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재 전경원과 함께 고전시가를 통해 여는 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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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전경원 
Subject >>  
 경주 궤 제독
전에 한 문관이 경주에 있는 각 향교의 학사(學事)를 감독하는 제독(提督)이 되어 매번 경주부에 갈 때마다 기생을 보면 꼭 담뱃대로 머리를 두드리면서 '사기(邪氣)'니 '요기(妖氣)'니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사람이 어찌 이런 요물을 가까이할 수 있겠는가.”
여러 기생들이 모두 분노하는 것은 물론, 부윤(府尹)까지도 그를 미워하였다. 그래서 부윤은 여러 기녀들에게 영을 내렸다.
“기묘한 꾀를 내서 제독을 속이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후한 통인(通引)인 소동(小童)과 거처하고 있었다.”
그래서 기생은 촌부(村婦)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향교에 가 대문에 기대서서 소동을 부르며, 반면만 나타내기도 하고 혹은 전신을 드러내어 보이기도 하다가, 소동이 나가서 만나주면 곧 돌아가곤 하였는데, 하루에 한 번 오기도 하고 혹은 두 번 오기도 하였다. 이렇게 한 지 며칠 만에 제독이 소동에게 물었다.
“저 여자는 어떤 사람이길래 매일 와서 너를 부르는고?”
“그 여자는 바로 소인의 누이입니다. 남편이 행상 나가고 1년 동안 돌아오지 않아 집에 사람이 없으므로 매일 소인을 불러 집을 보아달라고 청하는 것입니다.”
하루는 저녁 무렵에 소동은 저녁밥을 먹으러 가서 없고, 제독만이 혼자 재실에 있었다. 기생은 또 가서 대문에 기대서서 소동을 불렀다. 제독이 드디어 그녀를 불러들였다. 그녀는 거짓으로 부끄러운 체하면서 문칫문칫 걸어 들어와 제독의 앞에 섰다. 제독이 말했다.
“소동이 마침 없구나. 내가 담배를 피우고 싶은데 너는 불 좀 가져올 수 있겠느냐?”
그녀는 불을 가지고 왔다. 그러자 제독이 말했다.
“너도 자리로 올라와서 한 대 피워 보겠느냐?”
“보는 사람도 없는데 뭘 주저하느냐?”
그녀는 결국 못 이긴 체하고 자리에 올라가서 억지로 한 대를 피웠다.
제독은 드디어 사랑을 고백하였다.
“내가 미인을 많이 보아왔지만 너같은 미인은 일찍이 보지 못하였다. 내 너를 한 번 본 뒤로는 침식을 다 잊었으니, 너는 밤을 이용하여 몰래 올 수 없겠느냐? 나 혼자 빈 재실에서 자는데 누가 알겠느냐?”
그녀는 거짓으로 흠칫 놀라는 체하며 말했다.
“사또는 귀인이시고 쇤네는 상것인 데다 용모도 추한데, 사또께서 어찌 천한 계집을 대하여 그런 생각을 하시나이까? 혹시 희롱하시는 게 아닌가요?”
“나는 진심으로 너에게 고백하는데, 어찌 희롱일 수 있겠느냐?”
제독이 이내 맹세하는 말을 하자 그녀는 허락하였다.
“사또의 뜻이 정 그러시다면 저도 실로 감격한 터에 어찌 감히 명을 따르지 않겠사옵니까?”
제독은 기뻐하며 말했다.
“내가 너를 만난 것은 기이한 인연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한 가지 떠름한 일이 있네요. 제가 일찍이 듣기로는 '향교 재실은 지극히 경건한 곳이라 여자를 끼고 자는 것은 예법에서 금하는 바'라 하는데 이 말이 사실이옵니까?”
제독은 그녀의 볼기짝을 두드리면서 놀라워했다.
“너는 촌여자지만 어찌 이리도 영리하냐?  네 말이 사실 옳다. 그러면 어떻게 꾀를 써야 할지?”
“사또께서 과연 저에게 마음을 두신다면 제가 한 꾀를 내겠나이다. 제 집이 향교의 문 밖 몇 걸음 거리에 있는데 저만 있고 다른 사람은 없으니, 사또께서 심야에 몰래 찾아오시면 조용한 만남을 가질 수 있겠사옵니다. 제가 내일 저녁에 동생인 소동을 시켜 전립 하나를 사또에게 보내드릴 것이니, 그것을 쓰고 오시면 남들이 전혀 모를 것입니다.”
“네가 나를 위해 낸 꾀가 어찌 그리도 기특하냐? 내 장차 내 말을 따를 것이니 언약을 저버리지 말라.”
제독은 크게 기뻐하며 두세 번 당부해서 보냈다.
그녀는 드디어 향교문밖에 초가 한 채를 비워서 거처하고 그날 저녁에 소동을 시켜 전립 하나를 제독에게 보냈다.
제독이 약속대로 밤에 갔더니, 그녀는 제독을 반갑게 맞아들여 촛불을 밝히고 술과 안주를 내왔다. 제독과 그녀는 서로 술잔을 주고 받으며 허물없이 농담을 하였다.
이윽고 제독이 먼저 옷을 벗고 이불 속에 들어가 누워서 그녀더러 옷을 벗게 하였지만, 그녀는 일부러 시간을 끌며 아직 눕지 않았을 때였다. 사립문 밖에서 사납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귀를 기울여 듣고는 크게 놀라며 소리쳤다.
