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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학위청구논문


소상팔경시의 형상화 양상과 의미맥락 연구

A STUDY ON FIGURATION ASPECT AND MEANING COHERENCE OF SOSANGPALKYUNG(瀟湘八景) POETRY

건국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고전문학전공
전 경 원
2006

<그림 1> 산시청람도(山市晴嵐圖) 국립진주박물관 소장본

<그림2 > 연사모종도(煙寺暮鐘圖) 국립진주박물관 소장본

<그림 3> 소상야우도(瀟湘夜雨圖) 국립진주박물관 소장본

<그림 4> 원포귀범(遠浦歸帆) 국립진주박물관 소장본

<그림 5> 평사낙안(平沙落?) 국립진주박물관 소장본

<그림 6> 동정추월(洞庭秋月) 국립진주박물관 소장본

<그림 7> 어촌낙조(漁村落照) 국립진주박물관 소장본

<그림 8> 강천모설(江天暮雪) 국립진주박물관 소장본

<그림 9> 산시청람 中 다리를 건너는 두 사람
<그림 10> 산시청람 中 뒤를 돌아다보는 인물

<그림11> 산시청람 中 정자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거나 바둑을 두는 두 인물
<그림 12> 연사모종 中 작은 배에서 고기를 잡기 위해 낚시를 하는 두 인물

<그림 13> 연사모종 中 종소리가 울리는 곳을 바라보는 아낙네와 집을 지키는 강아지

<그림 14> 원포귀범 中 인근에서 작은 배를 타고 고기를 잡고 있는 두 인물

<그림 15> 평사낙안 中 기러기를 잡으려고 기회를 엿보는 사람들

<그림 16> 평사낙안 中 기러기를 잡으려는 사람으로 기심(機心)을 지닌 인물로 묘사됨

<그림 17> 동정추월 中 동정호에서 배를 타고 흥에 취한 인물

<그림 18> 어촌낙조 中 그물 옆에서 고기를 잡고 있는 어부

<그림 19> 어촌낙조 中 그물을 걷고 있는 어부


<그림 20> 강천모설 中 도롱이를 걸친 두 사람

소상팔경시의 형상화 양상과 의미맥락 연구

1. 서론 1
1.1. 문제 제기 1
1.2. 연구사 10
1.3. 연구 방법 31

2. 소상팔경 시가문학의 자료 개관 36
2.1. 소상팔경의 형성 배경 36
2.2. 소상팔경의 자료 범주 60
2.3. 소상팔경의 공간 상징 75

3. 소상팔경의 형상과 함의 85
3.1. 산시청람(山市晴嵐) : 성(聖)과 속(俗)이 조화를 이룬 이상적 공간 86
3.2. 연사모종(煙寺暮鐘) : 구도(求道)의 과정과 방향을 제시하는 형상 119
3.3. 소상야우(瀟湘夜雨) : 세계의 횡포(橫暴)에 휘둘린 자아(自我) 위로 136
3.4. 원포귀범(遠浦歸帆) : 고향(故鄕) 내지 모체(母體) 내부로 회귀욕망 156
3.5. 평사낙안(平沙落?) : 현실(現實)과 이상(理想) 사이의 대립과 갈등 173
3.6. 동정추월(洞庭秋月) : 대립(對立)과 갈등(葛藤)이 해소된 최적의 상황 189
3.7. 어촌낙조(漁村落照) : 순리(順理)대로 살아가며 세상과의 거리 두기 206
3.8. 강천모설(江天暮雪) : 세상사에 초탈한 달관(達觀)과 흥취(興趣)의 경지 220
4. 소상팔경시에 감추어진 의미맥락 242
4.1. 출처진퇴(出處進退)에 대한 고민(苦悶)과 갈등(葛藤) 255
4.2. 선정(善政)을 통한 태평성대(太平聖代)의 재현(再現) 265
4.3. 구도(求道)와 탈속(脫俗)을 통한 내적 갈등의 해소 275
4.4. 인간(人間)과 자연(自然)이 조화(調和)를 이루는 이상 공간 287

5. 결론 298

* 참고문헌 304
* 영문초록 310
* 부록자료 313


1. 서론(緖論)
1.1. 문제제기
판소리「춘향가(春香歌)」와 판소리계 소설「춘향전(春香傳)」을 보면 춘향이 옥중에 갇혀 본관 수령의 처분만 기다리며 죽음을 앞둔 상황이 펼쳐진다. 그때 춘향이 소상팔경(瀟湘八景) 일대를 유람하는 꿈을 꾸는데, 꿈속에서 소상강(瀟湘江)에서 숨을 거둔 순(舜)임금의 이비(二妃)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을 만나서 위로를 받는 더늠과 대목이 등장한다. 또 판소리「심청가(沈淸歌)」와 판소리계 소설「심청전(沈淸傳)」을 보면 심청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팔고 인당수에 투신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때 심청도 인당수 투신에 앞서 소상팔경(瀟湘八景)을 유람하는 더늠과 대목이 등장한다. 심청은 이곳에서 순(舜)임금의 이비(二妃)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 그리고 오나라의 충신이었던 오자서(伍子胥), 초나라 굴원(屈原)과 가의(賈誼)를 만나 역시 위로와 칭찬을 받는 더늠과 대목이 등장한다.
역시 판소리「흥보가(興甫歌)」와 판소리계 소설「흥부전(興夫傳)」에 등장하는 ‘제비 노정기(路程記)’를 보면 ‘소상팔경(瀟湘八景)’이 어김없이 등장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판소리「수궁가(水宮歌)」와 판소리계 소설「토끼전」을 보면 ‘고고천변’ 내지는 ‘혼령상봉’ 대목 등에서 소상팔경(瀟湘八景)이 등장한다. 혹은 판본에 따라 ‘범피중류(泛彼中流)’라고 명명한 더늠 등에서 등장하기도 한다.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가사(歌辭)「사미인곡(思美人曲)」에서는 임금이 계신 곳을 ‘옥루고처(玉樓高處)’에 비유하고 자신이 거처하던 곳을 ‘소상남반(瀟湘南畔)’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허난설헌은 가사(歌辭) 작품「규원가(閨怨歌)」에서 남편과 인연이 끊어진 것을 슬퍼하며 거문고를 연주하는 슬픔을 ‘소상야우(瀟湘夜雨)’의 대나무 소리에 빗대어 표현했다. 박인로의 가사(歌辭)「선상탄(船上嘆)」에서는 장한(張翰)이 가을바람을 만나 고향인 강동(江東)으로 떠나가는 ‘원포귀범(遠浦歸帆)’의 형상을 그려내고 있다.
서도 민요의 하나인「수심가(愁心歌)」에 잇대어 부르는「엮음 수심가」를 보면 소상강(瀟湘江)으로 배타고 들어가는 두 동자와 화자의 대화 상황이 전개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무가(巫歌)인「만조상해원경」에도 소상야우(瀟湘夜雨)와 관련하여 독립된 연이 존재한다.
김시습의 소설「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에는 양생과 여인 사이의 대화 가운데 “소상강(瀟湘江)에서 옛 낭군을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어찌 천행이 아니겠습니까? 낭군께서 저를 멀리 버리지 않으신다면 끝까지 시중을 들겠습니다. 그렇지만 만약 제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저는 영원히 자취를 감추겠습니다.”라는 언급을 통해 자신과 양생의 만남을 마치 순임금과 아황, 여영에 은근히 빗대고 있음이 확인된다. 또「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을 보면 그림 속의 한시(漢詩)를 설명하는 대목이 등장하는데 ‘소상강(瀟湘江)’과 ‘소상강(瀟湘江)’을 그린 그림 병풍에 대한 표현이 등장한다. 고소설「별주부전(鼈主簿傳)」에 등장하는 별주부는 ‘소상강(瀟湘江)’으로 장가를 들어 그 아내가 남편을 부를 때 ‘소상강(瀟湘江) 나리’라고 부르는 대목이 등장한다.
서포 김만중의 소설「구운몽(九雲夢)」은 아예 공간 배경 자체를 소상팔경(瀟湘八景) 일대로 설정한 채,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또 만해 한용운이 1935년 조선일보를 통해 발표했던 소설「흑풍」에는 왕한이 혁명당의 일원으로 귀국하여 중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다가 터전을 잡을 때까지의 모습이 소상강(瀟湘江) 일대를 배경으로 형상화되었다. 그런가하면 돈 대신에 소상강(瀟湘江)을 구경한다는 제목의 설화가 양천 허씨 문중에 전해 내려온다.
구한말 우리 민족의 자생 종교인 증산교와 대순진리교 등의 경전(經典)에서는 해원시대(解寃時代)를 강조하며 인류 최초 원한의 뿌리로 요임금의 아들 단주(丹朱)를 가리키며 이와 관련된 순임금과 아황(娥皇) 여영(女英)을 언급하는 곳에서 소상팔경(瀟湘八景)이 등장한다.
이 외에도 역대 시화(詩話)에서 소상팔경(瀟湘八景)과 관련된 언급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서거정의『동인시화(東人詩話)』에서는 상권(上卷)의 11화(話), 54화(話), 56화(話) 세 편에서 소상팔경 관련 작품들이 언급되고 있다. 11화에서는 고려시대 이인로(李仁老)의 소상팔경 한시 가운데 동정추월(洞庭秋月) 작품을 소개하며 송나라 때 문인 소순흠(蘇舜欽)의 작품을 점화(點化)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54화에서는 동정호(洞庭湖)와 악양루가 있는 파릉산(巴陵山)이 천하의 장관임을 언급하며 시인묵객들의 작품을 소개했다. 56화에서는 이인로, 진화, 이제현의 소상팔경시를 대상으로 다양한 평어로 작품을 평가하고 있다.
허 균은『성수시화(惺?詩話)』의 제21화(話)에서는 원나라 귀양지에서 숨을 거둔 김구용(金九容)과 조서(曹庶)를 예로 들어 말하기를, “나는 대장부로 좁은 땅에 태어났기에 널리 노닐 수 없음을 언제나 한탄하였다. 두 분은 비록 먼 지방으로 귀양을 갔다지만 오나라와 초나라 지방 산천을 두루 보았으니, 참으로 인간 세상의 장쾌한 일이었다.”고 서술하면서 소상강과 동정호가 주무대인 오(吳) · 초(楚) 지역을 언급하고 있다.
김만중은『서포만필(西浦漫筆)』권하(卷下) 30화(話)와 31화(話)에서, “당나라 숙종(肅宗) 대종(代宗) 시대를 당하여 군문(軍門)에 있던 신하로 장안(長安)을 평정했던 공적이 있는데도, 국가의 성패에 관여하지 않고 동정호(洞庭湖)와 소상강(瀟湘江) 사이에서 단풍 향기를 맡으며 신선 배우기를 장량(張良)이 적송자(赤松子)를 따르듯 한 사람은 업후(?侯)가 아니면 또 누가 있겠는가?”하며 동정호(洞庭湖)와 소상강(瀟湘江) 일대를 언급했다.
하겸진은『동시화(東詩話)』권이(卷二) 63화(話)에서 월과(月課)를 맡았던 시관 채유후(蔡裕後)가 시제(詩題)로 ‘소상반죽(瀟湘斑竹)’을 냈는데, 홍주세가 장원으로 선택됨과 그의 시 작품 흰 구름 사이로 창오산 빛 쓸쓸한데/ 남으로 가신 황제 언제나 돌아올까/ 남은 한은 상강 따라 흐르지 못하고/ 눈물 흔적 대나무에 얼룩져 항상 남아있네/ 천년 굳은 절개 눈서리 이겨내고/ 깊은 밤 찬 소리 패옥 고리에서 울리네/ 자고새는 울다 지쳐 사람도 보이질 않고/ 강변에 두어 봉우리 이슬 안개 자욱하네.(蒼梧愁絶白雲間/ 帝子南奔幾日還/ 遺恨不隨湘水去/ 淚痕常在竹枝斑/ 千秋勁節凌霜雪/ 半夜寒聲動佩環/ 啼罷??人不見/ 數峰江上露烟?)
을 소개하면서 당나라 때 시인 전기(錢起)의「상령고슬(湘靈鼓瑟)」 善鼓雲和瑟/ 常聞帝子靈/ 馮夷徒自舞/ 楚客不堪聽/ 苦調凄金石/ 淸音入杳冥/ 蒼梧來怨慕/ 白芷動芳馨/ 流水傳湘浦/ 悲風過洞庭/ 曲終人不見/ 江上數峯靑.『당시기사(唐詩紀事)』권30, 전기(錢起). 전기가 향천(鄕薦)으로 강호의 객사에서 묵고 있을 때 마당에서 시를 읊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곡이 끝났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고, 강변에는 몇 개 봉우리만 푸르네.”라고 하였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아무 것도 없었다. 천보 10년에 ‘상령고슬’이라는 제목으로 시험을 보았다. 전기는 그때 들렸던 시구를 이용해서 시를 지었다. 당시 사람들이 그 시를 보고서 귀신의 노래라고 했다고 한다.
시에 비견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윤오영(1907-1976)은「쓰고 싶고 읽고 싶은 글」이라는 그의 수필에서, “옛 사람이 높은 선비의 맑은 향기를 그리려 하되, 향기가 형태 없기로 난(蘭)을 그렸던 것이다. 아리따운 여인의 빙옥(氷玉) 같은 심정을 그리려 하되, 형태 없으므로 매화(梅花)를 그렸던 것이다. 붓에 먹을 듬뿍 찍어 한 폭 대(竹)를 그리면 늠름한 장부, 불굴의 기개가 서릿발 같고, 다시 붓을 바꾸어 한 폭을 그리면 소슬(蕭瑟)한 바람이 상강(湘江)의 넋을 실어 오는 듯했다. 갈대를 그리면 가을이 오고, 돌을 그리면 고박(古樸)한 음향이 그윽하니, 신기(神技)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기에 예술인 것이다.”라고 언급하면서 ‘상강(湘江)의 넋’이라는 표현을 통해 순임금과 두 왕비였던 아황과 여영의 영혼을 언급하고 있다.
앞서 열거한 다양한 갈래의 문헌들에 등장하는 소상팔경(瀟湘八景)이 단순히 이국적(異國的) 정취(情趣)만을 제공하기 위해 작품 안에 서술된 것은 아니었다. 계속해서 언급되고 있는 소상팔경(瀟湘八景)은 작품의 서사적 맥락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도대체 소상팔경(瀟湘八景)에는 무엇이 담겨 있기에 이토록 많은 문인들과 독자들이 집착하고 열광했던 것인가? 이 논문은 근본적으로 이러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이 논문에서 주된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는 자료는 고전시가(古典詩歌)와 관련된 부분이다. 따라서 한시(漢詩)와 시조(時調) 그리고 가사(歌辭) 판소리 등을 대상으로 한다. 한시(漢詩)는 현재까지「소상팔경(瀟湘八景)」을 제목으로 삼고 있는 470여 수가 확인 정리되었다. 그리고 시조(時調)는 총 81수가 정리되었다. 이 81수의 시조 작품 가운데 소상팔경(瀟湘八景)을 제목으로 드러내고 있는 작품은 총 9수에 해당하고, 나머지 72수는 제목 없이 전해진다. 시조의 특성상 제목이 거의 없이 전해진다는 특성을 감안하면 이 또한 적은 분량이 아니다. 또 가사(歌辭)와 잡가(雜歌)가 각각 한 작품씩 전하고 있다. 이 외에도 판소리「춘향가(春香歌)」,「심청가(沈淸歌)」,「흥보가(興甫歌)」,「수궁가(水宮歌)」등에서 주요한 화소(話素)로 소상팔경(瀟湘八景)이 등장하고 있기에 논의 대상으로 삼기에 충분할 것으로 판단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소상팔경(瀟湘八景)은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현상이었다. 문화는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은 속성을 지닌다. 한 순간도 정체되어 있지 않다. 문화는 탄생하고, 성장하며, 성숙하고, 노쇠하여 쇠퇴한다. 그리곤 또 다른 문화 형태로 태어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문화’는 그 속성이 물과 매우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물은 어떤 물이든 그 발원지(發源地)가 있다. 발원지에서 샘솟은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문화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향하듯, 물 역시 낮은 곳을 향하는 속성을 지녔다. 물은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스스로의 모습을 바꾸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간다. 연못을 만나면 연못의 형태를 유지하고, 폭포를 만나면 폭포수가 되고, 강을 만나면 강이 되며, 바다를 만나면 바다의 모습을 이룬다. 동일한 물이지만 처한 상황과 처지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달리하는 것이 물이다. 이러한 물의 속성이 문화의 속성과 매우 닮아있음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이처럼 문화와 물의 속성이 닮아있음을 우리는 노자의『도덕경(道德經)』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고의 선(善)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도(道)에 가깝다. 살 때는 낮은 땅에 처하기를 잘하고, 마음 쓸 때는 그윽한 마음가짐을 잘하고, 벗을 사귈 때는 어질기를 잘하고, 말 할 때는 믿음직하기를 잘 하고, 다스릴 때는 질서 있게 도모하기를 잘하고, 일 할 때는 능력 있기를 잘하고, 움직일 때는 바른 때를 잘 탄다. 무릇 오로지 다투지 않으니 허물이 없다.” 老子,『道德經』第八章,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正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인용문을 가만히 음미해 보면 ‘물(水)’이라는 용어를 ‘문화(文化)’로 대체해도 문장의 전체적인 의미가 크게 훼손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그 속성이 매우 닮아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문화’의 범주에는 저질(低質)이나 하급(下級)의 왜곡(歪曲)된 문화까지를 포함하지는 않는다. 사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인간이 만든 문화 속에서 지속적으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른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문화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서로 다투지 않는 속성이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오늘날의 인류는 서로 다른 문화적 가치체계를 인정하지 않고,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며 심지어 문화적 충돌 양상이 빚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양상들은 문화의 본질적이며 자연스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인간의 이기심과 작위적인 욕망이 개입된 상태의 질곡(桎梏) 된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문화 본래의 속성과는 거리가 먼 셈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문화의 본질은 ‘다툼(爭)’이 없어야 한다. 다만 다양한 문화의 차이와 그 다른 점을 인정하는 자세만이 요청될 뿐이다. 연구자에게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소상팔경(瀟湘八景)’을 대상으로 시(詩)나 그림(畵)을 그리며 향유(享有)했던 사실도 중세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던 하나의 문화현상(文化現狀)이었다. 이 문화현상은 한 두 세기에 그친 것이 아니고, 특정한 지역에 국한된 문화현상도 아니었으며, 게다가 일부 계층에 제한된 문화현상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각별하다. 시간적으로는 천 년 이상 지속된 문화현상이었고, 공간적으로는 한국(韓國)과 중국(中國) 그리고 일본(日本)이라는 동아시아(東亞細亞) 삼국(三國)이 공유했던 문화현상이었으며, 계층적으로는 한 나라의 군주(君主)를 포함한 왕실(王室)로부터 평민층(平民層)에 이르기까지 국가(國家)를 구성(構成)하는 모든 계층(階層)에서 고루 향유(享有)했고, 그 갈래만 보더라도 회화(繪畵)는 물론이고, 시가문학(詩歌文學)에서 한시(漢詩)와 시조(時調), 가사(歌辭), 판소리, 잡가(雜歌), 고소설(古小說)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식으로 향유했던 문화현상이었다.
소상팔경의 발원지는 중국(中國)이었다. 그러나 그곳을 시나 그림으로 창작하면서 향유한 것은 중국보다 오히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더욱 활발했다는 점은 특이한 현상이다. 중국을 배경으로 소상팔경(瀟湘八景)이 발원하였으나 이 문화현상은 ‘소상팔경’이라는 공간이 결핍되었던 한국(韓國)과 일본(日本)에서는 더욱 절실했던 문화적 현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와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가 중국에서 발원(發源)하여 우리나라로 유입된 문화현상이라고는 하나 중국인(中國人)들이 향유하던 모습 그대로 수용될 리는 없다. 물이 낮은 곳을 향하되, 그곳의 지형과 기후조건 등에 따라 스스로의 모습을 바꾸듯 문화 역시 낮은 곳으로 흐르되, 그곳의 고유한 지형과 기후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는 것이다.
『주례(周禮)』「동관고공기(冬官考工記)」를 보면, “귤나무가 회수(淮水)를 넘어서 북쪽으로 가면 탱자나무가 되고, 구욕(??)새는 제수(濟水)를 넘지 않으며, 오소리가 문수(汶水)를 넘으면 죽는 일은 모두 지기(地氣) 때문이다.”『周禮』「冬官考工記」, “橘踰淮而北爲枳, ??不踰濟 ?踰汶則死 此地氣然也”.
라는 기록이 있다. 이는 환경에 따라 사물과 대상이 변화됨을 일컫는 말로 문화 역시 토양과 기후 그리고 그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서 달라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때문에 소상팔경이라는 동일한 문화현상을 면밀하게 검토한다면 크게는 한국(韓國)과 중국(中國) 그리고 일본(日本)이 속해 있는 동아시아(東亞細亞) 삼국(三國)의 자연(自然)에 대한 인식체계(認識體系)와 사유방식(思惟方式)을 고찰할 수 있고, 작게는 소상팔경이라는 특정 경관에 대한 각국(各國)의 인식과 수용방식의 차이점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이 논문은 그러한 작업을 위한 초석(礎石)이 되는 셈이다.
소상팔경(瀟湘八景)은 중국(中國) 호남성(湖南省)에 위치한 동정호(洞庭湖)와 남쪽 영릉(零陵) 부근으로 ‘소강(瀟江)’과 ‘상강(湘江)’이 합쳐지는 근방의 여덟 경관을 말한다. 이곳의 여덟 가지 경관을 주제로 삼아 각 화폭에 그린 그림을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옛 문인들은 고려시대로부터 조선후기에 이르기까지 약 700년 이상에 걸쳐서 끊임없이 소상팔경을 대상으로 한시와 시조 그리고 가사 판소리 잡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갈래에 걸쳐 노래하였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사실은 이 모든 갈래의 작품들을 창작한 문인들이 실재 중국의 소상팔경에 직접 찾아가서 그곳의 실경(實景)을 체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문인들이 소상팔경에 대해 노래한 작품들은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라는 그림을 통해서였고, 그도 아닌 경우는 오랜 세월동안 관념화되고, 누적된 소상팔경의 형상에 의지하여 작품 창작에 임했던 것이다. 따라서 소상팔경 시가문학은 ‘소상팔경도’의 그림과 그림을 통해 형성된 관념 세계와도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소상팔경(瀟湘八景)』의 각 경(景)을 살펴보면,「산시청람(山市晴嵐)」, 「연사모종(烟寺暮鐘)」,「소상야우(瀟湘夜雨)」,「원포귀범(遠浦歸帆)」,「평사낙안(平沙落雁)」,「동정추월(洞庭秋月)」,「어촌낙조(漁村落照)」,「강천모설(江天暮雪)」의 여덟 폭이다. 현재까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소상팔경(瀟湘八景)’이라는 제목으로 창작된 작품의 규모가, 한시(漢詩) 470수, 시조 81수, 가사 한 작품, 판소리「춘향가」와「심청가」,「흥보가」,「수궁가」등에 삽입된 소상팔경가 등이다. 뿐만 아니라 시조와 가사 그리고 고소설 등의 경우 소상팔경을 제목으로 삼지는 않았더라도 작품 속에 등장하는 소상팔경 관련 내용들까지 모두 포함한다면 그 작품 수는 실로 엄청난 양이다.
이 논문은 이처럼 방대한 분량의 작품을 대상으로, 관념화되었던 ‘소상팔경’의 실체를 규명하고자하는 의도에서 출발한다. 소상팔경의 여덟 경관을 읊으면서 시인들이 생각했던 각 장면들의 관념의 실체가 어떠했는지 그 의미를 밝히고자 한다. 말하자면 여덟 경관을 노래한 개별 시제(詩題)의 의미는 무엇이고, 왜 시인들은 끊임없이 소상팔경을 노래하고자 하였는가, 시인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던 무엇인가를 소상팔경이라는 시제로 의미 있게 재구성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 점이 이 논문의 중심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소상팔경도가 왜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이라는 동아시아 삼국에서 한 나라의 군주와 지배계층으로부터 일반 평민들에 이르기까지 공유할 수 있는 소재가 될 수 있었던가 하는 점이 규명될 것이다. 아울러 각각의 여덟 장면들은 어떠한 의미(意味)를 내포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소상팔경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검토해보면, 미술사(美術史)의 영역에서는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에 대한 나름대로 축적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문학 영역에서는 아직까지 연구가 미흡(未洽)한 편이다. 물론 부분적으로 여러 시각에 근거하여 접근하고는 있으나 ‘소상팔경’ 자체에 대한 심층 분석과 그를 통해 여덟 장면의 의미를 드러내려는 시도는 현재까지 전무한 편이다. 이 지점에서 소상팔경 시가문학에 대한 종합적이며 체계적인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하겠다.
이 논문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효과와 활용방안은 대략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소상팔경을 소재로 삼아 작품을 창작했던 과거 문인들의 의식 세계를 규명할 수 있다. 그를 통해 소상팔경이라는 소재가 무슨 이유로 우리나라에서만 800년 가까이, 그리고 동아시아 삼국에서는 천 년이 넘도록 끊임없이 불려지고 창작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 드러날 것이다. 둘째, 우리 문학사에서 소상팔경이 갖는 의의가 드러날 것으로 기대한다. 한시, 시조, 가사, 판소리, 잡가 등 우리 시가의 다양한 갈래에서 중심 소재로 등장했기 때문에, 이 갈래들에서 소상팔경이 어떻게 인식되고 형상화되었는가 하는 점을 통해 갈래의 특징 또한 드러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셋째, 이 논문을 통해 ‘소상팔경’이 갖는 문학사와 회화사의 교섭 양상을 드러냄으로써 문화사 전반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기대한다.
소상팔경은 그림과 시를 별개로 논의할 수 없을 만큼 시문학과 회화와의 관련성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따라서 이는 지금까지의 문학사와 미술사의 연구 성과를 축적하고 세분화하는 한편 서로의 영역을 보다 심도 있게 연결하기 위한 건실한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시를 통해 그림을 연상할 수 있고, 그림을 통해서도 시를 읽어내기 위한 하나의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그림이나 시에 담긴 서사적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유용한 단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소상팔경’을 노래한 시가문학 연구를 실제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앞에서 언급한 맥락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활용방법으로는 다음과 같은 방안이 예상된다. 첫째, 문학사와 회화사의 발전단계에서 ‘소상팔경’이 어떠한 기능을 담당하였는가 하는 점을 평가하는 항목으로 활용 가능할 것이다. 말하자면 문학사와 예술사 전반의 특징을 이해하기 위한 지표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중세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소상팔경’은 근대와 어떠한 지점에서 자리하고 있으며, 중세라는 거대한 틀이 깨어지면서 내적으로 어떤 과정과 절차에 의해 근대가 성립되는가 하는 점을 ‘소상팔경’이라는 소재를 통해서도 접근이 가능하리라 판단한다. 말하자면 ‘관념산수화(觀念山水畵)’에서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로의 발전, ‘중국(中國)의 산수(山水)’에서 ‘조선(朝鮮)의 산수(山水)’를 대상으로 문학과 미술의 소재가 자리잡아가는 과정에서, ‘소상팔경’은 어떠한 모습으로 생장소멸(生長消滅)의 과정 속에 자리하고 있었는가 하는 점을 밝히기 위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1.2. 연구사 검토

지금까지 소상팔경에 대한 연구는 크게 다섯 분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첫째는 문학적(文學的) 측면에서 접근한 연구였다. 둘째는 미술사적(美術史的) 측면을 중심으로 접근한 연구였다. 셋째는 음악적(音樂的) 측면에서의 연구였다. 넷째는 문학(文學)과 회화(繪畵)를 아우르고자 하는 측면에서 진행되었다. 마지막으로 다섯째는 도시공학적 측면에서의 연구 성과가 있었다.
우선, 문학 분야의 연구 성과는 이희승 李熙昇,「歌詞 <瀟湘八景> 解說」『文章』제3집, 1939. 4.
, 성원경 成元慶,「瀟湘八景이 國內八景에 미친 影響考」『石溪趙仁濟博士 還曆紀念論叢』, 1977.
, 김기탁 金基卓,「益齋의 <瀟湘八景>과 그 影響」『中國語文學』제13집, 嶺南中國語文學會, 1981.
, 임창순 任昌淳,「匪懈堂 瀟湘八景詩帖 解說」『泰東古典硏究』제5집, 泰東古典硏究所, 1989.
, 여기현 呂基鉉,「<瀟湘八景詩>의 表象性 硏究 」(I)『泮橋語文硏究』제2집, 泮橋語文硏究會, 1990.
,「<瀟湘八景詩>의 表象性 硏究 」(II)『古典詩歌의 理念과 表象』, 1991.
,「八景系 詩의 表象性」『古典詩歌의 表象性』, 月印出版社, 1999, 271-322쪽.
,「瀟湘八景의 受容과 樣相」『中國文學硏究』제25집, 韓國中文學會, 2002.
,「雜歌 <瀟湘八景>의 形象化 特性」,『人文社會科學論文集』제31집, 광운대학교, 2002.
,「瀟湘八景의 시적 형상화 양상」,『泮橋語文硏究』제15집, 泮橋語文學會, 2003.
, 최경환 崔敬桓,「韓國 題畵詩의 陳述樣相 硏究」, 서강대학교 박사논문, 1991.
,「李仁老와 陳?의『宋迪八景圖』詩 對比」『한국고전연구』제1권, 1995.
, 정운채 鄭雲采,「瀟湘八景을 노래한 시조와 한시에서의 景의 성격」『국어교육』제79·80합집, 한국국어교육연구회, 1992.
, 정용수 鄭容秀,「李後白의 瀟湘八景歌 辨證」『文化傳統論集』創刊號, 경성대 향토문화연구소, 1993.
,「瀟湘八景의 文學的 性格」『私淑齋 姜希孟 文學硏究』, 국학자료원, 1993, 138-151쪽.
, 류재일 柳在日,「李齊賢의 작품을 수용한『南原古詞』의 <쇼상팔경> 연구」『淵民學志』제2권, 1994.
, 임재완 林在完,「匪懈堂<瀟湘八景詩帖>飜譯」,『湖巖美術館硏究論集』제2집, 1994.
, 김성룡 김성룡,『여말선초의 문학사상』, 한길사, 1995.
, 안장리 安章利,「韓國八景詩 硏究」, 韓國精神文化硏究院 博士論文, 1997.
,『한국의 팔경문학』, 집문당, 2002.
, 천이두 千二斗,「<춘향가>의 ‘몽중가’소고 -「심청가」의 ‘소상팔경 지나갈 제’와 관련하여 -」『판소리연구』8집, 판소리학회, 1997.
, 박일용 박일용,「<심청가> ‘강상풍경’ 대목의 변이 양상과 그 의미」『판소리연구』8집, 판소리학회, 1997.
, 김신중 金信中,「瀟湘八景歌의 관습시적 성격」,『古詩歌硏究』제5집, 1998.
, 전경원 전경원,「瀟湘八景의 含意와 情緖的 寄與 - ‘平沙落?’을 중심으로」『겨레어문학』27집, 2001.
,「瀟湘八景의 含意와 情緖的 寄與 - ‘洞庭秋月’을 중심으로」『겨레어문학』28집, 2002.
,「瀟湘八景의 含意와 情緖的 寄與 - ‘漁村落照’를 중심으로」『겨레어문학』29집, 2002.
, 정 민 정 민,「16·7세기 조선 문인지식인층의 江南熱과 西湖圖」『고전문학연구』제22권, 2002.
, 류수열 류수열,「<수궁가>소재 노정기의 존립과 변이」『판소리연구』제14집, 판소리학회, 2002.
, 김남기 김남기,「『列聖御製』에 실린 조선 국왕의 題畵詩 연구」『한국문학논총』제34집, 2003.
, 지영재 지영재,「소상팔경·송도팔경」『서정록(西征錄)을 찾아서』, 푸른역사, 479-556쪽, 2003.
등에 의해 마련되었다.
둘째, 미술사 분야에서의 연구 성과는 안휘준 安輝浚,「大和文華館所藏 <煙寺暮鐘圖>解說」『季刊美術』제3집, 1977.
,「國立中央博物館所藏 <瀟湘八景圖>」『考古美術』제138·139合本, 1978.
,「韓國 瀟湘八景圖 硏究」『韓國繪畵의 傳統』, 文藝出版社, 1988.
, 강미숙 강미숙,「韓國의 瀟湘八景圖에 나타난 美意識 考察」, 한남대학교 석사논문, 1992.
, 김순명 金順明,「朝鮮時代 初期 및 中期의 瀟湘八景圖 硏究」, 홍익대학교 미술교육석사논문, 1992.
, 송희경 宋熹暻,「中國 南宋의 瀟湘八景圖와 그 淵源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 1993.
, 「南宋의 瀟湘八景圖에 관한 硏究」,『美術史學硏究』, 한국미술사학회, 1995.
, 김지혜 金智惠,「日本 文化廳 所藏 金玄成贊 <瀟湘八景圖> 考察」『美術史學』14호, 한국미술사교육연구회, 2000.
, 이상남 李相男,「朝鮮初期 瀟湘八景圖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 2000.
, 장계수 張桂秀,「朝鮮後期 瀟湘八景圖에 대한 硏究」,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 2000.
등에 의해 마련되었다.
셋째, 음악 분야에서의 연구 성과는 서인화 서인화,「단가 소상팔경 연구」,『韓國音盤學』제10호, 한국음반학회, 2000.
에 의해 마련되었다. 넷째, 문학과 회화를 아우르고자 한 시도는 조은심 趙銀心,「瀟湘八景圖와 瀟湘八景詩의 比較 硏究」, 건국대학교 석사논문, 2001.
, 고연희 고연희,「瀟湘八景, 고려와 조선의 詩 · 畵에 나타나는 受容史」,『동방학』제9집,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2003.
등에 의해서 시도되었다. 마지막으로 도시공학적 측면에서의 연구 성과는 최기수 최기수,「曲과 景에 나타난 한국전통경관구조의 해석에 관한 연구」, 한양대학교 도시공학 박사논문, 1989.
에 의해 마련되었다.
소상팔경(瀟湘八景)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미술사학(美術史學) 분야보다 문학(文學) 분야에서 먼저 시도되었다. 최초의 연구는 1939년 이희승(李熙昇) 박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1939년 4월에 간행된『문장(文章)』제3집에「가사(歌詞) 소상팔경(瀟湘八景) 해설」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이 글은 초창기 연구 성과로 소상팔경 가사의 원문을 제시하고, 어구(語句)를 주해(註解)하여 후대의 연구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李熙昇,「歌詞 <瀟湘八景> 解說」『文章』제3집, 1939. 4.

처음 이희승에 의해 연구의 물꼬가 터졌으나 후속 연구가 한동안 이어지질 못했다. 학계에서는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다시 소상팔경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성원경은 소상팔경(瀟湘八景)이 국내의 팔경(八景) 문학에 미친 영향에 주목하였다. 그는 이 논문에서 중국의 소상팔경이 국내의 팔경시(八景詩)에 미친 영향을 논의하였다. 소상팔경의 주요한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 ‘낙안(落雁)’, ‘귀범(歸帆)’, ‘청람(晴嵐)’, ‘모운(暮雲)’ ‘모운(暮雲)’은 ‘강천모설(江天暮雪)’의 ‘모설(暮雪)’을 ‘모운(暮雲)’으로 오인(誤認)했다.
, ‘추월(秋月)’, ‘야우(夜雨)’, ‘만종(晩鐘)’, ‘석조(夕照)’ 등의 형상이 우리의 산수시(山水詩)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 하는 점에 주목하여 그와 유사한 표현이 드러난 작품들과 대비하였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팔경문학과 이에 영향을 받아 등장한 십경(十景) 혹은 십영(十詠)으로 형성된 시제(詩題)들의 내역을 소개함으로써 소상팔경(瀟湘八景)이 국내에 미친 영향을 언급하였다. 그러나 소상팔경(瀟湘八景)의 구체적인 작품 세계가 전혀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成元慶,「瀟湘八景이 國內八景에 미친 影響考」『石溪趙仁濟博士 還曆紀念論叢』, 1977.

김기탁은 소상팔경의 내용과 소상팔경과 시화일치(詩畵一致)라는 항목을 통해 논의를 전개했다. 그 가운데서도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1287-1367)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고려사(高麗史)』에 등장하는 소상팔경 관련 언급과 익재의 생애, 그리고 중국에서의 활동 등을 소개하고 있다. 주목할만한 언급은, “서경체가(敍景體歌)의 정형(定刑)이라 하는 <한림별곡(翰林別曲)이 총 8연이라는 것과 <소상팔경(瀟湘八景)>의 팔경(八景)이라는 시(詩)의 형식은 우연의 일치라기보다 분명히 <팔경(八景)>이라는 소제(小題)의 한 연장체 형식을 본받았다고 생각한다.” 金基卓,「益齋의 <瀟湘八景>과 그 影響」『中國語文學』제13집, 嶺南中國語文學會, 1981, 356쪽.
고 하였다. 그러나 이 역시 구체적인 작품에 대한 논증 과정 없이 이론적인 설명에만 그치고 있는 점이 아쉽다. 김기탁의 연구 이후로 또 한동안 소상팔경에 대한 연구가 한산했다. 그러다 1989년에 이르러 다시 한 번 연구자들의 흥미를 끌게 되는 자료가 공개되기에 이른다.
임창순은 그동안 행방 자체가 묘연했던『비해당소상팔경시첩(匪懈堂瀟湘八景詩帖)』을 학계에 소개했다.『비해당소상팔경시첩(匪懈堂瀟湘八景詩帖)』은 비해당(匪懈堂) 안평대군(安平大君;1418-1453)이 중심이 되어 만든 소상팔경시첩이다. 안평대군은 중국 송(宋)나라 영종(寧宗)이 쓴 시(詩)를 베껴 쓰고, 소상팔경도를 그려 판각한 다음 고려시대의 문장가였던 이인로와 진화의 시를 옮겨 적고, 당대의 집현전 학사들과 문단에서 시명을 떨치던 승(僧) 등이 참여하여 총19명이 자신의 친필로 소상팔경시를 창작하여 두루마리로 꾸민 첩이다. 이 가운데 현재는 소상팔경도와 송나라 영종의 시가 누락된 상태로 45면의 첩장(帖裝)으로 남아 전한다. 이 시첩은 2004년 5월 7일 보물 제1405호로 지정되었고,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그는 이 자료를 소개하면서 당시 시첩(詩帖)의 제작 경위와 문화사적(文化史的) 가치와 자료적(資料的) 가치 등을 언급했다. 아울러『비해당소상팔경시첩(匪懈堂瀟湘八景詩帖)』의 원문(原文)을 공개하여 관심 있는 연구자들에게 큰 도움을 제공했다. 이로 인해 소상팔경 연구의 편폭이 넓어지는 동시에 다시 한번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소상팔경문학(瀟湘八景文學)에 대한 연구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작품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 시발(始發)이 된 연구는 여기현에 의해서였다. 여기현은 소상팔경시의 표상성(表象性)에 주목하는 일련의 연구 성과를 발표하였고 呂基鉉,「<瀟湘八景詩>의 表象性 硏究 」(I)『泮橋語文硏究』제2집, 泮橋語文硏究會, 1990.
,「<瀟湘八景詩>의 表象性 硏究 」(II)『古典詩歌의 理念과 表象』, 1991.
, 이를 토대로 고전시가의 표상성을 묶어내기에 이른다. 呂基鉉,「八景系 詩의 表象性」『古典詩歌의 表象性』, 月印出版社, 1999.
이 연구에서 소상팔경시가 양식화된 시적 대상을 노래하면서, 그 양식적 대상에 흥취를 얹는 방식이 각 시인의 표현원리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을 밝혔다. 구체적인 작품 분석을 통해 이인로의 경우는 경물(景物)을 묘사(描寫)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방식으로 흥취(興趣)를 일으켰다면, 익재 이제현의 경우는 경물 묘사와 서정(敍情)을 일치화 시키는 정경상생(情景相生)을 지향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후대로 갈수록 사경(寫景)보다는 서정(敍情)에 치중된 기흥(寄興)의 방식을 취하게 되고, 그 결과 소상팔경을 시제(詩題)로 하면서도 실제 내용에 있어서는 팔경 가운데 어떤 장면을 노래한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이념화되고 관념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呂基鉉,「八景系 詩의 表象性」『古典詩歌의 表象性』, 月印出版社, 1999, 321-322쪽.

뒤를 이은 최경환의 연구는 소상팔경만을 대상으로 삼았던 성과는 아니었으나, 우리나라 제화시(題畵詩)의 진술양상(陳述樣相)에 관심을 갖고 연구했다. 그는 이 연구를 통해 제화시의 보편적이고 공통적인 작시원리(作詩原理), 즉 그림과 관련된 시적 진술의 전체적인 양상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아울러 동양화의 이론을 근거로 하여 제화시 작품들에 사용된 여러 표현 방법들을 규명해냄으로써, 한시(漢詩)의 하위 갈래로서 그 밖의 다른 여러 시체(詩體), 특히 산수시(山水詩) 혹은 자연시(自然詩)에 사용된 여러 표현 방법들을 밝히는 데 필요한 이론적, 실제적 근거를 부분적이나마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반면, 연구자 스스로 언급한 바와 같이 시와 그림을 비교하지 않은 채, 동양화의 속성을 밝히고 있는 이론에 근거하여 논의를 진행함으로써 화면상의 이미지를 시적으로 변형시켰다는 점을 지나치게 일반화하였다는 오해의 소지는 한계로 지적될 수 있다. 최경환,「韓國 題畵詩의 陳述樣相 硏究」, 서강대학교 박사논문, 1991.

정운채는 ‘경(景)’을 산수시(山水詩)의 한 층위로 보는 관점을 토대로 소상팔경을 노래한 시조와 한시를 대비적으로 검토하였다. 이를 통해 한편으로는 산수시 일반론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조와 한시의 양식적 특성을 변별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에서 작성된 연구 성과물이었다. 먼저 과거 한시론(漢詩論)에서 ‘경(景)’을 어떻게 인식하고 논의했는가를 검토했다. 한시론에서 경(景)을 다루는 관점은 첫째,『시경(詩經)』‘육의(六義)’ 가운데 부(賦)·비(比)·흥(興) 등 시(詩)의 기법에 사용되고 있는 ‘물(物)’, 둘째, ‘정경교융(情景交融)’을 지향하고 있는 정경론(情景論)에서의 ‘경(景)’, 셋째, 화론(畵論)을 응용한 형신론(形神論)에서의 ‘형(形)’ 등 세 가지로 요약되는데, 모두 정(情)과의 관계 구도 속에서 ‘정(情)’을 귀착점으로 하고 있음을 밝혔다. 그리고 소상팔경을 노래한 시조와 한시에서 ‘경(景)’이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나는지를 비교 검토하였다. 그 결과 시조가 시적 자아를 출발점으로 하여 발화의 상대를 귀착점으로 하고 있는 대화의 어법을 지향하는 반면, 한시는 대상인 경(景)을 출발점으로 하여 시적 자아를 귀착점으로 하고 있는 독백의 어법을 지향하고 있는 양식적 특성을 드러냈다. 정운채,「윤선도의 시조와 한시의 대비적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논문, 1993. 이 논문에서 시조와 한시의 양식적 특징을 명료하게 밝힌 바 있다.
이를 통해 한시의 ‘경(景)’은 한시론에서 논하고 있는 경(景)의 범주에서 설명이 가능하지만, 시조의 경(景)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논증하면서 한시론과는 영역을 달리하는 시조론의 마련을 요청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정운채,「瀟湘八景을 노래한 시조와 한시에서의 景의 성격」『국어교육』79·80, 1992.

정용수는 이후백의 시조「소상팔경가(瀟湘八景歌)」를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이 논문에서 고려시대 이인로, 진화, 이제현과 조선조 강석덕의 소상팔경시를 전범(典範)으로 삼고 이들의 작품들을 여덟 장면의 시제(詩題)별로 대비시킨 후, 이후백의 시조 작품 8수를 변증(辨證)하였다. 그 결과 소상야우(瀟湘夜雨), 평사낙안(平沙落雁), 동정추월(洞庭秋月), 원포귀범(遠浦歸帆)을 제외한 나머지 네 작품인 산시청람(山市晴嵐), 연사모종(煙寺暮鐘), 어촌낙조(漁村落照), 강천모설(江天暮雪)은 이후백의 작품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자세를 신중하게 드러냈다. 정용수,「李後白의 瀟湘八景歌 辨證」,『文化傳統論集』, 경성대 향토문화연구소, 1993.
이와 함께 강희맹(姜希孟)이 익재(益齋) 이제현의 무산일단운(巫山一段雲) 형식의 소상팔경시를 차운한 작품을 대상으로 연구했다. 그 결과 무산일단운 형식의 소상팔경은 두 가지 방식으로 가창되었음을 지적했다. 하나는 익재의 구법(句法)을 따라 차운한 방식이며, 다른 하나는 조선식으로 악부화(樂府化)한 방식이다. 이들 모두가 가창(歌唱)하기 위한 방식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밝혔다. 정용수,「瀟湘八景의 文學的 性格」『私淑齋 姜希孟 文學硏究』, 국학자료원, 1993, 138-151쪽.

류재일은『춘향전(春香傳)』의 이본(異本) 가운데, 판소리계 소설인『남원고사(南原古詞)』를 대상으로 익재 이제현의 한시(漢詩) 소상팔경이『남원고사』의 서사체계 내에서 어떤 작용을 하며, 그 작품적 가치를 고조시키게 하는가 하는 문제를 논의였다. 그 결과 소상팔경이 본래 작품으로부터 일정한 변화를 통해 판소리계 소설이 추구하는 다채로운 미감을 창조하고 있다는 사실과 작중 인물인 이도령과 독자들에게 팔경(八景)의 순차적인 대치 과정을 통해 그들로 하여금 시간과 공간적으로 확대된 현실의 다층적인 세계를 조망케 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아울러『남원고사』에 삽입된 소상팔경은 이제현의 작품에 일정한 사설을 부가시킨 서사 기법을 통해 그 정경을 피사체와 같은 모습으로 재조직함으로써, 대중소설의 면모를 지닌 판소리계 소설에 적합한 작품적 분위기를 창출했다고 평가했다. 결국 익재의 소상팔경을 수용한『남원고사』의 소상팔경은 판소리계 소설의 구성 요소로서 존재하며『춘향전』이 지닌 문학적 아름다움을 고조시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류재일,「李齊賢의 작품을 수용한『南原古詞』의 <쇼상팔경> 연구」『淵民學志』제2권, 1994.

임재완은 임창순이 1989년 학계에 공개한『비해당소상팔경시첩(匪懈堂瀟湘八景詩帖)』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관심 있는 연구자들에게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편의를 제공하였으나 조금 더 세밀한 주석 작업이 필요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임재완,「匪懈堂<瀟湘八景詩帖>飜譯」,『호암미술관연구논집』제2집, 1994.

최경환은 앞서 살핀 1991년의 연구에 이어 제화시(題畵詩)의 이미지 재산출(再産出)에 있어서 시적 화자의 기능과 시의 길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고 최경환,「題畵詩의 이미지 再産出에 있어서 시적 화자의 기능과 길이」『淵民學志』제2집, 1994.
, 이어서 다시 한 번 이인로와 진화의「송적팔경도(宋迪八景圖)」시(詩)를 대비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화면상의 이미지를 재산출하는 방향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 하나는 화면상의 이미지라는 시적 대상의 객관성을 강조하는 방향이고, 다른 하나는 화면상의 이미지를 음미하는 시인 자신의 주관성을 강조하는 방향임을 언급하면서 전자를 강조하는 시들은 주로 화면상에 그려진 경물들의 상태를 묘사하는데, 이로 인해 경물이 보이는 상태의 구체성이 시에서 부각되는 반면 후자를 강조하는 시들은 주로 화면상에 그려진 경물들의 상태에 대한 감각적 인상이나 그 경물의 상태로 인해 촉발된 화자의 내면 상태가 부각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아울러 화면상의 이미지를 재산출하는 방향은 시적 화자의 유형과 시의 길이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화면상의 이미지라는 시적 대상의 객관성을 강조하는 시들, 즉 화면상에 그려진 경물들의 상태를 묘사하는 시들은 주로 시적 화자의 감각에 지각된 경물들의 상태를 묘사하고, 이때 시적 화자는 주로 외재적 화자나 내재적 화자가 설정되고, 시형으로는 비교적 장형의 시가 선택됨을 지적했다. 반면 화면상의 이미지에 대한 시인 자신의 인상을 표현하는 시들은 주로 경물들의 상태에 대한 화자 자신의 시각적 인상과 그 경물들의 상태로 말미암아 촉발된 화자 자신의 내면상태를 표현한다. 이때 시적 화자는 주로 극화된 화자가 설정되고, 시형으로는 비교적 장형의 시가 선택되는 원리를 규명했다. 최경환,「李仁老와 陳?의『宋迪八景圖』詩 對比」『한국고전연구』제1권, 1995.

김성룡은 이론과 작품 그리고 이론과 작품을 통괄한 기본성향이라는 항목을 설정하여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이르는 문학사상을 연구하였다. 그는 이 연구의 작품론에서, “조선 왕조의 장엄한 문물을 노래한 문학은 권근을 지나면서 두 갈래로 나뉜다. 그 하나는 경물의 공간적인 확대로서 전 국토에 걸친 관심의 확대라고 한다면, 다른 하나는 주변 경물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내밀한 기쁨을 발산하는 문학이라 하겠다.” 김성룡,『여말선초의 문학사상』, 한길사, 1995, 164쪽.
며 서거정을 위시한 일련의 흐름을 지적하며 ‘승경(勝景)’의 노래라는 항목을 설정했다. 또한 이론적 측면에서는 ‘성시산림의 의식세계’라는 항목을 통해서 소상팔경을 다루고 있다. 이 논의를 통해서, “시운론자들은 경물시를 통해서 경물로부터 촉발된 안온하고 화려한 정서를 그려내는 데 치중한다. 그런 시작법은 주제를 드러내는 데 치중하는 시작 태도와 대조된다. 시운론자들은 시 창작의 소재로 삼은 경물, 곧 미적 대상은 그 대상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상태로 현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적 대상은 그 이상과 현실이 완벽히 조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적 대상의 내용은 곧 형식으로 발현되어 나왔다는 것이 된다. 이런 경물로부터 받은 미감 또한 가장 이상적인 감정이다. 나아가 대상과 감정은 이 둘을 그렇게 되도록 명한 광악지기로 말미암아 서로 같은 범주인 것이 발견되었다. 대상은 표현해야 할 주제인 것이고 대상에서 받은 흥취는 곧 대상의 더할 나위 없는 양상을 노래한 아름다운 노래가 되고 만다. 그러니 흥취가 곧 주제인 것이고, 표현해야 할 주제는 이미 대상적 존재로 환원되어 나타나 있는 것이다.” 김성룡,『여말선초의 문학사상』, 한길사, 1995, 231-232쪽.
라고 지적했다.
안장리는 우리나라의 팔경시(八景詩)에 주목한 일련의 연구 성과를 제출하였다. 한국에서의 팔경시 창작이 이루어진 고려 중기부터 전통이 확립된 조선 전기까지를 각각 형성기, 발전기, 집성기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형성기는 소상팔경시의 유행기로 당대의 문인인 이인로, 진화를 비롯하여 이규보 등이 소상팔경시를 지었고, 이규보의 소상팔경시 여섯 편은 자연의 묘사뿐 아니라 인간의 삶과 관계된 내용을 형상화함으로써 팔경시가 삶의 현실과 가까워지는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지적했다. 발전기는 이제현이 원나라 조맹부의 무산일단운을 받아들여 무산일단운 소상팔경시와 송도팔경시를 지은 때부터 조선 초기 신도팔경시가 지어진 시기까지로 규정하고, 이 시기에 팔경시의 공간을 한국으로 옮겼을 뿐 아니라 김극기의 한국팔경시를 이어 역사적 의식을 담았다고 평가했다. 집성기는 서거정에 의해 기존의 팔경시가 집성되며, 아울러 본인이 다수의 작품을 창작하여 팔경시의 전통을 확립하는 시기로 규정했다. 이 시기에는 소상팔경시에 대한 관심이 다시 제고되는 시기임을 언급하면서, 집현전 문단의 좌장격인 안평대군이 집현전 관료 문인들에게 소상팔경을 대상으로 한 그림과 시를 짓게 하여 고려 명종대의 성대한 일을 재현하는 등 소상팔경시의 부흥기를 맞이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이 시기에는 한국 팔경시와 소상팔경시가 조화롭게 공존하면서 한국팔경시의 창작이 확대되는 양상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安章利,「韓國八景詩 硏究」, 韓國精神文化硏究院 博士論文, 1997.
,『한국의 팔경문학』, 집문당, 2002.
이 논문에서는 한국의 팔경시를 중점 대상으로 삼고 있기에 소상팔경시에 대한 전반적인 자료 정리나 분석에 대한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예컨대, 안장리,『한국의 팔경문학』, 집문당, 2002, 37-38쪽에 정리되어 있는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의 목록은『한국문집총간』 1권에서 160권까지의 내용을 대상으로 정리한 것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는 다수의 작품이 누락되어 있거나 잘못 기재된 경우가 있어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예컨대,『한국문집총간(韓國文集叢刊)』제18권, 13쪽을 보면, 정희량(鄭希良)의『허암유집(虛庵遺集)』「소상팔경(瀟湘八景)」에 ‘산시청람(山市晴嵐)’을 비롯하여 소상팔경 작품 여덟 수가 실려 있지만 목록에는 누락되어 있다. 마찬가지로『한국문집총간』제19권 216쪽, 홍언필(洪諺弼)의『묵재집(?齋集)』에도 소상팔경 작품 여덟 수가 실려 있다. 아울러,『한국문집총간』제100권, 409쪽에도 정두경(鄭斗卿)의『동명집(東溟集)』에도 소상팔경 작품 여덟 수가 실려 있다. 또 바로잡아야 할 것은 나세찬(羅世纘)의 작품이 실렸다고 소개한『용문집(龍門集)』은 ‘나세찬’의 문집이 아니고, ‘조욱(趙昱)’의 문집이다. 착오(錯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 목록은『한국문집총간』만을 대상으로 삼은 것이기에 이인로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삼한시귀감(三韓詩龜鑑)』과『동문선(東文選)』그리고 강석덕의 소상팔경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동문선(東文選)』소재 소상팔경시에 대한 기록이 누락되었다. 뿐만 아니라, 안평대군의『비해당소상팔경시첩(匪懈堂瀟湘八景詩帖)』에 수록된 한시 작품들, 그리고『열성어제(列聖御製)』에 수록된 성종과 숙종의 소상팔경 작품들, 그리고『한국문집총간』의 형식으로 묶이지 못한 개인 문집, 아울러 중인(中人) 계층의 시선집인『소대풍요』와『풍요속선』『풍요삼선』등에 수록된 소상팔경시에 대해서까지는 미처 정리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천이두는「춘향가」의 ‘몽중가(夢中歌)’를「심청가」의 ‘소상팔경(瀟湘八景)’ 지나갈 제와 대비하면서, 여주인공의 삶의 발전과정과 관련하여 고찰하였다. 결론을 요약해보면, 첫째, 심청과 춘향은 다같이 역대의 열녀와 열사들 혹은 열녀들을 만나는데, 예외 없이 천추의 한(恨)을 품은 원혼들이다. 그들이 심청과 춘향에게 그 억울한 사연을 호소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말하자면 그 원혼들은 심청과 춘향에게 ‘넋두리’를 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심청과 춘향은 그 원혼들을 위무(慰撫)하는 샤먼의 기능을 행사하고 있으며 이는 판소리 안에 무가적(巫歌的) 요소가 담겨 있음을 반증하는 사실로 보았다. 둘째, 이 소상팔경의 대목이 나오기 전까지의 서사맥락은 심청과 춘향이 엄청난 한(恨)을 안고 살아가는 상황에 놓여 있지만 이 대목을 통해 한(恨)을 삭임으로써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나갈 수 있게 된다는 점, 그리고 이 장면에서 열녀, 열사들은 심청과 춘향에 대한 격려자들이며, 새로운 삶의 영위를 위한 스승들로 등장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열녀, 열사들의 원억(?抑)한 한(恨)은 샤먼 기능을 담당하는 심청과 춘향에게 쏟아내는 넋두리로써 풀이를 이루고, 심청과 춘향은 열녀, 열사들이라는 격려자 내지 스승을 만남으로써 자기들의 한을 삭일 수 있게 된다. 이를 무속적 관점에서 보면, 사자(死者)인 역대 원혼들의 한 풀이는 생자(生者)인 샤먼 곧 심청과 춘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수동적인 것이지만, 심청과 춘향의 한의 삭임은 열녀, 열사들의 격려와 교훈을 받기는 하지만 결국 심청과 춘향 자신들의 주체적 가치지향성에 의해 이루어지는 능동적 의지임을 간과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千二斗,「<춘향가>의 ‘몽중가’소고-「심청가」의 소상팔경 지나갈제와 관련하여」『판소리연구』8집, 판소리학회, 1997.

박일용은 판소리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확실하게 담고 있는 것이 판소리 사설이라는 전제 하에, 판소리 사설 또는 판소리계 소설이 어떤 경로를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가를 추적하는 작업의 일환으로「심청가」가운데 가장 애호를 받아 온 ‘강상 풍경’ 대목의 변이 양상을 고찰했다. 심청가에서 심청이 심봉사와 이별하고 인당수로 가는 과정에 등장하는 강상 풍경 가운데, 이른바 ‘범피중류’라 불려지는 더늠을 대상으로 한 연구물이다. 그 결과 많은 이본(異本)들에는 현행 판소리에서 불려지지 않는 ‘소상팔경’과 같은 대목이 들어 있으며, 한편으로는 현전 창본이 거의 이 이본군(異本群)을 바탕으로 사설을 짜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을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본군은 이전 단계에 필사본이나 판소리 창본으로 불려지던 심청전 이본들을 종합하여 가장 확대된 형태로 정리한 판소리 대본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동시에 이러한 이본 군과 같이 식자층(識者層)이 완정한 형태로 교합보정을 한 대본을 바탕으로 하여 판소리 창자들이 새로운 음악을 창작하여 더늠을 확장함으로써 판소리사의 전개가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을 했다. 박일용,「<심청가> ‘강상 풍경’ 대목의 변이 양상과 그 의미」『판소리연구』제7집, 판소리학회, 1997.

김신중은 소상팔경의 관습시적 성격이라는 주제에 대해 고찰하였다. 논문은 소상팔경가의 제작 관습에 대해서 먼저 고찰한 후에 이후백의 소상팔경 시조와 임억령의 한역시를 대상으로 논의를 전개했다. 논의 결과, 고려 때부터 창작된 소상팔경가는 자체 내의 성격 변화를 겪으면서 조선 후기로 이어지는데, 그 변화 양상은 사실적 서경성(敍景性)을 중시하는 태도에서 관념적 서정화(敍情化)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음을 지적하면서, 이 과정에서 특히 강화된 관념적 성향은 열절(烈節)을 앞세운 윤리성임을 주장했다. 이는 이후백의 시조를 임억령이 한역(漢譯)한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는데, 개작의 배경으로는 조선 중기 사림파의 진출과 그에 따른 재도적(載道的) 문학관의 강화라는 시대적 사조가 작용했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이후백의 시조와 임억령의 한역가는 소상팔경가의 변모 과정에서 파생된 두 유형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이 두 유형은 다시 후대의 가사체 작품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고 평가했다. 金信中,「瀟湘八景歌의 관습시적 성격」,『古詩歌硏究』제5집, 한국고시가문학회, 1998.

전경원은「평사낙안(平沙落?)」을 필두로 세 차례에 걸쳐 소상팔경 관련 논의를 진행하였다. 논의의 출발은 소상팔경이라는 제목 아래 존재하는 여덟 장면을 노래한 구체적 작품들의 공통점은 무엇이고, 각각의 장면들을 통해 역대 문인들이 말하고자 했던 함의(含意)가 무엇인가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고 연구를 진행했다. 평사낙안을 토대로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전체 작품 가운데 압도적인 수의 작품이 서경(敍景)보다는 서정(敍情)에 치우치고 있으며, 현실적 삶에 대한 시선이 많은 부분 작품에 반영되고 있음을 확인했다.「평사낙안」이라는 제목을 통해 작품을 노래할 때는 주로 ‘출처진퇴(出處進退)’ 내지는 ‘처세(處世)’의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이처럼 소상팔경에 속한 각각의 장면들을 시로 읊을 때 시인들은 어떠한 내용을 담아내고 있었는가 하는 점에 초점을 맞춘 논의였다. 그러나 당시에만도 지속적으로 소상팔경에 대한 다양한 갈래의 자료들이 끊임없이 정리되는 단계였기 때문에 포괄적이며 체계적인 논의를 마련하기에는 부족한 상황이었기에 아쉬움이 많았고, 논의를 진전시키기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田京源,「瀟湘八景의 含意와 情緖的 寄與 - ‘平沙落?’을 중심으로」『겨레어문학』27집, 2001.
,「瀟湘八景의 含意와 情緖的 寄與 - ‘洞庭秋月’을 중심으로」『겨레어문학』28집, 2002.
,「瀟湘八景의 含意와 情緖的 寄與 - ‘漁村落照’를 중심으로」『겨레어문학』29집, 2002.

여기현은 앞서 살핀 바와 같이 1990년부터 시작된 관련 연구에 이어서 소상팔경의 수용과 양상, 잡가(雜歌) 소상팔경의 형상화 특성, 소상팔경의 시적 형상화 양상 呂基鉉,「瀟湘八景의 시적 형상화 양상」,『泮橋語文硏究』제15집, 泮橋語文學會, 2003.
등을 다시 논의하였다. 소상팔경의 수용과 양상에서 기존 논의와 구별되는 점은 고려 중기 이후 소상팔경을 수용함에 있어서 몇 가지 특징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한 부분이다. 우선 팔경의 배열이 초기에는 자연의 사계절에 따른 배열을 보이지 않던 것이 조선 초기에 와서 사계절의 순환에 따라 팔경을 배열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이를 조선조 사대부들의 성리학적 인식론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래서 작품 내에 시간과 계절을 알 수 있는 시어(詩語)를 조어(造語)함으로써 작품의 유기성을 획득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현상은 무엇보다도 ‘소상팔경’에 가보지 못한 조선조 사대부들에게 있어 이미 관념화되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판단했다. 呂基鉉,「瀟湘八景의 受容과 樣相」『中國文學硏究』제25집, 韓國中文學會, 2002.

잡가(雜歌) 소상팔경의 형상화 특성이라는 논문은 시대에 따라 장르에 따라 또 개인적 감성에 따라 표현미학이 다를 것이고, 동일한 시적 대상에 대해 형상화하는 방식도 각기 다를 것이라는 전제하에 시도된 연구였다. 그 결과, 잡가로 창작되고 불려진 소상팔경가(瀟湘八景歌)는 그 노랫말이 창자의 다양성과 달리 획일화 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이는 연행문학의 특성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가 소상팔경가의 노랫말이 보여주는 형상화는 음영문학(吟詠文學)인 한시(漢詩)와는 달리 가창문학(歌唱文學)으로서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것은 형상화에 있어 매우 상세하고 실감있는 묘사를 통해 팔경 각각의 주제를 핵심적으로 집약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냈다. 呂基鉉,「雜歌 <瀟湘八景>의 形象化 特性」,『人文社會科學論文集』제31집, 광운대 인문사회과학연구소, 2002.

소상팔경이 시적 형상화 양상에서는 소상팔경을 시적 대상으로 노래한 시가들의 형상화 양상을 분석했다. 그 결과 시적 대상에 대한 시인의 태도에 따라 크게 두 가지 형상화 양상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언급하면서, 하나는 ‘이물관물적(以物觀物的)’ 태도로 시적 대상과 객관적 거리를 두고 그대로 묘회 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이아관물적(以我觀物的)’ 태도로 객관적 거리를 감정이나 관념으로 대신하여 인식하는 형상화 방식임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소상팔경을 노래한 시는 수용 초기에는 ‘이물관물적(以物觀物的)’ 태도를 보이며 소상팔경의 아름다움을 묘회 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다가, 후대로 오면서 개인의 감정이 이입되는 ‘이아관물적(以我觀物的)’ 태도로 형상화의 길을 걸었다고 정리했다. 그리고 더 후대로 내려오면서 소상과 관련된 전고를 인식하는, 즉 관념화의 방향으로 형상화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았다. 呂基鉉,「瀟湘八景의 시적 형상화 양상」,『泮橋語文硏究』제15집, 泮橋語文學會, 2003.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통시적 관점에서 작품 전체를 조망할 때, 작품의 실상과 일치하는 진술인지 아니면 시대와는 무관하게 작가마다의 개성이나 문학관 내지는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보다 면밀한 검토가 요망된다고 하겠다.
정민은 16·17세기 조선 문인지식층들이 중국의 강남(江南)과 서호도(西湖圖)에 깊이 빠져있던 문화적 현상에 주목하여 논의를 전개하였다. 이를 통해 관념 속의 상상인 점에서는 전대에 성행했던 소상팔경도와 다를 바 없었지만, 소상팔경이 구체성을 결여한 관념적 상상에 가까웠다면, 서호(西湖)는 보다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구상성과 지향성을 띤 공간이었음을 언급했다. 이는 미시적(微視的) 관점에서 볼 때, 잇단 사화(士禍) 끝에 치열한 당쟁과 전란의 참화는 지식인의 내면에 깊은 그늘을 드리웠고, 이는 현실에 대한 혐오와 환멸을 불렀으며, 시대문풍과의 연관 아래 문학을 통한 낭만적 탈출을 꿈꾸면서 중국 강남은 이국정서를 부추기는 관념상의 유토피아로 자리 잡게 되고, 특히 서호는 지닌 바 고사적, 은일적 이미지로 인해 동경과 선망의 공간으로 자리매김 된 결과임을 지적하였다. 정 민,「16·7세기 조선 문인지식인층의 江南熱과 西湖圖」『고전문학연구』제22권, 한국고전문학회, 2002.

류수열은「수궁가」소재 노정기의 존립과 변이라는 연구를 통해, 수궁가의 노정기인 ‘고고천변’과 ‘범피중류’, ‘혼령대목’을 창본(唱本)에 따라 살펴보았다. 그 결과「수궁가」에 본래부터 내재해 있던 ‘고고천변’이 창본에 따라 큰 차이가 없는 사설을 가지고 있는 반면,「심청가」에서 유입된 나머지 더늠은 상대적으로 삭제, 확장, 축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러한 이유는 구성상의 필연성, 인물의 행위 또는 심리와의 조응의 차이에서 말미암는다고 판단하면서, 결과적으로 이러한 점이 창으로 구성되는 각 더늠의 상대적 독자성을 낳는다고 주장했다. 류수열,「<수궁가>소재 노정기의 존립과 변이」『판소리연구』제14집, 판소리학회, 2002.

김남기는『열성어제(列聖御製)』에 실린 조선 국왕의 제화시(題畵詩)』를 대상으로 연구했다. 그는 이 논문에서 역대 국왕의 그림과 제영(題詠) 한시를 살펴보고, 국왕 제화시의 전개양상과 역사적 의미를 고찰하였다. 그런데 열성어제에 수록된 제화시문 편수를 정리하여 제시하면서, “제화시문 편수의 경우 시제(詩題)에 도(圖)나 화(畵) 등 그림임이 분명하거나 내용상 그림을 보고 지은 경우로 한정하였다. 따라서「소상팔경(瀟湘八景)」,「관동팔경(關東八景)」처럼 제화시로 추정되지만 불명확한 경우는 편수에서 제외하였다.” 김남기,「『列聖御製』에 실린 조선 국왕의 題畵詩 연구」『한국문학논총』제34집, 2003, 310쪽 각주 5번 참고.
고 했는데, 이럴 경우 소상팔경시를 먼저 짓고, 화가에게 그림을 그리게 한 성종대왕의 작품이나 그림을 보고 창작한 성종대왕의 작품과 같은 경우는 제화시의 범주에서 제외되었다. 그런데,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보고 시를 창작한 경우에만 제목에 반드시 ‘도(圖)’나 ‘화(畵)’자(字)를 사용했던가? 말하자면 소상팔경(瀟湘八景)을 그림으로 체험했던 문인들이 관념화된 소상팔경의 모습을 추체험(推體驗)에 의거 작품으로 재현할 경우에는 시제(詩題)에 ‘도(圖)’나 ‘화(畵)’라는 표제를 사용할 수 없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하여튼 연구자는 결론을 통해, 제화시라는 문학적 양식을 통해 국왕의 문예적 취향을 드러내는 한편 정치적 지향을 보여준 것이 조선 후기 국왕 제화시의 특징이라고 정리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면서 국왕 제화시의 비중이 현저하게 약화되면서 이러한 경향이 거의 사라지는데, 이는 19세기 중반부터 세도정치가 강화되면서 군권(君權)이 약화된 것과도 상당히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보다 엄정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金南基,「『列聖御製』에 실린 조선 국왕의 題畵詩 연구」『한국문학논총』제34집, 2003, 332쪽.

지영재는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이 14세기 원나라 때 대륙을 가로질러 사천성 아미산까지 여행을 하고 나서 엮은 시집『서정록(西征錄)』을 대상으로 작품 분석과 감상을 실은 성과물을 제출했다. 익재의 발자취를 따라 그대로 중국 현지를 답사하면서 작업을 완성했다. 그 가운데 익재의 무산일단운 소상팔경시에 대한 작품 소개와 해서 및 감상이 평이하게 수록되어 있다. 池榮在,『서정록(西征錄)을 찾아서』, 푸른역사, 2003, 479-508쪽, 542-548쪽 참고.

미술사 분야에서 축적해 놓은 연구 성과들을 점검해 보면, 안휘준의 연구는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연구로서, 후대 학자들에게 의미 있는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문학과 미술사 분야 모두 안휘준의 연구 성과로부터 출발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안휘준은 이 연구에서 소상팔경도의 기원과 우리나라에 전래된 배경, 소상팔경이 우리나라의 팔경문화 생성에 이바지한 점, 소상팔경의 특징과 각각의 화폭이 지닌 특색을 정리하여 소개했다. 아울러, 조선조 초기와 중기 그리고 후기와 말기로 구분하여 통시적 관점에서 소상팔경도 화폭들의 변화 양상과 그 의미를 설명했다. 安輝浚,「韓國 瀟湘八景圖 硏究」『韓國繪畵의 傳統』, 文藝出版社, 1988, 162-249쪽 참고.

강미숙은 우리나라의 소상팔경도에 나타난 미의식(美意識)을 중심으로 연구했다. 강미숙은 이 논문을 통해, “소상팔경도가 오랜 역사를 이어오면서 그 시대마다의 새로운 화풍을 우리의 미감(美感)에 맞게 적절히 수용하여 여과시키고 받아들여 재창출하는 품격 높은 회화로 표현되었음”을 지적하는 한편,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독자적으로 한국화(韓國化)하여 실경산수(實景山水)에서 주제만을 부각시키는 상징적인 의미만으로 표현하는 격조 있는 관념산수(觀念山水)로 이상화(理想化)시켰음” 강미숙,「韓國의 瀟湘八景圖에 나타난 美意識 考察」, 한남대학교 석사논문, 1992, 69-71쪽 참고.
을 밝히고 있다.
김순명은 조선시대 초기와 중기의 소상팔경도를 중심으로 논의하였다. 중국 회화의 수용을 통해 우리 회화의 독자성을 어떻게 확립했었는지 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변천 과정을 이해하고자 한 시도였다. 그 결과, 조선 초기에는 안견 파(安堅派) 화풍(畵風)으로 창작되다가 중기에는 안견파 화풍과 함께 절파(折派) 화풍으로 변모되었고, 후기에 이르러서는 남종화풍(南宗畵風)을 구사하여 시대양식을 반영함과 동시에 화가에 따른 개인 양식을 다양하면서도 뚜렷하게 형성함으로써, 중국의 고전적 주제를 수용하여 우리의 것으로 재창조하고 변화, 발전시켰음을 고찰하였다. 金順明,「朝鮮時代 初期 및 中期의 瀟湘八景圖 硏究」, 홍익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석사논문, 1992.

송희경은 중국 남송(南宋)의 시대적 배경을 고찰하면서, 당대(當代) 사상적 배경과 소상팔경도에 담긴 선적(禪的)인 요소의 고찰을 시도했다. 그 결과, 소상팔경도는 단순하게 이상화된 산수화도 아니고 사실적인 산수화도 아니며, 작가와 자연 사이에 교류가 이루어진 심상(心象)의 산수화이자 평상심(平常心)을 강조하는 선사상(禪思想)에 바탕을 둔 것임을 드러내었다. 아울러 소상팔경도는 일격화(逸格畵)의 옷을 빌어서 나타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남송의 소상팔경도는 일격산수화(逸格山水畵)의 확립에 있어서, 동시에 소상팔경도에 있어서 전형적인 모태가 되고 있음을 언급했다. 宋熹暻,「中國 南宋의 瀟湘八景圖와 그 淵源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 1993.
그 이후에 발표한 논문에서는 소상팔경과 문학과의 관계를 검토하였다. 굴원(屈原)의「초사(楚辭)」로부터 유우석(劉禹錫)의「죽지사(竹枝詞)」, 선(禪) 승려 혜홍(惠洪;1071-1128)의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와 옥간(玉澗;南宋 英宗年間 活動)의 칠언절구 작품 등을 소개하였다. 「초사」가운데 특히 ‘구가(九歌)’에서는 순임금과 아황·여영의 고사에서 비롯된 이별의 슬픔을 굴원 자신이 좌천된 감정에 비유했음을 지적하면서, 유우석 역시 이 고사를 중심으로 소상강을 이별의 상징으로 간주하고 슬픔과 외로움의 상징으로 반죽(斑竹)을 소재로 하였음을 언급했다. 아울러 남송 이전의 소상팔경도를 정리한 후, 송적(宋迪)의「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대상으로 문헌자료를 토대로 정밀하게 고증하였다. 宋熹暻,「南宋의 瀟湘八景圖에 관한 연구」『美術史學硏究』, 한국미술사학회, 1995.

김지혜는 현재 일본(日本) 문화청(文化廳)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김현성(金玄成;1542-1621)의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대상으로 고찰했다. 이 그림은 고려시대 진화(陳?)의 시(詩)를 김현성이 직접 그림에 옮겨 적었고, 손수 그림을 그렸다는 점에서 시서화(詩書畵)가 함께 어우러진 작품이다. 편파구도에 있어 분리된 2단 구도가 아닌 응축된 덩어리를 이루는 구도, 조선전기 안견파 산수화의 특징인 확대지향적인 공간감을 자아내지 않고 산세나 경물들 간에 짜임새 있는 유기적 화면을 구축하면서 깊이감이 부각되어 있다는 점, 산봉의 표현에 절파적 필묵법이 보이는 점 등을 들어 16세기 중반 이후의 작품으로 고증했다. 金智惠,「日本 文化廳 所藏 金玄成贊 <瀟湘八景圖> 考察」『美術史學』14호, 한국미술사교육연구회, 2000.

이상남은 재일교포로 호(號)가 사천자(泗川子)인 김용두(金龍斗)씨가 소장하고 있던「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중심으로 조선 초기 소상팔경도를 고찰했다. 이 논문은 15세기 후반 우리 화단의 경향을 살피고자 하는 의도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현재 남아있는 대부분의 작품들이 16세기 전반기 이후의 작품들이기 때문에 그 실상을 검토하기 어려웠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화시(題畵詩)’라는 한시(漢詩) 갈래에 주목하였다. 현존하는 제화시를 통해 15세기에도 다양한 소상팔경도가 전개되었고, 화풍 상으로 소상팔경의 화풍과 당시 일반 산수화의 화풍이 깊이 관련되며 소상팔경의 특징적 모티프들이 일반 산수화(山水畵)에서 자주 그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아울러 조선 초기 소상팔경도의 면밀한 연구를 위해 영향관계가 추측되는 원대(元代)의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추적했고, 그 결과 현재까지의 연구 성과와는 달리 원나라 말기는 소상팔경을 대상으로 한 시와 그림이 매우 유행하였고, 특히 만권당(萬卷堂)을 통해 고려의 이제현(李齊賢)등과 교류했던 주덕윤(朱德潤), 조맹부(趙孟?), 우집(虞集) 등이 소상팔경(瀟湘八景)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었던 사실을 문헌기록과 소상팔경도의 제화시를 통해 확인했다. 결국 조선 초기 소상팔경의 유행은 원나라 말기, 명나라 초기 중국의 소상팔경의 유행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었음을 드러냈다. 李相男,「朝鮮初期 瀟湘八景圖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 2000.

장계수는 조선후기에 등장한 소상팔경도에 주목하여 논의를 전개했다. 소상팔경도의 기원과 수용을 살핀 후, 조선후기 소상팔경도와 소상팔경시의 관계를 고찰하였다. 그리고 조선후기를 세 시기로 구분하여 소상팔경도가 각 시기마다 어떤 양식적 특징을 지니고 있었는가 하는 점을 고찰하였다. 가장 특징적인 변화로 제시한 것은 조선후기에 이르러 표현방법에서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다른 경물들을 과감하게 삭제하는 현상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조선후기의 실용적 사고가 바탕이 되어 주제를 더욱 명확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경향과 상통한다고 지적했다. 張桂秀,「朝鮮後期 瀟湘八景圖에 대한 硏究」,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 2000.

이처럼 미술사학 분야에서의 연구 성과는 중국 남송(南宋)때의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와 그 연원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있었다. 또한 조선시대 전기와 중기 그리고 후기에 제작된 소상팔경도의 양식과 기법, 화풍(畵風), 수용양상 등 다방면의 연구와 검토, 그리고 고증(考證)이 이루어졌다. 뿐만 아니라 일본(日本)이나 미국(美國)에 소장되어 있는 소상팔경도 작품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연구 성과가 마련되어 있다.
다음으로 음악 분야에서의 연구 성과는 서인화에 의해 처음 마련되었다. 서인화는「단가 소상팔경 연구」라는 논문을 통해 고음반(古音盤)에 녹취된 세 가지 소상팔경 중에, 판소리 심청가 중의 소상팔경과 가야금병창 소상팔경은 현재 심청가의 범피중류 혹은 범피중류와 혼령상봉 대목을 담고 있음을 고찰했다. 반면에 단가 소상팔경은 사설 구성에 있어서는 시(詩)와 화(畵)의 한 소재로서의 소상팔경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소상팔경도와는 그 팔경의 순서와 수록 내용의 차이를 보인다. 동편제의 정춘풍에서 시작하여 송만갑을 중심으로 전승된 단가 소상팔경은 대부분 송만갑에게 배운 명창들의 고음반에서 담담한 우조와 붙임새, 그리고 꿋꿋하고 거뜬거뜬한 흐름으로 동편제적인 성격을 반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인화,「단가 소상팔경 연구」,『韓國音盤學』제10호, 한국음반학회, 2000.

넷째, 문학과 회화를 동시에 아우르고자 했던 시도는 조은심과 고연희 등에 의해 마련되었다. 조은심은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와 함께 고려시대로부터 조선 후기까지의 방대한 분량의 문집 가운데서 ‘소상팔경’을 노래한 한시 299수를 토대로 ‘소상팔경도’의 유래와 수용, 시대적 변천과 변이 양상을 살폈고, ‘소상팔경시’를 대상으로는 시대적 변천과 변이 양상 그리고 장면별로 검토하였다. 아울러 소상팔경도와 소상팔경시를 대상으로 장면별 비교와 분석을 실시했다. 趙銀心,「瀟湘八景圖와 瀟湘八景詩의 比較 硏究」, 건국대학교 석사논문, 2001.

고연희는 시와 그림으로 수용된 소상팔경과 궁중으로부터 양반가의 유행을 거쳐 향유층의 저변확대를 이루어 나간 소상팔경도와 소상팔경시를 통시적 관점에서 접근하여 고찰하였다. 궁중의 화풍(畵風)과 한시(漢詩), 양반가의 화풍과 시조(時調), 향유층의 확대를 통한 민화(民畵)류로의 확대와 가사(歌辭), 수용의 시공간적 변화와 그 의미의 항목을 설정하여 논의를 전개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도식화한 혐의를 피하기 어렵고, 미술사와 문학사에서 기존에 논의되었던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못한 채 통시적 관점에서 기존의 연구 성과를 정리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고연희,「瀟湘八景, 고려와 조선의 詩 · 畵에 나타나는 受容史」,『동방학』제9집,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2003.

도시공학적(都市工學的) 관점에서 접근한 연구 성과는 최기수에 의해 마련되었다. 이 논문에서는 전체 논문 가운데 4장을 경(景)에 나타난 한국의 전통 경관(景觀)이라 설정해 놓고, 우리 전통 문화 속의 ‘경(景)’에 대한 관점을 고찰했다. 이러한 시각을 바탕으로 소상팔경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소상팔경이라는 중국의 경(景)을 수용했지만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인 수용이 아니라, 우리만의 것으로 변천을 이루었다는 지적과 함께 우리 선조들이 자연을 보고, 느끼고 또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상황을 소상팔경이라는 틀에 맞추지 않고, 우리의 경(景)에 대한 전통을 확립할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종래에 마련되었던 미술사나 문학사의 연구 성과가 충실하게 반영되지 못한 채 기존의 범주 내에서 논의가 전개되었던 점이 아쉬운 대목이다. 최기수,「曲과 景에 나타난 한국전통경관구조의 해석에 관한 연구」, 한양대학교 박사논문, 1989.

해외(海外)에서의 소상팔경에 대한 연구 성과를 검토해 보면 간혹 미국(美國)을 위시로 유럽의 관심은 있어 왔지만 주된 연구와 성과는 동아시아 삼국(三國)인 한국(韓國)과 중국(中國) 그리고 일본(日本)에서 비교적 활발한 편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중국(中國)에서의 소상팔경에 대한 연구는 한국(韓國)이나 일본(日本)에 비해서 비교적 한산해 보인다. 중국의 경우 김양모(金羊毛)의『中國山水畵 唐 · 宋 · 元 卷』에서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일부를 소개하고 있는 정도이다. 金羊毛『中國山水畵 唐 · 宋 · 元 卷』廣西美術出版社, 2000.
진굉(陳宏)도 『江湖』라는 책에서 개괄적 산수의 특징만을 언급하고 있다. 陳 宏 外,『江湖』, 百家出版社, 2002.
나름대로 소상팔경(瀟湘八景)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고 있는 책은 유금춘(劉金春)이 공저(共著)한『악록풍경명승(岳麓風景名勝)』이 있다. 劉金春 외,『岳麓風景名勝』, 中國 湖南文藝出版社, 1998.

주목할만한 연구 성과로는 중국(中國) 동정호(洞庭湖) 이남의 호남성(湖南省) 소상(瀟湘) 강변에 위치한 호남대학교(湖南大學校) 출판부에서 간행한『호남여유문학명편선독(湖南旅游文學名篇選讀)』이라는 책에서 당시에 미불(米?)이 그림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구입하게 된 배경과 그가 쓴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가 함께 기록되어 있는「소상팔경도시병서(瀟湘八景圖詩幷序)」를 소개하고 있다. 이 자료에 의해서 최초로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그린 사람이 이성(李成;919-967)이었다는 사실과 여덟 개의 화제(畵題)를 바탕으로 시(詩)를 창작했던 최초의 문인이 미불(米?;1051-1107)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米?,「瀟湘八景圖詩幷序」,『湖南旅游文學名篇選讀』,中國湖南大學出版社, 2002.

일본의 연구 성과는 시마다(島田)의 초창기 연구 성과에 크게 의존하는 경향이 짙었다. 島田修二郞,「宋迪と瀟湘八景」『南畵鑑賞』104卷, 1931, 7쪽.
그 후로도 그다지 심도 있는 연구가 진행되지 않다가 근래에 들어 소상팔경(瀟湘八景) 연구에서 주목할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일본인 김택홍(金澤 弘)은 팔경도의 유래와 감상, 그리고 중국의 목계(牧谿)와 옥간(玉澗)의 작품 세계와 함께 설촌(雪村)과 설주(雪舟)라는 인물의 화풍(畵風)과 영향 관계 그리고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에 대해 간략히 언급했다. 또한 무로마찌(室町) 시대(時代)에 유행한 수묵화로서의 팔경도와 일본에서의 전개에 대해 서술했다. 金澤 弘,『雪舟の藝術 水墨畵論集』, 秀作社 出版, 2002年, 222-239쪽.

한국과 일본의 연구자가 공동으로 집필한『한국의 미술 일본의 미술(韓國の美術 日本の美術)』이라는 책은 ‘소상팔경(瀟湘八景)’의 개괄적인 내용을 다룬 입문서로서의 성격이 짙다. 鄭于澤 · ?木誠士,『韓國の美術 日本の美術』, 昭和堂, 2003年, 104-107쪽.

최초로 소상팔경 전반에 대해 종합적인 검토 아래 제출된 연구는 굴천귀사(堀川貴司)에 의해 마련된『소상팔경(瀟湘八景) - 시가와 회화에 보이는 일본화의 양상(詩歌と繪畵に見る日本化の樣相)』이라는 성과물이다. 이 성과물은 원전강독(原典講讀) 세미나의 연속물로 간행된 책이었다. 이 책에서 ‘소상(瀟湘)’과 ‘팔경(八景)’의 기원과 유래, 중국에서의 성립과 전개 과정, 조선(朝鮮)에서의 수용, 그리고 일본(日本)으로의 이입(移入) 등을 앞에서 다루었다. 나머지는 일본에서 수용된 여러 팔경 문화를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 堀川貴司,『瀟湘八景 - 詩歌と繪畵に見る日本化の樣相』, 臨川書店, 2002年.

이와 함께 주목(注目)되는 최근의 성과물(成果物)로는 좌등강굉(佐藤康宏)의 저서『강좌일본미술사3권-도상의 의미(講座日本美術史 3 - 圖上の意味)』라는 연구서(硏究書)가 동경대학교 (東京大學校) 출판부에서 간행(刊行)되었다. 그는 이 책에 실은 판창성철(板倉聖哲)의 「탐유(探幽)의 그림으로 본 동아시아 회화사(探幽縮圖から見た東アジア繪畵史)」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17세기 탐유(探幽;1602-1674)라는 문인 화가가 그린 소상팔경도와 일본에서 소장하고 있다가 재일 교포 사업가인 김용두(金龍斗) 옹(翁)이 우리나라 진주국립박물관에 기증한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포함하여 한(韓), 중(中), 일(日) 세 나라의 그림과 함께 비교적 상세하게 논의했다. 佐藤康宏,『講座 日本美術史 3 - 圖上の意味』, 東京大學出版會, 2005年 6月, 111-138쪽.

그러나 이상에서 살펴본 국외(國外)의 연구 성과물에서도 소상팔경(瀟湘八景)의 개별 시제(詩題) 내지 화제(畵題)가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혹은 어떤 서사적 맥락을 그려 놓은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논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까지 문학 분야, 미술사 분야, 음악 분야, 문학과 미술을 아우르고자 한 분야, 도시공학 분야, 국외의 연구 성과 등 여섯 분야로 나누어 각 분야별 연구 성과를 발표 순서를 기준으로 검토하였다. 정리하자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최초로 이희승(李熙昇)의「가사(歌詞) 소상팔경(瀟湘八景) 해설(解說)」로부터 소상팔경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한국 미술사 분야에서 안휘준(安輝濬)의 연구 성과에 탄력을 받아 미술 분야와 문학 분야에서 일정 부분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조금 더 세밀하게 연구 성과를 들여다보면, 미술사 분야에서 이루어진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의 여덟 장면들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에 비해 문학 분야에서의 접근은 아직 구체적 작품을 대상으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직접 보면서 시적 감흥이 떠올라 시를 창작했는데, 이때 시인들은 그림의 어떤 점을 보고 감흥이 일어나는가? 아울러 각각의 화제(畵題)들은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에 천 년 이상의 기간동안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가? 하는 점에 대한 규명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질 못했다. 실례로 현재까지 제출된 문학 분야의 논문(論文)에서 분석 대상으로 삼거나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는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 작품들을 확인한 결과, 현재까지 확인된 전체 550여 수 이상의 소상팔경 관련 시가문학 작품 가운데, 지금까지 발표된 논문에서 인용되고 있는 작품의 수는 기껏해야 총 80여 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전체 작품의 15% 내외에 해당되는 작품만을 지속적으로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소상팔경 시가문학에 대한 연구 결과가 과연 전체 작품의 실상을 대변할 수 있는 것인가? 아울러 연구결과의 대표성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또한 구체적인 작품 분석을 통한 논의보다는 이론적 측면이나 기타 갈래론, 화자론, 수용론 등에 치우친 논의 역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관점에서의 논의도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개별 작품들에 대한 작품론이 선행되어야만 여덟 장면에 대한 포괄적 논의가 가능해지고, 소상팔경(瀟湘八景) 시가문학(詩歌文學) 일반에 대한 논의도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이 논문에서는 지금까지 살펴본 기존 연구의 성취들을 최대한 수렴하면서 그간 마련되었던 연구 성과를 발판삼아 구체적 작품들을 대상으로 분석함으로써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의 형상화(形象化) 양상(樣相)과 의미 맥락을 밝혀보고자 한다.

