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재 전경원과 함께 고전시가를 통해 여는 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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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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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견 作, 몽유도원도비기(夢遊桃源圖秘記)-4
4. 안평대군, 꿈(夢)을 그리게 하다.

“여보게, 현동자. 오늘은 자네에게 청(請)을 하나함세.”
“대군께서 어찌 소인에게 청(請)이라는 당치 않은 말씀을 입에 올리십니까?”
“천년이 지나고, 아니 만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그림을 청하려는 것일세.”

순간, 나도 모르게 표정이 일그러졌다. 짧은 순간 긴 침묵이 흘렀다. 짧은 시간동안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내 모습을 대군께서도 똑똑히 보았다. 대군의 눈빛에서 상서로운 기운이 감돌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선명하게 남아 있던 꿈의 영상이 사라지기 전에 붙들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요임금과 순임금, 우임금과 탕임금, 문왕과 무왕, 주공이 열었던 태평성대를 다시 본 듯했다. 분명 대군께서는 보았다. 더욱 두렵고 무서웠다. 보아서는 아니 될 사람이 보고야 말았다.

요와 순의 태평성대가 사라진 뒤, 사람들은 끊임없이 태평성대를 갈망했다. 그러나 태평성대는 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다시 ‘무릉도원(武陵桃源)’을 꿈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릉도원 역시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세상 어디에도 무릉도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자 인간의 욕망은 자연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자연은 속세와의 단절을 요구했다. 세상과 단절을 감내할 수 없었던 용기 없는 이들은 자연과 문명을 조화시키려 애를 썼다.

병풍(屛風)을 두르고, 산수화를 걸어두며 정원을 가꾸고, 연못을 만들었다. 또 화초를 곁에 두려 했다. 허나 대군께서는 몸소 무릉도원에 이르셨으니 비록 꿈이었을망정 흔한 일은 아니었다. 꿈을 대군은 이렇게 기록했다.

정묘(1447년) 4월 20일 밤이었다. 내가 막 베개를 베고 누웠다. 정신이 문득 아득해지며 잠이 깊이 들어 꿈을 꾸게 되었다. 홀연 인수(仁叟) 박팽년(朴彭年)과 함께 어느 산 아래에 다다랐다. 층층 봉우리가 깊고 험준하고 깊은 골짝이 그윽했다.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나무 수십 그루가 서 있었다. 숲 가장 자리에 오솔길이 두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어디로 가야할지 갈 곳을 몰라 우두커니 서 있다가 산에 사는 사람 복장을 하고 있는 한 사람을 만났다. 그가 내게 공손히 인사를 하더니 “이 길을 따라 북쪽 골짜기로 들어가면 무릉도원(武陵桃源)입니다.”하는 것이었다. 내가 인수와 함께 말을 채찍질하여 찾아가보니 절벽은 깎아지른 듯하고 숲은 울창했다. 시냇물이 굽이져 돌아가고, 길은 꼬불꼬불하였으니, 대략 백번 정도 꺾여진 듯하여 금방이라도 길을 잃어버릴 듯했다. 그 골짝으로 들어서자 골 안은 넓게 트여서 이삼 리는 될 듯했다. 사방에 산들이 벽처럼 둘렀고, 구름과 안개가 가렸다가 피어올랐다. 멀고 가까운 곳이 모두 복사꽃 수풀로 햇살에 비치어 노을인 듯 자욱했다. 또한 대나무 숲 속에 띠 집이 있었는데, 사립문은 반 정도 닫혀 있고, 흙섬돌은 무너진 지 오래되었으며 닭이나 개나 소나 말 따위는 없었다. 앞 냇가에 작은 배가 있었지만 물결을 따라 흔들거릴 뿐이어서 그 정경의 쓸쓸함이 마치 신선이 사는 곳과 같았다. 한참을 머뭇거리며 바라보다가 인수에게 “‘바위에 나무를 얽고 구멍을 뚫어 집을 지었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을 두고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 진정 무릉도원(武陵桃源)의 골짝이로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때 옆에 누군가 있는 듯하여 뒤를 돌아보니 정보(貞父) 최항(崔恒)과 범옹(泛翁) 신숙주(申叔舟)였다. 평소 함께 시를 짓던 사람들이었다. 모두가 각자 신발을 다시 가다듬고 언덕을 오르거니 내려가거니 하며 두루 살펴보았다. 즐거워하던 중에 홀연히 꿈에서 깨고 말았다. 오호라! 사방으로 통하는 큰 도시는 참으로 번화하니 이름난 고관대작이 노니는 곳이요, 골짝이 다하고 절벽이 깎아지른 곳은 바로 그윽하게 숨어 사는 은자(隱者)들의 거처이다. 그런 탓에 몸에 화려한 관복을 걸친 자들의 자취가 깊은 산림에까지 미치지 않는다. 돌과 샘물 같은 자연에 마음을 둔 사람들은 꿈속에서도 궁궐의 고대광실을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대개 성품이 고요한 사람과 번잡함을 좋아하는 사람이 서로 가는 길이 다른 까닭에 자연스러운 이치로 인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낮에 했던 일이 밤에 꿈이 되고, 마음속에 품고 있는 간절한 소망이 꿈으로 실현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궁중에 몸을 담고 있어서 밤낮으로 하는 일이 많다. 그런데 어째서 그 꿈이 산림에까지 이르렀단 말인가? 그리고 갔더라도 어떻게 무릉도원에까지 다다른 것인가? 또 나는 서로 친하게 지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하필이면 무릉도원에서 놀며 이 몇몇 사람들과만 함께 하게 된 것인가? 그리고 왜 인수와는 처음부터 함께 했건만, 범옹과 정보는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 나를 소스라칠 정도로 놀라게 했던가?
그것은 아마도 내 성격이 고요하고 외진 곳을 좋아하여 평소에 자연을 그리는 마음이 있고, 그 몇 사람과 특히 두텁게 사귀었던 까닭에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가탁 안견으로 하여금 명하여 내 꿈을 그림으로 그리게 하였다. 다만 옛날부터 말해오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는 곳은 내가 알지 못한다. 그러니 이 그림과 같은 것일지는 모르겠다. 훗날 이 무릉도원도를 보는 사람들이 옛날의 무릉도원도를 구해서 내 꿈과 비교해 본다면 틀림없이 무슨 말이 있을 것이다. 꿈을 꾼 지 사흘째 되던 날, 안견이 그림을 완성했으므로 비해당(匪懈堂)의 매죽헌(梅竹軒)에서 쓴다.

대군께서 그림에 직접 기록한 글에서 나는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꿈속 내용이 어쩌면 저리도 예리한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군과 꿈속에서 처음부터 몽유도원에서 놀았던 인수 박팽년은 병자년(1456년)에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 그러나 뒤에 홀연히 나타나 대군과 인수 박팽년을 놀라게 만들었던 범옹 신숙주와 정보 최항은 훗날 대군에게 사약을 내렸던 수양대군에 빌붙어 그들과 뜻을 함께하며 부귀영화를 누렸다. 참으로 기이한 꿈이라고 아니할 수 없었다. 마치 꿈속의 일이 훗날 현실을 암시하고 있음이 아니었던가!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선택이 강요되었다. 그들은 삶의 길을 선택했고, 인수는 죽음의 길을 따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몽유도원도라는 그림이 존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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