땅을 나누어 주공 단과 소공 석의 채읍을 삼아서 조상들의 가르침을 자신이 맡은 나라에서 베풀게 하였다. 성인의 교화를 입은 것을 주남이라 하고, 현인의 교화를 입은 것을 소남이라 하였다."라고 하였다.>
보충해서 말한다. 주공과 소공이 채읍을 받는 것이 꼭 어느 때인지를 알 수 없지만 동서로 나누어 주관한 것은 문왕 때의 일은 아니다. 「악기」에 의거하건대, "무(武)의 첫 악장에서는 북쪽으로 진격하는 모양을 보여주고, 둘째 악장에서는 상나라를 멸망시키는 과정을 표현하고 셋째 악장에서는 남쪽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표현하고 넷째 악장에서는 남방 제후들을 평정하여 주나라의 판도로 귀속시키는 과정을 표현하고 다섯째 악장에서는 주공이 나라의 왼쪽을, 소공이 오른쪽을 나누어 다스리는 것을 표현하였다."라고 하였다. 「공양전」에 "섬땅 동쪽은 주공이 주관했고, 섬땅의 서쪽은 소공이 주관했다."라고 하였으며, 「사기(史記)」<연세가(燕世家)>에 "성왕 때에 소공이 삼공이 되어 섬땅 서쪽을 주관했다"라고 하였다. 여러 글을 참고하건대, 남국을 판도에 넣어 주공과 소공이 나누어 다스린 것은 다 무왕이 상나라를 멸망시킨 뒤의 일이다. 이로써 살펴보건대, 이남(二南)의 시는 모두 문왕 때 지은 것이 아니거늘 위굉의 시서(詩序)는 억지로 모색하여 이따금 문왕에 관한 것으로 설명하였다.
그러나 당시에 제시·노시·한시 삼가의 주석이 없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관저> 이하 8편에 감히 '문왕'이라는 두 글자는 말하지 않았고 오직 <한광(漢廣)>, <여분(汝墳)>, <고양(羔羊)>, <표유매(標有梅)>, <강유사(江有 )>, <야유사균(野有死 )>, <추우(騶虞)>편 등에 때때로 문왕 두 글자를 늘어놓아서 사람의 눈을 어지럽혔다. 그래서 후세의 학자가 드디어 이남의 여러 시를 문왕 때의 남국 제후의 민속가요라고 여겼으니 이에 여러 가지 갈등을 일으켜서 하나도 이치에 마땅한 것이 없었다. 문왕이 비록 무기를 들고 정벌에 힘썼다 하더라도 안으로는 밝히고 밖으로는 분수를 지켜 제후로서의 법도를 다하였다. 그가 한 가장 큰 일은 상의 제후국인 숭나라와 밀나라를 토벌하여 풍읍을 세운 것이니 어찌 당시에 갑자기 강한(江漢) 유역의 나라를  접수하여 방백인 자기에게 진시(陳詩)토록 할 수 있었겠는가? 오직 「사기(史記)」<초세가>에, "육웅의 아들이 문왕을 섬기다가 일찍 죽고, 그 증손 웅역이 성왕 때에 초나라 제후로 봉해져 노공 백금, 제공 여급과 함께 성왕을 섬겼다."라고 하였다. 이로써 말하건대 「한광(漢廣)」·「여분(汝墳)」·「강유사(江有 )」등 편은 육웅의 아들이 문왕을 섬길 때에 지은 것에 속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만약 무왕이 남국을 평정한 후이거나 성왕이 초나라를 봉한 때에 얻은 시로 여긴다면 사리상 더욱 맞다.

또한 주남으로써 왕자에 소속시키고 소남으로써 제후에 소속시킴은 대체 무슨 까닭인가? <토저>에 말하기를, "공후의 방패요, 성이 된다."라고 하였고, <인지지>에 말하기를, "어질고 인정 많은 공자로다"라고 하였다. '공(公)'이란 제후를 뜻한다. 주남이 천자가 다스리던 지역의 풍(諷)임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어찌 장엄하고 화목하지 않으리요? 공주님의 수레로다"라고 하였다. 어떻게 소남을 제후가 다스리던 지역의 풍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만약에 문왕이 추존된 왕이므로 왕이라고 한다면 주남과 소남은 모두 문왕의 나라이거늘 어찌 반드시 주공을 높이고 소공을 낮추었겠는가? 좋도다! 광형이 말하기를 "주남과 소남은 성현의 교화를 깊게 받았다. 그러므로 행동에 독실하고 마음에 방정하였다."하였다. 원래 합하여 논해야지 분리하여 말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정현이 말하기를, "성인의 교화를 받은 것을 주남이라 이르고 현인의 교화를 받은 것을 소남이라 이른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주공을 성인으로 보고 소공을 현인으로 본 것이다.
만약 이런 주장과 같다면 <관저>, <인지지>는 모두 주공의 교화를 받아서 왕자의 국풍이 된 것인데 또 어떻게 <관저>, <인지지>를 문왕 때의 시라고 여기는가? 아들을 아버지로 바꾸어놓고 후대의 성인을 전대의 성인으로 바꾸어 놓았으니, 도리에 어긋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 주장의 스스로 모순됨이 이미 이와 같으니 주남의 여러 시 중에서 제후의 처라 표방한 것은 반드시 제후의 처가 아니며, 소남의 여러 시 중에서 부인이라 표방한 것은 반드시 부인이 아닐 것이다. 이남의 여러 시 중에서 문왕이라 표방한 것은 반드시 문왕은 아닐 것이다. 그 이치에 가까운 것은 일단 힘써 따르고 그 이치에 가깝지 않은 것은 초연한 태도로 객관적으로 보아야 한다. 이것이 시(詩)를 읽는 법이다.