1.3. 연구방법

연구사 검토에서 제기된 바와 같이, 지금까지의 소상팔경(瀟湘八景) 시가문학(詩歌文學)에 대한 연구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구체적인 개별 작품을 대상으로 분석하고, 그 의미를 추출해 내는 작업이 왕성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를 토대로 이 논문에서는 작품의 실상을 통해 소상팔경(瀟湘八景)의 여덟 장면들이 지닌 각각의 함의(含意)는 무엇이고, 소상팔경이라는 여덟 가지 시제(詩題)가 다양한 갈래의 시가 문학으로 형상화되었을 때, 주로 어떠한 방식으로 형상화 되고 있었는가 하는 점, 더 나아가 여덟 장면들이 ‘소상팔경(瀟湘八景)’이라는 하나의 시제(詩題)를 형성했을 때, 어떠한 의미 맥락을 유지한 채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하는 점, 그리고 우리 문학사에서 ‘소상팔경(瀟湘八景)’ 시가 문학이 어떠한 기능을 담당했었는가 하는 점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이 논문이 다른 논문과 변별되는 지점은 개별적이며 구체적인 작품론을 통해 소상팔경 시가문학을 일반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까지 정리된 550여 수에 해당하는 방대한 양의 작품을 대상으로 논의를 전개하며 작품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정치(精緻)한 연구 방법론의 마련이 요청된다. 오백 오십여 수에 해당하는 작품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분석하고, 그 의미를 도출하여 일반화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울러 소상팔경이라는 시제(詩題)아래 여덟 가지 개별 시제(詩題)가 존재하기 때문에 논의 순서는 여덟 가지 개별 시제에 속한 각각의 작품 실상을 먼저 분석하고 공통된 함의(含意)를 추출해야만, 이를 종합하여 ‘소상팔경’이라는 시제(詩題) 일반론으로 연구를 진척시킬 수 있을 것이다.
시조나 가사, 판소리, 잡가 등은 그 작품 수가 그리 많지 않으나 한시(漢詩)의 경우는 470여 수에 이르는 분량이기에 성급하게 일반화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체 작품을 총체적으로 조망하면서도 구체적인 개별 작품을 분석하고 의미를 도출해야 하는 과정이 요구된다. 그러나 작품의 양이 워낙 방대하여 전체 작품을 연구대상으로 삼기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이러한 연구방법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주목한 것이 바로 개별 작품 내에 형상화된 의미 있는 문체적 자질들에 주목하는 것이다. 문체적 자질이란 ‘시어(詩語)’나 ‘심상(心象)’ 즉 ‘이미지(image)’ 등이 해당된다. 말하자면, 시어(詩語), 시행(詩行), 율격(律格), 심상(心象), 그리고 심상(心象)이 언어화된 양태(樣態) 등 시학적(詩學的)으로 의미 있는 문체적 자질들을 분석하는 방법론이다. 이를 ‘문체시학(poetics of style)’이라고 한다. ‘문체시학(poetics of style)’이라는 방법론을 통한 연구는 고정희,『고전시가와 문체의 시학』, 도서출판 월인, 2004.에 의해 이미 마련되었다. 고정희는 이 책에서, “문체론이 언어학적 단위인 음운·형태·통사의 구조를 분석하는 방법론이라면, ‘문체시학(poetics of style)’은 시학적으로 의미 있는 문체적 자질들을 분석하는 방법론이라는 점에서 구별된다.”라 하여 문체론과 문체시학의 방법론적 차이점을 설명했다. 19-20쪽 참고.

이 방법론에 의거하여 논의를 전개하는 이유는, “결국 문학의 이해를 위해 필요한 문체론이란, 문학적으로 의미 있는 분석 방법인 동시에, 언어를 분석하는 객관적인 방법이 되어야 한다.” 고정희,『고전시가와 문체의 시학』, 도서출판 월인, 2004, 26쪽 참고.
는 진술에 전적으로 공감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논문이 해결하고자 하는 방법론적 난제(難題)를 해결하는 동시에 작품 분석의 객관성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대한 양의 작품을 대상으로 유의미(有意味)한 문체적 자질을 분석하는 작업이 가장 객관적인 방법론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요구되는 것은 어떤 기준으로 유의미한 문체적 자질들을 판단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점은 소상팔경(瀟湘八景) 시가문학(詩歌文學)이 처음부터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와 무관하게 생성된 시가문학(詩歌文學)이 아니라 회화(繪畵)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점을 우선 고려한 상태에서 판단해야 한다. 그림을 보고 시를 쓰거나, 시를 쓴 후 그림을 그리게 하거나, 그도 아니면 그림을 본 후 소상팔경에 대한 나름대로 오랜 시간과 함께 누적된 채 관념화된 소상팔경의 형상을 시로 썼거나 간에, 소상팔경 문학은 그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관계를 고려할 때, 분석의 단위와 기준은 문학 작품과 회화 작품의 두 측면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시가작품과 회화작품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시적 대상을 형상화하고 있는 시어(詩語)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러한 시어(詩語)를 분석하는 것은 곧 시적 대상에 대한 인식(認識)에 나아가는 과정이며, 더 나아가 작품의 전체적인 심상(心象)과 언술방식의 특징을 파악하기 위한 준비작업에 해당한다.
이 논문에서는 문체적으로 유의미한 자질에 해당하는 시어(詩語)의 분석을 통해, 시적 대상에 대한 인식(認識)을 점검하고, 작품 전체의 심상(心象) 그리고 언술방식에 나타나는 특징 등에 대한 고찰이 이루어질 것이다.
분석 기준은 크게 인물(人物), 건물(建物), 배경(背景)의 세 가지 범주를 설정하고, 이 범주에 포함되는 시적 형상화의 대상을 기준으로 삼고자 한다. 인물(人物)은 말 그대로 작품 속에 형상화된 사람의 모습뿐만이 아니라 작품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지는 않더라도 작품과 관련을 맺고 있는 인물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다. 예컨대, 발화자의 발화내용이 있을 경우 청자(聽者)는 작품 속에 등장하지 않더라도 발화 내용을 수용하는 인물로 상정될 수 있기에 분석대상 인물이 되는 셈이다. 건물(建物)은 가옥(家屋)이나 주점(酒店) 혹은 주막(酒幕), 정자(亭子), 성(城) 등 사람이 인위적인 노력을 통해 만들어낸 인공물이 이 범주에 속한다. 배경(背景)은 물질적인 것만을 이르는 것이 아니라 날씨나 기후조건(氣候條件)과 같은 자연현상(自然現象)과 산(山)과 바다(海), 계절(季節) 등 자연(自然)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처럼 작품 내에 다양한 양상으로 존재하는 인물과 건물과 배경을 토대로 작품의 서사적(敍事的) 맥락(脈絡)이 드러날 것으로 전망한다. 물론 이 가운데 서사적 맥락을 밝히는데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는 인물(人物)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소상팔경(瀟湘八景)을 시적 대상으로 삼아 창작된 한시(漢詩)와 시조(時調), 가사(歌辭), 판소리, 잡가(雜歌) 등 다양한 갈래에 걸쳐 형상화된 소상팔경(瀟湘八景) 시가문학(詩歌文學)의 특질과 의미, 그리고 우리 문학사에서 어떠한 기능과 역할을 담당했었는지 하는 점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데,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문체 시학적 방법론이 자칫 지나치게 분석적이고, 세밀한 방법으로 진행될 경우 작품 전체의 맥락을 놓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하나의 온전한 유기체와 같은 작품을 조각내고, 분석함으로써 전체적인 맥락이 흐트러지고, 부분적인 표현에 집착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러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이 논문에서는 유의미한 문체적 자질들에 대해서는 분석과 동시에 온전한 작품 전체를 대상으로 분석과 의미를 도출할 것이다. 이를 통해 문체 시학적 방법론이 갖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연구방법론에 의거하여 논의를 전개하되, 다음과 같은 과정을 밟아 논의를 진척시키고자 한다.
우선, 제2장에서는 소상팔경(瀟湘八景) 시가문학(詩歌文學)에 대한 논의를 위해 필요한 예비 작업을 전개할 것이다. 먼저, ‘소상(瀟湘)’과 ‘팔경(八景)’의 의미(意味)를 살펴보고, 소상팔경의 형성 배경에 대해 고증할 것이다. 이는 본론에서 전개될 논의에 앞서 기본적인 개념을 정리하는 단계에 해당한다. 다음으로 소상팔경의 자료 범주에 대해서 살펴볼 것이다. 한시(漢詩), 시조(時調), 가사(歌辭), 판소리, 잡가(雜歌) 등에 산재되어 있는 소상팔경 시가문학의 범주를 고찰할 것이다. 이 가운데 여타의 갈래와 달리 한시(漢詩) 분야는 소상팔경시의 정확한 작품 수를 살피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문헌에 산재(散在)되어 있고,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여기저기서 발견되고 있기에 정확한 통계를 내기 어려운 실정임을 감안해 현재까지 확인 정리된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 예컨대, 2006년까지 간행된 『한국문집총간(韓國文集叢刊)』 1권에서 350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 가운데 소상팔경 한시 작품을 찾았지만, 실은『한국문집총간(韓國文集叢刊)』외에도 다양한 곳에 산재되어 있음이 확인된다. 조선조 역대 임금들의 글을 모아둔『열성어제(列聖御製)』, 중인계층의 시문집인『소대풍요(昭代風謠)』,『풍요속선(風謠續選)』,『풍요삼선(風謠三選)』, 그리고 미술사학 분야에서 집성해 놓은『한국미술사자료집성(韓國美術史資料集成)』, 심지어 조선(朝鮮)에서 사신(使臣) 일행으로 일본에 건너갔다가 일본인들과 교류하면서 남긴 소상팔경작품이 실려 있는 일본의 고문서 『소상팔경시가초(瀟湘八景詩歌抄)』등 그야말로 자료와의 전쟁이라 할 정도로 방대한 영역에 걸쳐 산재되어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본론에서 상세한 논의를 진행하기로 한다. 아울러 시조(時調) 역시 종래의 논의에서는 이후백의「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여덟 수에만 국한되어 전개되었는데, 시제(詩題)로 전하는 것만이 여덟 수일뿐, 소상팔경 시가문학의 범주에서 다루어야 하는 수많은 작품들이 산재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밖에 가사, 판소리, 잡가 등의 갈래는 한시나 시조에 비해서 비교적 명료하게 범주와 대상이 설정된다. 자세한 논의는 본론으로 미룬다.
제3장에서는 문체 시학적(poetics of style) 방법론에 의거 작품을 분석하면서 작품 내에 감추어진 개별 시제(詩題)나 화제(畵題)의 함의(含意)를 밝힐 것이다. 아울러 인간의 삶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때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들이 각각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가? 말하자면 여덟 가지 시제에 함축되어 있는 각각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 이 장의 목표이다. 기존에는 소상팔경(瀟湘八景)이라고 하면 그저 아름답고 환상적인 중국의 이국적 풍경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3장의 논의를 통해서 우리는 왜 소상팔경이 끊임없이 불려졌고, 사랑을 받았으며, 많은 작품 속에 개입하고 있었는가 하는 점 등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제4장에서는 제3장의 내용을 토대로 개별 문인이 소상팔경(瀟湘八景)의 여덟 장면을 선택적으로 배열하는 행위에 주목하여, 그 이면에 감추어진 의미 맥락(脈絡)이 무엇인가를 중점적으로 정리할 것이다. 이는 개별 화제에 등장하는 인물(人物)과 건물(建物) 그리고 배경(背景)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서사(敍事)에 대한 실마리가 풀릴 것으로 예상한다. 인물, 건물, 배경을 검토하다보면 작품에서 다루고자 했던 서사적 요소가 그대로 정리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소상팔경이라는 전체 제목 아래 존재하는 여덟 가지 소주제들이 어떠한 의미 맥락을 내포하고 있었는지 하는 점이 드러날 것이다.
끝으로 제5장에서는 서론에서 제기한 문제와 본론에서 논의한 내용을 통해 소상팔경 시가문학이 지니고 있던 함의(含意) 그리고 소상팔경(瀟湘八景) 시가문학(詩歌文學)이 오늘날 우리에게 기여할 수 있는 바가 무엇인가 하는 점 등을 정리하는 것으로 결론을 삼겠다. 또한 이 논문이 지니고 있는 한계와 앞으로 현재의 논의를 심화 발전시키기 위해서 보완해야 할 사항 등을 성찰하는 것으로 결론을 대신하겠다.

2. 소상팔경(瀟湘八景) 시가문학(詩歌文學)의 자료 개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제2장에서는 소상팔경(瀟湘八景) 시가 문학 전반에 대한 논의를 위해 필요한 토대를 마련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선, 소상팔경(瀟湘八景)의 형성(形成)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소상팔경(瀟湘八景)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형성되었고, 이를 처음으로 그린 사람은 누구며, 아울러, 시 작품으로 창작한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점을 고찰할 것이다. 이를 통해 소상팔경(瀟湘八景)의 형성 배경과 사적 전개의 과정이 밝혀질 것이다. 다음으로 소상팔경(瀟湘八景)을 수용한 다양한 갈래의 작품들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었는가 하는 점을 중심으로 소상팔경(瀟湘八景)의 문학적 범주와 규모를 고찰할 것이다. 이를 통해 한시(漢詩)와 시조(時調), 가사(歌詞), 판소리, 잡가(雜歌) 등 다양한 갈래에서 창작된 소상팔경(瀟湘八景) 시가문학의 구체적 작품의 분량과 규모가 드러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논문에서 다루게 될 소상팔경(瀟湘八景)이라는 공간이 지니고 있는 서사적 내력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공간이 지니고 있는 서사적 내력을 살펴봄으로써 왜 그곳을 토대로 소상팔경(瀟湘八景)이 형성될 수밖에 없었던가 하는 필연적 이유가 밝혀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2.1. 소상팔경(瀟湘八景)의 형성 배경

중국(中國)에서 소상팔경(瀟湘八景)이 언제 형성되었고 문학작품의 창작 대상이 되었는가 하는 점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소상팔경의 형성에 대하여 기존의 연구자들은 대다수가 이희승(李熙昇)의 초창기 연구 성과에서 지적했던, 송대(宋代) 심괄(沈括)이 지은『몽계필담(夢溪筆談)』의 언급을 수용한 채 현재까지 그대로 따르고 있다.

탁지원외랑(度支員外郞) 송적(宋迪)은 그림을 잘 그렸는데, 특히 평원산수에 뛰어났다. 득의작(得意作)으로는 「평사낙안(平沙落雁)」,「원포귀범(遠浦歸帆)」,「산시청람(山市晴嵐)」,「강천모설(江天暮雪)」,「동정추월(洞庭秋月)」,「소상야우(瀟湘夜雨)」,「연사만종(煙寺晩鐘)」,「어촌석조(漁村夕照)」가 있는데, 이를 일러 ‘팔경(八景)’이라고 한다. 호사가들이 이를 많이 전한다. 沈括,『夢溪筆談』卷十七,「書畵篇」, “度支員外郞宋迪工畵, 尤善爲平遠山水, 其得意者, 有平沙落雁, 遠浦歸帆, 山市晴嵐, 江天暮雪, 洞庭秋月, 瀟湘夜雨, 煙寺晩鐘, 漁村夕照, 謂之八景, 好事者多傳之.”


문학 분야에서 이희승 이희승,「歌詞 <瀟湘八景> 解說」『文章』제3집, 1939. 4.『고시조와 가사감상』, 집문당, 2004.에 재수록.
, 미술사 분야에서 안휘준 안휘준,『한국회화의 전통』, 문예출판사, 1997.
등을 필두로 그 이후 발표된 일련의 연구에서도 이 부분을 줄곧 인용하면서 소상팔경(瀟湘八景) 형성의 시발점(始發點)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080년에 작성된 미불(米?;1051-1107)의 『소상팔경도시병서(瀟湘八景圖詩幷序)』에 의하면, 송적(宋迪;1014-1083 추정)이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그리기 이전에 이미 이영구(李營邱;919-967) 일명 이성(李成)에 의해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가 그려졌던 사실이 중국 측의 고문서인『호남통지(湖南通志)』에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는『소상팔경도시병서(瀟湘八景圖詩幷序)』라는 제목 아래 소상팔경의 일반적인 설명과 각 장면들의 주요한 특징 및 미불(米?) 자신이 창작한 소상팔경 한시작품을 수록하고 있는데, 글의 말미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첨부되어 있다.

내가 이영구(李營邱;919-967)의 그림『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돈을 주고 구입했다가 공무의 여가에 경(景)의 순서에 따라 하나하나 찬술했더니, 주인이 드러누워 손님을 마주하며 노는 듯하기에, 그 후로 가는 곳마다 지니고 다니며 보았다. 원풍 3년(1080年) 여름 4월에 양양(襄陽) 미불(米?)은 서(書)하다. 米?,「瀟湘八景圖詩幷序」,『湖南旅游文學名篇選讀』, 中國 湖南大學出版社, 2002, 167-175쪽 참고. “余購得李營邱畵『瀟湘八景圖』, 拜石余閑(卽公務之余), 逐景撰述, 主人以當臥游對客, 卽如携眺. 元?三年夏四月, 襄陽米?書.”


이 기록을 통해 우리는 소상팔경도가 북송대의 화가 송적(宋迪)에 의해 처음 그려진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이미 이영구(李營邱; 919-967)라는 인물 즉, 이성(李成) 李營邱는 곧 ‘이성(李成)’을 일컫는다. 자(字)는 함서(咸西), 먼 조상이 당나라 종실이었고, 산수화로 오래 이름이 높아서 스스로 일가를 이루었다.(卽李成, 字咸西, 先世祖先爲唐宗室, 擅長山水畵, 自成一家), 米?,「瀟湘八景圖詩幷序」,『湖南旅游文學名篇選讀』, 中華民國 湖南大學校出版社, 2002, 173쪽 각주 41번 참고.
에 의해 그려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가 형성된 시기는 송적(宋迪;1014-1083)이 활동했던 11세기 중반 북송(北宋) 시대가 아니라, 이성(李成; 919-967)이 활동했던 10세기 중반으로 당(唐)나라를 이은 오대십국(五代十國)의 시대였다. 그러므로 기존 학계(學界)에서 정설(定說)로 인정했던 북송(北宋)시대보다 100년 정도 앞선 시대였음이 입증된 셈이다. 이상남은 자신의 논문을 통해, “심괄(沈括)이 송적(宋迪) 소상팔경(瀟湘八景)의 목록을 적은 이후 宋迪은 소상팔경도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송적이 소상팔경을 그린 최초의 인물인 것은 이견이 있다. 즉, 郭若虛의『圖書見聞志』, 휘종년간(徽宗年間;1119-1125)에 지은『宣和畵譜』에는 송적이 팔경도(八景圖)를 그렸다는 기록이 없고, 송적과 가장 친하게 교유했던 蘇軾의 문집에도 송적이 소상팔경도를 그린 기록은 없다. 다만「瀟湘晩景圖」에 題한 詩가 있을 뿐이다. 송적 이전, 李成이 소상팔경을 그렸고,『圖畵見聞志』에는 黃筌이 소상팔경도를 그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日本의 島田修二郞 교수는 자신의 논문「宋迪と瀟湘八景」『南畵鑑賞』104卷, 6-7쪽. 1931.을 통해 이러한 의견에 대해 당시 이미 李成 그림은 거의 없었고,『益州名畵錄』에 황전이 瀟湘圖·八壽圖를 그린 기록이 瀟湘八景圖를 그린 것으로 誤記된 것으로 宋迪 이전 瀟湘八景圖가 그려졌다는 異說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상남,「朝鮮初期 瀟湘八景圖硏究」, 이화여대 석사논문, 2000, 5쪽, 각주 6번 참고.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당시에 中國에서 간행된 瀟湘八景 관련 자료를 광범위하게 확인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최근에 간행된 중국(中國)의 소상팔경(瀟湘八景) 관련 자료들에서도 이러한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북송(北宋) 가우(嘉祐) 연간(1056-1063)에는, 지금의 상강(湘江) 북대교(北大橋) 동인교(東引橋) 부근에 팔경대(八景台)가 있었고, 누대 위에 팔경도(八景圖)를 새겨 넣었다. 북송(北宋)원풍 3년(1080년)에 저명한 서화가(書畵家)이자 문학가인 미불(米?;1051-1107, 자(字)는 원장(元章), 호(號)는 해악거사(海岳外史), 양양만사(襄陽漫士), 세칭(世稱) 미남궁(米南宮), 태원인(太原人)이고, 후에 양양, 진강 등지에 옮겨 살았다. 벼슬은 예부원외랑에 이르렀다.)이 당나라 때(唐代)의 이옹(李邕)을 흠모하여「악록산비(岳麓山碑)」에 찬하여 글을 쓸 때, 악록산에 이르러 유람했는데, 이때 비석의 측면에 사(詞)를 지어 기념으로 남겼다. 또한 오대(五代) 당나라 말기에서 송나라 초기에 이르는 기간에 흥망(興亡)했던 양(梁)·당(唐)·진(晉)·한(漢)·주(周)를 일컫는 말로 '후량(後梁)'. '후당(後唐)'. '후진(後晉)'. '후한(後漢)', '후주(後周)'를 가리킨다.
송초(宋初)의 화가(畵家)였던 이성(李成;919-967, 자(字)는 함희(咸熙), 사람들은 이영구(李?丘)라고 칭했다. 그의 진적(眞迹)은 북송 때 이미 매우 드물었고, 미불이 일찍이 지은「무이론(无李論)」이 있다.)의 팔경도(八景圖)를 구매하고는, 스스로 일컫기를, “공무(公務)의 한가한 틈에 경(景)을 차례대로 찬술했더니, 드러누워 손님을 대하는 듯 할뿐만 아니라, 가는 곳마다 지니고 다니면서 보고 있다.”라고 했다. 이리하여 이성(李成)의『소상팔경도시서(瀟湘八景圖詩序)』를 베껴서, 아울러 글과 함께 세상에 전했다. 그 후로 소상강(瀟湘江) 유역의 팔경은, 각 경(景)이 있는 곳의 소재지마다 동일하지 않은 형식의 경관(景觀) 건축물들이 별도로 세워졌는데, 예컨대 남송(南宋) 때, 영가(永嘉) 학파의 대표적 인물인 진부량(陳傅良)이 장사(長沙)에서 관리로 있을 때, 이미 팔경대(八景台) 근처에 두 채의 정자(亭子)를 세웠고, 역대(歷代) 문인들이 노래를 짓고, 시를 지어 읊었는데, 그 가운데 비교적 널리 전해지고 있는 작품으로는 원대(元代)의 게해사(揭奚斯), 진부(陳孚), 정거부(程鉅夫), 구양원(歐陽元)의 팔경시(八景詩)가 있고, 명대(明代)의 설훤(薛瑄), 하원길(夏原吉), 심명신(沈明臣), 이몽양(李夢陽), 원견옹(願?雍), 당인(唐寅), 장경(張徑), 오도행(吳道行)의 팔경시(八景時) 및 명나라 선종(宣宗)의 소상팔경도시(瀟湘八景圖詩), 청대(淸代)의 장선(張璇), 강유용(江有溶) 등 문인들의 팔경시(八景詩)가 있다. 劉金春,『岳麓風景名勝』, 中國湖南文藝出版社, 1998, 第六章, 橘洲攬勝, 160-163쪽. “北宋嘉祐年間(1056-1063), 今湘江北大橋東引橋附近建有八景台, 上嵌八景圖. 北宋元?十年(1080), 著名書畵家, 文學家米?(1051-1107) 字元章, 號海岳外史, 襄陽漫士, 世稱米南宮, 太原人, 后徙居襄陽, 鎭江等地, 官至禮部員外郞)因慕唐代李邕撰書的,「麓山寺碑」, 至岳麓山游覽, 于碑的側面題詞留念. 又購得五代宋初畵家李成(919-967, 字咸熙, 人稱 “李?丘”, 他的眞迹, 北宋時已經?少, 米?曾作 “无李論”)的八景圖, 自稱 “拜石余間(卽公務之余), 逐景撰述, 以當臥游對客, 卽如携眺.” 于是寫成『瀟湘八景圖詩序』, 幷書傳天下. 此后瀟湘流域八景 景点所在地分別建有不同形式的觀景建筑, 如南宋永嘉學派的代表人物 陳傅良在長沙做官, 就在八景台旁建亭兩座. 歷朝文人相繼作歌作賦, 其中流傳較廣的, 元代有揭奚斯, 陳孚, 程鉅夫, 歐陽元的八景詩, 明代有薛瑄, 夏原吉, 沈明臣, 李夢陽, 願?雍, 唐寅, 張徑, 吳道行的八景詩及明宣宗瀟湘八景圖詩, 淸代有張璇, 江有溶等人的八景詩等.


위의 인용문을 통해서도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그린 최초의 화가는 오대(五代) · 송초(宋初)를 살았던 이성(李成;919-967)이었음이 재차 확인되었다. 그런데 인용문의 언급에만 주목하면, 이성이『소상팔경도시서(瀟湘八景圖詩序)』라는 이름으로 이미 그림과 함께 시를 창작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데, 이는 인용문의 저자(著者)가 이성(李成)이 남긴 그림『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위의 논문에서『소상팔경도시서(瀟湘八景圖詩序)』로 잘못 기록한 것으로 판단된다.
다음으로 소상팔경(瀟湘八景)의 ‘소상(瀟湘)’은 정확하게 어느 곳을 의미하는가 하는 점을 고증할 필요가 있다. 소상팔경의 배경이 되는 ‘소상(瀟湘)’에 대해 11세기 중반의 서화가(書畵家) 미불(米?;1051-1107)은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리고 있다.

소수(瀟水)는 도주(道州)에서 발원(發源)하고, 상수(湘水)는 전주(全州)에서 발원(發源)하여, 영주(永州)에 이르러서 합류한다. 동정호(洞庭湖) 남쪽으로 두 물줄기가 모두 지나는 곳인 상음(湘陰)에 이르러 비로소 원수(沅水)와 만나고, 다시 동정호(洞庭湖)에 이르면 파강(巴江)과 더불어 물이 합쳐지기 때문에 동정호(洞庭湖)의 남쪽을 모두 소상(瀟湘)이라고 이름 할 수 있다. 이를테면 동정호(洞庭湖)의 북쪽은 한수(漢水)와 면수(沔水)가 세차게 흐르기에 그곳을 ‘소상(瀟湘)’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소상(瀟湘)의 경관(景觀)에 대해 얻어 들을 수 있는가? 동정호(洞庭湖) 남쪽으로 오면, 수면이 끝없이 넓고 아득하여 깊으면서도 푸르고, 겹겹의 산들이 층층마다 바위가 이어지면서 천리를 가는데, 하늘의 지붕이 텅 비어 푸른 사이에서, 안개와 노을이 삼키고 토한 것에 물들고, 바람에 돛단배와 모래밭에 새들은 나타났다 사라지며 왔다간 다시 가고, 물대(水竹)는 구름숲을 이루며 띠를 이루어 좌우를 비추고, 아침·저녁의 기운이 같지 않으며, 사계절의 기후가 한결같지 않다. 이것이 바로 소상(瀟湘)의 대관(大觀)이다. 팔경(八景)의 극치(極致)는 앞에서 갖추어 나열했으니, 아울러 시와 함께 기록한다. 米?,「瀟湘八景圖詩幷序」,『湖南旅游文學名篇選讀』, 中國 湖南大學出版社, 2002, 167쪽, “瀟水出道州, 湘水出全州, 至永州而合流焉. 自湖而南皆二水所經, 至湘陰始與沅水會, 又至洞庭與巴江之水合, 故湖之南皆可以瀟湘名. 若湖之北, 則?沔蕩蕩, 不得謂之瀟湘. 瀟湘之景可得聞乎. 洞庭南來, 浩??碧, 疊?層岩, 綿衍千里, 際以天宇之虛碧, 染以烟霞之呑吐, 風帆沙鳥, 出沒往來, 水竹云林, 映帶左右, 朝昏之氣不同, 四時之候不一. 此則瀟湘之大觀也. 若夫八景之?致, 則具列于左, 幷紀以詩.”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당시 소상팔경(瀟湘八景)의 배경이 되었던 ‘소상(瀟湘)’은 동정호(洞庭湖) 남쪽 지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소수(瀟水)와 상수(湘水)가 각기 동정호(洞庭湖) 남쪽에서 발원하여 동정호(洞庭湖)를 향해 북쪽으로 흐르며, 원수(沅水)와 합류되고, 다시 파강(巴江)과 합류되어 동정호로 흘러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수와 상수가 흐르는 동정호(洞庭湖) 남쪽 지역을 ‘소상(瀟湘)’이라고 규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팔경(八景)’은 앞서 살펴본 ‘소상강(瀟湘江)’ 일대에 자리 잡고 있던 실경(實景)에서 비롯되었다. 팔경(八景)의 구체적 장소와 그곳에 대한 개괄적 모습을 언급하고 있는 미불(米?)의 작품을 통해 뒤에서 살펴보겠다. 그리고 최근 중국(中國)에서 간행된 저서를 통해 소상팔경이 구체적으로 오늘날 어느 곳을 배경으로 창작된 것인지를 살펴볼 것이다. 소상팔경(瀟湘八景)의 작품 순서는 당시 미불(米?)이 취했던 순서를 그대로 따르기로 한다.
이제 ‘팔경(八景)’에 대해 살펴볼 차례이다. 우선 주목하는 것은 ‘팔(八)’이라는 숫자이다. 왜 많은 숫자 가운데 하필이면 ‘팔(八)’이라는 숫자에 주목했었는가 하는 점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는 팔(八)이라는 숫자가 지니고 있는 동양적 수리관(數理觀)에 기초하여 함축적 의미를 살펴볼 것이다. 옛 문헌에 등장하는 팔(八)이라는 숫자가 지닌 관습적 함의를 먼저 고찰하고 다양한 어휘 용례를 통해 팔(八)이라는 숫자에 내포된 의미를 추출해 보겠다. 동양의 우주관과 철학적 사유체계가 집대성 되어 있는『주역(周易)』에서는 팔(八)이라는 숫자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점을 먼저 살펴본다.

하늘이 하나, 땅이 둘, 하늘이 셋, 땅이 넷, 하늘이 다섯, 땅이 여섯, 하늘이 일곱, 땅이 여덟, 하늘이 아홉, 땅이 열이니, 하늘의 수가 다섯이요, 땅의 수가 다섯이니, 다섯 자리가 서로 얻으며 각각 합함이 있으니, 천수는 이십오요, 지수는 삼십이라. 무릇 천지의 수가 오십오니, 이것으로써 변화하며 귀(鬼)와 신(神)을 행한다.『周易』, 繫辭上傳, 第九章, “天一地二, 天三地四, 天五地六, 天七地八, 天九地十, 天數五, 地數五, 五位相得, 而各有合, 天數二十有五, 地數三十. 凡天地之數 五十有五, 此所以成變化 而行鬼神也.”


이처럼 주역에 따르면 1, 3, 5, 7, 9의 다섯 숫자는 하늘에 해당하고, 2, 4, 6, 8, 10의 다섯 숫자는 땅에 해당한다. 땅의 질서는 짝수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경(景)을 이야기할 때는 팔경(八景)이니 십경(十景)이니 하는 제목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팔경(八景)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을 각각 두 개의 경(景)씩 배열하기 위한 의도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지 판단된다. 그런가 하면 『관자(管子)』에서는 숫자 팔(八)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하고 있다.

천도(天道)는 아홉(九)으로 제어하고, 지리(地理)는 여덟(八)으로 제어하며, 인도(人道)는 여섯(六)으로 제어한다. 하늘로 아버지를 삼고, 땅으로 어머니를 삼아 만물을 열었으니, 모든 것이 하나의 큰 줄기이다. (天道以九制, 地理以八制, 人道以六制. 以天爲父, 以地爲母, 以開乎萬物, 以總一統.)『管子』, 卷十四.


『관자(管子)』에 따르면 천도(天道)가 구(九)로 제어되고, 지리(地理)는 팔(八)로 제어된다고 했다. 이로써 보면 땅(地)이나 지리(地理)를 대변하는 숫자는 ‘팔(八)’이 된다. ‘팔경(八景)’이라고 하면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경물(景物)을 포괄하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말하자면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경(景)을 집약적으로 형상화해낸 것이 팔경(八景)이 되는 셈이다. 지리적 관점에서 볼 때 ‘소상팔경(瀟湘八景)’의 무대가 중국 호남성(湖南省) 동정호(洞庭湖) 남쪽 지역이라는 특정한 지역에 국한되어 있으나 그곳을 배경으로 형상화된 팔경의 세계는 한정된 공간만의 특징이 아니라 다른 모든 공간을 표상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그렇다면 우리말 어휘에서 내재된 ‘팔(八)’의 의미는 어떨까? 숫자 팔(八)이 사용된 어휘들을 대상으로 어떤 공통점이 내재되어 있는가 하는 점을 추출해 본다.

① 팔괘(八卦) : 중국 상고 시대에 복희씨(伏羲氏)가 지었다는 여덟 가지 괘로 건(乾)·태(兌)·이(離)·진(震)·손(巽)·감(坎)·간(艮)·곤(坤)의 여덟 괘를 이른다. 이 여덟 가지의 괘를 통해 세상 만물과 인간사의 모든 현상을 설명한다.
② 팔방(八方) : 사방(四方)과 사우(四隅)로 동·서·남·북과 북동·북서·남동·남서의 여덟 방위. 건(乾)·감(坎)·간(艮)·진(震)·손(巽)·이(離)·곤(坤)·태(兌)의 여덟 방위. 이곳저곳, 모든 방면.
③ 팔진(八鎭) : 동서남북의 사방(四方)과 서남, 서북, 동남, 동북의 사우(四隅), 따라서 모든 방향을 의미한다.
④ 팔도(八道) : 조선 시대에, 국토를 여덟 개의 도로 나눈 행정 구역으로 경기도·충청도·경상도·전라도·강원도·황해도·평안도·함경도를 가리킨다. 팔로(八路). 우리나라의 ‘전국(全國)’을 달리 이르는 말.
⑤ 팔달(八達) : 길이 팔방으로 통하여 있음, 모든 일에 정통함.
⑥ 팔고(八苦) : 사람이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여덟 가지 괴로움
⑦ 팔면(八面) : 모든 방면
⑧ 팔자(八字) : 한 평생의 운수
⑨ 팔진(八珍) : 맛있는 음식, 여덟 가지의 진미(珍味)
⑩ 팔난(八難) : 인간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덟 가지 재난

이러한 어휘들을 통해 우리는 팔(八)이라는 숫자에 내재되어 있는 동양적(東洋的) 수리관(數理觀)의 한 단면을 읽어낼 수 있다. 이 외에도 많은 어휘들이 있지만 모두 열거할 수는 없다. 다만 종합적으로 고찰할 때, 팔(八)이라는 숫자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과 현상의 모든 국면을 포괄하며 아우르는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점은 일본에서 제출된 소상팔경 관련 연구에서도 언급 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팔(八)’이라는 숫자는, 예컨대 「팔방(八方)」「팔굉(八紘)」「팔황(八荒)」「팔주(八州)」라고 하는 것처럼 공간적으로 ‘모든 방향’, ‘모든 토지’라고 하는 의미를 나타낼 때 사용됩니다. 堀川貴司,『瀟湘八景-詩歌と繪畵に見る日本化の樣相』, 臨川書店, 2002, 6쪽, “八という數字は,たとえば「八方」「八紘」「八荒」「八州」というように 空間的に「すべての方角」「すべての土地」といった意味を表わすとき使われます.”


이처럼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동아시아 삼국에서 동양적(東洋的) 수리관(數理觀)에 입각하여 사용하고 있는 팔(八)이라는 숫자에는 ‘모든 방향’과 ‘모든 땅’ 그리고 ‘모든 국면’과 ‘모든 상황’의 의미가 내재되어 있음이 확인된다. 따라서 소상팔경(瀟湘八景)은 소상(瀟湘) 일대를 배경으로 하고는 있지만 그 개별 작품간의 관계에 주목해 보면 그 이면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국면과 상황이 여덟 가지의 개별 제목마다 독립적으로 녹아들어가 있을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것들이 어떤 개별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작품 전체 구조에서 각각 어떤 단계를 설명하고 있는가 하는 점 등을 고찰함이 이 논문의 목적이 될 것이다.

2.1.1. 소상야우(瀟湘夜雨)

<그림 > 소상야우
소상야우(瀟湘夜雨)는 말 그대로 소상강(瀟湘江) 밤에 비가 내리고 있는 형상을 다룬 작품이다. 미불(米?)은 이 작품을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의 첫머리에 배치했다. 그의『소상팔경도시병서(瀟湘八景圖詩幷序)』의 기록을 보면, 그림의 순서에 따라 하나씩 찬술했음을 밝히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성(李成)이 그린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역시 소상야우(瀟湘夜雨) 그림이 가장 앞에 배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米?,「瀟湘八景圖詩幷序」,『湖南旅游文學名篇選讀』, 中國 湖南大學出版社, 2002, 170쪽 참고. “余購得李營邱畵『瀟湘八景圖』, 拜石余閑(卽公務之余), 逐景撰述, 主人以當臥游對客, 卽如携眺. 元?三年夏四月, 襄陽米?書.”
소상야우에 대한 기록과 미불(米?)의 작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참대나무 떨기는 일산처럼 우거졌고, 자고(??)새가 슬피 운다. 강변 구름은 어둑어둑, 강물은 아득하고도 그윽하다. 강물이 폭포를 이루며 바다에 이르러, 쏟아 붓는 듯 기울인 듯하다. 눈물 흘리는 연객이 춤을 추고, 비파 뜯는 상령이 구슬프도다. (瀟湘夜雨 詩幷序 : 苦竹叢?, ??哀鳴. 江雲??, 江水冥冥. ?河倒海, 若注若傾. 舞泣珠之淵客, 悲鼓瑟之湘靈.)

大王長嘯起雄風, 대왕의 장탄식에 거센 바람 일더니,
又逐行雲入夢中. 다시금 구름 쫓아 꿈속에 들어가네.
想象瑤台環佩濕, 비에 젖은 요대 모습을 생각하자니,
令人腸斷楚江中. 米?,「瀟湘八景圖詩幷序」,『湖南旅游文學名篇選讀』, 中國 湖南大學出版社, 2002, 168쪽 참고.
사람 애간장이 초나라 강에서 끊기네.
인용문에서 드러나듯 미불(米?)이 이성(李成)의 소상야우도(瀟湘夜雨圖)를 보며, 인식했던 소상야우(瀟湘夜雨)는 대나무 떨기가 무성하고, 강변의 구름이 어두운 색을 드러내며, 강물은 아득하면서도 그윽하다고 표현했다. 아울러 강물이 폭포를 이루며 바다에 쏟아지듯 거세게 내리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자고새가 우는 장면이나 비파 뜯는 상수의 영혼을 슬퍼한다는 표현은 작가의 상상력이 동원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소상야우(瀟湘夜雨)의 공간은 영주(永洲) 성(城) 동쪽에 있다. 상수(湘水)는 영주성(永洲城) 경내에 있는 소수(瀟水)와 더불어 합수(合水)된 뒤에, 소상(瀟湘)이라고 칭한다. 비 내리는 소상강(瀟湘江)의 야경은 옛 문인들이 기록하여 뜻을 부친 저명한 경관이다. “주룩주룩 비 내리는 상강의 나무들, 어두침침한 초나라 하늘 길. 평온하게 이어진 나루터의 배, 흘러서 하류로 내려가지 못하게 하네.”(元, 揭奚斯) 처량하지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심경으로, 밤비 내리는 형상 그 자체에 의하면 온통 슬프고 처량함에서 벗어나질 못한 채, 천 백년을 왔다. 사람들은 소상야우에 애정을 두는 것이 산하(山河)에 내리는 밤비 때문인지 아니면 영혼의 밤비 때문인지 모른다. 劉金春,『岳麓風景名勝』, 中國 湖南文藝出版社, 1998, 第六章, 橘洲攬勝, 161쪽. “在永洲城東. 湘水在永洲境內與瀟水?合以后, ?爲瀟湘. 雨落瀟湘的夜景, 是?時文人藉以寄情的著名景觀. “??湘江樹, 荒荒楚天路, 穩系渡頭船, 莫敎流下去”(元揭奚斯) 凄凉而无助的心境, 就像夜雨本身一樣哀婉纏綿, 千百年來. 人們所鐘情的不知是山河的夜雨?是心靈的夜“.


인용문은 최근 중국 호남성에서 간행된 소상팔경(瀟湘八景) 관련 책자 가운데 소상야우(瀟湘夜雨)에 대한 기록이다. 소상(瀟湘)에 비 내리는 경관에 주목하기 보다는 소상야우의 형상이 지닌 의미에 주목했다. 슬프고 처량한 정조를 자아내는데, 사람들이 소상야우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소상에 내리는 밤비의 형상 때문인지 아니면 순임금과 두 비(妃)였던 아황·여영에 얽힌 고사(故事)때문인지 모르겠다고 언급하고 있다.

2.1.2. 산시청람(山市晴嵐)

<그림 > 산시청람
산시청람(山市晴嵐)은 산 속에 형성된 저자(市)를 배경으로 멀리로 보이는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기운을 의미한다. 이를 배경으로 시(詩)와 화(畵)가 창작된 것이다. 미불(米?)의『소상팔경도시병서(瀟湘八景圖詩幷序)』의 기록에 따르면 산시청람(山市晴嵐)은 소상야우(瀟湘夜雨)에 이어 두 번째 순서에 배치되었다.

산을 따라 성곽이 되었고, 여기저기 집들이 펼쳐져 있다. 물고기와 새우가 모여드는 마름 풀과 연꽃의 저자 거리이다. 오는 사람 어슬렁거리고, 가는 사람 천천히 걸어간다. 수풀 끝이 아득하고, 봉우리는 굽어 돌아 드러난다. 푸른빛이 산색을 머금었고, 붉은 기운 아침 햇살 비춘다. 텅 비어 한 손으로 움켜쥐어도 차지 않고, 흩어지니 허공에 가득하다.(「山市晴嵐」詩幷序 : 依山爲郭, 列肆爲居. 魚蝦之會, 菱?之都. 來者于于, 往者徐徐. 林端??, 巒表?紆. 翠含山色, 紅射朝暉. 虛不盈乎一?, 散則滿乎太虛.)

亂峰空翠晴還濕, 어지러운 봉우리 하늘 푸르러 갰다 도로 습해지고,
山市嵐昏近覺遙. 산시는 남기가 어두워 가까운 곳도 멀게 보이네.
正値微寒堪索醉, 약간 추운 날씨인지라 술에 취하기 딱 알맞으니,
酒旗從此不須招. 米?,「瀟湘八景圖詩幷序」,『湖南旅游文學名篇選讀』, 中國 湖南大學出版社, 2002, 168쪽 참고.
때문에 주막 깃발을 내걸고 부를 필요도 없겠네.

산시청람(山市晴嵐)의 형상은 산에 의지해 성곽(城郭)이 형성되었고, 곳곳에 집들이 펼쳐져 있다. 이곳에는 온갖 물고기들과 새우들이 모여들고, 마름 풀과 연꽃들이 즐비하다. 오가는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정지된 듯, 움직이고 있으며 수풀 끝이 어디인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득하게 보인다. 봉우리는 굽어 돌고, 산색은 온통 푸른빛을 띠고 있다.

산시청람(山市晴嵐)의 공간은 상담(湘潭)과 장사(長沙)의 접경지인 소산(昭山)에 있다. 상강(湘江)은 형산(衡山)으로부터 북쪽으로 150여 킬로미터를 가면 이 소산(昭山)에 이른다.
자줏빛 기운이 감돌고, 이내와 안개가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구름이 많고 노을이 무성하다. 한 봉우리가 강변에 외롭게 서있는데, 빼어나고 아름다움이 마치 목욕을 막 끝내고 나온 신선과도 같다.
송대(宋代) 미불(米?)이 일찍이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 소산(昭山)에서 놀고 있을 때, 산을 따라 성곽이 만들어져, 이리저리 집들이 있고, 상인들이 구름처럼 모여들며, 주막 깃발을 찾아다니는 경관으로 특별하게 창작한 시에,
“어지러운 봉우리 하늘 푸르러 갰다 도로 습해지고, 산시는 남기가 어두워 가까운 곳도 멀게 보이네. 약간 추운 날씨인지라 술에 취하기 딱 알맞으니, 때문에 주막 깃발을 내걸고 부를 필요도 없겠네.”
『선화현지(善化縣志)』는 소산(昭山)의 산수(山水)에 대해 기술했다. “빼어난 봉우리면서도 형세가 수려한데, 상수 언덕에서 일어난 검고 푸른빛이 조화롭고, 모든 산이 기암괴석으로 충만한데, 이미 나무들로 겹겹이 그늘졌고, 잔 이슬이 바윗돌에 내렸으나, 쇠락의 형세는 없고, 배가 그 아래를 지나며, 이따금씩 바위 구멍이나 돌 틈으로 반걸음씩 기어 올라가도 미치질 못하는, 참으로 빼어난 경관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소산(昭山) 아래로는 깊은 못이 있는데,『수경주(水經注)』에 이르기를 연못에 바닥이 없다고 했으며, 고대(古代)에 어떤 배가 이곳에서 위험을 만나 침몰했는데, 어떤 사람이 동정호(洞庭湖)에 있다가 그곳까지 도착한 배 위의 물건을 낚았다는 말이 대대로 전해진다. 때문에 소담(昭潭)과 동정호(洞庭湖)가 서로 통한다고들 말한다. 劉金春,『岳麓風景名勝』, 中國 湖南文藝出版社, 1998, 第六章, 橘洲攬勝, 162쪽. “在湘潭與長沙接壤處的昭山. 湘江由衡山北行150余公里到?昭山. 紫氣?繞, 嵐烟?人, 雲蒸霞蔚. 一峰獨立江邊, 秀美如剛出浴的仙子. 宋代米?曾在微寒的早春游昭山, 看見依山爲廓, 列肆爲居, 商賈雲集, 酒旗獵然的景觀, 特作詩 : “亂峰空翠晴還濕, 山市嵐昏近覺遙. 正値微寒堪索醉, 酒旗從此不須招.”『善化縣志』對昭山山水也有記述 : “絶?而奔秀, 起湘岸, 亭然翠玄, 皆怪石磅?, ?木層蔭, 微露岩?, 而无傾落之勢, 舟過其下, 往往岩?石?, 窺攀莫及, 洵?境也.” 昭山下有深潭,『水經注』說潭無底, 相傳古代有船于此遇險沈沒, 而有人在洞庭湖撈到了船上的東西, 故說昭潭與洞庭相通.“

산시청람(山市晴嵐)의 형상을 자줏빛 기운이 감돌고, 이내와 안개가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구름이 많고 노을이 무성하다고 하면서, 한 봉우리가 강변에 외롭게 서있는데, 빼어나고 아름다움이 마치 목욕을 막 끝내고 나온 신선과도 같다고 형용했다.

2.1.3. 원포귀범(遠浦歸帆)

<그림 > 원포귀범
원포귀범(遠浦歸帆)은 먼 포구로 돌아가는 배로 볼 수도 있고, 멀리 포구로 돌아오는 배의 의미로 읽을 수도 있겠다. 돌아가는 배의 형상인지, 돌아오는 배의 형상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 작품의 실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미불(米?)의『소상팔경도시병서(瀟湘八景圖詩幷序)』의 기록에 따르면 산시청람(山市晴嵐)에 이어 세 번째 순서에 배치되었다.

맑은 남기 물결을 비추고, 지는 노을이 물을 비춘다. 배는 조화를 이루며 날개가 돋친 듯 날아간다. 큰 물결 사이가 장차 편안한 곳이기를 바란다. 아내는 문에서 기다리며, 미소를 띤 채 한가롭다.(「遠浦歸帆」詩幷序 : 晴嵐映波, 落霞照水. 有?其舟, 捷于飛羽. 幸際洪濤, 將以寧處. 家人候門, 觀笑容與.)

漢江游女石榴裙, 한강에서 놀고 있는 여인들 석류 치마 입고서,
一道菱歌兩岸聞. 한길에서 부르는 마름 노래 양 언덕에 들리네.
?客歸帆休?望, 상인들 돌아가는 배를 슬퍼하며 바라보지 말거라,
閨中紅粉正思君. 米?,「瀟湘八景圖詩幷序」,『湖南旅游文學名篇選讀』, 中國 湖南大學出版社, 2002, 168쪽 참고.
규중에선 붉게 화장하고 정히 낭군을 그리워하네.
원포귀범(遠浦歸帆)은 맑은 남기(嵐氣)가 물결을 비추고, 지는 노을이 수면에 비칠 때 배는 날개달린 듯 미끄러져 가는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다. 그리고 배를 타고 있는 상인들의 바람을 서술했고, 아내가 문에서 기다리며 미소 짓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원포귀범(遠浦歸帆)의 공간은 상음현(湘陰縣) 성(城) 강변에 있다. 귤주(橘洲)로부터 강을 따라 북쪽으로 약 70킬로미터를 가면 곧 상음(湘陰)에 이른다. 상음은 고대에 수역(水驛) 요새였는데, 북으로는 동정호(洞庭湖)에 이르고, 남으로는 장사(長沙)를 관통하는데, 수역(水域)이 대단히 멀리 트여서 옛날부터 지금까지 모두 어민들과 장사치들의 거주지였다. 매양 황혼 무렵이면, 먼 산은 검은 빛을 머금고, 언덕의 버드나무는 내(烟) 끼인 듯하고, 돌아가는 배들이 점점(點點)을 이루며, 어부의 노래 소리가 이따금씩 들리고, 돌아오는 배를 기다리는 어부의 아낙들과 나그네를 바라는 창기들이 저녁 바람 부는 석양 속에 서 있는데, 전체적으로 온화하고 향기로우면서도 원망스럽게 바라보며, 번거롭고 분주한 모습을 돋보이게 한다. “한강에서 놀고 있는 여인들 석류 치마 입고서, 한길에서 부르는 마름 노래 양 언덕에 들리네. 상인들 돌아가는 배를 슬퍼하며 바라보지 말거라, 규중에선 붉게 화장하고 정히 낭군을 그리워하네.” 미불(米?)이 지은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는 다만 이 한 수뿐인데 분과 연지를 바른 향기가 차고 넘치니, 혼자 떠돌아다니며 타향에서 얹혀살다보니, 따뜻한 정을 갈망하는 나그네 돌아가 머물고 싶은 마음을 잘 나타냈다. 劉金春,『岳麓風景名勝』, 中國 湖南文藝出版社, 1998, 第六章, 橘洲攬勝, 162-163쪽. “在湘陰縣城江邊. 從橘洲沿江北去, 約行70公理, 便到湘陰. 湘陰是古代水驛要塞, 北至洞庭, 南通長沙, 水域十分遼闊, 自古?今都是漁民商賈的栖宿地. 每當黃昏, 遠山含黛, 岸柳似烟, 歸帆点点, 漁歌陣陣, 等待歸船的漁?和企盼宿客的靑樓女子站在晩風斜陽中, ?托出一片溫馨?望的繁忙景象. “漢江游女石榴裙, 一道菱歌兩岸聞. ?客歸帆休?望, 閨中紅粉正思君.” 米?作瀟湘八景詩, 獨獨這一首, 盈溢着粉脂氣息, 寄寓着一?漂泊他鄕, 渴望溫情的旅客的歸泊之心“.


인용문에서는 원포귀범(遠浦歸帆)의 형상을, 매양 황혼 무렵이면, 먼 산은 검은 빛을 머금고, 언덕의 버드나무는 내(烟) 끼인 듯하고, 돌아가는 배들이 점점(點點)을 이루며, 어부의 노래 소리가 이따금씩 들리고, 돌아오는 배를 기다리는 어부의 아낙들과 나그네를 바라는 창기들이 저녁 바람 부는 석양 속에 서 있는데, 전체적으로 온화하고 향기로우면서도 원망스럽게 바라보며, 번거롭고 분주한 모습으로 그렸다. 아울러 인용문에서 미불(米?)의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가 이 작품 하나만 전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는 저자(著者)가 자료를 정밀하게 확인하지 못했던 결과로 판단된다.

2.1.4. 연사만종(煙寺晩鐘)

<그림 > 연사모종
연사만종(煙寺晩鐘)은 내(煙) 끼인 절에서 저물녘 들리는 종소리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안개 자욱한 산사(山寺)에 슬그머니 저녁이 찾아오면 산 속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대상으로 삼고 있다. 미불(米?)의『소상팔경도시병서(瀟湘八景圖詩幷序)』의 기록에 따르면 원포귀범(遠浦歸帆)에 이어 네 번째 순서에 배치되었다.

어둠이 송문에 드니, 사찰에 그늘이 진다. 석장을 쥔 스님이, 수풀 물가로 돌아가려 하는데, 종소리 한 번 울리니, 잔나비 슬피 울며 학이 날아오른다. 그윽한 계곡은 구름에 덮여있고, 동산은 달(月)을 토한다.(「煙寺晩鐘」詩幷序 : 暝入松門, 陰生蓮宇. 杖錫之僧, 將歸林渚, 蒲牢一聲, 猿?鶴擧. 幽谷雲藏, 東山月吐.)

絶頂高僧未易逢, 산꼭대기 고승을 쉽사리 만나지도 못했는데,
禪林長被白雲封. 절간은 흰 구름에 길게 덮인 채 닫혀있구나.
殘鐘已罷寥天遠, 남은 종소리 이미 사라져 휑한 하늘이 먼데,
杖錫時過紫盖峰. 米?,「瀟湘八景圖詩幷序」,『湖南旅游文學名篇選讀』, 中國 湖南大學出版社, 2002, 169쪽 참고.
석장 든 스님 때마침 자개봉(紫盖峰)을 지나네.

연사만종(煙寺晩鐘)의 형상은 어둠과 함께 생성된다. 어둠이 산자락을 타고 슬금슬금 내려앉으면 사찰은 어느새 그늘이 지고, 안개 자욱한 골짝에 그 자취를 감춰버린다. 해 저물어 발길을 재촉하는 스님이 석장을 쥔 채 돌아가는데, 그윽한 종소리만 공명처럼 들려올 때, 뒷산은 달(月)을 살짝 토해 낸다.

연사만종(煙寺晩鐘)의 공간은 형산현(衡山縣) 성(城) 북쪽 청량사(淸凉寺)에 있다. 상강(湘江)에서 다시 북쪽으로 30킬로미터를 가면, 불교 승지인 남악(南岳) 형산(衡山)을 지나는데, 저녁에 부는 바람이 거세서, 만물과 사람들이 잠들었는데, 오직 사찰 내에 시간을 알리는 오래된 종소리만이 때때로 은은하고 낭랑하게 울려 퍼진다. “종소리 따라 비 개이고 바람 따라 떨어지니, 양 언덕에 서릿발 종소리 들어도 같지 않네. 석양이 한창일 때 구름 너머 절에는, 강 건너 종소리가 구름 속에 있구나!”, 강가 배의 나그네는 이 종소리 속에서 배를 매고 있거나 혹은 멀리 가고 있다. 劉金春,『岳麓風景名勝』, 中國 湖南文藝出版社, 1998, 第六章, 橘洲攬勝, 162쪽. “在衡山縣城北淸凉寺. 湘江又北行30公理, 經過佛敎勝地南岳衡山. 晩來風急, 万物人眠, 唯寺內?時的古鐘, 不時敲出悠揚宏亮的聲音. “音隨晴雨落隨風, 兩岸霜鐘?不同. 最時夕陽雲外寺, 渡江聲在白雲中.” 江舟中的旅者, 在?種鐘聲中繫舟或者遠行“.


연사만종(煙寺晩鐘)의 배경이 된 형산(衡山)은 저녁에 부는 바람이 매우 드세다고 한다. 그래서 저녁이면 사람들도 외출을 하지 않기에 모든 생명체들이 다 잠에 드는데, 오직 잠들지 않는 것은 시간을 알리는 사찰의 종소리뿐이다. 이렇게 은은하게 울리는 종소리가 메아리 되어 골짜기를 타고 넘기도 하는가 하면 때론 구름 속에서 울리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옛 문인들은 ‘연사만종(煙寺晩鐘)’보다는 ‘연사모종(煙寺暮鐘)’이라는 시제(詩題)를 보다 즐겨 사용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2.1.5. 어촌석조(漁村夕照)

<그림 > 어촌낙조
어촌석조(漁村夕照)는 어촌(漁村)에 석양(夕陽)이 비추는 저녁 풍경을 대상으로 한다. 공간적 배경이 어촌이고, 시간은 저녁이다. 평화로우면서도 고즈넉한 어촌에 분주한 일과를 마치고 석양이 비낄 무렵이면 하루 일과가 정리된다. 미불(米?)의『소상팔경도시병서(瀟湘八景圖詩幷序)』의 기록에 따르면 연사만종(煙寺晩鐘)에 이어 다섯 번째 순서에 배치되었다.

가지런한 오두막집, 물가에 자리를 잡았다. 배는 둥둥 떠다니며, 연꽃과 부들 포에 의지하네. 물고기로는 회(膾)를 칠 수 있고, 술(酒)도 구할 수 있다. 낚싯줄을 걷고 그물을 말기도 하니, 그 즐거움이 어떻겠는가! 서산으로 지는 해, 나의 노년을 비춘다.(「漁村夕照」詩幷序 : 翼翼其廬, 瀕涯以居. 泛泛其艇, 依荷與蒲. 有魚可膾, 有酒可需. 收綸卷?, 其樂何如. 西山之暉, 在我桑楡.)

??柴門返照新, 그물 말리는 사립문에 저녁 빛이 새롭고,
桃花流水認前津. 복사꽃 흐르는 물, 무릉도원이 앞 나루인 줄 알겠네.
買魚沽酒湘江去, 물고기 사고 술을 팔러 상강으로 갔다가는,
遠吊懷沙作賦人. 米?,「瀟湘八景圖詩幷序」,『湖南旅游文學名篇選讀』, 中國 湖南大學出版社, 2002, 169쪽 참고.
장사를 회고하며 시 짓던 굴 원을 멀리서 조문하네.

어촌석조(漁村夕照)의 형상은 가지런한 오두막집이 물가에 자리를 잡았고 배는 둥둥 떠다니며 낮에 연꽃과 부들 포 그리고 갈대 주변에 쳐놓았던 그물을 걷고 있다. 그물을 말리는 사립문에 저녁 빛이 비추고, 복사꽃이 떠다니니 무릉도원이 아닌가 하고 착각할 정도이다. 잡은 물고기로는 회(膾)를 칠 수도 있고, 술(酒)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낚시하고 그물 던지는 살아가는 즐거움이 어떻겠는가! 라며 어촌석조의 형상을 묘사했다.

어촌석조(漁村夕照)의 공간은 동정호(洞庭湖) 서쪽 무릉도원(武陵桃源) 계곡에 있다. 도연명의「도화원기(桃花源記)」중에도 “무릉(武陵) 사람이 물고기 잡는 것을 업으로 삼았다.”는 말이 있다. 무릉(武陵) 사람들은 물고기 잡는 것을 업으로 삼아 왔기에 ‘도화원(桃花源)’을 발견했다. 세상 사람들이 또 ‘도화원(桃花源)’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무릉 사람을 대할 때 어느 정도는 호기심과 호감을 갖고 있다. 그런 까닭에 무릉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이 어촌이고, 바로 문인 문객들이 동경하는 곳이 되었다. 한낮에 어부들이 동정호(洞庭湖)에 그물을 던져두고, 저녁 무렵에 어망을 수습한다. 살찌고 아름다우며 싱싱한 물고기를 손에 쥐고서 석양이 질 무렵 어부의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온다. 좋은 시절을 만날 때에는 잡아온 물고기를 자기 집에서 다 먹지를 못해서, 다시 어시장에 가서 팔아 생활비에 쓰고, 남는 돈으로는 아무런 근심 없이 부족한 만큼의 술을 사서 마시고, 석양이 질 무렵이면 이미 취기(醉氣)가 돈다. 하루도 벌써 술 향기에 익는다. 劉金春,『岳麓風景名勝』, 中國 湖南文藝出版社, 1998, 第六章, 橘洲攬勝, 163쪽. “在西洞庭桃源武陵溪. 陶淵明在「桃花源記」中說 “武陵人抱魚爲業”. 武陵人因爲捕魚, 而發現了桃花源, 世人又因爲桃花源, 而對武陵人抱有一?好奇和好感. 因而, 武陵人所居住的漁村也就成了文人墨客所憧憬的地方. 白天, 漁人撒?洞庭 : 傍晩, 收拾漁?, 提着肥美的鮮魚, 在夕陽的晩唱中踏着漁歌回家. ?到好季?, 捕到的魚自家吃不完, 還可拿到漁市去賣, 有了閑錢不愁買不到酒喝, 夕陽?佛也就有了醉意, 日子也就有了酒香“.


어촌석조(漁村夕照)는 한낮에 그물을 던져두었다가 저녁에 어망을 거두어들인 후, 살찌고 싱싱한 물고기를 손에 쥐고 석양이 질 무렵 어부들의 노랫소리 들으며 귀가하는 모습이다. 고기가 풍성할 때는 잡은 고기를 모두 처리할 수가 없기 때문에 어시장에 내다 팔아 생활비에 보태고, 그래도 남는 돈으로는 술을 사 마신 후, 석양에 취기를 느끼며 돌아오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2.1.6. 동정추월(洞庭秋月)

<그림 > 동정추월
동정추월(洞庭秋月)은 동정호(洞庭湖)에 떠있는 가을 달을 의미한다. 이때 달은 대부분 보름달의 형상으로 묘사된다. 온 세상을 넉넉하게 비추는 달의 형상과 동정호(洞庭湖) 수면의 아름다움을 주된 표현 대상으로 삼고 있다. 미불(米?)의『소상팔경도시병서(瀟湘八景圖詩幷序)』의 기록에 따르면 어촌석조(漁村夕照)에 이어 여섯 번째 순서에 배치되었다.

군산(君山)에서 남쪽으로 오면, 넓은 호수가 푸르고, 회오리바람도 일어나지 않으며, 출렁이는 물결도 일지 않는다. 밤기운은 이미 맑고, 맑은 이슬 여기에 떨어진다. 소복한 미인이 호수에서 목욕하듯, 금빛 물결 빛나며 일렁인다. 무지개 맑은 그림자 넘어지고, 광악(廣樂)의 천성이 들려온다. 가는 구름조차 일지 않고, 위아래가 텅 빈 채로 밝다.(「洞庭秋月」詩幷序 : 君山南來, 浩浩滄溟. 飄風之不起, 層浪之不生. 夜氣旣淸, 靜露斯零. 素娥浴水, 光蕩金精. 倒霓裳之淸影, 來廣樂之天聲. 纖雲不起, 上下虛明.)

李白曾移月下仙, 이백은 일찍이 달에서 내려온 신선이 되어서.
烟波秋醉洞庭船. 가을날 내 끼인 수면 동정호 배 위에서 취했네.
我來更欲騎黃鶴, 내가 와서 다시금 황학(黃鶴)을 타고자 하였더니,
直上高樓一醉眼. 米?,「瀟湘八景圖詩幷序」,『湖南旅游文學名篇選讀』, 中國 湖南大學出版社, 2002, 169쪽 참고.
높은 누각에 곧장 오르자 온통 술에 취한 눈일세.

동정추월(洞庭秋月)은 군산(君山) 남쪽을 배경으로 한다. 동정추월(洞庭秋月)의 배경이 된 곳은 호수가 넓고 푸르며, 바람도 일지 않아 잔잔한 호수가 맑고 깨끗한 풍경을 자랑하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동정추월(洞庭秋月)의 공간은 동정호(洞庭湖)에 있다. 상음(湘陰)현에서 북쪽으로 가면 곧 한 번 바라보면 끝이 없는 동정호이다. 가을 하늘의 늦은 저녁 달빛이 은빛과 같고, 하늘은 맑아서 어떠한 흔적도 없고, 팔 백리 호수의 수면에 푸른 물은 거울과 같고, 바람이 고요하면 물결도 잔잔하다. 하늘과 수면이 서로 비추고, 달빛과 호수 빛이 서로 교감하여 융화되어, 호수 위에 배를 띄우고 한바탕 정취를 지닌 채, 군산(君山)에 오르거나 혹자는 악양루에 오르면, 틀림없이 거듭하여 일종의 다른 감회가 있을 것이다. 명나라 때, 심명신(沈明臣)은 시를 지어 말하기를, “나뭇잎 떨어지는 하늘이 푸르고 만 리에 물결만, 동정호(洞庭湖) 가을빛에 달빛만 가득하네. 장사(長沙)로 가는 길이 어딘지 모르겠건만, 다만 삼주를 노래하는 상인과 손님의 노래일세.”라고 했다. 아름다운 경치의 즐거움에 길을 잃고서, 촉나라의 방종을 그리워하지 않고, 사람들이 풍경을 마주하면 상념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劉金春,『岳麓風景名勝』, 中國 湖南文藝出版社, 1998, 第六章, 橘洲攬勝, 163쪽. “在洞庭湖. 由湘陰北去, 便是一望无除的洞庭湖. 秋天的夜晩, 月色如銀, 天空不?任何痕迹, 八百里湖面, 碧水如鏡, 風息浪靜. 天空和湖面相互映照, 月光和湖光相互交融, 泛舟湖上, 則別有一番情趣, 登上君山或者岳陽樓, 想必又是?一種情?. 明代沈明臣作詩說 : “木落天靑万里波, 洞庭秋色月明多. 不知何路長沙去, 只唱三洲?客歌.” 有一種迷失于美景的樂不思蜀的放縱, 不免引起人們對于風景的?想“.


이처럼 동정추월(洞庭秋月)의 형상은 가을날 늦은 저녁 하늘의 달빛이 눈부신 은빛을 띠고 있으며,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아서, 동정호(洞庭湖) 팔백 리가 마치 거울과 같이 깨끗하면서도 고요하고 물결도 잔잔하다고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1.7. 평사낙안(平沙落?)

<그림 > 평사낙안
평사낙안(平沙落?)은 평사(平沙) 즉 모래밭에 내려앉는 기러기를 의미한다. 미불(米?)의『소상팔경도시병서(瀟湘八景圖詩幷序)』의 기록에 따르면 동정추월(洞庭秋月)에 이어 일곱 번째 순서에 배치되었다.

서리가 맑아서 나무는 쇠락해도, 갈대는 무성하다. 무리의 새는 퍼드덕거리며, 열 맞추어 날아간다. 혹은 마시고, 혹은 쪼아대며, 혹은 울어대고 혹은 빙 돌며 날아간다. 상림원(上林苑)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니라, 화살과 주살의 하루하루가 두려워서, 구름 속을 날며 물에서 잠자며, 애오라지 볕을 따른다.(「平沙落?」詩幷序 : 霜淸木落, 芦葦蒼蒼. 群鳥肅肅, 有列其行. 或飮或啄, 或鳴或翔. 匪上林之不美, ???之日將. 雲飛水宿, 聊以隨陽.)

書斷衡陽暫此回, 서신도 끊어진 형양에서 별안간 이곳으로 돌아오니,
沙明水碧岸?苔. 모래 맑고 물은 푸르러 언덕에는 이끼가 무성하네.
相呼正喜無??, 서로 부르며 정히 기쁜 것은 화살과 주살이 없음이고,
又被孤城畵角催. 米?,「瀟湘八景圖詩幷序」,『湖南旅游文學名篇選讀』, 中國 湖南大學出版社, 2002, 170쪽 참고.
고성(孤城)에 미쳐서 화각(畵角)을 재촉하네. 이 부분에 대한 국역(國譯)은 정확한 맥락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다만 화각(畵角)은 오랑캐의 옛날 악기를 이르는 명칭인데, 전후 맥락을 파악하기 어렵다. 계속 검토하여 보완할 예정이다.


서리가 맑고 나뭇잎이 지는 형상으로 보아 가을이 시간적 배경으로 설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러 무리의 새들이 퍼드덕거리며 열을 맞추고 날아가기도 하고, 일부는 물을 마시고, 또 일부는 먹이를 쪼아 먹기도 하고, 울어대기도 하면서 자기들끼리 빙 돌아나는 형상을 그리고 있다. 기러기들이 날아온 것은 황제의 정원인 상림원(上林苑)이 아름답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화살과 주살로 기러기를 잡으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에 구름 속을 날고 물에 깃들어 잠을 자며 오로지 햇볕을 따르는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평사낙안(平沙落?)의 공간은 형양시(衡陽市) 회안봉(回雁峰)에 있다. 소상강(瀟湘江)이 영주(永洲)로부터 아래로 수백 킬로미터를 흘러내려가 남악(南岳) 일흔 두 봉우리(峰)의 으뜸인 회안봉(回雁峰)에 도달한다. “산(山)은 형양(衡陽) 끝에 도달하고, 봉(峰)은 회안(回雁) 그림자 드무네. 돌아가는 길이 멀어 응당 가엾게 여기지만, 차마 다시 남쪽으로 날지 못하네.”(모령건;毛令健) 옛 사람들이 지리(地理)에 대한 사유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기러기가 형양(衡陽)에 이르면 재차 남쪽으로 날아가지 않는다고 잘못 생각했었다. 북방의 날씨가 차갑게 바뀌면, 기러기 떼는 남쪽으로 가는데, 남쪽은 따뜻한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고, 고운 햇빛이 높이 비추며, 넓은 벌판에 모래벌이 펼쳐져 있고, 갈대가 무성하여, 항상 날아 온 기러기 떼가 서식한다. “서풍에 만 리의 기러기와, 한결같은 꽃잎들 동정호 가을이라. 무리가 금빛 모래밭에 가볍게 목욕하나, 상강에 서리 기운 흐르네.”(명나라, 이몽양), 한 폭에 가을 기러기가 모래밭에서 장난치는 그림이 훌륭하다. 劉金春,『岳麓風景名勝』, 中國 湖南文藝出版社, 1998, 第六章, 橘洲攬勝, 161-162쪽. “在衡陽市回雁峰. 瀟湘自永洲下瀉數百公理, 到?南岳七十二峰之首的回雁峰. “山到衡陽?, 峰回雁影稀, ?怜歸路遠, 不忍更南飛”(毛令健) 由于古人地理思維的局限性, 誤以爲雁到衡陽不再南飛. 當北方天氣轉冷, 雁陳南行, 南方則金風送爽, ?陽高照. 曠野平沙, 芦?叢叢, 常常引來雁陳栖宿. “西風万里雁, 一?洞庭秋, 群浴金沙軟, 瀟湘霜氣流”(明李夢陽), 好一幅秋雁?沙圖“.


평사낙안(平沙落?)은 형양시(衡陽市) 회안봉(回雁峰)을 배경으로 한다. 북방의 날씨가 차갑게 바뀌면 기러기 떼는 남쪽으로 날아오는데, 이때 남쪽은 따뜻한 바람과 고운 햇빛이 높이 비추고, 넓은 백사장과 갈대숲이 무성하여 기러기 떼가 서식하기에 좋은 환경이 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1.8. 강천모설(江天暮雪)
<그림 > 강천모설
강천모설(江天暮雪)은 멀리 아득하게 보이는 강변 하늘에 저물녘 내리는 눈을 말한다. 시간은 저물녘으로 설정되었고, 공간은 강천(江天)이다. 눈(雪)을 소재로 했기 때문에 계절은 겨울(冬)임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세모(歲暮)의 강은 텅 비었고, 바람은 매섭고 물결은 얼었다. 수신(水神)이 얼음을 자르고, 어지럽게 흩날리는 눈을 흩뿌린다. 크다고 노래하는 자 누구인가? 작은 배는 온통 달빛을 실었고, 차가운 물가에서 홀로 낚시질하며, 맑은 절조(絶調) 부친다.(「江天暮雪」詩幷序 : 歲暮江空, 風嚴水結. 馮夷??, 亂飄?雪. 浩歌者誰? 一?載月, 獨釣寒潭, 以寄淸絶.)

?笠無踪失釣船, 도롱 삿갓 자취 없이 낚싯배를 잃었는데,
?雲?淡混江天. 어둡고 담담한 붉은 구름 강천에 섞였네.
湘妃獨對君山老, 상비는 홀로 군산을 마주하고 늙은지라,
鏡裏修眉已皓然. 米?,「瀟湘八景圖詩幷序」,『湖南旅游文學名篇選讀』, 中國 湖南大學出版社, 2002, 170쪽 참고.
거울 속에서 하얗게 변한 눈썹을 닦네.

미불(米?)이 인식했던 그림 강천모설(江天暮雪)의 시간은 세모(歲暮)이며, 강은 텅 비어버린 듯 공허하고, 매서운 칼바람에 꽁꽁 얼어버린 수면에 어지럽게 흩날리고 있는 눈을 형상화했다. 추운 물가에서 작은 배를 띄워 놓고 달빛 가득 싣고, 홀로 낚시질을 하고 있는 어옹(漁翁)의 모습을 담아냈다. 시 작품을 통해서는 상비(湘妃)와 군산(君山)이라는 시어를 통해 순임금과 두 비(妃)의 고사(故事)를 형상화 대상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강천모설(江天暮雪)의 공간은 현재 귤주(橘洲)에 있다. 귤주는 예부터 장사(長沙)의 명승지로 여겼는데, 동쪽을 바라보면 장사(長沙), 서쪽을 바라보면 악록(岳麓)이다. 큰 눈이 분분하게 흩날리는 때가 되면, 흰눈이 강천(江天)과 혼연 일색을 이루고, 세상 만물이 고요하고 적막하여 아무런 소리도 없는데, 강중에는 상선들이 돛을 내리고 강안에 정박해 있고, 눈 빛 속으로 저녁 빛에 연무(烟霧)가 온통 떠다니며 가라앉지 않으니, 사람의 심경도 타관의 물 맑고 차가움에 이르고, 내리는 눈꽃이 바람에 춤을 추면, 그렇게 청량한 유유함이 아마도 겨울철 눈(雪)의 본질인 유유하면서도 한가로움에 가장 잘 접근했다고 생각한다. 劉金春,『岳麓風景名勝』, 中國 湖南文藝出版社, 1998, 第六章, 橘洲攬勝, 162쪽. “在今橘洲. 橘洲自古爲長沙名勝, 東望長沙, 西瞻岳麓. 當大雪紛飛, 白雪江天渾然一色, 世間万物寂寂無聲, 江中商船落帆泊岸, 雪光中的暮色烟霧一樣漂浮不定, 人的心境也就格外地淸冷, 思想隨着雪花飄舞, 那種淸凉的悠閑也許是最接近冬雪本質的悠閑”.


강천모설(江天暮雪)은 옛날부터 장사(長沙)의 명승지였던 귤주(橘洲)를 배경으로 한다. 겨울이 되어 큰 눈(雪)이 흩날리게 되면 흰 눈빛과 강이 혼연일색(渾然一色)이 되어 장관을 연출한다고 했다. 아울러 세상 만물은 고요하고 적막한데, 강가에는 상선들이 돛을 내리고 강변에 정박해 있고, 눈빛 속으로는 저녁 빛에 연무(烟霧)가 떠다니며 가라앉지 않는 형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소상팔경(瀟湘八景)’의 형성과 개념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는 본격적 논의에 앞서 논의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소상(瀟湘)’이란 말이 지닌 공간적 개념과 ‘팔경(八景)’의 구체적 장면들과 시(詩) 작품, 그리고 소상팔경(瀟湘八景)의 개별 시제(詩題)들이 오늘날 어느 곳에 실재하고 있는가 하는 점 등을 고증하였다. 다음 장에서는 이 논문에서 논의대상으로 삼고 있는 소상팔경(瀟湘八景)의 자료 범주에 대해 살펴본다.

2.2. 소상팔경(瀟湘八景)의 자료 범주

소상팔경(瀟湘八景)이 형성된 이후로 중국(中國)은 물론이고, 소상팔경(瀟湘八景) 문화가 유입된 한국(韓國)과 일본(日本)에서도 팔경(八景)의 문화가 유행하게 된다. 서론의 도입부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소상팔경이 고려(高麗)시대 명종(明宗:1171-1197) 이전 우리나라에 유입된 이래 다양한 양식과 갈래에 의해 유행했다. 조선조에 들어서는 청나라 사신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반드시 구해 갈 정도로 소중하게 인식되었던 품목이 바로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였다.『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를 보면 경종2년 1722년 12월 22일과 경종3년 1723년 7월 11일 기사에는 이러한 기록이 실려 있다.

여필용(呂必容)이 영접도감으로서 장계(狀啓)를 올려 말하여 이르기를, “청(淸)에서 온 칙사(勅使) 이하 사신 일행이 각종 물품 구하기를 청하니 차례로 들어가 주려는데, 상칙(上勅)에게는 조총 네 자루와 흑각(黑角) ‘흑각(黑角)’은 물소의 뿔로 검은 빛을 띤다.
네 통, 소상팔경(瀟湘八景) 비단 병풍 한 좌(坐), 화초영모도(花草翎毛) 비단병풍 한 좌(坐), 왜장검(倭將劒) 한 자루, 사립(?笠)『韓國美術史資料集成』에는 ‘斜笠’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笠’의 오기(誤記)로 보인다.
세 개를 지급하고, 부칙(副勅)에게는 조총 세 자루와 흑각 네 통, 소상팔경(瀟湘八景) 비단 병풍 한 좌(坐), 화초영모도(花草翎毛) 비단병풍 한 좌(坐), 왜장검(倭將劒) 한 자루, 사립(?笠)『韓國美術史資料集成』에는 ‘斜笠’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笠’의 오기(誤記)로 보인다.
세 개를 지급하고, 대통관(大通官)에게는 조총 각 두 자루, 병풍 각 두 좌, 사립 각 두 개씩을 지급하고, 두 차통관(次通官)에게는 조총 각 두 자루, 병풍 각 한 좌를 들어가 주려는 뜻을 감히 아룁니다.”했다. 상께서 전교(傳敎)하시길, “예도(禮道)를 아는구나!”라고 말씀하셨다.『承政院日記』第556冊, 景宗3년(1723年), 7月11日 記事, “呂必容以迎接都監言啓曰, 勅使以下求請各種之物, 以第入給, 而上勅鳥銃四柄, 黑角四桶, 瀟湘八景?屛一坐, 花草翎毛?屛一坐, 倭將劒一柄, ?笠三箇, 副勅, 鳥銃三柄, 黑角四桶, 瀟湘八景?屛一坐, 花草翎毛?屛一坐, 倭將劒一柄, ?笠三箇, 而大通官鳥銃各二柄, 屛風各二坐, ?笠各二箇, 兩次通官, 鳥銃各二柄, 屛風各一坐, 入給之意, 敢啓, 傳曰 知道.” 1722년 경종2년 기록에는 내용은 대동소이(大同小異)한데, 영접도감이 박희진(朴熙晉)이라는 인물로 기록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기록된 바와 같이 사신 일행의 최고 우두머리인 칙사(勅使)와 부칙사(副勅使)에게만 주고, 나머지 사신 일행에게는 주지 않을 정도로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귀하게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청나라 사신들이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요구했다는 점만 보더라도 당시 소상팔경(瀟湘八景)에 대한 청나라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이 소상팔경(瀟湘八景)에 대한 인식은 회화뿐만이 아니라 시가문학에서도 크게 유행하였음은 다양한 기록을 통해 확인된다.

소상팔경(瀟湘八景)의 아름다움이 온 세상에 명성을 떨쳤기에 고금의 시인들이 시 짓고 노래한 것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런데, 고움과 추함, 공교로움과 졸렬함이 각각 그 시인의 재질에 따라 달랐다. 생각해보니 우리 성종대왕(成宗大王)께서도 만기(萬機)를 처리하시는 여가에 재미삼아 소상팔경 단율(短律) 16장(章)을 지으신 적이 있었다. 매 경(景)마다 각각 두 장(章)의 작품이 지금까지 문단에 전해져 내려왔다. 모두 말하기를, “성인(聖人)의 입장에서 본다면 물론 여사(餘事)에 지나지 않는 것이겠지만, 사인(詞人) 묵객(墨客)으로서는 도저히 이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고들 했다. 그 후로, 우리 전하(仁祖)께서 원훈(元勳) 여덟 사람에게 명하여 각각 두 장씩 베껴 써서 바치도록 하였다.
그런데 오직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 이귀(李貴)만이 미처 써서 바치지 못한 채 죽고 말았다. 그 집에서 초본(草本)을 구해 보니 자획(字劃)이 많이 이지러졌고, 종이 또한 같지 않았다. 그래서 화사(畵史) 이징(李澄)에게 명하여 그림으로 그리게 한 다음 연이어 거첩(巨帖)을 만들도록 했다. 그 일이 완성되자, 신(臣) 장유에게 명하시어 이 일을 기록하게 하셨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시(詩)는 본래 성정(性情)의 드러남이고, 글씨도 역시 심획(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성묘(成廟)께서는 하늘이 내려준 다재다능한 성군(聖君)이셨으며, 신령스러운 글재주와 성인의 운치가 전대(前代)의 수준을 훨씬 능가했다. 소상팔경(瀟湘八景)을 지은 것이 비록 우연히 재미삼아 지은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성정(性情)이 일단(一端)이 표출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나아가 여러 신하들의 필적(筆蹟)으로도 각기 장단점이 있겠지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심획(心?)이 밖으로 형용된 것들이라고 하겠다.
우리 성상(聖上)께서 이 첩(帖)을 만드신 것은 위로는 성조(聖祖)께서 한 번 눈길을 주시고 한 번 언급하신 것을 대할 때마다 못내 잊지 못하는 사모심(思慕心)이 족히 일어났기 때문이요, 아래로는 훈구(勳舊)에 관심을 쏟고 그들의 수적(手蹟)을 감상하면서 비단 훌륭한 솜씨를 지녔던 노신(老臣)을 추억하고, 비고(?鼓) 소리에 장수(將帥)를 생각하는 정도로 그치지 않으셨기 때문이니, 이 일이 비록 큰일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 관계되는 바의 중대함이 어떻겠는가! 전세(前世)의 제왕(帝王)들이 서화(書畵)에 관심을 갖고 승경(勝景)을 감상하면서도 한갓 완물상지(玩物喪志)의 결과에 떨어진 것과 비교해 본다면 어찌 비단 하늘과 땅의 차이일 뿐이겠는가! 오, 아름답고도 성대하도다! 張維,『谿谷集』, 卷七,「成廟御製瀟湘八詠帖序」, “瀟湘八景之勝 擅名海內 古今詩人賦詠 不勝其多 而姸醜巧拙 各隨其人. 惟我 成宗大王 萬機之暇 戱賦短律十六章 每景各二章 流傳藝苑. 咸以爲在聖人誠爲餘事 終非詞人墨客所能到也. 我殿下命元勳八人各寫二章. 唯延平府院君李貴 未及寫進而歿. 從其家得草本 字多剩缺 紙亦不類. 乃命畵史李澄描以繪事 聯爲巨帖. 旣成 命臣維識之. 臣維竊聞 詩固性情之發 而書亦心?也. 洪惟 成廟以天縱多能之聖 神藻睿? 高出前代. 八詠之作 雖出於偶爾游戱 無非陶寫性情之一端也. 卽諸臣筆蹟 各有長短 要之皆心?之形於外者. 我聖上之爲是帖 上焉而對越聖祖寓目咳唾之餘 亦足以起羹墻之慕, 下焉而注念勳舊 觀其手蹟 不特如丹靑之憶老臣 ?鼓之思將帥 則玆事雖微 其所係之重爲如何哉. 其視前世帝王留意書畵. ?賞光景 徒爲玩物喪志之歸者. 何?穹壤. ?歟美哉 ?歟盛哉.”


인용문에서 드러나듯 소상팔경(瀟湘八景)에 대한 관심은 왕실(王室)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던 문화 현상으로 보인다. 왕실에서도 지속적으로 관심과 애착을 가지고 회화뿐만 아니라 시가 문학을 통해서도 향유되었다. 조선조 중종(中宗)은 신하들에게 소상팔경(瀟湘八景)을 시제(詩題)로 삼아 종종 응제시(應製詩)를 요구하여 시재(詩才)를 겨루게 했던 기록이 확인된다.

1.『朝鮮王朝實錄』,『中宗實錄』 二十年(1525年) 六月五日(癸巳)
팔경(八景)에 대한 칠언 율시(七言律詩) 제목을 내리며 일렀다. 전일에 대제학 이행(李荇)이 ‘시종(侍從)하는 문신들은 불시에 글을 짓도록 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지금 짓도록 하는 것이니, 홍문관·예문관·승정원·시강원은 내일까지 지어 와야 한다.(下八景七言律詩題曰, 前者大提學李荇言, 侍從文臣, 不時命製, 故今命製爾, 弘文館 藝文館 承政院 侍講院, 明日製進可也.)

2.『朝鮮王朝實錄』, 중종 28년(1533년) 8월 27일
임금께서 원포귀범(遠浦歸帆)을 제목으로 배율십운(排律十韻)을 양(陽)자 운(韻)에서 뽑아 지으라는 글을 써서 승지 오결(吳潔)에게 내리면서 일렀다.“즉시 호종한 당하관 문신에게 촉각(燭刻) <촉각(燭刻)이란 시간 제한을 촉박하게 하여 글을 짓게 하는 것이다. 즉 초에 금을 긋고 그 금이탈 때까지로 시간을 한정하는 것>으로 지어 바치게 하되 한성부 판윤 소세양(蘇世讓)과 예조 판서 유관(柳灌)을 시관(試官)으로 삼아 등급을 매기게 하라.” 처음에는 이조 판서 김안로를 시관으로 하였는데 그의 아들 기(祺)가 제사(製辭)하는 데 참여하였기 때문에 소세양으로 대신한 것이다.(御題遠浦歸帆, 排律十韻陽字韻, 下承旨吳潔曰“卽令扈從堂下官文臣, 燭刻製進, 以漢城府判尹蘇世讓, 禮曹判書柳灌爲試官科次”初以吏曹判書金安老爲試官, 以子祺參製辭之, 遂以世讓代之.)

3.『朝鮮王朝實錄』, 중종 30년(1535년) 5월 15일
상이 서교(西郊)에서 관가(觀稼)하고 이어 망원정(望遠亭)에 머물러 수전(水戰)을 관람하였다. 상이 동정추월(洞庭秋月)이란 글제로 오언률(五言律)을 짓고 어가(御駕)를 수행하는 신하들에게도 시를 지어 올리게 했는데, 심언광(沈彦光)·소세양(蘇世讓)·최세절(崔世節)·조인규(趙仁奎) 등이 우등하였다. 각각 활 1장(張)씩을 하사하라고 명하였다.(上觀稼于西郊, 仍駐于望遠亭, 觀水戰. 御題洞庭秋月五言律, 令扈駕之臣製進, 沈彦光 蘇世讓 崔世節 趙仁奎優等, 命賜弓各一張.)

4.『朝鮮王朝實錄』, 중종 31년(1536년) 5월 12일
김근사에게 전교하기를,“심언광(沈彦光)과 정사룡(鄭士龍)의 글 지은 점수가 똑 같으니 <두 사람이 모두 삼상(三上)과 차상(次上)이었다.> 마땅히 다시 같은 제목으로 글을 짓게 하여, 고하(高下)를 결정케 하라.”하고, 상이 '동정추월(洞庭秋月)'로 칠언율시(七言律詩)를 '서산제설(西山霽雪)'로 오언율시를 짓도록 시제(詩題)를 써서 내렸다. 그리하여 심언광이 1등을 하였고 활 쏘는 일도 끝났다. 정원에 전교하였다.“선온을 끝낸 뒤에 이름을 불러 상을 주되, 심언광에게는 숙마(熟馬) 1필을, 정사룡에게는 표피(豹皮) 1벌을 내리고, 그 밖의 소세양(蘇世讓)·조인규(趙仁奎)·유보(柳溥)·조사수(趙士秀)·오결(吳潔) 등에게는 각각 현궁(弦弓)을 갖춘 활 1장(張)을 주어라. <이상은 글을 지은 자들이다.> 관사(觀射)에서 1등인 교서관 부정자(校書館副正字) 남궁숙(南宮淑)에게는 상가(賞加)하고, 그 다음인 김감(金勘)·윤계(尹溪)·조희(曺禧)·박자영(朴自英) 등에게는 숙마를 주고, 서위(徐偉)·반석평(潘碩枰)·황기(黃琦)·민선(閔瑄)·최보한(崔輔漢) 등에게는 어린 말을 주라.”(傳于金謹思曰“沈彦光 鄭士龍所製等, <兩人皆爲三上次上>宜更令作一題, 決高下” 上以洞庭秋月五言律詩 西山霽雪五言律詩, 題書而下之 於是彦光居首, 而射事亦畢. 傳于政院曰“畢宣後, 呼名賜給” 彦光熟馬一匹, 士龍豹皮一令, 其餘蘇世讓 趙仁奎 柳溥 趙士秀 吳潔等, 各賜俱弦弓一丁 <此製述> 觀射居首, 校書館副正字南宮淑賞加, 其次金勘 尹溪 曺禧 朴自英等, 熟馬. 徐偉潘碩枰 黃琦 閔瑄 崔輔漢等, 兒馬.)

이처럼 역대 제왕들도 소상팔경(瀟湘八景)에 심취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기록 이외에도 다양한 갈래에 걸쳐 소상팔경(瀟湘八景)을 수용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그 가운데서도 주된 논의 대상이 되는 문학(文學)에 한정하여 살펴볼 것이다. 이를 위해 소상팔경을 수용하고 있는 문학적 범주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현재까지 수집된 자료에 의거하면 한시(漢詩)와 시조(時調), 가사(歌辭), 판소리, 민요(民謠), 무가(巫歌), 시화(詩話), 설화(說話), 판소리계 소설(小說), 고소설(古小說), 종교의 경전(經典), 현대소설(現代小說)과 수필(隨筆) 등에서 소상팔경(瀟湘八景)의 형상이 확인된다. 거의 모든 갈래에 걸쳐 두루 확인되고 있다. 갈래별로 확인된 작품들을 개괄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시(漢詩)는 산시청람(山市晴嵐)을 대상으로 지은 작품이 51수, 연사모종(煙寺暮鐘)을 대상으로 지은 작품이 51수, 소상야우(瀟湘夜雨)를 대상으로 지은 작품이 63수, 원포귀범(遠浦歸帆)을 대상으로 지은 작품이 52수, 평사낙안(平沙落?)을 대상으로 지은 작품이 59수, 동정추월(洞庭秋月)을 대상으로 지은 작품이 61수, 어촌낙조(漁村落照)를 대상으로 지은 작품이 58수, 강천모설(江天暮雪)을 대상으로 지은 작품이 58수, 그리고 이렇게 소상팔경의 개별 시제(詩題)에 따라 지은 작품은 아니지만 소상팔경을 노래한 한시 작품들이『비해당소상팔경시첩(匪懈堂瀟湘八景詩帖)』에 14수, 그리고 ‘소상팔경(瀟湘八景)’을 대상으로 창작된 작품 10수를 포함하여 총 471수의 작품을 확인한 후 정리하였다. 이 471수의 한시 작품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총 86명의 문인이 창작했다. 소상팔경(瀟湘八景)을 대상으로 한시를 창작했던 고려조와 조선조의 86명 명단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강항(姜沆;1567-1618)/강석덕(姜碩德;1395-1459)/강희맹(姜希孟;1424-1483)/곽자완(郭自完;出沒年未詳)/구음(具;1614-1683)/구종직(丘從直;1404-1477)/권만(權萬;1688-未詳)/권두경(權斗經;1654-1725)/권상일(權相一;1679-1759)/권호문(權好文;1532-1587)/김맹(金孟;未詳-未詳)/김휴(金烋;1597-1638)/김도수(金道洙;出生未詳-1742)/김득신(金得臣;1754-1822)/김만기(金萬基;1633-1687)/김봉조(金奉祖;1572-1630)/김상헌(金尙憲;1570-1652)/김시락(金時洛;1857-1896)/김시습(金時習;1435-1493)/김안국(金安國;1478-1543)/김종서(金宗瑞;1390-1453)/김홍욱(金弘郁;1602-1654)/나식(羅湜;1498-1546)/나경문(羅景文生沒年未詳)/남수문(南秀文;1408-1442)/류축(柳潚;1564-1636)/류의손(柳義孫;1398-1450)/만우(卍雨;1357-未詳)/민제인(閔齊仁;1493-1549)/박순(朴淳;1523-1589)/박광전(朴光前;1526-1597)/박세당(朴世堂;1629-1703)/박영원(朴永元;1791-1854)/박팽년(朴彭年;1417-1456)/배유화(裵幼華;1611-1673)/서거정(徐居正;1420-1488)/성삼문(成三問;1418-1456)/성종대왕(成宗;1457-1494)/소세양(蘇世讓;1486-1562)/송래희(宋來熙;1791-1867)/숙종대왕(肅宗;1661-1720)/신광한(申光漢;1484-1555)/신석조(辛碩祖;1407-1459)/신숙주(申叔舟;1417-1475)/안지(安止;1367-1464)/안숭선(安崇善;1392-1452)/어세겸(魚世謙;1430-1500)/윤추(尹推;1632-1707)/윤계동(尹季童;未詳-1453)/윤순지(尹順之;1591-1666)/이곡(李穀;1298-1351)/이여(李?;1645-1718)/이익(李瀷;1681-1763)/이행(李荇;1478-1534)/이광정(李光庭;1674-1756)/이규보(李奎報;1168-1241)/이만부(李萬敷;1664-1732)/이만운(李萬運;1736-未詳)/이보흠(李甫欽;未詳-1457)/이수광(李?光;1563-1628)/이승소(李承召;1422-1484)/이익신(李翊臣;未詳-未詳)/이인로(李仁老;1152-1220)/이재관(李在寬;1783-1837)/이정암(李廷?;1541-1600)/이제현(李齊賢;1287-1367)/이헌경(李獻慶;1719-1791)/이현석(李玄錫;1647-1703)/이홍유(李弘有;1588-1673)/임억령(林億齡;1496-1568)/정두경(鄭斗卿;1597-1673)/정사룡(鄭士龍;1491-1570)/정인지(鄭麟趾;1396-1478)/정조대왕(正祖;1752-1800)/정종로(鄭宗魯;1738-1816)/정희량(鄭希良;1469-未詳)/조욱(趙昱;1498-1557)/조서강(趙瑞康;未詳-1444)/진화(陳?;1180-1215,추정)/최항(崔恒;1409-1474)/하연(河演;1376-1453)/하진(河?;1597-1658)/홍섬(洪暹;1504-1585)/홍세태(洪世泰;1653-1725)/홍언필(洪彦弼;1476-1549)/황준량(黃俊良;1517-1563) 등 총 86명의 문인이 -이상은 가나다 순임-소상팔경(瀟湘八景) 한시를 창작했다.

