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재 전경원과 함께 고전시가를 통해 여는 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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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원   
    징검다리, 조약돌 그리고 분홍스웨터 <소나기>
누구나 한번쯤은 어린 시절 풋풋한 첫사랑의 추억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다가섰던 그 시절의 기억이 아련하다. 시골이 있는 친구들은 방학이면 으레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가서 이런 저런 추억을 만들기도 한다.

개울물, 징검다리, 조약돌

분홍빛 스웨터 소매를 걷어 올린 소녀의 목덜미가 마냥 희었다. 소녀는 개울에다 손을 담그고 물장난을 한다. 서울에서는 개울물을 보지 못하기라도 한 듯 벌써 며칠 째 소녀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물장난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개울 기슭에서 하더니 오늘따라 징검다리 한 가운데 앉아서 하고 있다. 소년은 길을 좀 비켜달라는 말을 건네기조차 부끄럽다. 한참을 기다려도 마냥 그러고만 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지친 소년은 그냥 개울둑에 털썩 주저앉는다. 다행히 지나가는 어른이 있어 길을 비켜 준다.
다음날도 소녀는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서 세수를 하고 있다. 한참동안 세수를 하더니 이번에는 물속을 빤히 들여다본다. 갑자기 물을 움켜 낸다. 지나가는 고기 새끼라도 잡으려는 듯. 그러나 번번이 허탕이다. 그대로 재미있는 양 자꾸 물만 움킨다. 그러다가 소녀가 물 속에서 무엇을 하나 집어낸다. 하얀 조약돌이었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팔짝팔짝 징검다리를 뛰어 건너간다. 다 건너가더니 홱 소년을 향해 돌아서며 던진 한마디 말, “이 바보~” 동시에 조약돌이 날아온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단발머리를 나풀거리며 소녀가 막 달린다. 갈밭 사이 길로 들어섰다. 뒤로는 청량한 가을 햇살 아래 빛나는 갈꽃뿐. 소년은 마음  속으로 이제 저쯤 갈밭머리로 소녀가 나타나리라 생각한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소녀는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저쪽 갈밭머리에 갈꽃이 한 옴큼 움직인다. 소녀가 갈꽃을 안고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유난히 맑은 가을 햇살이 소녀의 갈꽃머리에서 반짝거렸다. 소녀 아닌 갈꽃이 들길을 걸어가는 것만 같다. 소년은 갈꽃이 아주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대로 서 있었다. 문득 소녀가 던진 조약돌을 내려다보았다. 벌써 물기가 걷혀 있었다. 소년은 소녀가 던진 조약돌을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보이지 않는 소녀, 허전한 소년의 마음

다음 날부터는 소녀가 보이지 않는다. 소년은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은 소녀가 보이지 않는 날이 계속되자 소년의 가슴 한 구석에는 어딘가 허전함이 자리 잡는 듯 했다. 동시에 주머니 속 조약돌을 만지작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하루는 징검다리 한 가운데 앉아보았다. 물 속에 손을 담근다. 세수를 한다. 물 속을 들여다본다. 검게 그을린 얼굴이 그대로 비친다. 싫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물 속 얼굴을 몇 번이고 움키고 또 움킨다. 그러다 인기척에 깜짝 놀란다. 얼른 일어섰다. 언제 왔는지 소녀가 이쪽으로 건너오고 있다. 소년은 속으로 ‘숨어서 내가 하던 모습을 다 엿보고 있었구나!’ 생각한다. 부끄러웠다. 소년은 달리기 시작한다. 뒤에서 지켜볼 소녀를 생각하다 디딤돌을 헛디딘다. 한쪽 발이 물에 빠졌다. 더 빨리 달렸다. 이쪽 길은 메밀밭이라 몸을 숨길 곳도 없다. 소년은 순간 전에 없이 메밀꽃 냄새가 짜릿하게 코를 찌른다는 생각이 든다. 미간이 아찔했다. 찝찔한 액체가 입술에 흘러들었다. 코피였다. 소년은 한 손으로 코피를 훔쳐내면서 그냥 달렸다. 소녀에게서 멀어질수록 어디선가 ‘바보!’, ‘바보!’ 하는 소리가 자꾸만 따라오는 듯 했다.