옛날에 천하를 둘로 나누어 동서의 두 방백(方伯)으로 하여금 주관하게 하였으니 이것은 천하를 통일한 사람이 있고서야 그런 법을 둘 수 있다. 문왕 자신이 서백이면서 모름지기 어떻게 두 방백을 둘 수 있었겠는가? 주공·소공이 나누어 다스린 것은 아마도 무왕의 말년에 있었던 것이고 교화가 남국에 행해진 것은 반드시 성왕의 때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무왕이 상나라를 이긴 지 7년만에 죽었으니 비록 치적의 효력이 빠르다고 하더라도 10년이 덜 되고서는 천하를 넉넉히 교화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이남의 여러 시는 반드시 남국 사람이 지은 것이 아니고 반드시 이공(二公)이 순행할 때 얻은 것도 아니다. <토저(兎 )>, <인지지(麟之趾)>는 문왕(文王) 때의 시이며, <감당(甘棠)>은 소백(召伯)이 죽은 후의 시이고, <하피농의(何彼 矣)>는 평왕 이후의 시이다. 시를 잘 해석하는 사람은 시대에 얽매이지 않으며, 특정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그 일의 유형을 구별하되 상하의 맥락이 서로 통하는 오묘함을 정밀하게 살피고, 그 음조를 구별하되 음율의 빠르고 느린 차이를 엄밀히 징험하면, 이남의 시를 편찬한 법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주남과 소남이라 이르는 것은 주나라가 음악을 만들 때 음악을 관장하던 기관의 옛 이름이다. <하피농의> 등의 시편은 태사가 뒤에 보충한 것이다. 어찌 이것뿐이겠는가? 패( )와 용( )은 악부의 옛 이름이나 그 시는 위나라의 일이고, 빈( )도 악부의 옛 이름이나 그 시는 주공 때의 일이니 이같은 것은 모두 태사가 뒤에 보충하였고, 마침내 공자의 손에 의해 정리된 것이다.

이제 「한시외전(韓詩外傳)」을 상고하건대, 주공과 소공이 채읍을 받은 것이 문왕 때의 일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한시외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백(召伯)이 조정에 있을 때 유사(有司)가 소(召) 땅을 경영하여 소백을 거처시키기를 청하였다. 소백이 말하기를, '이 한 몸 때문에 백성을 수고롭게 함은 돌아가신 아버지 문왕의 뜻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소공이 채읍을 받았다는 정확한 기록이다.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라 하였으니 문왕 때의 일이 아니다. 【이청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공영달의 소에 <위태서(僞泰誓)>의 주공과 소공에 대한 글을 인용하여 두 사람이 문왕 때에 채읍을 받은 것을 증명하였다. 그러나 문왕 때에 주공 소공이 제후의 신하인 대부에 불과하였으니 어떻게 공이라 일컬을 수 있었겠는가? <태서>의 글은 추칭(追稱)인 것이다. 공이라는 말이 이미 추칭이라면 주소(周召)라는 두 글자도 또한 추칭이다. 그들이 채읍을 받은 것은 무왕 때가 아니던가?】



42
 시(詩)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인가?

전경원
2007/11/29 3028
41
 『시경강의(詩經講義)』- 관저(關雎)章에 대하여 -

전경원
2003/12/25 7439
40
 시경 작품 편명 (수록순) [1]

전경원
2003/12/25 6325
39
 시경강의(詩經講義) 보유(補遺)-관저(關雎) [1]

전경원
2002/12/16 6260
38
 시경(詩經) 국풍(國風) 주남(周南) <관저(關雎)>편

전경원
2002/12/16 7076
37
 시경강의(詩經講義) 보유(補遺)-육의(六義) [1]

전경원
2002/12/16 5979
36
 시경강의(詩經講義) 보유(補遺)-소서(小序)

전경원
2002/12/13 5655
35
 시경강의(詩經講義) 보유(補遺)-주남2

전경원
2002/12/13 5519

 시경강의(詩經講義) 보유(補遺)-주남1

전경원
2002/12/13 5835
33
 시경강의(詩經講義) 보유(補遺)-국풍4

전경원
2002/12/13 5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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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경강의(詩經講義) 보유(補遺)-국풍3

전경원
2002/12/13 5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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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경강의(詩經講義) 보유(補遺)-국풍2

전경원
2002/12/13 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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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경강의(詩經講義) 보유(補遺)-국풍1

전경원
2002/12/13 5630
29
 시경강의(詩經講義) 보유(補遺)-서문

전경원
2002/12/13 5323
28
 시경강의(詩經講義)-관저13-1

전경원
2002/12/13 5288
27
 시경강의(詩經講義)-관저13 [1]

전경원
2002/12/13 4947
26
  시경강의(詩經講義)-관저12-1 [1]

전경원
2002/12/13 4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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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경강의(詩經講義)-관저12 [1]

전경원
2002/12/13 4770
24
 시경강의(詩經講義)-관저11-1 [3]

전경원
2002/12/13 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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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경강의(詩經講義)-관저11

전경원
2002/12/13 5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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