이 가운데 산시청람(山市晴嵐), 연사모종(煙寺暮鐘), 소상야우(瀟湘夜雨), 원포귀범(遠浦歸帆), 평사낙안(平沙落?), 동정추월(洞庭秋月), 어촌낙조(漁村落照), 강천모설(江天暮雪)의 소상팔경(瀟湘八景) 모든 시제(詩題)를 대상으로 창작하여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는 작품을 남긴 문인은 총 38명이다. 강석덕, 강희맹, 구음, 권만, 권두경, 권상일, 김만기, 김시락, 김시습, 김홍욱, 만우, 박영원, 성종대왕, 성삼문, 소세양, 송래희, 숙종대왕, 신광한, 어세겸, 윤추, 이행, 이광정, 이규보, 이수광, 이승소, 이인로, 이정암, 이제현, 이홍유, 정조대왕, 정두경, 정사룡, 정종로, 정희량, 조욱, 진화, 홍세태, 홍언필 등 38인.

그런데 홍세태(1653-1725)의 작품 여덟 수가 정두경(1597-1673)의 작품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고증한 결과 홍세태가 일본에 가서 그곳의 문인들과 어울려 소상팔경을 노래할 때에 창랑 홍세태는 정두경의 작품을 그대로 읊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일본 측 문헌에 그 노래가 창랑 홍세태의 작품인 것으로 인식되어 그대로 남아 전해지는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37명의 문인이 소상팔경의 여덟 장면을 온전하게 전하고 있는 셈이다. 37명의 문인이 창작했던 소상팔경의 작품 수는 총 360수가 정리 되어 있다.
둘째, 시조(時調) 갈래이다. 시조는 전체 72수가 전한다. 하지만 시조의 경우 일반적으로 제목이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소상팔경을 시제(詩題)로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작품이 드물다. 조선 전기 이후백(李後白;1520-1578)의 경우는 드물게 소상팔경을 시조의 제목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것이 흔한 경우는 아니다. 이후백의 시조 작품 여덟 수에 대한 진위 논란을 떠나서 일단은 여덟 수가 전하고 있다. 나머지 작품이 64수에 이른다. 형식상으로는 평시조, 엇시조, 사설시조가 존재한다. 소상팔경 한시에서 형상화되었던 심상을 많이 활용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주로 지명(地名)과 주요 지형지물을 통해 소상팔경을 대상으로 창작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셋째, 가사(歌辭) 갈래이다. 소상팔경(瀟湘八景)이라는 제목으로 창작된 가사는 한 작품만이 전하고 있다. 국문학 연구의 초창기에 이희승에 의해 소개되었다. 李熙昇,「歌詞 <瀟湘八景> 解說」『文章』제3집, 1939. 4.
그는 1939년 4월에 간행된『문장(文章)』제3집에「가사(歌詞) 소상팔경(瀟湘八景) 해설」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이 글은 초창기 연구 성과로 소상팔경 가사 원문을 제시하고, 어구(語句)를 주해(註解)하여 후대의 연구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소상팔경 가운데 「연사모종(煙寺暮鐘)」을 「황릉애원(黃陵哀怨)」이 대체하고 있다는 점이다. 「황릉애원(黃陵哀怨)」은 순임금과 그의 두 아내였던 아황과 여영의 사건에 얽힌 이야기를 배경으로 창작된 내용이다. 그러므로「황릉애원(黃陵哀怨)」은 「소상야우(瀟湘夜雨)」와 매우 유사한 분위기와 정조를 표출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넷째, 판소리 갈래이다. 판소리「춘향가(春香歌)」,「심청가(沈淸歌)」,「흥보가(興甫歌)」,「수궁가(水宮歌)」,「적벽가(赤壁歌)」의 다섯 마당 가운데「춘향가(春香歌)」,「심청가(沈淸歌)」,「흥보가(興甫歌)」,「수궁가(水宮歌)」의 네 마당에 걸쳐 소상팔경과 관련된 사설이 등장한다. 「춘향가(春香歌)」에서는 방자의 경계풀이와 춘향이 옥안에 갇혀 본관 수령의 처분만 기다리며 자신의 신세를 원망하는 옥중가 더늠에서 소상팔경 관련 사설이 등장한다. 「심청가(沈淸歌)」에서는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지기에 앞서 소상팔경을 유람하는 더늠이 등장한다.「흥보가(興甫歌)」에서는 ‘제비노정기’ 더늠에서 소상팔경에 대한 사설이 등장한다.「수궁가(水宮歌)」에서는 ‘고고천변’이라고 하는 더늠에서 소상팔경과 관련된 사설이 등장하고 있다.
다섯째, 민요(民謠) 갈래이다. 서도 민요의 하나인「수심가」에 잇대어 부르는「엮음 수심가」에서는 소상팔경으로 들어가는 두 동자를 설정하고 있다. “소상강으로 배타고 저 불고 가는 놈 저 두 동자야 말 물어 보자. 너희 선생이 뉘라 하시며 행하는 곳은 그 어디메런가?”라고 하며 노래가 시작된다. 그런가하면『한국구비문학대계 5-2』에는 서사학동 민요로「소상팔경」노래가 전해진다.
여섯째, 무가(巫歌) 갈래이다. 무가에서는「만조상해원경」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전하고 있다. 전체 가운데 해당하는 부분만 보면, “아황여영 두 미녀는 요임금의 소생으로 순임금을 섬기다가 소상강에 이별하고 피눈물을 뿌릴 적에 마디마다 아롱다롱 소상반죽 생겼으니 근들아니 원혼이며 그 설움이 같을소냐. 금일 오신 저 조상님 그런 혼신 본을 받아 한번 가심에 원을 말고 생왕극락 들어가서 인도환생 하옵소서. 나무아미타불.”이라고 기록되어 전하고 있다.
일곱째, 시화(詩話) 갈래이다. 역대 시화(詩話)에서 소상팔경(瀟湘八景)과 관련된 언급들을 보면 우선 서거정의『동인시화(東人詩話)』에서는 상권(上卷)의 11화(話), 54화(話), 56화(話) 세 편에서 소상팔경 관련 작품이 언급되고 있다. 11화에서는 고려시대 이인로(李仁老)의 소상팔경 한시 가운데 동정추월(洞庭秋月) 작품을 소개하면서 송나라 때 문인 소순흠(蘇舜欽)의 작품을 점화(點化)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54화에서는 동정호(洞庭湖)와 악양루가 있는 파릉산(巴陵山)이 천하의 장관임을 언급하며 시인묵객들의 작품을 소개했다. 56화에서는 이인로, 진화, 이제현의 소상팔경시를 대상으로 다양한 평어로 작품을 평가하고 있다.
허 균은『성수시화(惺?詩話)』21화(話)에서는 원나라 귀양지에서 숨을 거둔 김구용(金九容)과 조서(曹庶)를 예로 들어 말하기를, “나는 대장부로 좁은 땅에 태어났기에 널리 노닐 수 없음을 언제나 한탄하였다. 두 분은 비록 먼 지방으로 귀양을 갔다지만 오나라와 초나라 지방 산천을 두루 보았으니, 참으로 인간 세상의 장쾌한 일이었다.”고 언급하면서 소상강과 동정호가 주무대인 오(吳) · 초(楚) 지역을 언급하고 있다.
김만중은『서포만필(西浦漫筆)』권하(卷下) 30화(話)와 31화(話)에서, “당나라 숙종(肅宗) 대종(代宗) 시대를 당하여 군문(軍門)에 있던 신하로 장안(長安)을 평정했던 공적이 있는데도, 국가의 성패에 관여하지 않고 동정호(洞庭湖)와 소상강(瀟湘江) 사이에서 단풍 향기를 맡으며 신선 배우기를 장량(張良)이 적송자(赤松子)를 따르듯 한 사람은 업후(?侯)가 아니면 또 누가 있겠는가?”하며 동정호(洞庭湖)와 소상강(瀟湘江) 일대를 언급했다.
하겸진은『동시화(東詩話)』권이(卷二) 63화(話)에서 월과(月課)를 맡았던 시관 채유후(蔡裕後)가 시제(詩題)로 ‘소상반죽(瀟湘斑竹)’을 냈는데, 홍주세가 장원으로 선택됨과 그의 시 작품 흰 구름 사이로 창오산 빛 쓸쓸한데/ 남으로 가신 황제 언제나 돌아올까/ 남은 한은 상강 따라 흐르지 못하고/ 눈물 흔적 대나무에 얼룩져 항상 남아있네/ 천년 굳은 절개 눈서리 이겨내고/ 깊은 밤 찬 소리 패옥 고리에서 울리네/ 자고새는 울다 지쳐 사람도 보이질 않고/ 강변에 두어 봉우리 이슬 안개 자욱하네.(蒼梧愁絶白雲間/ 帝子南奔幾日還/ 遺恨不隨湘水去/ 淚痕常在竹枝斑/ 千秋勁節凌霜雪/ 半夜寒聲動佩環/ 啼罷??人不見/ 數峰江上露烟?)
을 소개하면서 당나라 때 시인 전기(錢起)의「상령고슬(湘靈鼓瑟)」 善鼓雲和瑟/ 常聞帝子靈/ 馮夷徒自舞/ 楚客不堪聽/ 苦調凄金石/ 淸音入杳冥/ 蒼梧來怨慕/ 白芷動芳馨/ 流水傳湘浦/ 悲風過洞庭/ 曲終人不見/ 江上數峯靑.『당시기사(唐詩紀事)』권30, 전기(錢起). 전기가 향천(鄕薦)으로 강호의 객사에서 묵고 있을 때 마당에서 시를 읊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곡이 끝났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고, 강변에는 몇 개 봉우리만 푸르네.”라고 하였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아무 것도 없었다. 천보 10년에 ‘상령고슬’이라는 제목으로 시험을 보았다. 전기는 그때 들렸던 시구를 이용해서 시를 지었다. 당시 사람들이 그 시를 보고서 귀신의 노래라고 했다고 한다.
시에 비견한다고 지적했다.
여덟째, 판소리계 소설(小說)이다. 판소리계 소설로는「춘향전(春香傳)」과「심청전(沈淸傳)」에서 소상팔경(瀟湘八景)이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먼저「춘향전(春香傳)」의 경우를 살펴본다. 춘향이 옥중에 갇혀 죽을 날만을 기다리다가 꿈을 꾸는 대목이다.

칼머리 도도 베고 우연히 잠을 드니, 향취(香臭) 진동하며 여동(女童) 한 쌍 내려와서 춘향 앞에 궤좌(?坐)하며 여짜오되, “소녀 등은 황릉묘(黃陵廟) 시비(侍婢)러니, 낭랑(娘娘)의 명을 받아 낭자를 모시러 왔사오니, 사양치 말고 가사이다.” 춘향이 공손히 답례하는 말이, “황릉묘(黃陵廟)라 하는 곳이 소상강(瀟湘江) 만 리밖에 멀고 멀고 멀었으니 어찌하여 가잔 말인가?” “가시기는 염려 마옵소서.” 손에 든 봉미선(鳳尾扇)을 한 번 부쳐 두 번 부쳐 구름 같이 이는 바람 춘향의 몸 훨적 날려 공중에 오르더니, 여동이 앞에 세우고 길을 인도하여 석두성(石頭城)을 바삐 지나 한산사(寒山寺) 구경하고 봉황대(鳳凰臺) 올라가니, 좌편은 동정(洞庭)이요, 우편은 팽려(彭?)로다. 적벽강 구름 밖에 십이 봉이 둘렀는데, 칠백 리 동정호(洞庭湖)에 오초동남(吳楚東南) 여울물의 오고 가는 상고(商賈)들은 순풍(順風)에 돛을 달아 불피풍우(不避風雨) 떠나가고, 악양루(岳陽樓) 잠깐 쉬어 청초(靑草) 군산(君山)을 당도하니, 백빈주(白?洲) 갈가마귀는 오락가락 소리하고, 무협의 잔나비는 자식 찾는 슬픈 소리, 객(客)의 심사(心思) 처량하다. 소상강 당도하니, 경개(景槪)도 기이하다. 반죽(斑竹)은 성림(成林)한데 아황여영(娥皇女英) 눈물 흔적 뿌려 있고, 오현금(五絃琴) 비파성(琵琶聲) 은은히 들리는데, 십층대옥(十層大屋) 누각(樓閣)이 구름 속에 솟았는데, 영롱(玲瓏)한 전주발과 안개 같은 비단장(緋緞帳)을 경개(景槪) 둘렀는데 주위도 웅장하고 기세도 거룩하다. 여동이 앞에 서서 춘향을 인도하여 전문(殿門) 밖에 세워두고 전상(殿上)에 고하니, “춘향이 바삐 입시(入侍) 들라.” 춘향이 황송하여 계하(階下)에 복지(伏地)하니, 낭랑이 하교(下敎)하되, “전상(殿上)으로 오르라.” 춘향이 전상에 올라 거수(擧手) 재배(再拜)하고 염슬피좌(斂膝避座)하여 위를 살펴보니, 제일층 옥교상(玉轎上)에 낭랑상군(娘娘湘君) 전좌(殿座)하고, 제이층 황옥교(黃玉轎)에 상부인(湘夫人)이 앉았는데, 향취(香臭) 진동하며 옥패(玉佩) 쟁쟁(??)하여 천상옥경(天上玉京) 완연하다. 춘향을 불러다 사좌하여 앉은 후에, “춘향아 네 들어라. 전생(前生) 일을 모르리라. 부용성(芙蓉城) 영주궁(瀛州宮)의 운화부인 시녀(侍女)로서 서왕모(西王母) 요지연(瑤池淵)의 장경성(長庚星)에 눈을 주어 반도(蟠桃)로 희롱타가 인간에 전고하여 인간 공사 겪거니와 불구(不久)에 장경성(長庚星)을 서로 만나 영화부귀(榮華富貴)할 것이니 마음을 변치 말고 열녀(烈女)를 효칙(效則)하여 천추(千秋)에 유전하라.” 춘향이 일어서며 면면재배(面面再拜)한 연후에, 월왕 구경 하려다가 실족(失足)하여 깨달으니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 잠을 깨어 수성탄식(數聲歎息) 하는 말이, “이 꿈이 웬 꿈인가? 남양초당(南陽草堂) 큰 꿈인가? 내가 죽을 꿈이로다.” 칼을 빗겨 안고, “애고 목이야, 애고 다리야. 이것이 웬일인고?” 李古本,「春香傳」


그런가 하면,「심청전(沈淸傳)」에서는 심청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대목이 등장한다. 이때 인당수에 투신하기 직전 소상팔경(瀟湘八景)을 유람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강두에 다다르니 선인들 모여들어 뱃머리에 좌판 놓고 심 소저를 뫼셔 올려 빗장 안에 앉힌 후에, 닻을 감고 돛을 달아 소리하며 북을 둥둥 울리면서 지향 없이 떠나간다. 범피중류(泛彼中流) 떠나갈 제 망망한 창해 중에 탕탕한 물결이라. 백빈주(白?洲) 갈매기는 홍료안(紅蓼岸)으로 날아들고 상강(湘江)의 기러기는 평사(平沙)로 떨어진다. 요량(寥亮)한 남은 소래 어적(漁笛)인 듯하건마는 곡종인불견(曲終人不見)에 유색(柳色)만 푸르렀다. 애내성중만고수(?乃聲中萬古愁)는 나를 두고 이름이라. 장사(長沙)를 지나니 가태부(賈太傅) 간 곳 없고, 멱라수(汨羅水) 바라보니 굴삼려(屈三閭) 어복충혼(魚腹忠魂) 어디로 가셨는고. 황학루(黃鶴樓) 다다르니 일모향관하처시(日暮鄕關何處是)요, 연파강상사인수(烟波江上使人愁)는 최호(崔顥)의 유적이라. 봉황대 다다르니 삼산반락청천외(三山半落靑天外)요, 이수중분백로주(二水中分白鷺洲)는 태백(太白)이 노던데요, 심양강(尋陽江) 다다르니 백낙천(白樂天)이 어디 가고 비파성(琵琶聲)이 끊어졌다. 적벽강 그저 가랴, 소동파(蘇東坡) 노던 풍경 의구히 있다마는 조맹덕(曹孟德) 일세지웅(一世之雄) 이금안재재(而今安在哉)요, 월락오제(月落烏啼) 깊은 밤에 고소성대(姑蘇城臺)에 배를 매고 한산사(寒山寺) 쇠북소리 객선에 떨어진다. 진회수(秦淮水) 건너가니 격강(隔江)의 상녀(商女)들은 망국한(亡國恨)을 모르고서, 연롱수(烟籠樹) 월롱사(月籠沙) 할 제 후정화(後庭花)만 부르더라. 소상강 들어가니 악양루(岳陽樓) 높은 집은 호상에 떠서 있고, 동남으로 바라보니, 오산(吳山)은 첩첩이요, 초수(楚水)는 망중(望中)이라, 반죽(斑竹)에 젖은 눈물 이비유한(二妃遺恨) 띄워 있고, 무산(巫山)에 돋는 달을 동정호에 비취이니 상하천광(上下天光), 거울 속에 푸르렀다. 창오산의 저문 연기 참담하여 황릉묘에 잠기었다. 산협의 잔나비는 자식 찾는 슬픈 소리 천객(遷客) 소인(騷人) 몇몇이냐. 심청이 배 안에서 소상팔경(瀟湘八景) 다 본 후에 한 곳을 가노라니, 향풍이 일어나며 옥패 소리 들리더니 의희(依?)한 주렴 사이로 어떠한 두 부인이 선관(仙冠)을 높이 쓰고 자하상(紫霞裳) 걷어안고 뚜렷이 나오더니, “저기 가는 심 소저야, 나를 어이 모르느냐. 우리 성군 유우씨(有虞氏)가 남순하시다가 창오야(蒼梧野)에 붕하시니 속절없는 이 두 몸이 소상강 대수풀에 피눈물을 뿌렸더니, 가지마다 아롱져서 닢닢히 원한이라. 창오산붕상수절(蒼梧山崩湘水絶)에 죽상지루내가멸(竹上之淚乃可滅)이라. 천추 깊은 한을 하소할 길 없었더니, 네 효성이 지극키로 너다려 말하노라. 대순붕후기천년(大舜崩後幾千年)에 오현금남풍시(五絃琴南風詩)를 지금까지 전하더냐. 수로 만리 몇몇 일에 조심하여 다녀오라.” 홀연히 간 곳 없다. 심청이 생각하니 소상강이 예로다. 죽으러 가는 나를 조심하여 오라 하니 진실로 괴이하다. 그곳을 지내어서 회계산(會稽山)에 당도하니 풍랑이 일어나며 찬 기운이 소삽터니, 한 사람이 나오는데 두 눈을 꽉 감고 가죽으로 몸을 싸고 울음 울고 나오더니, “저기 가는 심 소저야, 네가 나를 모르리라, 오나라 오자서(伍子胥)로다. 슬프다 우리 성상(聖上), 백비(伯?) 참소 듣고 촉루검(屬鏤劒)을 나를 주어 목을 찔러 죽인 후에 가죽으로 몸을 싸서 이 물에 던졌구나. 원통함을 못 이기어 월병이 멸오(滅吳)함을 역력히 보려 하고 내 눈을 일찍 빼어 동문상에 걸었드니 내 완연히 보았으나, 몸에 쌓인 이 가죽을 뉘라서 벗겨 주며 눈 없는 게 한이로다.” 홀연히 간 곳 없다. 심청이 생각하니 그 혼은 오나라 충신 오자서라. 한 곳에 다다르니 어떠한 두 사람이 택반(澤畔)으로 나오는데, 앞으로 서신 이는 왕자의 거상이라. 의상이 남루하니 초수(楚囚)일시 분명하다. 눈물지며 하는 말이, “애달고도 분한 것이 진나라 속임 되어 무관(武關)에 삼년 있다 고국을 바라보니 미귀혼(未歸魂)이 되었고나. 천추에 한이 있어 초혼조(招魂鳥)가 되었더니, 박랑퇴성(博浪推聲) 반겨 듣고 속절없는 동정달에 헛 춤만 추었세라.” 그 뒤에 한 사람은 안색이 초췌하고 형용이 고고(枯槁)한데, “나는 초나라 굴원이라. 회왕을 섬기다가 자란(子蘭;초회왕의 아들)의 참소 만나 더러운 마음 씻으려고 이 물에 와 빠졌노라. 어여쁠사 우리 임금, 사후에나 뫼셔볼가. 길이 한이 있었기로 이같이 뫼셨노라. 제고양지묘예혜(帝高陽之苗裔兮)여 짐황고왈백용(朕皇考曰伯庸)이라. 유초목지령낙혜(唯草木之零落兮)여 공미인지지모(恐美人之遲暮)로다. 세상에 문장 재사 몇 분이나 겨시드냐. 심 소저는 효성으로 죽고 나는 충신으로 죽었으니, 충효는 일반이라 위로코자 나왔노라. 창해 만리에 평안히 가옵소서.”
심청이 생각하되 죽은 지 수천 년에 영혼이 남아 있어 내 눈에 뵈는 일이 그 아니 이상한가? 다 죽을 징조로다. 슬프게 탄식한다. 물에서 밤이 몇 밤이며 배에서 날이 몇 날이냐. 거연(居然) 사오 삭에 물결같이 흘러가니 금풍삽이석기(金風颯以夕起)하고 옥우확기쟁영(玉宇廓其?嶸)이라. 낙하여고목제비(落霞與孤鶩齊飛)하고 추수공장천일색(秋水共長天一色)이라, 강안(江岸)에 귤농(橘濃)하니 황금(黃金)이 천편(千片)이요, 노화(蘆花)에 풍기(風起)하니 백설이 만점이라. 신포세류(新浦細柳) 지는 잎과 옥로청풍(玉露淸風) 불었는데, 괴로울사 어선들은 등불을 도두 달고 어가(漁歌)로 화답하니 돋우는 게 수심이요, 해반의 청산들은 봉봉이 칼날이라. 일락장사추색원(日落長沙秋色遠)하니 부지하처조상군(不知何處吊湘君)이라. 송옥(宋玉)의 비추부(悲秋賦)가 이에서 슬플소냐. 동녀를 실었으니 진시황의 채약(採藥) 배인가. 방사(方士)는 없었으니 한무제(漢武帝) 구선(求仙) 배인가. 내가 진작 죽자 하니 선인들이 수직(守直)하고 살아 실려 가자 하니 고국이 창망하다. 한 곳을 당도하여 닻을 주고 돛을 지우니 이곳 인당수라. 광풍이 대작하고 바다가 뒤눕는데, 어룡이 싸우는 듯 대양바다 한 가운데 돛도 잃고 닻도 끊쳐 노도 잃고 키도 빠져 바람 불고 물결쳐 안개 뒤섞여 자자진 날, 갈 길은 천리나 만리나 남고 사면이 검어 어둑 저물어 천지지척 막막하여 산 같은 파도 뱃전을 땅 땅 쳐 경각에 위태하니, 도사공 이하가 황황대겁하여 혼불수신(魂不守身)하여 고사 절차 차리는데, 섬쌀로 밥을 짓고 돝 잡아 큰 칼 꽂아서 정하게 바쳐 놓고 삼색실과 오색 당속(糖屬) 큰 소 잡고 동이 술을 방위 차려 갈라놓고 심청을 목욕시켜 의복을 정히 입혀 뱃머리에 앉힌 후에, 도사공이 고사를 올릴 제 북채를 갈라 쥐고 북을 둥둥 둥둥 두리 둥둥 울리며, “헌원씨(軒轅氏) 배를 모아 이제불통(以濟不通) 하옵신 후, 후생이 본을 받아 다 각기 위업하니 막대한 공이 아닌가. 하우씨(夏禹氏) 구년지수(九年之水) 배를 타고 다스리고, 오복 고성공 세우고 도로 구주(九州) 돌아들 제 배를 타고 기다리고, 공명(孔明)의 높은 조화 동남풍을 빌어내어 조조(曹操)의 백만 대병 주유(周瑜) 화공(火攻)하여 적벽대전(赤壁大戰) 하올 적에 배 아니면 어이하리. 주요요이경양(舟搖搖而輕?)하니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歸去來)요, 해활(海?)하니 고범지(孤帆遲)는 장한(張翰)의 강동거(江東去)요, 임술지추(壬戌之秋) 칠월에 종일위지소여(縱一葦之所如)하여 소동파 놀아 있고, 지국총 어사화로 공선만재명월귀(空船滿載明月歸)는 어부의 즐김이요, 계도란요하장포(桂棹蘭橈下長浦)는 오희월녀(吳姬越女) 채련주(採蓮舟)요, 차군발선하양성(嗟君發船下陽城)은 상고선(商賈船)이 그 아닌가. 우리 동무 스물네 명 상고로 위업하여 십오 세에 조수 타고 경세우경년(經歲又經年)에 표박서남(漂泊西南) 다니더니, 오늘날 인당수에 제수를 올리오니 동해신 아명(阿明)이며 남해신 축융(祝融)이며 강한지종(江漢之宗)과 천택지신(川澤之神)이 제수를 흠향하여 일체통감(一體洞鑑) 하옵신 후, 비렴(飛簾)으로 바람 주고 해약(海若)으로 인도하여 백천금퇴(百千金堆)로 내게 소망 이뤄 주옵소서. 고시레 둥둥.”

이 외에도「토끼전」에서도 소상팔경(瀟湘八景)과 관련된 대목이 등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이본인「별주부전」에서도 그러한 대목이 확인되고 있다.
아홉째, 설화(說話) 갈래이다. 설화로는「돈 대신에 소상강(瀟湘江) 구경」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전해진다. 구비설화로는「임진왜란과 소상반죽」이라는 제목의 작품이『한국구비문학대계』에 전하고 있다.
열 번째, 고소설(古小說) 갈래이다. 고소설 가운데는「구운몽(九雲夢)」과「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그리고「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등의 작품에서 소상팔경의 형상이 등장하고 있음이 확인된다.「구운몽(九雲夢)」의 경우는 작품의 배경이 되고 있는 공간 자체가 소상팔경의 무대로 설정되어 있다.「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와「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에서도 소상팔경(瀟湘八景)의 이미지가 작품의 서사적 맥락에서 중요한 의미와 기능을 담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개괄적으로 살펴본 자료 외에도 증산교나 대순진리교 등의 자생적 민족종교의 종교경전에서도 소상팔경과 관련된 내용이 중요한 교리(敎理)로 기술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상팔경(瀟湘八景)이 우리나라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종교의 경전에 서술되는 경우는 여덟 가지 개별 시제(詩題) 가운데 순임금과 그의 두 아내였던 아황과 여영의 사건을 중심으로 형상화된 소상야우(瀟湘夜雨)와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대소설과 현대수필에 이르기까지도 소상팔경(瀟湘八景)은 중요한 문학의 소재이자 원천으로 인식되고 있었음이 확인된 셈이다.
이처럼 소상팔경(瀟湘八景)은 회화사(繪畵史)뿐만 아니라 우리 문학사에서도 다양한 갈래에 걸쳐 형상화가 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논문에서는 앞서 살펴본 다양한 갈래에 형상화된 소상팔경 문학을 대상으로 논의를 전개할 것이다. 다양한 갈래를 연구 대상으로 삼되,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아무래도 한시(漢詩) 갈래가 될 것이다. 다른 갈래의 경우에는 주로 소상팔경(瀟湘八景)의 전체적인 형상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시제(詩題)를 중심으로 하는 개별적이며 구체적인 논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덟 가지의 경(景)을 다루고 있는 한시(漢詩)를 통해 각각의 시제(詩題)에 담긴 형상(形狀)과 함의(含意) 그리고 그 이면에 감추어진 서사적 맥락을 밝힐 수 있으리라 예상하기 때문이다.

2.3. 소상팔경(瀟湘八景)의 공간 심상(心象)

공간 서사(敍事)이라는 개념이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서사(敍事)라고 하면 흔히 인물이 중심이 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하지만 그러한 시각은 우리 인간을 중심으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서사(敍事)라고 할 때, 우리는 흔히 한 인간이 살아온 삶의 내력을 중심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공간 서사라는 용어는 인간을 중심으로 서사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중심으로 그 공간이 지내온 내력을 살펴보는 것이다. 특정 공간이나 지역이 거쳐 온 특수한 내력을 살펴보고자 할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점은 그 공간과 관련된 작품의 의미를 보다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말하자면 소상강(瀟湘江)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어떠한 인물과 어떠한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났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왜 하필이면 소상강(瀟湘江) 일대를 배경으로 소상팔경(瀟湘八景)이 성립될 수밖에 없었는가? 그리고 소상팔경(瀟湘八景)의 이면에는 어떠한 서사가 함축되어 있는가 하는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산시청람(山市晴嵐), 연사모종(煙寺暮鐘), 소상야우(瀟湘夜雨), 원포귀범(遠浦歸帆), 평사낙안(平沙落?), 동정추월(洞庭秋月), 어촌낙조(漁村落照), 강천모설(江天暮雪)이라는 소상팔경(瀟湘八景) 가운데 구체적인 지명(地名)이 제시된 시제(詩題)는 소상야우(瀟湘夜雨)와 동정추월(洞庭秋月) 단 둘뿐이다. 소상야우(瀟湘夜雨)는 소상강(瀟湘江)이라는 구체적 공간이 제시되어 있으며, 동정추월(洞庭秋月)에서는 동정호(洞庭湖)라는 구체적 공간이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산시(山市), 연사(煙寺), 원포(遠浦), 평사(平沙), 어촌(漁村), 강천(江天) 등은 구체적인 공간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도 존재할 수 있는 형상들이다. 물론 오늘날 중국에서 간행되고 있는 관련 서적에서는 소상팔경(瀟湘八景)의 여덟 시제(詩題)들이 어느 지역을 배경으로 성립된 것인가를 제시하고 있다. 劉金春,『岳麓風景名勝』, 中國 湖南文藝出版社, 1998, 第六章, 橘洲攬勝, 161-163쪽.

어쨌거나 이 논문에서는 동정호(洞庭湖) 이남 소상강(瀟湘江) 유역이 소상팔경(瀟湘八景)의 주요 무대이기에 이곳을 대상으로 역사와 함께 지내온 공간의 이미지에 대해 살펴보겠다. 말하자면 이곳에서 누구에게 어떤 일들이 왜 일어났는가 하는 점을 중심으로 고찰한다. 본래 서사(敍事)란 인간(人間)에게만 국한된 개념은 아닐 것이다. 만물(萬物)에는 모두 자기 나름의 서사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나무에게는 나무 나름의 서사가 존재하고, 바위에게는 바위 나름의 서사가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어떤 강이 있다면 그 강만이 겪어온 나름의 서사가 분명 존재할 것이다. 사람마다 저만의 서사가 존재하듯이 말이다. 이는 공간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동정호(洞庭湖)와 소상강(瀟湘江) 유역은 어떠한 서사(敍事)를 지니고 있었을까? 이곳을 배경으로 발생했던 서사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순임금과 그의 두 비(妃)였던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이다. 그리고 「초사(楚辭)」로 잘 알려진 굴원(屈原;B.C. 340-278)이 떠오른다. 여기서 언급된 순임금과 아황(娥皇), 여영(女英) 그리고 굴원(屈原) 등은 이곳에서 삶을 마감했던 인물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공통점은 바로 죽음이다. 순임금은 황제의 신분으로 남순(南巡) 하다가 창오(蒼梧)의 들녘에서 숨을 거두고 구의산(九疑山)에 안장(安葬)된다. 순임금의 죽음을 따랐던 아황과 여영은 소상강(瀟湘江)에 몸을 던져 삶을 마감하고 황릉(黃陵)에 안장(安葬)된다.
굴원(屈原)은 초(楚)나라 왕족과 동성(同姓)이었다. 학식이 뛰어나 초나라 회왕(懷王)에게 신임을 얻어 중책을 맡아 내정과 외교에서 활약했다. 그런데 법령을 입안(立案)할 때에 궁정의 정적(政敵)들과 충돌한 후에 그들의 중상모략으로 국왕 곁에서 멀어졌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는 굴원의「이소(離騷)」가 그 분함을 노래한 것이라고 기록했다. 그는 제(齊)나라와 동맹하여 강국인 진(秦)나라에 대항해야 한다는 합종파(合縱派)에 속했다. 그러나 연횡파(連橫派)인 진나라 장의(張儀)와 내통한 정적과 왕의 애첩(愛妾)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한다. 왕은 제나라와 단교하고 진나라에 기만당했고 출병(出兵)을 해서도 고전할 따름이었다. 진나라와의 화평(和平) 조건에 따라 자진하여 초나라에 인질로 잡혔던 장의마저 석방한다.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 있던 굴원은 귀국하여 장의를 죽여야 한다고 진언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고 왕이 진나라에 들어가는 것도 반대하였으나 역시 헛일이었다. 왕이 진나라에서 객사(客死)하자, 장남 경양왕(頃襄王)이 즉위하고 막내인 자란(子蘭)이 재상 격인 영윤이 되었다. 자란이 아버지를 객사하게 한 장본인이었기에 굴원은 그를 비난하였고, 또다시 모함을 받아 양쯔강 이남으로 추방되었다. 「어부사(漁父辭)」는 그때의 작품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는「회사부(懷沙賦)」가 실려 있는데, 이는 절명(絶命)의 노래이다. 한편, 자기가 옳고 세속이 그르다고 말하고, 「난사(亂辭)」에서는 죽음으로써 이 세상의 모범이 되고 자살로써 간(諫)하겠다는 결의를 밝히고 있다. 실제로 장사(長沙)에 있는 멱라수(汨羅水)에 투신하여 목숨을 끊었다. 멱라수(汨羅水)는 장사(長沙)를 관통하여 흐르고 있는 소상강(瀟湘江)의 지류에 해당한다.
뿐만 아니라, 소상강(瀟湘江) 일대는 기원전 5세기 경부터 이미 많은 문학 작품의 배경이 된 공간이기도 하다. 기원전 77년에 태어나 기원전 6년에 숨을 거둔 유향(劉向;B. C. 77 - B. C.6)의『설원(說苑)』을 보면 초나라의 시로 「자문가(子文歌)」와 「초인가(楚人歌)」라는 두 작품이 실려 있고, 본래 월어(越語)로 되어 있던 것을 초어(楚語)로 번역한 작품「월인가(越人歌)」가 실려 있는데 이는 굴원(屈原)이 지은 『초사(楚辭)』의 「구가(九歌)」의 내용과 유사하여 이 작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지는 동시에 「구가(九歌)」에 사용되고 있는 공간 역시 소상강(瀟湘江) 유역이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소상팔경의 무대는 이미 기원전 5세기 경부터 많은 문학 작품이 창작된 공간으로 인식할 수 있다. 우선 순임금과 아황 그리고 여영의 이야기를 먼저 살펴보겠다.

유우(有虞)의 두 비(妃)는 황제 요(堯)의 두 딸이다. 장녀는 아황(娥皇)이고, 차녀는 여영(女英)이다. 순(舜)의 아버지는 완악했고, 어머니는 어리석었다. 아버지를 앞을 못 보는 늙은이라는 의미의 고수(??)라 불렀다. 동생 이름은 상(象)이었는데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오만하게 굴었다. 순은 그들을 잘 감싸면서 특히 아버지 고수에게는 효를 다해 모셨다. 어머니는 순을 미워하고 상만 좋아했지만 순은 오히려 집안일에 열심이었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 상에게 나쁜 마음을 갖지 않았다. 이런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자 요임금을 보좌하던 중신(重臣) 사악(四嶽)이 요임금에게 순을 추천하였다. 요임금은 아황과 여영 두 딸을 순에게 시집보내 집안에서의 인격을 살펴보게 하였다. 요임금의 두 딸은 순의 시골집으로 내려가 순의 일을 도왔는데, 천자의 딸이라고 교만하거나 게으르지 않았다. 그녀들은 오히려 겸손하고 부지런하였으며, 또 검소함으로써 부도(婦道)를 다하려고 하였다.
그런데도 고수와 상은 순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며, 순에게 곳간 수리를 맡겼다. 순이 돌아와 두 부인에게 의논하여 말했다. “부모님께서 내게 곳간 수리를 하라 하시니 거기로 가보아야겠소.” 두 부인은 “그렇다면 다녀 오시지오.”라고 대답했다. 순이 곳간 위에 올라가 수리를 다하고 내려오려고 하자, 고수는 사다리를 치워 버리고 곳간에 불을 질렀다. 순은 나는 듯이 급히 뛰어내렸다.
상은 다시 부모와 음모를 꾸며 순을 우물에 처넣으려 하였다. 순이 또 두 부인에게 의논하였다. “할 수 없지요. 가셔야지요.”라는 부인의 말을 듣고 순은 우물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고수와 상은 우물 입구를 막고 순이 나오지 못하게 흙으로 덮어 버렸다. 순은 몰래 빠져 나왔기 때문에 고수와 상은 이번에도 순을 죽일 수 없었다.
고수는 또 순에게 술을 마시도록 강요하였다. 취하면 죽이려 한 것이다. 순이 또 이 사실을 두 부인에게 알리자 두 부인은 술에 취하지 않는 약을 그에게 주고 먹게 하였다. 순이 가서 종일 술을 마셨지만 취하지 않았다. 순의 여동생은 이러한 일들을 보고 순을 불쌍히 여겨 두 올케와 화해하였다. 부모가 순을 죽이려 하였으나 순은 결코 원망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노함은 더더욱 식을 줄 몰랐다.
순이 들판으로 달려가 대성통곡 하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울부짖고, 또 부모를 부르짖었다. 이와 같이 부모가 그를 해치려고만 하였음에도,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은 한결같았다. 동생을 원망하지도 않았으며 그들에 대한 두텁고 독실한 정도 예전과 같았다.
마침내 순은 백관(百官)의 장관에 추천되고, 사방의 제후들이 그에게 후한 대접을 하였다. 순은 민간에서 선발되어 마침내 국가의 중책을 맡게 된 것이다. 요임금은 순이 천자의 자질이 되는가를 여러 방면으로 시험하였는데, 모든 일을 항상 두 딸과 상의하였다. 마침내 순은 요임금을 이어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 아황은 후(后)가 되고 여영은 비(妃)가 되었다. 순은 상을 유비(有?) 땅에 봉해 주었고, 고수를 섬기는 것은 전과 똑같았다. 세상 사람들은 두 비를 총명하고 정숙하다고 칭송하였다. 순은 천하를 잘 다스리다가 지방을 순찰하는 도중에 창오(蒼梧)에서 세상을 떠났다. 세상은 그의 호를 중화(重華)라 하였다. 두 비는 양자강과 상수 사이에서 세상을 떠나자 세간에서는 그들을 상군(湘君)이라 하였다. 군자가 말하였다. “두 비는 덕이 순수하고 행동이 신실하였다. 『시경(詩經)』에 ‘비록 그 덕이 드러나지 않으나, 모든 제후가 그것을 본받았다.’하였으니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송(頌)에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 두 비는 요임금의 딸이었다. 빈으로 유우와 나란히 섰지만 아래에서 순을 보좌하였다. 높은 신분으로 낮은 신분의 순을 섬겼으니 그 노고 심하였도다. 까다로운 고수와 화목하니 마침내 복을 즐길 수 있었다네.” 劉向,『烈女傳』, ‘有虞二妃’. “有虞二妃者, 帝堯之二女也. 長娥皇, 次女英. 舜父頑母?. 父號??. 弟曰象, 敖遊於?. 舜能諧柔之, 承事??以孝. 母憎舜而愛象, 舜猶內治, 靡有姦意. 四嶽薦之於堯, 堯乃妻以二女, 以觀厥內. 二女承事舜於?畝之中, 不以天子之女故, 而驕盈怠?, 猶謙謙恭儉, 思盡婦道. ??與象, 謀殺舜, 使塗?. 舜歸告二女曰, 父母使我塗?我其往. 二女曰, 往哉. 舜旣治?, 乃捐階, ??焚?, 舜往飛出. 象復與父母謀, 使舜?井, 舜乃告二女, 二女曰, 兪往哉. 舜往?井. 格其出入, 從掩 舜潛出, 時旣不能殺舜. ??又速舜飮酒, 醉將殺之. 舜告二女, 二女乃與舜藥浴汪, 遂往. 舜終日飮酒不醉. 舜之女弟繫怜之. 與二嫂諧. 父母欲殺舜, 舜猶不怨, 怒之不已. 舜往于田號泣, 日日呼旻天, 呼父母. 惟害若玆, 思慕不已. 不怨其弟, 篤厚不怠. 旣納于百揆, 賓于四門. 選于林木, 入于大麓. 堯試之百方, 每事常謀于二女. 舜旣嗣位, 升爲天子. 娥皇爲后, 女英爲妃. 封象于有?, 事??猶若初焉. 天下稱二妃聰明貞仁. 舜陟方死于蒼梧. 號曰重華. 二妃死于江湘之間 俗謂之湘君. 君子曰 二妃德純而行篤. 詩云, 不顯惟德, 百?其刑之, 此之謂也. 頌曰, 元始二妃, 帝堯之女, 嬪列有虞, 承舜於下. 以尊事卑, 終能勞苦. ??和寧, 卒享福祜.”


이 인용문은 유향의『열녀전(烈女傳)』에 기록된 순임금과 아황· 여영의 이야기이다. 서사적 맥락 위주로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실린 순임금과 아황·여영의 이야기는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는가 하는 점을 살펴본다.

우순(虞舜)의 이름은 중화(重華)이다. 중화의 부친은 고수(??)이고, 고수의 부친은 교우(橋牛)이며, 교우의 부친은 구망(句望), 구망의 부친은 경강(敬康), 경강의 부친은 궁선(窮蟬), 궁선의 부친은 전욱(?頊)이고, 전욱의 부친은 창의(昌意)이니, 순에 이르기까지 일곱 대가 흘렀다. 궁선부터 순에 이르기까지는 모두 지위가 낮은 서민이었다. 순의 부친 고수는 맹인이었다. 순의 모친이 세상을 떠나자 고수는 다시 아내를 맞이하여 아들 상(象)을 낳았는데, 상은 매우 오만하였다. 고수는 후처가 낳은 아들을 편애하여 항상 순을 죽이고자 하였으므로 순은 이를 피해서 도망 다녔고, 순이 어쩌다가 작은 잘못이라도 저지르게 되면 곧 벌을 받았다. 그러나 순은 언제나 아버지와 계모에게 순종하며 잘 모셨고, 동생에게도 잘 대했으며, 날마다 독실하고 성실하며 조금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순은 기주(冀州) 사람이다. 그는 역산(歷山)에서 농사를 지었고, 뇌택(雷澤)에서 물고기를 잡았으며, 하빈(河濱)에서 도자기를 만들었다. 또한 수구(壽丘)에서는 일용기구를 만들었고, 틈이 나면 부하(負夏)로 가서 장사를 하였다. 순의 아비 고수는 무도했고 어미는 험담을 잘했고 동생 상은 교만방자 하여 모두 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순은 언제나 공손하게 자식된 도리를 잃지 않았고, 아우에게는 형의 도리를, 부모에게는 효도를 다하였다. 그래서 그를 죽이려고 해도 죽일 수 없었고, 일이 있어 그를 찾으면 순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었다.
순은 나이 스물에 효성이 지극하다고 소문이 났고, 서른 살 때에는 요가 등용할 만한 사람이 있느냐고 묻자 사악이 입을 모아 우순을 추천하여 요가 좋다고 승낙했다. 이에 요는 두 딸을 순에게 시집보내어 집안에서의 행동을 살폈고, 아들 아홉을 보내어 함께 생활하게 하여 순의 집 밖에서의 행동을 관찰하였다. 순은 규예에 기거하면서 가정생활이 더욱 근엄하였으므로 요의 두 딸은 자신들이 고귀한 신분이라고 해서 감히 순의 가족에게 오만하게 대하지 않고 부녀자의 도리를 다했다. 요가 보낸 아홉 아들 또한 모두 더욱 성실해졌다.
순이 역산에서 농사를 짓자 역산에 사는 주민들은 모두 서로서로 밭의 경계를 양보했고, 뇌택에서 어렵(漁獵)을 하자 그곳의 사람들은 모두 서로 서로 장소를 양보하게 되었으며, 그가 하빈에서 질그릇을 굽자 하빈의 그릇들은 하나도 조악한 것이 없게 되었다. 순이 사는 곳은 1년이 지나자 취락을 이루었으며, 2년이 지나자 읍이 되었고, 3년이 지나자 도시가 되었다. 이에 요는 순에게 갈포로 만든 옷과 거문고를 하사하였고, 창고를 지어주며 소와 양을 상으로 주었다.
고수는 여전히 상을 죽이려고 했는데, 하루는 순에게 창고에 올라가서 벽토를 바르게 하고 아래서 불을 질러 창고를 태워버렸다. 그러나 순은 두 개의 삿갓으로 자신을 보호하며 창고에서 뛰어내려 도망쳐서 죽음을 면하였다. 그 뒤 고수는 또 순에게 우물을 파게 했다. 순은 우물을 파면서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비밀 구멍을 함께 팠다. 순이 우물 깊이 파들어 가자 고수와 상은 함께 흙을 퍼부어 우물을 메워버렸고, 순은 몰래 파놓은 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와 도망을 갔다. 고수와 상은 매우 기뻐하며 순은 이미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은 “이 계책은 원래 제가 생각한 것입니다.”라고 말하고는 부모와 함께 순의 재산을 나누어가지려고 하였다. 이때 그는 “순의 아내인 요의 두 딸과 거문고는 제가 가지고, 소와 양, 창고는 부모님께 나눠드리겠습니다.”라고 하고는 이에 순의 방에서 기거하며 그의 거문고를 뜯고 있었다.
순이 집으로 돌아와 상의 모습을 보자 상은 깜짝 놀라고 겸연쩍어하며 “난 형 생각에 가슴 아파하고 있었어.”라고 말했다. 그러나 순은 “그랬었구나. 이 형 생각을 그처럼 하고 있었구나!”라고 대답했다. 그 후에도 순은 더욱 정중하게 고수를 섬기고 동생을 사랑해주었다. 이에 요는 순에게 시험 삼아 오전을 실천하거나 백관을 통솔하는 부서를 맡겨보았더니 그는 모든 일을 잘 처리하였다. <중략>
순은 스무 살 때 효자로 명성이 자자하였고, 서른 살에는 요임금에게 등용되었으며, 쉰 살에는 천자의 일을 대행하였다. 그의 나이 쉰여덟 살 때 요임금이 붕어하자, 예순 한 살에 요임금을 이어서 제위에 올랐다. 순임금은 제위를 이어받은 지 39년 만에 남쪽을 순수하다가 창오(蒼梧)의 들에서 붕어하였다. 그를 강남의 구의산(九疑山)에 장사 지냈으니, 이곳이 바로 영릉(零陵)이다. 사마천,『史記』卷一,「五帝本紀」第一.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실린 순임금과 아황 · 여영의 이야기는 앞서 살펴본 자료에 비해 보다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순(舜)의 가계(家系)와 출신 그리고 젊은 시절의 성장 과정 등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젊은 시절 역산(歷山)에서 농사(農事)를 지었던 일과 뇌택(雷澤)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생활했던 일, 하빈(河濱)에서 질그릇을 굽던 일, 수구(壽丘)에서 일용기구를 만들었던 일, 그리고 틈이 나면 부하(負夏)로 가서 장사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던 일 등 순(舜)이 살아왔던 삶의 내력을 비교적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순(舜)이 세상 사람들을 변화시켜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다. 순이 살던 곳은 1년이 지나자 취락(聚落)을 이루었고, 2년이 지나자 읍(邑)이 되었고, 3년이 지나자 도시(都市)가 되었다는 예시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번에는 굴원(屈原)과 관련된 이야기를 살펴봄으로써 소상팔경(瀟湘八景)이라는 공간이 어떤 공간적 서사맥락을 획득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굴원(屈原)과 관련된 이야기는 사마천의『사기(史記)』권84권(卷八十四) 제이십사(第二十四)에 실린「굴원가생열전(屈原賈生列傳)」을 통해 상세하게 드러난다.

굴원(屈原)의 이름은 평(平)으로 초(楚)나라 왕실과 동성(同姓)이다. 그는 초나라 회왕(懷王)의 좌도(左徒)였다. 견문이 넓고 의지가 굳세었으며, 치란(治亂)에 밝았고, 문사(文辭)에도 능숙하였다.
입조(入朝)하여서는 임금과 국사를 도모하여 이로써 명령을 내렸으며, 나가서는 빈객(賓客)을 접대하고 제후들을 응대하였다. 그리하여 왕은 그를 매우 신임하였다. 상관대부(上官大夫)는 그와 동등한 지위였는데, 서로 왕의 총애를 다투게 되자 마음속으로 굴원의 재능을 시기하였다. 회왕이 굴원에게 국가의 법령을 만들도록 하여, 굴원이 초안을 아직 완성하지 않았을 때, 상관대부는 그 사실을 알고 그 일을 빼앗으려고 하였으나, 굴원이 넘겨주지 않자, 이를 연유로 그를 참소하기를, “대왕께서 굴원에게 법령을 만들도록 하신 일은 모르는 자가 없는데, 법령이 나올 때마다 굴원은 자기의 공적을 자랑하여, 내가 아니면 만들 수 없다고 여기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회왕은 분노하여 굴원을 멀리하였다.
굴원은 왕이 한쪽 말만 듣고 시비를 가리지 못하는 것과, 아첨하는 무리들이 왕의 총명을 가로막는 것, 사악하고 비뚤어진 무리가 공명정대한 사람을 해치는 것과, 단정하고 정직한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애통하게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우수와 근심으로 인하여「이소(離騷)」를 썼다. ‘이소’는 근심스러운 일을 만났음을 말한다.
대저 하늘은 사람의 시초이며, 부모는 사람의 근본이다. 사람이 궁지에 이르면 근본을 돌이켜보는 까닭에, 힘들고 피곤할 때에 하늘을 찾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질병으로 고통스럽고 참담해지면 부모를 찾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굴원은 올바른 도리를 곧게 실천하여, 충성을 다 바치고 지혜를 다 발휘하여 그 임금을 섬기었는데, 도리어 군주와 그의 사이가 이간질을 당하여, 궁지에 처하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신의를 지켰으나 의심을 받았고, 충성을 바쳤으나 비방을 당하니, 어찌 원망스럽지 않겠는가? 굴원이 지은「이소」는 본래 이런 원망으로부터 이루어진 것이다. 〈중략〉
영윤 자란은 굴원의 태도를 듣고 격노하여, 마침내 상관대부로 하여금 굴원을 경양왕에게 혹평하게 하였고, 경양왕은 격노하여 굴원을 멀리 유배시켰다. 굴원이 강가에 이르러, 머리를 풀어헤치고 물가를 거닐면서 시를 읊었다. 그의 안색은 초췌하였고, 모습은 야위었다. 어떤 어부가 그를 보고 “그대는 삼려대부(三閭大夫)가 아니십니까? 무슨 까닭에 여기까지 이르렀습니까?”라고 물었다. 굴원이 대답하기를 “온 세상이 혼탁하나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들이 다 취해 있으나 나 홀로 깨어 있어, 이런 까닭에 추방당하였소.”라고 말했다. 어부가 묻기를 “대저 성인이란 물질에 구애되지 않고 능히 세속의 변화를 따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온 세상이 혼탁하다면, 왜 그 흐름을 따라 그 물결을 타지 않으십니까? 모든 사람이 취해 있다면, 왜 그 지게미를 먹거나 그 밑술을 마셔서 함께 취하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미련한 자존심만을 움켜잡고 추방을 자초하셨습니까?”라고 했다.
굴원이 대답하기를 “내가 듣기로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관을 털어서 쓰고, 새로 목욕을 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고 하였소. 사람으로서 또한 누가 자신의 깨끗함에 더러운 오물을 묻히려 하겠소? 차라리 흐르는 강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의 뱃속에서 장사를 지낼지라도, 또 어찌 희디흰 결백함으로서 세속의 더러운 먼지를 뒤집어쓰겠소!”라고 하였다. 그리고 “회사(懷沙)”라는 부(賦)를 짓고는 바위를 품고 마침내 멱라강(汨羅江)에 빠져서 죽었다. 굴원이 죽은 뒤에 초나라에는 송옥(宋玉), 당륵(唐勒), 경차(景差) 등과 같은 무리들이 있어서, 모두 문사를 좋아하여 부(賦)로써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모두 굴원의 함축성을 모방하였지만, 끝내 감히 직간(直諫)을 표달하지 못했다. 그 후로 초나라는 날로 쇠락하여, 수십 년 뒤에는 결국 진나라에 의해서 멸망당하였다.
굴원이 멱라강에 빠진 지 100여 년이 지나서, 한(漢)나라의 가생(賈生)이라는 사람이 장사왕의 태부(太傅)가 되어 상수를 지나다가, 글을 지어 강물에 던져서 굴원을 애도하였다. 태사공은 말한다. “나는「이소(離騷)」,「천문(天問)」,「초혼(招魂)」,「애영(哀?)」을 읽고서, 굴원(屈原)의 심정을 슬퍼하였다. 장사(長沙)에 와서, 굴원이 빠져 죽었던 깊은 물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고, 그의 인간됨에 대해 상념에 잠겼다. 가생(賈生)이 그를 애도한 작품을 읽고 나서 굴원이 그와 같은 재능으로써 다른 제후를 유세했더라면 어느 나라인들 그를 받아들이지 않을 리가 없었을 터인데, 왜 스스로 그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 의문스러웠다. 그러나「복조부(?鳥賦)」를 읽으니 삶과 죽음을 동일시하고, 인생의 성패에 개의치 않음을 보게 되어, 이전에 가졌던 나의 생각을 흔쾌히 버리게 되었다.” 사마천(司馬遷),『사기열전』상, 까치, 2002, 353-372.


굴원(屈原)이 처했던 정치적 상황과 목숨마저 끊으면서까지 나라를 바로 세우고자했던 강직한 충혼이 잘 형상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마천의『사기(史記)』에서도 드러나듯 굴원(屈原)은 세상의 부조리와 횡포에 맞서 한 치의 양보나 타협 없이 죽음으로 저항한 인물이었다.
앞서 살펴본 순임금과 아황 · 여영 그리고 굴원 등은 모두 소상강(瀟湘江) 일대에서 숨을 거둔다. 그 가운데서도 아황과 여영 그리고 굴원은 열녀(烈女)이자 충신(忠臣)으로 잘 알려진 인물들이다. 세상의 횡포에 맞서다가 결국 죽음이라는 극단적 방식을 선택했던 인물들이다. 소상팔경은 이처럼 순임금과 아황 · 여영 그리고 굴원이라는 인물이 최후를 맞이했던 공간인 소상강을 배경으로 형성되었다. 이와 같은 공간서사를 지니고 있었던 소상강 유역에서 여덟 가지의 경(景)이 생성되었음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소상팔경(瀟湘八景)의 여덟 가지 개별 시제(詩題)가 어떠한 형상으로 인식되었고, 그 이면에 내포된 함의(含意)는 무엇이었는가 하는 점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3. 소상팔경(瀟湘八景)의 형상(形象)과 함의(含意)

이 장에서는 산시청람(山市晴嵐), 연사모종(煙寺暮鐘), 소상야우(瀟湘夜雨), 원포귀범(遠浦歸帆), 평사낙안(平沙落?), 동정추월(洞庭秋月), 어촌낙조(漁村落照), 강천모설(江天暮雪)의 여덟 가지 경(景)을 노래한 작품을 대상으로 논의를 전개할 것이다. 여덟 가지 경(景)을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 각각 어떤 형상으로 창작되었으며, 그 형상에 담겨 있는 의미는 또 무엇인가 하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할 것이다.
이 장을 통해서 시인(詩人)들이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으며, 어떠한 감상태도를 취하고 있었는가 하는 점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는 관념화, 이념화된 산수화의 정점에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정작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라는 그림에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었는가에 대한 논의는 지금까지 매우 한산한 상황이다. 문인 사대부들이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라는 그림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인식하며 감상하고 있었는가 하는 점을 살피는 것은 그런 측면에서 매우 의미 있고 흥미로운 작업이 아닐 수 없다. 그림은 정지된 영상을 다룬다. 때문에 그 영상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쉽게 파악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라고 하면 그저 이상화된 산수 자연을 그림으로 옮긴 회화 정도로 이해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과연 당대의 문인 사대부들이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바라보면서 진정 이상적인 산수 자연의 모습만을 형상화했을까? 하는 점에 대해서는 심도 있는 논의가 요청된다.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에 담겨 있는 인간사의 다양한 모습들을 형상화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검토가 요청되는 대목이다.
말하자면 소상팔경(瀟湘八景)이 지니고 있는 다기한 스펙트럼 가운데 하나가 이상적인 산수 자연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소상팔경(瀟湘八景)을 통해서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 어떤 의미 체계를 만들어내고 있었는가 하는 점에 대한 연구는 소상팔경(瀟湘八景)을 이해하기 위해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시화일률(詩畵一律)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시를 통해 그림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는 작업은 여전히 유용한 방법론이 된다.

3.1. 산시청람(山市晴嵐) : 성(聖)과 속(俗)이 조화를 이룬 이상적 공간

산시청람(山市晴嵐)을 노래한 한시(漢詩) 작품은 총 51수에 이른다. 산시청람(山市晴嵐)이라고 하면 말 그대로 푸른 남기(晴嵐)에 휩싸인 산시(山市)의 경(景)을 의미한다. 그런데 제목을 유심히 보면 쉽게 넘어가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산시(山市)’라는 공간이다. 과연 어떤 공간을 산시(山市)라고 할 수 있는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산속에 만들어진 저자(市)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흔히 저자(市)라고 하면 사람들이 북적대고 인접한 지역 간에 마을 사람들의 왕래와 접근이 용이하도록 마을과 마을이 교차하는 부근에 형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산시청람(山市晴嵐)이라는 제목 아래 형상화된 회화(繪畵)나 문학 작품들은 하나같이 북적거리는 도시의 형상이 아니라 산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범접(犯接)하기 어려운 곳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 회화나 문학에서 그러한 공간을 설정했던 것일까? 이와 같은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대부들의 사유체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들이 생각했던 산(山)과 시(市)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산시(山市)라는 공간적 개념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을 풀기 어렵다.

내가 생각해보니, 마음과 행적을 모두 잊고 경계와 지식이 모두 사라지면 산림(山林)이 성시(城市)이고, 염(染)과 정(淨)이 똑같은 근원이며, 시끄러움(喧)과 적막함(寂)이 하나로 합치될 것이니 어찌 반드시 공허한 사문에 얽매여 호계(虎溪) 중국 여산(廬山)에는 다른 산보다도 은자(隱者)들이 많이 살았다. 주변에 강과 호수가 많아서 일년 가운데 절반은 안개에 싸여 있어서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산이다. 그런 이유로“여산진면목(廬山眞面目)을 보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여산에는 불교의 고승이었던 혜원(慧遠)과 도교 모산파의 도사였던 육수정(陸修靜) 그리고 유교적 가치를 대변했던 도연명(陶淵明)이 찾아 와서 도담(道談)을 나누곤 했다. 이 세 사람은 헤어질 때 여산 밑에 흐르던 호계(虎溪)에서 호랑이 울음소리를 듣고 세 사람이 모두 파안대소를 하였다고 한다. '호계삼소(虎溪三笑)'라는 고사가 유래되었다. '호계삼소'는 동양의 3대 종교였던 유교, 불교, 도교의 공존과 회통을 의미하는 말이다.
를 한계로 삼아 그 구애됨을 보일 필요가 있겠는가? 강희맹,「三笑圓記」,『私淑齋集』卷八. 김성룡,『여말선초의 문학사상』한길사, 1996, 201쪽 재인용, “余惟心跡雙忘, 境智俱泯, 則山林城市, 染淨同源, 喧寂一致, 何必靜縛空門, 限以虎溪, 以示其隘哉.”


인용문 가운데 ‘산림(山林)’과 ‘성시(城市)’는 서로 대립되는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면서, “바로 이런 면에서 성시와 산림은 조선 초기 문인들이 파악했던 가치 있는 세계의 양면이라고 할 것이다. 채신보처럼 음성의 땅에 묻혀서 산림의 낭만을 추구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성시에만 묻혀서 일생을 보낼 수도 없으니 성시(城市)와 산림(山林)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함으로써 자기들의 이상을 실현하면서도 미적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산림성시가 같다고 했다.” 김성룡,『여말선초의 문학사상』한길사, 1996, 202쪽.
라고 서술했다. 이처럼 당대의 사대부들은 ‘성시(城市)’와 ‘산림(山林)’을 대립적 공간으로 인식하였고, 그 둘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당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은 자연과의 조화를 꿈꾸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스스로 만들어낸 문명(文明)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문명과 자연의 조화를 꿈꾸고 있다. 집을 지어도 친환경적인 집을 지으려 하고, 주말이면 너나 할 것 없이 산이나 들로 나가려고 애를 쓴다. 당대 사대부들의 삶 역시 마찬가지였다. 성시(城市)와 산림(山林)을 동시에 추구하기 위해 고민할 결과 병풍(屛風) 문화를 만들어 냈고, 정원(庭園)을 조경하는데 온갖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 아니겠는가?
산림(山林)과 성시(城市)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던 사대부들에게 산시청람(山市晴嵐)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혹시 그들은 산시(山市)라는 공간을 통해 그들이 꿈꾸었던 문명과 자연이 조화를 이룬 가상공간으로 인식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실재하는 산시청람(山市晴嵐)의 작품세계를 통해 그 가능성을 조심스레 살펴본다.

<산시청람-1>
朝日微昇疊?寒 아침 해 조금 올라 겹 봉우리 차갑고,
浮嵐細細引輕紈 뜬 남기 흐늘흐늘 얇은 비단 펼친 듯.
林間出沒幾多屋 수풀 사이 들락날락 몇 집이나 되는지,
天末有無何處山 李仁老,『三韓詩龜鑑』卷之中, ‘山市晴嵐’,『匪懈堂瀟湘八景詩帖』,『東文選』卷二十,「宋迪八景圖」‘山市晴嵐’. 여기서는 이인로의 활동기와 가장 가까운 시기에 편찬되었고, 현재 남아있는 자료 가운데 가장 오래된 문헌인『三韓詩龜鑑』의 표기를 따른다.『三韓詩龜鑑』에는 최해(崔瀣1287-1340)의 비점(批點)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판본이라 판단했다. 판본간의 차이를 살펴보면, 제1행이『匪懈堂瀟湘八景詩帖』에는 ‘曉雨初收碧洞寒(새벽비가 걷혀도 푸른 골짝 차갑고)’로 기록되어 있다. 제4행의 “天末有無何處山”에서 두 번째 한자(漢字)인 ‘말(末)’ 역시『三韓詩龜鑑』의 표기를 따른 것이다. 『東文選』에는 ‘際’로 표기되어 있고,『匪懈堂瀟湘八景詩帖』에는 ‘外’로 표기되어 있다. 작품의 의미에서 약간 미묘한 차이가 있으나 국역(國譯)이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하늘 끝 있나 없나 어느 곳이 산인가.
이인로(李仁老;1152-1220)의 작품이다. 이른 아침이다. 해가 아직 높이 뜨지 않은 이른 시간이므로 첩첩산중은 차가운 기운만이 가득하다. 흐늘거리며 떠다니는 남기(嵐氣)의 형상이 마치 얇은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하다. 떠다니는 남기 때문에 숲 속이 온전하게 보이지 않는다. 다만 남기가 움직이는 틈새로 이따금씩 몇 채의 집이 보인다. 움직이는 것은 남기인데 얼핏 보기에는 마치 집이 들락날락 하는 듯하다. 하늘 끝이 어디고 산이 어딘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남기가 자욱한 산시(山市)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화자의 시선은 화면(畵面)을 바라보고 있으나 남기(嵐氣) 기운으로 인해 산시(山市) 내부를 향하는 시선이 차단된 상태이다. ‘다옥(多屋)’에는 분명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화자의 시선과는 단절되어 있다. 남기는 화자의 시선만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 끝이 어딘지 분간되지 않고,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산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성한 기운으로 형상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작품에는 언급되지 않고 있으나 여기서 제시된 산시청람(山市晴嵐)이라는 공간 속에는 시인(詩人)과 화자(話者) 그리고 산시(山市)에 거주하는 사람들 또 산시(山市)에 출입하는 사람들이 매개되어 있다.

<산시청람-2>
非煙非霧襲重重 연기도 안개도 아닌 것이 겹겹이 끼어있어,
宛作僧家氣鬱? 완연한 절집 되어 울창하며 푸른 기운이네.
此是山中無價景 이는 산 속에서 값도 칠 수 없는 경관이니,
有何廛市落這中 李奎報, <東國李相國集>後集卷六,『韓國文集叢刊』第2卷 197쪽,「次韻李平章仁植虔州八景詩幷序」‘山市晴嵐’.
어떻게 저자가 이 속에 떨어질 수 있었나.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작품이다. ‘중중(重重)’이라는 표현을 통해 남기(嵐氣)가 겹겹으로 끼어 있음을 형상화했다. 연기도 아니고 안개도 아니라고 한 것으로 보아 청람(晴嵐)임을 강조하고 있다. 남기(嵐氣) 가득한 산속 풍경을 완연한 절집의 형상으로 제시했다. 아울러 그 형상은 울창하면서도 푸른 기운이 감돌고 있다. ‘무가경(無價景)’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값으로 계산하려해도 계산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번화한 저자거리가 어떻게 이처럼 깊고 푸른 산속에 형성될 수 있는지 시인 자신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전시(廛市)는 시내(市內), 도시(都市), 번화한 거리, 저자거리, 상점들이 즐비한 거리 등을 의미로 해석된다. 깊은 산중에 이처럼 전시가 형성된 것이다. 그러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게다. 시인이 산시(山市)의 형상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는 사실은 그만큼 산시(山市)의 형상이 일상적이거나 평범하지 않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반증이 된다.

<산시청람-3>
靑山婉轉如佳人 청산이 단아하게 변하니 아름다운 여인인 듯,
雲作香?霞作唇 구름은 향기로운 귀밑털 되고 저녁놀 입술 되네.
更敎橫嵐學眉黛 재차 비낀 남기로 눈썹 그리는 먹을 본뜨게 하니,
春風故作西施嚬 봄바람은 짐짓 서시(西施)의 찡그림을 만드네.
朝隨日脚卷還空 아침에는 햇발 따라 걷혔다가 다시 텅 비워지고,
暮傍疎林色更新 저녁에는 성긴 숲을 끼고서는 빛이 더욱 새롭네.
遊人隔岸看不足 나그네는 언덕 너머를 보기에도 부족하니,
兩眼不?東華塵 陳?,『梅湖遺稿』卷四, 『韓國文集叢刊』第2卷 283쪽,「宋迪八景圖」‘山市晴嵐’.
두 눈이 동화(東華) 티끌을 근심하지 않네.

진 화(陳?;1180-1215, 추정)의 작품이다. 산시청람(山市晴嵐)의 형상을 아름다운 여인(佳人)에 빗대어 표현한다. 청산이 곱고 단아한 모습으로 변하자 마치 아름다운 여인의 형상인 듯하다고 한다. 푸른 산은 미인(美人)이 되고, 산을 감싸고 있는 구름은 미인의 향기로운 귀밑털이 되며 저녁노을은 붉게 칠한 입술이 된다고 묘사한다. 그 위에 비낀 남기로 눈썹 그리는 먹을 삼자 봄바람이 샘이 났는지 일부러 서시(西施)가 눈을 찡그리는 듯한 모습으로 인식한다. 산시(山市)의 하루가 아침 햇살을 따라 열렸다가 저녁이 되면 성긴 숲 주변으로 빛깔이 더욱 새롭게 느껴진다. 그런 이유로 나그네(遊人)는 산시(山市) 너머에 존재하는 세계를 즐기고 감상하기에도 겨를이 없건만 어찌 속세의 일을 근심할 시간이 있겠느냐며 너스레를 떨고 있다. 이 작품에는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존재한다. 하나는 작가의 시선이고, 또 하나는 화자의 시선이며, 다른 하나는 작품 속 등장인물인 나그네의 시선이다. 작가의 시선과 화자의 시선은 그림 밖에 존재하면서 크게 변별되지 않는 상태에서 시상이 전개되고 있다. 반면 나그네(遊人)로 설정된 작품 속 인물은 그림 내부에 존재하면서 그림 밖의 속세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말하자면 화자는 현실 공간에 존재하고 있으며, 나그네는 그림 속 산시(山市)에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화자(話者)는 속세(俗世)와 밀착되어 있는 상태로 시선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에 나그네(遊人)는 산시(山市)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상태이다. 아울러 그림 속에 존재하는 나그네를 바라보는 화자(話者)의 시선에는 부러움과 동경이 베어 있다.

<산시청람-4>
漠漠平林翠靄寒 아득하고 평평한 숲에 푸른 아지랑이 차갑고,
樓臺隱約隔羅紈 누대는 은은하게 비단(羅紈)을 격(隔)하였네.
何當卷地風吹去 어찌하면 마땅히 땅을 쓰는 바람이 불어가서,
還我王家着色山 李齊賢, <益齋亂藁> 卷三,『韓國文集叢刊』第2卷 526쪽,「和朴石齋·尹樗軒用銀臺集瀟湘八景韻(石齋名孝修, 樗軒名奕)」‘山市晴嵐’.
우리 왕유가 채색한 산 빛을 되돌릴 수 있을까.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작품이다. ‘막막(漠漠)’은 아주 넓어서 끝이 없는 모양을 일컬을 때 사용되는 표현이다. 아득하고 평평한 숲 속에 푸른 아지랑이가 차갑다. 누대는 은은하게 비단에 가려진 상태이다. 어떻게 하면 땅을 덮고 있는 ‘푸른 아지랑이(翠靄)’와 ‘비단(羅紈)’을 바람이 쓸고 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시인이 그렇게 바라는 이유는 본래의 빛깔을 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는 산시(山市)를 감싸고 있는 청람(晴嵐)을 대신하여 ‘푸른 아지랑이(翠靄)’와 ‘비단(羅紈)’이라는 시어를 사용하고 있다. 푸른 남기를 대신하여 푸른 아지랑이와 비단이라고 표현했으나 산시청람(山市晴嵐)의 의취(意趣)가 크게 훼손될 정도는 아니다. 이 작품은 산시(山市)에 포진해 있는 남기(嵐氣)를 쓸어갈 바람이 불어와야 옛날 왕유가 그렸던 본래의 산시(山市)가 드러날 것이라 기대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베어 있다.

<산시청람-5>
谷口雨初霽 골짝 어귀에 비 처음 개이자,
山頭霧欲生 산 정상에 안개가 생기려하네.
幾多花柳巷 버드나무 마을은 얼마나 되나,
歌吹樂昇平 千峯,『匪懈堂瀟湘八景詩帖』, 「山市晴嵐」.
태평성대 노래 부르며 즐기네.

천봉(千峯)이라고도 불리는 만 우(卍雨;1357- 未詳) 스님의 작품이다. 안평대군과 함께 자주 어울렸던 인물이다. 비해당(匪懈堂) 안평대군께서 하루는 내게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동서당고첩(東書堂古帖)>에서 송나라 영종의 팔경시를 보고 그 글씨를 보물처럼 여겼다. 그리고 그 경치를 상상하다가 마침내 그 시를 베껴 쓰라고 명을 내리고, 그 경치를 그리게 하여 그 두루마리를 <팔경시>라고 이름 지었다. 그리고 고려시대에 시로 뛰어난 진화와 이인로 두 사람의 작품을 함께 엮었다. 또 오늘날 시를 잘 짓는다는 자들에게 오언, 육언, 칠언의 시를 지어달라고 요청하였다. 승려인 우천봉 또한 시를 지었는데, 천봉은 대개 시로 불교계에 이름난 자이다. 그대가 그 전말을 기록하기 바란다.”고 하셨다.(匪懈堂, 一日謂余曰, “我嘗於東書堂古帖, 得宋寧宗八景詩, 寶其宸翰, 而因想其景, 遂令?其詩, 畵其圖, 以名其卷, 曰八景詩. 仍取麗代之能於詩者 陳李二子之作, 系焉. 又於當世之善詩者, 請賦五六七言以歌之, 學佛人雨千峯, 亦詩之. 千峯盖亦以詩鳴於釋苑者也. 請子敍其顚末.”-『匪懈堂瀟湘八景詩帖』, 李永瑞 序文)
골짜기 어귀에 내리던 비가 처음 개이자 산 정상에는 안개가 생기려고 하는 순간을 포착하여 작품으로 형상화했다. 얼마나 많은 버드나무 마을에서 태평성대를 노래하며 즐거워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작품 내부 산시(山市)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즐겁게 노래 부르며 태평성대를 즐긴다고 했다. 시인은 안개와 남기로 인해 산시(山市)를 명료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지(幾多)’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시인이 시선은 산시(山市) 내부를 향하고 있지만 산시는 좀처럼 내부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비가 개이자 산 정상에서 발생하는 안개는 마을로 내려와서는 산시와 속세의 경계에 놓인다. 속세의 시선이 닿을 수 없게끔 가리고 있는 안개가 산시(山市)의 신비로움을 배가시킨다.

<산시청람-6>
千里關山露未晞 천리관산 날 밝지도 않아서 모습 드러내니,
槿籬茅店掩柴扉 무궁화 울타리 초가집 사립문이 닫혀있네.
輕嵐一抹橫如練 일말의 가벼운 남기가 비단처럼 가로질러,
多少樓臺隱翠微 姜碩德,『東文選』 第22卷,「瀟湘八景圖有宋眞宗宸翰」‘山市晴嵐’. 序詩, ① 茂陵宸翰照蒼旻/虎臥龍跳?<?;匪懈堂瀟湘八景詩帖>絶倫/自是<却憶;匪懈堂瀟湘八景詩帖>當時聊遣興<芸闇晩;匪懈堂瀟湘八景詩帖>/那知睿?異時新<王虹應貫月輪頻;匪懈堂瀟湘八景詩帖>.(무릉(茂陵)신한(宸翰)이 푸른 하늘을 비추는데/ 범은 누웠고 용은 굽이치며 모두 뛰어났네/ 이로부터 당시에 소일(逍日)거리로 흥미를 붙임이/ 어찌 알았으랴, 임금님 칭찬이 새로울 줄을) ② 解衣盤?問何人/意匠經營入妙<妙入;匪懈堂瀟湘八景詩帖>神/試<閑;匪懈堂瀟湘八景詩帖>向晴?時一展/?然坐我洞庭濱(옷 벗은 채 발 뻗고 앉은 저 사람 누구인가/ 경영한 솜씨가 오묘한 신(神)의 경지에 들었네/ 시험 삼아 밝은 창 앞에서 때로 한 번씩 펴 보면/ 황홀하게도 나를 동정(洞庭) 호숫가에 앉히네). * 송원군(宋元君)이 그림을 그리려고 여러 화사(畵史)들을 불렀는데 그들은 모두 붓을 빨고 먹을 찍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인사도 없이 사관(舍館)으로 가므로 송원군이 사람을 시켜 엿보니, 그는 옷을 벗고 자유롭게 앉았으므로, 송원군은 그를 보고, “이 사람이 참으로 그림 그릴 사람이로다.”라고 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다소간 누대가 푸르스름한 곳에 숨어있네.
강석덕(姜碩德;1395-1459)의 작품이다. 제1행의 ‘천리(千里)’가『비해당소상팔경시첩(匪懈堂瀟湘八景詩帖)』에는 ‘효일(曉日)’로 기록되어 있다. 관산(關山)은 관문(關門)과 산, 고향에 있는 산, 고향, 향리의 의미로도 사용된다. 다소누대(多少樓臺)는 본래 당나라 두목(杜牧;803-852)의「강남춘(江南春)」이라는 작품에 등장하는 표현이다. “千里鶯啼綠映紅/ 水村山郭酒旗風/ 南朝四百八十寺/ 多少樓臺煙雨中.”
이른 아침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날이 채 밝지도 않았건만 모습을 드러내는데 무궁화로 울타리를 두른 띠 집에선 사립문이 아직까지도 닫혀 있다. 약간의 가벼운 남기(嵐氣)가 비단 모양으로 가로질러 놓여 있다. 그로인해 다소간의 누대가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도는 남기 속에 숨어 있는 것으로 산시(山市)의 형상을 제시하고 있다.

<산시청람-7>
雨餘山態轉?嶸 비온 뒤 산의 자태 더욱 우뚝 솟아있고,
細細浮嵐護晩晴 흐늘흐늘 떠다니는 남기는 저녁에야 개이네.
輕鎖?廛連又斷 살짝 잠긴 들판 상점 이어졌다 끊어지고,
淡籠?肆晦還明 엷게 싸여 늘어선 초가 어두웠다 밝아지네.
林端乍認搖?影 숲 끝에 흔들리는 것 주막 깃발인줄 알겠고,
郭外時聞賣藥聲 성곽 밖으로는 때마침 약 파는 소리 들리네.
知向此間棲大隱 옛적부터 이 속에 위대한 은자 깃든 것을 알기에,
自憐蝸角?鐘鳴 崔恒,『匪懈堂瀟湘八景詩帖』, 山市晴嵐.
다투는 세상 가엾게 여기며 종소리를 따라가네.

최 항(崔恒;1409-1474)의 작품이다. 비가 지나간 뒤에 산의 자태(姿態)를 보니 더욱 우뚝하게 솟아있는 모양이 선명하다. 흐늘흐늘 가늘게 떠다니던 남기는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갠다. 들판에 늘어선 상점들은 남기에 가려 끊겼다가 다시 이어지고 엷게 싸여 늘어선 초가들은 어두웠다가 다시 밝아진다. 수풀 끝에서 흔들리는 것이 주막의 깃발인 줄 알겠다. 성곽 밖으로는 이따금씩 약을 파는 약장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런 풍경 속에는 위대한 은자(大隱)가 깃들어 살고 있음을 알고 있기에 서로 시비(是非)하며 다툼과 분쟁이 횡행하는 세상을 가엾게 여기고는 울리는 종소리를 따라 나아가는 모습을 통해 산시청람(山市晴嵐)을 형상화하였다. 본래 대은(大隱)이란 참된 은자, 위대한 은자를 가리킨다. ‘위대한 은자는 조정이나 저자에 숨는다.(大隱隱朝市)’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참된 은자는 조정이나 저자에 숨는다는 뜻이다. 자기가 닦은 도(道)가 행해지지 않거나 혹은 조정에 출사하여 작은 벼슬도 불사하고 혹은 시중(市中)에서 의원이나 매복자(賣卜者) 노릇까지 하는 것을 일컫는다. 와각(蝸角)이란 ‘와각지쟁(蝸角之爭)’의 준말로 세상의 ‘다툼’이나 ‘분쟁’, ‘시비’ 등을 의미한다.
이 작품에서 화자는 산시(山市)와 현실 공간에서의 삶을 대비시키면서 산시(山市)에서의 삶을 동경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그곳은 옛적부터 참되고 위대한 은자들이 깃들어 사는 곳이기에 다툼도 시비도 없는 이상적 공간이다.

<산시청람-8>
練練籠?? 희고 반들반들한 것이 저자를 감싸곤,
??曳巖谷 뭉게뭉게 피어 험한 골짜기를 당기네.
最好雨餘天 최고 좋은 풍경은 비 온 뒤 하늘이나,
還宜月淡夕 成三問, <成謹甫集> 卷一, 『韓國文集叢刊』第10卷 183쪽,「瀟湘八景」, ‘山市晴嵐’.
도리어 달빛이 담담한 저녁도 좋겠네.

성삼문(成三問;1418-1456)의 작품이다. 연련(練練)은 희고 반들반들한 모양을 의미한다. 환궤(??)는 저자(市)의 문, 혹은 저자(市)를 의미한다. 비비(??)는 비나 눈이 부슬부슬 오는 모양, 미세한 것이 날아서 흩어지는 모양, 구름이 이는 모양, 서리가 많이 내리는 모양, 풀이 우거진 모양, 번갯불이 번쩍이는 모양을 형용하는 표현이다. 이 작품에서는 청람(晴嵐)을 대신하여 연련이라 하여 하얗고 반들반들한 자연물을 선택했다. 이 희고 반들반들한 것이 산시(山市)를 감싸고는 골짜기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가장 아름다운 최고의 풍경이라면 비가 내린 뒤 비에 씻긴 하늘을 보는 일이거나 혹은 달빛이 담담한 저녁도 아름다운 풍경일 것이다. 이 작품에서도 역시 산시(山市)를 감싸고 있는 연련(練練)에 의해서 산시(山市) 내부를 향하는 시선이 가려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산시청람-9>
水村山郭淨朝暉 강마을 산 성곽이 아침빛에 맑아지고,
嵐翠??欲染衣 푸른 남기 뭉게뭉게 옷을 물들이겠네.
爲問騎驢橋上客 다리 위에 나귀 탄 나그네에게 묻노니,
輞川風景是耶非 李承召, <三灘集> 卷九, 『韓國文集叢刊』第11卷 461쪽,「題畵屛」‘山市晴嵐’.
왕유의 망천 풍경이 맞는가? 아닌가?

이승소(李承召;1422-1484)의 작품이다. 강이 마을까지 이어져 있고, 산 둘레로 성곽이 둘렀는데 아침 햇빛에 깨끗하다. 산시(山市)로 푸른 남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라 사람의 옷을 물들일 정도다. 그래서 시인(詩人)은 그림 속에 나귀를 타고 다리를 건너가는 나그네에게 물었다. 그림 속 공간이 왕유가 살았던 망천(輞川) 풍경이 맞는지를 물었다.
망천(輞川)은 왕유(王維)의 호(號)이다. 왕유는 40대 후반(740년대)에 섬서성(陝西省) 남전현(藍田縣) 서남쪽 종남산(終南山)에 자리 잡은 망곡(輞谷)에 망천장(輞川莊)을 짓고, 반관반은(半官半隱)의 은거생활을 했다.
‘기려교상객(騎驢橋上客)’이라는 표현은『북몽쇄언(北夢?言)』의 내용에서 유래한다. 어떤 사람이 정경(鄭?)에게 묻기를, “요즘 시사(詩思)가 있습니까?”라고 하자, “시사는 파교 풍설 속 나귀 등위에 있다.(詩思在?橋風雪中驢子背上)”고 답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나귀 등을 타고 다리를 건너간다든지 나귀 등을 타고 가는 행위가 의미하는 바는 나귀의 등에서 눈(雪)을 맞으며 시상(詩想)을 떠올리는 행위로 인식되었다. 시상(詩想)을 떠올리는 데 가장 적당한 곳을 ‘파교려상(?橋驢上)’이라 하는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이 작품에서도 시인은 산시(山市)에 가득한 푸른 남기(嵐翠)의 형상을 보고, 작품 속 나그네에게 묻기를 왕유가 말년을 보냈다던 그 망천(輞川)의 풍경이 이와 같은 모습이었는지를 묻고 있다.
이는 관점을 달리하여 보면, 망천장(輞川莊)의 경관을 간직하고 살았던 왕유(王維)야말로 당대의 사대부들이 흠모하며 동경했던 이상적 삶을 현실 공간에서 구현하며 살았던 인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왕유의 반관반은(半官半隱)의 은거생활 또한 현실과 이상의 조화를 성취해 낸 삶이었기에 더욱 사대부들의 공감과 동경을 얻어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이 작품에서 산시(山市)라는 공간은 이상적 삶의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산시청람-10>
遠峀靑如? 먼 봉우리 푸른빛이 상투와 같고,
輕嵐白作圍 엷은 남기 하얗게 주위를 둘렀네.
茅茨何處掩柴扉 어느 곳에 초가는 사립문을 닫았고,
空翠落?? 하늘은 푸르건만 보슬비가 내리네.
野逕通林細 들판 길은 숲으로 가늘게 통하고,
溪橋跨岸微 시냇가 다리는 언덕에 걸쳐 희미하네.
誠敎摩詰?圖歸 왕유에게 그림을 그려 돌아가게 해도,
眞趣也應非 姜希孟, <私淑齋集> 卷五,『韓國文集叢刊』第12卷 67쪽,「瀟湘八景」‘山市晴嵐’, 先君戴?公, 雅好書畵, 家累百餘件, 必令希孟收藏齊帙, 其中奇愛者, 益齋文忠公所作 瀟湘八景巫山一段雲八首. 乃其手翰也. 希孟問請得於何所. 公曰, 得之文忠公遠孫李公?. 此實眞跡也. 希孟雖在童艸, 未嘗不欽慕其文章翰墨之妙, 及戴?損? 而所藏書畵 散失殆盡 其後二十四年 琴軒金子固氏, 送一古?軸求詩, 乃其八景軸也. 噫! 手澤尙新, 忍觀諸 敢依?敬次韻.(돌아가신 아버지 대민공께서는 글과 그림을 법도에 맞게 좋아하셨다. 집에 서화(書畵) 수백여 건이 있었는데, 반드시 거두어 보관하여 가지런한 책으로 만들라고 명하셨다.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아끼신 것은 익재 문충공 이제현이 지은 <瀟湘八景巫山一段雲八首>로 직접 손으로 쓴 것이었다. 내가 어디에서 얻은 것인가를 물었더니, 공께서 말씀하시길, 문충공의 먼 후손인 이희(李?) 공에게서 얻으셨다 하였다. 이는 실재 문충공이 직접 쓴 작품이었다. 내가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아닌 게 아니라 과연 그 문장과 글씨의 신묘함을 흠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민공께서 돌아가심에 미쳐서 소장했던 서화가 거의 모두 산실되어 버렸다. 그 후 24년이 지난 지금 금헌 김자고 씨가 오래된 전축(?軸) 하나를 보내면서 내게 시(詩)를 구하는데, 바로 그 팔경축이었다. 슬프다! 손때가 지금도 새롭기만 하다. 차마 이것을 보면서 감히 운(韻)에 따라 공경하며 삼가는 마음으로 차운한다.)
참된 정취는 응당 표현하지 못하리.

강희맹(姜希孟;1424-1483)의 작품이다. 멀리 보이는 봉우리는 푸른 빛을 띠고 있다. 그래서 그 모습이 흡사 상투를 틀어 올린 듯하다. 그리고 주변으로는 엷은 남기(嵐氣)가 하얀 빛을 띤 채 주위를 두르고 있다. 어딘가에 초가는 사립문이 닫혀 있고, 하늘은 푸른빛을 띠고 있는데 보슬비가 내린다. 들판으로 길게 이어진 길은 숲으로 연결되어 있고 시냇가에 다리는 언덕에 걸쳐 희미하게 일부분만 볼 수 있다.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은 아마 왕유에게 그려서 돌아가게 할지라도 산시(山市)가 지니고 있는 참된 정취를 표현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도 산시(山市)의 모습은 이상적인 공간으로 형상화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푸른 남기에 해당하는 청람(晴嵐)을 대신하여 엷은 남기(輕嵐)라고 했으며, 그 기운이 푸른빛이 아니라 흰빛으로 형용하였다는 점에서는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는 대동소이한 인식과 형상화의 과정을 거치고 있음이 확인된다.

<산시청람-11>
山作靑螺點 산은 푸른 소라의 점이 되었고,
嵐如練帶圍 남기는 비단 띠를 두른 듯 하네.
市鋪紈?接雲扉 저자에 펼친 비단 은자 집에 접해 있고,
初日鬪林? 아침에 솟는 해 숲 속 이슬비와 다투네.
入眼迷虛白 들여다보면 텅 비어있는 듯 미혹되다가,
回頭失翠微 고개 돌려 바라보니 푸른 기운 사라졌네.
悠然對此忽忘歸 한가롭게 이를 마주하곤 돌아감도 잊었고,
四十已知非 魚世謙,『咸從世稿』卷七,「次益齋八景」‘山市晴嵐’.
불혹에 이르러서야 그릇 되었음을 알겠네.

어세겸(魚世謙;1430-1500)의 작품이다. 산(山)은 푸른색 소라처럼 점이 되고, 남기(嵐氣)는 비단으로 만들어진 띠를 두른 듯하다. 푸르스름한 남기를 비단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산시(山市)에 펼쳐진 비단이 은자의 집에 닿아있다. 운비(雲扉)는 구름 속에 있는 집으로 은자(隱者)의 거처를 일컫는 말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허한 듯 하다가도 고개를 돌려 다시 바라보면 푸른 기운이 이내 사라진다. 서두르지 않고 한가한 여유를 느끼며 그림을 마주하고 있자니 이제 그만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조차 잊었다. 그만큼 현재 시인 앞에 놓인 그림을 바라보며 시인은 마음을 모조리 빼앗겼다. 시인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있는 정체가 무엇인지는 시인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마흔 살이라는 나이가 되어 자신의 삶을 돌아보자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그릇된 방식이었음을 깨달았다고 스스로 고백했다.

