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재 전경원과 함께 고전시가를 통해 여는 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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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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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기자료 2. 벗은 누구인가?
1-1-2.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첫 문장의 두 번째 구절은 벗이 먼 곳에 찾아오는 정겨운 이야기입니다. 번역하자면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정도가 되겠죠. 벗이라! 참 좋은 말입니다. 한문에서는 朋이라고 하면 원래 짝을 의미합니다. 짝은 더 정겨운가요?
공자를 즐겁게 한 이 벗들은 누구였을까요? 사마천의 사기에는 공자가 만년에 노나라로 돌아온 뒤에 제자들이 더 많아졌고 급기야 遠方(먼 곳)에서 찾아오기에 이르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 공자는 제자들을 벗으로 여겼던 듯합니다. 결국 스승과 제자 사이도 벗이라는 이야기죠. 기쁨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벗이니까요. 더욱이 <맹자>를 보면 결정적인 근거가 나옵니다. 제자를 받아들이는 것을 取友(벗을 택한다)라고 표현하고 있으니까요.
좋은 관계는 흔히 관포지교(관중과 포숙아), 문경지교(인상여와 염파), 죽마고우(환온과 은호), 수어지교(유비와 제갈량) 등을 들죠. 특히 죽마고우를 모를 분은 없겠죠? 하지만 이 중에서 가장 수준 낮은 사귐이 죽마고우입니다. 유래를 알고 나면 죽마고우 같은 친구는 없느니만 못하다는걸 알게 됩니다.
하지만 논어의 벗은 이런 것들과는 부류가 다릅니다. 앞에서 예로 든 사귐은 서로가 바라는 것이 일치되기만 하면 누구나 맺을 수 있는 것이죠. 세상에 널린게 의형제 아닙니까? 그러나 논어의 벗은 이런 일시적인 가치를 초월해서 빛나는 '영원한 벗'입니다. 당연히 학연, 지연 가리지 않죠. 누구든 공자의 벗이 될 수 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공자는 이 세상을 통털어 친구가 가장 많은 사람이 아닐까요?

어디에서 오는가?

먼 곳에서 찾아 왔다는 표현에서 공간의 제약을 벗어났음을 알기는 쉽습니다.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요. 그런데 한문에서 遠이라는 글자는 공간적 거리의 멀고 가까움을 뜻하기도 하지만 시간의 길이가 길다는 것을 표시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여기서의 遠方來란 시공을 초월해서 서로 사귀는 벗을 두고 한 말입니다. 공자가 주공을 사귀고 맹자가 공자를 사귀듯이 말이죠.
<맹자>에는 尙友(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서 옛사람을 사귄다는 뜻)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공자를 사숙했다고 했습니다. 이런 사귐은 맹자의 마지막 문장에 이르러 절정에 달합니다. 거기서 맹자는 자신의 시대에는 공자를 잇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후세에도 공자의 도를 이어갈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치 자신의 이념을 포기한 듯한 표현이죠. 하지만 주희는 이 부분을 두고 맹자가 스스로 도를 자임하고 나섰을 뿐만 아니라, 천 년 뒤에 반드시 자신과 만날 사람이 있을 것(必將有神會而心得之者)임을 확신했다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맹자는 천년을 기약하고 벗을 기다렸을 터입니다. 참 멋있지요. 천년의 세월을 넘나들며 서로 사귀다니. 그 즐거움을 알 만하지 않습니까?

즐거움은 기쁨의 두배

잠시 周易의 태괘(兌卦)를 보죠. 태괘는 위 아래가 모두 연못입니다. 연못이 나란히 붙어 있다고 해서 麗澤(리택으로 읽습니다. 연못이 붙어 있다는 뜻입니다.)이라고 하죠. 그리고 태괘의 兌는 說과 같이 기쁘다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생김새도 비슷하죠? 결국 기쁨이 두 개 겹쳐져 있는 것이죠. 어떤 기쁨인지는 不亦說乎를 해설할 때 말씀드렸죠. 그런데 그런 기쁨이 나란히 붙어 있는 것이 리택입니다. 기쁨을 함께하는 사람이 있으니 즐겁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兌卦에도 朋友 이야기가 나옵니다. 군자는 태괘를 보고 붕우들과 강론하고 익힌다고 했습니다.(君子以朋友講習) 틀림없이 논어의 이 구절을 두고 한 말입니다. 그리고 기쁨이 두배이기 때문에 즐거움이라고 표현한 것이죠. 물론 산술적인 의미에서의 두 배라는 뜻으로 이해하실 분은 아무도 없겠죠?
일본학자 가이즈카 시게키(貝塚茂樹)는 遠方來의 方을 比로 보고 벗들이 나란히(比)온다고 보았습니다. 먼 곳에서 벗들이 와글와글 씨끌씨끌 떼지어 몰려오기 때문에 즐겁다는 거죠. 오역이긴 하지만 창조적이죠. 즐거움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한 것 같지 않습니까? 그의 말처럼 아니 논어의 구절처럼 뜻이 같은 벗들이 시공을 초월해서 떼지어 온다면 얼마나 즐겁겠습니까.
붕우와 함께 하는 즐거움은 혼자서만 누리는 說보다 한층 밀도가 높습니다. 주희 역시 樂을 급인이락(及人而樂)으로 풀었습니다. 역시 뛰어난 해석가죠. 及人而樂이라. 여기서 미쳐가는 주체는 내 마음 속에 있는 기쁨입니다. 나에게 있는 기쁨이 다른 사람에게 미쳐가면 즐겁다는 뜻이죠. 당연히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상대를 가정하고 하는 말입니다. 결국 及人而樂이란 다른 사람과 함께 즐긴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요즘사람들처럼 은밀한 공간에서 자기만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즐거움입니다. 논어의 즐거움은 사적 소유를 통해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함께하는 즐거움입니다.
퇴계 선생은 만년에 후진을 양성하면서 그런 즐거움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古人도 날 몯 보고 나도 고인 몯 뵈
고인을 몯 봐도 녀던 길 앞에 잇네 
녀던 길 앞에 잇거든 아니 녀고 엇뎔고

어떻습니까? 공자의 학당에서 함께 즐겨보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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