소년과 소녀, 첫 대화 그리고 산 너머 함께 걷는 길

토요일이다. 며칠째 보이지 않던 소녀가 건너편 물가에 앉아 또 물장난을 치고 있다. 모르는 척 하며 징검다리를 건넌다. 얼마 전 소녀 앞에서 발을 헛디딘 게 마음에 걸린다. 여태 큰길 가듯 건넌 징검다리가 오늘은 유난히 조심스럽다.
“얘!” 소년은 못들은 체한다. 그리고 둑 위로 올라선다. “얘! 이게 무슨 조개야?” 소년은 자기도 모르게 돌아선다. 순간 소녀의 맑고 검은 눈과 마주쳤다. 더 이상 바라볼 수 없다. 얼른 소녀의 손바닥으로 눈을 떨군다.
“비단조개”
“이름도 참 곱다.”
나란히 걷는다. 둘은 아무 말도 못한다. 갈림길이다. 여기서 소녀는 아래쪽 소년은 위쪽으로 가야 한다. 소녀가 걸음을 멈추고 말한다.
“너, 저 산 너머에 가본 일 있니?” 하고 벌판 끝을 가리킨다.
“없다.”
“우리 가보지 않을래? 시골에 오니 혼자 심심해 못 견디겠다.”
“저래 뵈도 멀다.”
“멀면 얼마나 멀기에? 서울 살 땐 꽤 먼 곳까지 소풍도 간다.”
소녀 눈이 또 ‘바보! 바보!’ 할 것만 같다. 둘이 논 사이 길로 들어선다.

허수아비, 원두막, 산, 꽃송이, 송아지

소년과 소녀는 원두막에서 무를 캐서 먹는다. 소녀는 익숙하지 않은 맛이었는지 세 입도 못 먹고 “아, 맵고 지려”하며 집어던진다. 소녀가 산을 향해 달린다. 소년은 한 아름 꽃을 꺾어 소녀에게 건네며 하나도 버리지 말라 한다. 소녀가 꽃송이를 꺾으려고 조용히 일어나 비탈진 곳으로 간다. 안간힘을 쓰다 그만 미끄러진다. 소년이 놀라 달려갔다. 소년은 자기가 꺾어다줄 걸 하며 속으로 잘못했다고 뉘우친다. 소녀의 오른쪽 무릎에 핏방울이 맺혔다. 소년은 생채기에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가져다대고 빨기 시작한다. 그리고 송진을 가져다 생채기에 발라준다.
저 앞에 누렁 송아지 한 마리가 있다. 아직 코뚜레도 꿰지 않았다. 소년이 훌쩍 올라탄다. 송아지가 놀라 껑충거리며 돌아간다. 어지럽다. 소녀의 흰 얼굴이, 분홍 스웨터가, 남색 스커트가, 안고 있는 꽃과 함께 범벅이 된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커다란 꽃묶음 같다. 어지럽지만 내리지 않으리라. 오히려 자랑스럽다.
어린 송아지의 주인인 농부 아저씨가 내려온다. 송아지 고삐를 풀면서 “어서들 집으로 가거라. 소나기가 올라.”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먹장구름 한 장이 머리 위에 있다. 바람이 우수수 소리를 내며 지나가더니 삽시간에 주위가 보랏빛으로 변한다.