<산시청람-12>
??拂拂又?? 뭉게뭉게 모였다가 털어내도 다시 아득해지고,
染着秋風吹不消 물들어 붙어서는 가을바람에도 사라지지 않네.
輕?靑旗沽酒店 가볍게 푸른 깃발 덮으면 주막에서 술을 사고,
薄籠殘照送人橋 숲 주변에 해가 지면 다리에서 사람을 보내네.
依稀林石泉聲咽 숲과 바위는 희미해도 물소리는 울려 퍼지고,
彷彿楓鴉樹影搖 단풍나무 까마귀인 듯 나무 그림자 흔들리네.
自有武陵堪避世 무릉도원을 두었으니 속세를 피하기 충분한데,
何勞忘路問漁樵 金時習, <梅月堂集> 卷六, 『韓國文集叢刊』第13卷 195쪽,「山市晴嵐」.
무엇하러 길을 잊고 어부와 나무꾼에게 묻는가.

김시습(金時習;1435-1493)의 작품이다. 산시(山市)에 자욱한 청람(晴嵐)의 형상을 제시하고 있다. 뭉게뭉게 뭉쳐서는 털어내려고 해도, 가을바람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남기(嵐氣)가 푸른 깃발을 덮으면 주막에서 술을 사둔다. 찾아오는 이가 있으면 더불어 술을 마시고 해질녘 숲 주변에 어둠이 내려앉으면 산시(山市)와 속세를 연결해 놓은 다리까지 걸어가서 손님을 배웅한다.
그림 속 숲과 바위는 어둠이 내려앉아 희미하기만 하다.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는데 물소리는 더욱 크게 울려 퍼진다. 단풍나무 가지에 까마귀가 옮겨 날아왔는지 나무의 그림자가 흔들린다. 이런 풍경은 무릉도원(武陵桃源)을 능가하는 곳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시인은 말했다. 무릉도원을 눈앞에 두었기 때문에 시시비비와 다툼, 시기와 알력이 끊이지 않는 인간세상을 피하기에 충분한데, 사람들은 어째서 수고롭게 길을 망각하고서 어부와 나무꾼에게 무릉도원을 묻고 있는가? 하고 반문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산시(山市)에서 살아가는 은자(隱者)이다.

<산시청람-13>
宛轉山橫翠 고운 자태를 지닌 산은 푸른색이 빗겨있고,
?微雨弄晴 희미하게 내리는 비가 맑은 하늘 희롱하네.
羅紈輕掩映 펼쳐 있는 비단이 가볍게 가렸어도,
岩樹乍分明 바위와 나무는 잠깐 동안 뚜렷하네.
日薄前村影 해는 엷어서 앞마을로 그림자가 지고,
溪喧何處聲 요란한 시냇물 소리 어디서 울리는가.
隔林知有屋 숲 너머에 집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午時鳴 成宗,『列聖御製』第九篇,「瀟湘八景」‘山市晴嵐’.
닭들이 따라붙으며 한낮에도 울기 때문이네.

성종대왕(成宗;1457-1494)의 작품이다. 푸른색의 남기(嵐氣)가 가로놓여 있는 산의 자태가 곱게 보인다. 맑은 하늘을 희롱하듯 보슬보슬 비가 내린다. 산시(山市)에 펼쳐져 있는 비단이 살짝 가리고 있어도 바위와 나무는 잠깐 동안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비단은 푸른 남기(晴嵐)를 빗댄 표현이다. 해는 엷어서 어느새 앞마을로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요란한 시냇물 소리가 분명하게 들리는데 어디에서 울리는 것인가? 숲 너머에 사람 사는 집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까닭은 한낮인데도 닭들이 따라붙으며 울고 있기 때문이다.

<산시청람-14>
山家晴亦未見日 산 속 집은 맑아도 해는 아직 보이지 않는데,
非霧非烟渾若迷 안개도 연기도 아닌데 뒤섞여 혼미한 듯하네.
我欲扶藜事幽討 내 지팡이 짚고 승경 탐방을 일삼고자 하는데,
望中?有高人棲 李荇, <容齋集> 卷一, 『韓國文集叢刊』第20卷 343쪽,「山市晴嵐」.
혹시 그림 속에 고인이 깃들었는지 바라보네.

이 행(李荇;1478-1534)의 작품이다. 산중에 있는 집들은 날씨가 맑음에도 불구하고 해가 보이지 않는다. 안개도 아니고 연기도 아닌 것이 뒤섞여 혼미한 듯하다. 이는 남기(嵐氣)를 두고 표현한 것이다. 작중 화자는 지팡이 하나만 있으면 지팡이에 의지해 명승지를 찾아다니는 삶을 일삼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 산시(山市)안에 혹시라도 고인(高人)이 깃들어 있는지 궁금해 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속세에 존재하는 ‘나(我)’는 그림 속에 형상화된 공간을 바라보며 고인(高人)이 깃들었는가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서정적 자아가 속(俗)의 공간에 존재하고 있다면 고인(高人)은 속세와 구별되어 산시(山市)라고 설정된 ‘성(聖)’의 공간에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형상화했다.

<산시청람-15>
非烟亦非雲 연기도 아니고 또 구름도 아닌 것이,
??暗山市 흐리고 흐려서는 산시를 어둡게 하네.
朝日出未高 아침 해가 나왔어도 아직 높지 않아서,
?洞迷遠邇 골짝에 흘러드니 멀고 가까움 혼동하네.
吹萬巧娛人 바람은 온갖 기교로 사람을 즐겁게 하고,
天公費料理 하늘은 일 처리를 공변되게 하는구나.
爲問笏?? 묻노니 홀(笏) 가지고 턱을 받치거나,
何似坐隱? 李荇, <容齋集> 卷三, 『韓國文集叢刊』第20卷 395쪽,「瀟湘八景」‘山市晴嵐’.
안석에서 바둑 두는 모습은 어떠한가.

이 행(李荇;1478-1534)의 작품이다. 산시(山市)에 가득한 청람(晴嵐)의 형상을 연기도 아니고 구름도 아닌 것이 흐려서 산시를 어둡게 만들었다고 형용하였다. 이른 아침 시간으로 배경을 설정했다. 아침 해가 솟았지만 아직 높이 떠오르지 않았다. 골짜기로 햇빛이 흘러들어오니 멀리 있는 것인지 가까이에 있는 것인지 혼란하다. 때마침 부는 바람은 온갖 기교와 재주를 부리며 남기를 몰아가며 이런 저런 형상을 만들어 보는 이를 즐겁게 만든다. 이런 조화를 보고 있자니 하늘이 행하는 일이란 공변되지 않은 것이 없는 듯하다. 그래서 시인은 묻는다. 조복(朝服)에 홀(笏)을 쥐어 턱에 받친 채 조정(朝廷)에 몸을 담는 것과 산시(山市)와 같이 이상적인 공간에 깃들어 은거하면서 안석에 앉아 바둑이나 두며 소일(消日)하는 삶의 모습을 비교하고 있다. 홀(笏)은 천자(天子) 이하 공경대부가 조복(朝服)을 입었을 때, 띠에 끼고 다니는 것으로 군명(君命)을 받았을 때는 이것에 기록을 하는 것이다. 이는 기록하기 위한 일종의 메모지에 해당하는 물건이었다. 좌은(坐隱)이란 바둑을 의미한다. 바둑을 두느라고 앉아 있는 것이 은거(隱居)한 것과 같다는 의미이다. 옛날 요임금이 순에게 왕위를 선양하며, 아들 단주에게는 바둑을 주며 평생을 소일하라고 했다. 이런 측면에서 앉아서 바둑 두는 모습은 은자의 전형적인 삶의 모습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산시청람-16>
晴嵐布山腰 맑은 남기가 산허리에 포진하니,
可怡不可攬 즐길 수는 있어도 잡을 수는 없네.
?上有丈夫 언덕 위에는 한 사나이가 있는데,
欲市何由敢 李廷?, <四留齋集> 卷一, 『韓國文集叢刊』第51卷 253쪽,「題畵屛瀟湘八景」‘山市晴嵐’.
산시로 가려하나 어찌 감히 행할까.

이정암(李廷?;1541-1600)의 작품이다. 산시(山市)에는 청람(晴嵐)이 산허리에 포진해 있기 때문에 감히 다가서기 어려운 상황임을 형용하고 있다. 맑은 남기를 보면서 눈으로만 즐길 뿐 다가가 손으로 만지거나 잡을 수는 없다. 그림 속을 자세히 보니 언덕 위로 한 사내가 서 있다. 시인의 눈에 비친 그림 속 인물은 산시(山市)를 향해 다가서고자 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하지만 산허리에 펼쳐진 남기 때문에 산시(山市) 내부는 명징하게 바라볼 수 없고 또한 다가서기 어렵다. 시인의 눈에 비친 남기는 산시(山市)와 속세(俗世)를 구분하는 경계이자 지표(指標)인 셈이다.

<산시청람-17>
雨後山容特地淸 비 내린 후에 산의 모습 유독 땅이 맑으니,
輕嵐一抹媚新晴 일말의 엷은 남기 맑은 날씨에 아양 떠네.
??初似曳長練 천지 기운 처음에는 긴 비단을 당긴 듯하더니,
?洞俄驚?大瀛 갑자기 잇달아서 큰 바다로 나아감에 놀라네.
遠近峯巒無更出 멀고 가까운 봉우리는 다시 나오지 않고,
依?邨落沒還生 희미한 촌락은 사라졌다 도로 나타나네.
人間不有眞仙已 인간 세상 참된 신선 일찍이 존재하지 않으니,
如有應從此裏行 尹推, <農隱遺稿> 卷一,『韓國文集叢刊』第143卷 198쪽,「瀟湘八景代洪陽從兄月課作」‘山市晴嵐’.
따를 수만 있다면 응당 그림 속으로 가리라.

윤 추(尹推;1632-1707)의 작품이다. 시원하게 비가 내린 뒤 산의 모습은 더욱 맑게 보인다. 일말의 가벼운 남기(嵐氣)가 맑은 날씨 속에서 애교를 부린다. 하늘과 땅이 서로 합쳐져 생성된 기운이 긴 비단으로 표현된 남기(嵐氣)를 끌어당긴 채 홀연 잇달아 큰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놀랍기만 하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남기(嵐氣) 때문에 가깝고 먼 봉우리들은 다시 나타나지 않고, 희미하게 보이던 촌락도 남기와 함께 사라졌다가는 이내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예로부터 인간 세상에는 참된 신선(眞仙)이 존재하지 않으니, 만일 따를 수만 있다면 마땅히 그림 속으로 나아가리라고 다짐하는 시인의 의지가 엿보인다. 그림 속은 산시(山市)를 의미한다. 시인은 인간 세상(人間)과 산시(山市)를 대립적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속세(俗世)는 예로부터 진선(眞仙)이 살 수 없는 현실 공간인 반면 산시(山市)는 참된 신선이 살고 있다는 믿음을 지닌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산시청람-18>
山暈帶靑羅 산 빛은 푸른 비단을 둘렀는데,
依微如染漬 희미함은 마치 물들은 듯 하네.
風起忽無? 바람 일자 홀연 자취를 감추니,
方知是空翠 權斗經, <蒼雪齋集> 卷七,『韓國文集叢刊』第169卷 126쪽,「述姪請賦瀟湘八景」‘山市晴嵐’.
바야흐로 하늘이 푸름을 알겠네.

권두경(權斗經;1654-1725)의 작품이다. 산 빛이 푸른 비단을 둘렀다는 표현은 산시(山市)를 둘러싸고 포진해 있는 남기(嵐氣)의 푸르스름한 형상을 비유적으로 형용한 표현이다. 동시에 그림 속 산시(山市)는 남기와 함께 희미한 기운에 물들은 듯하다. 그러나 바람이 불어오자 남기와 희뿌연 기운도 홀연 자취를 감춘다. 그러자 비로소 하늘이 열리고 자세히 보니 비취빛이 영롱한 빛깔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작품에서도 푸르스름한 빛이 감도는 남기(嵐氣)와 희미함으로 말미암아 산시(山市) 내부는 가려지고 있다. 때문에 산시(山市)의 형상이 더욱 신비적이고 이상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일조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산시청람-19>
一帶靑山人?來 푸른 산 일대를 사람들이 그려 왔듯이,
煙雲寂寂水光開 연기와 구름 고요한데 물빛만이 열리네.
千門盡掩紅塵隔 모든 문이 죄다 닫혀 속세와도 격했으니,
莫評長安古都猜 李在寬, 「山市晴嵐圖」, 『韓國繪?:國立中央博物館未公開繪?特別展』, 國立中央博物館, 1977.
장안의 옛 도시인지 의심하지는 말게나.

이재관(李在寬;1783-1837)의 작품이다. 예로부터 청산(靑山) 일대를 많은 화공들이 그려왔다. 그들이 그렸던 그림을 보면 늘 그렇듯이 연기(煙)와 구름(雲)이 적적하고 고요하게 포진해 있다. 반면에 물빛만이 열려 있다. 그러니 산시(山市)는 연기(煙)와 구름(雲)으로 가려져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물길만이 산시를 향해 흘러갈 뿐이다. 산시(山市)로 들어갈 수 있는 모든 관문(關門)은 모조리 닫혀 있다. 세상과는 철저하게 단절된 상태임을 제시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연기와 구름은 산시(山市)와 속세(俗世)의 경계를 의미하는 동시에 산시(山市)의 신비로움과 은밀함을 증폭시키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이재관의 그림「산시청람도(山市晴嵐圖)」에 기록되어 있는 제화시(題畵詩)이다. 장계수는 그의 논문에서 이 그림에 대해, “이 작품의 근경(近景)에는 연운(煙雲)으로 둘러싸여 표현되는 산시(山市) 대신에 나무숲에 연운(煙雲)이 감싸고 있어 특이하다.” 張桂秀,「朝鮮後期 瀟湘八景圖에 대한 硏究」, 東國大學校 大學院, 2000.
고 분석했다.

<산시청람-20>
空?山氣未全淸 남기 자욱한 산 기운이 온전히 맑지 않고,
翠壁丹崖晦又明 푸른 벽과 붉은 언덕 어두웠다 다시 밝네.
頗似桃都天漸曙 자못 무릉도원 같더니 하늘 점점 밝아지며,
時聞木末遠鷄鳴 朴永元, <梧墅集>, 冊五,『韓國文集叢刊』第302卷 318쪽,「瀟湘八景」‘山市晴嵐’.
이따금 나무 끝 멀리서 닭 울음이 들리네.

박영원(朴永元;1791-1854)의 작품이다. 공몽(空?)은 이슬비가 내리거나 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어둠침침한 모습을 나타낸다. 여기서는 산시(山市)에 자욱하게 깔린 남기(嵐氣)를 일컫는다. 온 산에 남기(嵐氣)가 들어찼기에 온전하게 맑지 않다. 푸른빛을 띠고 있는 절벽과 붉은 기운 그윽한 언덕이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지는 풍경을 형상화했다. 화자는 이곳의 풍경을 음미하면서 보니 흡사 무릉도원(武陵桃源)을 보는 듯한 황홀경에 빠져있다. 그런데 다시 하늘이 점점 밝아오면서 이따금씩 나뭇가지 끝에 걸린 닭 울음소리가 멀리로부터 들려온다. 이 작품에 형상화된 산시(山市)는 무릉도원(武陵桃源)과도 같은 이상향(理想鄕)으로 인식되고 있으면서도 속세와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이따금씩 멀리서 울어대는 닭 울음소리가 나뭇가지 끝에 걸려 있을 정도로 속세와 동떨어진 곳은 아니다. 이러한 공간인식은 말하자면 현실공간과 이상공간이 절충되고 조화를 이룬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산시청람(山市晴嵐)의 형상과 함의를 다루기 위해 여러 작품을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앞에서 살펴본 작품을 대상으로 산시(山市)가 갖는 의미와 청람(晴嵐)이 갖는 의미를 고찰했다. 사실 산시(山市)는 그림으로 그리기가 쉽지 않은 대상이다. 왜냐하면 산시(山市)의 형상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늘 청람(晴嵐)이 포진(布陣)해 있는 형상이었기 때문이다.
실상 산시(山市)는 현실 속에 존재하는 실재 공간이라기보다는 이상적(理想的)이며 가상의 공간으로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산시(山市)는 말 그대로 산 속에 형성된 저자거리 즉 시장(市場)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품에 형상화된 산시는 아주 깊숙하고 험한 산중에 위치하여 사람들이 범접하기 어려운 형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산시(山市)’는 산(山) 속의 ‘시장(市場)’ 내지 ‘도시(都市)’를 의미한다. ‘산시(山市)’라는 시어가 최초로 사용된 것은 당나라 장적(張籍:766-830)의 <送海客歸舊島詩>에서였다. “竹船來桂府, 山市賣魚鬚.”라는 표현과 허당(許棠)의 <憶宛陵舊居詩>에서, “鳥徑通山市, 汀扉上海潮”라는 표현에서 등장했다. ‘청람(晴嵐)’은 정곡(鄭谷)의 <華山詩>에서 “??聳巍巍, 晴嵐染近畿”, <宣和畵譜>에서는 “御府所藏, 有李成夏景晴嵐圖.”라는 기록이 보인다. 이와 같은 예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산시(山市)의 형상은 실재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현실에 존재하기 어려운 가상(假想)의 공간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시에 형상화된 곳과 같은 장소가 실재하는 공간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사람이 범접하기 어려운 곳에 저자가 형성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산시(山市)의 형상은 늘 자연을 곁에 두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이 현실적 한계와의 절충 아래에서 형성된 공간 개념임을 알 수 있다.

모든 작품들에서 공통되는 산시(山市)의 형상은 산(山)이라는 이상 공간과 시(市)라는 현실 공간이 조화를 이루어 생성된 이념적 · 관념적 공간인 셈이다. 산(山)이 성(聖)을 대표하는 공간(空間)이라면 시(市)는 속(俗)을 대표하는 공간이다. 현실에 얽매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은 끊임없이 속(俗)의 공간을 떠나 성(聖)의 공간인 산(山)을 갈망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인간의 삶은 현실공간으로부터 벗어나기가 그리 쉽지 않다. 많은 현실적 조건과 제약으로 말미암아 번화하고 분주한 저자거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간다. 그러한 현실적 제약을 극복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산시(山市)’라는 가상공간을 창출해낸 것이다.
문명(文明)이라는 거대한 틀을 벗어나 살 수 없는 인간은 끊임없이 자연(自然)을 지향하며 추구한다. 그러나 현실적 삶의 한계나 어려움은 결국 자연(自然)과 문명(文明)의 조화(調和)를 구현하지 못하고 가상공간의 설정을 통해서나마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한다. 당대의 문인들에게 산시(山市)의 의미는 산수(山水)를 그린 병풍(屛風)이나 자신의 집 마당에 정원(庭園)을 가꿈으로써 자연(自然)의 일부나마 축소시킨 채로 곁에 두고자 했던 일련의 문화적 현상과 그 맥을 함께한다. 말하자면 문명과 자연의 조화를 모색했던 노력의 결실이 산수(山水)를 그려 넣은 병풍(屛風)을 주변에 두르게 만들고, 정원(庭園)을 가꾸고, 산시(山市)라는 공간을 설정하여 시와 그림으로 형용하며 향유했던 것으로 하나의 공통된 문화적 현상이었다.
산시(山市)가 성(聖)과 속(俗)의 조화(調和)를 모색한 결과 탄생한 이상적 공간이었다면 청람(晴嵐)은 성(聖)과 속(俗)을 경계 짓고, 구분하는 표지(標識)로 인식된 채 형상화되고 있었다. 동시에 청람(晴嵐)은 속세(俗世)로부터의 접근을 차단하는 기능을 담당했던 것으로 형상화되었다. 속세의 기운을 차단하고 산시(山市)라는 이상적 공간을 더욱 신비스러운 분위기로 조성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사실, 산시(山市)라는 공간은 ‘산림(山林)’과 ‘성시(城市)’라는 공간 개념을 하나로 통합시킨 가상의 공간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성시(城市)가 사대부들에게 현실 공간이었다면 산림(山林)은 이상 공간이자 명철보신(明哲保身)의 공간이며 출처진퇴(出處進退)의 공간으로 인식되어왔다. 성시(城市)의 번잡함과 시시비비(是是非非)로 염증을 느끼거나 일탈을 소망하는 경우 사대부들이 정서적 안정과 심적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산림(山林)이었다. 산림이 심성을 수양하고 학문 연마의 근거지였다면, 성시(城市)는 그들의 이상을 현실 세계에 구현할 수 있는 현실 무대로서 인식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공간은 현실과 이상을 대변하는 곳이자 실재에서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두 가지 방식이었다. 가장 이상적인 공간은 산림(山林)과 성시(城市)가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었고, 그래서 탄생하게 되었던 새로운 공간 개념이 바로 산시(山市)였다고 요약할 수 있다.
<그림 > 산시청람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산시청람(山市晴嵐)의 형상과 함의는 산시(山市)라는 공간개념과 형성배경에 주목한 결과 산림(山林)과 성시(城市)가 조화를 이룬 현실적 요구에 대한 대안이자 성(聖)과 속(俗)이 조화를 이룬 이상적 공간으로 인식된 채로 작품으로 형상화되고 있었음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산시청람(山市晴嵐)에는 어떤 의미 맥락이 감춰져 있는가 하는 점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산시(山市)에 대립되는 공간 개념으로 조시(朝市)를 상정할 수 있다. 조시(朝市)라 하면, 우선 조정(朝廷)과 저자(市)라는 공간을 의미한다.
이러한 공간 개념에서 전(轉)하여 명리(名利)의 경쟁이 심한 곳을 이르는 말로도 해석된다. 그런가하면 말 그대로 아침에 서는 시장(市場)의 의미로도 사용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의미로 더욱 널리 인식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작품이 산시청람(山市晴嵐)의 서사적 맥락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大隱住朝市 대은(大隱)은 조정이나 저자에 숨고,
小隱入丘樊 소은(小隱)은 산속 깊이 숨는다네.
丘樊太冷落 산중(山中)은 지나치게 적막하고,
朝市太?? 조정과 저자는 지나치게 시끄럽네.
不如作中隱 이는 중은(中隱)이 되는 것만 못해,
隱在留司官 사관(司官)에 머물러 있으며 숨네.
似出復似處 나오는 듯하다가도 다시 물러나니,
非忙亦非閒 바쁘지도 않고 한가하지도 않다네.
不勞心與力 애태우지도 않고 힘쓰지 않아도,
又免飢與寒 또한 굶주림과 추위는 면한다네.
終歲無公事 종신토록 공적인 업무가 없어도,
隨月有俸錢 매월마다 봉급은 지급된다네.
君若好登臨 그대가 만일 산에 오름을 좋아하면,
城南有秋山 성 남쪽으로 추산(秋山)이 있다네.
君若愛遊蕩 그대가 만일 질탕하게 놀기를 좋아하면,
城東有春園 성 동쪽으로 춘원(春園)이 있다네.
君若欲一醉 그대가 만일 한바탕 취하기를 좋아하면,
時出赴賓筵 때때로 손님 맞는 연회에 나아간다네.
洛中多君子 낙안에는 군자(君子)들이 많이 있기에,
可以恣歡言 마음껏 환담하며 이야기를 할 수 있네.
君若欲高臥 그대가 만일 높이 올라 눕고 싶다면,
但自深掩關 스스로 깊게 빗장만 걸어두면 된다네.
亦無車馬客 또 수레나 말을 탄 신분 높은 손님이,
造次到門前 순식간에 문전에 당도하지는 않는다네.
人生處一世 인간 삶이 한 세상을 살면서 거처함에,
其道難兩全 그 도리 양쪽을 온전히 하기는 힘드네.
賤卽苦凍? 미천하면 곧 춥고 굶주림이 고통스럽고,
貴則多憂患 고귀하면 곧 근심 걱정이 많은 법이네.
唯此中隱士 다만 이 가운데 중은(中隱)의 선비만이,
致身吉且安 종신토록 길하면서도 또한 편안하다네.
窮通與?約 궁(窮)과 통(通) 그리고 풍(豊)과 약(約),
正在四者閒 白居易,『白氏長慶集』卷二十二, 「中隱」.
이 네 가지에 진정한 한가로움이 있네.

백거이(白居易;772-846)의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가장 이상적인 사대부로서의 삶은 대은(大隱)도 아니고 소은(小隱)도 아닌 중은(中隱)으로서의 삶이다. 대은(大隱)은 일반적 통념과 달리 역으로 번잡한 조정이나 저자에 숨는 은자(隱者)를 일컫는다. 소은(小隱)은 흔히 생각하듯 속세를 떠나 산속으로 숨어드는 은자(隱者)를 의미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정이나 저자는 너무 시끄러우면서도 번잡하고, 산중(山中)은 지독하게 적막하기 때문에 한가한 비서직으로 숨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이라고 했다. 물론 이 작품에서 백거이라는 시인은 진지하게 속내를 드러내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 작품을 통해 내밀한 속내의 일단을 드러내고 있음은 분명하다. 백거이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사대부로서의 삶은 번잡한 조정이나 시끌벅적한 저자에 숨어 사는 대은(大隱)의 형상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지독하게 적막한 산속으로 숨어드는 소은(小隱)의 삶도 아니었다. 그것은 대은(大隱)과 소은(小隱)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중은(中隱)으로서의 삶이었다. 이러한 관점이 바로 산시청람(山市晴嵐)의 공간 개념과도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산시(山市)라는 공간 개념이 중은(中隱)에 해당하는 개념인 것이다. 산림(山林)과 성시(城市)의 사이에 제3의 공간인 산시(山市)가 존재하듯, 대은(大隱)과 소은(小隱)의 사이에 제3의 개념인 중은(中隱)이 존재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중은(中隱)과 산시(山市)는 문명 혹은 자연 가운데 하나의 삶을 선택받도록 강요된 현실 속에서 하나의 대안으로서 상정된 개념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실존했던 인물 가운데 성시(城市)와 산림(山林)의 삶이 함께 조화를 이루었던 대표적 문인이 바로 왕유(王維)였다. 왕유는 40대 후반이었던 740년경에 섬서성(陝西省) 남전현(藍田縣)의 서남쪽에 위치한 종남산(終南山) 망곡(輞谷)에 망천장(輞川莊)을 짓고 실재 반관반은(半官半隱)의 은거 생활을 했던 인물이다. 망천장의 수려한 풍경을 그린 「망천도(輞川圖)」 역시 당대 많은 문인 화가들에게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고려조와 조선조에 걸친 많은 문인 화가들에게는 왕유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이를 입증하듯 산시청람(山市晴嵐)의 작품 세계에는 왕유(王維)가 등장하고 있다.
산시청람(山市晴嵐)이라는 시제(詩題)에는 앞서 언급한 왕유(王維) 이외에도 대은(大隱), 고인(高人), 속객(俗客), 기려객(騎驪客), 스님, 두보(杜甫) 등의 인물 형상이 등장한다. 이들이 등장하고 형상화된 방식은 제 각기 다르지만 이들의 형상이 지닌 공통점과 차이점을 정리하면 산시청람(山市晴嵐)이라는 시제(詩題)에 감추어진 대략적인 의미 맥락이 드러날 것이다. 이들이 등장하는 대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산시청람(山市晴嵐)>에 등장하는 인물의 형상
차례
등장인물
인물형상
논문부록
작품번호
1
스님(僧)
산시에 살고 있거나 산시를 향해 걸어가는 형상
3,7,24
2
나그네(遊人)
산시 내부를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형상
8
3
두 미인(雙娥)
두 미인이 산시에 청람을 걷어내고 싶어 하는 형상
11
4
위대한 은자(大隱)
산시 속에 깃들어 살고 있는 위대한 은자의 형상
14
5
기려교상객(騎驢橋上客)
왕유의 망천장을 떠올리거나 시사(詩思)에 잠긴 형상
16,37
6
어떤 사람(何人)
산시에서 술에 취해 부축을 받고 돌아오는 형상
17
7
왕유(摩詰)
산시청람의 참뜻은 왕유도 그려내기 어렵다는 형상
18
8
사람을 보내는 다리(送人橋)
해질 무렵 다리에서 사람을 떠나보내는 형상
20
9
어부와 초동(漁樵)
산시가 곧 무릉도원임에도 어부와 초동에게 묻는 형상
20
10
가인(佳人)
미인 서시가 눈을 찡그리는 인물의 형상
23
11
문군(文君)
탁문군이 미인 서시의 흉내를 내는 형상
23
12
신선(仙子)
구름을 탄 신선이 옥황상제의 관문을 가리키는 형상
24
13
상제(上帝)
옥황상제 내지는 상제(上帝)의 형상
24
14
나(我)
지팡이를 짚고 산시의 승경을 탐방하고 싶어하는 형상
25
15
고인(高人)
그림 속 산시에 깃들어 있는, 도가 높은 은자의 형상
25
16
사람(人)
산시를 바라보는 화자이거나 산시에 사는 인물 형상
26,38,45,46,47,48
17
두보(杜甫)
산시의 형상을 작품으로 훌륭하게 묘사했던 형상
27
18
삼상객(三湘客)
과거 말달리던 시절을 뒤로하고 귀밑머리 흩어진 형상
27
19
옥녀(玉女)
미인의 자태로 산시에 청람을 만드는 여인의 형상
31,40
20
속객(俗客)
산시 내부를 가리는 남기 기운이 싫은 인물의 형상
31
21
장부(丈夫)
산시를 동경과 흠모의 눈으로 바라보는 장부의 형상
32
22
화공(畵工)
시험 삼아서 산시청람을 그려보라고 명을 받은 형상
35
23
진선(眞仙)
인간 세상에는 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형상
39
24
교인(鮫人)
밤새도록 산시에 남기를 만들어 놓은 인물의 형상
40
25
객(客)
산시에서 술을 사고 있는 인물의 형상
44
26
상인(商人)
남기에 가린 산시가 신기루처럼 보인다는 인물의 형상
47
27
남상(南商)
물건을 팔고 돌아가는 인물의 형상
51
28
북려(北旅)
물건을 팔고 돌아가는 인물의 형상
51
29
인어(人語)
산시 속에서 들리는 사람의 말소리를 형상화한 표현
52
30
화옹(化翁)
주물주가 비단 속에 품었다가 다시 나눠준다는 형상
52
* ‘논문부록 작품번호’라는 말은 논문 뒷부분에 수록한 부록을 말한다.

이 도표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산시청람(山市晴嵐)이라는 제목으로 창작된 작품에서 인물의 형상은 30가지에 걸쳐 등장하고 있다. 인물의 형상은 서른 가지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형상화되고 있으나 이들을 정리하면 대략 세 가지 정도의 작품 세계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산시청람(山市晴嵐)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주목하여 빼어난 경물(景物)을 접함에 따라 촉발되는 정서를 표출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이러한 작품들에서는 산시(山市)의 모습을 주로 미인의 모습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둘째, 푸른 남기에 둘러싸인 산시(山市)의 모습을 갈망하면서 동경과 부러움의 시선을 유지한 채 바라보고 있는 시선들이다. <그림 > 산시청람 中 다리를 건너는 두 사람
셋째, 산시(山市)에 깃들어 있는 은자(隱者)의 형상이거나 혹은 산시 내부에 살고 있는 인물이 주로 형상화되고 있다. 또 산시를 향해 걸어가는 인물 혹은 산시로부터 돌아오는 인물의 형상도 다루어지고 있다.
<그림 > 산시청람 中 뒤를 돌아다보는 인물
이를 정리해보면 산시청람(山市晴嵐) 그 자체의 빼어남을 노래하는 화자(話者)와 그 산시청람의 공간을 갈망하면서 동경하고 부러워하는 시선, 그리고 산시(山市)에 깃들어 사는 인물, 산시(山市)를 오가는 인물 등이 존재한다. 말하자면 아름답고 경치가 빼어난 산시(山市)를 중심으로 화자와 작중 인물이 그곳 내부를 지향하지만 푸르스름한 빛이 감도는 남기(嵐氣)에 의해 접근이 차단된 상태의 화자(話者) 내지 작중 인물이 등장한다. <그림 > 산시청람 中 정자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거나 바둑을 두는 두 인물
이들과 달리 산시(山市)에 깃들어 살면서 자유롭게 산시(山市)를 왕래하는 인물들의 형상이 동시에 등장한다. 이들의 관계에 주목해보면, 산시(山市)를 사이에 두고 그곳에 다가서고자 애를 쓰지만 다가설 수 없는 인물들과 자유로이 왕래하거나 그 안에 깃들어 살고 있는 인물들이 서로 대비된다. 다가서고자 하지만 다가설 수 없는 이유는 산시(山市)를 둘러싸고 있는 남기(嵐氣) 때문이다. 다가설 수 없는 인물 형상으로는 화자(話者)와 작중 인물 가운데 산시(山市) 내부를 바라보려고 애를 쓰고 있으나 바라볼 수 없는 인물들이다. 산시(山市) 내부에 존재하는 인물은 외부 세계와의 접촉이 차단된 상태이다. 마찬가지로 산시(山市) 외부에 존재하는 인물들은 산시(山市) 내부를 들여다보고자 하지만 희미한 윤곽만이 신기루처럼 보일 뿐 명료하고 뚜렷하게 볼 수 있는 시선이 차단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서포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九雲夢)」에서 설정된 공간적 배경이 바로 소상팔경(瀟湘八景)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서포는 작품의 공간을 소상팔경(瀟湘八景)으로 설정한 후 서사(敍事)를 전개하고 있다. 구운몽의 도입부에서 제시되고 있는 공간을 유심히 고찰해보면 소상팔경 가운데서도 산시청람(山市晴嵐)의 형상과 매우 닮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천하에 명산 다섯이 있으니 동쪽은 동악 태산(泰山)이요, 서쪽은 서악 화산(華山)이요, 남쪽은 남악 형산(衡山)이요, 북쪽은 북악 항산(恒山)이요, 가운데는 중악 숭산(崇山)이다. ㉮오악(五嶽) 중에 오직 형산이 중원(中原)에서 가장 머니 구의산(九疑山)이 그 남쪽에 있고, 동정호(洞庭湖)가 그 북쪽에 있고, 소상강(瀟湘江)이 그 삼면을 둘러 있으니, 제일 수려한 곳이다. 그 가운데 축융(祝融), 자개(紫蓋), 천주(天柱), 석름(石?), 연화(蓮花) 다섯 봉우리가 가장 높으니, ㉯수목이 울창하고, 구름과 안개가 가리어 날씨가 아주 맑고 햇빛이 밝지 않으면 사람이 그 근사한 진면목을 쉽게 보지 못하였다. 진나라 때 선녀 위부인(魏夫人)이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선동(仙童)과 옥녀(玉女)를 거느리고 이 산에 와 지키니 신령한 일과 기이한 거동은 다 헤아리지 못할 정도였다. 당나라 시절에 한 노승이 있어 서역(西域) 천축국(天竺國)에서 와 연화봉 경치를 사랑하여 제자 오륙백 인을 데리고, 연화봉 위에 법당을 크게 지었으니, 혹 육여화상이라 하기도 하고, 혹 육관대사라 하기도 하였다. 金萬重,「九雲夢」완판 105장본


「구운몽(九雲夢)」의 도입부에 해당한다. 인용문의 밑줄 ㉮에서도 드러나듯이 동정(洞庭) 호수의 남쪽이자 구의산(九疑山)의 북쪽에 위치한 소상강(瀟湘江) 유역이 바로 구운몽의 공간적 배경이자소상팔경(瀟湘八景)이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또한 밑줄 친 ㉯와 ㉰는 산시청람(山市晴嵐)에서 형상화되었던 작품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임을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밑줄 친 ㉯의 형용은 산시청람(山市晴嵐)이 지니고 있는 전형적인 작품 세계의 형상이다. 구름과 안개가 가리어서 근사한 진면목을 쉽게 보지 못했다고 표현한 것은 산시청람의 형상과도 일맥상통한다. 산시청람(山市晴嵐)의 작품 세계에서 산시(山市) 내부의 진면목을 볼 수 없었던 이유는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청람(晴嵐) 곧 푸르스름한 남기의 기운 때문이었다. 인용문 ㉯에서 구름과 안개로 인해 진면목을 보지 못했었다면 산시청람에서는 남기(嵐氣) 내지는 그에 상응하는 연기와 안개 등으로 인해 산시 내부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던 것이다. 아울러 인용문 ㉰를 통해서는 어렴풋이나마 산시(山市)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듯하다. 이 부분에 주목한 김병국은 「구운몽(九雲夢)」의 공간적 배경인 소상팔경(瀟湘八景) 일대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여기에 남악 형산 연화봉 경개에 대한 형상이 중요한 의미를 띠게 된다. 필자가 말한 바 있듯이, 이 형상은 ‘천상의 낙원’이며 ‘에덴의 동산’이며 인간 생명의 원천인 ‘모체 내부’의 즐거운 기억을 암시한다. ㉮연화봉은 수도의 도량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성진이 팔선녀를 만나 욕정의 번뇌에 빠지게 되는 곳이다.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운 이곳의 경치는 성진과 팔선녀의 만남의 성격에 매우 적절하게 호응한다. ㉯이러한 연화봉의 경개는 여성적인 것의 전체성을 드러내는 팔선녀의 형상에 겹쳐지는, 성진의 모태 체험의 상징적 표현인 것이다. 김병국,『한국고전문학의 비평적 이해』, 서울대학교출판부, 1995, 267쪽.


인용문에서 특히 주목되는 표현은 밑줄 친 ㉮와 ㉯에서 확인된다. 밑줄 ㉮의 경우는 대단히 상징적이다. ‘연화봉’이라는 공간이 지닌 중의적 의미를 예리하게 포착했다. 말 그대로 구운몽에서 연화봉은 성진에게 수도의 도량인 성(聖)스러운 공간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성진과 팔선녀가 만나고 욕정의 번뇌에 빠지게 되는 속(俗)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처럼 성(聖)과 속(俗)이 교차하는 공간이 바로 연화봉인 셈이다.
연화봉은 산시청람(山市晴嵐)의 ‘산시(山市)’와도 동일한 맥락에 놓인다. 산시(山市) 역시 산림(山林)과 성시(城市)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성(聖)과 속(俗)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밑줄 ㉯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공간적 배경이 되고 있는 연화봉의 경개가 주인공인 성진이 모태 체험을 하는 상징적 공간이자 여성적인 것의 전체성을 드러내는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설 구운몽의 공간이 모체 내부를 의미한다면 소상팔경의 산시청람 또한 연화봉의 경개와 유사한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어야 할 텐데 과연 산시청람(山市晴嵐)의 작품 세계가 그러한가 하는 문제는 구체적 작품을 대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겠다.

靑山婉轉如佳人 푸른 산이 단아하게 변하니 아름다운 여인인 듯,
雲作香?霞作唇 구름은 향기로운 귀밑털 되고 저녁놀 입술 되네.
更敎橫嵐學眉黛 다시 비낀 안개로 눈썹 그리는 먹 본뜨게 하니,
春風故作西施嚬 봄바람은 짐짓 서시(西施)의 찡그림을 만드네.
朝隨日脚卷還空 아침에는 햇살을 따라 걷히어 비었다가,
暮傍疎林色更新 저녁에는 성긴 숲을 끼고서 빛이 더욱 새롭네.
遊人隔岸看不足 나그네는 언덕 너머를 보기에도 부족하니,
兩眼不?東華塵 陳?,『梅湖遺稿』卷四, 『韓國文集叢刊』第2卷 283쪽,「宋迪八景圖」‘山市晴嵐’.
두 눈이 동화(東華) 티끌을 근심하지 않네.

고려시대 진화(陳?;1180-1215, 추정)의 작품이다. 청람(晴嵐)이 감싸고 있는 산시(山市)의 형상을 아름다운 여인의 형상에 비유하고 있다. 산시를 중심으로 구름은 향기 나는 여인의 귀밑털이 되고, 붉게 물든 노을은 여인의 입술과 같은 모습이라고 형용했다. 게다가 안개로 눈썹을 그리자 서시가 눈썹을 찡그리는 듯한 모습이라고 형상화하고 있다. 푸른 남기의 기운이 아침 햇살을 따라 걷혔다가 저녁나절에 다시 성긴 숲을 끼고서 푸르스름한 기운을 띠고 있는 형상이 사람의 마음을 모두 빼앗을 정도로 황홀하다고 했다. 그런 산시(山市)의 형상에 마음을 빼앗겨버린 나그네는 세상사 따위를 잊어버릴 수밖에 없다고 노래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 형상화된 산시청람(山市晴嵐)의 모습은 앞의 인용문에 밑줄 친 ㉯의 내용과 그 궤(軌)를 같이한다. 산시청람의 형상은 여성적인 것의 전체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모체 내부와 같이 평온하고 안락하면서도 성(聖)과 속(俗)이 교차하는 그런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한 작품을 살펴본다.
山色分明玉女姿 산 빛은 분명하게 아름다운 여인의 자태,
輕嵐裁作碧羅? 엷은 남기 재단하니 푸른 비단 휘장 되네.
地靈愛護非無意 땅의 정령 애호함에 뜻이 없진 않겠지만,
隔了應嫌俗客知 趙昱, <龍門集> 卷三,『韓國文集叢刊』第28卷 199쪽,「溢之求八景之作率爾錄呈」‘山市晴嵐’.
저만치 떨어짐을 싫어함은 속객도 알겠네.

조욱(趙昱;1498-1557)의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도 산의 빛깔은 아름다운 여인의 자태가 분명하다고 형상화했다. 산시(山市)의 형상은 아름다운 여인의 자태이며, 그 산을 두르고 있는 엷은 남기를 재단(裁斷)하자 아름다운 여인의 침소를 가리는 푸른색의 비단 휘장이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산시(山市)를 감싸고 있던 푸른 남기는 땅의 정령이 산시를 아끼고 보호하려는 의도에서 펼쳐 놓은 것이라는 인식을 드러낸다.
그런데 그런 땅의 의도와 아랑곳하지 않고, 산시(山市) 바깥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산시(山市) 내부를 향해 다가서고자 해도 다가설 수 없기 때문에 속세의 사람들과 산시(山市)는 저만치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 산시(山市)와 단절된 형상을 사람들이 좋아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산시청람(山市晴嵐)의 형상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언제나 푸른 남기나 그에 준하는 연기나 안개 혹은 구름 등에 의해 가려진 채 형상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 浮嵐細細引輕紈 李仁老,『三韓詩龜鑑』卷之中, ‘山市晴嵐’,『匪懈堂瀟湘八景詩帖』,『東文選』卷二十,「宋迪八景圖」‘山市晴嵐’.
뜬 남기 흐늘흐늘 얇은 비단 펼친 듯.
2. 非煙非霧襲重重 李奎報, <東國李相國集>後集卷六,『韓國文集叢刊』第2卷 197쪽,「次韻李平章仁植虔州八景詩幷序」‘山市晴嵐’.
연기도 안개도 아닌 것이 겹겹이 끼어있어,
3. 萬疊山深嵐翠重 李奎報, <東國李相國集>後集卷六,『韓國文集叢刊』第2卷 197쪽,「次韻李平章仁植虔州八景詩幷序」‘山市晴嵐’.
만 첩 산 깊은지라 푸른 남기 겹쳐있어,
4. 輕羅染碧水紋重 李奎報, <東國李相國集> 後集卷六,『韓國文集叢刊』第2卷 198쪽,「次韻李相國復和虔州八景詩贈」‘山市晴嵐’.
엷은 비단 푸르게 물들어 물결무늬 겹겹이니,
5. 翠光籠遍萬山重 李奎報, <東國李相國集>後集卷六,『韓國文集叢刊』第2卷 199쪽,「相國嘗和示一首, 予每復以二首, 未知鈞?何如, 惶恐惶恐」‘山市晴嵐’.
푸른 빛 모든 산을 겹겹이 두루 에워싸고,
6. 嵐映晴霞作綺? 李奎報, <東國李相國集> 後集 卷六,『韓國文集叢刊』第2卷 200쪽,「次韻復和李相國八景詩各一首」‘山市晴嵐’.
아지랑이 맑은 놀에 비치니 비단결 이루었네.
7. 靑羅一帶卷舒中 李奎報, <東國李相國集>後集卷六,『韓國文集叢刊』第2卷 201쪽,「次韻英上人見和」‘山市晴嵐’.
푸른 비단 일대에 감겼다 펴지는 속이라네.
8. 靑山婉轉如佳人 陳?,『梅湖遺稿』卷四, 『韓國文集叢刊』第2卷 283쪽,「宋迪八景圖」‘山市晴嵐’.
푸른 산이 단아하게 변하니 아름다운 여인인 듯,
9. 漠漠平林翠靄寒 李齊賢, <益齋亂藁> 卷三,『韓國文集叢刊』第2卷 526쪽,「和朴石齋·尹樗軒用銀臺集瀟湘八景韻(石齋名孝修, 樗軒名奕)」‘山市晴嵐’.
아득하고 평평한 숲에 푸른 아지랑이 차갑고,
10. 嵐翠落殘? 李齊賢, <益齋亂藁> 卷十,『韓國文集叢刊』第2卷 608쪽,「巫山一段雲 瀟湘八景」‘山市晴嵐’.
푸른 남기는 가랑비에 떨어지네.
11. 山容媚曉晴305) 李齊賢, <益齋亂藁> 卷十,『韓國文集叢刊』第2卷 609쪽,「巫山一段雲 瀟湘八景」‘山市晴嵐’.
산의 자태는 새벽녘 안개 개어 곱네.
12. 山頭霧欲生 千峯,『匪懈堂瀟湘八景詩帖』, 「山市晴嵐」.
산 정상 안개가 생기려하네.
13. 輕嵐一抹橫如練 姜碩德,『東文選』 第22卷,「瀟湘八景圖有宋眞宗宸翰」‘山市晴嵐’.
약간의 가벼운 남기가 비단처럼 비껴있고,
14. 細細浮嵐護晩晴 崔恒,『匪懈堂瀟湘八景詩帖』, 山市晴嵐.
흐늘흐늘 떠다니는 남기는 저녁에 개이네.
15. 練練籠?? 成三問, <成謹甫集> 卷一, 『韓國文集叢刊』第10卷 183쪽,「瀟湘八景」, ‘山市晴嵐’.
희고 반들반들한 것이 저자를 감싸고,
16. 嵐翠??欲染衣 李承召, <三灘集> 卷九, 『韓國文集叢刊』第11卷 461쪽,「題畵屛」‘山市晴嵐’.
푸른 남기 뭉게뭉게 옷을 물들이겠네.
17. 輕烟引素?岩扉 엷은 안개 흰 깁 당겨 은자의 집 덮고,
18. 輕嵐白作圍 姜希孟, <私淑齋集> 卷五,『韓國文集叢刊』第12卷 67쪽,「瀟湘八景」‘山市晴嵐’.
엷은 남기 하얗게 주위를 둘렀네.
19. 嵐如練帶圍 魚世謙,『咸從世稿』卷七,「次益齋八景」‘山市晴嵐’.
남기는 비단 띠를 두른 듯 하네.
20. ??拂拂又?? 金時習, <梅月堂集> 卷六, 『韓國文集叢刊』第13卷 195쪽,「山市晴嵐」.
뭉게뭉게 모였다가 털어내니 다시 아득해지고,
21. 羅紈輕掩映 成宗,『列聖御製』第九篇,「瀟湘八景」‘山市晴嵐’.
펼쳐진 흰 비단이 가볍게 가렸어도,
22. 深?山含翠 成宗,『列聖御製』第九篇,「瀟湘八景」‘山市晴嵐’.
깊고도 비스듬한 산 푸른빛을 머금고,
23. 曉日染成嵐縷碧 鄭希良, <虛庵遺集> 卷一, 『韓國文集叢刊』第18卷 13쪽,「瀟湘八景」‘山市晴嵐’.
새벽 해에 물들어 푸른 올의 남기가 되었네.
24. 晩霽輕嵐?翠巒 洪彦弼, <?齋集> 卷一, 『韓國文集叢刊』第19卷 216쪽,「瀟湘八景」‘山市晴嵐’.
저녁에 개인 엷은 남기 푸른 봉우리 덮었네.
25. 非霧非烟渾若迷 李荇, <容齋集> 卷一, 『韓國文集叢刊』第20卷 343쪽,「山市晴嵐」.
안개도 연기도 아닌데 뒤섞여 헤매는 듯하네.
26. 非烟亦非雲 李荇, <容齋集> 卷三, 『韓國文集叢刊』第20卷 395쪽,「瀟湘八景」‘山市晴嵐’.
연기도 아니고 또 구름도 아닌 것이,
27. 山雲晩翠重 申光漢, <企齋集> 別集 卷七, 『韓國文集叢刊』第22卷 466쪽,「瀟湘八詠」‘山市晴嵐’.
산 구름은 저녁에 푸른 빛 겹쳐있네.
28. 嵐翠散?? 蘇世讓, <陽谷集> 卷一,『韓國文集叢刊』第23卷 309쪽,「書洪古阜春年畵屛」‘山市晴嵐’.
푸른 남기 흩어졌다 이어지며 비스듬하네.
29. 煙嵐搭晴素 蘇世讓, <陽谷集> 卷十, 『韓國文集叢刊』第23卷 440쪽,「瀟湘八景」‘山市晴嵐’.
연기와 남기 맑은 흰빛 실었네.
30. 出沒樹顚兼屋脊 鄭士龍, <湖陰雜稿> 卷六, 『韓國文集叢刊』第25卷 189쪽,「奉題工曹尹判書屛」‘山市晴嵐’.
나무 꼭대기 가옥의 등성마루 함께 출몰하는데,
31. 輕嵐裁作碧羅? 趙昱, <龍門集> 卷三,『韓國文集叢刊』第28卷 199쪽,「溢之求八景之作率爾錄呈」‘山市晴嵐’.
엷은 남기 재단하니 푸른 비단 휘장 되었네.
32. 晴嵐布山腰 李廷?, <四留齋集> 卷一, 『韓國文集叢刊』第51卷 253쪽,「題畵屛瀟湘八景」‘山市晴嵐’.
맑은 남기 산허리에 포진하니,
33. 宿靄籠朝旭 李?光, <芝峰集> 卷一, 『韓國文集叢刊』第66卷 16쪽,「山市晴嵐」.
묵은 아지랑이 아침 해를 감싸고,
34. ??浮嵐逗曉寒 李弘有,『遯軒集』卷三,「題瀟湘八景畵屛, 又寫八詠」, ‘山市晴嵐’.
자욱하게 뜬 남기에 새벽 추위 머무르고,
35. 兩峯高揷起晴嵐 河晉, <台溪集> 卷三, 『韓國文集叢刊』第101卷 100쪽,「山市晴嵐」.
높이 꽂힌 두 봉우리에 맑은 남기 일어나고,
36. ??山市雜雲林 鄭斗卿, <東溟集>卷二,『韓國文集叢刊』第100卷, 409쪽,「題瀟湘八景圖」‘山市晴嵐’.
멀리로 아득한 산시는 구름숲과 섞여있고,
37. 嵐氣??翠欲滴 金弘郁, <鶴洲全集> 卷四, 『韓國文集叢刊』第102卷 37쪽,「次權進士昱瀟湘八景八首」‘山市晴嵐’.
남기는 자욱하여 비취색 방울지려하네.
38. 非煙非霧過江橫 具 ?,『明谷先生文集』卷二,「瀟湘八景」, ‘山市晴嵐’.
연기도 안개도 아닌 것이 강에 걸쳐 비껴있고,
39. ??初似曳長練 尹 推, <農隱遺稿> 卷一,『韓國文集叢刊』第143卷 198쪽,「瀟湘八景代洪陽從兄月課作」‘山市晴嵐’.
천지 기운 처음에는 긴 비단을 당긴 듯 하더니,
40. 隱約浮嵐紫翠橫 金萬基, <瑞石集> 卷一, 『韓國文集叢刊』第144卷 370쪽,「瀟湘八景」‘山市晴嵐’.
희미하게 뜬 남기 자취 빛이 빗겨 있고,
41. ??山市雜雲林 鄭斗卿, <東溟集>卷二,『韓國文集叢刊』第100卷, 409쪽,「題瀟湘八景圖」‘山市晴嵐’.
멀리로 아득한 산시는 구름숲과 섞여있고,
42. 山暈帶靑羅 權斗經, <蒼雪齋集> 卷七,『韓國文集叢刊』第169卷 126쪽,「述姪請賦瀟湘八景」‘山市晴嵐’.
산 빛은 푸른 비단을 둘렀는데,
43. 雨霽嵐收天氣淸 肅宗,『列聖御製』第十七篇,「瀟湘八景」‘山市晴嵐’.
비 개이고 남기 걷혀 날씨가 맑아지고,
44. 山空紫翠下 李光庭, <訥隱集> 卷三, 『韓國文集叢刊』第187卷 185쪽,「瀟湘八景題雙碧堂小屛」‘山市晴嵐’.
산 하늘에서 자줏빛과 푸른색이 내려앉고,
45. 雨氣初收山氣生 權相一,『淸臺集』卷三,「瀟湘八景, 八景幷四鶴, 作十二帖寢屛」. ‘山市晴嵐’.
비 기운 처음 걷혀 산 기운이 생생하고,
46. 靑嵐晴更濃 權萬, <江左集> 卷一, 『韓國文集叢刊』第209卷 71쪽,「瀟湘八景」‘山市晴嵐’.
푸른 남기 개었다 더욱 짙어지네.
47. 嵐氣三時紫翠斑 鄭宗魯, <立齋集>卷六,『韓國文集叢刊』第253卷 120쪽,「瀟湘八景次皓隣韻」‘山市晴嵐’.
남기 기운 하루 종일 자줏빛 푸른 무늬네.
48. 雨餘山色染如藍 正朝大王, <弘齋全書>, 卷二,『韓國文集叢刊』第262卷 33쪽,「瀟湘八景 癸巳」‘山市晴嵐’.
비 내린 뒤 산색은 쪽빛으로 물들고,
49. 煙雲寂寂水光開 李在寬, 「山市晴嵐圖」, 『韓國繪? : 國立中央博物館未公開繪?特別展』, 國立中央博物館, 1977.
연기와 구름 고요한데 물빛만이 열리네.
50. 空?山氣未全淸 朴永元, <梧墅集>, 冊五,『韓國文集叢刊』第302卷 318쪽,「瀟湘八景」‘山市晴嵐’.
안개 자욱한 산 기운이 온전히 맑지 않고,
51. 輕嵐淡抹墟烟鎖 宋來熙, <錦谷集>, 卷一,『韓國文集叢刊』第303卷 107쪽,「瀟湘八景 八首 」‘山市晴嵐’.
가벼운 남기 묽게 칠해 산시는 연기에 잠겼고,
52. 近山爲市市生嵐 金時洛,『莊庵集』, 卷一,「家有古藏瀟湘?八帖, 家兄逐景題詠, 伏次其韻」, ‘山市晴嵐’.
가까운 산 도시 되니 도시엔 남기 생기고,

지금까지 산시청람(山市晴嵐)이라는 제목으로 창작된 작품 52수에서 산시(山市)의 형상이 어떻게 묘사되고 있었는가 하는 점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여기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산시(山市)는 청람(晴嵐), 연기(煙氣), 안개(霧), 구름(雲) 등에 의해 가려진 상태로 존재한다. 이 모습은 마치 모체(母體) 내부(內部)와 같이 신비로운 공간이면서도 안락하고 편안한 형상이다. 어머니의 자궁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편안했던 태초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산시청람의 공간을 무릉도원으로 인식하기에 이른다.

??拂拂又?? 뭉게뭉게 모였다가 털어내니 다시 아득해지고,
染着秋風吹不消 물들어 붙으니 가을바람으로도 사라지지 않네.
輕?靑旗沽酒店 가볍게 푸른 깃발 덮으니 술집에서 술을 사고,
薄籠殘照送人橋 숲 주변에 해가 지면 다리에서 사람을 보내네.
依稀林石泉聲咽 숲과 바위는 어렴풋한데 물소리는 울려 퍼지고,
彷彿楓鴉樹影搖 단풍나무에 까마귀인 듯 나무 그림자 흔들리네.
自有武陵堪避世 무릉도원을 가졌으니 속세를 피하기에 충분한데,
何勞忘路問漁樵 金時習, <梅月堂集> 卷六, 『韓國文集叢刊』第13卷 195쪽,「山市晴嵐」.
무엇하러 길을 잊고 어부와 나무꾼에게 묻는가.

김시습(金時習;1435-1493)의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형상화한 산시청람(山市晴嵐)의 세계는 한마디로 말해서 ‘무릉도원(武陵桃源)’과 같은 공간이다. 그래서 결구에서 시인은 산시청람(山市晴嵐)의 형상을 보면서 하는 말이, “무릉도원을 가졌으니 속세를 피하기에 충분한데, 무엇하러 길을 잊고서 어부와 나무꾼에게 (무릉도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묻는가!”라고 했다.

山城雨初過 산성에 내리는 비가 처음으로 지나가자,
嵐翠散?? 푸른 남기 흩어졌다 이어지며 비스듬하네.
樓臺滅沒間 누대가 그 속으로 사라지려는 순간에도,
草樹空?裏 초목은 부질없이 가랑비 속에 있네.
淸流映麗? 맑은 물결에 우아한 망루가 비추는데,
彷彿桃源水 蘇世讓, <陽谷集> 卷一,『韓國文集叢刊』第23卷 309쪽,「書洪古阜春年畵屛」‘山市晴嵐’.
흡사 무릉도원의 물과 다름이 없네.
소세양(蘇世讓;1486-1562)의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도 역시 산시청람(山市晴嵐)의 형상을 무릉도원(武陵桃源)과 흡사하다고 평가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그런가하면 다음과 같은 작품에서도 산시청람(山市晴嵐)을 무릉도원의 형상으로 인식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空?山氣未全淸 안개 자욱한 산 기운이 온전히 맑지 않고,
翠壁丹崖晦又明 푸른 벽과 붉은 언덕 어두웠다 다시 밝네.
頗似桃都天漸曙 자못 무릉도원 같아 하늘 점점 밝아지더니,
時聞木末遠鷄鳴 朴永元, <梧墅集>, 冊五,『韓國文集叢刊』第302卷 318쪽,「瀟湘八景」‘山市晴嵐’.
이따금 나무 끝 멀리서 닭 울음이 들리네.

박영원(朴永元;1791-1854)의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도 산시청람(山市晴嵐)의 형상은 무릉도원(武陵桃源)의 모습으로 인식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산시청람(山市晴嵐)을 노래한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에 대한 인식은 무릉도원(武陵桃源)과 같은 이상향(理想鄕)인 동시에 모체 내부와 같이 평온하고 안락한 태초의 공간이었다.
이러한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청람(晴嵐)이 감싸고 있는 산시(山市)의 형상과 보이지 않는 산시(山市) 내부에 깃들어 있는 은자(隱者)의 형상은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양수에 가려져 제대로 바라보기 어려운 태아의 모습과 매우 닮아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공간은 성(聖)과 속(俗)이 공존하는 교차점이며 새로운 생명 탄생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공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상팔경(瀟湘八景) 가운데 산시청람(山市晴嵐)에 감추어진 의미(意味)를 모체 내부 혹은 탄생(誕生)이라고 명명(命名)할 수 있었다.

3.2. 연사모종(煙寺暮鐘) : 구도(求道)의 과정과 방향을 제시하는 형상

연사모종(煙寺暮鐘)을 노래한 한시 작품이 51수 그리고 시조(時調) 작품이 4수가 전한다. 연사모종(煙寺暮鐘)은 연사만종(煙寺晩鐘)이라는 제목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말 그대로 해저물녘 연기에 가려진 절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형상화한 문학과 회화를 의미한다. 연사모종(煙寺暮鐘)은 내(煙) 끼인 사찰에서 저녁 무렵 울리는 종소리를 형상화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연기에 덮여 있는 산사(山寺)와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종소리를 형용해야 했기 때문에 문인(文人), 화가(畵家)들이 적지 않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흔히 문인(文人)들끼리 시재(詩才)를 겨룰 때 즐겨 사용했던 시제(詩題) 가운데 하나가 바로 소상팔경(瀟湘八景)이었다.
그림에서 종소리를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가? 아울러 연기에 덮여 있는 산사(山寺)는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화가들에게 큰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청각적 이미지를 시각적 이미지로 변환하여 표출하기란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직접적 형용이 어려웠기에 다른 간접적 방식을 통해 종소리를 형용할 수밖에 없었던 관습이 마련되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시(詩) 작품에서는 대개의 경우 산사(山寺)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종소리를 통해서 확인되고 있다. 산사(山寺)는 연기에 가려 어딘지 확인할 수 없고 다만 종소리를 통해서 산속 어딘가에는 분명 사찰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린다. 회화(繪畵) 작품에서는 저녁에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서둘러 돌아오는 스님을 등장시킴으로써 연기에 덮여있는 산중 어딘가에는 산사(山寺)가 자리 잡고 있으며 종소리를 방향 삼아 돌아오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암시한다. 말하자면 직접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으면서도 본의(本意)를 충분하게 전달하고 있는 셈이다.
연사모종(煙寺暮鐘)은 제목 자체가 눈에 보이지 않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대상물이다. 연사(煙寺)가 그렇고, 모종(暮鐘)역시 그렇다. 따라서 이와 같은 시제(詩題)나 화제(畵題)에서는 구체적으로 드러내거나 제시하지 않고 드러내거나 제시하는 방식이 사용 될 수밖에 없다. 정지된 영상이라는 그림 어디에도 사찰(寺刹)을 그려서는 안 된다. 만일 구체적인 사찰(寺刹)의 형상을 그려 넣은 그림이라면 그만큼 화제(畵題)가 요구했던 의취(意趣)를 효과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연사모종-1>
千回石徑白雲封 천 구비 돌길마다 흰 구름이 덮여 있고,
巖樹蒼蒼晩色濃 바위 숲은 새파랗게 어스름만 짙어졌네.
知有蓮坊藏翠壁 사찰이 푸른 절벽에 숨었음을 아는 것은,
好風吹落一聲鍾 李仁老,『三韓詩龜鑑』卷之中, ‘煙寺晩鐘’.『東文選』卷二十,「宋迪八景圖」‘煙寺晩鐘’.
때마침 바람 불어 종소리가 떨어지네.

이인로(李仁老;1152-1220)의 작품이다. 천 구비 돌길마다 흰 구름에 덮여 있는 곳에 사찰이 자리 잡고 있다. 숲과 바위 주변으로는 새파랗게 어스름이 짙어 있다. 푸른 절벽 사이에 사찰이 감춰진 것을 아는 이유는 때마침 부는 바람에 사찰의 종소리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연사모종-2>
天陰天霽與炎寒 날씨가 흐리거나 개거나 덥든지 춥든지,
一樣聲來暮樹間 저녁 수풀 사이로 한결같은 소리가 오네.
不有孤煙常作候 항상 외딴 연기만 두지 않는 날씨인지라,
也應人與此鍾閑 李奎報, <東國李相國集> 後集卷六,『韓國文集叢刊』第2卷 198쪽,「次韻李相國復和虔州八景詩贈」‘煙寺暮鍾’.
응당 사람이 이 종과 더불어 한가하겠네.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작품이다. 날씨와 상관없이 종소리는 한결같이 들려온다. 사찰이 연기에 덮여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날이면 종소리는 더욱 분주해진다. 그러니 맑은 날씨에 연기도 한 점 없는 날이어야 사람도 종소리도 한가로운 여유를 즐길 수 있으리라고 말했다. 이 작품에서 종소리는 일종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사람들이 나아갈 바를 일러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연사모종-3>
煙昏萬木栖昏鴉 저물녘 온 숲에 연기와 까마귀가 찾아들고,
遙岑不見金蓮花 먼 봉우리로는 둥근 달을 볼 수가 없네.
數聲晩鍾知有寺 자주 울리는 저녁 종소리에 절 있는 줄 알겠고,
??樓臺隔暮霞 어슴푸레한 누대(樓臺)는 저녁놀에 가려있네.
淸音??江村外 맑은 소리 간드러지게 강촌 너머로 울리는데,
水靜霜寒來更? 물 맑고 서리 찬데 들리는 종소리 더욱 길다.
行人一聽一回首 지나는 사람이 한 번 듣고 고개 한 번 돌리니,
杳靄??片月斜 陳?,『梅湖遺稿』卷四, 『韓國文集叢刊』第2卷 283쪽,「宋迪八景圖」‘煙寺暮鍾’. 마지막 행의 첫 한자(漢字) ‘杳’가『梅湖遺稿』에는 ‘香’으로 기록되어 있고,『匪懈堂瀟湘八景詩帖』에는 ‘杳’로 되어 있다. 문맥상 ‘杳’가 옳은 것으로 판단된다.
멀리로 아지랑이 자욱한데 조각달만 비꼈네.

진 화(陳?;1180-1215, 추정)의 작품이다. 산 속에 해가 지니 숲 속에는 연기가 자욱하고 까마귀가 찾아든다. 멀리 봉우리 위로는 달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때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 비로소 산중 어딘가에 사찰이 있음을 안다. 희미하게 보이는 누대는 저녁놀에 반쯤 가려 있고, 맑은 종소리는 흐늘흐늘 강마을 너머로까지 울린다. 지나가던 행인이 종소리에 고개 돌려 바라보니, 멀리로 아지랑이 자욱하고 조각달만 비껴있다. 시각적 심상과 청각적 심상이 어우러진 작품으로 대단히 감각적인 이미지를 획득한 동시에 회화적 성격이 짙다.

<연사모종-4>
一幅丹靑展不封 한 폭의 그림을 펼치고서 봉하지 않으니,
數行水墨淡還濃 두어 줄의 수묵(水墨)이 담박하다 다시 짙네.
不應畵筆眞能爾 응당 그림붓으로도 진정 그릴 수 없는 형상은,
南寺鍾殘北寺鍾 李齊賢, <益齋亂藁> 卷三,『韓國文集叢刊』第2卷 526쪽,「和朴石齋·尹樗軒用銀臺集瀟湘八景韻(石齋名孝修, 樗軒名奕)」‘煙寺暮鍾’.
남사의 종소리 사라진 뒤 북사의 종소리라네.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작품이다. 연사모종(煙寺暮鐘)이라는 시제(詩題)나 화제(畵題)가 갖는 의미에 대한 본질적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다. 종소리를 시적 언어나 색채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이는 소리를 색채로 드러내는 것인 만큼 어려움이 따른다. 언어로 드러내는 것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그래서 흔히 사대부 문인들이 서로 시적 재능을 겨루고자 할 때면 으레 이와 같은 시제(詩題)를 즐겨 사용하곤 했다. 그림을 그리는 붓으로도 그리기 어려운 형상 가운데 하나가 바로 남쪽에 있는 절과 북쪽에 자리 잡은 사찰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울리는 종소리임을 밝히고 있다.

<연사모종-5>
淡煙橫絶壁 엷은 연기 절벽을 가로질렀고,
斜日照空庭 비낀 해는 빈 뜨락을 비추네.
鐘響出林表 종소리 숲에서 솟아 퍼지면,
?梨應念經 卍雨(1357- 未詳), <匪懈堂瀟湘八景詩帖>,「煙寺暮鍾」.
큰스님 응당 경전 읊조리겠네.

승(僧) 천봉(卍雨千峯;1357- 未詳)의 작품이다. 눈에 보이는 세상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담박한 연기가 절벽을 비껴 있고, 지는 해는 텅 빈 뜰을 비추고 있다. 종소리가 숲에서 울려 퍼질 즈음이면 큰스님께서는 응당 염불을 외우고 계시거나 경전을 읽고 계실 것이라고 상상한다. 눈에 보이는 세상은 연기에 가려진 절벽과 석양이 잠시 머물고 있는 텅 빈 정원뿐이다. 하지만 시인(詩人)은 연기(煙氣)에 가려 있는 절간의 풍경을 시적(詩的) 상상력을 통해 재구성 하고 있는 작품이다.

<연사모종-6>
遠樹煙橫碧 먼 숲은 연기 푸르게 비껴 있고,
連山日下? 연이은 산 아래로 해가 지네.
鍾鳴何處寺 종소리가 어느 절에서 울리는지,
雲外落從容 成三問, <成謹甫集> 卷一,『韓國文集叢刊』第10卷 184쪽,「瀟湘八景」, ‘煙寺暮鍾’.
구름 너머로 조용히 떨어지네.

성삼문(成三問;1418-1456)의 작품이다. 멀리 보이는 숲에 연기가 푸른빛을 띠며 비껴있다. 연이은 산 아래로 해가 지고 있다. 어느 절에서 울리는 종소리인지 구름 너머로 조용히 떨어지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눈에 보이는 형상과 그 이면에 펼쳐지는 세상사를 언급하고 있다.


<연사모종-7>
野水村林帶落暉 들판 물과 마을 숲은 석양빛을 띠었고,
山光凝紫淡烟? 산 빛은 자줏빛 엷은 안개 보슬비에 엉겼네.
風傳雲外鍾聲遠 바람이 구름 밖 종소리를 멀리서 전하니,
知有招提在翠微 李承召, <三灘集> 卷九,『韓國文集叢刊』第11卷 461쪽,「題畵屛」‘煙寺暮鍾’.
비취빛 희미함 속에 절(寺) 있음을 알겠네.

이승소(李承召;1422-1484)의 작품이다. 들판의 물과 마을 숲은 석양빛을 띠고 있다. 산의 빛깔은 자줏빛 엷은 안개와 보슬비가 엉겨 있다. 구름 너머로부터 들려오는 종소리를 바람이 멀리서 전하여 비취빛 희미한 속에 비로소 절(寺)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작품은 시각적으로 인식할 수 없는 대상을 청각적 심상을 통해 인식하고 있다. 인간의 감각이란 것도 실상은 이처럼 부질없이 한 순간에 무너지기도 한다. 사찰이 연기에 감춰져 있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절을 포착하여 그릴 수는 없다. 따라서 종소리를 통해 그림 속 어딘가에 절이 감춰져 있음을 드러내는 기법을 마련한 것이다.

<연사모종-8>
落日獨尋僧 해 저물어 홀로 스님을 찾는데,
林深崖谷邃 숲은 깊고 벼랑 골짝 깊숙하네.
雲外忽聞鍾 구름 너머 홀연 종소리 들리니,
雲間遙認寺 구름 속 멀리에 절 있음을 알겠네.
草露濕芒鞋 풀잎에 맺힌 이슬 짚신을 적시는데,
踏入前山翠 蘇世讓, <陽谷集> 卷一,『韓國文集叢刊』第23卷 309쪽,「書洪古阜春年畵屛」‘煙寺暮鍾’.
밟아 들어가니 푸른 산 앞에 있네.

소세양(蘇世讓;1486-1562)의 작품이다. 해가 저물어 스님을 찾았으나 숲이 깊고 벼랑 골짜기가 깊숙하다. 구름 너머에서 갑자기 종소리가 들려오니 구름 속 어딘가에 분명 절이 있음을 알겠다. 풀잎에 맺힌 이슬이 짚신을 적시는데 계속해서 밟고 들어가니 푸른 산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 작품에서도 화자는 구름 속 어딘가에 있을 절을 찾아간다. 찾아가는 길을 안내해 주는 것은 오로지 종소리 하나뿐이다. 종소리는 역시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요소이자 길을 안내해 주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절을 찾아가는 것이 목표이다. 그들이 깊은 산중에 감춰진 절을 찾아가는 행위는 하나의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절을 찾는 행위는 도(道)를 구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이런 형상을 두고 구도자(求道者)의 형상을 떠올리는 것이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연사모종-9>
一抹靑烟作暝陰 약간의 푸른 연기 어두운 그늘을 만들고,
?蘿深處客來尋 깊은 곳 은자에게 나그네가 찾아오네.
老僧出定無餘事 노승은 참선한 후 여남은 일이 없으니,
却放鐘聲度遠岑 趙昱, <龍門集> 卷三,『韓國文集叢刊』第28卷 199쪽,「溢之求八景之作率爾錄呈」‘煙寺暮鍾’.
도리어 종소리 먼 봉우리 건너게 하네.

조 욱(趙昱;1498-1557)의 작품이다. 약간의 푸른 연기가 어두운 그늘을 만들었다. 깊은 산속에 은거하는 은자(隱者)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늙은 스님께서는 참선을 마치신 후에 남은 일이 없으셨던지 종을 쳐서는 종소리로 하여금 먼 봉우리를 건너게 하는 형상을 담고 있다. ‘출정(出定)’은 스님이 속정을 끊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삼매경에 이르는 일을 마치고 나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연사모종-10>
亂峀高還下 어지러운 산봉우리 높다 다시 낮아지고,
靑烟淡又濃 푸른 연기는 담박하다 다시금 짙어지네.
幽林絶壑擁千重 그윽한 숲과 험한 계곡 천 겹으로 안겼는데,
誰報夕陽鐘 누군가 석양의 종소리를 알리는가?
雷動驚殘夢 천둥처럼 격동하니 남은 꿈 놀라고,
風傳度遠峯 바람이 전하니 먼 봉우리를 건너네.
尋聲祇社擬投? 소리 나는 절을 찾아 삼가며 걸으니,
雲逕杳難從 黃俊良, <錦溪集> 外集 卷二, 『韓國文集叢刊』第37卷 78쪽,「煙寺晩鐘」.
구름 덮인 길 아득해 따르기 어렵네.

황준량(黃俊良;1517-1563)의 작품이다. 어지럽게 솟아있는 산봉우리가 높다가 다시 낮아지고, 푸른 연기 담박하다가 다시금 짙어진다. 그윽한 숲과 험한 계곡이 겹겹이 둘러쌌는데 누군가가 석양 기운이 감도는 저녁에 종을 울려서 종소리로 알리고 있다. 종소리가 천둥처럼 격동하니 남은 꿈이 놀라고 바람이 전하는 종소리가 먼 봉우리를 건너간다. 종소리가 울리는 방향으로 절을 찾아 살피고 삼가면서 걸어가는데 구름에 덮인 길이 너무나 아득해서 종소리 나는 곳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의투종(擬投?)’은 ‘의족투적(擬足投跡)’에서 나온 말로 두려워하여 삼가며 걷는다는 뜻이다. 본래는 발 디딜 곳을 살피면서 걷는다는 말이다. 이 작품에서 종소리는 해질녘 숲 속에서 길을 잃고 방향을 잃은 사람에게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말하자면 종소리를 통해 구도(求道)의 과정과 방향을 제시하는 형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작품 속에서 종소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인물이 구도자(求道者)라면 그에게서 종소리는 하나의 방향성이자 구원의 메시지인 셈이다. 종소리를 따라 살피고 삼가며 한발 한발 나아가는 도중에 구름 덮인 길을 만남은 구도 과정의 험난함과 장애에 봉착했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연사모종-11>
翠微僧獨去 산등성이엔 스님 홀로 길을 가는데,
烟逕細難分 안개 낀 길 희미해 분간하기 어렵네.
認取招提近 절이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鐘聲出暮雲 李?光, <芝峰集> 卷一, 『韓國文集叢刊』第66卷 16쪽,「煙寺晩鐘」.
저녁 구름에서 나오는 종소리 때문이네.

이수광(李?光;1563-1628)의 작품이다. 산등성이를 스님 홀로 가고 있다. 연기 자욱한 길이 희미하여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렵다. 이는 마치 인간의 삶 속에서 이따금씩 당면하게 되는 절망적인 상황을 비유하듯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하지만 절이 근처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저녁 구름 사이로 흘러나오는 종소리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도 종소리는 구도자(求道者)인 스님에게는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유도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앞에서 살펴본 작품들에서도 공통으로 일치하고 있는 형상들이다.
<연사모종-12>
一峯香刹肅秋煙 한 봉우리 고운 사찰 가을 연기 엄숙하고,
彼岸昏鍾到水邊 저편 언덕 저녁 종소리 물가에 이르네.
祗樹雨?聲欲重 마침 나무들 비에 젖어 소리도 무거워지는 듯,
?梨飯輟響隨傳 스님 식사 멈추고 종소리 따라 전하네.
心消長樂初聞句 처음 들은 글귀에 마음의 오랜 쾌락 사라지고,
愁起楓橋夜泊船 수심 이는 풍교에 밤 되자 배가 정박 하네 楓橋夜泊(풍교야박)은 당나라 시인 장계(張繼)의 유명한 시제(詩題)이다. 작품 전문(全文)은 “月落烏啼霜滿天/江楓漁火對愁眠/姑蘇城外寒山寺/夜半鐘聲到客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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煩惱衆生無印可 번뇌 많은 중생에게는 허락됨이 없었기에,
欲尋雲衲學安禪 尹順之, <?溟齋詩集>, 卷一,『韓國文集叢刊』第94卷, 539쪽,「瀟湘八景復選四首月課」.
어디서 참선을 배우려고 숨은 고승 찾고자.

윤순지(尹順之;1591-1666)의 작품이다. 한 봉우리에 고운 사찰이 가을 연기에 싸여 엄숙하다. 저편 언덕에서 울리는 저녁 종소리가 물가에 이른다. 마침 나무들도 비에 젖어 빗방울 소리도 무거워지려고 한다. 스님은 식사를 마치고 종소리를 전한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오랜 쾌락이 사라지고, 근심이 일어나는 풍교에서는 밤이 되자 배가 정박을 한다. 그러나 번뇌 많은 중생에게는 허락됨이 없으니 어디에서든지 참선(參禪)을 배우기 위해 깊은 산 속에 숨어사는 고승(高僧)을 찾고 싶은 화자의 심리가 잘 드러나 있다. 번뇌가 많은 중생들에게는 구도(求道)의 길이 그리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그래서 참선을 통해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고승(高僧)을 찾게 되는 것이다.

<연사모종-13>
紫翠巖巒雲錦展 울긋불긋 가파른 산엔 구름 비단 펼쳐있고,
溪橋日落無人見 시냇가 다리에는 해 지니 사람 보이지 않네.
何處有寺鍾聲來 어느 곳에 절이 있기에 종소리 들려오는가,
烟樹依微鬱?? 내 끼인 나무 희미하고 푸른 덤불 울창하네.
令人深省塵想空 사람들에게 속세 생각 헛됨 깊이 성찰케 하니,
始覺莊生夢中夢 장주가 꿈속에서 꿈꾸었음을 비로소 깨닫겠네.
老僧忙歸石路險 늙은 중은 험한 돌길을 조급하게 돌아가는데,
山月林風爲相送 金弘郁, <鶴洲全集> 卷四, 『韓國文集叢刊』第102卷 37쪽,「次權進士昱瀟湘八景八首」‘煙寺晩鐘’.
산속 달과 숲 속 바람이 서로 전송하게 하네.

김홍욱(金弘郁;1602-1654)의 작품이다. 울긋불긋한 기운이 가파른 산에는 비단 구름이 펼쳐져 있고, 시냇가 다리로는 해가 지자 사람도 보이질 않는다. 어디에 절이 있는지 종소리가 들려온다. 내 끼인 수풀이 흐릿하고 푸른 덤불이 울창하다. 사람들로 하여금 속세에 대한 상념이 부질없음을 깊이 성찰하도록 하니, 장주가 꿈속에서 꿈을 꾸고 있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는다. 장생(莊生)은 장자를 일컫는다. ‘주(周)’는 장자의 본명이다. 몽중몽(夢中夢)이란 호접지몽(胡蝶之夢)을 가리키는 말이다. 물아(物我)의 구별을 잊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로 장자(莊子)가 꿈에 나비가 되어 즐기는데 나비가 장자인지 장자가 나비인지 분간하지 못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호접몽(胡蝶夢)'이라고도 한다.
노스님께서 험한 돌길을 황급하게 돌아갈 때, 산속에 떠 있던 달과 숲 속 바람이 서로 전송하고 있다.

<연사모종-14>
行行石逕日西? 가도 가도 돌길인데 해는 서쪽으로 넘어가고,
度密穿靑杳幾重 빽빽함 건너 푸름 뚫어도 어둠이 몇 겹인가.
剩看晩烟藏勝界 바라보니 저녁연기가 빼어난 경치 감췄기에,
遙尋蕭寺賴疎鐘 멀리 성긴 종소리에 의지해 소사(蕭寺)를 찾네.
時聞絶壑流淸響 끊긴 골짜기로 흐르는 맑은 소리 이따금 들리니,
應爲遊人引短? 마땅히 나그네가 되어서는 짧은 지팡이를 당기네.
却似桃花浮水出 그런데 복사꽃이 물 위로 둥둥 떠다니는 듯하니,
武陵寧得秘仙? 金萬基, <瑞石集> 卷一, 『韓國文集叢刊』第144卷 370쪽,「瀟湘八景」‘煙寺晩鐘’.
무릉이 어찌 신선의 자취를 숨길 수 있겠는가.

김만기(金萬基;1633-1687)의 작품이다. 가도 가도 돌길인데 해는 이미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다. 빽빽한 숲을 건너 푸름을 뚫어도 어둠이 몇 겹이나 되는가? 또 바라보니 저물녘 연기가 빼어난 경치를 감추고 있기에 멀리서 성긴 종소리에 의지하여 맑은 절을 찾는다. 끊긴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맑은 종소리가 때마침 들리니 마땅히 나그네가 되어서는 짧은 지팡이를 잡고서 길을 찾아 나선다. 마치 복사꽃이 물 위로 둥실둥실 떠다니는 듯하니, 숨어사는 신선의 종적을 어찌 무릉도원에서만 얻으려고 하는가! 하며 경관의 아름다움을 형용하고 있다. 소사(蕭寺)는 양(梁)나라의 무제(武帝)가 사원(寺院)을 짓고 자기 성(性)을 따 소사(蕭寺)라고 부른 고사에 기원하는 말로 그 후로 사원(寺院)의 범칭으로 쓰인 시어(詩語)로 이해할 수 있다.

<연사모종-15>
蒼蒼暮江壁 강가 절벽은 저물어 짙푸르고,
隱隱聞?鍾 성긴 종소리 은은하게 들리네.
借問過橋者 다리를 지나가는 이에게 묻노니,
禪家深幾重 李光庭, <訥隱集> 卷三, 『韓國文集叢刊』第187卷 185쪽,「瀟湘八景題雙碧堂小屛」‘煙寺暮鍾’.
선가는 얼마나 깊은 곳에 있는가.

이광정(李光庭;1674-1756)의 작품이다. 강변에 자리 잡은 절벽도 해가 저무니 짙푸르고, 성긴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린다. 다리를 지나가는 사람에게 잠시 물었더니 선가(禪家)는 몇 겹이나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고 알려준다. 이 작품에서도 역시 작중 인물은 오로지 종소리에만 의지한 채 목적지인 사원으로 찾아갈 뿐이다. 방향감각도 상실했고, 거리감조차 없다. 그런데 우연히 다리에서 사람을 만났다. 산속 깊은 곳에서 사람을 만났으니 반갑기만 하다. 그러나 다급한 마음에 화자가 묻는 것은 도대체 사원까지는 얼마나 더 가야합니까? 얼마나 깊은 곳에 절이 있습니까? 하는 말이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연사모종(煙寺暮鐘) 작품들을 대상으로 종합적으로 정리를 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연사모종(煙寺暮鐘)이라는 제목은 그 자체에서 드러나듯 구체적 모습으로 제시하기 어려운 형상이다. 작품마다 약간씩 편차가 존재하지만 거시적 관점에서 작품을 조망하면 크게 세 가지 특징적인 형상을 지적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연사(煙寺)의 형상이다. 연기에 감춰진 사찰의 형상으로 대부분의 작품에서 연기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 형상으로 처리했다. 두 번째는 모종(暮鐘)의 형상이다. 저녁에 울리는 종소리는 대부분 직접 형용할 수 없는 대상이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었다. 다만 공통적인 의미를 추출해 본다면 종소리는 대개의 경우 일정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작품 속에 형상화된 인물들의 태도이다. 거의 모든 작품에서 작중 화자나 작품 속 인물이 사찰을 향해 가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그런데 화자나 작품 속 인물은 어두운 저녁 상황이거나 연기에 둘러싸인 상황이기에 오로지 종소리의 유도에 따라 험한 과정을 극복해 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물은 주로 스님이거나 화자와 같은 인물이 설정되었지만 이들을 한마디로 말하면 ‘구도자(求道者)’라고 할만한 사람들이다. 구도자에게 구도의 과정과 방향성을 제시하는 형상이 바로 연사모종(煙寺暮鐘)의 형상이자 함의(含意)라고 할 수 있다.
<그림 > 연사모종
연사모종(煙寺暮鐘)은 연기가 자욱한 산속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는 사찰(寺刹)을 저물녘 종소리에 의지해 찾아가는 인물의 형상을 다루고 있었다. 그 인물은 스님(僧)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스님 외에도 다양한 인물 형상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아울러 연사모종(煙寺暮鐘)의 함의는 구도(求道)의 과정과 방향을 제시하는 것임을 밝힌 바 있다.
이번에는 연사모종(煙寺暮鐘)이라는 시제(詩題)로 창작된 작품들에 감춰져 있는 의미 맥락을 밝히고자 한다.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감춰진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인물의 형상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작품 속에서 인물이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 정리될 때 서사적 맥락이 확인될 수 있다.
연사모종(煙寺暮鐘)에 등장하는 인물 유형을 검토해 보면, 우선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 스님(僧)이다. 이러한 점은 시제(詩題)나 화제(話題) 자체가 산사(山寺)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필연적인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밖에도 시적 화자가 오(吾)나 아(我) 등으로 등장하고 있다. 또 제3의 관찰자에 해당하는 사람(人)이 등장하기도 하고, 행인(行人), 객(客), 오왕(吳王), 처음으로 종(鐘)을 만들었다고 하는 부씨(鳧氏), 시인(詩人), 신령스러운 은자(隱者), 불특정한 어떤 이(何人), 두보(杜甫), 번뇌중생(煩惱衆生), 장자(莊子), 나그네(遊人), 신선(仙), 다리를 건너는 사람(過橋者) 등이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연사모종(煙寺暮鐘)이라는 제목으로 창작된 작품에서는 16가지의 인물 형상들이 작품에 형상화되고 있었다. 이들이 작품 속에서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으며, 그러한 형상은 어떠한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는 점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서사적 맥락을 찾도록 한다.

<연사모종(煙寺暮鐘)>에 등장하는 인물의 형상
차례
등장인물
인물형상
논문부록
한시작품 번호
1
스님(僧)
연기 낀 저녁 산사(山寺)에서 종을 울리는 형상이거나 어스름이 깔린 저녁에 종소리를 따라 돌아가는 형상
2,6,7,11,21,22,23,25,26,29,
31,35,37,42,43,45,48,49,51
2
나(我, 吾)
종을 치는 스님을 관찰하거나 인간의 유한성과 인식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는 화자의 형상
2, 7, 23, 24
3
사람(人)
일반적 인식을 지니고 있는 보통 사람들이거나 헛된 생각을 지닌 세상 사람들을 성찰하도록 하는 형상
4,24,25,37
4
행인(行人)
어두운 저녁에 달빛도 없는 어둠 속에서 오직 종소리에 의지한 채, 산사(山寺)를 찾아가는 형상
8
5
객(客)
깊은 산중에 산사(山寺)를 찾아가는 나그네의 형상
10,25,29,51
6
오왕(吳王)
연사모종(煙寺暮鐘)의 승경에 도취된 인물의 형상
13
7
부씨(鳧氏)
종소리가 울리는 것을 처음 종을 만든 인물로 형상
21
8
시인(詩人, 騷人)
경물(景物)에 의해 감발된 시흥(詩興)을 형상화했음
22,33,39
9
신령한 은자(靈隱)
허유(許由)와 갈홍(葛洪) 등이 은거한 곳의 형상
25
10
어떤 사람(何人)
그림 속에서 종을 울리거나 주막을 향하는 사람
28,30
11
번뇌중생(煩惱衆生)
수양과 구도의 과정에서 숨은 고승을 찾는 형상
35
12
장자(莊子)
호접지몽의 고사처럼 헛된 생각을 성찰케 하는 형상
37
13
나그네(遊人)
경물(景物)에 심취하여 승경(勝景)을 찾아다니는 형상
39,52
14
신선(神仙)
무릉도원에 사는 비밀스런 신선의 형상
40
15
다리를 건너는 사람(過橋者)
산사(山寺)를 잘 알고 있고 다리를 건너고 있는 형상
44

연사모종(煙寺暮鐘)에 등장하는 인물의 모습은 15가지로 형상화되었다. 열다섯 가지의 형상으로 창조되고 있으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크게 몇 가지로 정리가 된다. 우선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스님의 형상을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어스름이 짙어지는 저녁이 되면 안개와 구름에 덮인 채 눈에 보이지 않는 산사(山寺)에서 스님이 종을 울린다. 종소리는 구름과 연기를 뚫고서 인근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나그네나 산사로 돌아오는 스님에게 종소리를 통해 길을 안내한다. <그림 > 연사모종 中 종소리가 울리는 곳을 바라보는 아낙네와 집을 지키는 강아지

이러한 형상은 고도의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연기나 구름, 안개 등에 감춰진 산사(山寺)는 산속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래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산사(山寺)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산사의 존재 여부는 종소리를 통해 입증된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 인간의 감각과 인식이란 것이 얼마나 편협하고 위험한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림 > 연사모종 中 작은 배에서 고기를 잡기 위해 낚시를 하는 두 인물
시적 화자가 ‘아(我)’나 ‘오(吾)’라는 표현을 통해 등장하는 경우가 네 작품에서 있었다. 이 논문 뒷부분에 첨부한 한시 작품 자료 가운데 연사모종(煙寺暮鐘)의 2번, 7번, 23번, 24번 작품에 각각 등장한다. 이 가운데 2번과 7번은 산사(山寺)에서 종을 울리느라 분주한 스님의 형상을 바라보거나 상상하는 화자의 모습이고, 23번과 24번 작품에서는 시적 화자 스스로가 인간의 유한성을 인식하기도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형상도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는 화자의 언급이 형상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인(騷人)’이나 ‘행인(行人)’ 등과 같은 시어(詩語) 외에 말 그대로 ‘사람(人)’이라는 시어(詩語)로만 사용된 경우는 4번, 24번, 25번, 37번 작품에서였다. 이 경우는 각각 그림 속에 존재하는 인물로 산사를 찾아가고 있는 제3의 인물, 그림 밖에 존재하는 인물로 감상자를 포함한 보통 사람으로 일반적 인식을 지닌 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그림 속에 존재하는 사람으로 연사모종(煙寺暮鐘)의 형상에 심취한 인물, 세상 사람들의 헛된 생각을 성찰하게끔 만드는 형상으로 속인(俗人)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모습으로 형상화되고 있었다. 또 객(客)이라는 시어(詩語)가 사용된 것은 총 4회에 걸쳐 등장한다. 10번 작품에서는 그림 속에 존재하는 인물로 다리를 건너고 있는 모습을 다루었다. 25번 작품에서는 돌아가는 길을 묻기 위해 스님을 기다리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29번 작품에서는 나그네가 깊은 산중에 은거해 사는 은자(隱者)를 찾아온 형상을 다루고 있다. 51번 작품은 석양 속에서 사찰(寺刹)을 찾고 있는 나그네의 형상을 다루었다.
시인(詩人)이나 소인(騷人)이라는 시어(詩語)가 연사모종(煙寺暮鐘)에서만 3회에 걸쳐 사용되었다. 22번, 23번 작품에서는 시인(詩人)이라는 시어가 사용되었고, 39번 작품에서는 소인(騷人)이라는 시어를 사용했다. 이 세 작품에 형상화된 시인의 모습은 맑은 흥취(興趣)와 시흥(詩興)에 젖어 있는 모습으로 다루어지고 있었다.
이 외에도 산발적으로 몇 가지 인물 형상이 등장하고 있으나 앞서 언급한 범주 내에서 설명이 가능한 정도로 형상화되고 있기에 크게 변별되는 인물의 형상은 아니다.
연사모종(煙寺暮鐘)이라는 시제(詩題) 혹은 화제(畵題)를 통해서는 산사(山寺)라는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공간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곳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연기(煙)나 구름(雲) 혹은 깊은 골짝에 위치하고 있기에 산등성이에 가려 있기도 하다. 어쨌거나 그곳은 도(道)가 존재하는 공간이고, 그곳을 향해 걸어가는 스님(僧), 나그네(遊人), 객(客), 행인(行人), 시인(詩人), 소인(騷人) 등은 오직 저물녘 종소리(暮鐘)에 의지하여 도(道)가 있는 곳으로 나아간다.
때문에 연사모종(煙寺暮鐘)의 서사적 맥락에는 구도(求道)와 수학(修學)의 서사적 단계가 감추어져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찰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통해 구도와 수학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인물은 깊은 산중을 지키는 사찰(寺刹)의 스님(僧)이거나 암자(庵子)의 은자(隱者)로 형상화되고 있었다. 도(道)가 있는 곳에 나아가 자기 자신을 바로잡는다는 의미(就有道而正焉)가 연사모종(煙寺暮鐘)에 담겨 있는 서사적 맥락이었다. 이러한 형상을 지니고 있는 연사모종(煙寺暮鐘) 작품을 살펴본다.


