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재 전경원과 함께 고전시가를 통해 여는 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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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전경원 
Subject >>  
 옛사랑을 찾은 기생
과거에 급제하고 아직 벼슬에 나서지 못한 장(張)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경성에서 떵떵거리고 사는 부잣집 아들이었다. 금군청(禁軍廳 : 궁중을 지키고 임금의 경호를 맡는 관청)에 소속되어 가후친군(駕後親軍 : 임금의 수레 뒤에 따르는 경호원)이 되었는데 나이 젊은 미남이었다.
그는 재력(財力)을 믿고 날마다 산뜻한 옷에 고운 신을 신고 기생방에서 방탕하게 놀며 돈쓰기를 물쓰듯이 하였다. 장성(長城)에서 올라와 구사(丘史 : 官婢)가 된 기생과는 더욱 정이 깊었다. 그 기생의 의복이며 장식품이며 비단이며 주옥(珠玉)의 등속과 살림에 드는 일체의 비용을 대주어 한 번에 천금씩을 쏟았으나 조금도 아까워하지 아니하였다.
이처럼 돈을 헤프게 쓰던 그는 결국 가산이 고갈되어 계속 기생에게 선심을 제공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기생을 관리하는 기관(妓館) 주인은 점점 푸대접을 하였다. 자주 기방(妓房)에 대고 기생을 꾸짖어 장씨로 하여금 듣게 하는가 하면, 혹은 그 기생을 아예 피하여 숨게 하고 나타나지 못하도록 하였다. 가산을 탕진하여 일신이 알거지가 되고서야 장씨도 부끄러워 드디어 기생과 인연을 끊었다.
임금의 수레를 따르는 가후친군이란 것은 반드시 비단으로 만든 군복을 입고 준마(駿馬)에 옥으로 장식한 안장을 얹고서 타야 하므로 장씨는 가난해서 시위병(侍衛兵 : 경호원)에 적합하지 못하다하여 이내 쫓겨나고 말았다. 게다가 그 처는 또 춥고 배고픔에 시달리다가 병으로 죽었다. 더욱 의지할 곳이 없게 된 장씨는 날마다 친척집을 돌며 먹다 남은 밥으로 입에 풀칠을 하고 밤에는 남의 집 헛간에서 잤다. 계속되는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린 장씨는 옛날의 아름답던 모습은 모두 사라지고 마치 따오기 얼굴처럼 누르스름한 얼굴빛에 너덜너덜한 누더기옷을 입은 것이 풀죽은 한 거렁뱅이였다.
그 뒤 기관 주인이 죽자 그 기생은 자유의 몸이 되었고 얼굴과 재주가 청루(靑樓 : 기생집)에서 으뜸이었으므로 문전에는 손님들이 들끓어 항상 시장처럼 시끄러웠다.
하루는 기생집에 마침 손님이 없었으므로 그 기생은 혼자 주렴발 밑에 앉아서 무엇을 생각하다가 한참 후에 심부름하는 여자 아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장선달님이 어찌 오래도록 오지 않을까? 손꼽아보니 이제 이미 몇 해가 되었구나. 너는 혹시 길에서 장선달님을 만나 보았느냐?”
“아, 장선달 말씀이지요? 때로 종각(鐘閣) 뒤 오솔길에서 만납니다. 의복은 남루하고 얼굴은 더러운데 머리를 떨군 채 몸을 굽히고 가다가 저를 보면 얼른 얼굴을 가리고 지나치곤 합니다.”
“아, 가련한지고! 나 때문이야. 이 다음에도 너 혹시 장선달님을 보거든 나를 위하여 청해 오너라. 절대 잊지 말아라.”
얼마 뒤에 그 여자 아이가 집에 돌아와서 말했다.
“장선달에게 청하였으나 오기를 싫어합디다.”
“아마 네가 말을 잘못한 모양이구나. 만일 내 뜻을 잘 전달하였다면 오찌 오시기를 싫어했겠느냐?”