“저 소리는 바로 소인의 전남편인 관노(官奴) 철호(鐵虎)의 목소리입니다. 소인이 불행하여 일찍이 저놈을 남편으로 삼았는데 천지에 둘도 없는 악인이었습니다. 살인(殺人)과 방화(放火)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릅니다. 3년 전에 간신히  떼어버리고 다른 남편을 얻었지요. 저놈과는 서로 관계를 끊은 사이인데 지금 도대체 또 무엇 때문에 왔는지? 소리를 들으니, 술이 많이 취하였습니다. 사또께서 반드시 큰 변을 당하실 터인데 어쩌면 좋습니까?”
그녀는 곧 나가서 대꾸하며 말했다.
“너는 어떤 사람인데 심야에 떠부르느냐?”
그러자 그자는 사립문 밖에서 큰 소리로 화를 내며 소리쳤다.
“네년은 어찌 내 목소리르 모르느냐? 왜 문을 열지 않고 있느냐?”
“너는 철호가 아니냐? 나와 너는 서로 관계를 끊은 지 이미 오래거늘 지금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느냐?”
그자는 더욱 거센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나를 버리고 다른 남편을 얻었기 때문에 내 마음이 항상 아프다. 지금 너와 할 말이 있어서 왔노라.”
그는 이내 사립문을 밀고 들어왔다. 그러자 그녀는 바삐 달려 들어와서 말했다.
“사또는 할 수 없이 피하셔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몇 칸에 불과한 초가집이라 숨을 만한 곳이 없습니다. 방안에 빈 궤가 있으니 사또는 잠깐 이 속에 들어가서 피신하십시오.”
그녀가 손수 궤 뚜껑을 열고 재촉하였으므로 제독은 알몸으로 궤속에 들어갔다. 그녀는 곧 뚜껑을 닫고 자물쇠를 채웠다.
그자는 취해가지고 들어와 그녀와 한바탕 크게 싸움을 벌였다.
“3년 전에 이미 버려놓고 무슨 일로 다시 찾아와서 시비를 하느냐?”
“네가 이미 나를 등지고 다른 남편을 얻었으니 전에 내가 해준 의상(衣裳)과 기명(器皿)을 다 찾아가야겠다.”
그러자 그녀가 곧 의상을 그 자에게 던져 주면서 말했다.
“옜다. 네 옛날 물건을 돌려주마.”
그자는 궤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궤도 내 물건이니, 이제 가져가야겠다.”
“이것이 어찌 네 물건이냐? 내가 상목(常木:품질이 안 좋은 무명베) 두 필로 산 것이다.”
“그 상목 한 필은 바로 내가 준 것이니, 지금 그대로 놓아둘 수 없다.”
“네가 비록 나를 버렸으나 어찌 상목 한 필을 보태주었다고 이 궤를 도로 빼앗느냐? 내 결코 도로 줄 수 없다.”
두 사람이 궤를 가지고 옥신각신 실랑이를 하였다.
“네가 내 궤를 돌려주지 않으니 관가에 가서 송사를 해야겠다.”
조금 후에 날이 밝자, 그자는 곧 궤를 짊어지고 관가로 달려가고 그녀는 뒤따라 함께 재판정에 들어갔다.
부윤이 이미 관아에 나앉아 있었다. 남녀가 궤를 다투어 판가름 해주기를 청하므로 부윤은 판정을 내려야만 했다.
“궤 산 값으로 남녀가 각각 상목 한 필씩을 냈으니, 법에 마땅히 그 궤를 반으로 똑같이 나누어 가져야 한다.”
그리고 곧 명하여 큰 톱으로 그 궤를 잘라서 반씩 나눠주도록 하였다. 나졸들이 분부에 따라 톱을 궤 위에 올려놓고 두 사람이 톱을 끌어 톱소리가 막 나자마자, 궤 속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부윤이 깜짝 놀라는 체하며 명령했다.
“궤 속에서 웬 사람 소리가 나느냐? 속히 뚜껑을 열어보도록 하라.”
나졸들이 자물쇠를 부수고 뚜껑을 열었더니, 어떤 사람이 알몸으로 있다가 나와서 뜰 위에 초라하게 섰다. 부중의 모든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해괴하고 처량맞기 이를 데 없으므로 입을 가리고 웃지 않는 자가 없었다.
여러 사람들이 쳐다보고 궁금해 하였다.
“저분은 제독인데 어찌하여 궤 속에 있었다지?”
부윤이 나졸들에게 명하여 그를 끌어올리게 하니, 제독은 두 손으로 그 물건을 가리고 계단을 올라와 자리에 웅쿠리고 앉아서 머리를 떨군 채 풀이 죽었다.
부윤이 한참 동안 크게 웃고 나서 옷을 주도록 명하자, 기녀들이 일부러 여인의 장옷을 주었다. 제독은 장옷만 입은 채 이마를 드러내고 맨 발로 달려 향교로 돌아와서, 그날로 줄행랑을 쳐 도망가버렸다. 지금까지 경주부에서는 ‘궤제독(櫃提督)’이란 것을 가지고 웃음거리로 삼고 있다.                                                                                 《천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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