但認寺爲鍾 절에서 종을 치는 것은 알겠는데,
誰指烟是寺 누가 안개 낀 이 절을 알려주려나.
人言聲本寂 소리가 본래 적막하다고들 말하나,
我悟形無視 형상도 볼 수 없음을 나는 깨닫네.
聲自空中生 소리 절로 허공 속에서 생겨나지만,
形非眞實地 형상은 참으로 실재하는 땅이 아니네.
形聲了未分 형상과 소리 명료하게 나눌 수 없는데,
暮色蒼然至 李荇, <容齋集> 卷三, 『韓國文集叢刊』第20卷 395쪽,「瀟湘八景」‘煙寺暮鍾’.
해질녘 어두컴컴한 저녁 빛이 이르네.

이 행(李荇;1478-1534)의 작품이다. 연사모종(煙寺暮鐘)이 지니고 있는 서사적 맥락을 보여주고 있다. 화자의 시선은 연기(煙)에 의해 가로막혀 있다. 그림 속 어디를 봐도 사찰(寺刹)은 존재하지 않는다. 온통 자욱한 연기뿐이다. 순간 허공에서 종소리가 들려온다. 비로소 산속 어딘가에 절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소리는 잠시만 들릴 뿐 본디 적막한 것이 소리의 속성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형상은 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연사모종(煙寺暮鐘)을 접하고 있는 시인(詩人)은 새로운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형상이라는 것도 실상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아울러 눈에 보이지 않고,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없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님을 인식하기에 이른다. 더 나아가 형상과 소리를 명료하게 구분할 수 없는데 저물녘 어두컴컴한 하늘에 저녁 빛이 이르고 있음을 형상화하였다.
연기에 덮여 있는 사찰(寺刹)이 진리(眞理)와 정도(正道) 그리고 구도(求道)의 공간이라면 그 사찰을 가리고 있는 연기(煙)는 진리와 정도 그리고 구도와 수행에 이르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 내지 현실적 한계 상황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 장애물과 난관을 극복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사찰에 도달할 수 있도록 종(鐘)을 치는 인물이 바로 스님 내지는 은자로 형상화되고 있다. 그러니 작품 속에서 오로지 종소리에 의지해 산사(山寺)를 향해 걸음을 재촉하는 인물 형상은 구도(求道)와 수학(修學)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세속적 인물 형상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行行石逕日西? 가도 가도 돌길인데 해는 서쪽으로 기울어가고,
度密穿靑杳幾重 빽빽한 숲 건너 푸름 뚫어도 어둠이 몇 겹인가.
剩看晩烟藏勝界 다시 바라보니 저녁연기가 빼어난 경치 감추고,
遙尋蕭寺賴疎鐘 멀리 성긴 종소리에 의지해 소사(蕭寺)를 찾네.
時聞絶壑流淸響 끊긴 골짜기로 흐르는 맑은 울림 때마침 들리니,
應爲遊人引短? 응당 나그네가 되어 짧은 지팡이를 끌어당기네.
却似桃花浮水出 도리어 복사꽃이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듯하니,
武陵寧得秘仙? 金萬基, <瑞石集> 卷一, 『韓國文集叢刊』第144卷 370쪽,「瀟湘八景」‘煙寺晩鐘’.
무릉이 어찌 신선의 자취를 숨길 수 있겠는가.

김만기(金萬基;1633-1687)의 작품이다. 구도(求道)와 수학(修學)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행의 고통을 언급하고 있는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가도 가도 돌길이라는 상황설정은 그만큼 수행의 과정이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서용(西?)’이란 해가 서쪽으로 절구질을 한다는 말로 해가 지는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진 돌길을 걷느라고 수행자의 몸은 고되기만 하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해마저 기울어 어둠이 밀려온다. 빽빽한 삼림(森林)을 헤치고 지나 푸른 숲을 뚫어도 내려앉은 어둠이 몇 겹인지 알 수 없다. 그림 속을 바라보니 저물녘 연기가 빼어난 경관을 감추고 있다. 멀리서나마 종소리에 의지해 사찰을 찾고 있는 인물 형상이 등장한다. 종소리는 계곡을 따라 이따금씩 맑은 소리로 은은하게 울린다. 나그네(遊人)는 그 종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걸음을 재촉할 따름이다. 종소리를 따라 걸음을 재촉하며 주변 풍경을 돌아보니 복사꽃이 물을 따라 둥둥 떠내려 오고 있다. 이 모습이 흡사 무릉도원(武陵桃源)의 형상과 진배없는데 숨은 신선의 자취를 무릉도원에서 애써 찾을 필요가 있겠는가? 그림 속 연사모종(煙寺暮鐘)의 형상이 바로 무릉도원(武陵桃源)의 경지가 아니겠는가! 하고 반문하고 있다. 도(道)를 찾아가는 구도(求道)의 과정, 수학(修學)의 과정 그 자체가 바로 무릉도원(武陵桃源)의 형상이자 연사모종(煙寺暮鐘)에 감춰진 서사적 맥락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소상팔경(瀟湘八景) 가운데 연사모종(煙寺暮鐘)의 형상을 대상으로 그 이면에 감추어진 의미 맥락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연사모종(煙寺暮鐘)에서는 연기(煙氣)에 싸여있는 산속 깊은 곳의 사찰(寺刹)을 찾아가는 인물 형상이 등장한다. 이때 인물의 형상은 스님, 나그네, 은자, 다리를 건너가는 사람, 행인, 객(客) 등등 다양한 인물 형상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연기에 싸여있는,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절을 찾아가고 있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오로지 종소리의 울림에 의지하여 절을 찾아갈 뿐이다. 이 인물들은 다양한 형상으로 창조되고 있으나 이들의 형상을 정리해보면 구도(求道)와 수학(修學)의 공간인 사찰(寺刹) 내지 은자(隱者)가 깃들어 있는 암자(庵子)를 향해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인간의 탄생에서 죽음까지를 하나의 서사 단계로 가장하고 파악할 때, 출생한 후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여 구도(求道)와 수학(修學)의 과정에 놓여 있는 의미 맥락 내지는 그에 상응하는 단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3.3. 소상야우(瀟湘夜雨) : 세계(世界)의 횡포(橫暴)에 휘둘린 자아(自我) 위로

소상야우(瀟湘夜雨)는 한시(漢詩)가 63수이고, 시조(時調)가 26수 그리고 무가(巫歌), 판소리, 판소리계 소설, 가사 등 다양한 갈래에서 두루 형상화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소상팔경(瀟湘八景) 가운데 가장 작품 수가 많은 시제(詩題)이자 화제(畵題)이다. 작품 분량에서만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소상팔경(瀟湘八景) 가운데 가장 핵심이 되는 시제(詩題)이자 화제(畵題)가 된다. ‘소상(瀟湘)’으로 설정된 공간에 ‘밤비(夜雨)’가 내린다. 이 ‘소상(瀟湘)’이라는 공간은 다른 일반적인 공간과 달리 엄청난 서사(敍事)를 지닌 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 내리고 있는 밤비 또한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다. 앞서도 살펴보았듯이 그곳은 순임금이 최후를 맞이한 곳인 동시에 그의 두 아내였던 아황과 여영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공간이다. 또한 굴 원(屈原)이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자신의 충정을 드러내고자 했던 공간이었다. 게다가 시성(詩聖)이라 일컬어지던 두보(杜甫)가 배 위에서 세상을 떠난 공간이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시선(詩仙) 이백은 소상팔경(瀟湘八景)의 하나였던 동정호(洞庭湖) 악양루에 올라 시흥(詩興)을 펼친 공간으로도 유명하다. 소상야우(瀟湘夜雨)를 통해 어떤 형상을 다루고 있는지 살펴본다.

<소상야우-1>
一帶滄波兩岸秋 푸른 물결 일대에 양 언덕은 가을이고,
風吹細雨?歸舟 바람 불어 가랑비가 돌아가는 배에 흩뿌리네.
夜來泊近江邊竹 밤이 되어 강변 대숲 가까이 배를 대었더니,
葉葉寒聲摠是愁 李仁老,『三韓詩龜鑑』卷之中, ‘瀟湘夜雨’,『東文選』卷二十,「宋迪八景圖」‘瀟湘夜雨’.
잎사귀마다 차가운 소리 모두가 수심이네.

이인로(李仁老;1152-1220)의 작품이다. 푸른 물결이 일렁이는 일대로 양쪽 언덕은 가을이 한창이다. 가랑비가 내리는데 바람마저 부니 돌아가는 배에 비가 흩뿌리고 있다. 밤이 되어 강변 대숲에 배를 가까이 대었더니 잎사귀마다 차가운 소리만 가득하다.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모든 것이 시름없고 근심스럽기만 하다. 시인이 근심스러워 하는 이유는 단지 소상(瀟湘)이라는 강에 비가 내리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시인이 바라보고 있는 소상강(瀟湘江)은 단순한 강이 아니라 순임금과 아황·여영의 죽음 그리고 굴원의 자결, 또한 이 강물 위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두보의 최후 등등의 역사적 사건이 투사된 강물이기 때문에 시름없고 수심이 이는 것이다. 소상강(瀟湘江)이 지녔던 공간 서사에 대한 인식에 기초한 작품인 셈이다.

<소상야우-2>
日落江寒水暝天 해가 지니 강이 차고 물빛 어둔 하늘에,
夜來微雨更凄然 밤이 되니 이슬비가 더욱 쓸쓸하네.
二妃往事君何詰 두 왕비 지난 옛 일 그대 어찌 묻는가,
?竹聲中正好眠 李奎報, <東國李相國集>後集卷六,『韓國文集叢刊』第2卷196쪽,「次韻李平章仁植虔州八景詩幷序」‘瀟湘夜雨’, 公詩云(공의 시에서 언급했다.)
반죽에 뿌리는 빗소리 속에서 진정 잘도 자네.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작품이다. 해가 지고 저녁 되니 강물이 차가워지고 물빛은 어두운 하늘이 되었다. 밤이 깊어지자 내리는 이슬비에 시인의 마음은 더욱 쓸쓸하기만 하다. 순임금의 두 아내였던 아황과 여영의 지난 옛일을 그대는 어찌하여 되물어 옛일을 상기시키고 쓸쓸한 마음 일게 하는가? 이토록 사납게 퍼붓는 비와 대나무에 쏟아지는 빗소리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참으로 잘도 자는구려. 세상사에 무관한 듯 잠든 이를 보니 마음 한 구석에 더욱 착잡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 시인이 착잡한 심정을 가눌 길 없다고 하는 것은 아황과 여영에 대한 연민의 감정인 동시에 이비(二妃)의 안타까운 죽음을 충(忠)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함으로써 군신(君臣)의 관계로 투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황과 여영의 죽음 그리고 그녀들이 흘렸던 피눈물의 흔적이라는 반죽(斑竹)의 이미지를 제시하면서 시상(詩想)을 마무리하고 있다.

<소상야우-3>
江村入夜秋陰重 강촌에 밤이 드니 가을의 음기가 겹쳐있고,
小店漁燈光欲凍 작은 주막과 고깃배의 등불 빛이 얼려 하네.
森森雨脚跨平湖 주룩주룩 빗발이 편편한 호수에 걸쳐있고,
萬點波濤欲飛送 만 점 출렁이는 물결이 날아가려는 듯하네.
竹枝蕭瑟?明珠 댓가지 소슬하게 밝은 구슬 거르고,
荷葉翩翩走圓汞 연잎에 대굴대굴 둥근 수은 달리네.
孤舟徹曉掩蓬窓 밤새도록 외딴 배는 봉창(?窓)을 가렸어도,
緊風吹斷天涯夢 陳?,『梅湖遺稿』卷四, 『韓國文集叢刊』第2卷 283쪽,「宋迪八景圖」‘瀟湘夜雨’.
돌개바람 불어 하늘 끝 머무는 꿈 끊어버리네.

진 화(陳?;1180-1215, 추정)의 작품이다. 강마을에 밤이 들자 가을의 을씨년스럽고 음산한 기운이 무겁기만 하다. 작은 주막과 고깃배에서 뿜어대는 등불 빛도 추위에 떨면서 얼고 있다. 주룩주룩 내리는 빗발은 편편한 호수에 걸쳐 있고, 만이랑에 출렁이는 물결이 날아가는 듯한 태세다. 대나무 가지마다 소슬하게 밝은 구슬이 걸러지고 연잎에는 대굴대굴 등근 이슬이 달려 있다. 밤새도록 작은 배에 누웠다. 하지만 주룩주룩 내리는 빗발과 사나운 돌개바람이 불어와 봉창(?窓)을 겹겹이 가렸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저편 하늘 언덕에서 머무는 꿈을 야속한 비와 바람이 단숨에 깨워버리는구나! 소상강(瀟湘江) 밤에 비가 내리며 바람이 거세게 부는 풍경을 형상화했다. 이 작품에서 시인은 작품 속에 위치한다. 자그마한 외딴 배를 타고 소상(瀟湘) 강변에서 비를 맞으며 밤을 보내고 있다. 사납게 내리는 비와 돌개바람 때문에 배에 있는 작은 창문을 꼭꼭 동여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비바람 때문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시인의 내면은 이미 소상(瀟湘)이라는 공간이 지녔던 서사(敍事)에 의해 장악된 상태에서 시흥(詩興)을 일으켜 시를 창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소상야우-4>
楓葉蘆花水國秋 단풍잎과 갈대꽃에 어촌은 가을이고,
一江風雨?扁舟 온 강에 비바람만 조각배에 흩뿌리네.
驚廻楚客三更夢 초객(楚客)을 놀라게 한 깊은 밤 꿈이,
分與湘妃萬古愁 李齊賢, <益齋亂藁> 卷三,『韓國文集叢刊』第2卷 525쪽,「和朴石齋·尹樗軒用銀臺集瀟湘八景韻(石齋名孝修, 樗軒名奕)」‘瀟湘夜雨’.
상비(湘妃)의 만고 시름 함께 나누네.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작품이다. 흐드러지게 핀 갈대꽃과 단풍잎으로 강마을에는 가을이 한창이다. 온 강에 비바람이 불어 조각배에 흩뿌리고 있다. 초객(楚客)은 초나라 삼려대부 굴원(屈原)을 가리킨다. 초객을 놀라게 했던 깊은 밤의 꿈이 아황과 여영이 만고에 지울 수 없는 시름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있다. 이 작품에서 시인은 소상강(瀟湘江)에 내리는 밤비를 형상화함에 있어서 세 명의 역사적 인물을 떠올리고 있다. 아황과 여영, 그리고 굴원이 바로 시인이 소상야우를 형상화하면서 떠올린 인물들이다. 그들은 모두 이곳 소상강(瀟湘江)에서 자결한 인물들이다. 동시에 그들은 세계의 횡포에 맞서 죽음을 통해 스스로를 구원하고자 했다. 시인은 이와 같은 사건으로 세계의 횡포에 휘둘려 극단적인 방식으로 당시의 상황에 맞섰던 인물들을 위로하고 위무하는 차원에서 작품을 형상화하고 있다. 소상(瀟湘)이라는 공간은 그만큼 강렬하게 시인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이다. 아황과 여영 그리고 굴원의 고사(故事)에 대해서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다.

<소상야우-5>
暗澹靑楓樹 검푸른 단풍나무와,
蕭?斑竹林 엉성한 반죽의 수풀.
蓬窓夜雨冷難禁 봉창은 밤비에 냉기 막기 어렵고,
?枕古鄕心 기운 베개에 우러나는 고향 생각.
二女湘江淚 아황과 여영이 상강에 뿌린 눈물,
三閭楚澤吟 삼려대부 굴원이 남긴 초택(楚澤)의 읊조림.
白雲千載恨?? 흰 구름은 천 년 동안 한스러움 깊으니,
滄海未爲深 李齊賢, <益齋亂藁> 卷十,『韓國文集叢刊』第2卷 609쪽,「巫山一段雲 瀟湘八景」‘瀟湘夜雨’.
푸른 바다도 그 보다는 깊지 못하리.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작품이다. 검은빛이 나면서도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도는 단풍나무와 소슬하며 성긴 반죽(斑竹) 수풀이 보이는 소상강(瀟湘江). 내리는 밤비에 봉창(?窓)으로는 냉기조차 막기가 어렵다. 베개에 기대니 고향 생각이 간절해진다. 아황과 여영이 상강(湘江)에 흘렸던 눈물과 삼려대부 굴원이 남겼던 초택(楚澤)의 읊조림을 떠올린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흰 구름은 천년 넘게 한스러움만 깊어가니 푸른 바다가 아무리 깊다고한들 아황과 여영의, 그리고 굴원의 한(恨)보다는 깊지 못할 것이라는 시인의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소상야우-6>
一夜湘江雨 밤새도록 상강에 내리는 비가,
三秋楚客心 가을날 초나라 굴원 마음이네.
心應懸魏闕 마음은 응당 조정에 달려있어,
通昔動哀音 千峯,『匪懈堂瀟湘八景詩帖』, 瀟湘夜雨.
밤새도록 슬픈 소리 진동하네.

천봉 만우(卍 雨;1357- 未詳)의 작품이다. 밤새도록 소상강(瀟湘江)에 내리는 비를 보면서 시인은 초나라 삼려대부 굴원(屈原)의 마음을 떠올렸다. 몸이야 조정(朝廷)을 떠나왔어도 나라와 임금에 대한 마음까지 떠나왔겠는가 하면서 조정에서 쫓겨났을 때에도 나라와 임금을 걱정했을 굴원의 충정(忠情)을 헤아리고 있다. 그처럼 마음은 응당 늘 조정에 걸어두고 왔기에 진나라에 들어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자신의 군주(君主)인 초나라 회왕을 생각하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을 테고, 굴원의 그 통절한 눈물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멈출 줄 모르고 지금까지도 밤새도록 소상강(瀟湘江)에 빗물이 되어 뿌려지는 것이라고 형용했다.

<소상야우-7>
?遞雲連塞 멀고 먼 구름은 변방에 이어져 있고,
微茫水接天 희미하게 아득한 물은 하늘에 접해있네.
不眠孤客耳 잠들지 못하는 외로운 나그네뿐이고,
寒雨滿江船 成三問, <成謹甫集> 卷一, 『韓國文集叢刊』第10卷 184쪽,「瀟湘八景」, ‘瀟湘夜雨’.
찬비만 강가 정박한 배에 가득하네.

성삼문(成三問;1418-1456)의 작품이다. 저편에 희미하고 아득하게 보이는 구름은 변방을 따라 계속 이어져 있다. 멀리로 희미하고 아득한 곳의 물이 하늘에 닿아있다. 강변에 정박해 놓은 배에는 찬비만 가득하고 이 모든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나그네는 시름겨워 잠을 이루지 못한다. 소상야우(瀟湘夜雨)를 그린 그림에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현재 전하는 많은 작품들에는 대체로 인물이 등장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잠을 들지 못하는 외로운 나그네(孤客)를 언급했다. 시인이 언급한 잠들지 못하고 있는 나그네가 그림 속 가상인물인지 아니면 그 그림 속 가상인물에 시인 자신의 심정을 가탁(假託)한 것인지 명료하게 읽히지 않는다. 그것이 시인 자신의 심정이건 작품 속 등장인물의 심정을 헤아린 것이든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작품에서도 시인(詩人)의 내면에는 이미 소상(瀟湘)이라는 공간이 지니고 있던 서사(敍事)를 바탕으로 정서(情緖)를 표출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소상야우-8>
九疑嵯峨雲似墨 구의산은 우뚝 솟아 구름이 검은 듯하고,
??啼雨湘江夕 자고새가 빗속에 우는 상강은 저녁이네.
寒聲浙瀝助凄切 내리는 비 차가운 소리가 처절한 마음 돕고,
竹間餘淚哀欲滴 죽간에 남은 눈물 방울지려는 듯 슬퍼하네.
楚些爲招帝子魂 슬프도다! 순임금 영혼을 위하여 부름이니,
月恨雲愁天亦泣 달과 구름 한스러운 수심에 하늘도 울고 있네.
孤舟一夜滯未歸 밤새도록 외딴 배는 머무르며 돌아가지 못하고,
遠客蕭條生白髮 鄭希良, <虛庵遺集> 卷一, 『韓國文集叢刊』第18卷 13쪽,「瀟湘八景」‘瀟湘暮雨’.
멀리 있는 나그네는 쓸쓸하여 흰머리 생기네.

정희량(鄭希良;1469-未詳)의 작품이다. 구의산은 순임금이 죽어 묻힌 곳이다. 그곳이 우뚝하게 솟아있고, 주변으론 검은 구름이 자욱한 형상을 제시했다. 상강에 내리는 저녁 빗속에서 자고새가 처량하게 울고 있다. 처량하게 내리는 저녁 빗속에서 자고새마저 울고 있으니, 이를 접한 시인의 심사는 처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대나무 숲 속에는 아황과 여영이 순임금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흘렸던 피눈물이 방울져 흘러내리는 듯 처량하고 슬픔을 주체할 수 없다. 순임금의 영혼을 달래려고 불러 봐도 아무런 대답이 없다. 달과 구름이 그리고 하늘이 시름겨운 한스러움에 눈물만 흘리고 있으니 이를 보고 있는 시인의 마음도 그저 슬퍼할 따름이다. 시름겨운 나그네는 밤새도록 배를 돌리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풍경을 바라보며 상상하고 있는 시인은 쓸쓸한 마음에 근심스런 마음만 더해간다. “쓸쓸하여 흰머리가 생긴다.”는 표현은 시인 자신의 심사를 드러낸 것으로 보는 편이 온당하다.

<소상야우-9>
一??空碧 외기러기 푸른 허공에 울어대고,
秋氣生瀟湘 가을 기운이 소상강에 생겨나네.
湘水晩容異 상강의 물은 저녁 형용이 다르고,
夜雨鳴浪浪 밤비는 낭낭한 소리로 울어대네.
竹林動哀響 대나무 숲에 슬픈 소리 진동하니,
二妃應涕滂 두 왕비 응당 통곡하는 울음이리.
涕痕?不盡 눈물자국 죄다 씻지도 못했는데,
千古斷人腸 李荇, <容齋集> 卷三, 『韓國文集叢刊』第20卷 395쪽,「瀟湘八景」‘瀟湘夜雨’.
오랜 동안 사람의 애간장을 끊네.

이 행(李荇;1478-1534)의 작품이다. 짝을 잃은 외기러기가 소상강 푸른 허공에 울어대니 가을 기운이 물씬 난다. 시인은 어째서 첫머리에 ‘외기러기(一?)’를 등장시켰을까? 기러기는 암컷과 수컷 사이의 정(情)이 유별나 한번 짝이 정해지면 그 중 한 마리가 죽어도 다시 짝을 구하지 않는 새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 이유로 전통혼례에서는 부부간의 금실을 상징하는 의미로 나무를 깎아 기러기를 만들어 의식에 사용하는 전안례(奠雁禮)가 있다. 그러니 시인의 의도는 가을이라는 계절을 상기시킴과 동시에 순임금의 두 아내였던 아황과 여영의 입장을 상기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소상강(瀟湘江)은 저물녘이 되자 그 모습이 달라지고 밤비가 내리는 모습은 눈물이 흘러내리는 듯하다. 대나무 숲에 슬픈 소리가 진동하는 듯이 들리는 까닭은 아황과 여영 두 왕비께서 응당 통곡하는 울음소리일 것이다. 눈물자국을 죄다 씻지도 못했건만, 말하자면 이비(二妃)가 흘렸던 눈물이 채 마르지도 않았건만 천년이 넘는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그 이야기를 듣는 모든 사람들의 애간장을 끊는다고 했다. 시인의 심정도 역시 마찬가지임을 역설한다.

<소상야우-10>
蒼梧聖帝魂 창오에서 숨을 거둔 순임금의 혼백이,
夜半雨紛紛 한밤중 비가 되어 분분히 내리는구나.
竹裏蕭蕭意 대나무 숲 속에서 소슬하게 울리는 뜻은,
要將洗淚痕 林億齡, <石川集>, 驪江出版社 影印本, 126쪽, ‘?李後白瀟湘夜雨之曲’.
바라건대 얼룩진 눈물 자욱 씻어내고자.

임억령(林億齡;1496-1568)의 작품이다. 임억령은 이후백(李後白)의「소상팔경(瀟湘八景)」 시조(時調) 작품 8수를 대상으로 한역시(漢譯詩)를 9수를 창작했다. 9수의 작품들은 대개가 순임금과 아황, 여영 그리고 굴원의 사건을 시적 형상화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 작품은 창오(蒼梧)의 들판에서 숨을 거둔 성스러운 황제 순임금의 혼백이 한밤중에 비가 되어 어지럽게 내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밤중에 내리는 비가 대나무 숲 속에서 유독 소슬하게 울리는 뜻은 아황과 여영이 죽으면서 흘렸다는 피눈물이 묻어 있는 반죽(斑竹)의 혈흔(血痕)을 닦아주고자 한 뜻이라고 해석했다.

<소상야우-11>
誰招去國魂 임금을 떠난 혼백 누가 불렀던가,
千里不禁紛 천리에 분분함을 금할 수가 없네.
忽返三更響 홀연히 깊은 밤 울림이 되돌아오니,
孤襟帶血痕 林億齡, <石川集>, 驪江出版社 影印本, 126쪽, ‘?李後白瀟湘夜雨之曲’.
외로운 가슴에 핏자국만 맺혀있네.

임억령(林億齡;1496-1568)의 작품이다. 거국(去國)이란 나라를 떠난다는 의미로도 읽을 수 있으나 임금의 곁을 떠난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임금 곁을 떠난 혼백은 삼려대부 굴원을 가리키는 말로 보는 것이 온당할 듯싶다. 천리 밖에서도 어지럽고 복잡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문득 깊은 밤에 메아리로 되돌아오니 외로운 가슴에는 핏자국만 맺혀있을 뿐이다. 굴원(屈原)이 겪었을 당시의 고통을 위무(慰撫)하는 측면이 강한 작품이다.

<소상야우-12>
魚腹葬忠魂 물고기 뱃속에 장사지낸 충성스런 혼백,
千秋向國紛 천추에 나라향한 마음 분분도 하여라.
江深招不得 강물 깊어 불러도 구할 수 없건만,
天水合無痕 林億齡, <石川集>, 驪江出版社 影印本, 126쪽, ‘?李後白瀟湘夜雨之曲’.
물과 하늘 맞닿아 흔적조차 없구나.

임억령(林億齡;1496-1568)의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굴원(屈原)을 대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멱라수에 몸을 던져 물고기 뱃속에 장사(葬事)를 지낸 굴원의 충성스러운 혼백(魂魄)이 천년이 지나도록 충성심만은 변하지 않고 나라를 향하는 마음이 내리는 비처럼 분분하다. 강물이 깊어 불러도 한번 볼 수는 없겠지만 아득한 강물은 하늘과 물이 맞닿은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소상야우-13>
蒼梧日落愁雲合 창오에 해지니 근심 섞인 구름 모이고,
楚雨蕭蕭到夜分 초나라 밤 깊도록 쓸쓸하게 비 내리네.
竹上更添無限淚 대나무 위 다시 한없는 눈물 보태지고,
重瞳何處有孤墳 朴淳, <思菴集> 卷一, 『韓國文集叢刊』第38卷 286쪽,「瀟湘夜雨」.
순임금 외로운 무덤 어느 곳에 있을까.

박 순(朴淳;1523-1589)의 작품이다. 순임금이 숨을 거둔 창오(蒼梧) 들녘에 해가 지니 근심 섞인 구름이 모여든다. 초나라 땅에는 밤이 깊도록 쓸쓸하게 비만 내린다. 대나무 위로는 무한한 눈물만이 보태지니, 순임금은 어디에서 편안히 잠을 잘 수 있겠으며 그의 외로운 무덤은 어느 곳에 있는가?

<소상야우-14>
斑斑竹上血 얼룩얼룩한 대나무 위에 혈흔,
當日二妃寃 그 날 두 왕비의 원통함이네.
半夜江心雨 깊은 밤 강 중심에 비 내리지만,
何曾洗淚痕 李?光, <芝峰集> 卷一, 『韓國文集叢刊』第66卷 16쪽,「瀟湘夜雨」.
어찌 일찍이 눈물자국 씻었겠나.

이수광(李?光;1563-1628)의 작품이다. 반죽(斑竹)을 시적 형상화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대나무 위에 얼룩진 붉은 혈흔(血痕)을 보면 당시에 겪었을 아황과 여영 두 왕비의 원통함이 베어있다. 한밤중에 소상강(瀟湘江) 가운데로 얼마나 많은 비가 내린다고 해도 어떻게 이비(二妃)의 한(恨) 맺힌 눈물 자국을 씻어낼 수 있었겠는가! 하며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소상야우-15>
夜雨蕭蕭斑竹枝 밤비가 쓸쓸하게 반죽 가지를 물들이니,
至今瑤瑟使人悲 지금도 거문고 소리 사람 심금 울리네.
千歲帝子無窮恨 천년의 황제에겐 한(恨)도 끝이 없는가,
只在瀟湘夜雨時 鄭斗卿, <東溟集>卷二,『韓國文集叢刊』第100卷, 409쪽,「題瀟湘八景圖」‘瀟湘夜雨’. 이 작품은 洪滄浪, <瀟湘八景詩歌抄> 31쪽에도 수록되어 있다. <瀟湘八景詩歌抄>는 우리나라의 문헌이 아니라 일본에서 1688년에 간행된 책이다. 이 책에는 일본인들이 노래한 소상팔경 한시와 그림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유일하게 홍창랑(洪滄浪)이라는 이름으로 8수가 실려 있다. 여기서 ‘홍창랑’은 홍세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모두 정두경(鄭斗卿;1597-1673)의 <동명집(東溟集)>에 실려 있는 작품과 동일하다.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보건대, 홍세태(洪世泰;1653-1725)가 정두경에 비해 56년 뒤에 태어났다는 점, 또 다른 기록으로 보아 홍세태가 일본에 갔던 것은 사실이다. 일본 문인들과 ‘소상팔경’을 소재로 창작하는 과정에서 정두경의 작품을 그대로 노래했던 것이 일본에서 제작된 <瀟湘八景詩歌抄>라는 책에 수록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소상강에는 밤비가 내리고 있네.

정두경(鄭斗卿;1597-1673)의 작품이다. 소상강(瀟湘江)에 밤새도록 내리는 비가 쓸쓸하게 반죽(斑竹) 가지를 물들이니 지금까지도 거문고 소리는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천년 넘는 세월동안 황제(皇帝)에게도 한스러움은 끝이 없었던지 멈추지 않고 오로지 소상강(瀟湘江)에 밤비(夜雨)만 뿌리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대숲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거문고 소리에 빗대고 있다. 살아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었던 아황, 여영의 한스러움을 달래기 위해 순제(舜帝)가 끊임없이 비를 뿌리고 있는 상황으로 인식하고 작품을 창작했다.

<소상야우-16>
江上有斑竹 강변에 얼룩진 대나무 있고,
竹間多夜雨 대나무 사이로 밤비가 많네.
悽切二妃魂 처절했던 두 왕비의 혼백이,
此時無限苦 權斗經, <蒼雪齋集> 卷七,『韓國文集叢刊』第169卷 126쪽,「述姪請賦瀟湘八景」‘瀟湘夜雨’.
지금도 한없이 고통스럽네.
권두경(權斗經;1654-1725)의 작품이다. 강변에는 피눈물로 얼룩진 반죽(斑竹)이 있다. 대나무 사이로는 밤비가 질펀하게 내리고 있다. 아황과 여영, 두 왕비의 혼백이 얼마나 처절했던지 지금까지도 한없이 고통스럽게 울고 있기 때문에 밤새 비가 되어 내리는 것이라는 인식을 토대로 창작된 작품이다. 시인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아황과 여영의 죽음이다. 그리고 그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안타까움이 전제되어 있다. 남편이었던 순임금을 따라 목숨을 버린 이비(二妃)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열(烈)을 대신하여 임금에 대한 신하로서의 충성(忠)에 대한 시선이 혼재되어 있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말하자면 열(烈)이라는 윤리적 이념을 충(忠)이라는 윤리적 이념으로 바라보고자 했던 일종의 착시현상이 소상야우(瀟湘夜雨)에 대한 관심과 반응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었을까 판단한다. 물론 이러한 관점으로 모든 소상야우(瀟湘夜雨) 작품 전반에 대한 설명이 불가능함은 확실하다. 다만 일부 유학자들의 경우는 당대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라는 거대한 틀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었겠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소상야우-17>
??夜雨滿江頭 보슬보슬 내리는 밤비는 강가에 가득한데,
風?滄波浸客舟 바람이 푸른 물결 흔들어 나그네 배에 들이치네.
回首湘沅雲漠漠 고개 돌려 상수와 원수 바라보니 구름이 막막하고,
悠悠千載使人愁 肅宗,『列聖御製』第十七篇,「瀟湘八景」‘瀟湘夜雨’.
아득하도다. 천년동안 사람을 시름겹게 하는구나.

숙종대왕(肅宗;1661-1720)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군주(君主)의 입장에서 창작되었기에 색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당대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통해 윤리적인 요구를 받는 수동적 입장이 아니라 윤리적 요구를 지시하는 한 나라의 군주(君主) 입장이기 때문에 어떤 점에 더 관심을 지니고 있는가 하는 점을 파악하기 위해 좋은 자료가 된다. 강가에는 보슬보슬 내리는 밤비가 가득하고 바람이 푸른 물결을 흔들어서 나그네 배에 들이친다. 고개를 돌려 상강(湘江)와 원강(沅江)을 바라보면 구름이 막막하다. 천년(千載)은 정확하게 천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을 가리킨다.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사람을 시름겹게 한다고 했다. 숙종을 시름겹게 만든 것은 아황과 여영의 죽음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소상야우(瀟湘夜雨) 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소상야우를 노래한 작품들에서는 주로 순임금과 아황 그리고 여영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과 처절함을 노래하고 있었다. 또한 순임금과 아황·여영에 비해서는 적은 분량이나 나름대로 적지 않은 분량의 작품들이 굴원(屈原)의 죽음을 다루고 있었다.
순임금과 아황 그리고 여영, 굴원 등의 인물이 소상야우(瀟湘夜雨)의 주된 형상화 대상이었다. 이들의 삶이 지니고 있는 서사적 특성은 지극히 평범하지 않다. 이 가운데 아황과 여영, 그리고 굴원은 모두 소상강(瀟湘江)에 몸을 던져 자결(自決)함으로써 스스로의 진심을 표현했다. 하지만 순임금의 경우는 상황을 조금 다르게 볼 수 있다. 순임금의 죽음에 대해서는 명확한 언급이 없다. 그저 유향의 『열녀전(烈女傳)』에서는 “순임금이 천하를 잘 다스리다가 지방을 순찰하는 도중에 창오(蒼梧)에서 세상을 떠났다.”라고 기록했고,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는 혹은 “순은 스무 살 때 효자(孝子)로 명성이 자자하였고, 서른 살에는 요임금에게 등용되었으며, 쉰 살에는 천자의 일을 대행하였다. 그의 나이 쉰여덟 살 때 요임금이 붕어하자, 예순 한 살에 요임금을 이어서 제위에 올랐다. 순임금은 제위를 이어받은 지 39년 만에 남쪽을 순수하다가 창오(蒼梧)의 들에서 붕어(崩御)하였다. 그를 강남의 구의산(九疑山)에 장사(葬事) 지냈으니, 이곳이 바로 영릉(零陵)이다.”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사마천의 기록대로라면 100세 가량에 죽은 셈이 된다.
그렇다면 노환(老患)으로 숨을 거두었을 리도 있다. 그럴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고 노환(老患)으로 죽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에 대해 정재서 교수는 “후세의 유학자들에 따르면 요(堯)에서 순(舜), 다시 순(舜)에서 우(禹)는 선양(禪讓)이라는 양보의 방식으로 덕 있는 사람에게 왕권이 전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비극적인 이야기에서 혹시 순과 우 사이에 존재했던, 선양과는 거리가 먼 피비린내 나는 폭력의 냄새를 맡고 있는 건 아닐까. 유학자들이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위하여 그토록 이상화했음에도 미처 은폐하지 못했던 폭력의 냄새를 정재서,『이야기 동양신화』, 황금부엉이, 2005, 272쪽 참고.
”이라고 서술했다.
또한 우리 민족 자생 종교의 경전 가운데는 순(舜)이 요(堯) 임금의 맏아들인 단주(丹朱)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기술되어 있음이 확인된다. 어쨌거나 순임금의 죽음도 남순(南巡)의 과정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 죽음 역시 병환(病患) 등으로 사전에 예견되었던 죽음이 아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만일 병환(病患)이나 노환(老患)으로 숨을 거둔 것이라면 당시의 상황에서 그 고령에 남순(南巡)까지 감행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하여튼 순임금과 아황, 여영 그리고 굴원 등은 소상강(瀟湘江)에서 안타깝게 숨을 거두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는 문인들의 시선에는 안타까움과 연민 그리고 슬픔과 처절함이 짙게 베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상야우(瀟湘夜雨)라는 제목의 작품을 창작하고 향유했던 많은 문인들의 의식 속에서는 순임금과 아황 · 여영 그리고 굴원 등의 죽음이 그야말로 한 개인에 맞서는 세계의 엄청난 횡포이자 시련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세계의 횡포에 휘둘린 자아의 비극적 결말로 인식되기에 충분했다.
그렇기 때문에 문인들은 끊임없이 소상강(瀟湘江) 밤에 비가 내리는 형상을 반복해서 재현하며 사납게 내리는 비나 보슬비나 모두 순임금의 눈물이거나 아황과 여영의 한 맺힌 피눈물이거나 굴원의 억울함을 위로하는 눈물이라고 형상화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순임금, 아황, 여영, 굴원 등은 세계의 횡포에 휘둘린 개인적 자아이며, 이들을 위로하고 위무하기 위한 측면에서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작품이 창작되고 향유되었던 셈이다. 물론 그러한 현상이 나타난 이면에는 한 시대의 윤리적 이데올로기가 지닐 수밖에 없었던 측면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시각은 공시적 결과에만 한정하여 정당성과 합리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뿐이다. 불변하는 가치와 체계를 기준으로 볼 때 그들은 세계의 횡포에 휘둘린 자아(自我)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들을 위로하고 있음이 소상야우(瀟湘夜雨)라는 시제(詩題) 내지 화제(畵題)가 지니고 있는 함의(含意)가 될 것이다.
<그림 > 소상야우
앞에서 논의했던 소상야우(瀟湘夜雨)의 형상과 함의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소상강(瀟湘江)이라는 공간에 밤새도록 내리는 비(夜雨)의 형상을 다루고 있었고, 세계의 횡포(橫暴)에 휘둘린 자아(自我)를 위로(慰勞)하고 위무(慰撫)한다는 함의를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소상야우(瀟湘夜雨)에는 어떠한 서사적 맥락이 감추어져 있는가 하는 점을 규명하는 것이 이 장(章)의 목적이다.
소상(瀟湘)이라는 공간은 동정(洞庭)이라는 공간과 함께 소상팔경(瀟湘八景)의 여덟 가지 개별 시제(詩題) 내지 화제(畵題) 가운데 구체적인 지명(地名)과 공간(空間)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과 구별된다. 특히 ‘소상강(瀟湘江)’은 앞서 ‘2.3. 소상팔경의 공간 심상’ 이라는 항목을 통해서 살펴본 바와 같이 소상팔경(瀟湘八景)의 가장 핵심적인 항목이기도 하다. 그만큼 소상야우(瀟湘夜雨)에 담겨 있는 의미 맥락은 전체 맥락 가운데서도 핵심적인 단계에 해당한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의미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 형상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인물 형상에 주목할 때, 인물과 인물 사이의 갈등과 대립 그리고 갈등 해결에 대한 방향 내지 가능성을 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상야우(瀟湘夜雨)에 등장하는 인물 형상으로는 순제(舜帝)와 그의 두 아내였던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이 절대적인 빈도수를 차지하고 있다. 순임금과 그의 이비(二妃)였던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의 경우 논문 부록으로 실어놓은 자료집에 실린 한시 작품 64수 전체에 걸쳐 있다고 할 만큼 소상야우(瀟湘夜雨)의 핵심적 인물 형상이다. 순임금에 대해서는 순(舜)이라는 시어(詩語) 외에도 제자(帝子), 성제(聖帝), 중동(重瞳), 창오(蒼梧), 구의산(九疑山), 영릉(零陵) 등의 시어(詩語)를 통해 순제(舜帝)의 모습이 형상화되었다. 그리고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의 경우는 이비(二妃), 무아(巫娥), 이녀(二女), 상비(湘妃), 상군(湘君), 상아(湘娥), 영비(靈妃), 상령(湘靈), 황영(皇英), 황릉(黃陵), 반죽(斑竹) 등의 시어(詩語)로 형상화되고 있었다. 그 밖의 인물 형상으로는 초나라 삼려대부였던 굴원(屈原), 가생(賈生), 나그네(客), 소인(騷人), 고공(?工), 주인(舟人), 도롱이를 걸친 노옹(?翁), 시적 화자인 나(我), 특정한 어떤 사람(何人), 일반적인 사람(人), 나그네(遊人), 귀신(鬼), 혼백(魂), 과부(?婦) 등의 인물 형상이 등장하고 있다. 순제(舜帝)와 아황(娥皇), 여영(女英) 이외에도 이처럼 다양한 인물 형상들이 등장하고 있으나 이들은 모두 순제(舜帝)와 이비(二妃)의 인물 형상에 의해 마련된 정서를 전달하거나 공감하는 수준에서 가미된 인물 형상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이들의 인물 형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소상야우(瀟湘夜雨)>에 등장하는 인물의 형상
차례
등장인물
인물형상
논문부록
한시작품 일련번호
1
순임금(弟子, 舜帝)
슬픔과 애통함 그리고 위로의 대상으로 형상화됨
6,7,18,22,24,30,41,46,52,53,56,57,58,59
2
이비(二妃), 아황여영(娥皇女英), 황영(皇英) 등
슬프고 처절한 모습의 형상은 밤비(夜雨) 내리는 모습으로, 비바람 소리는 이비(二妃)의 절규로 형상화됨
2,3,9,10,11,13,18,23,25,26,36,40,44,45,47,48,50,51,52,54,56,57,60
3
굴원(屈原),삼려(三閭)
충정(忠情)어린 신하의 모습으로 형상화됨
9,11,12,32,43,49,50,59,62
4
가생(賈生)
굴원(屈原)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조문(弔問)하는 형상
50
5
나그네(客),
고객(孤客)
작중 인물로 배를 정박하려는 인물이거나 슬픔으로 잠 못 드는 나그네, 혹은 시적 화자로 형상화됨
10,14,18,22,23,26,27,39,50,51,60,
61,63
6
시인(騷人)
순제와 이비의 고사를 접하게 되는 모든 시인의 형상
42
7
뱃사공(?工, 舟人)
옛일에 아랑곳하지 않고 잠에 취하거나 배를 걱정함
3,4,6,32
8
도롱이 걸친 노옹(?翁)
초연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어옹(漁翁)을 형상화
49
9
시적 화자인 나(我)
소상야우 그림이 술에 취한 화자의 눈을 놀라게 함
5
10
어떤 이(何人, 誰)
작중 인물로 배를 대는 사공이거나 그림의 감상자
6, 16, 19
11
사람(人)
작품의 감상자이거나 배에 물이 샌다고 소리치는 인물
6, 25,46,53,55
12
나그네(遊人)
작품 속 배 안에서 잠 못 들고 있는 인물로 형상화됨
7,15
13
귀신(鬼)
여울을 감싸 흐르는 소리를 귀신의 형상에 빗댄 표현
19
14
혼백(魂)
초 회왕 곁에서 쫓겨난 굴원(屈原)을 형상화한 표현
33
15
과부(?婦)
사랑하는 임을 잃은 과부가 배 위에서 흐느끼는 형상
34

소상야우(瀟湘夜雨)라는 시제(詩題)를 통해 등장하는 인물 형상은 대략 15가지로 정리가 된다. 열다섯 가지로 정리 되는 인물 형상들이 지니고 있는 공통점은 동일한 사건을 간접적으로 체험함으로써 촉발되는 정서(情緖) - 슬픔과 애통함, 안타까움과 처절함 등 - 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사건은 순임금과 아황, 여영의 죽음 그리고 굴원(屈原)의 고사(故事)와 관련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의 ‘2.3. 소상팔경의 공간 서사’에서 상세하게 다루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여하튼 순임금과 그의 두 아내였던 이비(二妃), 아황과 여영의 죽음에 대해서는 상세한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소략하게 기록되어 전할 따름이다. 아황과 여영의 경우는 남편인 순임금이 숨을 거둔 이후 슬픔을 이기지 못한 채 소상강(瀟湘江)에 투신하여 남편을 따랐다고 기술하고 있는 정도이다. 순임금에 대해서는 그저 남쪽 지방을 순시하다가 창오(蒼梧)의 들녘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정도로 기록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의문시 되는 것은 순임금의 죽음에 대한 기술(記述)이다. 무슨 이유로 순제의 죽음을 그토록 소략하게 기록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을 끄는 관점이 발견된다. 조선 후기에서 구한말에 걸친 시기에 우리민족의 자생 종교인 증산교와 대순진리교 등의 경전에서는 이에 대해서 조금 색다른 시각과 관점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이들 종교의 경전에서는 요임금으로부터 순임금으로 황제(皇帝)의 지위를 선양하는 과정을 종래의 기록과는 다른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말하자면 요임금에게는 아홉 아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들들은 모두 영민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어 황제의 지위를 물려주지 않았다. 그리고는 순에게 황제의 지위를 선양했는데, 이때 요임금의 맏아들인 단주(丹朱)가 이에 원한을 품고 있다가 순임금이 훗날 남쪽 지방을 순시할 때 그를 살해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인류 최초로 원한을 품었던 이가 단주(丹朱)이기에, 단주의 원한을 풀어내는 해원(解寃) 사상이 가장 중요한 교리를 이루고 있음이 확인된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 역시 구체적 근거(根據)나 실록(實錄)에 기인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신뢰성이 떨어지지만 이와 유사한 견해가 현재 학계에서도 조심스럽게 보고 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쨌거나 순임금이 남순(南巡)을 떠났다가 노환(老患)으로 숨을 거두었다고 평가하기에도 논리적으로 부정합(不定合)한 측면이 많다. 만일 당시에 순임금의 노환(老患)이 심한 지경이었다면 남순(南巡)을 감행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점이 대두된다. 또한 노환(老患)이나 병환(病患)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면 그러한 사실에 대한 한 구절의 기록이라도 남아 있어야 할 터인데, 그렇지 못한 것도 순임금의 죽음과 관련된 의문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하다.『서경(書經)』에서 기술된 순(舜)에서 우(禹)로의 왕위 선양 과정은 자료의 빈곤 내지 의도적 왜곡에 의해 서술된 부분일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배제하고 보더라도 순임금의 죽음은 무언가 아쉬움을 남기는 부분이 많다. 성제(聖帝)로서의 지위를 굳건히 다졌음에도 급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한 견해가 타당성을 얻는 이유는 그의 두 아내인 아황과 여영의 태도에서 기인한다. 남편의 죽음에 대처하는 두 아내의 행동이 다소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후대의 사가(史家)들은 이비(二妃)의 자결을 남편에 대한 열(烈)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한번 윤리적으로 덧칠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순(舜)의 죽음과 아황(娥皇), 여영(女英)의 죽음은 세계의 횡포를 극복하지 못한 채 좌절한 결과로 삶을 마감했던 인물들의 형상임에는 틀림없다. 이와 같은 서사(敍事)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지고 있는가? 하는 물음이 다시 우리 앞을 가로 막고 선다. 순임금과 아황, 여영, 그리고 초나라 삼려대부를 지냈던 굴원 등이 지녔던 서사(敍事)는 오늘날 우리들의 삶에서 어떠한 의미 맥락 내지 단계의 의미를 감추고 있는 것일까? 이제는 논의의 초점을 이 방향으로 돌릴 필요가 있겠다.

九疑山暗雨中天 구의산(九疑山) 밤비 내리는 가운데 하늘을,
有意何人不慘然 뜻있는 사람이라면 누군들 슬퍼하지 않겠나.
半夜人呼?閣漏 한밤중에 사람들 배에 물이 샌다고 소리치고,
?工執?略難眠 李奎報, <東國李相國集> 後集 卷六,『韓國文集叢刊』第2卷 200쪽,「次韻復和李相國八景詩各一首」‘瀟湘夜雨’.
사공이 두레박 잡고 수습하니 잠들기 어렵네.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작품이다. ‘구의산(九疑山)’은 순임금이 죽어 묻힌 곳이다. 시적 화자는 그곳에 밤비가 내리는 형상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면서 의미 있는 말을 던졌다. 뜻이 있는 사람이라면, 말하자면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인들 매우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면서 순임금의 죽음을 애통해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애통함과 정면으로 대비되는 형상을 제시함으로써 무상감을 증폭시키는 방식으로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순임금과 아황 그리고 여영의 지난 옛일을 알 리 없는, 무심한 사공들은 깊은 밤중에 배에 물이 샌다고 여기저기서 소리를 질러대고 있는 상황을 제시했다. 동시에 그로 인해 사공들은 두레박을 손에 쥐고 배에 들어 찬 물을 빼내느라고 수습하기에 분주한 모습과 그로인해 잠 못 이루는 뱃사공들의 형상을 그려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에는 순임금의 두 아내였던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을 대상으로 작품으로 형상화한 경우를 살펴보겠다.

一??空碧 외기러기 푸른 허공에 울어대고,
秋氣生瀟湘 가을 기운 소상(瀟湘)에 생겨나네.
湘水晩容異 상수는 저녁에 형용이 다르고,
夜雨鳴浪浪 밤비는 눈물 흐르듯 울어대네.
竹林動哀響 대나무 숲에 슬픈 소리 진동하니,
二妃應涕滂 두 왕비 응당 통곡하는 울음이네.
涕痕?不盡 눈물자국 죄다 씻지도 못했는데,
千古斷人腸 李荇, <容齋集> 卷三, 『韓國文集叢刊』第20卷 395쪽,「瀟湘八景」‘瀟湘夜雨’.
오랜 동안 사람의 애간장을 끊네.

이 행(李荇;1478-1534)의 작품이다. 외기러기가 허공에서 울어댄다는 표현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외기러기를 등장시킨 것은 짝을 잃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남편 순임금을 잃은 아황과 여영의 신세를 빗댄 표현일 것이다. 그렇게 쓸쓸하고 처량한 마음을 가을날에 실어 소상강(瀟湘江)에 의탁했다. 상강(湘江)에 흐르는 물은 저녁이 되면 그 모습이 여느 때와 다르다고 했다. 그 다른 모습은 아황과 여영이 통곡하면서 흘리는 눈물이 밤비가 되어 내린다고 했다. 대나무 숲 속은 이비(二妃)가 흘린 피눈물이 반점(斑點)이 되어 대나무와 잎사귀에 떨어져 반죽(斑竹)이 되어 밤이면 밤마다 대숲에 슬픈 소리가 진동하니 이는 필시 두 왕비가 통곡하는 울음소리라고 형상화했다. 두 왕비가 흘렸을 눈물 자국을 죄다 씻지도 못했는데 수천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를 접하는 사람들의 애간장을 태운다고 했다.
이번에는 굴원(屈原)을 대상으로 형상화한 경우를 살펴보겠다. 소상야우(瀟湘夜雨)라는 시제(詩題)에서 굴원(屈原)을 대상으로 작품을 형상화한 경우는 대략 아홉 작품이 해당된다. 적지 않은 분량에서 굴원(屈原)을 다루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만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소상야우(瀟湘夜雨)라는 시제(詩題) 내지 화제(畵題)를 대상으로 작품을 창작하는 경우 문인(文人) 화가(畵家)들의 인식 속에는 일정 정도 굴원(屈原)의 형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굴원의 어떠한 점이 순임금과 아황, 여영의 서사적 맥락과 부합하기에 소상야우(瀟湘夜雨)라는 동일한 시제(詩題) 내에서 융화될 수 있었던가 하는 점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一夜湘江雨 밤새도록 상강에 내리는 비가,
三秋楚客心 가을날 초나라 굴원 마음이네.
心應懸魏闕 마음은 응당 조정에 달려있어,
通昔動哀音 千峯,『匪懈堂瀟湘八景詩帖』, 瀟湘夜雨.
밤새도록 슬픈 소리 진동하네.

법명(法名)이 만우(卍雨;1357-未詳)라고 일컬어지던 천봉(千峯) 스님의 작품이다. 안평대군과 함께 자주 어울리던 스님으로 불가(佛家)에서 시(詩)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이 작품에서 굴원(屈原)의 충성스러운 마음을 소상야우(瀟湘夜雨)라는 시제(詩題)에 담아 표현하고 있다.
밤새도록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소상강의 밤비가 가을날 초나라 굴원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했다. 초객(楚客) 혹은 축객(逐客)은 굴원(屈原)을 의미한다. 임금에게 충성을 다했으나 임금은 그를 알아주기는커녕 도리어 내쫓았다. 임금 곁에서 쫓겨났으면서도 마음은 늘 조정과 백성들의 안위를 염려했던 굴원(屈原)의 옛일을 회상하면서 밤새도록 내리는 비와 바람 소리를 굴원(屈原)의 한이 맺힌 슬픈 소리가 진동하는 것이라고 형상화하고 있다.
이밖에 여타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 형상들은 모두 순(舜) 임금과 아황(娥皇), 여영(女英) 그리고 굴원(屈原)에 대한 옛일을 전제로 한다. 이 인물들이 형상화된 상황을 정리해보면 작품 속 인물로 등장하여 비 내리는 소상강(瀟湘江)에서 배를 대려고 하고 있거나 내리는 비와 불어대는 바람에 일정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도 아니면 감상자 내지는 화자(話者)로 등장하여 정서(情緖)의 일단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소상야우(瀟湘夜雨)의 작품에서 감추어져 있는 의미 맥락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순임금과 아황, 여영 그리고 굴원(屈原)이라는 인물 형상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들을 관통하고 있는 서사(敍事)의 핵심은 무엇일까? 아마도 세계의 횡포에 휘둘린 자아(自我)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우리 인간의 삶에 빗대어 본다면 어떤 의미 맥락에 해당할 수 있을까? 세계의 횡포에 휘둘린 채 쓰라린 패배를 맛볼 수밖에 없는 현실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무관한 일인가?
그렇지 않다. 소상야우(瀟湘夜雨)에 감추어져 있는 의미 맥락은 바로 우리들의 삶과 너무나도 밀착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니 어쩌면 소상팔경(瀟湘八景)의 다른 어떤 작품보다 더 인간의 삶과 밀착되어 있으면서도 가장 흔하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쉬운 작품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세계와의 대결(對決)과 좌절(挫折)의 의미 맥락인 것이다. 대결과 좌절이라는 서사적 맥락은 패배에 대한 결과로 좌절(挫折)과 슬픔의 감정을 요구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계와의 대결을 회피할 수 없다. 세계와의 대결이란 말이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 글에서 의미하는 세계와의 대결이란 자아와 자아가 아닌 모든 사람, 그리고 환경 등을 포함한 모든 대상이 세계에 해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와 남의 갈등은 물론이고 나와 조직의 갈등, 나와 내가 속한 조직 구성원과의 갈등 등등 모든 상황이 세계와 대립하고 있는 상태에 해당한다.
이런 경우 때로는 세계의 횡포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세계관을 현실에서 구현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그런 경우는 드물다. 인간은 늘 자신의 역량보다 몇 배는 더 큰 현실적 무게와 벽에 부딪힌 채, 좌절을 맛보는 것이 보통의 삶이 지닌 의미(意味)일 것이다. 그 점은 순임금이라고 예외일 수 없었고, 아황과 여영이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그리고 굴원의 삶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뿐만이 아니라 인간이 존재하는 한 세계의 횡포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자연(自然)이, 때로는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문명(文明)이, 또 때로는 인간들 스스로가 서로에게 횡포(橫暴)를 휘두르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맞이하여 세계와의 대결에서 패배하고 좌절하는 단계가 바로 소상야우(瀟湘夜雨)라는 시제(詩題) 내지 화제(畵題)에 감추어진 의미 맥락에 해당할 것이다.

3.4. 원포귀범(遠浦歸帆) : 고향(故鄕) 내지 모체(母體) 내부로 회귀욕망

원포귀범(遠浦歸帆)을 노래한 한시(漢詩)는 53수에 이른다. 그리고 관련 시조(時調) 2수가 전해지고 있다. 원포귀범(遠浦歸帆)은 그동안 제목 자체에 대한 오역(誤譯)이 있었다. 원포귀범(遠浦歸帆)을 종래에는 대체로 “먼 포구로 돌아오는 배” 혹은 “멀리에서 포구로 돌아오는 배”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국역(國譯)은 제목 자체의 실상과 다를 뿐만 아니라 작품의 실상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원포귀범(遠浦歸帆)은 원포(遠浦)와 귀범(歸帆)의 합성어로 볼 수 있다. 원포(遠浦)는 원(遠)이 포(浦)를 수식하는 관계로 먼 포구 혹은 멀리 있는 포구를 의미한다. 그리고 귀범(歸帆)은 돌아가는 배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귀범(歸帆)을 돌아가는 배가 아니라 돌아오는 배로 볼 경우에는 원포(遠浦)에 대한 국역(國譯)이 옹색해진다. 원포귀범을 우리말로 옮길 때 고려할 점은 시점(視點)이다. 원포(遠浦)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먼 포구’ 내지는 ‘멀리 있는 포구’로 옮겨야 하는지 아니면 ‘멀리 포구로’ 혹은 ‘멀리로부터 포구를 향해’로 해석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요약하면, ‘원포(遠浦)’에서 ‘원(遠)’이 ‘포(浦)’를 수식하는 형용사로 볼 것인가? 아니면 부사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귀범(歸帆)’은 ‘돌아가는 배’로 볼 것인가 아니면 ‘돌아오는 배’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돌아가는 배와 돌아오는 배를 말할 때는 모두 발화자의 위치를 향한다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그러나 원포(遠浦)와 함께 해석할 때는 문제가 발생한다. ‘먼 포구로 돌아오는 배’보다는 ‘먼 포구로 돌아가는 배’로 보는 것이 사리에 맞는다. 작품의 실상도 이와 일치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원포귀범(遠浦歸帆)이라는 제목으로 창작된 시가(詩歌)와 회화(繪畵)에는 공통된 고사(故事)가 있다.『세설신어(世說新語)』와 『진서(晋書)』, 「장한전(張翰傳)」에 따르면 남북조 시대의 진(晉)나라 장한(張翰)이라는 사람과 관련된 고사이다. 장한(張翰)은 자(字)가 계응(季應)이고, 시호(諡號)는 강동보병(江東步兵)이었다. 남북조 시대의 진(晉)나라 오군(吳郡) 사람이다. 제나라 왕을 보필 해 '동조연(東曹椽)'이라는 벼슬에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가을바람이 불자 고향인 강동(江東)의 농어회와 순채국이 생각난다며 아무런 미련 없이 관직을 버리고 귀향했다. 고향인 오군(吳郡) 송강(松江) 지역으로 낙향하면서 하는 말이,

“삶이란 뜻에 맞으면 그만이지, 고향에서 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멀리 나가, 하필 헛된 명예만을 구할 것인가?(人生貴得適意爾, 何能羈宦, 數千里以要名爵)”

는 말을 남겼던 문인이다. 많은 수의 작품이 진나라 장한의 고사를 토대로 창작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일찍부터 장한(張翰)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았다. 그 가운데 이백의 <송장사인지강동(送張舍人之江東)>이라는 시가 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장사인을 통해 옛적의 장한 고사를 언급하고 있다. “장한이 강동으로 갈 때에/ 마침 가을바람 불었네./ 맑은 하늘은 한 마리 기러기를 전송하고,/ 바다 관문에 외딴 배가 더디네./ 밝은 해는 서서히 지려하고,/ 푸른 물결 아득하니 기약하기 어렵네./ 오땅에서 달을 보게 되면,/ 천리 밖에서 행여 생각날까.(張翰江東去/正値秋風時/天淸一雁送/海關孤帆遲/白日行欲暮/滄波杳難期/吳州如見月/千里幸相思)”
뿐만 아니라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는 강동(江東)으로 돌아가는 장한(張翰)을 위해 의작(擬作)하여 서(序)를 지었는데, 그 글에 이르기를, “사군자(士君子)가 이 세상을 살아감에는 출사(出仕)하고 은둔(隱遁)할 뿐이니, 출사하고 은둔하는 도(道)는 때에 맞게 할 뿐이다.
그러나 시비(是非), 훼예(毁譽), 승침(昇沈), 득상(得喪)으로 그 마음을 동요하지 않아서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아래로는 사람을 탓하지 않아 분수에 편안한 것이 바로 철인(哲人)의 도(道)이다. 그리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자락(自樂)했던 자는 이윤(伊尹)이고, 낚시질에 의탁했던 자는 여상(呂尙)이고, 적송자(赤松子)를 따라 방외(方外)에서 노닐었던 자는 장량(張良)이고, 재물을 싣고 해도(海島)로 들어가 자신을 더럽혔던 자는 범려(范?)이다. 이 네 사람이 의탁한 대상은 비록 각기 달랐으나 세상이 좋아지면 나가서 도를 행하고 세상이 나빠지면 떠나가서 자신의 하고자 하는 바를 따른 점에 있어서는 똑같다.
나의 벗 장한(張翰)은 강동 사람인데 종사관으로 있다가 어느 날 가을바람이 불어오자 고향인 강동 지방의 별미인 농어회와 순채 나물을 그리워하여 탄식하기를, ‘인생은 뜻에 맞음을 귀하게 여길 뿐이다. 부귀가 무슨 소용인가!’ 하고는 마침내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아! 출사할 만한 때인지 은둔할 때인지는 내가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세상사로 자신의 지조를 바꾸지 않고 명성을 이루려고 하지 아니하여 은둔하여도 곤궁함을 걱정하지 않고 인정을 받지 못해도 근심하지 않아 미물(微物)에 흥(興)을 붙여 욕심 없이 자득(自得)함에 있어서는 그대의 하는 바가 네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다고 할만 하다.” 윤선도(尹善道;1587-1671),『孤山遺稿』卷五.
라는 기록이 전한다.
이와 같은 기록만 보더라도 장한(張翰)의 고사를 통해서 시상을 전개하고 있는 원포귀범(遠浦歸帆)의 형상과 함의가 무엇인지 대략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원포귀범-1>
渡頭烟樹碧童童 나루터 내 낀 초목 푸름이 무성하고,
十幅編蒲萬里風 열 폭 부들 돛폭에는 고향의 바람이네.
玉膾銀蓴秋正美 농어회와 순채국맛 가을의 참맛이라,
故牽歸興向江東 李仁老,『三韓詩龜鑑』卷之中, ‘遠浦歸帆’.『東文選』卷二十,「宋迪八景圖」‘遠浦歸帆’.
짐짓 돌아갈 흥에 끌려 강동 향하네.

이인로(李仁老;1152-1220)의 작품이다. 배가 나고 드는 나루터에는 안개가 자욱하다. 주변에는 푸른 초목이 무성하다. 열 폭의 부들포로 만든 돛에는 고향에서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일어난다. 옥처럼 눈부신 농어회와 은빛 나는 순채국의 맛은 그야말로 고향에서나 맛 볼 수 있는 가을의 진미(珍味)다.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흥취(興趣)가 절로 난다.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흥이 절로 나서는 강동(江東)을 향해 간다. 사실 작품에서는 언급되지 않고 있지만 작품 속 인물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상황에 대한 설정은 그저 행간의 의미를 통해서나 파악할 수 있다. 아니 시인은 그것을 독자가 읽어내야 할 몫으로 남겨두었다. 분명 고사(故事)의 주인공인 진나라 장한(張翰)이 낙양에서 관직 생활을 하다가 뜬금없이 농어회와 순채국 맛을 핑계로 고향으로 돌아갔을 리는 만무하다. 그가 고향인 오군(吳郡) 송강(松江) 지역으로 낙향하면서 했던 말이 “삶이란 뜻에 맞으면 그만이지, 고향에서 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멀리 나가 하필 헛된 명예만을 구할 것인가?(人生貴得適意爾, 何能羈宦數千里以要名爵)”라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은 당시 장한의 삶은 자신이 생각했던 뜻과 맞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뜻에 맞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을 둘러싼 외부 상황과 대결과 갈등이 극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현실로부터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경을 피력한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다.

<원포귀범-2>
帆遠天遙水色滄 돛배 멀리 하늘가에 있고 물빛 푸르니,
未知舡與浪低昻 배와 물결 높고 낮음 알 수가 없구나.
不須更說如飛去 날듯이 가는 모습 더 말할 필요도 없이,
一轉頭間又轉茫 李奎報, <東國李相國集>後集卷六,『韓國文集叢刊』第2卷 196쪽,「次韻李平章仁植虔州八景詩幷序」‘遠浦歸帆’.
한 번 머리 돌릴 사이에 또 아득해지네.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작품이다. 돛을 단 배가 아득한 하늘 끝에 있는데 그 돛단배의 주변 물빛이 푸르다. 배와 물결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높은지 낮은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하고 작게 형상화되었다. 마치 날아가듯 가는 모습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가는 지 한 번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보면 어느새 또 아득하게 멀어진다고 했다. 이 작품은 앞서 살펴본 이인로(李仁老;1152-1220)의 작품 <원포귀범-1>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앞의 작품이 현실의 갈등과 번민을 벗어던지고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일반적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면 이 작품은 돌아가고 있는 형상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치 하나로 이어지는 영상을 보는 듯하다. 앞의 작품이 나루터를 출발할 당시의 형상을 다루었다면 이규보의 작품은 나루터를 벗어난 배가 수평선 부근에 도달한 상태임을 말해 준다. 현실에 대한 아무런 미련이 없다는 사실을 순식간에 아득하게 사라져 가는 배의 형상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만일 현실에 대한 미련이 많았다면 그처럼 시원시원하게 미끄러져 가듯이 날아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원포귀범-3>
千里蓴方美 천리 고향 순채국 정녕 맛좋아,
東吳客大忙 동오의 나그네는 무척 바쁘시네.
拏舟葦間去 배를 잡고 갈대 사이로 나가니,
蕭瑟朔風長 千峯,『匪懈堂瀟湘八景詩帖』, 「遠浦歸帆」.
소슬한 북쪽 바람이 길기만하네.

만 우(卍雨;1357- 未詳)의 작품이다. 머나먼 고향의 진미 순채국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 맛을 떠올리며 고향으로 돌아가는 나그네 마음은 분주하기만 하다. 급한 마음에 서둘러 배를 잡고 갈대 사이로 나가는데 쓸쓸하게 부는 북풍(北風)이 오랫동안 불고 있다. 사실 귀향(歸鄕)을 하고자 할 때, 가장 일반적인 경우는 병환(病患)이나 노환(老患)처럼 자신의 노쇠함을 구실 삼아 물러난다. 혹은 부모님을 봉양하겠다는 이유이거나 부모님 상(喪)을 당하여 귀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장한(張翰)과 같이 고향의 별미인 농어회와 순채국 맛이 그리워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그러한 판단과 언급 이면에는 현실에 대한 깊은 염증 내지 혐오감이 감추어진 듯한 분위기를 배제할 수 없을 듯하다. 오히려 현실의 질서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면 강할수록 훌쩍 떠나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원포귀범-4>
渺渺蒼波不見洲 아득히 푸른 물결 육지는 보이지 않고,
征帆一片下中流 한 조각 돛단배 물결 가운데 내려오네.
烏飛浦口?聞櫓 돛대 날던 포구 막 노 젓는 소리 듣곤,
?沒天涯已失舟 뱃머리 하늘 끝에 잠겨 이미 배를 잃었네.
千里蓴?乘逸興 천리 길 순채와 농어 빼어난 흥취를 탔고,
百秊鐘鼎寄微? 백년의 부귀영화 미세한 물거품에 부치네.
行行過盡楚山下 가고 가며 모조리 지났어도 초산 아래인데,
暮聽斷猿何處留 崔恒,『匪懈堂瀟湘八景詩帖』, 遠浦歸帆.
저녁에 듣는 애끊는 잔나비 소리 어디서 머무나.

최 항(崔恒;1409-1474)의 작품이다. 아득하게 푸른 물결만 보이고 육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 것으로 보아 배는 이미 고향을 향해 나루터를 떠난 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물결 가운데로는 돛단배 한 척이 스쳐 지나간다. 바람에 날리던 돛대(檣烏)를 포구에서 보고는 막 노 젓는 소리를 들은 듯한데, 어느새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지점에까지 이르러 뱃머리가 하늘 끝에 잠겨서 어디쯤 가는 지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처럼 배가 질주하듯 사라지는 것은 고향을 향하는 사람의 발걸음이 가볍기 때문일 것이다. 고향의 별미인 순채와 농어회를 생각하니 흥취(興趣)가 절로 일어난다. 백년의 부귀영화쯤이야 미세한 물거품에 부쳐서 버린다. 한참을 지난 듯한데도 여전히 초나라 산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해가 저물었는지 곳곳에서 애끊는 잔나비 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오늘밤은 또 어디에서 머무를 것인가? 하는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작품 속 인물은 흥취(興趣)까지 언급하면서 고향을 향해 가고 있지만 세상사의 곡진한 구석구석이 아직까지는 말끔하게 정리되지 못한 듯 곳곳에 서러움과 복잡한 심사가 베어있음이 감지된다.

<원포귀범-5>
遠水平如練 먼 곳 물이 비단결처럼 평온하니,
輕帆疾似禽 가벼운 돛단배는 새처럼 질주하네.
何令盛代士 어찌 지금 태평성대 선비들로 하여금,
遽起討蓴心 成三問, <成謹甫集> 卷一, 『韓國文集叢刊』第10卷 184쪽,「瀟湘八景」, ‘遠浦歸帆’.
갑작스레 장한의 순심을 일으키겠나.

성삼문(成三問;1418-1456)의 작품이다.『비해당소상팔경시첩(匪懈堂瀟湘八景詩帖)』에 수록된 작품들은 그림을 바라보며 창작한 작품들이다. 시인이 바라보고 있는 그림 원포귀범도(遠浦歸帆圖)에 형상화된 물결은 비단결처럼 잔잔하다. 그리고 그 위를 마치 한 마리 새가 자유롭게 날아가듯 먼 곳을 향해 빠르게 나아가고 있는 형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처럼 빠르게 질주하고 있는 배를 그린 것은 부조리한 현실이 존재하고 있음을 은근히 암시하는 것이다. 질곡 되고 왜곡된 현실 세계의 질서를 전제로 원포귀범(遠浦歸帆)이라는 시제(詩題) 내지 화제(畵題)가 생성되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랬기 때문에 성삼문과 같은 시인이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의 상황과 진나라 장한이 귀향을 결심하고 떠날 당시를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처럼 태평한 시절에 어떤 선비들이 현실에 불만을 품고서 장한(張翰)처럼 순심(蓴心)을 핑계로 고향으로 돌아가겠는가 하고 반문했다.

<원포귀범-6>
十幅迎潮擧 조수를 맞아 열 폭 돛이 올라가니,
雙橈鼓?催 두 개 노와 키 두드리며 재촉하네.
浪花飛雪棹頭開 포구 열고 노 저으니 물거품 눈처럼 날고,
萬里好歸來 만 리나 되는 길을 잘도 가고 잘도 오네.
風利難敎泊 바람이 이롭기에 머무르게 하기 어렵고,
波恬未擬回 물결도 고요하니 돌아갈 생각 하지 않네.
遙岑帆外露微堆 먼 봉우리 돛배 너머 흐릿한 두둑 드러나니,
應是澤名雷 魚世謙,『咸從世稿』卷七,「次益齋八景」‘遠浦歸帆’.
응당 연못 이름은 뇌택(雷澤)이겠네.

어세겸(魚世謙;1430-1500)의 작품이다. 배가 물때를 만나 열 폭 돛이 일제히 올라간다. 두 개의 노를 가지고 키를 두드리며 귀향을 재촉한다. 포구를 열어젖히고 노를 저으니 물거품이 눈처럼 날린다. 만 리나 되는 고향 길을 잘도 돌아온다. 바람이 이롭기 때문에 잠시라도 머무르기 어렵고 게다가 물결조차 고요하니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돛단 배 너머로 보이는 아득한 봉우리에 희미한 두둑이 드러난다. 만일 그곳에 연못이 있다면 응당 이름은 ‘뇌택(雷澤)’일 것이라고 했다. 뇌택(雷澤)은 순(舜)임금이 젊은 시절 온갖 험한 일을 하며 지낼 때 물고기를 잡으면서 생계를 유지했던 곳으로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원포귀범-7>
五五復三三 배들은 삼삼오오 떼 지어 다니고,
編浦風自擧 포구 엮은 바람 절로 돛이 오르네.
波平一片遲 평온한 물결위로 조각배만 더디니,
莫是江東去 蘇世讓, <陽谷集> 卷十, 『韓國文集叢刊』第23卷 440쪽,「瀟湘八景」‘遠浦歸帆’.
강동(江東)으로 가는 것은 아니네.

소세양(蘇世讓;1486-1562)의 작품이다. 때마침 포구에 부는 바람이 좋아 배들은 저마다 돛대를 올리고 삼삼오오 떼를 지어 나아간다. 그런데 유심히 바라보니 평온한 물결 위로 조각배만 더디게 나아간다. 평온한 물결 위로 더디게 나아가는 조각배를 보면서 시인은 그 배가 강동(江東)으로 가는 배는 아닐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시인이 그렇게 단정 짓는 이유는 만일 그 조각배가 강동(江東)을 향해 가는 배였다면 그토록 더디게 나아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향 강동(江東)으로 돌아가는 배라면 혐오스러운 현실로부터 벗어나는 길이므로 흥에 겨워 마치 날아가듯 순식간에 미끄러져 갔을 텐데 더디게 나아가는 형상으로 보아 추잡한 현실을 떨쳐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배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원포귀범-8>
楓落吳江上 단풍나무 오강 변에 떨어지고,
浦帆送晩風 포구 돛배 저녁바람 보내오네.
惟須數行? 단지 서너 줄 기러기 헤아리니,
和影點寒空 李廷?, <四留齋集> 卷一, 『韓國文集叢刊』第51卷 253쪽,「題畵屛瀟湘八景」‘遠浦歸帆’.
추운 하늘 그림자와 점이 되네.

이정암(李廷?;1541-1600)의 작품이다. 단풍나무 잎사귀가 오강(吳江) 변에 지고 있다. 때마침 포구로 저녁바람이 불어온다. 서너 줄로 열을 맞힌 채 날아가는 기러기 행렬을 바라본다. 차가운 가을 하늘에 기러기 그림자가 어울려 점이 된다. 오강(吳江)은 진나라 장한의 고향으로 오군(吳郡)에 있는 송강(松江)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낙양을 떠나 고향에 도착한 상황에 주목하여 창작한 작품으로 보인다. 시인은 붉게 물든 단풍이 떨어지는 애상적 분위기를 통해 고향의 분위기를 상상했다.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날아가는지 기러기 행렬이 차가운 하늘과 어우러져 그림자가 점이 된다고 했다. 이 작품에서는 흥취(興趣)는 이미 사라지고 애상적(哀傷的)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원포귀범-9>
洞庭湖闊水連天 동정 호수 광활하여 수평선이 하늘에 닿고,
吳楚東南望渺然 오초의 동남쪽을 바라보니 멀리로 아득하네.
一片歸舟向何處 일엽편주 돌아가는 배 어느 곳을 향하는가,
孤帆影盡白雲邊 鄭斗卿, <東溟集>卷二,『韓國文集叢刊』第100卷, 409쪽,「題瀟湘八景圖」‘遠浦歸帆’. 이 작품은 洪滄浪, <瀟湘八景詩歌抄> 31쪽에도 수록되어 있다. <瀟湘八景詩歌抄>는 우리나라의 문헌이 아니라 일본에서 1688년에 간행된 책이다. 이 책에는 일본인들이 노래한 소상팔경 한시와 그림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유일하게 홍창랑(洪滄浪)이라는 이름으로 8수가 실려있다. 여기서 ‘홍창랑’은 홍세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모두 정두경(鄭斗卿;1597-1673)의 <동명집(東溟集)>에 실려 있는 작품과 동일하다.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보건대, 홍세태(洪世泰;1653-1725)가 정두경에 비해 56년 뒤에 태어났다는 점, 또 다른 기록으로 보아 홍세태가 일본에 갔던 것은 사실이다. 일본 문인들과 ‘소상팔경’을 소재로 창작하는 과정에서 정두경의 작품을 그대로 노래했던 것이 일본에서 제작된 <瀟湘八景詩歌抄>라는 책에 수록된 것으로 보인다.
외딴 배 그림자 흰 구름 가로 아득히 사라지네.

정두경(鄭斗卿;1597-1673)의 작품이다. 동정(洞庭) 호수라는 구체적 지명을 통해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호수는 광활하여 수평선이 하늘에 닿아 있고, 오나라 초나라가 자리했던 동남쪽을 바라보니 멀리 아득하기만 하다. 일엽편주(一葉片舟) 돌아가는 배는 어디를 향하는가? 자세히 보려하자 어느새 조각배 그림자는 흰 구름 자욱한 하늘 끝으로 아득히 사라진다. 이 작품도 역시 배가 전진하는 속도나 시상 전개방식으로 보아 고향을 향하는 정서를 표출하고 있는 작품으로 보인다.

<원포귀범-10>
夕潮初上江門? 저녁 조수 처음 오르니 강문이 넓어지고,
冥冥獨鳥歸飛急 먼 하늘 새 한 마리 급히 날아 돌아가네.
斜陽欲落未落處 비낀 해 지려는데 아직 지지 않은 곳에,
忽有孤帆破天末 문득 외딴 배 한 척 하늘 끝을 깨뜨렸네.
蒼茫島嶼有無間 창망한 섬들이 그 사이에 있는지 없는지,
岸斷沙廻互出沒 언덕 끊겨 모래 빙빙 돌며 서로 출몰하네.
非無一棹與君歸 한 개 노가 없지 않아 그대와 함께 돌아갈지라도,
世亂不忍辭魏闕 金弘郁, <鶴洲全集> 卷四,『韓國文集叢刊』第102卷 37쪽,「次權進士昱瀟湘八景八首」‘遠浦歸帆’.
세상 어지러움을 차마 조정에는 말하지 못하겠네.

김홍욱(金弘郁;1602-1654)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원포귀범(遠浦歸帆)의 의미를 고찰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작품이다. 앞서도 몇 작품을 통해서 원포귀범(遠浦歸帆)이 귀향(歸鄕) 모티프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언급한 바가 있었다. 말하자면 현실의 부조리한 질서나 왜곡되고 몰가치의 현실을 거부하고 세계의 횡포로부터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나버리는 형상을 다룬 작품이 원포귀범(遠浦歸帆)의 작품 세계와 어느 정도 맥이 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시각은 이 작품을 통해서 더욱 명료해진다. 이 작품을 보면,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소 물때를 만나 비로소 강문이 넓어지고 출항하기에 좋은 시점이 되었다. 무슨 일이 그리 급하기에 해질 무렵에 출항을 하려는 모습이다. 아득한 하늘로 새 한 마리가 급히 날아간다. 마치 작품 속 현실을 떠나가는 이의 절박한 심정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듯이 날아간다. 비낀 해는 서산으로 지려는데 아직 석양이 조금 남아 있는 곳에 문득 배 한 척이 하늘 한쪽 끄트머리를 깨고는 떠나가는 장면이 시인의 눈에 포착되었다.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기에 자세히 보이지 않고 흐릿하기만 하다. 창망한 섬들이 그 사이에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아득하다. 언덕은 끊겨 있고 모래밭이 들쭉날쭉 이어졌다 사라지는 즈음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은 바로 마지막 두 행이다.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할지라도 세상의 어지러움에 대해서는 차마 조정(朝廷)에 말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이는 다른 관점에서 보면 조정(朝廷)을 떠나 고향으로 떠나가는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자 원포귀범(遠浦歸帆)이라는 시제(詩題) 내지 화제(畵題)가 지니고 있는 형상(形象)과 함의(含意)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라 하겠다.

<원포귀범-11>
風微任舒遲 바람이 약하면 천천히 더딤에 맡기고,
風緊從超忽 바람이 거칠면 멀리 아득하게 좇아가네.
點點遠浦間 멀리 있는 포구 사이로 점점이 있어서,
過去行?沒 權斗經, <蒼雪齋集> 卷七,『韓國文集叢刊』第169卷 126쪽,「述姪請賦瀟湘八景」‘遠浦歸帆’.
지나 가버리면 행적도 사라지는구나.

권두경(權斗經;1654-1725)의 작품이다. 바람이 미미하면 미미한대로 더디게 나아가고 바람이 세게 불면 세게 부는 만큼 빠르게 좇아간다. 멀리 보이는 포구 사이로 점점이 떠서는 한 번 지나가 버리면 종적초차 사라져 버린다고 했다. 바람에 따라 배의 속도를 결정하며 항해한다는 표현을 통해 세상사에 대처하는 시인의 자세가 엿보이는 듯하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한 세상 살아가겠다는 의지로 읽으면 비약일까? 한 번 지나가 버리면 흔적조차 이내 사라져버린다는 말을 통해 시인이 생각했을 시사(詩思)는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다. 세상사에 대처하는 스스로의 세계관 내지 인생관의 다른 표현방식이었으리라고 판단한다.

<원포귀범-12>
納納乾坤瑞靄輝 건곤을 포용한 상서로운 아지랑이 빛나고,
溶溶江水白鷗飛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로 백구가 날아가네.
紅霞碧浪更天? 붉은 노을 푸른 물결 하늘 더욱 공활하고,
帆帶斜陽緩緩歸 肅宗,『列聖御製』第十七篇,「瀟湘八景」‘遠浦歸帆’.
돛단배는 석양빛 띠고 느릿느릿 돌아가네.

숙종대왕(肅宗;1661-1720)의 작품이다. 한 나라를 경영하는 군주(君主)의 작품이기에 자못 흥미롭다. 원포귀범(遠浦歸帆)이라는 시제(詩題) 내지 화제(畵題)가 정치현실에 염증을 느끼고 조정(朝廷)을 한 점 미련 없이 떠나가는 형상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사대부들의 입장에서야 떠나가는 주체가 되어 현실적 한계에 봉착할 때마다 상상할 수 있는 처세의 방법이었겠지만 군주(君主)의 입장은 떠나는 신하(臣下)를 바라보는 시선이기에 어떻게 다른 시선이 개입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풀어내기에 알맞은 작품이 될 것이다. 한 나라를 이끌어가는 군주답게 시상이 크고 기상이 강건하다. 하늘과 땅의 기운을 모두 포용하고 있는 상서로운 아지랑이가 빛난다고 했다. 또한 도도하게 흘러가는 강물 위로 백구(白鷗)가 날아간다. 백구(白鷗)는 흔히 사심(私心)이 없는 존재로 인식되기에 한층 더 시상이 간결해지고 청정(淸淨)해 지고 있다. 붉은 노을과 푸른 물결을 대비시킴으로써 선명한 색채의 대조가 일어나고 매우 시각적인 심상이 강화된다. 그래서 하늘이 더욱 공활(空豁)하게 다가선다. 그런데 그토록 아름다운 풍경 아래로 돛단배가 가는데 군주이자 시인인 숙종의 시선을 따르면 배는 석양빛을 두른 채 느릿느릿 천천히 돌아가고 있는 형상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또 그렇게 작품으로 형상화하였다. 이러한 시선은 종래의 사대부들의 작품 세계와는 사뭇 대조가 되는 대목이다. 사대부들의 작품에서는 주로 아무런 미련 없이 가볍게 흥에 겨워 날아가듯 경쾌하게 항해하는 배들이 주를 이루었다면 숙종 임금의 작품에서는 정반대의 인식과 형상이 드러났다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림 > 원포귀범
앞서 논의했던 원포귀범(遠浦歸帆)의 형상과 함의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먼 포구로 돌아가는 배의 형상을 통해서 자신의 고향(故鄕) 내지는 태초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모체(母體) 내부(內部)의 공간 즉 태반(胎盤)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 욕망이라는 함의를 지니고 있었다고 논의하였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앞장의 논의 결과를 토대로 원포귀범(遠浦歸帆)이라는 시제(詩題)와 화제(畵題)에 감추어진 의미 맥락은 무엇인가 하는 점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겠다. 우선 명확하게 정리해야 할 것이 바로 원포귀범(遠浦歸帆)이라는 시제(詩題)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원포귀범(遠浦歸帆)은 원포(遠浦)와 귀범(歸帆)의 합성어이다. 원포(遠浦)은 원(遠)이 포(浦)를 수식하고 있다. 원(遠)은 ‘먼’ 혹은 ‘멀리 있는’에 해당하는 형용사이다. 그래서 먼 포구 혹은 멀리 있는 포구의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그런데 원(遠)을 형용사가 아니라 부사로 보아서 ‘멀리에서’, ‘멀리로부터’와 같이 해석할 경우에는 멀리로부터 포구로 돌아오는 배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작품의 실상과도 부합하지 않고 온당한 해석이 아니다. 따라서 원포귀범(遠浦歸帆)은 먼 포구로 돌아가는 배 혹은 멀리 있는 포구로 돌아가는 배라고 우리말로 옮기는 것이 작품의 실상과도 부합하는 동시에 한문 문장의 어법에도 일치한다는 사실을 먼저 지적하고 싶다.
다음으로 원포귀범(遠浦歸帆)에 등장하는 인물 형상에 주목할 차례이다. 원포귀범에서 가장 강력한 의미(意味)를 지니고 있는 인물이 바로 남북조 시대에 진(晉)나라 장한(張翰)의 고사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선 제3장에서 자세한 언급이 있었다. 3.4. 원포귀범(遠浦歸帆) : 고향(故鄕) 내지 모체(母體) 내부(內部)로의 회귀 욕망을 참조, 출전은 『세설신어(世說新語)』와 『진서(晉書)』의 「장한전(張翰傳)」을 참고.
제나라 왕을 보필하며 관직 생활을 하다가 어느 가을날 홀연 고향인 강동(江東)의 농어회와 순채국 생각이 난다면서 아무 미련 없이 관직을 버리고 귀향(歸鄕)했던 인물이다. 그가 떠나면서 남긴 말은 다음과 같다.

“삶이란 뜻에 맞으면 그만이지, 고향에서 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멀리 나가, 하필 헛된 명예만을 구할 것인가?(人生貴得適意爾, 何能羈宦, 數千里以要名爵)”

라는 말을 남겼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로, 많은 문인들이 진나라 장한의 고사를 이용하여 작품을 창작하는 관습이 생겨났다. 장한이 고향의 농어회와 순채국 생각이 간절해졌다는 것은 일종의 구실에 불과한 것이다. 현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말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고단하고 염증 나는 현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수단인 셈이었다. 사대부 문인들이 자신의 병(病)을 핑계 삼거나 노부모 봉양을 핑계 삼아 정치 현실을 떠나고자 했던 의도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진나라 장한 이외에 어부의 인물 형상, 나그네, 굴원(屈原), 사공, 기녀, 호신(湖神), 사람들, 아이들, 장사치, 손(客) 등의 인물 형상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이 작품 속에서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는가 하는 점을 살펴본다.