그 기생은 곧 방으로 들어가서 종이를 잘라 편지를 썼다. 세자(細字)로 수십 줄을 써가지고 거북이 모양으로 접어서 그 아이에게 부치며 말했다.
“너는 이 편지를 몸에 지니고 다니다가 장선달님을 만나거든 나를 위하여 꼭 전해다오.”
그 기생은 다시 신신당부하였다.
“절대 유실하지 말고…….”
며칠 후 밤에 손님 10여 명이 들이닥쳤는데 모두 금군청의 포교(捕校)들이었다. 그 기생은 등불을 켜고 술상을 차려서 노래를 불러 깍듯이 모셨다.
이때는 바로 한 겨울이라 북풍이 세차고 함박눈이 내렸다. 조금후에 심부름하는 여자 아이가 와서 문에 기대서서 말했다.
“장선달이 문밖에  와 있는데 ‘여러 사람 보기가 부끄럽다.’하면서 들어오기를 싫어합니다.”
그 기생은 곧 몸을 일으켜 걸음을 재촉해 나갔다. 장씨는 문 곁에 몸을 숨기고 있었는데 가랑잎처럼 얇은 옷에 두 팔뚝을 바투 끼고 초라하게 서 있었다. 그 기생은 곧장 앞으로 가서 장씨의 손을 끌고 들어와 아랫목에 앉힌 다음 목을 껴안고 울면서 말했다.
“가련하오. 옛날 천금 같던 미소년이 어찌 갑자기 이 모양이 되었단 말이오?”
그 기생은 붉은 칠에 금으로 장식한 궤를 열어 금구며 백양구며 은서피며 그리고 큰 휘황을 꺼내놓고 손으로 헤치면서 말했다.
“이것은 모두 당신이 준 것입니다. 제가 잘 간수하고 당신을 기다린 지 오래였는데 당신은 끝내 오지 아니하였으니,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남녀의 애정은 부귀하고 빈천한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 당신은 왜 저에게 불만을 갖고 이처럼 인연을 끊었습니까?”
그녀는 이내 장씨의 손을 잡고 한참 동안 목메어 울다가 말했다.
“아! 옛날 당신은 고대광실이 구름 위로 치솟고 돈이 산처럼 쌓여서 비단옷을 실컷 입고 고량진미를 마냥 먹었으니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보고 부러워하였는데, 다만 저와 서로 좋아하면서부터 그 많던 재산을 죄다 없앴을 뿐입니다. 부인은 죽고 가정은 파탄되어 신세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모두가 제 탓입니다. 제가 어찌 차마 당신을 배반하겠습니까? 지금 나의 몸에 입은 비단옷이나 조석으로 사용하는 물자는 모두 당신의 재산입니다. 저는 의당 이것들을 다 가지고 당신을 받들고 비록 머리털을 자르고 살을 도려내는 일이라 하더라도 거절하지 않을 것이니, 당신은 다시는 저를 버리지 마소서.”
그녀는 장씨를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좌중의 여러 사람들은 모두 감탄을 하였다. 그 중에서 한 사람이 말했다.
“내가 한 마디 하겠소. 우리는 지금부터 다시는 이 집에 오지 말고 이 낭자로 하여금 장군(張君)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했으면 좋겠소. 여러분 생각은 어떻소?”
“그 말이 매우 옳소.”
여러 사람들은 모두 쾌히 응낙하고 드디어 서로 마주하여 맹세를 하고는 부산하게 흩어져 갔다.
그 기생은 이때부터 다시는 손님을 받지 않고 장씨와 함께 살았다. 저축한 재산이 매우 많았고, 또한 가업(家業)을 잘 경영하였으므로 장씨는 다시 집을 윤택하게 할 수 있었고, 그 기생의 의리에 감동하여 다시 장가들지 않고 그 기생과 해로했다 한다.    《잡기고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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