소나기와 분홍 스웨터에 물든 흙탕물

산을 내려오는데 떡갈나무 잎에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굵은 빗방울이다. 목덜미가 선뜻선뜻했다. 순식간에 눈앞을 가로막는 빗줄기. 빗속에 원두막이 보인다. 소녀의 입술이 파랗게 질린다. 어깨를 자꾸만 떨고 있다. 소년은 무명 겹저고리를 벗어 소녀 어깨를 감싸준다. 소녀는 비에 젖은 눈을 들어 한 번 쳐다보았을 뿐, 소년이 하는 대로 잠자코 있다. 원두막이 새기 시작한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소년은 수숫단 세워 놓은 곳으로 뛰어간다.
세워 놓은 수숫단 속을 비집어 보더니 옆의 수숫단을 날라다 덧세운다. 다시 속을 비집어 본다. 그리고 손짓으로 소녀를 부른다. 수숫단 속은 비가 새지 않는다. 그저 어둡고 좁은 게 안쓰럽다. 수숫단이 좁아 소녀만 간신히 들어갈 수 있다. 소년은 앞에 나와 앉아서 그냥 비를 맞는다. 소년의 어깨에서 김이 오른다. 소녀가 속삭이듯 들어와 앉으라고 한다. 소년은 괜찮다고 한다. 소녀가 다시 들어와 앉으라고 하자 할 수 없이 뒷걸음질친다. 그 바람에 소녀가 안고 있는 꽃묶음이 망그러진다. 그러나 소녀는 상관하지 않는다.
소란하던 수수잎 소리가 뚝 그쳤다. 비가 그쳤다. 도랑 있는 곳에 와보니 물이 엄청나게 불어 있다. 물빛도 제법 붉은 흙탕물이다. 뛰어서는 건널 수 없었다. 소년이 등을 돌려댔다. 소녀는 업히었다. 바지를 걷어 올린 소년의 잠방이까지 물이 올라왔다. 순간 소녀는 ‘어머나!’ 소리치며 소년의 목을 끌어안았다.

아름다운 추억을 입고서 떠난 소녀의 뒤안길

한동안 보이지 않던 소녀를 다시 만났다. 소녀는 그동안 아팠다고 했다. 어쩐지 얼굴이 많이 야위어 있었다. 소녀가 분홍 스웨터 앞자락을 내려다본다. 검붉은 진흙물 같은 게 들어있었다. 소녀는 미소를 지으며 “그 날, 도랑을 건너면서 내가 업힌 일이 있지? 그 때 네 등에서 옮은 물이다.” 소년은 얼굴이 확 달아오름을 느낀다.
소녀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소년은 혼자 속으로 소녀가 이사를 간다는 말을 수없이 되뇌어 보았다.
“개울물은 날로 여물어 갔다.”는 작가의 말처럼 소년과 소녀의 순수한 사랑도 함께 했던 시간과 함께 여물어 가고 있었다. 소년은 소녀가 아사한다고 말한 내일이 다가오자 가볼 생각을 한다. 그러다 까무룩 잠이 든다. 마을에 가셨던 아버지가 언제 돌아오셨는지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신다. 소년은 잠결에 아버지 말씀을 듣는다.
“글쎄 말이지. 이번 앤 꽤 여러 날 앓는 걸 약도 변변히 못써 봤다더군. 지금 같아선 윤 초시 네도 대가 끊긴 셈이지…. 그런데 참, 이번 계집앤 어린 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아.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아?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고….”

하늘이 갈라놓은 운명

소년은 무척 수줍음 많고 내성적 인물이다. 반면 소녀는 깜찍하고 외향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들이 개울물과 징검다리를 배경으로 만나고 헤어진다. 그런 만남이 반복되며 서로를 인식해 간다. 그리고 어느 날 산 너머로 설정된 둘만의 공간으로 여행을 떠나고 그곳에서 소나기를 만난다. 보랏빛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가녀린 운명의 소녀. 소년과 소녀는 여물어 가는 개울물처럼 사랑도 익어갔다. 하늘이 시기한 탓일까? 이들의 순수한 사랑을 지켜주지 못했으니 말이다. 소년이 생애 마지막으로 남긴 선물을 고스란히 입고 소녀는 제 갈 길을 떠난다. 한마디 말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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