<원포귀범(遠浦歸帆)>에 등장하는 인물 형상
차례
등장인물
인물형상
논문부록
한시작품 일련번호
1
진(晉) 장한(張翰)
고향의 농어회와 순채국이 그리워 미련 없이 귀향함
1,12,14,15,28
2
시적 화자 나(我)
배를 타고 떠나가는 나그네를 부러워하는 시적 화자
6
3
손(客)
배를 타고 떠나가는 인물이거나 그림 속 등장인물
6,8,11,12,23,34,51
4
너(爾, 君)
배를 타고 떠나가는 인물의 형상
7,37,52
5
장사꾼(賈客)
배를 타고 떠나가는 장사치들의 소박한 형상
9
6
아이(兒童, 稚子)
장사치들의 순수한 마음을 아이들에게 빗댄 표현
9,16
7
사람(人人, 人)
순풍을 소망하는 뱃사람(9), 그림을 그린 화가(46)
9,46
8
미인(紅袖)
강변 누각에서 돌아오는 배를 기다리고 있는 미인
11
9
사공(?工, 舟子)
배에서 힘들게 혹은 여유롭게 노를 젓고 있는 모습
30,41
10
어부(漁人, 漁翁)
일상적 어부의 삶, 노래 부르는 어부, 평범한 삶의 모습
24,34,36,49,50,51
11
굴원(楚客)
쓸쓸한 모습으로 임금의 곁을 떠났던 굴원의 모습
40
12
나그네(遊人)
호수와 바다로 떠나가는 나그네의 모습
41

원포귀범(遠浦歸帆)에 등장하는 인물 형상은 대략 12가지 정도로 정리가 된다. 열두 가지 인물 형상들이 작품 내에서 각각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는가 하는 점에 주목하면 크게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원포귀범(遠浦歸帆)에서 가장 강력한 서사(敍事)를 지니고 있는 것은 진(晉)나라 장한(張翰)의 서사(敍事)와 어부(漁人), 손(客) 등으로 형상화된 인물이다. 이들이 작품 안에 형상화된 공통점은 1, 12, 14, 15, 28번 작품 등과 같이 현실에 아무런 미련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떠나가는 인물을 형상화하고 있거나 혹은 24, 34, 36, 49, 50, 51번 작품에 등장하는 어부의 모습처럼 평온하거나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림 > 원포귀범 中 인근에서 작은 배를 타고 고기를 잡고 있는 두 인물
그 외에도 현실을 박차고 떠나가는 인물을 바라보면 부러움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6번 작품도 있고, 배를 타고 떠나가는 인물 형상을 다루고 있는 7, 9, 37, 52 등의 작품이 확인된다. 이를 종합해보면 원포귀범(遠浦歸帆)에는 현실 세계의 질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인물 형상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현실 세계를 떠나지는 못하고 있으나 앞서 떠나는 인물을 부러워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현실에 집착하기 보다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삶을 향유하는 인물 형상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그런데 시가(詩歌) 문학이나 회화(繪畵)에서 이들이 현실로부터 떠나가는 이유까지 상세하게 형상화 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들이 현실로부터 벗어나 어딘가로 떠날 때는 분명 필연적인 이유가 있을 터이다. 하지만 그러한 전체적인 서사적 맥락을 모두 포착하기에는 예술이라는 영역이 턱없이 허술하다. 그래서 그 전체적인 서사적 맥락 가운데 특정 부분을 포착하여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그 특정한 부분을 글로 포착해 놓으면 시문학이 되고, 그림으로 포착해 놓으면 회화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왜 떠나가는 것이고, 어디로 떠나가는 것인가에 대한 점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검토해볼 필요가 있겠다.
우선 왜 떠나야만 하는가? 에 대한 문제이다. 원포귀범(遠浦歸帆)의 서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장한(張翰)이라는 인물을 살펴본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유로 내세웠던 ‘옥회은순(玉膾銀蓴)’ 李仁老,『三韓詩龜鑑』卷之中, ‘遠浦歸帆’.『東文選』卷二十,「宋迪八景圖」‘遠浦歸帆’.
은 말 그대로 옥같이 고운 농어회와 눈부시게 하얀 순채국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임금을 모시고 정사(政事)에 임했던 관리로서 고향의 음식이 생각나서 떠난다는 것은 일종의 변명인 셈이다. 그것이 변명임을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떠나면서 남겼던 말이다. 고향으로부터 천리나 떨어진 곳까지 와서 어째서 헛된 명예만을 구하겠는가! 는 말을 남겼다.
이러한 언급의 전후 맥락을 고찰해보면 작품 표면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갈등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장한이라는 인물의 내적 갈등이든 아니면 타인과의 외적 갈등이든 심적 갈등의 결과로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것이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가을바람이 분다고 고향의 진미(珍味) 생각이 간절하다는 핑계를 대며 떠나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다음과 같은 작품을 통해서 그러한 내면을 읽을 수 있는 단서가 마련된다.


遠水平如練 먼 곳 물은 비단결처럼 평온하고,
輕帆疾似禽 가벼운 돛단배는 새처럼 질주하네.
何令盛代士 어찌 지금 태평성대 선비로 하여금,
遽起討蓴心 成三問, <成謹甫集> 卷一, 『韓國文集叢刊』第10卷 184쪽,「瀟湘八景」, ‘遠浦歸帆’.
갑자기 장한의 순심을 일으켰겠나.

성삼문(成三問;1418-1456)의 작품이다. 가볍게 떠나가는 돛단배 앞으로 멀리 수평선 부근이 비단결처럼 평온하다. 평온한 수면 위를 떠나가는 배의 형상이 마치 새가 질주하듯 항해하고 있다고 형용했다. 새가 질주하듯 날아가는 배에 타고 있는 인물이 아마도 장한(張翰)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제3행에서 언급했듯이 현실에 대한 인식이다. 지금처럼 태평성대(太平聖代)에 어떤 선비로 하여금 장한의 순심을 일으키게 했겠는가? 라는 언급을 들여다보면 태평성대가 아닌 혼란하고 어지러우며 세상에 도의(道義)가 사라진 세상이 되어야만 진나라 장한처럼 순심을 핑계로 현실을 떠날 수 있다는 논리가 전제되어 있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원포귀범(遠浦歸帆)에서 귀범(歸帆)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작품에서 형상화된 장한(張翰)의 경우는 고향(故鄕)이 최종 귀착지로 설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작품들의 경우는 구체적 목적지를 제시하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돌아가는 배의 형용이다. 어떤 경우는 시원스레 돌아가는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다. 이 경우에는 배의 속도가 매우 빠르게 나아간다. 물살을 가르면서 순식간에 미끄러지듯이 수평선 끝으로 순항을 하는 형상이다. 이러한 작품은 돌아가는 배의 행선지가 대체로 고향(故鄕)을 향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배가 더디게 움직이거나 포구 쪽을 향해 주저하는 형상은 고향으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흥취나 일상의 여유를 즐기려는 목적에서 그렇게 형상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帆遠天遙水色滄 돛배 멀리 하늘가에 있고 물빛 푸르니,
未知舡與浪低昻 배와 물결 높고 낮음 알 수가 없구나.
不須更說如飛去 날듯이 가는 모습 더 말할 필요도 없이,
一轉頭間又轉茫 李奎報, <東國李相國集>後集卷六,『韓國文集叢刊』第2卷 196쪽,「次韻李平章仁植虔州八景詩幷序」‘遠浦歸帆’.
한 번 머리 돌릴 사이에 또 아득해지네.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작품이다. 돛단배는 멀리 물빛 푸른 하늘가에 있다. 배와 물결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높고 어느 것이 낮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날아가듯 떠나가는 배의 속도가 얼마나 빠르던지 고개를 한 번 돌렸다가 다시 보자 더욱 아득해지는 모습으로 형상화하였다. 이처럼 주저하거나 더디지 않은 모습으로 떠나가는 배의 형상은 현실로부터 벗어나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현실에 대한 혐오감 내지는 탈출하고 싶은 소망이 크면 클수록 아무런 미련 없이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는 것이다. 홀가분하게 떠나는 인물의 형상이다. 반면 다음과 같이 형상화된 작품도 있다.

納納乾坤瑞靄輝 건곤을 포용한 상서로운 아지랑이 빛나고,
溶溶江水白鷗飛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로 백구가 날아가네.
紅霞碧浪更天? 붉은 노을 푸른 물결 하늘 더욱 공활하고,
帆帶斜陽緩緩歸 肅宗,『列聖御製』第十七篇,「瀟湘八景」‘遠浦歸帆’.
돛단배는 석양빛 띠고 느릿느릿 돌아가네.

숙종 임금(肅宗;1661-1720)의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형상화된 의취(意趣)는 여타의 사대부 문인들이 형성해 놓은 원포귀범(遠浦歸帆)과 사뭇 다르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다. 사대부 문인들이 원포귀범이라는 시제(詩題) 내지 화제(畵題)를 다룰 때는 주로 현실 인식이 중요한 잣대로 작용하여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인식이 성립되는 경우에는 장한(張翰)의 고사를 수용하여 홀가분하고 빠르게 질주하듯 미끄러져가는 돛단배의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러한 형상화 방식과 달리 하늘과 땅을 감싸 안고 있는 상서로운 아지랑이의 형상을 제시함으로써 한 나라의 군주다운 호연지기를 드러내면서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 위로는 사심 없는 순진무구한 백구가 날아가는 모습을 형용했다. 이와 함께 붉게 물든 노을과 이에 대비되는 푸른 물결을 묘사함으로써 선명한 색채의 대비를 이루었다. 붉은 노을과 푸른 물결 그리고 하늘은 더욱 공활하다.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한 뒤에 돛단배의 형상을 제시하였다. 이 돛단배의 형상은 여타의 원포귀범(遠浦歸帆) 작품에서 형상화된 것과 달리 느릿느릿 석양빛을 두른 채 돌아오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점은 사대부 문인들과 달리 한 나라의 군주(君主)라는 입장이 전제되었기에 가능한 형상화 방식이었다고 판단된다.
결국 앞의 두 상반되는 작품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현실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작품의 상반된 형상화를 유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다시 논의의 초점을 원포귀범(遠浦歸帆)의 귀범(歸帆)이 향하는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가? 하는 문제로 돌아가면 장한(張翰) 고사에서 언급했던 ‘고향(故鄕)’이 지니는 상징적 의미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가을이면 생각나는 고향의 진미(珍味)가 농어회와 순채로 만든 국이라고 했다. 이는 어린 시절부터 입맛을 들였던 음식물이다. 그래서 가을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그리운 맛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현실에 대한 인식이 스스로의 세계관과 부합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고향에 대한, 고향의 별미에 대한 생각은 간절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작게 보면 농어회와 순채일 테지만 보다 크게 보면 그것은 고향(故鄕)을 대신하는 상징물들이다. 더 크게 보면 사실은 가장 평온하고 안락했던 공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인간의 본능적 욕망일 것이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농어회와 순채국을 하나의 상징으로 보아야만 원포귀범(遠浦歸帆)이라는 서사적 맥락을 보다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원포귀범(遠浦歸帆)에서 귀범(歸帆)의 최종 목적지는 고향(故鄕)이라고 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면서 본원적 의미의 고향(故鄕)이 어디인가? 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면 우리가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은 어디인가? 바로 자신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던 특정한 공간이 고향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보다 더 오래전 스스로의 생명이 잉태되어 한 개체를 이룬 상태에서 평온하면서도 안락하게 지냈던 어머니의 몸속 공간인 모체(母體) 내부(內部) 즉 태반(胎盤)으로의 회귀하려는 본능이 바로 원포귀범(遠浦歸帆)의 최종 귀착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판단을 해본다. 어찌 보면 인간의 삶도 항해에 비유할 수 있겠다. 멀리에 존재하는 포구를 항해 닻을 올린 후 계속해서 목적지를 향해 항해를 지속하고 있다. 그 최종 목적지가 바로 어머니의 품속이 아닐까 생각한다. 태초에 자신의 생명이 잉태되어 있던 평온한 공간, 따뜻한 대지의 품속, 그곳이 바로 원포귀범(遠浦歸帆)의 최종 목적지는 아닐까?

3.5. 평사낙안(平沙落?) : 현실(現實)과 이상(理想) 사이의 대립과 갈등

평사낙안(平沙落?)을 노래한 한시 작품은 총 59수이다. 그리고 직접 간접적으로 관련된 시조(時調) 작품이 17수가 있다. 평사낙안(平沙落?)은 넓은 모래밭에 내려앉는 기러기의 형상을 다룬 작품이다. 기러기들이 평사(平沙)에 내려앉는 이유는 주로 휴식(休息)과 생계(生計)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동시에 평사(平沙)에는 인간의 기심(機心)이 넘치고 있었다. 때문에 기러기들에게는 주살과 화살이 횡행하는 불안한 공간이기도 했다. 늘 이상(理想)을 꿈꾸지만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실(現實)에 발을 디디고 있어야만 하는 인간의 삶을 형상화한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의 작품들이 많다. 출처진퇴(出處進退)의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형상화된 작품 군이다.

<평사낙안-1>
水遠天長日脚斜 물은 멀고 하늘 길어 햇발이 비껴있는데,
隨陽征?下汀沙 양지 따라 기러기들 물가 모래에 내리네.
行行點破秋空碧 줄지어 가을 하늘 푸름 점점이 깨뜨리고,
底拂黃蘆動雪花 李仁老, 『三韓詩龜鑑』 卷之中, ‘平沙落?’. 『東文選』 卷二十, 「宋迪八景圖」 ‘.平沙落?’.
누런 갈대밭 낮게 스쳐 눈꽃을 뒤흔드네.

이인로(李仁老;1152-1220)의 작품이다. 멀리까지 물이 가득한 화면이다. 하늘은 넓고 먼데 햇발이 비껴있는 것으로 보아 해가 저물 무렵이다. 기러기들은 볕을 따라서 물가를 따라 펼쳐져 있는 모래사장에 내려앉는다. 기러기 떼가 줄을 맞추어 점점이 날아다니면서 청명한 가을 하늘의 푸름을 깨뜨리고 있다. 하늘을 날다가 볕을 따라 모래밭으로 내려앉을 때는 누런 갈대밭을 낮게 스치며 내리는 까닭에 갈대꽃이 휘날리는 장관이 연출된다.
이 작품에서 기러기들이 내려앉는 ‘모래밭’이라는 공간은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까? 기러기들에게 모래밭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휴식의 공간이자 다시 날아가기 위해 필요한 영양을 보충하기 위한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다.

<평사낙안-2>
群飛有意亂蘆花 무리 지어 날며 갈대꽃을 어지럽히려는 생각인지,
半落平沙一陳斜 반쯤은 넓은 모래밭에 내렸고 한 무리는 빗겨있네.
須愼傍邊謨汝者 곁에 너를 도모하는 자 있으니 모름지기 조심해라,
繞汀臨渚幾人家 李奎報, <東國李相國集>後集卷六,『韓國文集叢刊』第2卷 196-197쪽,「次韻李平章仁植虔州八景詩幷序」‘平沙落?’.
물가를 두르고 모래섬 가까이 사람의 집 얼마인가.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작품이다. 기러기가 무리를 이루며 날아다니고 있다. 시인의 눈에 비친 기러기는 갈대꽃을 어지럽히려는 의도로 보인다. 갈대꽃을 어지럽히려는 이유는 자신을 지키기 위함이다. 줄지어 날아다니는 기러기들의 반쯤은 넓은 모래밭에 내려앉았고, 다른 한 무리는 비스듬히 빗겨 날아 내리고 있다. 시인의 시선은 화면 안의 기러기들을 보면서 기러기들의 안위와 생명을 염려한다. 물가를 따라 펼쳐진 모래밭 근처에는 사람들이 사는 인가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고, 늘 기러기가 있는 주변에는 기러기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각별히 조심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와 같이 평사낙안(平沙落?)이라는 시제를 통해서는 기러기에게 위해(危害)를 가하려는 사람들의 간사(奸邪)하고 사악(邪惡)한 마음인 인간의 기심(機心)을 언급하고 있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평사낙안-3>
秋容漠漠湖波綠 가을 형용 아득하게 호수 물결 푸르고,
雨後平沙展靑玉 비 온 뒤에 모래밭은 푸른 옥을 펼쳤네.
數行翩翩何處雁 두어 줄로 펄펄 나는 어느 곳 기러긴가,
隔江啞軋鳴相逐 강 너머로 기럭기럭 울면서 서로를 쫓네.
靑山影冷釣磯空 푸른 산 그림자 차가워 낚시터가 비었고,
浙瀝斜風響疎木 우수수 비낀 바람 성긴 나무를 울리네.
驚寒不作?天飛 추위에 놀라 울며 하늘 높이 날지 않고,
意在蘆花深處宿 陳?,『梅湖遺稿』卷四, 『韓國文集叢刊』第2卷 283쪽,「宋迪八景圖」‘平沙落?’.
마음은 갈대꽃 깊은 곳에 잠드는데 있네.

진 화(陳?;1180-1215, 추정)의 작품이다. 가을 풍경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다. 호수 물결은 더욱 푸르다. 가을비가 내린 뒤로 모래밭은 푸른 옥구슬을 펼쳐 놓은 듯하다. 여러 줄로 펄펄 날아가는 기러기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강 건너 기럭기럭 소리 내어 울면서 서로를 따른다. 푸른 산은 가을 기운에 그림자도 차가워 보이고, 그래서 그런지 낚시터도 텅 비어있다. 우수수 소리 내는 비낀 바람이 성긴 나무를 울린다. 때 이른 추위에 놀라서 우는 기러기들이 하늘 높이 날지 않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갈대꽃 깊은 곳에 잠들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기러기에게 모래밭의 갈대숲은 안식처이자 휴식의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평사낙안-4>
行行點點整還斜 줄줄이 점점이 가지런하다 다시 비껴 나는 것은,
欲下寒空宿暖沙 추운 하늘 내려와 따뜻한 모래밭에 잠들려함이네.
?得翩?移別岸 갑작스레 펄펄 날아서 다른 언덕으로 옮겨감은,
軸?人語隔蘆花 李齊賢, <益齋亂藁> 卷三,『韓國文集叢刊』第2卷 525쪽,「和朴石齋·尹樗軒用銀臺集瀟湘八景韻(石齋名孝修, 樗軒名奕)」‘平沙落?’.
사냥꾼이 갈대꽃 사이에 두고 말하기 때문이네.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작품이다. 기러기들이 줄지어서 점점이 가지런하게 날다가 다시 비껴나는 이유는 추운 하늘에서 내려와 사람들의 기심을 피해서 안전하고 따뜻한 모래밭을 물색하여 하루를 머물기 위함이다. 그런데 갑자기 푸드득 하고 펄펄 날아서 다른 언덕으로 옮겨 날아가는 이유는 사냥꾼들이 갈대꽃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숨어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시인은 형상화했다. 이 작품에서도 역시 기러기들에게 안식처가 되는 공간은 하늘이 아니라 모래밭 갈대숲이다. 하지만 그곳에는 기러기의 안식이 보장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기러기들은 사람들의 기심을 피해 다른 곳으로 날아가는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다.

<평사낙안-5>
繞岸沙平布 언덕 두른 모래밭이 고르게 펼쳐있고,
隨陽?欲來 기러기는 햇볕 따라 내려오려고 하네.
相呼遵禮讓 서로를 부르면서 예에 따라 양보하니,
人世所欽哉 千峯,『匪懈堂瀟湘八景詩帖』, 平沙落?.
인간 세상 이 모습 흠모할 바이로세!
만 우(卍雨;1357-未詳)의 작품이다. 언덕을 빙 둘러서 모래밭이 고르게 펼쳐져 있고, 기러기는 햇볕을 따라 내려앉으려고 한다. 시인의 눈에 비친 기러기들의 모습은 자연의 생태에 따른 본능의 구현이 아니다. 서로를 부르면서 예(禮)에 따라 서로에게 양보하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시인은 기러기의 생태를 통해 인간 세상의 모습을 반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禮)에 따라 서로에게 양보하는 모습을 지적하면서 인간 세상에서도 이 모습을 흠모(欽慕)해야 하는 바가 된다고 말했다.

<평사낙안-6>
一行秋?落汀沙 한 줄 가을 기러기가 모래섬에 내리고,
抹破晴空數點霞 맑은 하늘 쓸어 깨는 두어 점 노을이네.
?雨靜依黃葦葉 성근 비에는 누런 갈대 잎에 조용히 의지하며,
寒塘細?白?花 찬 연못에 백빈화(白?花)를 가늘게 쪼아 먹네.
歸心暗逐湘江渚 돌아갈 마음 상강 물가를 암암리에 쫓는데,
亂?相催夢澤涯 어지러운 날개 짓 서로 운몽택을 재촉하네.
莫戀稻粱容易下 생계를 연모하여 쉽사리 내려가지 말지니,
?蘆須避?言加 金時習, <梅月堂集> 卷六, 『韓國文集叢刊』第13卷 194쪽,「平沙落?」.
갈대 품고 주살만 피하라는 말을 더하네.

김시습(金時習;1435-1493)의 작품이다. 한 줄로 늘어선 가을날의 기러기가 모래섬에 내린다. 맑은 하늘에 두어 점으로 보이는 기러기가 노을을 깨뜨려 부순다. 하늘에서 성근 비가 내려오면 누런 갈대 잎에 조용하게 의지하고, 기러기는 차가운 연못에 피어 있는 백빈화(白?花)를 가늘게 쪼아 먹는다. 돌아가려는 마음에 소상강(瀟湘江) 물가를 조용히 쫓으며 어지럽게 날개 짓을 하면서 몽택(夢澤) 언덕으로 서로를 재촉한다. 생계(生計)를 연모하여 쉽사리 평사(平沙)로 내려가지는 말라고 당부하는 시인의 목소리에는 기러기에 대한 연민과 동정의 심정이 짙게 베어있다. 다만 시인이 기러기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갈대를 입에 물고서 주살을 피하라는 말을 덧붙일 따름이다. 기러기에게 갈대를 입에 물라고 한 표현은 그 유래가 있다. 옛 문헌들에서 기러기가 갈대를 입에 물고서 날아가면 화살이나 주살을 피할 수 있다는 속설(俗說)이 있는데 그 말에 기인한 표현이다.

<평사낙안-7>
雲裏隨陽鳥 구름 속에 볕 따르는 새들이,
靑天布陣行 푸른 하늘에 진을 치고 가네.
功勳照漢國 공훈이 한(漢)나라를 비추고,
情緖接瀟湘 마음은 소상강에 접해 있네.
澣羽尋淸水 깃털 씻고 맑은 물을 찾더니,
充?擇稻粱 뱃속 채우려고 도량 택하네.
斜陽何逗(缺) 지는 해 어찌 어디에 머무나,
千古似文章 成宗,『列聖御製』第九篇,「瀟湘八景」‘平沙落雁’.
흡사 천고의 문장과도 같네.

성종대왕(成宗;1457-1494)의 작품이다. 구름 속으로 날아가며 햇볕을 따르는 새들이 푸른 하늘에 진을 치고 날아간다. 기러기의 공훈이 한(漢)나라를 비춘다는 표현은 한나라 때의 소무(蘇武)와 관련된 고사를 말한다.『漢書(한서)』「蘇武傳(소무전)」에 의하면, 한(漢)나라 소제(昭帝)는 19년 전, 선제(先帝)인 무제(武帝) 때(B.C. 100) 포로를 교환하기 위해 사절단을 이끌고 흉노(匈奴)의 땅에 들어갔다가 그곳에 억류당한 중랑장(中郞將) 소무(蘇武)가 아직도 살아있음을 알고는 그의 귀환을 위해 특사를 파견했다. 현지에 도착한 특사가 곧바로 흉노의 우두머리인 선우(單于)에게 소무의 석방을 요구하자, 선우는 '소무는 벌써 여러 해 전에 죽었다.'며 대화에 응하려 하지 않았다. 그날 밤, 상혜(常惠)라는 사람이 은밀히 특사의 숙소로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소무를 따라왔다가 흉노의 내란에 말려 일행이 모두 잡힌 뒤 투항한 사람 중 하나요. 그런데 그때 끝까지 항복을 거부한 소무는 북해(北海:바이칼 호) 변으로 추방당한 뒤 아직도 그곳에서 혼자 어렵게 살아가고 있소.” 이튿날 특사는 선우를 만나 따지듯이 말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 황제께서 사냥을 하시다가 활로 기러기 한 마리를 잡았는데, 그 기러기 발목에는 헝겊이 감겨 있었소. 그래서 풀어 보니 '소무는 대택(大澤:큰 못) 근처에 있다.'고 적혀 있었소. 이것만 봐도 소무는 살아 있는 게 분명하지 않소?” 안색이 변한 선우는 부하와 몇 마디 나누더니 이렇게 말했다. “어제는 제가 잘 모르고 실언을 한 것 같소. 그는 살아 있다고 하오.” 꾸며댄 이야기가 제대로 들어맞은 것이다. 며칠 후 흉노의 사자(使者)가 데려온 소무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으나 그의 손에는 한나라 사신의 증표인 부절(符節)이 굳게 쥐어져 있었다. 이 고사에 연유하여 그 이후로 소식이나 편지를 기러기와 관련하여 '안서(雁書)'라고 일컫게 되었다.
마음은 이미 소상강(瀟湘江)에 닿아 있어 깃털을 씻을 맑은 물을 찾고는 허기진 뱃속을 채우려고 도량을 택한다. ‘도량’이란 벼와 메조로 가장 좋은 곡식을 의미하는 말로 생계(生計)를 뜻한다. 해가 지려는데 어디에 머무를지 몰라서 하늘을 빙빙 돌고 있는 기러기 떼의 모습이 마치 천고에 오랜 문장이 된 듯하다고 했다.
<평사낙안-8>
渺渺晴沙際碧灣 아득하게 개인 모래밭 푸른 물굽이 끝,
斜飛點點下雲端 점점이 비껴날며 구름 끝에 내려앉네.
影隨返照?遙峀 그림자 저녁볕 따라 먼 봉우리에 잠기고,
聲雜淸江轉石灘 울음 섞인 맑은 강에 돌 구르는 여울소리.
驚叫尙知奴守警 놀라 절규함이 자신을 지키는 경계임을 알겠지만,
行舟寧料炬藏彈 가는 배 횃불 아래 활 숨김을 어찌 생각했겠는가.
看渠若少懷粱意 큰 것을 적은 듯 보며 생계 뜻을 품고,
萬水千山任往還 洪彦弼, <?齋集> 卷一, 『韓國文集叢刊』第19卷 216쪽,「瀟湘八景」‘平沙落?’.
자연 속에서 가고 옴을 마음에 맡기네.

홍언필(洪彦弼;1476-1549)의 작품이다. 아득하게 넓고 맑게 갠 모래밭과 푸른 물굽이 끝으로 점점이 비껴 날면서 구름 끝으로 내려앉는다. 기러기 그림자는 석양빛을 따라 날아가서는 먼 봉우리에 잠기고 울음 섞인 맑은 강에는 돌 구르는 여울물 소리가 가득하다. 기러기가 놀라서 절규하는 소리가 스스로 자신을 지키려는 경계임을 아는 것은 지나가는 배의 횃불 아래에 활을 숨겨놓고 있기 때문이라고 형용했다. 그저 큰 것을 적은 것 보듯이 하면서 생계에 뜻을 품고 자연 속에서 가고 오는 것을 마음대로 맡긴다고 했다.

<평사낙안-9>
非無稻粱謀 생계의 방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恐有??加 두려움은 주살로 사냥함에 있음이오.
擧群一飢忍 모든 무리 한 번은 굶주림을 참다가,
雙雙下平沙 둘 씩 둘 씩 넓은 모래밭에 내리네.
沙際少入行 모래밭 끝으로 살짝 들어가 보지만,
暮雨響?? 저녁 비가 갈대의 푸른빛을 울리네.
相呼復冥飛 서로 부르며 거듭 아득하게 날아도,
雲水眞吾家 李荇, <容齋集> 卷三, 『韓國文集叢刊』第20卷 394-395쪽,「瀟湘八景」‘平沙落?’.
구름과 물이 진정한 나의 집이로다.

이 행(李荇;1478-1534)의 작품이다. 하늘을 나는 기러기들이 생계(生計)를 도모하지 않을 수 없기에 평사(平沙)로 내려가는데 오직 두려운 것은 주살로 기러기를 사냥하는 것이라고 했다. 모든 기러기 무리가 한결같이 굶주림을 참다가 둘씩 짝을 지어 넓은 모래밭에 내려앉는다. 모래밭 끝으로 살짝 들어가 보지만 저녁 비가 갈대밭에 메아리친다. 서로를 부르면서 다시 아득하게 날아간다. 정처(定處)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정(情)을 붙인 곳이 진정한 기러기의 집이리라며 시인은 말한다. 이 작품에서는 시인의 눈에 비친 기러기의 생태가 잘 드러난다. 기러기에게 진정한 집이 구름과 물(雲水)이라고 표현한 것은 사방으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구름(雲)과 물(水)의 속성이 기러기의 생태와 닮아있다고 판단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평사낙안-10>
極目寒汀帶晩沙 아득히 바라보니 찬 물가 저문 모래밭 두르고,
幾群??入蘆花 몇 무린지 울어 소리 내며 갈대꽃에 들어가네.
莫將?射驚飛去 장차 주살을 쏘아서 놀라 날아가게 하지 말고,
留作書郵好寄家 鄭士龍, <湖陰雜稿> 卷六, 『韓國文集叢刊』第25卷 189쪽,「奉題工曹尹判書屛」‘平沙落?’.
편지를 써 역참에 남겨서 집에 부침이 좋겠네.

정사룡(鄭士龍;1491-1570)의 작품이다. 시인의 시선은 아득하게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차가운 물가는 해가 저물녘에 모래밭을 두르고 흐른다. 여러 무리의 기러기들이 울어대면서 갈대꽃 속으로 들어간다. 기러기를 주살로 쏘아서 놀라 날아가게 하지 말고, 차라리 편지를 써서 역참에 부치는 용도로 기러기를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시인의 바람이다.
이 작품은 기러기에 대한 인간의 기심(機心)을 버리고 기러기와 공존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보다 거시적 관점에서 작품을 보자면 문명 속의 인간이 자연과의 조화를 모색하고 있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사실 인간이 지닌 이기심과 기심(機心)으로 인해 자연과 공존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 작품은 그러한 점에 대한 비판과 동시에 하나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평사낙안-11>
豈不戀稻粱 어찌 생계를 연모하지 않음이,
其如避?? 주살을 피하는 것과 같겠는가.
前身諸葛侯 전생 몸이 제갈 공명이었기에,
布陣依沙? 李廷?, <四留齋集> 卷一, 『韓國文集叢刊』第51卷 253쪽,「題畵屛瀟湘八景」‘平沙落?’.
모래섬에 의지하여 진을 치네.

이정암(李廷?;1541-1600)의 작품이다. 기러기가 생계를 그리워하지 않는 것이 어찌 주살과 화살을 피하는 것보다 못하겠는가! 하지만 전생(前生)에는 병법에 능했던 제갈 공명의 몸으로 태어났기에 모래섬에 의지한 채로 진을 치고 있다고 했다. 인간의 사악하고 간사한 마음을 익히 잘 알고 있지만 제갈 량으로 태어났던 전생의 인연으로 사람들에게 잡히지 않을 정도의 병법은 익히고 있다고 언급하는 작품이다.

<평사낙안-12>
蘆白沙如雪 백사장에 갈대는 하얀 눈 같고,
聯翩下夕暉 연이은 날개 짓 석양에 내리네.
休言能避? 주살 피할 수 있다 말하지 말라,
平地有危機 李?光, <芝峰集> 卷一, 『韓國文集叢刊』第66卷 16쪽,「平沙落?」.
평지에도 위기는 있는 법이라네.

이수광(李?光;1563-1628)의 작품이다. 갈대꽃이 하얗게 흐드러졌고 모래밭은 눈처럼 하얀 모습을 언급했다. 기러기는 석양 속에서 계속 날개 짓을 하며 내려앉는다. 그러면서 주살을 피할 수 있다고는 말하지 마시오. 평지에서도 언제나 위기는 있는 법임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면서 실은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실 자체가 위기의 순간임을 인식하고 있는 작품이다.

<평사낙안-13>
平沙十里?漫漫 평평한 모래밭 십리 길은 넓디넓어 차갑고,
塞?行行點羽翰 변방에 기러기 줄지어 점점이 날개 짓하네.
翔集更妨??苦 빙 돌며 모였다가 다시 주살 고통을 꺼리며,
哀鳴莫恨稻粱難 姜沆, <睡隱集> 卷一,『韓國文集叢刊』第73卷 31쪽,「水月亭三十詠」‘平沙落?’.
생계가 어렵다고 슬픈 울음 한스러워 말아라.

강 항(姜沆;1567-1618)의 작품이다. 넓은 모래가 펼쳐진 평사십리(平沙十里)는 맑으면서도 넓디넓다. 변방을 날던 기러기들이 줄지어 점점이 날개 짓을 하고 있다. 빙 돌아날며 모였다가는 거듭 주살과 화살의 고통을 꺼리고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자신들의 삶과 생계가 어렵다고 슬프게 우는 기러기의 모습을 시인은 상상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런 기러기로서의 삶을 한스러워 하지 말라고 시인은 말한다.

<평사낙안-14>
十里平沙雁陣橫 기러기 떼 십리 모래밭을 가로지르더니,
一時飛下九秋聲 한 순간에 날아 내리니 가을의 소리네.
更看隻影南來遠 다시 보니 새 그림자 멀리 남쪽서 오니,
知是傳書報子卿 正朝大王, <弘齋全書>, 卷二,『韓國文集叢刊』第262卷 33쪽,「瀟湘八景 癸巳」‘平沙落?’.
편지 전해 자경 소식 전하는 줄 알겠네.

정조대왕(正祖;1752-1800)의 작품이다. 평사십리 모래밭에 기러기 떼가 가로질러 날아가다가 다시 한 순간에 날아가며 내려 앉으니 가을을 알리는 소리가 난다. 다시 바라보자 한 마리 새 그림자가 멀리 남쪽에서 날아오니 아마도 자경(子卿)의 소식을 전해주러 날아오는 기러기의 서신(書信)인 줄 알겠다고 했다. 이 작품에서도 평사(平沙)로 내려앉는 기러기의 존재는 소식 전달의 매개(媒介)로 파악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평사낙안-15>
白?風露滿江秋 흰 마름풀 바람 이슬 온 강에 가을인데,
驚起一聲更喚? 한 소리에 놀라서는 재차 짝을 부르네.
飛向淸沙閒取適 맑은 모래 향해 날며 한적함을 취해야지,
生涯不作稻粱謀 宋來熙, <錦谷集>, 卷一,『韓國文集叢刊』第303卷 107쪽,「瀟湘八景 八首 」‘平沙落?’.
한 평생을 생계 위한 방편으로 삼지 말라.

송래희(宋來熙;1791-1867)의 작품이다. 하얀 마름 풀 위로 바람과 이슬이 가득하니 강에는 가을이 한창임을 알 수 있다. 큰 소리에 놀라서 날아가며 거듭 짝을 찾아 부른다. 맑은 물가를 향해 날아다니며 한적함만을 취할지언정 한 평생을 생계를 위한 방편으로 삼지는 말라고 당부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평사낙안(平沙落?)이라는 시제(詩題)에서는 크게 네 가지 정도의 양상으로 작품 세계가 형성되었다. 첫째는 출처진퇴(出處進退)와 관련된 형상으로 가장 많은 작품 수를 보이고 있다. 둘째는 소식전달(消息傳達)의 형상이다. 셋째는 소상야우(瀟湘夜雨)와 동정추월(洞庭秋月)의 형상이 합쳐진 듯한 소상동정(瀟湘洞庭)의 공간 서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형상이다. 마지막으로 넷째는 앞의 세 가지 형상과는 관련을 맺지 않고 일반적인 경물 묘사와 관련 있는 작품 군이다.
<그림 > 평사낙안
소상팔경(瀟湘八景)의 형상(形象)과 함의(含意)를 다루었던 앞의 논의에서 평사낙안(平沙落?)의 형상은 주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기러기들이 넓은 모래밭이나 갈대숲에 내려앉는 모습이 주를 이루고 있었으며, 이러한 형상에 담긴 함의는 현실(現實)과 이상(理想) 사이의 대립(對立)과 갈등(葛藤)이었음을 언급했다. 여기서 말하는 현실(現實)이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경제 활동을 해야만 하는 삶의 현실, 즉 생계유지의 차원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이상(理想)이란 생계유지와 같은 현실적 문제에 속박되지 않고 자신의 이상을 펼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삶의 방식과 형태를 의미하는 것이었음을 확인했다.
평사(平沙)라는 공간과 허공(虛空)은 기러기에게 서로 대비되는 공간이면서도 상호보완적인 공간이다. 허공은 기러기들이 이동하는 주된 공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해서 허공에 있을 수만도 없는 것이다. 계속해서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휴식과 재충전을 위한 잠자리와 먹이가 필요하다. 기러기에게 평사(平沙)가 바로 그러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삶의 무대이자 공간인 셈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평사(平沙)의 갈대숲이 기러기들의 주된 안식처로 등장하고 있었다. 이러한 곳에 내려앉는 기러기(落雁)들의 형상이 작품의 주된 이미지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기러기 주변에는 언제나 간사하고 사악한 이기심을 가지고 기러기를 해치려는 인간들이 존재한다. 때로는 화살과 주살을 쏘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는 모습으로 형상화 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평사낙안(平沙落?)에 감추어져 있는 의미 맥락에 주목할 차례이다. 줄곧 논의해 왔듯이 의미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인물의 형상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작품에 형상화된 인물들과 작품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작품 바깥에 존재하는 인물까지를 염두에 두고 의미 맥락을 도출할 수 있는 것이다. 평사낙안(平沙落?)에 등장하고 있는 인물 형상으로는 기러기를 의인화하여 부르는 너(汝)라는 인칭, 자(字)가 자경(子卿)인 한나라의 소무(蘇武), 인가(人家)에 살고 있을 인물들, 형제(兄弟), 자손(子孫), 손님(賓), 객(客), 시적 화자로 등장하는 나(吾), 시선(詩仙), 제갈 공명(諸葛孔明), 특정한 사람(何人), 누구(誰), 도롱이를 입은 이(?人) 등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인물의 형상은 다음에서 정리해 놓은 바와 같다.

<평사낙안(平沙落?)>에 등장하는 인물 형상
차례
등장인물
인물형상
논문부록
한시작품 일련번호
1
너(汝)
기러기를 의인화하여 기러기에게 화자의 의사를 전달
2,7
2
자경(子卿)
편지나 소식을 전달하는 기러기를 등장시킴으로써 한나라 때 흉노에게 잡혀간 소무라는 인물의 형상
3,20,28,29,57
3
인가(人家)
사욕과 이기심으로 점철된 사람들이 사는 공간
2
4
사람(人, 人人)
간사하고 사악한 마음으로 얼룩진 인물 형상
5,9,10,12,23,36,46
5
형제(兄弟)
서로 우애가 좋고 양보하는 미덕을 기러기에 비유함
6,10,15,55
6
손님(賓, 客)
작품 속에 배를 타고 있는 인물, 굴원(屈原)의 형상 혹은 나그네처럼 살아가는 기러기의 형상
7,11,27,40,42,58
7
나(吾)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이 기러기의 삶이라고 인식했으나 그 이면에서는 인간의 삶을 동일시하는 형상
24
8
시선(詩仙)
줄지어 날고 있는 기러기 행렬을 보고 음미하는 형상
29
9
제갈공명(諸葛侯)
기러기 떼가 모래밭에 진을 치는 장면을 제갈공명의 진법에 비유한 표현
31
10
어떤 사람(何人)
기러기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유발하는 인물 형상
52
11
도롱이 걸친 이(?人)
기러기를 사냥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는 인물 형상
60

평사낙안(平沙落?)에 등장하는 인물 형상은 대략 11가지로 정리가 된다. 열한 가지 인물 형상이 작품 내에서 어떤 모습으로 형상화 되었는가 하는 점은 앞의 도표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이 자료를 중심으로 평사낙안(平沙落?)에 등장하는 인물 형상을 대상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자료에 정리되어 있는 인물 형상들은 크게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그림 > 평사낙안 中 기러기를 잡으려고 기회를 엿보는 사람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 인간과 기러기의 첨예한 대립과 갈등에 관한 형상이었다. 평사낙안(平沙落?)의 핵심적 형상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소식 전달의 매개로 기러기가 형상화되고 있었다. 기러기가 편지를 전달하기 위한 이미지로 형상화된 작품들의 경우이다. 이 경우는 한나라의 소무(蘇武)에 대한 고사에서 비롯된 형상이다.『한서(漢書)』「소무전(蘇武專)」에 따르면 한(漢)나라 소제(昭帝)는 19년 전, 선제(先帝)인 무제(武帝) 때(B.C. 100) 포로를 교환하기 위해 사절단을 이끌고 흉노(匈奴)의 땅에 들어갔다가 그곳에 억류당한 중랑장(中郞將)이라는 벼슬을 지냈던 소무(蘇武)가 아직도 살아있음을 알고는 그의 귀환을 위해 특사를 파견했다. 현지에 도착한 특사가 곧바로 흉노의 우두머리인 선우(單于)에게 소무의 석방을 요구하자, 선우는 ‘소무는 벌써 여러 해 전에 죽었다.’ 며 대화에 응하려 하지 않았다.
그날 밤, 상혜(常惠)라는 사람이 은밀히 특사의 숙소로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소무를 따라왔다가 흉노의 내란에 말려 일행이 모두 잡힌 뒤 투항한 사람 중하나요. 그런데 그때 끝까지 항복을 거부한 소무는 북해(北海:바이칼 호) 변으로 추방당한 뒤 아직도 그곳에서 혼자 어렵게 살아가고 있소.”
이튿날 특사는 선우를 만나 따지듯이 말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 황제께서 사냥을 하시다가 활로 기러기 한 마리를 잡았는데, 그 기러기 발목에는 헝겊이 감겨 있었소. 그래서 풀어 보니 ‘소무는 대택(大澤:큰 못) 근처에 있다.’고 적혀 있었소. 이것만 봐도 소무는 살아 있는 게 분명하지 않소?” 안색이 변한 선우는 부하와 몇 마디 나누더니 이렇게 말했다.“어제는 제가 잘 모르고 실언을 한 것 같소. 그는 살아 있다고 하오.”
꾸며낸 이야기가 제대로 들어맞은 것이다. 며칠 후 흉노의 사자(使者)가 데려온 소무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는데, 그의 손에는 한나라 사신의 증표인 부절(符節)이 굳게 쥐어져 있었다. 이 고사에 연유하여 그 이후로 편지를 기러기와 관련하여 ‘안서(雁書)’라고 일컫게 되었다. 또한 소식을 전달하는 매개로 기러기가 형상화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형상은 평사낙안(平沙落?) 전체 작품 가운데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기러기의 생태에 빗대어 인간의 삶을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작품들이 마련되어 있다. 기러기가 가지런히 날아가는 생태를 바라보며 형은 아우를 아끼고, 아우는 형을 공경하며 예(禮)에 따라 살아간다는 식의 인간적 시선이 짙게 베어나는 작품들이다. 이러한 작품들 역시 평사낙안(平沙落?)의 전체 작품 가운데 일부 작품들에서 보이는 형상화 방식임을 알 수 있다.
<그림 > 평사낙안 中 기러기를 잡으려는 사람
앞서 언급했던 작품들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의 인물 형상을 차지하고 있는 작품은 사악하고 간사한 이기심으로 기러기를 잡으려는 인물 형상이다. 인간의 사악한 이러한 마음을 작품에서는 ‘기심(機心)’ 李奎報, <東國李相國集>後集卷六,『韓國文集叢刊』第2卷 198-199쪽,「相國嘗和示一首, 予每復以二首, 未知鈞?何如, 惶恐惶恐」‘平沙落?’.
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 마음을 지니고 있는 인간은 기러기와 공존할 수 없다고 했다. 많은 수의 작품이 이에 해당하고 있었다. 이 작품들을 대상으로 평사낙안(平沙落?)의 서사적 맥락을 논의하려고 한다.

群飛有意亂蘆花 무리 지어 날며 갈대꽃을 어지럽히려는 뜻인지,
半落平沙一陳斜 반쯤은 넓은 모래밭에 내렸고 한 무리는 빗겨있네.
須愼傍邊謨汝者 곁에 너를 도모하는 자 있으니 모름지기 조심해라,
繞汀臨渚幾人家 李奎報, <東國李相國集>後集卷六,『韓國文集叢刊』第2卷 196-197쪽,「次韻李平章仁植虔州八景詩幷序」‘平沙落?’.
물가를 두르고 모래섬 가까이 사람의 집 얼마인가.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기러기와 인간은 서로 대립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적 화자는 기러기와 그 기러기를 호시탐탐 노리는 인간 사이에서 발화를 하고 있다. 발화의 내용에 주목하면 기러기들이 서로 무리를 이루어 날면서 갈대꽃을 어지럽히는 것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임을 넌지시 알리고 있다. 시적 화자의 시선은 평사(平沙)에 내려앉은 반쯤의 기러기 무리와 빗겨 날고 있는 반쯤의 기러기 무리를 향하고 있다. 그러면서 기러기들을 보면서 걱정이 앞선다.
걱정하는 이유는 인간의 사악한 마음에 기인한다. 늘 기러기가 모래밭에 내려앉으면 인간은 어김없이 기러기에게 위해를 가하여 잡으려고 하기 때문에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게다가 사악한 마음을 지닌 인간들이 살고 있는 집이 물가를 따라 연이어 늘어서 있기 때문에 더욱 걱정된다고 했다.

沙際無田只荻花 모래밭 끝에 밭은 없고 다만 갈대꽃뿐인데,
有何窺望落橫斜 기러기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빗겨 내려오나.
人人焉得機心息 사람들이 어찌 기심(機心)을 버릴 수 있겠나,
莫遣人禽共一家 李奎報, <東國李相國集>後集卷六,『韓國文集叢刊』第2卷 198-199쪽,「相國嘗和示一首, 予每復以二首, 未知鈞?何如, 惶恐惶恐」‘平沙落?’. 來詩云, 雁已馴人人亦熟, 人禽自在似同家(보내준 시에 “기러기는 사람과 친해지고 사람도 기러기와 낯이 익으니 사람이나 기러기나 자유로워 한 집안과 같네.”라고 하였다.)
사람과 기러기 한 집에서 살게 하지 말게나.

역시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작품이다. 모래밭만 아득하게 펼쳐진 공간을 제시하는 시인의 의도가 어렴풋이 보인다. 시인이 작품에서 설정한 공간은 모래밭만 있을 뿐 밭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갈대꽃만 우거진 갈대숲으로 작품의 공간을 설정했다.
밭이 없고 갈대밭만 있다고 한 것은 그 공간에 사람이 있어야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이다. 기러기들이 무언가를 바라고 내려오는가 하는 묻고 있는 것은 몰라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기러기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쉬었다가 다시 날아갈 수 있는 힘과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갈대밭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기러기와 공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기러기에게 위해를 가하여 잡으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사악한 이기심을 시인은 기심(機心)이라 명명했다. 사람들이 기심(機心)을 버리지 않는 한 인간과 기러기는 한 집에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一雙二雙集沙渚 한 쌍, 두 쌍 물가 모래섬에 모여서,
一飮一啄相因依 물마시고 먹이 쪼며 서로 의지하네.
人間着足盡機穽 인간세상 발붙이면 모두가 함정이니,
何似冥冥雲際飛 李荇, <容齋集> 卷一, 『韓國文集叢刊』第20卷 343쪽,「平沙落?」.
흐릿한 구름 끝을 날아감이 어떤가.

이 행(李荇;1478-1534)의 작품이다. 여기서도 기러기와 인간의 갈등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러기들은 서로에게 의지한 채 평화롭게 살아간다. 한 쌍, 두 쌍 물가 모래섬에 모여든다. 물을 마시고 먹이를 쪼면서 서로 의지한다. 그러나 이처럼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모습과는 대비되게 인간 세상은 그렇지 못함을 제시했다. 인간 세상은 발이 닿는 곳은 어디를 막론하고 모든 곳이 다 함정뿐이라고 했다. 그러니 인간 세상에 발을 디디기보다는 차라리 아득하게 먼 구름 끝을 따라 날아다니는 삶이 어떠냐며 기러기에게 제안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인간 세상과 인간사에 대한 시인의 인식이 여실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또 다른 이행의 작품을 살펴본다.

非無稻粱謀 생계의 방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恐有??加 두려움은 주살로 사냥함에 있다네.
擧群一飢忍 모든 무리 한 번은 굶주림을 참다가,
雙雙下平沙 둘 씩 둘 씩 넓은 모래밭에 내리네.
沙際少入行 모래밭 끝으로 조금 들어가 보지만,
暮雨響?? 저녁 비가 갈대의 푸른빛을 울리네.
相呼復冥飛 서로 부르며 거듭 아득하게 날아도,
雲水眞吾家 李荇, <容齋集> 卷三, 『韓國文集叢刊』第20卷 394-395쪽,「瀟湘八景」‘平沙落?’.
구름과 물이 진정한 나의 집이로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 없지 않다는 말은 굳이 평사(平沙)라는 공간에 낙안(落雁)하지 않아도 큰 고통이 수반되지는 안는다는 상황인식에 따른 표현이다. 평사(平沙)가 아니더라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공간은 얼마든지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기러기 떼가 한두 번은 굶주림을 참다가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는 쌍쌍이 평사(平沙)에 내려앉는다고 했다. 먹이를 찾고 쉴 곳을 찾아서 갈대 속으로 들어가지만 이내 놀라서 날아갈 수밖에 없는 까닭은 인간의 기심(機心)과 사납게 내리는 저녁 비 때문이라 했다. 놀란 기러기들이 서로를 힘겹게 부르면서 하늘 아득한 곳으로 날아가는 형상을 통해 정처 없이 떠돌며 살아가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운수(雲水)’는 말 그대로 구름과 물로 이 두 자연물의 공통점은 사방으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처럼 정해진 곳 없이 떠돌아다니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기러기의 생태를 형용한 표현이다.
그러나 시인의 관점에서 볼 때, 이를 비단 기러기만의 생태로 파악하고 이해하려 했는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말하자면 평사낙안(平沙落?)을 노래했던 시인들은 평사(平沙)에 낙안(落雁)하는 형상을 접하면서 인간의 삶을 투사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 이면에서는 끊임없이 현실과 이상 사이의 긴장과 갈등을 전제로 한 출처진퇴(出處進退)의 의미 맥락을 다루고 있었다.
요컨대 평사낙안(平沙落?)에 감춰져 있는 의미 맥락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긴장과 대립을 전제로 대두된다. 이상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원칙이고 바람직한 삶의 모습이지만 인간이 지닌 한계와 생계유지를 위해서는 현실을 철저하게 외면할 수 없다는 현실인식은 결국 인간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현실 세계 어딘가를 기웃거리게 한다. 이 현실 세계 내지는 인간세상이 언제 어디서고 나에게 위협을 가하거나 함정이 될 수 있는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에서 나아갈 것인가 물러날 것인가 하는 출처진퇴(出處進退)의 서사를 진지하게 묻고 있는 것이 바로 평사낙안(平沙落?)에 감춰진 의미 맥락이었다.


3.6. 동정추월(洞庭秋月) : 대립(對立)과 갈등(葛藤)이 해소된 최적의 상황

동정추월(洞庭秋月)을 노래한 한시 작품은 전체 62수에 이른다. 작품 수로만 보면 소상야우(瀟湘夜雨)에 이어 두 번째에 해당한다. 또 시조(時調) 작품이 30여 수가 전한다. 동정추월(洞庭秋月)은 제목에서 드러나듯 소상팔경(瀟湘八景)의 여덟 가지 시제(詩題) 가운데 소상야우(瀟湘夜雨)와 함께 구체적인 지명을 제목으로 드러내놓고 있다. 동정추월(洞庭秋月)이라는 제목으로 형상화된 작품들의 공통점은 대립(對立)과 갈등(葛藤)이 해소된 최적(最適)의 상황, 최고 정점(頂點)이자 절정(絶頂)에 도달한 상황을 형상화하고 있다. 인간의 삶에 빗대어 말하자면 인생 최고의 황금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경지는 삶의 모든 고비를 잘 넘기고 출처와 진퇴에 대한 고민을 훌륭하게 해결한 뒤에라야 맞이할 수 있는 형국에 해당한다.

<동정추월-1>
雲端??黃金餠 구름 끝에 넘실대는 황금빛 달덩이가,
霜後溶溶碧玉濤 서리 뒤에 출렁이는 푸른빛 물결이네.
欲識夜深風露重 밤 깊어 바람 이슬 무거움을 알려하니,
倚?漁父一肩高 李仁老,『三韓詩龜鑑』卷之中, ‘洞庭秋月’.『東文選』卷二十,「宋迪八景圖」‘洞庭秋月’.
배에 기댄 어부 어깨 한 쪽만 높구나.

이인로(李仁老;1152-1220)의 작품이다. 아득히 멀리 구름 끝에서 넘실대는 황금빛의 달덩이와 서리가 내린 뒤에 출렁거리는 푸른빛 물결이 일어난다. 밤이 깊어서 바람과 이슬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알고 싶다면 배에 기대고 있는 어부의 한쪽 어깨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어부의 한쪽 어깨가 높이 솟아 있는 사실을 보고서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작품에서는 수면에 비치는 황금빛 달덩이의 형상을 통해 시상(詩想)을 전개하였고, 서리가 내린 후라는 시간 설정을 통해 가을이라는 계절적 배경을 제시했다. 이처럼 동정추월(洞庭秋月)이라는 제목 아래 창작된 한시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동정호(洞庭湖)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삼고 가을밤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전제로 삼고 있다.

<동정추월-2>
水國秋凉爽氣多 어촌 가을 서늘해 상쾌한 기운 많고,
氷輪正好映寒波 찬 물결 비추는 보름달 참으로 좋네.
波心俯鑑無勞望 물결 속 굽어보니 애쓴 기대도 없고,
不用登山費挽蘿 李奎報, <東國李相國集> 後集卷六,『韓國文集叢刊』第2卷 198쪽,「次韻李相國復和虔州八景詩贈」‘洞庭秋月’.
덩굴 잡고 애써 등산할 필요가 없네.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작품이다. 동정 호수에 가을이 되니 서늘한 기운에는 상쾌함이 많고, 차가운 물결을 비추는 보름달이 참으로 보기 좋다. 풍요로운 보름달이 세상을 환하게 비추고 있으니 애써 물결 속을 굽어보며 애써 바라볼 필요도 없고, 덩굴을 부여잡고 밀고 당기면서 힘들게 산에 오를 필요도 없을 정도로 밝은 보름달의 형상을 형용하고 있다. 이 작품은 보름달이 높이 떠서 세상 만물을 환히 비추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는데 여기서 보름달이 지닌 형상의 의미는 최고 정점에 도달하여 온 세상을 두루 아우르는 모습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동정추월-3>
滿眼秋光濯炎熱 눈에 가득 가을빛이 불꽃 더위 씻어내고,
草頭露顆珠璣綴 풀잎 끝에 이슬방울 옥구슬을 엮어 놨네.
江娥浴出水精寒 강 계집 목욕하고 나오니 달빛이 차갑고,
色戰銀河更淸絶 은하수와 색을 겨뤄도 더 맑고 빼어나네.
波心冷影不可? 물결 속에 찬 그림자 움켜 쥘 수 없는데,
天際斜暉那忍沒 하늘 끝 비낀 빛에 차마 어찌 빠지겠나.
飄飄淸氣襲人肌 나부끼는 맑은 기운 사람 살을 엄습하니,
欲控靑鸞訪銀闕 陳?,『梅湖遺稿』卷四, 『韓國文集叢刊』第2卷 283쪽,「宋迪八景圖」‘洞庭秋月’.
푸른 난새 잡아다가 천상 은궐 찾으려네.

진 화(陳?;1180-1215, 추정)의 작품이다. 두 눈에 가득한 가을빛이 불꽃같은 더위를 씻어 낸다. 풀잎 끝에는 이슬방울이 옥구슬을 엮어놓았다. 강가에 계집이 목욕을 하고 나오자 달빛이 더욱 차갑게만 느껴진다. 은하수와 빛을 다투어도 더욱 맑고 깨끗하다. 물결 속에 차가운 그림자를 움켜쥘 수는 없지만 하늘 끝에 비낀 빛에 차마 어찌 빠지겠는가? 맑은 기운이 바람에 나부껴 사람의 살갗을 엄습하고 있으니 푸른 난새를 잡아타고는 천상에 있다는 달나라 궁전에 찾아가고 싶다는 시인의 마음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난새는 봉황(鳳凰) 류에 속하는 신령한 새로 푸른색이 많은 봉황을 난새 라고 한다.

<동정추월-4>
萬里天浮水 만 리 걸친 하늘은 물에 떠있고,
三秋露洗空 가을날 이슬이 허공을 씻었구나.
氷輪輾上海門東 달은 해문 동편으로 점점 떠올라,
弄影碧波中 푸른 물결 속 그림자를 희롱하네.
蕩蕩開銀闕 출렁출렁 은빛 궁궐 펼쳐져 있고,
亭亭揷玉虹 우뚝하게 옥무지개가 꽂혀 있네.
雲帆便欲掛西風 문득 서풍에 구름 돛을 매달고는,
直到廣寒宮 李齊賢, <益齋亂藁> 卷十,『韓國文集叢刊』第2卷 608쪽,「巫山一段雲 瀟湘八景」‘洞庭秋月’.
곧장 달나라 궁전에 이르는구나.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작품이다. 만리에 걸쳐 있는 하늘이 동정(洞庭) 호수(湖水) 위로 떠있고, 가을날 이슬은 허공을 씻었다. 달이 바다의 관문 동쪽으로 조금씩 떠올라 푸른 물결 속에 그림자를 희롱하고 있다. 출렁거리는 호수 면에는 은빛 궁궐이 열려 있고, 옥으로 만들어진 무지개가 우뚝 꽂혀 있다. 가을바람에 구름 돛을 매달고는 곧장 달나라 궁전에 이른다. 이 작품에서는 동정호(洞庭湖) 수면 위로 떠오른 달이 물결 속 그림자를 비출 정도로 환한 세상을 형용하고 있다.

<동정추월-5>
月色淸無比 달빛이 맑기로는 비할 곳 없고,
湖光湛不流 호수 빛도 맑아서 흐르질 않네.
騷人意何限 시인 마음에 어찌 한계를 두랴,
楓葉政矜秋 千峯,『匪懈堂瀟湘八景詩帖』,「洞庭秋月」.
단풍잎 지는 가을이 안타깝네.
만 우(卍雨;1357- 未詳)의 작품이다. 이 세상에서 맑기로는 그 어떤 것도 달빛에 비할 것이 없다. 호수 빛도 달빛을 좇아 맑은 상태로 흐르지 않고 있다. 시인의 뜻에 어찌 한계가 있을 수 있겠는가! 단풍잎이 지고 있는 가을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작품에서 형상화된 동정추월(洞庭秋月)의 형상은 호수에 달빛이 가득하여 풍요로운 분위기가 충만한데 떨어지는 낙엽을 보는 시인의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함을 형용한 작품이다.

<동정추월-6>
海門推上爛銀盤 바다 문(海門)이 찬란한 은쟁반을 추켜올리면,
鐵笛聲高萬頃寒 철적(鐵笛) 소리 높고 만 이랑 물결 차가와라.
最是淸光秋更好 그야말로 맑은 빛이 가을이니 더욱 좋은지라,
?欄須到夜深看 姜碩德,『東文選』 第22卷,「瀟湘八景圖有宋眞宗宸翰」‘洞庭秋月’.
난간에 기대고는 모름지기 밤 깊도록 보리라.

강석덕(姜碩德;1395-1459)의 작품이다. 움푹 파인 해안선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관문으로 찬란한 은쟁반이 치솟는다. 여기서 은쟁반은 둥근 보름달을 빗댄 표현이다. 은쟁반이 치솟아 오를 때면 어디선가 철적(鐵笛) 소리가 높고 일만 이랑의 물결이 차갑다. 가을의 맑은 빛(淸光)이 더욱 좋은지라 난간에 기대어 밤이 깊도록 풍성하고 풍족한 가을 풍경을 즐기고 싶다고 했다. 둥근 보름달이 둥실 높이 떠서 동정호(洞庭湖)를 가득 채우고 있는 형상이다.

<동정추월-7>
七百平湖半幅藏 칠백 리 평평한 호수를 반폭에 감추었다가,
鮫?麾出彩毫忙 교초(鮫?)에 불러내니 그림붓이 바빠지네.
秋深橘樹金千片 가을 깊은 귤나무엔 금덩이가 천 조각이고,
風打蘆花?一場 바람이 갈대꽃을 뒤흔드는 소나기 한바탕.
鷗胸白浪呑吳闊 갈매기 앞 흰 물결이 오나라 멀리 삼키었고,
?背靑天入楚長 기러기 뒤 청천은 초나라로 길게 들어가네.
歸?莫近瀟湘岸 돌아가는 뱃머리 소상 언덕 가까이는 말게,
叢竹寒聲斷客腸 丘從直,『東國風雅抄』,「奉題御屛洞庭湖?」, ‘洞庭湖圖’.
대죽 떨기 찬 소리 나그네 애를 끊는다네.
구종직(丘從直;1404-1477)의 작품이다. 흔히 그 둘레가 칠백 리라 하여 동정호(洞庭湖)를 일컫는 말이다. 동정호 칠백 리 넓은 호수를 반폭에 감추었다가 비단 위에 불러내려니 그림 그리는 붓이 바빠진다. 가을이 깊어지자 귤나무에는 금덩이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바람이 갈대꽃을 뒤흔들자 소나기가 한바탕 지나간다. 갈매기 가슴 앞으로는 흰 물결이 멀리 오나라를 삼키고, 기러기 등 뒤로 푸른 하늘이 초나라 땅 멀리까지 들어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돌아가는 뱃머리를 소상강(瀟湘江) 언덕 가까이로 가지 말라고 한 것은 아황과 여영의 고사를 떠올리며 형상화한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동정추월(洞庭秋月)을 노래한 작품들 가운데 드물게 소상야우(瀟湘夜雨)의 형상과 함의를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동정추월-8>
秋天杳杳水溶溶 가을 하늘 어두운데 물은 도도하고,
万里氷輪輾上空 만 리 비추는 달 하늘 위로 솟았네.
上下淸光同一色 하늘과 물은 맑은 빛으로 동색이고,
却疑身在水晶宮 李承召, <三灘集> 卷九, 『韓國文集叢刊』第11卷 461쪽,「題畵屛」‘洞庭秋月’.
내 몸이 수정궁에 있는지 의심하네.

이승소(李承召;1422-1484)의 작품이다. 가을 저녁이다. 하늘은 어둡고 물은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만리를 비추는 둥근 보름달이 하늘 위로 솟아있다. 위와 아래 모든 공간이 맑은 빛으로 한 가지 빛깔로 동화가 되었다. 그러니 시적 화자 자신의 몸이 수정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궁전에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형상화한 작품이다.

<동정추월-9>
水寒烟色薄 호수는 차갑고 연기 빛깔 엷은데,
月出委金秋 달이 나오니 금빛 가을 쌓여지네.
未缺淸輝滿 맑은 달빛 가득해 모자라지 않고,
高懸玉宇留 귀한 집에 머무르며 높이 걸렸네.
漁舟天上坐 어부 배는 천상에서 자리를 잡고,
綸網鏡中浮 낚싯줄 그물은 거울 속에 떠있네.
美哉山河影 아름답도다! 산과 강의 그림자여,
湖光動庾樓 成宗,『列聖御製』第九篇,「瀟湘八景」‘洞庭秋月’.
호수 빛이 누각에까지 요동치네.

성종대왕(成宗;1457-1494)의 작품이다. 동정호(洞庭湖) 수면이 차갑고 연기 빛깔이 엷다. 달이 솟아오르자 금빛 가을이 쌓여있다. 맑은 빛이 가득하니 모자라지 않고, 옥으로 만든 귀한 집에 머무르며 높이 매달려있는 달의 형상을 그리고 있다. 어부의 배는 천상에서 자리를 잡고 낚싯줄 그물은 달 속에 떠있다고 했다. 산하(山河)의 그림자가 참으로 아름답다. 호수의 빛깔이 누각에까지 요동을 치고 있는 형상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한 나라의 군주(君主)다운 기상이 드러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동시에 동정추월(洞庭秋月)의 형상은 세상 모든 것을 두루 비추는 넉넉한 모습임을 알 수 있다.

<동정추월-10>
四海共秋月 온 세상이 가을 달을 함께 함은,
萬古一洞庭 예로부터 동정호가 유일했다네.
誰將白銀水 누가 장차 백은수라 하는 것을,
瀉此琉璃甁 이렇게 유리병에 쏟아 부었는가.
颯爾微風來 선선한 바람 시원하게 불어오니,
?然塵骨醒 놀란 속세 몸 정신이 번쩍 드네.
何當一葉舟 일엽편주를 어찌 띄우지 않겠는가,
直?君山靑 李荇, <容齋集> 卷三, 『韓國文集叢刊』第20卷 395쪽,「瀟湘八景」‘洞庭秋月’.
곧장 푸른 군산 거슬러 오르리라.

이 행(李荇;1478-1534)의 작품이다. 온 세상이 가을 보름달을 공유할 수 있는 곳은 예로부터 동정호(洞庭湖)가 유일하다고 했다. 누가 장차 은쟁반처럼 빛나는 호수의 물을 이렇게 유리병에 쏟아 부었는가? 라는 표현을 통해 동정호를 유리병에 빗대어 표현했다. 동시에 신선한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니 속세의 몸은 놀란 나머지 정신이 번쩍 든다고 형용했다. 이처럼 아름답고 풍족한 경관 앞에서 어째서 일엽편주를 띄우지 않는지 반문하면서 지금 당장 푸른 군산(君山)으로 거슬러 오르고 싶다는 소망을 표출하고 있다.
<동정추월-11>
秋月瑩如洗 가을 달 씻긴 듯이 밝고,
秋江澄似練 가을 강 비단 같이 맑네.
初疑白玉盤 처음엔 옥쟁반 의심되고,
墮此琉璃面 이곳에 유리면 떨어졌나.
虛明情境空 허명한 정경이 텅 빈 채,
?立至夜半 蘇世讓, <陽谷集> 卷一,『韓國文集叢刊』第23卷 309쪽,「書洪古阜春年畵屛」‘洞庭秋月’.
한 밤까지 오래 서 있네.

소세양(蘇世讓;1486-1562)의 작품이다. 동정호를 비추는 가을 달이 씻은 듯이 밝다. 또 가을 강이라고 했으나 동정호를 일컫는다. 호수의 맑기가 마치 비단과 같다고 했다. 처음 떠오를 때에는 백옥(白玉)으로 만든 쟁반인지 의심할 정도였고 다음으로 어떻게 옥쟁반이 유리처럼 투명한 동정호 수면 위로 떨어졌는가 하며 신기하고 놀라움을 형용했다. 어찌나 아름다운 풍경인지 밤이 깊도록 오랫동안 움직이지 못하고 서 있는 화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동정추월-12>
平湖七百里 넓고 평평한 호수 칠백 리에,
積靄夜來收 쌓인 안개 밤이 오면 걷히네.
欲知秋月好 가을 달 좋음을 알고 싶다면,
須上岳陽樓 李廷?, <四留齋集> 卷一,『韓國文集叢刊』第51卷 253쪽,「題畵屛瀟湘八景」‘洞庭秋月’.
모름지기 악양루 올라야하네.

이정암(李廷?;1541-1600)의 작품이다. 넓고도 평평한 동정 호수 칠백 리에 밤이 되자 쌓였던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있다. 가을 달이 얼마나 좋은지를 알고 싶다면 모름지기 악양루에 올라야 한다며 시상을 마무리했다. 이 작품이 형상화된 동정추월(洞庭秋月)은 풍요로움과 동시에 최고조에 이른 상태임을 역설하고 있다.


<동정추월-13>
入依金波洗碧空 금빛 물결 의지해 들어가 푸른 하늘 씻어내고,
氷輪輾上海門東 둥근달이 해문(海門) 동쪽 조금씩 솟아오네.
洞庭七百平湖水 동정(洞庭) 칠백 리 호수(湖水)가 평온하니,
上下淸光一樣同 李弘有,『遯軒集』卷三,「題瀟湘八景畵屛, 又寫八詠」, ‘洞庭秋月’.
위아래 맑은 빛은 한 가지 모양으로 똑같네.

이홍유(李弘有;1588-1673)의 작품이다. 금빛으로 빛나는 동정호(洞庭湖) 물결에 의지해 들어가 푸른 하늘을 말끔하게 씻어내니 둥근달이 바다 관문 동쪽에서 조금씩 솟아오른다. 동정호 칠백 리 호수가 평온하니 위 아래로 맑은 빛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동일한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동정추월-14>
洞庭湖上岳陽樓 동정호(洞定湖) 위에 악양루(岳陽樓)는,
名勝由來冠九區 명승지 유래로는 천하에서도 으뜸일세.
誰是四時佳節序 누가 사시에 가절이 차례 한다 하였나,
最看明月一年秋 연중 최고 밝은 달 가을에 볼 수 있네.
波濤瑩澈東南遠 물결 맑고 투명해 동남쪽 멀어 보이고,
天地空虛上下浮 하늘과 땅 공허하여 위아래로 떠 있네.
笑爾寂寥韓杜句 한유 두보 시구에서 적막함을 웃었지만,
此間眞景?能? 尹推, <農隱遺稿> 卷一,『韓國文集叢刊』第143卷 198쪽,「瀟湘八景代洪陽從兄月課作」‘洞庭秋月’.
이 속에 참된 경치 어찌 능히 취하겠나.

윤 추(尹推;1632-1707)의 작품이다. 호남성의 동정호(洞庭湖) 주변에 있는 악양루가 명승지의 유래로는 천하(天下)의 으뜸이다. 누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아름다운 절기가 차례 한다고 말했던가? 일년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밝은 달은 가을이라야 볼 수가 있다. 물결이 맑고 투명하니 동남쪽이 멀리 보이고, 하늘과 땅이 텅 빈 채로 위와 아래가 떠 있구나. 한유와 두보의 시구에서 적막함에 대해 웃었건만 이 속에 참된 경(景)을 어찌 능히 취할 수 있겠는가 하고 반문하는 작품이다.

<동정추월-15>
玉露橫江夜霧收 맑은 이슬 강을 비낀 밤안개 걷히니,
一輪明月洞庭秋 둥글고 밝은 달이 동정 가을 밝히네.
天空上下圓光湧 하늘 비어 위아래로 둥근 빛 넘치고,
地折東南爽氣流 땅 꺾여 동남쪽 상쾌한 기운 흐르네.
銀色界連雲夢澤 은빛 세상 운몽택(雲夢澤)에 연해있고,
水晶宮敞岳陽樓 수정궁은 악양루(岳陽樓)에 솟아있네.
團團萬里懸飛鏡 둥글둥글 만 리 나는 거울을 매달고서,
河漢無聲轉斗牛 李?, <睡谷集> 卷一, 『韓國文集叢刊』第153卷 8쪽,「瀟湘八景」復五首 壬寅.
은하수는 소리 없이 북두성에 옮겨가네.

이 여(李?;1645-1718)의 작품이다. 맑은 이슬이 비낀 강에 밤안개가 걷히자 둥글고 밝은 달이 동정호의 가을을 밝히고 있다. 하늘은 텅 비어 위와 아래로 둥근 빛이 넘실거리고 땅은 꺾이어 동남쪽으로 상쾌한 기운이 흐른다. 은빛 세상은 운몽택과 연해 있고, 수정궁으로 묘사된 보름달은 악양루에 솟아있다. 둥근 모양으로 만 리를 날아가는 달을 매달고서 은하수는 소리 없이 북두성으로 옮겨가고 있는 형상을 형용한 작품이다.

<동정추월-16>
何處望秋光 어디에서 가을경치 바라볼까,
洞庭湖上月 동정 호수 위에 달이 떠있네.
南天不見雲 남쪽 하늘 구름 보이지 않고,
萬里懸銀闕 權斗經, <蒼雪齋集> 卷七,『韓國文集叢刊』第169卷 126쪽,「述姪請賦瀟湘八景」‘洞庭秋月’.
만 리에 둥근 달이 걸려있네.

권두경(權斗經;1654-1725)의 작품이다. 가을날의 아름다운 경치를 어디에서 바라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시인의 눈에 동정호(洞庭湖) 수면 위로 높이 떠 있는 보름달이 들어왔다. 그림 속을 들여다보니 남쪽 하늘 끝에는 구름도 보이지 않고, 만 리에 둥근 달이 걸려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동정추월-17>
洞庭湖水碧如天 동정 호수 푸른색이 하늘빛과 같아서,
秋月中浮滉?然 넓디넓은 호수엔 가을달이 둥실 떴네.
好倚岳陽樓上望 악양루 올라 편안히 기대어 바라보고,
朗?詩過問飛仙 正朝大王, <弘齋全書>, 卷二,『韓國文集叢刊』第262卷 33쪽,「瀟湘八景 癸巳」‘洞庭秋月’.
낭랑히 시 읊고서 날아간 신선 묻네.

정조대왕(正祖;1752-1800)의 작품이다. 동정(洞庭) 호수(湖水)의 푸른빛이 마치 하늘빛과 같아서 넓디 넓은 호수에는 가을 달이 둥실 떠있다. 악양루(岳陽樓)에 기분 좋게 올라서는 누각(樓閣) 위에서 바라보며 낭랑한 목소리로 시를 읊조리며 지난 날 날아 가버린 신선(神仙)에 대해 묻고 있는 화자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정조 임금은 자신의 호를 스스로 만천명월주인(萬川明月主人)이라고 칭할 정도로 득의(得意)와 자신감(自信感)에 찬 인물이었다.

<동정추월-18>
秋水長空一色淸 가을 물결 긴 하늘 한빛으로 맑고,
氷輪逈出岳陽城 둥근달 멀리로 악양성에 떠오르네.
層波萬頃??色 넘실대는 만 이랑 유리 빛깔이라,
吳楚乾坤照眼明 朴永元, <梧墅集>, 冊五,『韓國文集叢刊』第302卷 318쪽,「瀟湘八景」‘洞庭秋月’.
오초의 하늘 땅 눈부시게 비추네.

박영원(朴永元;1791-1854)의 작품이다. 가을날 동정호(洞庭湖) 수면과 아득한 하늘이 한 가지 빛으로 맑다. 둥근 보름달이 멀리 악양성(岳陽城)에 떠오른다. 넘실거리는 만 이랑의 유리 같은 빛깔인지라 오나라와 초나라의 하늘과 땅을 눈부시게 비추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동정추월-19>
碧天寥廓月輪明 푸른 하늘 쓸쓸한 성곽에 보름달만 밝은데,
楚岫風高落葉聲 초나라 산 정상 바람 높아 잎 지는 소리네.
一帶澄江正如練 맑은 강 일대가 바름이 비단처럼 가지런해,
玉簫何處動詩情 郭自完, <風謠續選> 卷一, 22쪽,「洞庭秋月」.
어느 곳 옥소 소리에 시정(詩情)이 동하네.

곽자완(郭自完;出沒年未詳, 中人)의 작품이다. 푸른 하늘과 쓸쓸한 성곽을 보름달이 환하게 비추고 있다. 초나라 산봉우리에 부는 바람이 높아서 잎이 지는 소리가 난다. 맑은 강 일대가 진실로 비단과 같아서 어느 곳의 옥퉁소 소리에 시정(詩情)이 동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여타의 작품과 같이 군주(君主)나 사대부(士大夫)가 아닌 중인(中人) 신분의 작품이라는 점에 주목된다.

<동정추월-20>
巴潮如練?秋月 파릉 조수 비단 같아 가을 달이 출렁이고,
岸際林梢光透發 언덕 사이 나무 끝 달빛 투사되어 비치네.
不是謫仙撈得夷 적선이 아니어도 평온함을 얻어 건졌으니,
天公世事自無竭 金時洛,『莊庵集』, 卷一,「家有古藏瀟湘?八帖, 家兄逐景題詠, 伏次其韻」, ‘洞庭秋月’.
하늘은 세사에 공평해 절로 마르지 않네.

김시락(金時洛;1857-1896)의 작품이다. 파릉은 악양루(岳陽樓)가 자리 잡고 있는 악양(岳陽)의 옛 이름이다. 파땅의 조수(潮水)가 마치 비단과 같아서 호수에 비친 가을달이 출렁거리고 언덕 사이로 나무 끝에는 달빛이 투사되어 비치고 있다. 하늘에서 쫓겨나 인간 세상으로 귀양을 온 신선(神仙)이 아니라도 악양루에서 내려다보는 동정호(洞庭湖)의 형상을 통해 평온함을 얻었으니 하늘은 참으로 세상사에 공평하여 절로 마르지 않는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고 형상화한 작품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동정추월(洞庭秋月)이라는 시제(詩題)나 화제(畵題)를 통해 형상화된 모습은 동정호(洞庭湖)에 솟아있는 가을날의 보름달이 온 세상을 두루 넉넉하게 비추는 형상이었다. 풍요로움과 최고조에 이른 만월(滿月) 즉 보름달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형상은 때로 동정추월(洞庭秋月)을 노래하면서도 신선(神仙)의 세계를 빗대거나 신선사상과 관련된 다양한 공간이나 소재를 통해 뒷받침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러 시인(詩人)과 화공(畵工)들은 이러한 형상을 제시함으로써 인간사에서 발생할 수 있는 대립(對立)과 갈등(葛藤), 부조리(不條理)와 모순(矛盾), 그리고 시시비비(是是非非)와 출처진퇴(出處進退)에 대한 고민 등이 일거에 해소된 최적의 상황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동정추월(洞庭秋月)이라는 시제(詩題) 내지 화제(畵題)가 지니고 있는 작품의 함의(含意)이다. 모든 갈등이 해소된 최적(最適)의 상황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모습이 가장 잘 형상화된 작품이 바로 송강(松江) 정철(鄭澈)이 창작했던「관동별곡(關東別曲)」의 결말 부분이 아닐까 판단한다.

나도 ?을 ?여 바다? 구버보니, 기픠? 모?거니 ?인들 엇디 알리. 明명月월이 千쳔山산萬만落낙의 아니 비쵠 ? 업다. 『松江歌辭』李選本.


앞에서 동정추월(洞庭秋月)의 형상과 함의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동정추월의 형상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그 넓은 동정 호수를 가득 메운 채 비추고 있는 보름달의 모습이었고, 그러한 형상이 지닌 함의는 대립(對立)과 갈등(葛藤)이 해소된 최적의 상황으로 형상화되었음을 밝혔다.
<그림 > 동정추월 中 동정호에서 배를 타고 흥에 취한 인물
이를 토대로 여기서는 동정추월(洞庭秋月)에 감춰진 서사적 맥락이 무엇인가 하는 점을 밝혀보고자 한다. 동정추월(洞庭秋月)은 소상야우(瀟湘夜雨)와 함께 소상팔경(瀟湘八景) 가운데 드물게 구체적인 지명(地名)을 갖고 있다. 산시청람(山市晴嵐), 연사모종(煙寺暮鐘), 원포귀범(遠浦歸帆), 어촌낙조(漁村落照), 강천모설(江天暮雪) 등과 같이 여타의 제목들은 소상강(瀟湘江)이라는 공간만이 설정되었을 뿐이다.
이러한 제목들은 실제 소상강(瀟湘江) 일대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도 충분히 연출될 수 있는 제목들이다. 그러나 소상야우(瀟湘夜雨)와 동정추월(洞庭秋月)은 소상팔경(瀟湘八景)이 아니고서는 형상화할 수 없는 고유한 제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은 여타의 제목과 변별되는 특징이라 하겠다.
동정추월(洞庭秋月)에 등장하는 인물 형상은 대략 15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이 열다섯 가지의 인물형상은 대략 다음과 같이 작품에서 형상화되고 있었다.

<동정추월(洞庭秋月)>에 등장하는 인물의 형상
차례
등장인물
인물형상
논문부록
작품번호
1
어부(漁父)
동정호(洞庭湖)를 비추는 달빛에 어부와 고깃배
1,23,46
2
나그네(客)
동정호(洞庭湖) 주변의 경관을 즐기는 나그네
5,6,22,25,38
3
시적 화자인 나(我)
아름다운 경관에 심취하거나 신선이 되고픈 화자
5,24
4
미인(江娥, 姮娥, 嫦娥,
鮫女, 玉娥)
달 속의 항아 내지는 아황과 여영의 형상
8,28,38,44,
56,57
5
사람(人)
동정추월의 형상에 도취되어 있거나 심취한 인물
8,35,40,61
6
누구(誰)
선계(仙界)의 인물 형상 내지는 흥취를 표상
9,27,33
7
시인(騷人)
동정추월(洞庭秋月)의 형상에 도취된 인물
12,29
8
노범(老范)
동정추월을 접하면서 근심과 즐거움을 느끼는 인물
15
9
상령(湘靈)
아황과 여영의 인물 형상
24,29
10
신선(仙)
신선(神仙)이 되고 싶은 시적 화자의 욕망, 신선의 형상을 지닌 인물, 적선(謫仙)의 형상
24,25,33,34,36,37,54,58,59,63
11
두보(工部)
맑은 시로 천하를 놀라게 했던 시인의 형상
25
12
동빈(洞賓)
구름을 제어했던 신선의 우두머리 형상
25
13
유인(幽人)
밤중에 일어나 소나무 아래서 막걸리를 빚는 형상
26
14
순제(舜帝)
창오의 들녘에서 숨을 거둔 순임금의 형상
35
15
한유와 두보(韓杜)
적막함을 비웃었던 한유와 두보의 시구(詩句)
47


이처럼 대략 열다섯 가지의 인물 형상이 등장하고 있으나 이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주목하여 서사적 맥락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이 가운데 가장 지배적인 인물의 형상은 동정추월(洞庭秋月)의 경물(景物)에 도취된 모습을 형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동정추월의 경관에 심취해 있는 인물 형상으로 때론 어부의 형상으로, 순임금과 아황 · 여영의 형상으로, 또 때론 나그네와 신선(神仙)의 형상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동정추월(洞庭秋月)에서 가장 많은 빈도수를 보이며 출현하고 있는 인물 형상은 선계(仙界)에 속한 인물 형상이다. 신선(仙)을 형상화한 작품이 십여 수에 이르고, 항아(姮娥)처럼 선계 여성을 형상화한 작품이 여덟 수에 이른다. 그 외에 동정추월의 경물이 빚어내는 경관에 심취해 있는 어부, 나그네, 시적 화자, 노범, 한유와 두보 등이 등장하고 있었다. 이러한 인물들이 빚어내는 의미 맥락은 특별히 갈등이나 대립적 형상보다는 동화되고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강하다.

風掃浮雲盡 바람이 뜬 구름을 모조리 쓸어가니,
天高滿目秋 하늘은 높고 눈엔 온통 가을이로다.
一輪初?上 둥근 달이 처음에 맷돌처럼 올라서,
萬里故遲留 만 리까지 짐짓 더디게 머무는구나.
夜永淸輝發 밤새도록 맑은 달빛 드러내고 있어,
波寒素影浮 차가운 물결에 밝은 달빛 떠있도다.
年年無限意 해마다 나에게서 끝이 없는 생각은,
多少客登樓 成宗,『列聖御製』第九篇,「瀟湘八景」‘洞庭秋月’.
어느 정도 나그네가 누각에 올랐나.

성종(成宗;1457-1494) 임금의 작품이다. 가을의 풍요로움과 풍성함을 상징하는 것이 둥그런 보름달이다. 그런데 뜬 구름이 보름달을 가리고 있다. 그때 바람이 뜬 구름을 모조리 쓸고 가자 드러난 하늘은 높고 눈에 보이는 세상은 온통 가을 기운이 넘친다. 보름달이 처음 떠오를 때는 맷돌처럼 오르더니 어느새 높이 올라 온 세상을 비추면서 머물고 있다. 밤이 깊을 때까지 맑은 달빛을 드러내고 있으니 차가운 수면 위로도 달빛이 떠있는 모습을 형용하고 있다. 이런 장관을 보고 있자니 무한한 생각이 일어난다. 그 가운데 하나는 도대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나그네들이 누각에 올라서 그토록 아름다운 장관을 보았던가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대부분의 작품에서 밤새도록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음은 앞선 논의에서도 언급한 바가 있다.

四海共秋月 온 세상이 가을 달을 함께 함은,
萬古一洞庭 예로부터 동정호가 유일했다네.
誰將白銀水 누가 백은수라 하는 것을 가져다,
瀉此琉璃甁 이렇게 유리병에 쏟아 부었는가.
颯爾微風來 시원한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니,
?然塵骨醒 속세 몸이 놀라 정신이 번쩍 드네.
何當一葉舟 일엽편주를 어찌 띄우지 않겠는가,
直?君山靑 李荇, <容齋集> 卷三, 『韓國文集叢刊』第20卷 395쪽,「瀟湘八景」‘洞庭秋月’.
곧장 푸른 군산 거슬러 오르리라.

이 행(李荇;1478-1534)의 작품이다. 가을 달이 온 세상을 동시에 비출 수 있을 정도로 드넓고 광활하며 아름다운 곳은 예로부터 동정호(洞庭湖)가 유일하다고 했다. ‘백은수(白銀水)’란 은쟁반처럼 빛나는 호수의 물을 뜻한다. 은쟁반 같은 호수(湖水) 한 가운데 떠 있는 푸른 섬을 형용하는 표현에 ‘백은반리일청라(白銀盤裡一靑螺)’와 같은 구절이 있다. 동정(洞庭) 호수(湖水)를 비추는 달빛에 얼마나 눈이 부신지 수면이 온통 은빛으로 반짝거리는 형상이라고 표현했다. 때마침 시원하게 부는 바람이 선선하고 적당히 알맞게 불어오니 속세의 나그네는 놀라서 정신이 번쩍 든다고 하면서 어찌하여 일엽편주를 띄우지 않는지 되묻고는 호수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군산(君山)이라는 섬에 곧장 이르겠다는 시적 화자의 목소리가 베어 있는 작품이다.

洞庭湖上岳陽樓 동정호(洞定湖) 주변 악양루(岳陽樓)가,
名勝由來冠九區 명승지 유래로는 천하에서도 으뜸일세.
誰是四時佳節序 누가 사시에 가절이 차례 한다 하였나,
最看明月一年秋 연중 최고 밝은 달 가을에 볼 수 있네.
波濤瑩澈東南遠 물결 맑고 투명해 동남쪽 멀어 보이고,
天地空虛上下浮 하늘과 땅 공허하게 위아래로 떠 있네.
笑爾寂寥韓杜句 한유 두보 시구에선 고요함을 웃었지만,
此間眞景?能? 尹推, <農隱遺稿> 卷一,『韓國文集叢刊』第143卷 198쪽,「瀟湘八景代洪陽從兄月課作」‘洞庭秋月’.
이 속에 참된 경치 어찌 능히 취하겠나.

윤 추(尹推;1632-1707)의 작품이다. 동정호(洞庭湖) 주변에 자리를 잡고 있는 악양루(岳陽樓)가 천하의 명승지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손꼽히는 곳이라 했다. 그 이유를 시인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은 일년 사계절이 모두 아름다워서,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제각기 아름다움을 지니면서 사계절이 순환된다고들 하지만 시인의 생각은 다르다고 했다. 일년 가운데 가장 밝은 달은 가을이 되어야만 볼 수 있다고 했다. 달빛이 밝고 하늘도 맑아 동남쪽 멀리까지 한 눈에 보이는데 하늘과 땅이 텅 빈 듯 위 아래로 떠 있는 모습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장관을 목격하고 속내를 드러내었던 한유와 두보는 동정호에 비친 가을 달의 형상을 고요하고 쓸쓸함에 주목하여 흥취를 드러냈으나 이 가운데 존재하는 참된 경물(眞景)의 의미까지는 취하지 못했음을 지적하고 있는 작품이다. 말하자면 동정추월(洞庭秋月)이 지니고 있는 참된 의미까지는 포착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셈인 것이다.
그렇다면 동정추월(洞庭秋月)에 담겨 있는 의미 맥락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동정추월(洞庭秋月)이라는 제목 아래 형상화된 작품들에서는 특정한 갈등이나 대비 혹은 주목할만한 인물들의 행위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 맥락에 해당하는가 하는 점을 논의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작품을 통해서 동정추월(洞庭秋月)의 의미 맥락을 파악하기 위한 하나의 단서를 얻을 수 있다.

明輝發蟾兎 밝은 빛이 두꺼비와 토끼를 드러내었고,
靜影浸龜魚 맑은 그림자 거북과 물고기에게 잠기네.
此中憂樂意 이 가운데 근심과 즐거운 마음이 있으니,
老范不欺余 成三問, <成謹甫集> 卷一, 『韓國文集叢刊』第10卷 184쪽,「瀟湘八景」, ‘洞庭秋月’.
노범(范仲淹)이 나를 기망하지 않았구나.

성삼문(成三問;1418-1456)의 작품이다. 동정호(洞庭湖)를 비추는 밝은 달빛이 얼마나 밝았던지 달 속에 산다는 두꺼비와 토끼의 형상을 드러낼 정도라고 했다. 그러니 호수 속에 사는 거북이와 물고기에까지 스며들고 있는 형상으로 묘사했다. 그러면서 이 그림 가운데 근심(憂)과 즐거움(樂)이 있다고 하면서 노범(老范)이 시인 자신을 속이지 않았다고 했다. 노범은「악양루기(岳陽樓記)」를 쓴 북송 때의 학자이자 정치가였던 범중엄(范仲淹;989-1052)이다. 본명은 범희문(范希文)으로 그가 쓴 악양루기 마지막 부분을 보면, “천하의 근심을 먼저 걱정하고, 천하의 즐거움을 뒤에 즐거워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歟)”라는 표현이 보인다. <그림 > 동정추월
성삼문은 이「악양루기(岳陽樓記)」에서 언급되었던 표현을 염두에 두고 시적 발화를 하고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악양루기(岳陽樓記)는 동정추월(洞庭秋月)과도 깊은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결국 동정추월(洞庭秋月)을 인간이 즐길 수 있는 최고의 경관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동정추월(洞庭秋月)에 감추어진 의미 맥락에 대해 요약하면 이렇다. 동정추월(洞庭秋月)은 드넓은 호수를 환하게 비추고 있는 보름달의 형상을 제시함으로써, 인간의 삶에서 최고의 정점(頂點)에 도달한 상태 내지 단계라는 의미 맥락을 의미한다.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최고의 경지라는 상징적 의미를 내포한다. 동시에 최고로 높은 경지(境地)에 도달한 상태이므로 이제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고 내려가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달도 차면 기울 듯이 사물의 형상도 정점(頂點)에 달하면 쇠퇴의 길로 들어서는 의미 맥락이 동정추월(洞庭秋月)에 감춰져 있는 것이다.


3.7. 어촌낙조(漁村落照) : 순리(順理)대로 살며 세상과 적당한 거리두기

<그림 > 어촌낙조
어촌낙조(漁村落照)를 노래한 한시 작품은 전체 52수가 정리되었다. 시조(時調) 작품으로는 2수가 전하고 있다. 어촌낙조(漁村落照)는 말 그대로 어촌(漁村)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어촌에 해질 무렵의 풍경을 작품의 주된 형상화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작품 군이다.
시제(詩題)만으로는 사계절 가운데 어느 계절을 주된 배경으로 삼고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작품에서 형상화된 계절은 구체적인 작품 분석을 통해서나 파악이 가능하다. 어촌낙조라는 제목 아래 창작된 작품들의 공통점은 어촌(漁村)에서의 삶이 순리(順理)를 따르며 평온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모두 여유롭다. 세상사에 휘둘리지도 않는다. 이제는 세상사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관조(觀照)할 수 있는 삶의 원숙함이 짙게 베어있다.

<어촌낙조-1>
草屋半依垂柳岸 수양버들 기슭에 반만 가린 초가집과,
板橋橫斷白?汀 나무다리 가로질러 흰 마름 물가라네.
日斜愈覺江山勝 해저무니 강산 승경 더욱더 느끼겠고,
萬頃紅浮數點靑 李仁老,『三韓詩龜鑑』卷之中, ‘漁村落照’.『東文選』卷二十,「宋迪八景圖」‘漁村落照’.
만 이랑 붉게 물들고 몇 점만 푸르네.

이인로(李仁老;1152-1220)의 작품이다. 언덕 기슭에 초가집은 반쯤 수양버들에 가려진 채 언덕 부근에 자리 잡고 있다. 나무로 만든 다리를 가로지르면 흰 마름풀이 피어있는 물가가 펼쳐져 있다. 해가 저물자 강산(江山)의 빼어난 경치가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지는 해에 넘실거리는 물결 일만 이랑이 붉게 물들고, 산봉우리 몇 점만이 푸른빛을 띠고 있는 형상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어촌(漁村)에 해가 저무는 형상을 다루면서 강산(江山)의 빼어남을 해가 진 이후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해가 저물기 전에는 강산(江山)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수 없었다. 아니 특별히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석양이 붉게 물든 저녁 무렵이 되자 비로소 강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 수 있었다는 시인의 인식이 드러나고 있다.

<어촌낙조-2>
江雲向晩卷長空 강 구름 해 저무니 긴 하늘에 걷히고,
斜照漁家日殺網中 어촌은 석양빛에 그물 말리는 중이네.
海底湧生胡不見 바다 밑 솟아날 땐 어찌 보지 않았나,
?哉方始愛殘紅 李奎報, <東國李相國集> 後集卷六,『韓國文集叢刊』第2卷 198쪽,「次韻李相國復和虔州八景詩贈」‘漁村落照’.
이상해라 비로소 지는 해 사랑하겠네.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작품이다. 해가 저물자 넓은 하늘에 펼쳐져 있던 구름이 걷힌다. 어촌에는 집집마다 석양빛에 한창 그물을 말리는 중이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어촌의 저녁 풍경이다.
그런데 시인은 이러한 형상을 접하면서 스스로에게 되묻고 있다. 바다 밑에서 해가 솟아오르는 장관을 어찌 보지 못했겠는가? 그런데 참으로 이상도 하다. 지금까지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는데 이제 와서야 비로소 지는 해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이 작품에서 시인은 일출(日出)의 장관보다는 일몰(日沒)의 장관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 낙조(落照)의 형상에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시인 자신도 이제야 비로소 지는 해를 사랑할 수 있겠다며 그동안 낙조(落照)의 형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자신의 지난날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어촌낙조-3>
斷岸湖痕餘宿莽 끊어진 절벽에 조수 흔적은 묵은 풀에 남아 있고,
鷺頭揷翅閑爬? 백로는 머리를 날개에 꽂고 한가롭게 가려움 긁네.
銅盤倒影波底明 구리 소반 엎어진 그림자가 물결 밑을 밝게 하고,
水浸碧天迷俯仰 물에 잠긴 푸른 하늘 구부렸다 올려보니 어지럽네.
歸來蒻笠不驚鷗 돌아오는 부들 삿갓에도 갈매기는 놀라지 않고,
一葉片舟截紅浪 조각배 한 척만이 붉은 물결을 가르며 돌아오네.
魚兒滿籃酒滿甁 물고기 바구니에 가득하고 술은 병에 꽉 찼는데,
獨背晩風收綠網 陳?,『梅湖遺稿』卷四, 『韓國文集叢刊』第2卷 283쪽,「宋迪八景圖」‘漁村落照’.
홀로 저문 바람을 등지고 푸른 그물을 걷는구나.

진 화(陳?;1180-1215, 추정)의 작품이다. 그림 속 끊어진 절벽에는 조수(潮水)의 흔적이 오래된 풀 더미에 남아 있다. 물가에 백로(白鷺)는 제 머리를 날개에 꽂고서 한가로이 가려운 곳을 긁고 있다. 이글거리며 내려앉는 붉은 태양이 물결까지 밝게 비춘다.
물에 잠긴 푸른 하늘을 구부렸다 다시 올려다보니 어지럽다. 부들포로 만든 삿갓을 쓰고 집으로 돌아오는 어부(漁夫)를 보고도 갈매기는 놀라지 않는다. 조각배 한 척만이 붉은 물결을 가르며 돌아온다. 물고기가 바구니에 가득하고 술은 병에 꽉 들어찼다.
혼자서 저녁 바람을 맞으며 푸른빛 그물을 걷고 있는 어부의 형상을 통해 한가롭고 평화로운 어촌의 저녁 풍경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 형상화된 어촌(漁村)의 저물녘 형상은 평화롭고, 한가하며, 평온하다. 모든 것이 여유롭고 안락한 형상으로 제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촌낙조-4>
落日看看?遠岫 떨어지는 해 어느덧 먼 산봉우리에 빠지는데,
歸潮咽咽上寒汀 돌아오는 조수 빠른 북소리 모래섬에 오르네.
漁人去入蘆花雪 고기 잡는 사람은 갈대 꽃 눈 속에 들어가고,
數點炊烟晩更靑 李齊賢, <益齋亂藁> 卷三,『韓國文集叢刊』第2卷 526쪽,「和朴石齋·尹樗軒用銀臺集瀟湘八景韻(石齋名孝修, 樗軒名奕)」‘漁村落照’.
두어 점 밥 짓는 연기 해저무니 더욱 푸르네.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작품이다. 그림 속을 자세히 바라보니 지는 해가 어느새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로 잠기고, 돌아오는 조수에 둥둥 울리는 북소리만 차가운 물가에 오른다. 어부가 눈처럼 하얗게 쌓인 갈대밭 속으로 들어가자 밥 짓는 연기 두어 점이 해 저물자 더욱 푸르다. 하루 동안 바삐 움직이던 일상이 저물녘이 되어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는 각득기소(各得其所)의 형상을 형용했다. 해가 지는 어촌 마을의 평화로운 일상을 형상화한 작품에 해당한다.

<어촌낙조-5>
遠岫留殘照 먼 산봉우리에 지는 햇빛 남아 있고,
微波映斷霞 여린 물결 조각 난 노을 비치는구나.
竹籬茅舍是漁家 대나무 울타리 띠 집은 어부 집이고,
一逕傍林斜 한 가닥 길은 수풀 곁으로 돌아가네.
綠岸雙雙鷺 초록 빛 언덕에는 쌍쌍의 백로 있고,
靑山點點鴉 푸른 산엔 점점이 까마귀 앉아 있네.
時聞笑語隔蘆花 갈대꽃 너머 웃는 소리 가끔 들리고,
白酒換漁蝦 李齊賢, <益齋亂藁> 卷十,『韓國文集叢刊』第2卷 608쪽,「巫山一段雲 瀟湘八景」‘漁村落照’.
막걸리를 물고기와 새우랑 주고받네.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작품이다.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에는 서산으로 지는 햇빛이 조금 남아있다. 여린 물결이 조각난 노을을 비치고 있다. 대나무로 울타리를 두르고 있는 초가는 어부의 집이다. 한 줄기 가는 길은 숲을 따라 비껴있다. 초록빛이 무성한 언덕 위에는 쌍쌍의 백로가 자리를 잡고 있다. 푸른 산에는 까마귀가 점점이 앉아있다. 갈대꽃 너머로는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이따금씩 들린다. 막걸리를 물고기와 새우랑 주고받는 어촌의 저녁 풍경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어촌낙조-6>
斷橋村路少人行 끊긴 다리 마을길로 적은 사람들이 다니고,
江上晴峯落照橫 강변에 맑은 봉우리 떨어지는 해가 빗겼네.
??波光隨水去 넘실거리는 파도 빛이 물결 따라 흘러가고,
?微淡影曳林明 가랑비 맑은 그림자 숲 속 밝음 끌어가네.
兩三腔笛斷霞外 두서너 피리 소리 노을 너머로 끊어지고,
七八葉蘆棲雁聲 가을날 갈대 잎에 기러기 울음소리 깃드네.
吟罷天涯回首望 소리 끝난 하늘 끝을 고개 돌려 바라보니,
白?洲外帆歸? 金時習, <梅月堂集> 卷六, 『韓國文集叢刊』第13卷 195쪽,「漁村落照」.
백빈주 너머로는 돛단배 가볍게 돌아오네.

김시습(金時習;1435-1493)의 작품이다. 끊어진 다리와 마을길에는 적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강변에서는 맑은 봉우리가 떨어지는 해에 빗겨있다. 넘실거리는 파도 빛은 물결 따라 흘러간다. 가랑비 담박한 그림자가 숲 속으로 그림자를 끌고 간다. 두서너 곡의 피리 소리가 노을 저편에서 끊어진다. 가을날 갈대 잎에 기러기 울음소리가 깃든다. 소리 멈춘 하늘 끝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하얀 마름꽃이 피어있는 모래섬 너머로는 돛단배가 경쾌하게 돌아오고 있는 형상을 그린 작품이다.

<어촌낙조-7>
蘆間三兩家 갈대 사이로는 두서너 가옥이 있고,
返照紅將斂 저녁볕 붉은 기운 곧 사라지려 하네.
漁人及未昏 어부는 아직 어두워지지 않은 즈음,
撤網歸茅店 蘇世讓, <陽谷集> 卷十, 『韓國文集叢刊』第23卷 440쪽,「瀟湘八景」‘漁村落照’.
그물 걷고 주막(茅店)으로 돌아가네.

소세양(蘇世讓;1486-1562)의 작품이다. 갈대가 무성한 사이로 두서너 가옥이 살짝 보인다. 해지며 만들어진 낙조(落照)의 붉은 기운이 조금씩 사라지려고 한다. 어부는 어둠이 내려앉기도 전에 그물을 서둘러 걷어내고는 허름한 어촌의 주막으로 돌아가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어촌낙조-8>
炊烟欲起日?山 밥 짓는 연기 일자 해가 산을 품으려하고,
誰送零金散碧灘 누가 보낸 금싸라기 푸른 여울에 흩어지나.
更有語言難狀處 언어가 있다지만 장관을 형용하기 더욱 어렵고,
漁翁只作等閑看 趙昱, <龍門集> 卷三,『韓國文集叢刊』第28卷 199쪽,「溢之求八景之作率爾錄呈」‘漁村落照’.
어옹은 다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볼 뿐이네.
조욱(趙昱;1498-1557)의 작품이다. 집집마다 밥을 짓는 연기가 일어날 때쯤이면 지는 해는 산을 품으려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누가 보냈는지, 낙조의 흔적이 푸른 여울에 금싸라기가 흩어지게 했다.
인간에게는 말과 글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장관을 말이나 글로 형용하기는 어렵다. 늙은 어부는 그저 모든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바라볼 따름이다.
이 작품에서는 늙은 어부의 시선과 화자의 시선이 서로 대비를 이루고 있다. 화자의 입장에서는 인간에게는 말과 글이 있지만 늙은 어부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관심을 끌만한 내용은 없다는 관점에서 형상화된 작품이다.

<어촌낙조-9>
水國微茫遠樹稀 수국이 아득해 멀리 나무도 희미한데,
漁村落照正依依 어촌에 지는 해가 참으로 흐릿하구나.
暮潮舟在柴門外 저녁 조수 빈 배만 사립문 밖에 있어,
知是漁翁罷釣歸 鄭斗卿, <東溟集>卷二,『韓國文集叢刊』第100卷, 409쪽,「題瀟湘八景圖」‘漁村落照’. 이 작품은 洪滄浪, <瀟湘八景詩歌抄> 31쪽에도 수록되어 있다. <瀟湘八景詩歌抄>는 우리나라의 문헌이 아니라 일본에서 1688년에 간행된 책이다. 이 책에는 일본인들이 노래한 소상팔경 한시와 그림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유일하게 홍창랑(洪滄浪)이라는 이름으로 8수가 실려있다. 여기서 ‘홍창랑’은 홍세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모두 정두경(鄭斗卿;1597-1673)의 <동명집(東溟集)>에 실려 있는 작품과 동일하다.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보건대, 홍세태(洪世泰;1653-1725)가 정두경에 비해 56년 뒤에 태어났다는 점, 또 다른 기록으로 보아 홍세태가 일본에 갔던 것은 사실이다. 일본 문인들과 ‘소상팔경’을 소재로 창작하는 과정에서 정두경의 작품을 그대로 노래했던 것이 일본에서 제작된 <瀟湘八景詩歌抄>라는 책에 수록된 것으로 보인다.
어옹이 낚시 마치고 돌아왔음 알겠네.

정두경(鄭斗卿;1597-1673)의 작품이다. 아득히 멀리 어촌의 나무가 희미한 것으로 보이니 어촌에 지는 해가 참으로 흐릿한 모양이다. 저물녘 조수(潮水)에 빈 배만 사립문 밖에 묶여 있는 것으로 보아 어옹(漁翁)은 하루 일과를 끝내고 돌아와 있음을 알겠다고 했다.

<어촌낙조-10>
平蕪漠漠日欲晩 무성한 들판 아득하고 해는 지려하는데,
津樹熹微更看遠 나루터 수풀 희미하여 볼수록 멀어지네.
斜陽??下沙汀 지는 해는 넘실넘실 모래섬에 내려오고,
隔浦烟生紅蓼岸 포구 너머 홍료 언덕에 연기가 생겨나네.
漁郞捲網向孤店 어부는 그물을 말고는 외딴 술집 향하니,
物外高風爾獨占 물외에 높은 풍취를 네 홀로 차지했구나.
長歌一曲不見人 긴 노래 한 곡조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江上遙峰靑數點 金弘郁, <鶴洲全集> 卷四, 『韓國文集叢刊』第102卷 37쪽,「次權進士昱瀟湘八景八首」‘漁村落照’.
강물 위로 먼 봉우리 몇 점만 푸르구나.

김홍욱(金弘郁;1602-1654)의 작품이다. 아득하게 잡초만 무성한 들판에 해가 지려 한다. 나루터 수풀은 희미하여 볼수록 멀어진다. 지는 해가 넘실넘실 모래섬에 내려오고, 포구 너머로 붉은 여뀌 꽃 언덕에 연기가 생겨난다. 어부는 그물을 말리고서 외딴 술집을 향한다. 인간 세상을 벗어난 물외(物外)의 높은 풍취(風趣)는 네가 홀로 차지했구나. 긴 노래 한 곡조에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강물 위로는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 몇 점만이 푸른빛을 띠고 있는 모습을 작품으로 형상화했다.

<어촌낙조-11>
炊煙一抹數家村 밥 짓는 한 점 연기 마을에서 두서너 집,
傍浦歸船起?喧 근방 포구 돌아오는 배 기러기 울음 이네.
荏苒??斜日影 흐늘흐늘 해 그림자는 엄자산에 비껴있고,
淡濃金碧半江痕 묽고 짙은 금빛 푸름 강물 자욱 반만 있네.
孤光乍隱?籬下 외딴 불빛 잠깐사이 성긴 울 아래 숨었고,
餘照猶?亂石根 남은 햇빛 어지러운 돌 뿌리에 나부끼네.
灑網漁翁何處住 그물을 씻는 어옹은 어느 곳에 사시는가,
蘆洲物色漸黃昏 具?,『明谷先生文集』卷二,「瀟湘八景」, ‘漁村落照’.
갈대 섬 만물 빛이 황혼에 점점 젖어드네.

구음(具?;1614-1683)의 작품이다. 저물녘 밥 짓는 연기가 한 마을에 두서너 집이다. 근방 포구에는 돌아오는 배에서 기러기 울음소리 일어난다. 흐늘흐늘 해 그림자는 저물녘에 비껴있고, 옅고 짙은 금빛 푸름 강물 자욱 반씩 남아있다. 외딴 불빛 잠깐 사이 성긴 울타리 밑으로 숨더니만 남은 햇빛은 어지러운 돌부리에 나부끼고 있다. 그물을 씻는 어옹(漁翁)은 어느 곳에 살고 계시는가? 갈대 섬 만물 빛깔이 황혼에 서서히 젖어들고 있는 형상을 제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어촌낙조-12>
澄江一道繞柴門 맑은 강에 한 길이 사립문을 감싸서 돌고,
??斜陽下水村 넘실거리면서 지는 해가 어촌에 내려앉네.
漸映楓林歸鳥翼 점점 단풍 숲 비추자 돌아가는 새가 날고,
平分蘆渚暮烟痕 넓게 나뉜 갈대 섬에 저녁연기 흔적 있네.
疎籬?網臨沙岸 물가 언덕 성긴 울엔 그물을 햇볕에 쬐고,
小艇收緡繫樹根 거룻배 낚싯줄 걷어 나무뿌리에 배를 묶네.
坐看餘霞催暝色 어둠 재촉하는 남은 놀을 앉아서 바라보니,
漁歌聲裏欲黃昏 金萬基, <瑞石集> 卷一, 『韓國文集叢刊』第144卷 370쪽,「瀟湘八景」‘漁村落照’.
어부 노래 소리 속에서 황혼이 지려고하네.

김만기(金萬基;1633-1687)의 작품이다. 길 하나가 맑은 강을 따라서 어부의 집 사립문을 감싸 돈다. 넘실넘실 서산으로 지는 해가 산 아래 어촌으로 살금살금 내려온다. 조금씩 단풍나무 숲을 비추자 새들이 날개 짓을 하며 돌아간다. 넓게 나뉜 갈대 섬에는 저녁연기 흔적만 남아 있다. 물가 언덕으로 성긴 울타리에는 그물을 널어 햇볕에 쬐며 말리고 있다. 나룻배는 낚싯줄을 걷고서 나무뿌리에 배를 묶어둔다. 어둠을 재촉하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앉아있는데 어부의 노래 소리 속에서 황혼이 지려고 하는 형상을 묘사한 작품이다.

<어촌낙조-13>
天際金鳥銜半紅 하늘가 금빛 새는 반쯤 붉은 태양 물고,
波文羅??微風 물결무늬 비단 곡식은 미풍에 나부끼네.
沙明柳暗漁樵路 어초 길 물가는 밝고 버들 숲 어두운데,
兩岸茅茨??中 朴永元, <梧墅集>, 冊五,『韓國文集叢刊』第302卷 318쪽,「瀟湘八景」‘漁村落照’.
그림 속 양안 띠 집 지붕엔 그물이 있네.

박영원(朴永元;1791-1854)의 작품이다. 하늘 끝을 날아가는 새는 온몸이 석양빛에 금빛으로 물들었다. 반쯤 붉은 태양을 입에 물고서 날아간다. 비단 같은 곡식은 물결무늬를 이루며 미풍에 나부낀다. 어부와 초동이 다니는 길은 어둡고 물가는 밝다. 그림 속을 들여다보니 양쪽 언덕 초가지붕에는 그물을 말리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수확의 계절을 암시하듯 가을의 풍요로움을 언급하고 있다. 동시에 한가로운 어촌 풍경을 제시하고 있다.

<어촌낙조-14>
小艇棹廻繫樹根 작은 배 노 저어 돌아와 나무뿌리에 매니,
依?殘照下平原 흐릿하게 지는 햇빛이 들판으로 내려오네.
山腰紫綠遙相暎 산허리는 울긋불긋 들판 멀리 서로 비추고,
粧點幽閒繞水村 宋來熙, <錦谷集>, 卷一,『韓國文集叢刊』第303卷 107쪽,「瀟湘八景 八首 」‘漁村夕照’.
한가롭고 그윽하게 단장하곤 어촌을 감싸네.

송래희(宋來熙;1791-1867)의 작품이다. 작은 배를 타고 노 저어 돌아와서는 나무뿌리에 배를 맨다. 희미하게 지는 햇빛이 들판으로 슬금슬금 내려오고 있다. 산허리는 온통 울긋불긋 멀리 서로 비추고 그윽하면서도 한적하게 단장을 한 채로 어촌을 감싸고 있는 형상을 제시한 작품이다.

<어촌낙조-15>
山頭落日江頭照 산꼭대기에서 지는 해가 강변 나루를 비출 때면,
翁捻魚?女捻漂 늙은이는 물고기와 어구 쥐고 계집은 빨래 드네.
澹泊歸來餘底思 담박하게 돌아오면서도 무슨 생각이 남았었던지,
坐聽紅萩秋風掉 金時洛,『莊庵集』, 卷一,「家有古藏瀟湘?八帖, 家兄逐景題詠, 伏次其韻」, ‘漁村落照’.
앉아들으니 붉은 가래나무 가을바람에 흔들리네.

김시락(金時洛;1857-1896)의 작품이다. 산 정상에 지는 해가 강나루를 비출 때면 늙은이는 어구(漁具)를 쥐고 계집은 빨래를 들고 돌아온다. 담박하게 돌아오다가 무슨 생각이 남았던지 가만히 앉아서 붉은 가래나무가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듣고 있는 인물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어촌낙조(漁村落照)라는 제목으로 형상화된 작품들은 평화롭고 한가한 어촌(漁村)에 해지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작품에 담긴 함의(含意)는 세상사에 맞서 대립하고 갈등하며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라 순리(順理)대로 살아가며 세상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삶의 모습을 제시하고자 함이었다.
어촌낙조(漁村落照)는 어촌(漁村)에 해가 저무는(落照) 형상(形象)을 제시함으로써 세상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순리에 따라 살아간다는 함의(含意)를 드러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앞에서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어촌낙조(漁村落照)라는 제목으로 창작된 시가(詩歌) 문학작품이나 회화(繪畵) 속에 어떤 의미 맥락이 감추어져 있는가 하는 점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마찬가지로 의미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인물의 형상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어촌낙조(漁村落照)에서는 많은 인물 형상이 등장하지 않고 있다. 대략 10여 가지 인물 형상이 등장한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어촌낙조(漁村落照)>에 등장하는 인물의 형상
차례
등장인물
인물형상
논문부록
작품번호
1
어부(漁翁,漁人,漁父,漁?,?笠,漁郞,漁子,漁樵,漁家)
해질녘 석양 속에서 일을 마치고 술에 취해 돌아오는 어부의 형상, 해질녘의 장관을 바라보거나 홀로 낚시를 하고 있는 인물 형상
2,3,4,5,6,8,9,10,12,13,14,15,16,18,19,23,29,31,34,35,36,39,41,42,45,46,47,48,49,51
2
인(人)
저물녘 석양 속에 있는 사람들의 형상
5,20,34
3
어떤 사람(何人, 誰)
바람 맞으며 한가롭게 낚시하거나 귀가하는 어부
14,16
4
인가(人家)
연기에 가려져 있는 인가와 그곳에 사는 어부
7
5
인세(人世)
자연과 대비되는, 덧없는 인간 세상의 형상
32
6
태공(太公)
강태공의 모습에 비유되는 어부의 형상
12
7
남린(南隣),동린(東隣)
저녁이 되자 이웃끼리 서로 어울리는 모습
23
8
객(客)
한평생 삶의 어려움을 모른 채 살아가는 어부 형상
25
9
옹(翁)
여유로운 어촌에서의 일상을 형상화한 인물
26,53
10
소녀(少女)
어촌의 일상생활에 충실한 인물의 형상
27,53


어촌낙조(漁村落照)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어촌의 생활이 작품의 주된 시적 형상화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에 어부(漁父)의 인물 형상이 지배적이다. 대다수의 작품에서 어부의 형상을 다루고 있다. 문맥에 드러나기도 하고, 때로는 표면적으로는 드러나지 않고 있어도 정황 상, 어부의 형상을 간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도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그림 > 어촌낙조 中 그물 옆에서 고기를 잡고 있는 어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어부(漁父)의 형상은 많은 분량만큼이나 다양한 시어(詩語)로 표현되고 있었다. 어부(漁父), 어옹(漁翁), 어인(漁人), 어수(漁?), 사립(?笠), 어랑(漁郞), 어자(漁子) 등의 시어를 통해 어부 형상을 다루고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해질녘이라는 시간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으며, 그물을 걷거나 석양 속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장면 내지는 주막으로 향하는 인물 형상 혹은 술에 취한 채 집으로 돌아오는 인물의 모습이 주로 형상화되었다. 또한 해질녘의 장관을 바라보거나 홀로 낚시를 하고 있는 인물의 형상이 주를 이루고 있다. 어촌(漁村)의 형상은 주로 집집마다 그물을 말리고 있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으며, 석양 속에서 바람을 맞으며 태공망에 빗댈 만큼 한가롭게 낚시하거나 귀가하는 인물의 형상이 다뤄지기도 한다.

江雲向晩卷長空 해 저무니 긴 하늘에 강 구름 걷히고,
斜照漁家日殺網中 어촌은 석양빛에 그물 말리는 중이네.
海底湧生胡不見 바다 밑 솟아날 땐 어찌 보지 않았나,
?哉方始愛殘紅 李奎報, <東國李相國集> 後集卷六,『韓國文集叢刊』第2卷 198쪽,「次韻李相國復和虔州八景詩贈」‘漁村落照’.
이상해라 비로소 지는 해 사랑하겠네.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작품이다. 해가 저물자 길게 펼쳐진 하늘을 뒤덮고 있던 강변의 구름이 걷혔다. 구름 걷힌 어촌(漁村)에 이제 조금 남은 석양빛이 비치고 있다.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고기 잡는 그물을 펼친 채 햇볕에 말리고 있다. 무척이나 한적하고 평화로운 어촌의 해질 무렵 정경이다. 그러면서 시인은 평상시에는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수평선 밑에서부터 해가 치솟아 오르는 일출(日出)의 장관이 아름답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 다시 보니 일출(日出)의 장관보다 일몰(日沒)의 장관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고 있다. 예전에는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며 시인했다. 젊은 시절에는 해지는 아름다움을 인식하지 못했음을 고백하고 있다.

斷岸湖痕餘宿莽 끊어진 절벽에 조수 흔적은 묵은 풀에 남아 있고,
鷺頭揷翅閑爬? 백로는 머리를 날개에 꽂고 한가롭게 가려움 긁네.
銅盤倒影波底明 구리 소반 엎어진 그림자가 물결 밑을 밝게 하고,
水浸碧天迷俯仰 물에 잠긴 푸른 하늘 구부렸다 올려보니 어지럽네.
歸來蒻笠不驚鷗 돌아오는 부들 삿갓에도 갈매기는 놀라지 않고,
一葉片舟截紅浪 조각배 한 척만이 붉은 물결을 가르며 돌아오네.
魚兒滿籃酒滿甁 물고기 바구니에 가득하고 술은 병에 꽉 찬 채로,
獨背晩風收綠網 陳?,『梅湖遺稿』卷四, 『韓國文集叢刊』第2卷 283쪽,「宋迪八景圖」‘漁村落照’.
홀로 저문 바람 등지고 초록빛 그물을 걷는구나.

진 화(陳?;1180-1215, 추정)의 작품이다. 어촌낙조(漁村落照)의 형상을 담고 있는 전형적인 작품이다. 어촌 마을 한쪽 끝으로 절벽이 자리 잡고 있다. 절벽 끝에 피어있는 묵은 풀에 조수(潮水)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했다. 매우 세심한 묘사가 아닐 수 없다. 또 백로 한 마리가 자기 머리를 날개 속에 꽂고서 가려운 곳을 긁고 있는 한가로운 정경(情景)을 연출하고 있다. 구리 소반(銅盤)이라는 시어(詩語)로 지는 해를 표현했다. 석양에 지는 해의 그림자가 물결 밑까지 밝게 비추고 있고 푸른 하늘이 물에 잠겨 있어 굽어보고 올려다보니 어지럽기만 하다고 했다. 도롱이를 걸치고 삿갓을 쓴 채 돌아오는 어부를 보고도 갈매기는 놀라는 기색이 없다. 멀리서는 조각배 한 척이 붉게 물든 물을 가르며 돌아온다. 물고기가 바구니에 가득하고 술병에는 술이 가득하다. 어부는 저물녘 불어오는 바람을 등지고서 홀로 초록빛 바다를 닮은 그물을 걷고 있다고 했다.
<그림 > 어촌낙조 中 그물을 걷고 있는 어부
이 작품은 어촌낙조(漁村落照)가 갖추어야할 모든 요소를 구비하고 있다. 어촌(漁村)이라는 공간적 배경이 그렇고, 낙조(落照)라는 시간적 배경이 그렇다. 그뿐만 아니라 어부(漁父)의 형상 또한 그렇다. 작품을 보면 세상사의 고단함이나 치열함, 시비하는 목소리나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모습이 전혀 포착되지 않는다. 작품 속을 관통하는 정경(情景)은 오직 한적하고 여유로운 풍치(風致)뿐임을 알 수 있다.
<그림 > 어촌낙조 中 고기를 낚고 있는 어부
이러한 정경(情景)과 풍치(風致)는 비단 진화의 작품에만 국한되어 형상화된 특질(特質)이 아니라 어촌낙조(漁村落照)라는 제목으로 창작되었던 모든 작품들에서 공통으로 발견되고 있는 특질에 해당한다. 시끌벅적한 세상사와는 일정 정도 거리를 두고서 한적하고 평화로운 형상이 지배적이다. 어촌낙조(漁村落照)를 노래한 작품 어디에서도 긴장과 대립이나 갈등 혹은 다급함이나 긴박함 그리고 어떠한 현실적 욕구나 욕망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순리(順理)대로 살아가는 인물 형상만이 등장할 따름이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세상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주목해서 보아야할 부분은 바로 어부(漁父)의 형상이다.
어촌낙조(漁村落照)라는 제목으로 창작된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절대 다수는 어부(漁父)의 형상에 해당한다. 이들이 작품 속에 형상화된 모습은 자연(自然)과 무척 닮아있다. 욕심을 내지 않고 순리대로 살아간다. 해가 뜨면 나가서 고기를 잡고 해가 저물면 그물을 걷는다. 돌아오는 길에 주막에 들러 술을 마신 후 붉게 물든 석양 아래 집으로 돌아간다. 때로는 강 태공에 비유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웃들과 어울려 소박한 삶을 즐기는 인물 형상이다.
그렇다면 어촌낙조(漁村落照)에 감춰진 서사적 맥락은 무엇일까? 어촌낙조에 형상화된 모습과 함의를 토대로 우리 인간의 삶에서 어촌낙조(漁村落照)가 지향하고 있는 바는 어떤 단계를 상징하는 서사인가를 점검해보면 바로 노년(老年)의 서사에 해당한다. 인생의 황혼기가 갖는 의미에 상응하는 형상이 어촌낙조에 형상화되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삶의 치열함이나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고 이제는 세상을 여유 있게 관조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시기의 서사에 해당한다. 이 시기는 휘몰아치는 격정과 열정이 아니라 차분하게 정돈된 심리 상태로 보다 안정감 있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시기를 대표하는 표현으로 순리(順理)와 관조(觀照)라고 명명했다. 오늘날의 삶에 빗대어 굳이 표현하자면 정년(停年) 이후의 시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60대의 나이에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서사(敍事)가 아닐까 판단한다. 한마디로 어촌낙조(漁村落照)의 서사적 맥락은 순리(順理)에 따라 욕심내거나 무리하지 않고 살아가며 관조(觀照)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시기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3.8. 강천모설(江天暮雪) : 세상사에 초탈한 달관(達觀)과 흥취(興趣)의 경지

강천모설(江天暮雪)을 노래한 한시 작품은 총 58수에 이른다. 그리고 관련 시조(時調) 작품이 총 6수가 전하고 있다. 강천(江天)이란 강물과 하늘이 맞닿아 보이는 어름을 이르는 말이다. 그리고 모설(暮雪)은 저녁 무렵에 내리는 눈을 말한다. 강천모설(江天暮雪)은 소상팔경(瀟湘八景) 전체 시제(詩題) 가운데 겨울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사실이 제목에 그대로 드러난다. 강천모설(江天暮雪)에 속한 작품들은 모두 세상사에 초탈한 달관(達觀)과 흥취(興趣)의 경지에 도달한 모습을 다루고 있음이 확인된다.

<강천모설-1>
雪意嬌多着水遲 교태 많은 눈송이 물에 닿기 더딘데,
千林遠影已離離 온 숲에 먼 그림자 어느새 흩어지네.
蓑翁未識天將暮 도롱이 쓴 노인은 해지는 줄 모르고,
醉道東風柳絮時 李仁老,『三韓詩龜鑑』卷之中, ‘江天暮雪’.『東文選』卷二十,「宋迪八景圖」‘江天暮雪’.
봄바람에 버들개지라 취해서 말하네.

이인로(李仁老;1152-1220)의 작품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가 아양을 떨고 교태를 부리느라 물에 떨어지는 속도가 더디다. 그림 속 멀리로 모든 숲에는 그림자가 이미 흩어졌다. 도롱이를 쓰고 있는 노인은 장차 해가 저무는 줄도 모르고 술에 취한 채 날리는 눈송이를 보며 봄바람에 버들개지가 날리는 것이라 소리치고 있는 인물의 형상을 형용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 형상화된 노인은 세상사에 초탈한 인물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발도 겨울이라는 계절도 노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직 술에 취하고 흥에 겨운 나머지 봄날 바람에 흩날리는 버들개지로 인식될 따름이다. 자연의 질서나 우주의 질서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세상사로부터 자연의 질서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살아가는 인물이다. 속세와는 초연한 인물의 형상을 제시하는 작품이다.

<강천모설-2>
江天無雪亦陰昏 강천에는 눈이 없어도 흐리고 어두운데,
更奈紛紛冒遠巒 또 어찌하여 어지러이 먼 봉우리 가리나.
唯有漁翁醉和睡 오직 어옹만이 술에 취해 잠을 자느라고,
?來?底不會看 李奎報, <東國李相國集>後集卷六,『韓國文集叢刊』第2卷 196쪽,「次韻李平章仁植虔州八景詩幷序」‘江天暮雪’.
도롱이 밑까지 눈이 쏟아져 쌓인 줄 모르네.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작품이다. 강천(江天)이라는 공간을 설정했다. 그곳에는 눈이 내리지도 않는데 하늘은 흐리고 어둡다. 그런데도 어떻게 먼 봉우리를 어지럽게 가리고 있는지 의문스럽기만 하다. 오직 어옹(漁翁) 홀로 술에 취해 깊은 잠을 자고 있다. 얼마나 깊은 잠에 들었는지 도롱이 밑에까지 쏟아져 쌓인 눈을 알지 못한 채 졸고 있는 어옹(漁翁)의 형상을 그렸다. 이 작품에서 형상화된 어옹 역시 세상사에 초탈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쏟아 붓듯 퍼붓는 눈 속에서 도롱이 아래까지 눈이 쌓였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술에 취해 졸고 있다. 작품 속 어옹은 술에 취해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등에 관해서는 관심조차 없다. 자연의 질서나 날씨조차도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한다.

<강천모설-3>
江上濃雲?水墨 강변에 짙은 구름 수묵(水墨)을 풀어놓은 듯,
隨風雪點嬌無力 바람 따라 눈송이는 교태(嬌態)인 양 힘없네.
憑欄不見昏鴉影 난간 기대니 저녁 까마귀 그림자 볼 수 없고,
萬樹繁華春頃刻 온갖 나무마다 화려함은 잠깐 동안 봄일러라.
漁翁蒻笠戴寒聲 어옹의 부들 삿갓에다 차가운 소리를 얹었고,
賈客蘭橈滯行色 장사꾼 목란(木蘭)노가 떠나려다가 머무르네.
除却騎驢孟浩然 나귀 등에 올라탄 맹호연(孟浩然)을 빼고는,
箇中詩思無人識 陳?,『梅湖遺稿』卷四, 『韓國文集叢刊』第2卷 283쪽,「宋迪八景圖」‘江天暮雪’.
개중에는 시사(詩思)를 아는 사람이 없구나.

진 화(陳?;1180-1215, 추정)의 작품이다. 강변을 따라 드리운 짙은 먹구름이 수묵을 풀어놓은 듯하다. 바람이 부는 대로 눈송이가 힘없이 날리며 교태를 부리고 있다. 난간에 기대어 봐도 저녁 까마귀는 그림자조차 볼 수 없다. 모든 나무들이 화려하게 변신을 하니 잠깐 동안이나마 봄기운을 느껴본다. 어옹(漁翁)은 삿갓에 차가운 소리를 얹었고, 장사치는 목란으로 만든 노를 저으며 떠나려다가 머문다. 이런 풍경 가운데 아마도 나귀 등에 올라탄 맹호연(孟浩然;689-740)을 제외하고는 그 가운데 시사(詩思)를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시사(詩思)란 시를 지으려는 마음 내지 흥취를 의미한다. 나귀 등에 올라탄다는 의미의 기려(騎驢)라는 표현은『북몽쇄언(北夢?言)』의 내용 가운데 유래한다. 어떤 사람이 정경(鄭?)에게 묻기를, “요즘 시사(詩思)가 있습니까?”라고 하자, “시사는 파교 풍설 속 나귀 등위에 있다.(詩思在?橋風雪中驢子背上)”고 답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나귀 등이라고 하면 나귀 등에서 눈(雪)을 맞으면서 시상(詩想)을 떠올리는 행위로 인식되었다. 시상(詩想)을 떠올리는 데 가장 적당한 곳을 ‘파교려상(?橋驢上)’이라 하는데 이와 동일한 맥락이다.

<강천모설-4>
九陌紅塵午日烘 구맥 홍진에 정오의 햇빛이 밝아서,
閉門看畵意無窮 문 닫고 그림 보니 의미가 무궁하네.
何時着我孤舟去 언제쯤이면 내가 외딴 배를 타고가,
獨釣江天暮雪中 李穀, <稼亭集>, 卷十九,『韓國文集叢刊』第3卷, 217쪽,「題江天暮雪圖」.
눈 내리는 강천에서 홀로 낚시할까.

이 곡(李穀;1298-1351)의 작품이다. 번화한 거리인 속세(俗世)에서 한낮의 햇빛이 눈부시게 밝다. 문을 닫고 그림을 보니 화자는 그 의미가 무궁함을 인식할 수 있었다. 언제쯤이면 나도 혼자서 배를 타고 나가 눈 내리는 강변에서 홀로 낚시할 수 있을까? 하는 시인의 심사를 드러내고 있다. 속세를 초탈(超脫)하고 싶은 시인의 마음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홀로 낚시를 한다는 의미의 ‘獨釣(독조)’는 그 유래가 있다. 유종원(柳宗元;773-819)의「강설(江雪)」이라는 작품에 등장하는 표현이다. “千山鳥飛絶/ 萬逕人?滅/ 孤舟?笠翁/ 獨釣寒江雪.(모든 산엔 날새도 그쳐있고/ 길가에는 인적마저 끊겼구나./ 외딴 배 도롱이에 삿갓 쓴 노인/ 눈 내리는 추운 강에서 홀로 낚시하네.)”


<강천모설-5>
薄暮雲垂風捲埃 초저녁 구름 드리우니 바람이 먼지 걷고,
江城旋放雪花開 강가 성에 도로 뿌리니 눈꽃이 피었구나.
亂飄騷客吟驢去 방황하는 시인 읊조리며 나귀타고 가고,
閒灑漁人釣艇回 한가로운 어부는 고깃배 타고 돌아오네.
夾岸銀屛新?? 골짝 언덕에 은색 병풍 새롭게 이어지고,
層崖瓊樹轉奇? 바위절벽 눈 덮인 나무가 더욱 기괴하네.
定知遊子饒淸興 나그네는 맑은 흥취 넉넉함을 알고 있어,
脫却霜?換白? 崔恒,『匪懈堂瀟湘八景詩帖』, 江天暮雪.
하얀 갖옷을 벗어서는 막걸리와 바꾸네.

최 항(崔恒;1409-1474)의 작품이다. 이른 저녁에 구름이 드리우고 바람은 먼지를 걷어낸다. 강가에 위치한 성(城)에 눈이 날리자 성안 곳곳에 눈꽃이 피었다. 방황하는 시인은 읊조리며 나귀를 타고 가고, 한가로운 어부는 고깃배를 타고 돌아온다. 골짜기 언덕은 흰눈에 덮여 은빛 병풍이 새롭게 이어져 있다. 기암절벽에는 눈 덮인 나무가 더욱 기괴한 모습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나그네는 맑은 흥취(興趣)가 넉넉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내려 쌓인 눈에 하얗게 변해버린 가죽 옷을 벗어서 막걸리와 바꿔 먹는다고 했다. 흥취가 샘솟아 술을 마시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아무런 미련이나 망설임 없이 갖옷을 술과 바꿔먹는 나그네의 흥취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강천모설-6>
朔風結層陰 북풍 불고 음기도 겹겹이 맺혀있고,
江雪飛漫天 강천에 눈이 날려 하늘에 가득하네.
江流凍無聲 흐르던 강물은 얼어서 소리가 없고,
天色暮莽然 하늘빛은 해 저물어 멀리 아득하네.
此間有眞意 이런 사이에 진정한 뜻이 있겠지만,
定非文墨傅 꼭 시문이나 서화로 전해지진 않네.
孤舟蓑笠翁 외딴 배 도롱이 입고 삿갓 쓴 어옹,
知汝久忘筌 李荇, <容齋集> 卷三, 『韓國文集叢刊』第20卷 394-395쪽,「瀟湘八景」‘江天暮雪’.
너 알고 오랫동안 고기잡이 잊었네.

이 행(李荇;1478-1534)의 작품이다. 겨울바람이 사납게 부는데 음산한 기운마저 겹겹이 맺혀 있는 날씨다. 강천에 날리는 눈발이 하늘에 가득하다. 흐르던 강물조차 얼어붙어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하늘빛은 해저물자 멀리까지 아득하기만 하다. 이런 풍경 속에 참뜻(眞意)이 있으련만 시(詩)나 그림(畵)으로 반드시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외딴 배에 도롱이를 입고 삿갓을 쓴 어옹(漁翁)은 이런 풍경에 심취하여 오랫동안 물고기를 잡는 것조차 잊고 있는 인물 형상으로 제시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주목되는 표현은 ‘진의(眞意)’와 ‘망전(忘筌)’이다. 진의(眞意)란 글자 그대로 참된 의미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강천모설(江天暮雪)이라는 제목을 토대로 창작된 시나 그림에는 시인이 생각하고 있는 어떤 참된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참된 의미를 밝히는 것이 이 장의 목적이기도 하다. 어옹(漁翁)이 홀로 도롱이를 입고 삿갓을 쓴 채로 외딴 배를 타고 물고기를 잡으러 온 지금은 눈발이 날리는 겨울날 어느 저물 무렵이다. 강천(江天)이 저물 무렵, 날리는 눈발을 보며 작품 속 인물은 고기잡이를 잊었다. 망전(忘筌)이라는 표현은『壯子(장자)』「외물(外物)」편에 등장하는 고사로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어버린다.(筌者所以在魚 得魚而忘筌)”는 뜻이다. 목적을 이루면 그 때까지 수단으로 삼았던 사물은 무용지물이 됨을 이르는 말이다. 전(筌)은 고기를 잡기위한 것이나 고기를 잡고 나면 전은 잊어버리게 된다. 제(蹄:덫)는 짐승 을 잡기 위한 것이나 짐승을 잡고 나면 제는 잊어버린다. 말(言)은 뜻을 나타내는 것이나 뜻을 다 알게 되면 그 말은 잊어버린다. 여기서 망전(忘筌), 망제(忘蹄), 망언(忘言), 전제(筌蹄) 등은 어느 것이나 시비와 선악 같은 것을 초월한 절대의 경지를 말하고 있다. 상대나 나와 접하는 모든 존재를 초월하여 이 세상의 만물은 한 몸이라고 생각하는 절대적인 경지에 서게 되면, 옳은 것도 없고 그른 것도 없으며, 선함도 악함도 없으며, 아름다운 것도 추한 것도 없다는 것이 장자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장자가 이처럼 보았던 관점을 보통 사람들은 인간의 기회주의적이며 쉽고 간사한 마음의 속성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강천모설-7>
垂地寒雲凍 땅에 드리운 차가운 구름 얼고,
連江積縞凝 강을 따라 쌓여 하얗게 엉겼네.
漫空玉屑亂崩騰 하늘 가득 옥가루 어지럽게 동요하고,
塡壑更盈? 골짝 메우고 또 밭두둑에 차네.
狡兎迷三窟 간교한 토끼 세 굴을 혼동하고,
銀山聳百層 은빛 산은 백층이나 솟아 있네.
夜窓還訝曙光升 밤 창에서 다시 새벽빛을 맞아 오르니,
詩興正來乘 黃俊良, <錦溪集> 外集 卷二, 『韓國文集叢刊』第37卷 78쪽,「江天暮雪」.
시 짓는 흥취 마침 타고 오네.

황준량(黃俊良;1517-1563)의 작품이다. 땅 밑까지 드리운 차가운 구름이 얼었고, 강(江)을 따라 흰눈이 쌓여있다. 하늘에 가득한 눈발이 어지럽게 흩날리더니 골짜기를 메우고 또 밭두둑을 가득 메운다. 간교한 토끼가 세 개의 굴을 혼동하고『사기(史記)』「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에 따르면, 풍환(馮驩)은 제(齊) 나라의 재상(宰相)인 맹상군의 식객(食客)이었다. 맹상군은 왕족인 정곽군(靖郭君) 전영의 아들로 이름은 전문(田文)이고, 맹상군은 그의 호이다. 풍환은 본디 거지였는데 맹상군이 식객을 좋아한다는 말에 짚신을 신고 먼 길을 걸어왔던 자다. 맹상군은 그의 몰골이 하도 우스워 별 재주는 없어 보였지만 받아주었다. 그러나 그는 괴짜였다. 맹상군은 그를 3등 숙소(宿所)에 배치했는데 고기반찬이 없다고 늘 투덜댔다. 그래서 2등 숙소로 옮겨 주었는데 이번에는 수레가 없다고 불평을 하는 것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1등 숙소로 옮겨 주자 그럴 듯한 집이 없다며 투덜댔다. 당시 맹상군은 설(薛: 현재 山東省 동남지방)에 1만 호의 식읍(食邑)을 가지고 있었다. 3천 명의 식객을 부양하기 위해 식읍 주민들에게 돈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도무지 갚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누구를 보내 독촉할까 궁리하고 있는데 1년간 무위도식(無爲徒食)으로 일관(一貫)했던 풍환이 자청했으므로 그를 보내기로 했다. 출발할 때 그는“빚을 받고 나면 무엇을 사올까요?”하고 물었다. 맹상군은 “무엇이든 좋소. 여기에 부족한 것을 부탁하오.” 라고 대답하였다. 설에 당도한 풍환은 빚진 사람들을 모아서 차용증을 하나하나 점검한 후 이자만 해도 10만 전을 받았다. 예상외의 좋은 결과였다. 징수가 끝나자 그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맹상군은 여러분의 상환 노력을 어여삐 보고 모든 채무를 면제하라고 나에게 분부하셨소.” 그리고는 모아 놓았던 차용증 더미에 불을 질렀다. 차용증은 모두 재로 변하고, 사람들은 그의 처사에 감격해 마지않았다. 설에서 돌아온 풍환에게 맹상군이,“선생은 무엇을 사 오셨는가?”하고 물어 보았다. 이때 풍환이 말하기를,“당신에게 지금 부족한 것은 은혜와 의리입니다. 차용증서를 불살라 당신을 위해 돈 주고도 사기 힘든 은혜와 의리를 사 가지고 왔습니다.(此時馮驩曰 軍之不足則恩義也 以燒借書爲君賣恩義來)”라 하였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맹상군은 매우 마땅찮은 기색이었다. 1년 후 맹상군이 제 나라의 새로 즉위한 민왕(泯王)에게 미움을 사서 재상 자리에서 물러나자, 3천 명의 식객들은 모두 뿔뿔이 떠나버렸다. 풍환은 그에게 잠시 설에 가서 살라고 권유했다. 맹상군이 실의에 찬 몸을 이끌고 설에 나타나자 주민들이 환호하며 맞이했다. 맹상군이 풍환에게 말을 했다. “선생이 전에 은혜와 의리를 샀다고 한 말뜻을 이제야 겨우 깨달았소.” “교활한 토끼는 구멍을 세 개나 뚫지요(狡兎三窟). 지금 경(卿)께서는 한 개의 굴을 뚫었을 뿐입니다. 따라서 아직 고침무우(高枕無憂: 베개를 높이 베고 근심 없이 잠)를 즐길 수는 없습니다. 경을 위해 나머지 두 개의 굴도 마저 뚫어드리지요.” 그래서 그는 위(魏)나라의 혜왕(惠王)을 설득하여 맹상군을 등용하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실현할 것이며 동시에 제 나라를 견제하는 힘도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마음이 동한 위의 혜왕이 금은보화를 준비하여 세 번이나 맹상군을 불렀지만 그 때마다 풍환은 맹상군에게 응하지 말 것을 은밀히 권했다. 이 사실은 제 나라의 민왕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아차 싶었던 민왕은 그제서야 맹상군의 진가를 알아차리고 맹상군에게 사신을 보내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다시 재상의 직위를 복직시켜 주었다. 두 번째의 굴이 완성된 셈이다. 두 번째의 굴을 파는데 성공한 풍환은 세 번째 굴을 파기 위해 제 민왕을 설득, 설 땅에 제나라 선대의 종묘를 세우게 만들어 선왕(先王) 때부터 전승되어 온 제기(祭器)를 종묘에 바치도록 했다. 선대의 종묘가 맹상군의 영지에 있는 한 설혹 제왕의 마음이 변심한다 해도 맹상군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이것으로 세 개의 구멍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주인님은 고침안면(高枕安眠) 하십시오.” 이리하여 맹상군은 재상에 재임한 수십 년 동안 별다른 화를 입지 아니했는데 이것은 모두 풍환이 맹상군을 위해 세 가지 보금자리를 마련한 덕이다. 이야기의 주인공 풍환을 <전국책(戰國策)> ‘제책편(齊策扁)’에서는 ‘풍훤’으로 적고 있다. 이 고사는 불안한 미래를 위해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로, 완벽한 준비 뒤에는 뜻하지 않는 불행은 찾아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 은빛으로 눈부신 산들이 백층이나 솟아있다. 창(窓)에 앉아 밤을 새우고 다시 새벽빛을 맞으니 시를 짓는 흥취(興趣)가 곧장 바르게 타고 오른다. 강천모설(江天暮雪)의 풍경을 보면서 화자(話者)는 시적 흥취에 젖어있다. 밤을 새워가며 새벽녘에 환하게 동이 트는 아침을 맞이할 정도로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강천(江天)이라는 공간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정경이다. 저물녘 내리는 눈 혹은 이미 내려서 쌓인 눈을 보며 시상에 젖는다. 세상만물을 은빛으로 덮어버린 저녁은 시인에게 많은 상념과 시상과 감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만물이 흰눈에 덮여서 숨을 고르고 있는 순간, 인적(人跡)은 물론이고 날짐승이나 길짐승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적막하고 고요한 시간이다. 하지만 겉으로 형상화된 그 시간 이면으로는 세상 만물이 곧 다시 올 봄(春)을 기다리면서 눈 속에서 봄기운과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온축(蘊蓄)하고 있는 형상임을 알 수 있다.

<강천모설-8>
江風寒?雪 강바람이 차가워서 눈을 빚어내고,
江日澹無輝 강변에 해는 담박하여 햇살도 없네.
何處人回棹 어디 사는 사람인지 노를 돌리니,
知從訪戴歸 李?光, <芝峰集> 卷一, 『韓國文集叢刊』第66卷 16쪽,「江天暮雪」.
대규를 찾아갔다 돌아옴을 알겠네.

이수광(李?光;1563-1628)의 작품이다. 강바람이 차가워 눈을 빚어내고 강변 해는 담박하니 햇살도 없다. 어디에 사는 사람인지 알 수 없지만 저만치 멀리서 노를 저어 배를 돌리는 것을 보며 왕휘지와 대규의 옛 고사를 떠올렸다. 왕휘지(王徽之;未詳-386)는 동진(東晋) 임기(臨沂)의 사람으로 유명한 대 서예가 왕희지의 아들로 호가 자유(子猷)였기에 왕자유(王子猷)라고도 불린다. 그는 명문출신이지만 세속의 일에는 무관심하여 고독을 즐기고 있었다. 어느 날 밤 산음(山陰) 땅에 살고 있던 왕자유가 달빛에 비치는 설경(雪景)의 아름다움에 그만 넋을 뺏겼다. 크게 흥취를 느낀 왕자유는 하인에게 명하여 술과 안주를 가져오라 시키고 달밤의 설경을 감상하면서 <초은시(招隱詩)>를 낭송했다. 그러다가 문득 섬계(剡溪)에 은거하던 절친한 친구 대규(戴逵, 자(字)는 안도(安道);出生未詳-395)가 생각나서 하인에게 배를 준비시켰다. 한밤중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만나기 위해 출발했다. 대규도 출세에는 무관심한인물로 거문고와 그림의 명인이었다. 휘지는 대규와의 만남을 생각하니 마음이 두근거렸다. 달빛 아래서 눈 위에 책상을 내놓고 거문고를 타며, 퉁소를 불고, 시를 읊어 춤을 추며, 즐거움을 나눌 생각에 젖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샌가 흥분해 있던 그의 마음은 서서히 가라앉았고 대규의 집에 거의 도달했을 때 배를 되돌리게 했다. 후에 어떤 사람이 그 이유를 물으니 휘지는 웃으며 대답했다. “흥이 일어서 타고 갔다가, 흥이 다하면 돌아오는 것인데, 반드시 대안도(戴安道)를 만나야만 하는가?” 라고 했다 한다. 1.『晉書』「王徽之傳」, 嘗居山陰,夜雪初霽,月色淸朗,四望皓然,獨酌酒詠左思招隱詩,忽憶戴逵.逵時在剡,便夜乘小船詣之,經宿方至,造門不前而反.人問其故,徽之曰, 本乘興而行, 興盡而返, 何必見安道邪. 2.『世說新語』, 王子猷居山陰, 夜大雪, 眠覺開室, 命酌酒, 四望皎然, 因起彷徨, 詠左思招隱詩, 忽憶戴安道, 時戴在剡, 卽便夜乘小船就之, 經宿方至造門不前而返, 人問其故, 王曰, 吾本乘興而行 興盡而返 何必見戴.
이 고사처럼 흥취(興趣)가 일어나 나섰다가 흥(興)이 다해 돌아온 것이라는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강천모설-9>
玉京瑤圃豈虛傳 옥경의 구슬 밭에서 어찌 부질없이 전했겠나,
一雪江村却自然 한바탕 내린 눈에 강마을 오히려 자연스럽네.
積縞已能欺桂魄 쌓인 비단 이미 계수나무에 혼백을 속였겠고,
輕寒還欲透詩肩 살짝 추워 도리어 시인 어깨에 스며들려하네.
披??佛王恭? 도롱이 걸치니 왕공이 입은 새털 옷인 듯하고,
上瀨依?剡水船 위쪽 여울에는 섬계 가는 왕휘지 배 희미하네.
今日兎園誰授簡 오늘은 달나라 동산에서 누가 편지 받을는지,
可憐騷客向藍田 尹順之, <?溟齋詩集>, 卷一,『韓國文集叢刊』第94卷, 539쪽,「瀟湘八景復選四首月課」.
남전(藍田) 현을 향하는 시인만이 가련하구나!

윤순지(尹順之;1591-1666)의 작품이다. 하늘나라인 옥경(玉京)의 옥구슬 밭에서 하얀 눈을 무엇 하러 부질없이 전했겠는가. 강천(江天)에는 한바탕 내린 눈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온 마을에 하얗게 쌓인 눈이 계수나무의 혼백을 속였는지 가벼운 추위가 다시 시인의 어깨에 스며들려고 한다. 도롱이를 걸치니 왕공이 입은 새털인 듯하다. 그림 위쪽 여울에는 섬계(剡溪)에 사는 친구 대규를 찾아가는 왕자유의 배인지 희미하게 조각배가 보인다. 오늘은 달나라 동산으로부터 누가 편지를 받을는지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구경하지도 못한 채 남전(藍田)을 향해 떠났던 시인 왕유(王維)만이 가련하다고 했다. ‘소객향남전(騷客向藍田)’이라는 표현에서 남전(藍田)을 향했던 시인(詩人)은 왕유(王維)를 가리킨다. 왕유가 속세를 떠나 은퇴한 후 말년을 보냈던 곳이 망천장(輞川莊)이다. 이 망천장이 바로 남전(藍田) 현(縣)에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형상화한 것이다.

<강천모설-10>
無限江村雪滿? 끝이 없는 강마을 눈은 배에 가득하고,
愁雲遙接洞庭天 시름겨운 구름이 동정 하늘에 접해있네.
此間正似山陰夜 이 사이가 바로 산음에서의 밤과 같은지,
誰詠當時招隱篇 鄭斗卿, <東溟集>卷二,『韓國文集叢刊』第100卷, 409쪽,「題瀟湘八景圖」‘江天暮雪’. 이 작품은 洪滄浪, <瀟湘八景詩歌抄> 31쪽에도 수록되어 있다. <瀟湘八景詩歌抄>는 우리나라의 문헌이 아니라 일본에서 1688년에 간행된 책이다. 이 책에는 일본인들이 노래한 소상팔경 한시와 그림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유일하게 홍창랑(洪滄浪)이라는 이름으로 8수가 실려있다. 여기서 ‘홍창랑’은 홍세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모두 정두경(鄭斗卿;1597-1673)의 <동명집(東溟集)>에 실려 있는 작품과 동일하다.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보건대, 홍세태(洪世泰;1653-1725)가 정두경에 비해 56년 뒤에 태어났다는 점, 또 다른 기록으로 보아 홍세태가 일본에 갔던 것은 사실이다. 일본 문인들과 ‘소상팔경’을 소재로 창작하는 과정에서 정두경의 작품을 그대로 노래했던 것이 일본에서 제작된 <瀟湘八景詩歌抄>라는 책에 수록된 것으로 보인다.
누가 당시에 초은편(招隱篇)을 읊조리나!

정두경(鄭斗卿;1597-1673)의 작품이다. 끝없이 아득한 강마을에 눈이 내렸다. 내린 눈은 배(?)에도 가득하다. 시름겨운 구름은 동정 호수 하늘에 닿아있다. 시인은 지금이 때마침 그 옛날 왕자유가 대안도를 찾아가던 산음에서의 밤과 같다고 하면서 공감대를 느끼고 있었던지 누가 당시에 <초은(招隱)>편을 읊조리는가? 하고 물었다. 이 작품에서도 저녁 무렵 눈 덮인 강천(江天)의 형상을 보고는 왕자유와 대안도의 고사를 떠올리고 있다.

<강천모설-11>
凄凄西日下虞淵 쓸쓸히 지는 해가 우연으로 내려가니,
漠漠陰雲接遠天 막막한 뭉게구름 먼 하늘에 접하였네.
度夜寒風吹不盡 밤을 건넌 추운 바람 쉼 없이 불더니,
?空飛雪落無邊 온 하늘에 날리는 눈 끝없이 내려앉네.
時看獨釣人廻棹 마침 홀로 낚시를 하다가 노를 돌리고,
更有蹇驢客聳肩 절룩이는 나귀 탄 손 어깨가 솟아있네.
憶得剡溪尋友興 섬계 친구 찾는 흥취 얻음을 떠올리니,
停杯不飮思茫然 尹推, <農隱遺稿> 卷一,『韓國文集叢刊』第143卷 198쪽,「瀟湘八景代洪陽從兄月課作」‘江天暮雪’.
잔 들어 마시지 않고 망연히 사모하네.

윤 추(尹推;1632-1707)의 작품이다. 겨울 어느 날 저물 무렵 해는 쓸쓸하게 지는데 아득한 곳에 뭉게구름이 멀리 보이는 하늘과 닿아있다. 찬바람은 밤새도록 쉬지 않고 불더니만 하늘 한쪽으로 날리는 눈발이 끝없이 내려앉는다. 때마침 바라보니 혼자서 낚시를 하던 사람은 배를 돌린다. 절뚝거리는 나귀에 탄 나그네는 시흥(詩興)에 어깨가 덩실덩실 솟구친다. 산음 땅에 머물던 왕자유가 섬계(剡溪)에 살던 친구 대안도를 방문하던 흥취(興趣)를 떠올렸는지 술잔을 들고 마시지 않고는 아득한 옛날의 흥취를 망연히 그리워하는 인물의 형상을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강천모설-12>
雪落汀空靜杳然 눈 내린 모래섬이 텅 비어 고요하고 아득한데,
箇中淸景滿江天 그 가운데 맑은 풍경은 강변 하늘에 가득하네.
先春水國梅爭映 이른 봄 강촌에는 매화가 반짝이는 빛 다투고,
向晩沙洲月共姸 저물어 가는 모래밭 달도 함께 하니 아름답네.
看去幾穿東郭履 동곽의 신발이 어느 정도 뚫렸는지 가서 보고,
興來擬泛子猷船 흥이 다해 돌아오며 자유가 띄운 배 흉내 내네.
漁翁不??衣冷 어옹은 도롱이가 차가워도 두려워하지를 않고,
坐釣?頭縮項? 金萬基, <瑞石集> 卷一, 『韓國文集叢刊』第144卷 370쪽,「瀟湘八景」‘江天暮雪’.
뗏목 끝에 앉아 목을 움츠리고 방어 낚시하네.

김만기(金萬基;1633-1687)의 작품이다. 눈 내린 모래섬은 텅 빈 채로 고요하면서도 아득하다. 개중에도 맑은 풍경은 강천(江天)에 가득하다고 했다. 이른 봄이 되자 강천(江天)에는 매화가 반짝이는 빛깔을 다투고, 저물어 가는 모래밭에는 달(月)이 함께 하니 아름답다. 동곽(東郭)의 신발이 어느 정도 뚫렸는지도 가서 보고 동곽리(東郭履)란 동곽의 신발이라는 뜻으로 매우 가난함을 의미한다. 사마천의『史記(사기)』「골계열전(滑稽列傳)」에 의하면, 무제 때 제나라 사람으로 ‘동방삭’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옛날부터 서적과 경술(經術)을 사랑하여 견문이 넓고 사물을 판단하는 데 밝았다. 그 당시 대장군 위청은 흉노를 무찌르고 포로들을 잡아 공을 세웠다. 그가 돌아오자 황제는 조서를 내려 황금 천근을 내렸다. 위청이 궁궐을 나서자, 그 당시 공거(조정의 공문과 신하나 백성들의 상소문을 처리하는 부서)에서 조서를 기다리고 있던 동방삭이 수레를 가로막고는 절을 하며 말했다.“왕부인께서는 새로이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지만 집이 가난합니다. 장군께서 지금 받으신 황금 천 근 중 절반을 왕부인의 부모에게 준다면 황제께서는 이를 듣고 기뻐할 것입니다. 이것이 기이하고도 편리한 계책입니다.” 위청은 감사의 말을 하고는 동방삭의 말대로 황금 오백 근을 왕부인의 부모에게 주었다. 며칠 후, 이 소식을 들은 왕부인은 위청의 행동에 감사하며 무제에게 말했다. 그러자 무제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대장군은 이러한 일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오.” 그리고는 위청을 불러 이런 계책을 누구에게 받은 것인지 물었다. 위청은 말했다. “지금 조서를 기다리고 있는 동곽 선생에게서 받았습니다.” 이에 황제는 조서를 내려 동곽 선생을 부르고 군도위로 임명하였다. 동곽 선생은 오랫동안 공거에서 조서를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빈곤하여 굶주리고 추위에 떨었으며, 옷은 해지고 신도 온전치 못하였다. 눈 속을 가면 신이 위는 있어도 밑이 없어서 발이 그대로 땅에 닿았다. 길을 걷던 사람들은 동곽 선생의 이런 모습을 보고 배를 쥐고 웃었다. 이에 동곽 선생은 말했다. “누가 신을 신고 눈 속을 가면서 위는 신이고 아래는 사람의 발임을 알 수 있게 하겠는가?” '동곽리'는 집안 형편이 매우 어려운 동곽 선생의 신이 닳고 달아 신의 윗면만 있고 밑면은 없어 발이 그대로 땅에 닿았다는 데서 나온 것으로 가난의 정도가 어떠했는지를 알게 해준다.
, 흥이 다해 돌아올 때는 왕자유가 띄운 배를 흉내 내보기도 한다. 고기 잡는 늙은이는 도롱이가 차가워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뗏목 끝에 앉아서는 목을 움츠릴 대로 움츠린 채 방어 낚시를 하고 있다. 돌아가는 세상사에 아랑곳 하지 않고 흥취(興趣)와 달관(達觀)의 탈속적(脫俗的)인 경지가 형상화되어 있다.

<강천모설-13>
層陰朔氣擁南天 겹친 음기 찬 기운 남쪽 하늘 에워싸고,
寒意凌兢向暮偏 추운 기미 벌벌 떨며 저물도록 치우치네.
捲地嚴風吹?吸 땅을 휘감는 세찬 바람 갑자기 불어대고,
滿空飛雪舞回旅 하늘 가득 날리는 눈 춤추듯이 돌아나네.
山容??雲埋壑 산 모습 컴컴해 구름이 골짝에 묻혀있고,
水氣昏昏浪?烟 물 기운 어두워 물결은 연기에 덮여있네.
獨倚江樓村酒重 홀로 강루에 의지하니 마을 술이 중하고,
誰知詩與聳雙肩 李?, <睡谷集> 卷一, 『韓國文集叢刊』第153卷 8쪽,「瀟湘八景」選五首壬寅.
시와 함께 솟아나는 양어깨를 누가 아나.

이 여(李?;1645-1718)의 작품이다. 음산한 기운이 중첩되어 찬 기운이 남쪽 하늘을 에워싸고 있다. 추운 기미에 벌벌 떨며 해가 저물도록 치우쳐있는 날씨가 형상화되어 있다. 땅을 휘감는 매서운 바람이 갑자기 불어오니, 하늘 가득하게 날리는 눈이 춤을 추듯 빙빙 돌며 내린다. 산의 형용은 어두워 구름이 골짜기에 묻혀 있고, 물의 기운도 어두우니 물결은 연기에 가려져 있다. 혼자서 강변 누대에 의지하니 마을의 술이 귀하고, 시흥(詩興)이 일자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며 솟구치는 흥취(興趣)를 누가 알겠는가! 하며 시흥(詩興)에 흠뻑 도취된 모습을 형용하고 있는 작품이다.

<강천모설-14>
已看瞑色遲 이미 어두운 빛이 더디어지는 것을 보니,
漸覺歸舟重 점차 돌아갈 배가 무거워짐을 깨닫겠구나.
村巷似仙居 마을 거리는 흡사 신선 사는 곳과 같은데,
?林是誰種 權斗經, <蒼雪齋集> 卷七,『韓國文集叢刊』第169卷 126쪽,「述姪請賦瀟湘八景」‘江天暮雪’.
옥으로 만든 숲은 누가 심어 놓은 것인가.

권두경(權斗經;1654-1725)의 작품이다. 강천(江天)을 휘감은 어두운 빛이 더딤을 보니 돌아가는 배가 쌓인 눈으로 점차 무거워졌음을 깨닫는다. 물고기를 잡는 것에는 당초 관심도 없었다.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물고기로 가득 찬 배를 기대하고 바라보겠지만 그림 속의 배에는 흰 눈만이 가득하다. 눈이 내려앉은 마을 거리는 마치 신선의 나라와도 같다. 이처럼 옥으로 만든 숲은 누가 심어두었단 말인가? 반문을 하면서 시상을 전개했다.

<강천모설-15>
寂寂千山絶鳥飛 적적한 모든 산에 날 새도 그쳐 있고,
寥寥萬壑路人稀 쓸쓸한 온갖 골짝 사람조차 드물구나.
扁舟一葉戴?笠 일엽편주 도롱이에 삿갓 쓴 이 태우고,
落日寒江釣雪歸 肅宗,『列聖御製』第十七篇,「瀟湘八景」‘江天暮雪’.
지는 해 찬 강에서 눈만 낚고 돌아오네.

숙종(肅宗;1661-1720)의 작품이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적막한 산에는 날짐승조차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이 고요하다. 모든 골짜기에도 사람 인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일엽편주(一葉片舟)와 도롱이를 입고 삿갓을 쓰고 있는 사람을 태우고 지는 해에 추운 강변에서 배에 가득 눈(雪)만 낚아 돌아오는 인물의 형상을 제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강천모설-16>
江空天?雪風斜 강천은 공활한데 눈보라가 비껴 일고,
頃刻千林白作花 순식간에 모든 숲이 하얀 꽃이 되었네.
驢背尋梅人不見 나귀 타고 매화 찾는 사람 보이지 않고,
扁舟繫在岸邊家 權相一,『淸臺集』卷三,「瀟湘八景, 八景幷四鶴, 作十二帖寢屛」. ‘江天暮雪’.
나룻배만 언덕 근처 인가에 매여 있네.

권상일(權相一;1679-1759)의 작품이다. 강천(江天)이 공활하고 눈보라가 비껴 일어난다. 짧은 시간동안 모든 숲이 하얀 꽃으로 변해버린다. 나귀를 타고 매화(梅花)를 찾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언덕 근처의 인가에는 나룻배만 묶여 있다. ‘심매(尋梅)’라는 표현은 말 그대로 매화를 찾는다는 의미이다.
엄동설한(嚴冬雪寒)에 은은한 향을 풍기며 피어난 매화를 한매(寒梅), 동매(冬梅)라 한다. 그리고 백설의 가지마다 봉긋봉긋 꽃망울을 틔운 꽃은 설중매(雪中梅)라고 부른다. 동지섣달 모진 시련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일찍 피어남을 두고 군자의 덕(德)을 연상했고, 백옥 같은 꽃에서 풍기는 청아한 향기와 자태는 맑고 청렴한 선비의 모습 상징한다.
눈 내리는 산중에서 매화 향을 찾아다니는 탐매(探梅), 심매(尋梅)는 유유자적하는 도교적 의미로 시인묵객(詩人墨客)에게 시·서·화(詩書畵)의 분야에서 보편적이며 관습적으로 작품의 주된 소재가 되었다. 이 작품에서 매화를 찾는 인물형상을 등장시킨 것도 역시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강천모설-17>
暮雪江山淨 저물녘 내린 눈에 강산이 깨끗하고,
寒天樹木奇 차가운 날씨에도 수목들은 기이하네.
騎驢橋上客 나귀에 올라 탄 다리 위에 나그네는,
背後二童隨 權萬, <江左集> 卷一, 『韓國文集叢刊』第209卷 71쪽,「瀟湘八景」‘江天暮雪’.
등 뒤 쪽으로 두 아이가 따르는구나.

권 만(權 萬;1688-未 詳)의 작품이다. 저녁나절에 내린 눈으로 강과 산이 맑아졌다. 추운 날씨 속에서 하얗게 변해버린 수목(樹木)들이 기이할 따름이다. 그림 속에는 나귀 등에 올라탄 나그네 뒤로 두 명의 시동이 따르는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역시 나귀 등에 올라탄 나그네를 그린 것은 시적 감흥(感興)에 젖어 있는 인물형상을 창조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강천모설-18>
江雲漠漠雪華凝 강변 구름 어둑어둑 눈꽃송이 얼어붙고,
千尺?干萬木? 천 길 높이 난간에는 모든 나무 얼었네.
薄暮放舟何郡客 초저녁 배를 띄우니 어느 고을 나그넨가,
獨將蓑笠不收? 正朝大王, <弘齋全書>, 卷二,『韓國文集叢刊』第262卷 33쪽,「瀟湘八景 癸巳」‘江天暮雪’.
홀로 도롱이 삿갓 쓰고 그물 걷지 않네.

정조대왕(正祖;1752-1800)의 작품이다. 강변에 깔려 있는 구름이 어둡고 눈꽃송이는 얼어붙었다. 천길 높이의 난간에 모든 나무가 얼어붙었다. 초저녁에 배를 띄운 것은 어느 고을의 나그네인가? 묻고는 자세히 들여다보니 홀로 도롱이에 삿갓을 쓰고서 앉아서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물도 걷지 않는 인물의 형상을 제시하고 있다.

<강천모설-19>
疏林失翠斷經橋 성긴 숲 푸름 잃고 지나는 다리 끊겼는데,
境靜荒邨暮寂寥 고요하고 황량한 마을 저물녘이 쓸쓸하네.
何事笠翁還獨釣 무슨 일로 삿갓 노옹 홀로 낚시하고 오나,
江空漠漠興遍饒 金得臣,「江天暮雪」個人所藏, 東方畵廊 主催, 韓國古書畵名品展.
강변하늘 아득하고 흥취가 두루 넉넉하네.
김득신(金得臣;1754-1822)의 작품이다. 성긴 숲에는 푸른빛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지나가는 다리마저 끊겨 있다. 고요하고 황량한 마을은 저물녘이 되자 쓸쓸하게 보인다. 삿갓을 눌러 쓴 노옹(老翁)은 무슨 일로 홀로 낚시를 하고 돌아오는가. 강천 하늘이 아득한데 노인은 흥취(興趣)가 두루 넉넉하기만 하다. 이 작품 역시 강천의 궂은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작품 속 인물의 흥취를 드러내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강천모설-20>
風攬瑤花下一天 바람이 구슬 꽃을 뽑아서 하늘에 뿌리니,
湖山頃刻巧粧姸 호수와 산 잠깐 동안 아름답게 화장했네.
漁蓑冷透猶無? 어부 도롱이에 냉기 스며도 두려움 없이,
漫逐波痕放釣船 宋來熙, <錦谷集>, 卷一,『韓國文集叢刊』第303卷 107쪽,「瀟湘八景 八首 」‘江天暮雪’.
마음껏 물결 좇아서 낚싯배를 띄워 놓네.

송래희(宋來熙;1791-1867)의 작품이다. 하늘에서 부는 바람이 옥구슬 꽃을 가려 뽑아 하늘에 뿌리니 잠깐 사이에 산과 호수가 하얀 색으로 아름답게 단장을 한다. 어부는 도롱이에 냉기가 스며들어도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 그저 물결 따라 고깃배를 띄우고는 마음껏 흥취(興趣)에 젖어 있다. 세상사에 초연한 어부의 흥취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강천모설(江天暮雪)이라는 제목으로 창작된 작품들에 보이는 공통적 형상은 겨울의 혹독한 추위나 짓궂은 날씨에 아랑곳 하지 않고 낚시를 하거나 졸고 있거나 하는 등의 흥취(興趣)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인물 형상이었다. 이러한 인물의 형상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함의(含意)는 세상사의 자질구레한 이치를 초탈(超脫)한 달관(達觀)과 흥취(興趣)의 경지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림 > 강천모설
강천모설(江天暮雪)은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강과 하늘이 맞닿아 보이는 부분을 의미하는 강천(江天)이라는 공간과 저물녘에 내리는 눈(雪)의 형상이다. 또 앞서 논의했던 바와 같이 세상사에 초탈한 달관(達觀)과 흥취(興趣)의 경지라는 함의(含意)를 지니고 있었다.
여기서는 앞의 논의를 토대로 강천모설(江天暮雪)이라는 제목으로 창작된 작품에 담겨 있는 의미 맥락이 무엇인가 하는 점을 규명하고자 한다.
앞선 논의에서도 그랬듯이 의미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가정 먼저 필요한 작업은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형상에 주목하는 것이다. 인물이 어떤 모습으로 형상화되고 있으며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 하는 점을 살펴보아야 그 이면에 담겨있는 의미 맥락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강천모설(江天暮雪)에는 대략 21가지의 인물 형상이 등장하고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이십여 가지의 인물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어옹(漁翁)과 왕자유(王子猷)의 형상이다. 그리고 그림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설정된 인물과 작품의 감상자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또 맹호연(孟浩然)과 같은 시인이 등장하기도 하고 나귀를 타고 어디론가 향해 가면서 시사(詩思)에 잠겨 있는 인물과 시흥(詩興)에 심취한 인물도 자주 등장하는 인물 형상이다. 그 외에도 가객(賈客), 행인(行人), 초동(樵童), 소객(騷客), 나그네(遊子), 상아(湘娥), 고인(高人), 진객(眞客), 신선(神仙) 등의 인물 형상이 등장하고 있다.

<강천모설(江天暮雪)>에 등장하는 인물의 형상
차례
등장인물
인물형상
논문부록
작품번호
1
어옹(漁翁, 漁人, 等)
추운 겨울날 저녁 하늘에서 내리는 눈(雪)에 아랑곳하지 않고 흥취를 즐기는 어부의 형상
1,2,7,8,9,15,18,22,26,27,30,32,40,43,47,55,56,58
2
맹호연(孟浩然)
나귀 등에 올라탄 채 시사(詩思)에 잠긴 인물의 형상
8
3
왕자유(王子猷)
흥취(興趣)가 일어 친구를 찾아갔다 그냥 되돌아옴
36,38,39,42,43,45,59
4
기려객(騎驪客,蹇驢客)
시사(詩思)에 잠겨있거나 시흥(詩興)에 심취한 인물
20,41,49,51
5
가객(賈客)
흥겨워 길을 떠나려다 머물거나 눈을 맞는 장사꾼들
8,21
6
행인(行人)
눈이 내리자 돌아갈 마음이 급박해 지는 인물 형상
3,5
7
초동(樵童)
내리는 눈에 맞아 옷이 흠뻑 젖은 인물 형상
3
8
시안(詩眼)
강천모설의 풍경에 마음을 빼앗긴 시인(詩人)의 형상
5
9
소객(騷客)
나귀 타고 시사를 떠올리거나 남전으로 향한 왕유
15,38
10
인(人), 인인(人人)
그림 속에 존재하는 인물이거나 감상자의 관점
6,11,14,25,31,
36,47,49
11
벗(友)
자유가 흥(興)이 일어 찾아가는 대규의 인물 형상
42
12
왕손(王孫)
강천모설의 그림을 바라보며 흥이 일어나는 인물
7
13
시적 화자인 나(我)
그림 속 풍경에서 홀로 낚시를 하고 싶어 하는 화자
12
14
나그네(遊子)
맑은 흥취가 넉넉함을 알고 있는 나그네의 형상
15
15
상아(湘娥, 江娥)
아황과 여영의 형상과 옥경에 조회 가는 항아
21,35
16
누구(誰, 誰子)
흥(興)에 겨워하는 모습으로 형상화된 인물
23,39,44
17
고인(高人)
함께 차를 마시고 싶을 정도로 맑고 도량이 큰 인물
23
18
어떤 사람(何人)
시흥이 일어난 인물과 술을 싣고 돌아오는 인물
27,57
19
진객(眞客)
눈 덮인 다리에서 어렵게 진객을 찾고 있는 모습
28
20
신선(仙)
신선이 사는 곳과 같이 눈에 덮인 세상의 아름다움
46
21
이동(二童)
시사(詩思)에 잠긴 시인(詩人)의 뒤를 시종하는 인물
51


강천모설(江天暮雪)에 등장하는 인물 형상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어옹(漁翁)의 형상은 주로 날씨가 추운 겨울날을 배경으로 내리는 눈(雪)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흥취(興趣)를 즐기고 있는 어부의 형상으로 형상화되고 있었다.
왕자유(王子猷)라는 인물 형상을 통해서는 깊은 밤에 흥(興)이 일어나 배를 타고 친구를 보러 갔다가는 그 친구의 집 앞에 이르자 어느새 그 흥(興)이 다하여 친구를 만나지도 않고 그대로 돌아오는 인물 형상을 그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려객(騎驪客)이라 하여 나귀 등에 타고는 시사(詩思)에 잠겨 있는 인물 형상 혹은 시흥(詩興)에 젖어 있는 인물 형상을 창조하고 있었다.
앞의 도표에서 정리된 바와 같이 작품 속에 등장하고 있는 다양한 인물 형상을 통해서 강천모설(江天暮雪)이라는 시제(詩題)와 화제(畵題)가 지니고 있는 의미 맥락의 성격을 확인할 수 있다.

朔風結層陰 북풍 불고 음기도 겹겹이 맺혀있고,
江雪飛漫天 강천에 눈이 날려 하늘에 가득하네.
江流凍無聲 흐르던 강물은 얼어서 소리가 없고,
天色暮莽然 하늘빛은 해 저물어 멀리 아득하네.
此間有眞意 이런 사이에 진정한 뜻이 있겠지만,
定非文墨傅 꼭 시문이나 서화로 전해지진 않네.
孤舟蓑笠翁 외딴 배 도롱이 입고 삿갓 쓴 어옹,
知汝久忘筌 李荇, <容齋集> 卷三, 『韓國文集叢刊』第20卷 394-395쪽,「瀟湘八景」‘江天暮雪’.
너 알고 오랫동안 고기잡이 잊었네.

이 행(李荇;1478-1534)의 작품이다. 강천모설(江天暮雪)이라는 제목과 함께 제1행의 ‘삭풍(朔風)’이라는 시어(詩語)를 통해 계절감을 드러냈다. 사납게 불어대는 북풍 뿐 아니라 음산한 기운도 겹겹이 맺혀있다. 강천에는 어지럽게 눈발이 날리고 있다. 흐르던 강물도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은 채 꽁꽁 얼어붙어버렸다. 하늘은 해가 저물어 멀리로 아득하기만 하다. 이러한 풍경 속에 참된 뜻(眞意)이 있지만 반드시 시문(詩文)이나 서화(書畵)로 전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림 속을 들여다보면 삿갓을 쓰고 도롱이를 걸친 어옹(漁翁)이 외딴 배를 탄 채로 고기를 잡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세월을 낚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형상의 어옹(漁翁)이 존재한다. 그 어옹(漁翁)의 존재를 알고는 오랫동안 고기잡이를 잊었다고 했다.
마지막 행에 등장하는 ‘망전(忘筌)’이라는 시어(詩語)는 본래『장자(壯子)』, 「외물(外物)」편에 등장하는 고사이다. “득어이망전(得魚而忘筌)”이라고 하여,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소기의 목적을 이루면 그 때까지 수단으로 삼았던 사물은 무용지물이 됨을 이르는 말이다. 그 문맥을 보면 “전(筌)은 고기를 잡기위한 것이나 고기를 잡고 나면 전(筌)은 잊어버리게 된다. 제(蹄:덫)는 짐승을 잡기 위한 것이나 짐승을 잡고 나면 제(蹄)는 잊어버린다. 말(言)은 뜻을 나타내는 것이나 뜻을 다 알게 되면 그 말(言)은 잊어버린다.”고 했다. 사실 여기서 언급된 ‘망전(忘筌)’, ‘망제(忘蹄)’, ‘망언(忘言)’ 등은 어느 것이나 시비(是非)와 선악(善惡) 같은 것을 초월한 절대 경지를 말하고 있다. 상대를 초월하여 이 세상의 만물은 한 몸이라고 생각하는 절대적인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옳은 것도 없고 그른 것도 없으며, 선함도 악함도 없으며, 아름다운 것도 추한 것도 없다는 것이 장자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장자의 관점을 보통 사람들은 인간의 기회주의적인 모순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 작품에 형상화된 어옹(漁翁)은 삶의 온갖 굴곡을 체험하였고 세상사에 초탈하였으며 절대적인 경지에 도달한 인물의 형상이다. 이 단계의 특성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달관(達觀)과 흥취(興趣)의 경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림 > 강천모설 中 도롱이를 걸친 채 어딘가로 가는 두 사람
강천모설(江天暮雪)에서 형상화된 어옹(漁翁)의 인물 형상이 종래 학계에서 논의되었던「어부가(漁父歌)」에서 어부(漁父)의 인물 형상과는 어떤 관련성을 맺고 있는지 하는 점에 관해서는 이 논문의 목적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기에 논외로 하겠다. 아울러 소상팔경(瀟湘八景)의 시제(詩題) 가운데 어촌낙조(漁村落照)나 강천모설(江天暮雪)을 노래한 작품들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진 인물 형상 가운데 하나가 바로 어부(漁父) 내지 어옹(漁翁)의 형상이었다. 이러한 점은 소상팔경(瀟湘八景)에 등장하는 어부의 형상과 어부가(漁父歌)에 등장하고 있는 어부(漁父)의 형상이 상호 어떤 관련성을 맺고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한 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 논문의 연구방향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기에 차후의 연구 과제로 남겨둔다.

垂地寒雲凍 땅에 드리운 차가운 구름 얼고,
連江積縞凝 강을 따라 쌓여 하얗게 엉겼네.
漫空玉屑亂崩騰 하늘 가득 옥가루 어지럽게 동요하고,
塡壑更盈? 골짝 메우고 또 밭두둑에 차네.
狡兎迷三窟 간교한 토끼 세 굴을 혼동하고,
銀山聳百層 은빛 산은 백층이나 솟아 있네.
夜窓還訝曙光升 밤 창에서 서광 오름을 다시 맞으니,
詩興正來乘 黃俊良, <錦溪集> 外集 卷二, 『韓國文集叢刊』第37卷 78쪽,「江天暮雪」.
시 짓는 흥취 마침 타고 오네.
황준량(黃俊良;1517-1563)의 작품이다. 겨울날 차가운 구름이 땅에 드리운 채 얼어붙었다. 강을 따라서 하얗게 엉겨 붙은 채 쌓여 있는 구름의 형상을 제시했다. 동시에 하늘에서는 눈발이 어지럽게 날린다. 내린 눈이 골짜기를 가득 메운 동시에 밭두둑에도 가득하다. 간교한 토끼가 세 개의 굴을 혼동했다는 표현은 고사가 존재한다.『사기(史記)』「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이 출전이다. 풍환(馮驩)은 제(齊) 나라의 재상(宰相)인 맹상군의 식객(食客)이었다. 맹상군은 왕족인 정곽군(靖郭君) 전영의 아들로 이름은 전문(田文)이고, 맹상군은 그의 호이다. 풍환은 본디 거지였는데 맹상군이 식객을 좋아한다는 말에 짚신을 신고 먼 길을 걸어왔던 자다. 맹상군은 그의 몰골이 하도 우스워 별 재주는 없어 보였지만 받아주었다. 그러나 그는 괴짜였다. 맹상군은 그를 3등 숙소(宿所)에 배치했는데 고기반찬이 없다고 늘 투덜댔다. 그래서 2등 숙소로 옮겨 주었는데 이번에는 수레가 없다고 불평을 하는 것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1등 숙소로 옮겨 주자 그럴 듯한 집이 없다며 투덜댔다. 당시 맹상군은 설(薛: 현재 山東省 동남지방)에 1만 호의 식읍(食邑)을 가지고 있었다. 3천 명의 식객을 부양하기 위해 식읍 주민들에게 돈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도무지 갚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누구를 보내 독촉할까 궁리하고 있는데 1년간 무위도식(無爲徒食)으로 일관(一貫)했던 풍환이 자청했으므로 그를 보내기로 했다. 출발할 때 그는, “빚을 받고 나면 무엇을 사올까요?”하고 물었다. 맹상군은, “무엇이든 좋소. 여기에 부족한 것을 부탁하오.” 라고 대답하였다. 설에 당도한 풍환은 빚진 사람들을 모아서 차용증을 하나하나 점검한 후 이자만 해도 10만 전을 받았다. 예상외의 좋은 결과였다. 징수가 끝나자 그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맹상군은 여러분의 상환 노력을 어여삐 보고 모든 채무를 면제하라고 나에게 분부하셨소.” 그리고는 모아 놓았던 차용증 더미에 불을 질렀다. 차용증은 모두 재로 변하고, 사람들은 그의 처사에 감격해 마지않았다. 설에서 돌아온 풍환에게 맹상군이, “선생은 무엇을 사 오셨는가?”하고 물어 보았다. 이때 풍환이 말하기를, “당신에게 지금 부족한 것은 은혜와 의리입니다. 차용증서를 불살라 당신을 위해 돈 주고도 사기 힘든 은혜와 의리를 사 가지고 왔습니다.(此時馮驩曰 軍之不足則恩義也 以燒借書爲君賣恩義來)”라 하였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맹상군은 매우 마땅찮은 기색이었다. 1년 후 맹상군이 제 나라의 새로 즉위한 민왕(泯王)에게 미움을 사서 재상 자리에서 물러나자, 3천 명의 식객들은 모두 뿔뿔이 떠나버렸다. 풍환은 그에게 잠시 설에 가서 살라고 권유했다. 맹상군이 실의에 찬 몸을 이끌고 설에 나타나자 주민들이 환호하며 맞이했다. 맹상군이 풍환에게 말을 했다. “선생이 전에 은혜와 의리를 샀다고 한 말뜻을 이제야 겨우 깨달았소.” “교활한 토끼는 구멍을 세 개나 뚫지요(狡兎三窟). 지금 경(卿)께서는 한 개의 굴을 뚫었을 뿐입니다. 따라서 아직 고침무우(高枕無憂: 베개를 높이 베고 근심 없이 잠)를 즐길 수는 없습니다. 경을 위해 나머지 두 개의 굴도 마저 뚫어드리지요.” 그래서 그는 위(魏)나라의 혜왕(惠王)을 설득하여 맹상군을 등용하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실현할 것이며 동시에 제 나라를 견제하는 힘도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마음이 동한 위의 혜왕이 금은보화를 준비하여 세 번이나 맹상군을 불렀지만 그 때마다 풍환은 맹상군에게 응하지 말 것을 은밀히 권했다. 이 사실은 제 나라의 민왕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아차 싶었던 민왕은 그제야 맹상군의 진가를 알아차리고 맹상군에게 사신을 보내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다시 재상의 직위를 복직시켜 주었다. 두 번째의 굴이 완성된 셈이다. 두 번째의 굴을 파는데 성공한 풍환은 세 번째 굴을 파기 위해 제 민왕을 설득, 설 땅에 제나라 선대의 종묘를 세우게 만들어 선왕(先王) 때부터 전승되어 온 제기(祭器)를 종묘에 바치도록 했다. 선대의 종묘가 맹상군의 영지에 있는 한 설혹 제왕의 마음이 변심한다 해도 맹상군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이것으로 세 개의 구멍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주인님은 고침안면(高枕安眠) 하십시오.” 이리하여 맹상군은 재상에 재임한 수십 년 동안 별다른 화를 입지 아니했는데 이것은 모두 풍환이 맹상군을 위해 세 가지 보금자리를 마련한 덕이다. 이야기의 주인공 풍환을 『전국책(戰國策)』「제책편(齊策扁)」에서는 ‘풍훤’으로 적고 있다. 이 고사는 불안한 미래를 위해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로, 완벽한 준비를 한 뒤에는 뜻하지 않은 불행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울러 눈 쌓인 산들의 모습을 은빛 산이 백층이 솟아있다고 형용했다. 밤새도록 이 장관을 접하고 있자니 어느새 새벽의 기운이 밝아온다. 서광(曙光)이 비춰오고 있었다. 그러자 밤새 답답했던 마음 한 구석이 시원하게 뚫리면서 시흥(詩興)이 마구 용솟음 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고 형상화했다.

雪落汀空靜杳然 눈 내린 모래섬이 텅 비어 고요하고 아득한데,
箇中淸景滿江天 그 가운데 맑은 풍경은 강변 하늘에 가득하네.
先春水國梅爭映 이른 봄 강촌에는 매화가 반짝이는 빛 다투고,
向晩沙洲月共姸 저물어 가는 모래밭 달도 함께 하니 아름답네.
看去幾穿東郭履 동곽의 신발이 어느 정도 뚫렸는지 가서 보곤,
興來擬泛子猷船 흥이 다해 돌아오며 자유가 띄운 배 흉내 내네.
漁翁不??衣冷 어옹은 도롱이가 차가워도 두려워하지를 않고,
坐釣?頭縮項? 金萬基, <瑞石集> 卷一, 『韓國文集叢刊』第144卷 370쪽,「瀟湘八景」‘江天暮雪’.
뗏목 끝에 앉아 목을 움츠리고 방어 낚시하네.

김만기(金萬基;1633-1687)의 작품이다. 눈(雪)이 내린 모래섬이 공허하여 고요하고 아득하다. 개중에도 맑은 풍경이 강변 하늘에 가득하다. 이른 봄인지 강촌에는 매화가 빛을 다툰다고 했다. 여기서 매화는 눈꽃을 빗댄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저물어가는 모래밭에 달빛마저 비추니 더욱 황홀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겨울날 저녁 풍경이다. ‘동곽리(東郭履)’라는 시어(詩語)는 매우 가난함을 의미하는 말로 그 유래가 있다. ‘동곽의 신발’이란 뜻으로 매우 가난함을 비유한 표현이다. 사마천의『史記(사기)』「골계열전(滑稽列傳)」에 의하면, 무제 때 제나라 사람으로 ‘동방삭’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옛날부터 서적(書籍)과 경술(經術)을 사랑하여 견문이 넓고 사물을 판단하는 데 밝았다. 그 당시 대장군 위청은 흉노를 무찌르고 포로들을 잡아 공을 세웠다. 그가 돌아오자 황제는 조서를 내려 황금 천근을 내렸다. 위청이 궁궐을 나서자, 그 당시 공거(조정의 공문과 신하나 백성들의 상소문을 처리하는 부서)에서 조서를 기다리고 있던 동방삭이 수레를 가로막고는 절을 하며 말했다. “왕 부인께서는 새로이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지만 집이 가난합니다. 장군께서 지금 받으신 황금 천 근 중 절반을 왕부인의 부모에게 준다면 황제께서는 이를 듣고 기뻐할 것입니다. 이것이 기이하고도 편리한 계책입니다.” 위청은 감사의 말을 하고는 동방삭의 말대로 황금 오백 근을 왕부인의 부모에게 주었다. 며칠 후, 이 소식을 들은 왕부인은 위청의 행동에 감사하며 무제에게 말했다. 그러자 무제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대장군은 이러한 일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오.” 그리고는 위청을 불러 이런 계책을 누구에게 받은 것인지 물었다. 위청은 말했다. “지금 조서를 기다리고 있는 동곽 선생에게서 받았습니다.” 이에 황제는 조서를 내려 동곽 선생을 부르고 군도위로 임명하였다. 동곽 선생은 오랫동안 공거에서 조서를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빈곤하여 굶주리고 추위에 떨었으며, 옷은 해지고 신도 온전치 못하였다. 눈 속을 가면 신이 위는 있어도 밑이 없어서 발이 그대로 땅에 닿았다. 길을 걷던 사람들은 동곽 선생의 이런 모습을 보고 배를 쥐고 웃었다. 이에 동곽 선생은 말했다. “누가 신을 신고 눈 속을 가면서 위는 신이고 아래는 사람의 발임을 알 수 있게 하겠는가?” ‘동곽리’는 집안 형편이 매우 어려운 동곽 선생의 신이 닳고 달아 신의 윗면만 있고 밑면은 없어 발이 그대로 땅에 닿았다는 데서 나온 것으로 가난의 정도가 어떠했는지를 알게 해준다.
왕자유(王子猷)가 띄운 배를 흉내 내면서 돌아온다는 표현도 역시 그 유래가 있다. 왕휘지(王徽之)는 동진(東晋) 임기(臨沂) 사람으로 유명한 대 서예가 왕희지의 아들로 호가 자유(子猷)였다. 그는 명문가의 출신이지만 세속의 일에는 무관심하여 고독을 즐기며 생활하고 있었다. 산음(山陰)에서 살던 어느 날 밤 달빛에 비치는 설경(雪景)의 아름다움에 그는 그만 넋을 뺏겼다. 크게 흥취를 느낀 왕휘지는 하인에게 명하여 술과 안주를 가져오라 시키고 달밤의 설경을 감상하면서 시를 낭송했다. 그러다가 문득 섬계(剡溪)에 사는 절친한 친구인 대규(戴逵, 字는 安道)가 생각나서 하인에게 배를 준비시켰다. 한밤중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만나기 위해 배를 타고 출발했다. 대규도 출세에는 무관심한 인물로 거문고와 그림의 달인이었다. 휘지는 대규와의 만남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두근거렸다. 달빛 아래서 눈 위에 책상을 내놓고 거문고를 타며, 퉁소를 불고, 시를 읊어 춤을 추며, 즐거움을 나눌 생각에 젖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샌가 흥기(興起)되어 있던 그의 마음은 서서히 가라앉았고 대규의 집에 거의 도달했을 때는 배를 그냥 되돌리게 했다. 후에 어떤 사람이 그 이유를 물으니 휘지는 웃으며 대답했다. ‘흥이 일어서 타고 갔다가, 흥이 다하면 돌아오는 것인데, 반드시 대안도를 만나야 했는가?’ 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여기서 언급된 동곽(東郭)과 자유(子猷)는 모두 달관(達觀)과 흥취(興趣)의 경지에 도달한 인물을 대변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사고 체계로 보면 그들은 독특한 행동 양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독특하게 보이는 이유는 평범하지 않은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평범하지 않은 행동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세상사에 초탈할 수 있는 달관(達觀)과 흥취(興趣)의 정신적 경지에 도달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강천모설(江天暮雪)을 노래한 작품을 대상으로 의미 맥락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 결과 강천모설(江天暮雪)에 등장하는 인물 형상은 모두가 자연의 질서나 세상사로부터 초탈하여 달관(達觀)과 흥취(興趣)의 경지에 도달한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이를 우리 인간의 삶에 빗대어 본다면 이제는 삶의 마지막 단계에 이른 모습이라고 판단된다. 왜냐면 달관(達觀)과 흥취(興趣)라는 의미 맥락은 삶의 큰 깨달음을 전제로 성립되기 때문이다.


4. 소상팔경시에 감추어진 의미맥락

앞선 3장에서는 소상팔경(瀟湘八景)에 해당하는 각각의 개별 시제(詩題)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형상화되고 있었으며, 작품에 담긴 함축적 의미는 무엇이었는가 하는 점을 중심으로 논의하였다.
여기서는 한 사람의 문인에 의해 창작된 여덟 수의 작품들이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라는 완성된 형태를 이룰 때 어떠한 의미맥락을 내포하고 있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전개할 것이다. 말하자면 산시청람(山市晴嵐), 연사모종(煙寺暮鐘), 소상야우(瀟湘夜雨), 원포귀범(遠浦歸帆), 평사낙안(平沙落?), 동정추월(洞庭秋月), 어촌낙조(漁村落照), 강천모설(江天暮雪)의 여덟 가지 시제(詩題)가 다양한 조합방식에 따라 배열되었을 때 전체적으로 어떤 의미(意味) 맥락(脈絡)을 내포하고 있는가 하는 점을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시가문학(詩歌文學) 작품을 대상으로 의미(意味)맥락을 논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현재까지의 연구경향을 살펴볼 때, 시(詩)라고 하면 ‘서정갈래’라고 명명한 채 그 개념을 정리했다. 그런데 흔히 서정 갈래라고 일컬어지는 시(詩)가 과연 서정성에만 기반하고 있는 갈래인가? 하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물음에 봉착하게 되면 그렇다고 단언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실상 서정 갈래라고 해도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서사적(敍事的) 맥락(脈絡)에 뿌리와 기반을 둔 상태에서 서정이 표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서사(敍事)야말로 모든 문학 갈래의 근본 토대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사적인 차원에서의 의미를 논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人間)의 삶을 제외하고 논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서사(敍事)의 궁극적 종착역은 인간(人間)의 문제로 귀결이 되는 것이고, 인간이 살아가는 삶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서사(敍事)이기 때문이다.
소상팔경시의 의미맥락이 무엇인가 하는 점을 밝힐 수 있다면 다양한 의미 맥락들이 소상팔경(瀟湘八景)이라는 문화현상을 통해 어떻게 소통되고 있었는가 하는 점에 대한 구체적 의미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앞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시가문학이 서정 갈래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실은 고유한 서사적 상황 위에서 표출되는 정서임이 확인된다. 서사적 맥락의 정점(頂點)에 해당하는 부분을 언어로 형상화 한 것이 시가(詩歌)문학이라면 선(線)과 색(色)으로 형상화한 것이 회화(繪畵)가 된다. 이렇듯이 서정은 서사의 정점(頂點)을 포착하여 형상화해낸 것이라는 관점이 성립된다. 그것은 시(詩)도 그렇고 회화(繪畵) 역시 마찬가지다. 엄밀하게 보면 시는 서정성에 기반을 두고 있는 듯하지만 철저하게 서사의 관장과 지배 아래 구현되는 갈래임을 알 수 있다.
회화(繪畵)의 경우를 보면 회화는 특정한 서사(敍事) 내용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부분만을 선택하여 정지된 영상으로 고정시키는 작업인 셈이다. 결과물만 놓고 보면 회화(繪畵)는 정지된 화면이다. 하지만 실상은 전체 동영상 가운데 핵심이 되는 장면만을 선택하여 고정시킨 부분에 해당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가(詩歌) 문학이든 회화(繪畵) 예술이든 그 이면에는 각기 고유한 서사적 맥락이 반드시 존재하는 법이다.
본격적으로 소상팔경(瀟湘八景)의 의미 맥락을 밝히기 위한 논의과정에 하나의 시사점을 던지는 자료가 발견되었다. 이색(李穡;1328-1396)의 글 가운데, 소상팔경의 의미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도움이 되는 「한산팔영(韓山八詠)」「한산팔영(韓山八詠)」의 시제(詩題)는 ①숭정암송(崇井巖松), ②일광석벽(日光石壁), ③고석심동(孤石深洞)), ④회사고봉(回寺高峯), ⑤원산술고(圓山戌鼓), ⑥진포귀열(鎭浦歸悅), ⑦압야권농(鴨野勸農), ⑧웅진관조(熊津觀照)의 여덟 편이다.
이라는 작품에 대한 기록인데, 상당한 자료적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는 내용이다.

한산팔영(韓山八詠)은 소나무(松)에서 시작하는데 이는 스스로를 책려(策勵)하는 것이다. 낚시(釣)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으니 그 올곧음을 생각했던 것이다. 다음으로 일광(日光)이니 동쪽에서 생겨나 원근(遠近)에 미치는 것이다. 다음은 고석(孤石)이니 그 자질이 곧으면서도 홀로 우뚝하게 솟아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그 다음으로 회사(回寺)이니 고을마다 불법(佛法)을 소중하게 여긴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원산(圓山)이니 병사(兵事)를 삼간 것이다. 그 다음은 진포(鎭浦)이니 백성을 이롭게 하는 것을 보인 것이다. 그 다음은 압야(鴨野)이니 백성들의 명(命)을 세운 것이다. 가벼운 것에서 시작하여 무거운 것으로 나아가고, 말을 먼저 하고 본을 뒤로 한 것은 진문(晉問)이 당(唐)에서 마친 것을 본받은 것이다. 이는 고향의 선비들이 잘 살펴야 할 것이다. 李穡,『牧隱藁』詩藁 卷三, 『韓國文集叢刊』제3권, 542쪽. “韓山八詠 始於松 自策勵也. 終於釣 思其直也. 次之日光 生於東而及於遠近也. 次之孤石 確其質而表其介特也. 次之回寺 重郡乘也. 次之圓山 謹兵事也. 次之鎭浦 示民利也. 次之鴨野 立民命也. 由輕入重 先末後本 ?晉問終於唐也 鄕之善士幸鑑焉.”, 김성룡,『여말선초의 문학사상』, 한길사, 1996, 133쪽 재인용. 국역은 필자.

인용문은 소상팔경(瀟湘八景)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한산팔영(韓山八詠)에 대한 기록이다. 하지만 팔경시(八景詩) 내지 팔영시(八詠詩)가 구성될 때 어떤 방식으로 구조화 되는가 하는 점을 역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소상팔경(瀟湘八景)의 배열이나 의미맥락을 고찰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무질서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구조화되어 있는 질서가 분명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이색이 창작했던 한산팔영(韓山八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소상팔경(瀟湘八景) 역시 이러한 내적 구조와 의미 맥락을 지니고 있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얼핏 보기에는 아무런 질서 없이 나열된 여덟 가지의 시제(詩題)인 것 같지만 여덟 가지 시제에도 나름대로의 규칙과 질서 그리고 시인이 의도한 바가 내재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소상팔경(瀟湘八景)에는 어떠한 질서와 의미 맥락이 내재되어 있는지 살펴볼 차례이다. 소상팔경을 소재로 작품을 창작한 문인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오늘날 기록으로 남아 전해지는 작품은 한시(漢詩)가 511수이다. 그 가운데서도 여덟 수가 온전하게 전해지는 것은 38명이 여덟 수를 한 번 이상 창작하여 368수를 남기고 있다. 이 가운데 23번 정두경(1597-1673)과 28번 홍세태(1653-1725)의 작품은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는 홍세태가 정두경의 작품을 일본의 문인들과 어울려서 서로 수창하는 도중에 정두경의 작품을 써내자 그것을 일본의 문인들이 홍세태의 작품으로 생각하고는 그들의 문헌에 기록했던 것으로 보인다.
소상팔경 여덟 수를 한 번 이상 창작했던 문인의 명단을 출생 순서에 입각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이인로(1152-1220)
2. 이규보(1168-1241)
3. 진 화(1180-1215)
4. 이제현(1287-1367)
5. 천 봉(1357-未詳)
6. 강석덕(1395-1459)
7. 성삼문(1418-1456)
8. 이승소(1422-1484)
9. 강희맹(1424-1483)
10. 어세겸(1430-1500)
11. 김시습(1435-1493)
12. 성 종(1457-1494)
13. 정희량(1469-未 詳)
14. 홍언필(1476-1549)
15. 이 행(1478-1534)
16. 신광한(1484-1555)
17. 소세양(1486-1562)
18. 정사룡(1491-1570)
19. 조 욱(1498-1557)
20. 이정암(1541-1600)
21. 이수광(1563-1628)
22. 이홍유(1588-1673)
23. 정두경(1597-1673)
24. 김홍욱(1602-1654)
25. 구 음(1614-1683)
26. 윤 추(1632-1707)
27. 김만기(1633-1687)
28. 홍세태(1653-1725)
29. 권두경(1654-1725)
30. 숙 종(1661-1720)
31. 이광정(1674-1756)
32. 권상일(1679-1759)
33. 권 만(1688-未 詳)
34. 정종로(1738-1816)
35. 정 조(1752-1800)
36. 박영원(1791-1854)
37. 송래희(1791-1867)
38. 김시락(1857-1896)

이처럼 38명이 46회에 걸쳐 368수의 소상팔경시를 창작했다. 이제현의「巫山一段雲 瀟湘八景」에는 연사모종(煙寺暮鐘) 한 작품이 제목만 남아 있고 내용은 망실(亡失)되어 전하지 않는다. 『韓國文集叢刊』제2권, <益齋亂藁>, 609쪽 참고.
이 가운데는 한 사람이 2회 이상 창작한 경우도 있다.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문인은 이규보(1168-1241)였다. 그는 총 6회에 걸쳐 여덟 수씩 총 48수를 남겼다. 그리고 이제현(1287-1367)이 3회, 성종 임금(1457-1494)과 소세양(1486-1562)이 각각 2회씩 창작했다. 이 자료를 통해서 알 수 있듯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는 시조나 가사, 판소리 등을 제외하고 한시(漢詩) 갈래만 놓고 보더라도 12세기로부터 19세기 말까지 창작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이 작가들이 남긴 소상팔경시의 배열에 주목할 차례이다. 소상팔경시를 창작했던 문인들은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감상하면서 시를 창작하기도 했고 혹은 다른 사람의 한시 작품을 보고서 서로 차운(次韻)하여 지었다. 그도 아니면 소상팔경의 세계를 나름대로 이해한 토대 위에 창작하기도 했다. 그럴 때 그림을 보고 창작했다고 해서 그림의 순서에 따라 그대로 창작했던 것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소상팔경시를 차운한다고 하더라도 운(韻)만 따를 뿐이지 작품의 배열 순서까지 똑같이 따르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38명의 문인들이 남긴 소상팔경도의 배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인로(1152-1220) : 평사낙안-원포귀범-강천모설-산시청람-동정추월-소상야우-연사만종-어촌낙조
이규보(1168-1241) : 강천모설-원포귀범-소상야우-평사낙안-산시청람-어촌낙조-연사모종-동정추월
이규보(1168-1241) : 강천모설-원포귀범-소상야우-평사낙안-연사모종-산시청람-어촌낙조-동정추월
이규보(1168-1241) : 강천모설-원포귀범-소상야우-평사낙안-연사모종-산시청람-어촌낙조-동정추월
이규보(1168-1241) : 강천모설-원포귀범-소상야우-평사낙안-연사모종-산시청람-어촌낙조-동정추월
이규보(1168-1241) : 강천모설-원포귀범-소상야우-평사낙안-연사모종-산시청람-어촌낙조-동정추월
이규보(1168-1241) : 강천모설-원포귀범-소상야우-평사낙안-산시청람-어촌낙조-연사모종-동정추월
진 화(1180-1215) : 평사낙안-원포귀범-어촌낙조-산시청람-동정추월-소상야우-연사모종-강천모설
이제현(1287-1367) : 평사낙안-원포귀범-소상야우-동정추월-강천모설-연사모종-산시청람-어촌낙조
이제현(1287-1367) : 평사낙안-원포귀범-소상야우-동정추월-강천모설-연사모종-산시청람-어촌낙조
이제현(1287-1367) : 평사낙안-원포귀범-소상야우-동정추월-산시청람-어촌낙조-강천모설-연사모종
천 봉(1357-未 詳) : 산시청람-어촌석조-연사모종-원포귀범-소상야우-동정추월-평사낙안-강천모설
강석덕(1395-1459) : 연사모종-원포귀범-동정추월-강천모설-어촌낙조-소상야우-산시청람-평사낙안
성삼문(1418-1456) : 산시청람-연사모종-어촌낙조-원포귀범-소상야우-동정추월-평사낙안-강천모설
이승소(1422-1484) : 원포귀범-평사낙안-동정추월-소상야우-산시청람-강천모설-연사만종-어촌낙조
강희맹(1424-1483) : 원포귀범-평사낙안-동정추월-소상야우-산시청람-강천모설-연사모종-어촌낙조
어세겸(1430-1500) : 원포귀범-평사낙안-동정추월-소상야우-산시청람-강천모설-연사만종-어촌낙조
김시습(1435-1493) : 평사낙안-원포귀범-소상야우-연사모종-동정추월-강천모설-산시청람-어촌낙조
성 종(1457-1494) : 산시청람-연사모종-어촌낙조-원포귀범-소상야우-평사낙안-동정추월-강천모설
성 종(1457-1494) : 산시청람-연사모종-어촌낙조-원포귀범-소상야우-평사낙안-동정추월-강천모설
정희량(1469-未 詳) : 평사낙안-원포귀범-어촌낙조-산시청람-동정추월-소상야우-연사모종-강천모설
홍언필(1476-1549) : 원포귀범-평사낙안-동정추월-소상야우-산시청람-강천모설-연사모종-어촌낙조
이 행(1478-1534) : 평사낙안-강천모설-어촌낙조-소상야우-원포귀범-산시청람-연사모종-동정추월
신광한(1484-1555) : 평사낙안-원포귀범-소상야우-동정추월-강천모설-산시청람-연사모종-어촌낙조
소세양(1486-1562) : 평사낙안-동정추월-소상야우-강천모설-연사모종-어촌낙조-산시청람-원포귀범
소세양(1486-1562) : 산사모종-동정추월-원포귀범-소상야우-어촌낙조-평사낙안-강천모설-산시청람
정사룡(1491-1570) : 원포귀범-산시청람-연사모종-어촌낙조-소상야우-동정추월-평사낙안-강천모설
조 욱(1498-1557) : 평사낙안-원포귀범-강천모설-산시청람-동정추월-소상야우-연사모종-어촌낙조
이정암(1541-1600) : 소상야우-동정추월-산시청람-연사모종-원포귀범-어촌낙조-평사낙안-강천모설
이수광(1563-1628) : 평사낙안-원포귀범-소상야우-동정추월-산시청람-강천모설-어촌낙조-연사만종
이홍유(1588-1673) : 평사낙안-원포귀범-소상야우-동정추월-연사효종-강천모설-산시청람-어촌낙조
정두경(1597-1673) : 동정추월-소상야우-평사낙안-원포귀범-어촌낙조-연사만종-강천모설-산시청람
김홍욱(1602-1654) : 동정추월-소상야우-어촌낙조-산시청람-평사낙안-원포귀범-연사만종-강천모설
구 음(1614-1683) : 소상야우-동정추월-원포귀범-평사낙안-어촌낙조-산시청람-연사모종-강천모설
윤 추(1632-1707) : 연사모종-원포귀범-평사낙안-강천모설-산시청람-어촌석조-동정추월-소상야우
김만기(1633-1687) : 소상야우-동정추월-원포귀범-평사낙안-어촌낙조-연사만종-산시청람-강천모설
권두경(1654-1725) : 강천모설-원포귀범-소상야우-평사낙안-연사모종-산시청람-어촌낙조-동정추월
숙 종(1661-1720) : 어촌낙조-산시청람-소상야우-연사만종-원포귀범-동정추월-평사낙안-강천모설
이광정(1674-1756) : 원포귀범-어촌낙조-연사모종-소상야우-평사낙안-산시청람-동정추월-강천모설
권상일(1679-1759) : 산시청람-연사모종-원포귀범-어촌낙조-동정추월-평사낙안-소상야우-강천모설
권 만(1688-未 詳) : 평사낙안-원포귀범-소상야우-동정추월-산시청람-어촌낙조-강천모설-연사모종
정종로(1738-1816) : 동정추월-소상야우-평사낙안-강천모설-원포귀범-어촌낙조-산시청람-연사모종
정 조(1752-1800) : 소상야우-동정추월-어촌낙조-산시청람-연사모종-원포귀범-평사낙안-강천모설
송래희(1791-1867) : 평사낙안-연사모종-소상야우-강천모설-어촌석조-동정추월-원포귀범-산시청람
박영원(1791-1854) : 어촌낙조-산시청람-소상야우-강천모설-연사만종-원포귀범-동정추월-평사낙안
김시락(1857-1896) : 산시청람-원포귀범-소상야우-어촌낙조-연사모종-동정추월-평사낙안-강천모설

이처럼 문인들은 제 각각 자신의 고유한 방식에 따라 작품의 순서를 배열하고 있었다. 이 논문에서 소상팔경의 배열에 주목하는 이유는 소상팔경을 창작했던 문인들의 심리에는 팔경의 순서를 선택하고 배열하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질서와 미적 기준에 따라 첫 번째 작품에서 마지막 작품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완전한 의미맥락과 구성방식에 따라 이루어졌음을 추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소상팔경의 여덟 장면을 배열하는 것도 나름대로의 규칙성에 근거하여 배치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 자료를 토대로 제1수로부터 제8수까지의 순서를 정리한 결과 다음과 같은 통계 수치를 얻을 수 있었다.


제1수
제2수
제3수
제4수
제5수
제6수
제7수
제8수
총계
산시청람
6
3
1
6
10
9
8
3
46
연사모종
3
5
3
3
10
4
14
4
46
소상야우
4
3
20
7
5
5
1
1
46
원포귀범
6
22
4
5
4
3
1
1
46
평사낙안
15
4
3
9
2
4
7
2
46
동정추월
3
6
5
7
6
6
5
8
46
어촌낙조
2
2
8
3
6
8
6
11
46
강천모설
7
1
2
6
3
7
4
16
46
작품총계
46
46
46
46
46
46
46
46
368
최다빈도
평사낙안
원포귀범
소상야우
평사낙안
산시청람
산시청람
연사모종
강천모설
瀟湘八景
* 이 통계는 소상팔경을 노래한 8수가 온전히 남아 전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한 것임

이 도표를 통해서 몇 가지 의미 있는 결과를 읽어낼 수 있었다. 소상팔경에 해당하는 여덟 장면들이 제1수에서부터 제8수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배열되고 있었으며 어떻게 분포하고 있었는가 하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문인들이 첫 번째 장면으로 배열한 작품 가운데 가장 많은 빈도수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은 평사낙안(平沙落?)이었다. 다음으로 제2수에서 가장 많은 빈도수를 보였던 작품은 원포귀범(遠浦歸帆)이었고, 제3수에서는 소상야우(瀟湘夜雨)였다. 그리고 제4수에서는 다시 평사낙안(平沙落?)이 최다 빈도수를 보였다. 그리고 제5수와 제6수에서는 산시청람(山市晴嵐)이 최다 빈도수를 차지했고, 제7수에서는 연사모종(煙寺暮鐘)이, 그리고 마지막 작품인 제8수에서는 강천모설(江天暮雪)이 가장 많이 등장하고 있었다.
소상팔경을 소재로 창작한 한시 작품 가운데 제1수에서 제8수에 이르기까지 가장 빈도수가 높은 작품을 정리하면, 평사낙안(제1수), 원포귀범(제2수), 소상야우(제3수), 평사낙안(제4수), 산시청람(제5수), 산시청람(제6수), 연사모종(제7수), 강천모설(제8수)의 순서를 따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평사낙안이 제1수의 자리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작품인 동시에 제4수의 자리에서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면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결코 쉽게 넘길 수 없는 현상이다. 평사낙안(平沙落?)은 앞선 제3장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현실과 이상 사이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출처진퇴(出處進退)의 고민과 갈등이라는 함의(含意)를 지니고 있었다. 가장 많은 작품에서 평사낙안(平沙落?)을 첫머리에 배치하고 있었다는 점은 그만큼 사대부 문인들에게 출처진퇴(出處進退)의 문제가 심각하게 인식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동정추월과 어촌낙조의 경우는 제1수에서 제8수에 이르기까지 어떤 자리에서도 많은 빈도수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정추월과 어촌낙조가 가장 많은 빈도수를 차지하고 있는 자리는 제8수였다. 말하자면 강천모설이 16회의 빈도수를 보임으로써 가장 대표적인 작품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제8수의 자리에서 어촌낙조가 11회, 동정추월이 8회의 빈도수를 보임으로써 강천모설의 뒤를 잇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는 어촌낙조와 동정추월을 마지막인 제8수에 위치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했었던 문인들이 그만큼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증거인 셈이다. 앞의 도표에서 각 장면마다 가장 빈도수가 높은 작품을 기준으로 역대 우리나라 문인들이 가장 많이 배열했던 작품 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평사낙안-②원포귀범-③소상야우-④동정추월-⑤산시청람-⑥어촌낙조-⑦연사모종-⑧강천모설

이 배열이 역대 우리나라 문인들의 소상팔경(瀟湘八景) 작품을 대상으로 정리된 대표적인 배치 순서의 표본에 해당한다. 물론 이 순서에는 한 장면에서 최고 많은 빈도수를 보이고 있더라도 다른 장면에서 역시 최고 빈도수를 보이는 경우에는 제외하고 차상위의 빈도수를 보이고 있는 작품을 대상으로 정리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자료에 대한 통계수치 이상의 의미는 갖지 않는다. 가장 많은 빈도수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의 배열에 해당할 뿐이지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아울러 이러한 통계수치만으로는 사대부 문인들이 소상팔경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 하는 점을 알 수 없었다.
우선 연작시의 성격을 지닌 채, 총 46회에 걸쳐 형상화된 368수의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를 대상으로 유형화하는 작업을 수행해야만 했다. 전체 작품을 대상으로 유형화하는 단계에서는 하나의 기준이 필요했다. 그래서 구체적인 작품을 면밀히 검토하면서 작품이 갈등상황을 배태(胚胎)하고 있는가의 여부에 주목하였다. 그러다보니 세 가지 분류항목이 성립되었다.
첫째는 작품에 어떠한 갈등이나 대립과 같은 상황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둘째는 작품에서 갈등상황을 배태(胚胎)하고 있는 경우이다. 셋째는 작품에 갈등상황이 형성되어 있으나 탈속(脫俗) 혹은 구도(求道)등의 방법을 통해 갈등이 해소되는 상황으로 의미맥락이 연결되는 경우였다. 이 세 가지 기준에 따라 46수의 소상팔경시를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작품 내 갈등상황의 유무 여부에 따른 유형 분류표>
성 명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에 설정된 갈등상황
작품의 시작과 끝
있음
있음 → 없음
없음
이인로

평사낙안-어촌낙조
이규보

강천모설-동정추월






진 화

평사낙안-강천모설
이제현

평사낙안-어촌낙조


평사낙안-연사모종
천 봉



산시청람-강천모설
강석덕

연사모종-평사낙안
성삼문



산시청람-강천모설
이승소

원포귀범-어촌낙조
강희맹


어세겸


김시습


평사낙안-어촌낙조
성 종



산시청람-강천모설




정희량


평사낙안-강천모설
홍언필

원포귀범-어촌낙조
이 행

평사낙안-동정추월
신광한

평사낙안-어촌낙조
소세양




산사모종-산시청람
정사룡



원포귀범-강천모설
조 욱



평사낙안-어촌낙조
이정암


소상야우-강천모설
이수광

평사낙안-연사만종
이홍유



평사낙안-어촌낙조
정두경



동정추월-산시청람
김홍욱

동정추월-강천모설
구 음

소상야우-강천모설
윤 추

연사모종-소상야우
김만기


소상야우-강천모설
권두경



강천모설-동정추월
숙 종



어촌낙조-강천모설
이광정



원포귀범-강천모설
권상일



산시청람-강천모설
권 만



평사낙안-연사모종
정종로



동정추월-연사모종
정 조


소상야우-강천모설
송래희

평사낙안-산시청람
박영원



어촌낙조-평사낙안
김시락



산시청람-강천모설
전체 46회
5회
24회
17회
전체 46회


여기서 정리한 바와 같이 첫째, 작품에 갈등상황이 개입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둘째, 작품이 갈등상황에서 출발하고 있으나 특정한 방법을 통해서 내적 갈등이 해소되는 단계가 있었다. 그리고 셋째, 작품에 갈등상황이 전혀 개입되어 있지 않고 갈등이 완전하게 해소된 단계에 도달해 있는 작품의 경우가 있다. 이처럼 3가지 경우로 유형화할 수 있었다.
그런 다음 이와 같은 3가지 유형에 속하는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들이 나름대로의 어떤 내적 질서 속에서 어떠한 의미맥락을 구조화하고 있었는지 살펴보았다. 그 결과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작품 내에 갈등상황이 배태(胚胎)되어 있는 경우였다는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총 46수의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 가운데 29회에 걸쳐 작품 내에 갈등 상황이 형상화되어 있었다.
우리는 흔히 그림으로 그린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나 시로 쓴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라고 하면 막연하게 무릉도원(武陵桃源) 내지는 인간의 이상향(理想鄕)을 그린 이념화되고 관념화된 산수화(山水畵)라고 생각했고 또한 대체로 그와 같은 관점에서 연구 성과가 마련되고 축적되어 왔다.
그러나 작품의 실상을 검토하고 분석한 결과는 그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선 앞에서 정리하여 제시한 유형 분류표와 같이 어떤 경우에 갈등이 존재하게 되는가? 또 어떤 경우에 갈등이 존재하다가 해소되는 것인가? 그리고 갈등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경우는 또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의문들이 잇따라 제기 되면서 그에 대한 해답을 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품 전체를 통찰해서 살펴본 결과 위의 유형분류표에서는 갈등 존재 여부에 따라 세 가지 기준으로 구분했지만 작품의 구체적 의미맥락에서는 크게 네 가지 방향으로 의미맥락이 분화된 채 창작행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가장 대표적이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경우가 작품 내에 갈등이 해소 되었건 해소 되지 않았건 갈등을 내포하고 있는 경우였다. 이 경우는 주로 출처진퇴(出處進退)에 대한 고민(苦悶)과 갈등(葛藤)을 표출하고 있는 의미맥락이었다.
다음으로 작품 내에 갈등이 존재하다가 해소되는 경우였다. 이 경우에 갈등이 해소되는 방법은 대체로 구도(求道)와 탈속(脫俗)을 통해서 내적 갈등이 해소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작품 내에 어떠한 갈등이나 불평지심도 존재하지 않는 경우였다. 이 경우에는 두 가지 갈래로 나뉜 채 의미맥락이 형성되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선정(善政)을 통한 태평성대(太平聖代)의 재현(再現)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인간(人間)과 자연(自然)이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인 삶이라는 의미맥락이었다. 이렇게 정리된 네 가지 의미맥락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4.1. 출처진퇴(出處進退)에 대한 고민(苦悶)과 갈등(葛藤)
4.2. 선정(善政)을 통한 태평성대(太平聖代)의 재현(再現)
4.3. 구도(求道)와 탈속(脫俗)으로 내적 갈등의 해소(解消)
4.4. 인간(人間)과 자연(自然)이 조화(調和)를 이루는 이상 공간

다음에서는 이러한 네 갈래의 의미맥락들이 구체적인 작품 속에서 어떻게 구조화되고 있었는가 하는 점을 살펴보겠다. 구체적인 작품의 실상을 통해서 보다 명료한 의미맥락이 도출되는 동시에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가 역대 문인 사대부들에게 어떠한 소통의 의미와 체계를 지니고서 끊임없이 창작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한다. 이를 통해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가 지니고 있던 다기(多岐)한 스펙트럼의 양상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논의한 내용을 토대로 이들의 관계를 유심히 살펴보면 특정한 규칙성이 발견된다. 출처진퇴에 대한 고민과 갈등이라는 의미맥락(4.1.)을 보면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바라보고 감상하면서 시를 짓던 사대부들이 과연 정말 그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 정도로 이념화되고 정형화된 산수화에서 그와 같은 관점의 독화(讀畵)가 가능했을까?
그림 속에 구현된 경물(景物)은 평화롭고 안정된 질서에 근거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림을 바라보는 문인 사대부들이 발을 딛고 서있는 현실이다. 그들은 아니 인간이 사는 세상은 분열된 상황 속에서 온갖 모순과 부조리, 시기와 질투, 갈등과 대립, 권력을 탐하는 욕심과 알력 등등이 횡행하면서 심각한 투쟁과 갈등이 전개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때문에 그들에게 가장 커다란 문제이자 당면과제는 출처진퇴(出處進退)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판단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모습일까?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문인 사대부들이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4.2.와 4.3.장과 같은 의미맥락이 형성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4.2.에서 말하는 선정(善政)을 통한 태평성대(太平聖代)의 재현(再現)은 자아와 세계의 관계를 설정하고 볼 때, 자아의 문제 영역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는 나의 영역을 넘어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영영에 해당하는 문제이다. 이는 타인의 영역이기도 하다. 만일 성군(聖君)과 현신(賢臣)이 서로 만나서 좋은 때가 더불어 허락된다면 그것은 태평성대가 재현될 수 있는 상황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성군(聖君)이나 현신(賢臣)이 좋은 때를 만나지 못한다면 태평성대는 재현될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냥 태평성대가 이루어지기만을 손꼽아 기다려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이제 문제 상황은 남의 영역을 넘어선 것이다. 이제는 자아의 영역 즉 나의 문제 영역으로 문제 상황이 전이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자아의 심성 수련을 통해 내적 갈등상황에 처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4.3. 구도(求道)와 탈속(脫俗)을 통해 갈등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인식의 경지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세계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영역에 속한다. 세계가 스스로 정화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을 때 인간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의 영역에서 스스로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만 한다.
그렇게 되면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제 최종적으로 모든 갈등이 해소되고, 인간이 궁극적으로 소망했던 목표 지점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언젠가는 실현 가능한 삶의 방식이자 실현될 수 있는 삶의 목표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그 궁극적인 모습이 바로 인간(人間)과 자연(自然)이 조화(調和)를 이루는 이상 공간에서의 삶(4.4.)이다.
문인 사대부들은 각자가 처해 있는 특수한 상황과 처지에 따라 4.1.에서 4.4.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스펙트럼 가운데 어느 한 지점을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라는 형식을 빌려 표출하고 있었다. 따라서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나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에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며 이념화된 무엇이 담겨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다기(多岐)한 양상의 의미맥락이 감추어져 있었다. 시인들은 이 다기한 소상팔경시의 스펙트럼 내에서 어느 한 지점을 포착하여 시를 통해 형상화 하거나 그림을 통해서 형상화하고 있었다. 이제 각각의 의미맥락에 속하는 구체적인 작품 분석을 통해 그와 같은 실상을 확인해 보도록 하겠다.


4.1. 출처진퇴(出處進退)에 대한 고민(苦悶)과 갈등(葛藤)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림 안에 형상화된 경물(景物)들이 너무나도 안정된 질서 속에서 배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편안한 마음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정형화되고 관념화되며 이념화된 산수화의 전형을 이루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소상팔경도인 셈이다.
그런데 이 그림을 바라보던 문인 사대부들로부터 한 나라의 군주인 임금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딛고 서있던 현실도 과연 그토록 평온하고 안정된 사회였을까? 그렇지 않았으리라 판단한다. 그들은 분열된 세계상을 접하며, 모순과 부조리를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든지 그들이 딛고 서있던 현실에 대한 인식이 작품을 바라보고 음미하며 감상하던 그네들의 시선에 묻어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사실 겉으로 보기에 세상은 안정된 질서에 근거하고 있는 듯하지만 실상은 평화로운 정경 속에서도 심각한 투쟁과 갈등이 전개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세상에서 문인 사대부들에게 출처진퇴(出處進退)가 갖는 의미는 그들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출처진퇴(出處進退)야말로 사대부들의 존립할 수 있는 기반이자 토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작품 내에 갈등 상황을 배태(胚胎)하고 있는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 작품을 대상으로 출처진퇴(出處進退)에 대한 고민(苦悶)과 갈등(葛藤)의 의미맥락이 어떻게 표출되고 있었는가 하는 점을 구체적인 작품 분석을 통해 논의하겠다.
작품에서 출처진퇴에 대한 고민과 갈등의 의미맥락을 드러내고 있는 작가로는 김시습과 정희량, 이정암, 김만기, 정조 임금 등 여러 명이 있지만 이들 모두의 작품을 논의하기에는 너무 많은 작업 과정을 요구하고 또한 현 단계에서 지나치게 확장을 하기보다는 집중적인 논의를 통해 심층적인 이해를 도모하고 세부적인 성과들을 바탕으로 일반화하는 단계로 나가야할 연구과정의 절차가 마련되어 있다. 때문에 여기서는 출처진퇴(出處進退)에 대한 고민과 갈등이라는 의미맥락의 가장 전형적인 특성을 보여주고 있는 김시습(金時習;1435-1493)의 작품에 한정하여 논의하도록 하겠다.


一行秋?落汀沙 한 줄 가을 기러기가 모래섬에 내리고,
抹破晴空數點霞 맑은 하늘 쓸어 깨는 두어 점 노을이네.
?雨靜依黃葦葉 성근 비에는 누런 갈대에 조용히 의지하며,
寒塘細?白?花 차가운 연못에 백빈화를 가늘게 쪼아 먹네.
歸心暗逐湘江渚 돌아갈 마음 상강 물가를 암암리에 쫓는데,
亂?相催夢澤涯 어지러운 날개 짓 운몽택을 서로 재촉하네.
莫戀稻粱容易下 생계를 연모하여 쉽사리 내려앉지 말라며,
?蘆須避?言加 金時習, <梅月堂集> 卷六, 『韓國文集叢刊』第13卷 194쪽,「平沙落?」.
갈대를 물고 주살 피하라는 말을 덧보태네.

소상팔경시의 8수 가운데 첫 번째 자리에 배치된 작품으로 평사낙안(平沙落?)을 형상화했다. 평사낙안(平沙落?)은 앞서 3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넓은 모래밭인 평사(平沙)에 내려앉는 기러기의 형상을 통해서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갈등을 출처진퇴(出處進退)에 대한 고민과 갈등이라는 의미맥락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이 작품의 경우를 살펴보면 가을날 한 줄로 늘어선 기러기들이 모래섬에 내려앉는 형상을 먼저 형상화하고 있다. 맑게 갠 하늘을 점점이 깨뜨리는 것이 두어 점 노을이라고 형용했다. 동시에 성긴 비가 누런 갈대 잎에 소리 없이 의지한 채 내리고 있다. 기러기는 차가운 연못에서 백빈화를 가늘게 쪼아 먹고 있다. 돌아가려는 마음에 상강 물가를 몰래 쫓고 어지러운 날개 짓을 하며 운몽택(雲夢澤)이 있는 언덕을 서로 재촉하고 있는 형상이다. 그러면서 시인은 기러기에게, “생계를 연모하여 쉽사리 내려가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있다. 평사로 내려가지 말라고 당부하는 이유 속에 시인의 현실인식이 드러난다. 당장의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평사로 내려와 먹이를 구하려다가 인간들의 사악한 마음이 발동되어 사냥감이 되거나 덫이나 함정에 걸려들어 삶을 마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평사낙안(平沙落?)의 그림을 보면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기심(機心)에 주목하고 있다. 평사(平沙)라는 공간은 인간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 심각한 갈등과 투쟁이 진행되고 있는 현실공간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 곳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을 바라보는 시인의 관점은 “갈대를 물고 주살만 피하라는 말”을 덧보태는 상황에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말하자면 기러기에게 이상적인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공간이 하늘이라면 삶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려가서 먹이와 물을 구해야 하는 평사(平沙)는 현실공간에 해당한다. 그렇기에 현실공간을 지배하는 질서는 인간들의 사악한 이기심이라고 말하면서 평사에 내려앉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렇다면 기러기들에게 이상적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는 하늘은 인간의 사악하고 이기적인 기심(機心)이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공간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행의 표현에 주목해보면 하늘이라는 공간도 기러기에게 더 이상은 삶의 영속을 보장해줄 수 있는 이상적 공간이 되지 못한다. 갈대를 입에 물고서 주살을 피하라는 말은 이미 하늘이라는 공간조차도 인간의 이기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옛 사람들은 기러기가 이동할 때 갈대를 물고 날아간다고 믿었다. 진(晋) 나라의 최표(崔豹)가 쓴 『고금주(古今注)』를 보면, “기러기가 황하 이북에서 강남으로 건너갈 때는 비쩍 말라서 아주 높이 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쏘는 주살을 겁내지 않는다. 강남은 땅이 비옥하다. 매번 북쪽으로 돌아올 때면 뚱뚱해져서 높이 날지 못한다. 사냥꾼에게 잡힐까 염려해서 늘 몇 자 길이의 갈대를 물고서 날아오는 주살에 대비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외에도『회남자(淮南子)』에는 “기러기가 기력을 아끼려고 갈대를 물고서 주살을 피한다.”라고 기록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다양한 문헌에서 이와 유사한 맥락의 기록들이 확인된다. 정민,『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둘째권, 효형출판, 126쪽 참고.
하늘도 평사도 기러기에게는 평온하고 안락한 공간이 될 수 없다. 어느 곳이든 함정과 모함이 차고 넘치는 공간일 따름이다. 이와 같은 형식과 표현의 기저에는 조화롭지 못하고 갈등과 대립, 분열과 투쟁이라는 현실인식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一葉扁舟泛渺茫 한 조각 돛단배는 멀리 아득하게 떠나가고,
輕帆穿入荻花鄕 가벼운 돛단배 갈대꽃 핀 곳 뚫고 들어가네.
遙遙七澤歸程遠 아득한 칠택으로 돌아가는 과정은 멀고,
渺渺三湘去意忙 머나먼 삼상으로 가려는 생각 바빠지네.
風正緊時飛似箭 바람에 바로 얽히어 화살처럼 날아가는데,
浪初喧處?如狂 물결이 처음엔 시끄럽다 미친 듯 출렁이네.
夕陽瞑色人千里 석양이 어두운 빛인데 사람은 천 리에서,
?乃數聲歌短長 金時習, <梅月堂集> 卷六, 『韓國文集叢刊』第13卷 194쪽,「遠浦歸帆」.
뱃노래 두어 곡조를 길고 짧게 노래하네.
원포귀범(遠浦歸帆)의 형상과 함의에 대해서는 앞서 논의했던 3장의 언급과 같이 자신의 뜻과 맞지 않는 갈등의 상황에서 현실에 대처하는 삶의 한 방식이었다. 그리하여 먼 포구를 향해 돌아가는 배의 형상을 제시하고 그 배가 어떠한 형상으로 돌아가고 있는가의 여부에 따라 자신의 뜻과 맞지 않는 갈등 상황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인지 아니면 갈등상황이 아닌 의미맥락으로 읽어야 할 것인가를 파악할 수 있었다. 물론 현실과의 갈등 상황에서 아무런 미련 없이 현실 공간으로부터 떠나가는 형상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떠나가는 배의 속도가 질주하듯, 빠르게, 혹은 새가 날아가듯, 쏘아놓은 화살처럼, 순식간에 하늘 끝에서 한 점이 되었다는 등의 표현은 그만큼 현실에서의 갈등이 극심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의 경우는 일엽편주(一葉片舟)가 멀리 아득하게 떠나가는 모습을 형상화함으로써 시상이 시작되고 있다. 칠택(七澤)과 삼상(三湘)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소상강 유역으로 가려는 뜻만 급해진다고 했다. 바람에 바로 얽혀 화살처럼 날아가는 배의 형상을 언급하고 있다. 이때 떠나가는 배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 속도라고 상상했던지 “물결이 처음에는 시끄럽다가 미친 듯이 출렁이고 있다.”고 형상화함으로써 현실에서의 갈등이 극심했음을 표현하고 있다. 석양은 어두운 빛을 띠고 사람은 천리에서 뱃노래 몇 곡조를 길고 짧게 노래하고 있다.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원포귀범의 경우는 멀리 있는 포구로 돌아가는 배의 형상을 통해 현실과의 갈등 정도를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새처럼 날아가듯 이동하거나 빠르게 질주하는 형상에 해당할수록 출처진퇴(出處進退)에 대한 고민과 갈등의 정도가 심했던 것이고 더디게 흘러가는 경우로 형상화 되었을 때는 갈등상황이라기보다는 강호한정의 의미가 강조되고 있었다.
여하튼 이 작품의 경우는 5행과 6행 그리고 7행과 8행의 관계에서도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상황으로 형상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5행과 6행에서는 쏘아놓은 화살처럼 날아간다는 표현을 통해 현실에 대한 염증과 거부감이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7행과 8행에 형상화된 표현에 주목하면 6행과 7행의 시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는 갈등상황이 해소된 것이 아니라 유보 되거나 답보 상태에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細打寒蘆葉正? 차가운 갈대 살짝 쳐도 잎사귀는 바로 바람소리,
??宿??江秋 요란하게 머무는 기러기들 가을 강에 절규하네.
幽蘭叢上行行薄 그윽한 난초 떨기 위로 가면 갈수록 엷어지고,
斑竹枝邊箇箇愁 얼룩진 대나무 가지 주변은 하나하나 근심이네.
遠岸漁燈明烱烱 먼 산기슭 고깃배 불빛 눈부시게 밝게 빛나고,
繞灘鬼語鬧?? 여울을 휘감은 귀신 소리 음산하여 시끄럽네.
何人夜泊楓林下 누군가 단풍나무 숲 아래 밤 되어 정박하는데,
失纜相呼紅蓼洲 金時習, <梅月堂集> 卷六, 『韓國文集叢刊』第13卷 194쪽,「瀟湘夜雨」.
닻줄 잃고 붉은 여뀌 모래섬에서 서로 부르네.

소상야우(瀟湘夜雨)의 형상과 함의에 대해서는 3장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소상강(瀟湘江)이라는 공간에 내리는 밤비의 형상을 통해 세계의 횡포에 휘둘린 채 삶을 마감했던 아황과 여영 그리고 굴원을 등장시켜 그들을 위로하고 조문하며 안타까운 정서를 표출하는 의미맥락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 작품의 경우를 살펴보면 차가운 갈대에 이는 바람 소리에 가을 강에 머물고 있는 기러기들이 요란스럽게 절규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그윽한 난초 떨기는 위로 가면 갈수록 엷어지고, 반점으로 얼룩진 대나무 가지 주변은 하나하나가 근심이라고 형용했다. 여기서 말하는 근심(愁)은 아황과 여영에 대한 생각에서 발생하는 근심일 것이다.
먼 산기슭에는 고깃배의 불빛이 눈부시게 밝게 빛나고 여울물을 휘감고 있는 귀신의 소리가 음산하여 시끄럽다고 형용함으로써 내적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상황을 형상화하고 있었다. 갈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듯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 형상은 닻줄마저 잃고서 붉은 여뀌가 피어있는 모래섬에서 서로를 부르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이 작품에 등장하고 있는 ‘절규(叫)’, ‘근심(愁)’, ‘음산하게 우는 소리(??)’ 등의 시어를 통해서도 이 작품에는 갈등적 요소가 전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千峯?遞亂猿啼 천 봉우리 높고 멀어 원숭이 울음소리 어지럽고,
何處?鍾度晩溪 어느 곳 성긴 종소리 해 저무는 계곡을 지나는가.
韻與松濤相斷續 여운과 함께 소나무 물결 서로 끊겼다 이어지고,
聲和月彩競高? 종소리는 달빛과 어우러져 높은 자리를 다투네.
靜思雲臥晨聞句 산중에 사니 고요히 생각하고 새벽엔 시구 듣고,
閑想愁眠夜泊題 한가한 상념 근심에 졸다 밤 되어 제목에 머무네.
情緖難堪淸坐久 난감함은 맑은 정신에 오랫동안 앉아있는 것인데,
暮天風露正?? 金時習, <梅月堂集> 卷六,『韓國文集叢刊』第13卷 195쪽,「煙寺暮鍾」.
저물녘 하늘에 바람과 이슬이 참으로 처량하네.

연사모종(煙寺暮鐘)은 3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연기에 가려진 산사(山寺)를 배경으로 저물녘 울리는 종소리의 형상을 제시함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절을 찾아가는 인물형상을 등장시키고 있었다. 등장인물은 눈으로는 사찰(寺刹)을 확인할 수가 없는 상태이므로 오직 산사에서 울리는 종소리에 의지한 채 사찰을 찾아가는 구도자(求道者)로서의 함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 작품의 경우를 살펴보면 모든 봉우리가 높고 험해 잔나비 울음소리가 어지럽게 형상화되어있다. 어느 곳의 성긴 종소리가 해 저문 계곡을 지나는지 종소리의 울림과 함께 소나무도 물결치며 서로 끊어졌다 이어지는데 종소리가 달빛과 어우러져 높은 자리를 다투는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다.
갈등과 대립으로 얼룩진 세상을 피해 산중에 은거하며 고요하게 사색에 빠져서는 새벽녘이면 시구를 듣고서 하루 종일 한적하게 사색에 빠지기도 하고 근심하다 잠이 들고 밤이 되어도 제목에서 더 이상 진척되지 못하고 그냥 머무르게 된다고 했다. 이러한 산중 생활 속에서도 가장 난감한 것은 맑은 정신을 유지한 채 오랫동안 앉아 있는 것인데, 저물녘 하늘에는 바람과 이슬만이 진정 처량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형상화하고 있다.
이 작품은 작품의 구체적 시어를 통해 세상을 떠나 산속에 은거하고 있음을 ‘운와(雲臥)’라는 표현으로 드러냈다. 속세를 떠나서 구도(求道)의 삶을 추구하고는 있으나 내적 갈등이 완전하게 해소된 상태에 이르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天風吹散鏡開? 하늘 바람 불어 흩으니 경대 거울을 열고,
寥落秋心一夜添 쓸쓸히 지는 가을날 수심 밤새도록 보태네.
桂影輾飛雲毋帳 계수나무 그림자가 운모휘장을 돌아 날고,
菱光射透水晶簾 마름 풀빛은 수정 주렴에 비치어 드는구나.
看窮皓色三千? 삼천 둘레 밝은 빛에 무궁함을 바라보고서,
呑盡波心八九兼 물결 속을 모두 삼켜 하늘과 땅 아우르네.
自此淸輝分壯氣 이로부터 맑은 빛 씩씩한 기운으로 나뉘어,
更無査滓?廉纖 金時習, <梅月堂集> 卷六,『韓國文集叢刊』第13卷 194-195쪽,「洞庭秋月」.
더욱 앙금이 없는데 달은 흘러가기 꺼리네.

동정추월(洞庭秋月)의 형상과 함의는 3장에서 논의했던 바와 같다. 동정호에 높이 솟은 둥근달의 형상을 통해서 최고의 정점 내지 절정에 도달한 상태를 의미한다고 정리한 바 있다.
이 작품의 경우를 살펴보면 동정호(洞庭湖) 하늘에 바람이 불어 구름을 헤치며 ‘경대 거울’을 열었다고 했다. 경대 거울은 보름달에 빗댄 비유적 표현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되는 표현은 “쓸쓸히 지는 가을날 수심 밤새도록 보태네(寥落秋心一夜添)”라는 형상이다. ‘추심(秋心)’이라는 시어는 근심과 걱정을 의미하는 수(愁)의 파자(破字)이기도 하다. 이는 가을날의 애상감을 뜻하는 것으로 ‘수심(愁心)’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동정호 하늘 위에서 달빛이 비치고 있는 형상을 삼천 둘레의 밝은 빛이 끝없음을 보고는 물결 속을 모두 삼켜서 하늘과 땅을 아우르게 된 것이라고 형용했다. 이로부터 달은 맑은 빛과 씩씩한 기운으로 나뉘었고, 아무런 앙금도 없다고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이 흘러가기를 꺼린다고 형상화하였다. 시상이 마무리되는 지점에 주목해보면 동정추월이라는 작품에서도 여전히 내적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埋盡平沙沒釣磯 넓은 모래 깊이 묻혀 낚시터에 함몰 되고,
和風瓊屑滿江飛 눈꽃 가루 온화한 바람에 강 가득 날리네.
細粘蘆葦千枝亞 갈대는 살짝 단장한 채 천 가지 눌려있고,
重壓松篁一逕微 무겁게 눌린 솔숲 대숲 작은 길 희미하네.
汀外晩潮人獨立 물가 밖 저녁 조수에 사람만이 홀로 섰고,
渚邊枯草鳥相依 물가 주변 마른 풀에 새가 서로 의지하네.
斷橋肩聳騎驢客 끊긴 다리 나귀 탄 나그네 어깨 솟아있고,
吟斷新詩何處歸 金時習, <梅月堂集> 卷六, 『韓國文集叢刊』第13卷 195쪽,「江天暮雪」.
새로운 시 읊다가 멈추고 어디로 돌아가나.

강천모설(江天暮雪)의 형상과 함의에 대해서는 앞선 3장의 논의를 통해 정리한 바와 같이 겨울날 저녁 강변에 내렸거나 내리고 있는 눈(雪)의 형상을 다루면서 세상사에 초탈한 달관(達觀)과 흥취(興趣)의 경지를 의미하고 있었다고 정리했다. 이것이 강천모설(江天暮雪)이라는 시제(詩題)를 통해 형상화된 작품 군에서 확인되는 전형적인 특징이다.
이 작품의 형상화 방식을 살펴보면, 내린 눈에 넓은 모래밭이 깊이 묻혀 있고 낚시터까지 눈에 매몰되어 있는 형상이다. 눈꽃 가루가 온화한 바람 속에서 강에 가득 날린다. 모든 갈대 가지가 눈으로 살짝 단장한 채 눌려 있고, 소나무 숲과 대나무 숲은 쌓인 눈에 무겁게 눌려 있고, 작은 길은 희미하게 흔적만 남기고 있다. 모래섬 바깥으로는 저물녘 조수에 어떤 사람이 홀로 서 있고, 물가 주변 마른 풀에서는 새들이 서로 의지하고 있다. 끊긴 다리에는 나귀를 탄 나그네가 시사(詩思)에 겨워 어깨를 솟구치다가 새로 지은 시를 읊조리다 그만두고 어디론가 돌아가는 형상을 다루고 있다.


??拂拂又?? 뭉게뭉게 모였다가 털어내니 다시 아득해지고,
染着秋風吹不消 물들어 붙어서는 가을바람에도 사라지지 않네.
輕?靑旗沽酒店 가볍게 푸른 깃발 덮으니 술집에서 술을 사고,
薄籠殘照送人橋 숲 주변에 해가 지면 다리에서 사람을 보내네.
依稀林石泉聲咽 숲과 바위는 어렴풋한데 물소리는 울려 퍼지고,
彷彿楓鴉樹影搖 단풍나무에 까마귀인 듯 나무 그림자 흔들리네.
自有武陵堪避世 무릉도원을 가졌으니 속세를 피하기에 충분한데,
何勞忘路問漁樵 金時習, <梅月堂集> 卷六, 『韓國文集叢刊』第13卷 195쪽,「山市晴嵐」.
무엇하러 길을 잊고 어부와 나무꾼에게 묻는가.
산시청람(山市晴嵐)은 3장에서 논의했듯이 산림(山林)과 성시(城市)라는 두 공간이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 공간으로 형상화 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산시(山市)에는 언제나 청람(晴嵐)이 둘러 있기 때문에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형상이나 산시 내부를 향하는 시인의 시선은 차단된 상태로 산시 내부를 투명하게 바라볼 수 없는 단절된 형상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푸른 남기는 산시 내부와 외부 세계를 구분 짓는 하나의 경계이자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사대부 문인들은 이러한 형상을 통해 성(聖)과 속(俗)이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 공간을 제시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이 전형적인 산시청람(山市晴嵐)의 형상이자 함의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경우는 어떤지 살펴본다. 역시 이 작품에서도 산시를 감싸고 있는 남기의 형상을 제시하면서 시상이 전개되고 있다. 산시 주변을 두르고 있는 푸른 남기가 뭉게뭉게 모였다가 털어내면 다시 아득해지기를 반복하는 형상이다. 물든 채로 착 달라붙어서 가을바람으로도 사라지지 않는 남기를 형상화했다. 푸르스름한 기운이 주막 깃발을 가리면 주막에서 술을 사고 숲 주변에 해가 지면 다리에서 손님을 전송한다. 숲과 바위는 희미한데 물소리가 울려 퍼진다고 했다. 단풍나무에는 까마귀가 날아다니고 있는지 나무 그림자가 흔들리고 있다고 형상화했다.
마지막 두 행이 주목을 요한다. 시인은 앞에서 산시청람의 경물을 형용하고는 경(景)을 통해 촉발되는 정(情)을 “무릉도원을 두었으니 속세를 피하기에 충분한데 무엇 하러 길을 잊고 어부와 초동에게 묻는가!”라고 형상화했다. 이러한 인식의 기저에는 현실에 대한 갈등이 크면 클수록 무릉도원과 같은 이상향을 찾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음을 반증하고 있다. 말하자면 시인이 바라보는 현실 세계는 그림으로나마 무릉도원을 찾아야할 정도로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된 공간인 셈이다.


斷橋村路少人行 끊긴 다리 마을길로 적은 사람들이 다니고,
江上晴峯落照橫 강변에 맑은 봉우리 떨어지는 해가 빗겼네.
??波光隨水去 넘실거리는 파도 빛이 물결 따라 흘러가고,
?微淡影曳林明 가랑비 맑은 그림자 숲 속 밝음 끌어가네.
兩三腔笛斷霞外 두서너 피리 소리 노을 너머로 끊어지고,
七八葉蘆棲雁聲 가을날 갈대 잎에 기러기 울음소리 깃드네.
吟罷天涯回首望 소리 끝난 하늘 끝을 고개 돌려 바라보니,
白?洲外帆歸? 金時習, <梅月堂集> 卷六, 『韓國文集叢刊』第13卷 195쪽,「漁村落照」.
백빈주 너머로는 돛단배 가볍게 돌아오네.

어촌낙조(漁村落照)는 3장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속세(俗世)와 구별되는 어촌(漁村)이라는 탈속의 공간에서 자연의 이치에 따라 순리대로 살아가는 인물형상을 다루고 있었다. 이러한 형상을 통해 삶의 의미를 관조하고 음미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한 상태를 형상화하고 있었다.
이 작품에 형상화된 경우를 살펴보면 마을의 끊어진 길로는 적은 사람들이 다니고, 강변의 맑은 봉우리에는 지는 해가 비껴있다는 모습으로 형상화했다. 낙조(落照)에 넘실거리는 파도 빛이 물결을 따라 흘러가고, 가랑비 맑은 그림자가 숲 속의 밝음을 끌어가는 형상이다. 어디선가 불어대는 두서너 곡의 피리 소리가 노을 너머에서 끊기면 가을날 갈대 잎에 기러기 울음소리가 깃드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소리 멈춘 하늘 끝을 고개 돌려 바라보니 백빈주 너머로 돛단배가 가볍게 돌아오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이제는 지금까지 논의했던 내용을 정리하면서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사실 그림 속에 펼쳐진 경물(景物)은 너무나도 평온하고 안락한 질서와 구도가 구현되고 있었지만 실상 세계는 평화로워 보이는 정경 속에서도 심각한 투쟁과 갈등이 전개되고 있는 공간이었다. 이러한 공간적 속성을 지니고 있었기에 많은 사대부 문인들이 출처진퇴(出處進退)의 문제로 많은 내적 갈등과 고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임은 당연한 일이다.
앞서 살펴본 작품들은 소상팔경시의 8수를 통해 작품 내에 배태된 출처진퇴(出處進退)에 대한 고민과 갈등 상황이 지속되거나 유예되고 있는 단계의 작품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문인 사대부들이 이와 같은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과정과 절차를 밟고 있었는가, 그리고 이러한 과정과 절차를 거치면서 최종적으로 도달하고자 했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이었는가 하는 점을 그들이 남긴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를 통해 논의할 차례이다.

4.2. 선정(善政)을 통한 태평성대(太平聖代)의 재현(再現)

당시 문인 사대부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문화적 현상의 하나가 소상팔경시의 창작 행위였다. 따라서 우리는 문화적 현상의 하나였던 소상팔경시의 창작 행위가 구체적인 작품을 통해 그들 사이에서 어떤 의미맥락을 지닌 채로 상호 소통되고 있었던가 하는 점을 엿볼 수 있다.
작가별 소상팔경시의 8수를 점검한 결과에 따르면 어떠한 갈등요소도 배태하지 않고 있는 작품에서 드러나는 의미맥락 가운데 하나가 바로 태평성대(太平聖代)의 재현(再現)을 꿈꾸는 의미맥락이었다. 이러한 작품 군(群)에서는 아무런 근심이나 걱정 혹은 갈등상황이 존재하지 않았다. 승려인 천봉과 성삼문의 작품이 이에 해당한다.
당시 승려의 신분이면서도 문단에서 시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사람이 바로 만우(卍雨) 천봉(千峯;1357-未詳)이었다.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 여덟 수를 대상으로 선정(善政)을 통해 태평성대(太平聖代)를 재현하고자 했던 소망이 드러나는 작품에 대해 살펴본다.


谷口雨初霽 골짝 어귀 비 처음 갤 적에,
山頭霧欲生 산 정상 안개가 생기려하네.
幾多花柳巷 버드나무 마을은 얼마나 되나,
歌吹樂昇平 千峯,『匪懈堂瀟湘八景詩帖』, 「山市晴嵐」.
노래 부르며 태평성대 즐기네.

산시청람(山市晴嵐)을 노래한 작품이다. 여덟 수 가운데 첫 번째 자리에 배치되어 있다. 골짜기 입구 주변으로 줄기차게 비가 내렸다. 내리던 비가 골짝 어귀에서 개이자 산 정상에서 안개가 생겨나려고 한다. 이는 작가의 시선이 그림 속의 원경(遠景)에 주목하여 작품을 형상화한 것이다. 전형적인 한시(漢詩)의 시상전개 방식이라 할 수 있는 선경후정(先景後情) 가운데 선경(先景)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후정(後情)에 해당하는 부분에서는 어떠한 정서를 드러내고 있는가 하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버드나무로 둘러싸여서 내부를 향하는 시선을 거의 차단한 채 형성된 마을이 얼마나 되려는지 시인 자신도 정확하게 식별이 되지 않는 모습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은 그림 속의 버드나무 마을에 대한 시인의 시각과 해석이다. 시인이 그림 속을 바라보면서 버드나무에 싸인 마을의 분위기에 대해 형상화하기를, “노래를 부르며 태평성대(太平聖代)를 즐거워한다.(歌吹樂昇平)”라고 했다.
시어로 등장하고 있는 ‘승평(昇平)’이라는 용어는 태평(泰平)한 세상을 이르는 말이다. 사실 그림 속에는 그러한 형상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이를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에 태평성대라는 인식이 투사되어 있을 뿐이다. 그림 속 희미하게 보이는 마을 어디에도 태평성대와 같은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시인의 소망이 그림의 의미를 해석하는 지점에 개입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따름이다. 말하자면 이러한 표현은 시인의 내적 소망이 그림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있는 셈이다.


樹?一竿日 나무 끝 장대 하나에 해 걸렸고,
江干數口家 강가에는 서너 집이 둘러 있네.
因風問漁? 바람 때문에 어옹에게 물었는데,
莫是太公耶 千峯,『匪懈堂瀟湘八景詩帖』, 「漁村夕照」.
늙은 어부가 태공망은 아니신지.

어촌석조(漁村夕照)를 노래한 작품이다. 소상팔경시의 8수 가운데 두 번째 자리에 배치되어 있는 작품이다. 해가 지는 저물 무렵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숲 속 나무들의 끄트머리에 얼마 남지 않은 햇볕이 걸려있다. 머지않아 해가 산 뒤쪽으로 넘어가면 마을은 다시 어둠에 잠길 시간이다. 강변으로는 얼마 되지 않는 집들이 강가를 연하여 둘러서 있는 모습으로 형용했다. 여기까지가 경(景)에 대한 형용이었다면 제3행 이하로는 경(景)을 통해 드러나는 정(情)을 표출하는 부분이다. 말하자면 1행과 2행이 경(景)을 대한 상태에서 그대로를 묘사하는 행위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3행과 4행에서는 경(景)을 접하여 촉발되는 시인의 정(情)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그림에 대한 해석의 태도와 관점이 드러나는 대목인 셈이다.
시인은 바람으로 인해 낚시를 하고 있던 노인(漁?)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 대목이 세심한 주의를 요하는 대목이다. 우선 그림 속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인물을 노인(老人)이라고 전제하고 있는 사실이다.
사실 산시청람도(山市晴嵐圖)에 등장하는 인물의 형상만을 가지고 그 인물이 노인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많은 무리가 따른다. 노인임을 알 수 있는 구체적인 징표도 제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낚시하고 있는 노인의 정체에 대한 시인의 인식은 더욱 그렇다. 이러한 표현은 철저하게 시인 자신의 내면 의식을 그림 속에 투영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증거가 된다.
그렇다면 ‘태공(太公)’이라는 시어를 통해 형상화된 인물 태공망 여상은 어떤 인물인가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본명은 강상(姜尙)이었다. 그의 조상이 여(呂) 나라에 봉해졌기에 여상(呂尙)이라 불렸고 속칭 강태공(姜太公)으로 불리기도 했다. 주(周) 나라 문왕(文王)의 초빙을 받아들여 그의 스승이 되었고, 그 아들인 무왕(武王)을 도와서 은나라의 마지막 황제이자 폭군이었던 주(紂)를 물리치고 천하를 주나라에 복속시켰으며, 그러한 공적으로 제(齊) 나라에 봉해져서 그 시조가 된 인물이다.
본래는 동해(東海)에 사는 가난한 사람이었으나 위수(渭水)에서 낚시질을 하다가 문왕을 만나게 되었다는 등 그에 대한 전기는 대부분이 전설적이지만 전국시대부터 한(漢)나라에 이르기까지 경제적 수완과 병법가(兵法家)로서 그의 재주가 줄곧 회자(膾炙)되었다고 한다.
병서(兵書)의 하나인『육도(六韜)』가 그의 저서라고 한다. 뒷날 그의 고사를 바탕으로 낚시질하는 사람을 ‘태공망(太公望)’ 혹은 ‘태공(太公)’이라는 속칭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볼 때 시인이 인식하고 있는 태공(太公)이라는 인물은 어진 군주(君主)를 도와서 태평성대를 도모했던 현신(賢臣)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비단 시인에게만 국한된 인식이 아니라 당대의 모든 문인 사대부들이 공유했던 인식이었다. 따라서 경물(景物)을 통해 촉발되는 정서(情緖)를 드러냄에 있어서 태공망을 등장시킨 의도는 태공망과 같은 현신의 등장을 염원하는 시인의 내면의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궁극적으로는 태공망과 같은 현신, 그리고 훌륭한 군주가 함께 펼치는 선정(善政)과 태평성대(太平聖代)에 대한 소망 등이 어우러진 의도였음을 이해할 수 있다.

淡煙橫絶壁 엷은 연기 절벽을 가로질렀고,
斜日照空庭 비낀 해는 텅 빈 뜰을 비추네.
鐘響出林表 종소리가 숲에서 울려 퍼지면,
?梨應念經 千峯,『匪懈堂瀟湘八景詩帖』, 「煙寺暮鍾」.
큰스님 응당 경전 읊조리겠네.

소상팔경시의 8수 가운데 세 번째 자리에 배치된 작품으로 연사모종(煙寺暮鐘)을 형상화했다. 앞선 3장의 논의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연사모종은 내(煙) 끼인 절의 모습을 저물녘 들려오는 종소리를 통해 형상화한 작품이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오로지 종소리에만 의지한 채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인물 형상을 제시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구도(求道)의 과정과 방향을 제시하는 함의(含意)가 내포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한 형상이 연사모종(煙寺暮鐘)이라는 시제(詩題)와 화제(畵題)의 의취(意趣)에 가장 합당한 형상화 방식이었음을 언급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형상화 대상의 초점이 약간 이질적임을 알 수 있다. 종소리에 의지해 구도(求道)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인물을 형상화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1행과 2행을 통해서는 그림에 형상화된 경물(景物)을 묘사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엷은 연기가 가파른 절벽을 가로지르며 비껴있고, 이미 지기 시작한 햇빛은 텅 비고 적막한 뜰을 비추고 있다고 했다. 이처럼 해질 무렵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 바쁜 걸음으로 구도(求道)의 공간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는 인물 형상이 등장해야 한다.
그러나 4행에서는 연기에 덮인 사찰을 찾아 걸음을 재촉하는 인물이 아니라 큰스님의 모습을 대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경전을 읊조리며 염불을 외고 계신 큰스님의 형상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형상을 제시한 시인의 의도는 무엇이겠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해가 질 무렵이면 어둠이 내려앉고 세상의 모든 만물은 제각기 자기의 자리로 돌아 가야할 시간이다. 자신이 있어야할 공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이를 각득기소(各得其所)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면 사찰을 지키는 큰스님 역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음으로 해서 하루를 평온하게 마감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있어야할 곳에서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있는 큰스님의 형상을 통해서 평온하고 안락하게 저물어가는 하루를 느낄 수 있다. 이를 통해 평온하고 태평한 정경교융(情景交融)의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千里蓴方美 천리 고향 순채국 정녕 맛좋아,
東吳客大忙 동오 나그네는 무척 바쁘시네.
拏舟葦間去 배를 잡고 갈대 사이로 나가니,
蕭瑟朔風長 千峯,『匪懈堂瀟湘八景詩帖』, 「遠浦歸帆」.
소슬한 겨울바람이 길기만하네.

소상팔경시의 8수 가운데 네 번째 자리에 배치된 작품으로 원포귀범(遠浦歸帆)을 형상화했다. 원포귀범은 3장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진나라 장한의 고사를 들어 현실 정치에 대한 미련 한 점 없이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속세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형상을 다룬 작품이다. 대개의 경우 현실과의 갈등 관계 속에서 귀향(歸鄕)을 선택하는 경우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작품에서 주목되는 것은 서정적 자아의 발화방식이다. 원포귀범을 노래한 대다수의 작품에서는 떠나가는 주체가 서정적 자아와 동일시되는 상황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작품을 보면 서정적 자아의 발화방식이나 태도가 여타의 작품과 변별되는 점이 눈에 띈다. 바로 서정적 자아는 작품 내에서 철저하게 관찰자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서정적 자아가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떠나가고 있는 인물형상이 동오(東吳)의 객(客)이라고 명시함으로써 설정된 인물이 진나라의 장한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시인은 서정적 자아가 아닌 다른 구체적 인물, 즉 고사의 주인공을 등장시킨 것일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근본적으로 원포귀범이 갖는 함의와 관련이 깊은 것으로 이해된다. 원포귀범은 3장에서 논의했듯이 출처진퇴(出處進退)와 관련하여 현실과의 갈등 상황에서 아무런 미련 없이 모든 것을 던지고 떠나가는 형상이었다. 그런데 만일 시적 화자가 떠나가는 것으로 설정될 경우에는 ‘선정(善政)을 통한 태평성대(太平聖代)의 재현(再現)’이라는 전편의 주제의식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게 된다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때문에 시인과 동일시될 수 있는 시선인 서정적 자아가 아니라 다른 인물이 떠나가는 것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천봉과 함께 비해당 안평대군의 소상팔경시첩에 작품을 남긴 성삼문의 경우에서도 이러한 인식과 태도가 드러난다.

遠水平如練 먼 곳 물은 비단결처럼 평온하고,
輕帆疾似禽 가벼운 돛단배는 새처럼 질주하네.
何令盛代士 어찌하여 태평성대 선비로 하여금,
遽起討蓴心 成三問, <成謹甫集> 卷一, 『韓國文集叢刊』第10卷 184쪽,「瀟湘八景」, ‘遠浦歸帆’.
갑작스레 장한의 순심을 일으키나.

성삼문의 원포귀범(遠浦歸帆)이다. 배를 타고 떠나가는데 강물이 비단결처럼 부드럽고 평온하기에 돛단배는 고향을 향해 날아가는 새처럼 질주하고 있는 모습으로 경(景)을 형상화했다.
그런데 3행과 4행에서는 주목할만한 표현이 제시되고 있다. 시인은 현실을 태평성대(太平聖代)로 인식하고 있다. 태평성대에는 현실에서 어떠한 갈등도 존재할 수 없기 마련인데 어째서 태평성대를 살고 있는 선비에게 장한의 순심을 일으키는가? 라고 반문함으로써 시인이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가 하는 점이 드러나고 있는 작품이다.


一夜湘江雨 밤새도록 상강에 내리는 비가,
三秋楚客心 가을날 초나라 굴원 마음이네.
心應懸魏闕 마음은 응당 조정에 달려있어,
通昔動哀音 千峯,『匪懈堂瀟湘八景詩帖』, 瀟湘夜雨.
밤새도록 슬픈 소리 진동하네.

소상팔경시의 8수 가운데 다섯 번째 자리에 배치된 소상야우(瀟湘夜雨) 작품이다. 앞선 3장에서 논의했던 바와 같이 소상야우(瀟湘夜雨)는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 여덟 수 가운데 가장 서사적 성격이 강한 작품이다. 순임금과 아황 그리고 여영의 서사와 초나라 굴원(屈原)의 서사 등이 혼재되어 있기에 그러한 서사성이 강하게 구현되는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이 작품에서는 소상강(瀟湘江)에 내리는 밤비의 형상을 초나라 굴원의 심정에 빗대어 표현했다. 몸은 임금의 곁을 떠나왔지만 마음만은 늘 임금이 계신 궁궐 근처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음을 제시하면서 그러한 충정(忠情)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임금에게 충간(忠諫)하고자 했던 굴원의 안타까운 심정을 형상화하였다. 굴원의 처참한 최후에도 불구하고 초나라 회왕은 굴원의 충간을 귀담아 듣지 않다가 결국은 그마저도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여 시인은 굴원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밤새도록 슬픈 소리가 진동한다는 표현으로 시상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 형상을 제시함으로써 역시 시인이 의도하는 바는 충직하고 어진 신하와 현명한 군주의 만남에 대한 바람 그리고 그들이 구현할 수 있는 태평성대에 대한 그리움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月色淸無比 달빛이 맑기로는 비할 곳 없고,
湖光湛不流 호수 빛도 맑아서 흐르질 않네.
騷人意何限 시인 생각에 어찌 한계를 두랴,
楓葉政矜秋 千峯,『匪懈堂瀟湘八景詩帖』, 洞庭秋月.
단풍잎 지는 가을이 안타깝네.

소상팔경시의 8수 가운데 여섯 번째 자리에 배치된 작품으로 동정추월(洞庭秋月)을 형상화했다. 동정추월(洞庭秋月)은 3장에서도 논의했듯이 최고의 지점에 도달한 형국을 그린 작품이다.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최고의 정점(頂點), 절정(絶頂)의 형상을 다룬다. 그렇기 때문에 풍요(豊饒)와 풍성함만이 차고 넘치는 형상이었다. 동정추월(洞庭秋月)은 태평성대(太平聖代)를 상징하는 전형적인 형상에 해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1행과 2행에서 달빛이 맑기로는 동정 호수에 떠 있는 달빛에 빗댈 것이 없다고 했다. 아울러 호수의 물빛이 어찌나 맑으면서도 고요한지 가장 아름다운 경물(景物)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형상이 바로 태평성대(太平聖代)의 모습과 일치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3행과 4행에 이르면 경물(景物)을 통해 촉발되는 정서(情緖)를 표출하는데 안타까움을 표출하고 있다. 이는 달도 보름이 되어 만월(滿月)이 되면 그 다음부터는 조금씩 기울어야 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정점에 도달하면 이제는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안타까움일 것이다. 여하튼 동정추월(洞庭秋月)이 지니고 있는 형상은 태평성대(太平聖代)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繞岸沙平布 언덕 두른 모래밭이 고르게 펼쳐있고,
隨陽?欲來 기러기는 햇볕 따라 내려오려고 하네.
相呼遵禮讓 서로를 부르면서 예에 따라 양보하니,
人世所欽哉 千峯,『匪懈堂瀟湘八景詩帖』, 「平沙落?」.
인간 세상 이 모습 흠모할 바이로다.

소상팔경시의 8수 가운데 일곱 번째 자리에 배치된 작품으로 평사낙안(平沙落?)을 형상화했다. 앞서 3장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평사낙안(平沙落?)을 노래한 작품들의 함의(含意)는 출처진퇴(出處進退)에 대한 문제 내지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감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작품에서 기러기를 잡거나 사냥하려는 인간의 사악한 기심(機心)과 기러기들의 불안한 마음을 표출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그러한 작품 세계와 변별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경물(景物)을 표현한 부분에서는 야트막한 언덕 주변으로 모래밭이 평평하게 펼쳐져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그리고 햇볕을 따라 그곳으로 내려앉고 있는 기러기의 형상을 그렸다. 경물(景物)을 형상화한 부분에서는 3장에서 논의했던 여타의 작품들과 별반 크게 변별되지 않는다. 하지만 정(情)을 드러내는 부분에서는 평사낙안(平沙落?)의 주된 흐름과 변별되는 지점이 포착된다. 말하자면 기러기들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 세상을 투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러기들이 줄을 지어 내려 앉는 형상의 그림을 보면서 시인은 인간사의 한 구석을 떠올린다. 기러기가 울어대며 줄지어 내려앉는 모습을 통해 예(禮)에 따라 서로에게 양보하는 미덕을 일삼는 행위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시에 인간세상에서도 이러한 기러기들의 형상을 흠모해야 할 것이라며 시상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는 기러기의 생태를 그린 그림을 보면서 인간의 삶을 반추하고 있는 작품이다. 아울러 시인이 생각하고 있는 궁극적 의도는 인간다움을 회복한 아름다운 세상이자 태평성대(太平聖代)였을 것이다.


斷岸雲籠浦 끊어진 절벽에 구름은 포구를 감싸고,
殘山雪滿林 덜 녹은 산속 눈이 숲을 가득 채웠네.
江天多暮景 강변에 저녁 풍경이 다채롭기만 하니,
想像興難禁 千峯,『匪懈堂瀟湘八景詩帖』, 「江天暮雪」.
상상하는 흥취를 금하기도 어렵구나.

소상팔경시 8수 가운데 마지막 작품인 여덟 번째 자리에 배치된 작품으로 강천모설(江天暮雪)을 형상화했다. 3장에서 팔경(八景)의 개별 작품의 형상화 양상과 함의를 논할 때 언급했던 것과 같이 강천모설은 세상사의 이치를 초월한 흥취(興趣)와 달관(達觀)의 경지를 드러내고 있다고 했다.
경물(景物)을 묘사하고 있는 1행과 2행은 여타의 작품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 절벽 옆으로 구름은 포구를 감싸고 있으며 몇 개의 산들이 내린 눈으로 숲이 온통 하얗게 변해 버렸다고 묘사했다. 이러한 경물을 통해 촉발되는 정서(情緖)가 3행과 4행에 걸쳐 드러나고 있다. 눈 내린 저녁 풍경이 다채롭고 그로 인해서 상상(想像)을 하는 시인의 내면의식에서는 일어나는 흥취(興趣)를 제어할 수 없다고 형용했다. 이 작품의 4행에 등장하고 있는 상상(想像)이라는 시어(詩語)는 강천모설(江天暮雪)에만 국한된 시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앞서 살펴본 소상팔경시의 8수에 걸쳐 모두 해당되는 시어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①산시청람(山市晴嵐)에서 형상화된 태평성대(太平聖代)를 의미하는 ‘승평(昇平)’이라는 시어(詩語), ②어촌낙조(漁村落照)에서 등장하는 ‘태공망(太公望)’, ③연사모종(煙寺暮鐘)에 등장하고 있는 ‘큰스님(?梨)’, ④원포귀범(遠浦歸帆)에서 현실을 떠나는 인물이 서정적 자아가 아니라 동오(東吳)의 나그네(客)로 설정되어 있는 점, ⑤소상야우(瀟湘夜雨)의 ‘굴원(屈原)’, ⑥동정추월(洞庭秋月)의 안타까움, ⑦평사낙안(平沙落?)에서 예(禮)에 따라 서로 양보하는 모습을 통해 반추해본 인간세상 등의 모습은 ⑧강천모설(江天暮雪)에서 태평성대(太平聖代)를 상상(想像)하는 흥취(興趣)로 연결되고 있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출처진퇴(出處進退)에 대한 고민(苦悶)과 갈등(葛藤)으로부터 출발한 문제의식은 선정(善政)을 통한 태평성대(太平聖代)의 재현(再現)을 통해 내적 갈등을 해소(解消)하려는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의 의미맥락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선정을 통한 태평성대의 재현은 자아와 세계의 관계 설정에서 자아의 영역이 아니라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이는 세계의 영역에 속한 문제였다. 일단 나를 제외한 세상이 변해주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형국이었다. 때문에 자아의 의지만으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된 현실에서 태평성대가 실현되기를 한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는 형국인 셈이다.
그런데 기다리고 기다려도 변화의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제 문제는 세계의 영역에서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을 이미 벗어난 상황이다. 자아의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구축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의 문인 사대부들은 어떤 방식으로 갈등을 해소하려고 했던가 하는 점을 다음 장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4.3. 탈속(脫俗)과 구도(求道)를 통한 내적갈등의 해소(解消)

앞서도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4장의 내용은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를 개별 작가의 연작시 개념으로 파악한 후에 작품의 의미맥락을 분석하였다. 이때 분석의 기준은 작품에 갈등상황이 개입되어 있는가의 여부에 따라 구분했다. 그 결과 크게 세 가지 갈래로 구분할 수 있었다.
첫째, 작품 전반에 걸쳐서 어떠한 갈등이나 불평지심도 존재하지 않는 경우였다. 둘째, 갈등상황이 배태되어 있으나 탈속(脫俗)과 구도(求道)의 방법을 통해 갈등이 해소되는 경우였다. 셋째, 작품 전반에 걸쳐 갈등상황이나 그에 상응하는 요소가 드러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소 되지 않은 상태로 시상이 종결되는 경우였다.
이 장(章)에서는 이 가운데 둘째에 해당하는 소상팔경시를 중심으로 갈등상황이 배태되어 있으나 탈속(脫俗) 내지는 구도(求道)의 방식을 통해 갈등상황이 해소되는 의미맥락을 지니고 있는 작품에 한정하여 논의하겠다.
연작시의 형태로 창작된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 46수 가운데 절반이 넘는 24수가 이에 속하는 의미맥락을 보이고 있었다. 이는 비단 여덟 수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작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한 작품을 통해 소상팔경을 언급하고 있는 작품들에서도 그와 같은 의미맥락을 보이는 경우가 많이 발견된다.

君坐春風江上樓 그대가 봄바람 부는 강상 누대에 앉으면,
有時淸興一孤舟 한 외딴 배에 맑은 흥취 이는 때 있겠네.
長屛八疊狂歌客 긴 병풍 여덟 첩에 기뻐 노래하는 나그네,
臥作瀟湘萬里遊 金道洙,『春洲集』卷一,「近日臥病, 無以適意, 借人瀟湘屛以觀, 忽憶南湖曠景率爾成一絶, 奉呈宋士行文欽」
누워서 멀고도 먼 소상에서 노니는구나.

김도수(金道洙;출생미상-1742)의 작품이다. 작품의 제목을 보면 “요즈음 병으로 누웠는데 마음에 맞는 뜻도 없어 남의 소상팔경 병풍을 빌려서 보았는데, 문득 중국 호남(湖南)의 아름다운 풍경이 생각나서 급작스럽게 절구 한 수를 이루었다. 송 선비(宋士)의 행실과 문장 솜씨를 흠모하면서 받들어 올린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이 또한 탈속(脫俗)의 경물(景物)을 통해 심적 위안을 삼고자 했음이 드러난다.


八幅龍眠出?? 이공린(李公麟)의 팔경도를 상자에서 꺼내고,
重封聊自寄龜兒 거듭 봉해 스스로 기뻐하며 구아에게 부치네.
烟波景物皆瀟灑 안개 낀 물결과 경물은 모두가 맑고 깨끗하니,
昔疾應蘇對玩時 裵幼華『八斯遺稿』卷一,「送瀟湘八景圖於龜侄以慰病懷, 二首」가운데 제1수.
오랜 병도 마주하고 완미할 땐 응당 소생하리.

瀟湘勝地入良工 소상강의 명승지가 솜씨 좋은 장인에게 들어,
八景森羅八幅中 삼라만상이 팔경(八景)의 여덟 폭 속에 있네.
知爾臥遊心目爽 그대 누워 놀며 마음과 눈 맑아진 줄 아는데,
病蘇何必待秋風 裵幼華『八斯遺稿』卷一,「送瀟湘八景圖於龜侄以慰病懷, 二首」가운데 제2수.
병이 소생하길 어찌 늦은 가을까지 기다리나.

배유화(裵幼華;1611-1673)의 작품이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구질(龜侄)에게 보내서 병을 앓는 동안의 회포를 위로한다는 내용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사대부 문인들은 소상팔경도와 소상팔경시의 탈속적 정취를 통해 내적 갈등이나 심지어 질병(疾病)까지도 치유하고자 했음을 볼 수 있다. 오늘날 미술치료라는 학문 영역에 비추어보더라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단편적인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의미맥락이었다.
이외에도 연작시 형식으로 창작된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 여덟 수를 통해 내적 갈등요소가 드러나고 있는 작품 가운데 탈속(脫俗)이나 구도(求道)의 방식을 통해 갈등상황을 해소하고 있는 경우에 대해 살펴보겠다. 이에 해당하는 작가들 가운데 여기서는 윤 추(1632-1707)의 작품을 통해 살펴보겠다. 윤 추를 대상으로 논의하는 이유는 모든 시인을 대상으로 살펴보기에는 너무 방대한 작업 과정을 요구하기에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아울러 윤 추의 작품이 탈속(脫俗)과 구도(求道)의 방식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있는 의미맥락의 전형적인 유형성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江上高山出數峯 강변에 높은 산들 몇 개의 봉우리 솟아있고,
浮煙籠裏翠成重 뜬 안개는 울타리 속에서 비취빛이 겹겹이네.
林間知有藏孤刹 수풀 속에 외딴 사찰이 감춰져 있음을 알겠고,
雲際遙聞落暮鍾 구름 끝 멀리로 떨어지는 저녁 종소리 들리네.
聲欲大時方隱隱 종소리가 커지려고 하다가 다시 은은해지더니,
響當終處??? 정작 울림이 끝날 곳에서 오히려 둥둥 울리네.
騷人聽此增淸興 시인은 이 종소리를 듣고 맑은 흥취 더해지니,
朝日應須理短? 尹推, <農隱遺稿> 卷一,『韓國文集叢刊』第143卷 197쪽,「瀟湘八景代洪陽從兄月課作」‘煙寺暮鍾’.
내일 아침 해는 응당 짧은 지팡이로 다스리겠네.

소상팔경시의 8수 가운데 첫 번째 자리에 배치된 작품으로 연사모종(煙寺暮鐘)을 형상화했다. 강변에는 높은 산들이 몇 개의 봉우리를 드러내고 있다. 떠다니는 연기가 울타리를 두른 듯이 산을 감싸고 있는 형상이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비취빛이 겹겹이 두르고 있는 상태임을 확인할 수 있다. 저기 수풀 속 어딘가에 외딴 사찰이 감추어져 있음을 아는 것은 구름 끝 멀리에서 떨어지는 종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사찰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종소리를 통해서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찰의 존재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구도(求道)하는 삶의 과정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종소리는 구도자(求道者)에게 일정한 방향을 제시하고 인도한다. 하지만 구도자는 귀를 쫑긋 세우고 종소리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여 귀를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종소리는 작게만 들린다. 소리가 커지는 듯하다가도 이내 은은하게 들린다. 그러다가도 종소리의 울림이 끝나야 할 곳에서는 오히려 둥둥 크게 울린다. 도(道)를 구하고 수학(修學)하는 우리들의 삶도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가서면 저만치 멀리 물러나고 고단하고 괴로움에 모든 것을 놓아버릴 지경에 이르면 다시 눈앞에 드러나고 어쩌면 그것이 삶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시인은 이러한 종소리를 듣자 맑고 빼어난 흥취(興趣)가 더해진다. 흥에 겨운 즐거운 마음으로 내일 아침이 되면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서 짧은 지팡이를 짚고는 또 다른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길을 나서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시상(詩想)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서 시인은 구도(求道)와 탈속(脫俗)의 형상과 경지를 노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扁舟掛席帶斜輝 일엽편주 자리 걸어 비낀 노을 두르고,
極浦煙波島嶼稀 먼 포구 연기와 파도 섬들은 희미하네.
方在天邊疑不動 하늘 끝에 배가 있어 꼼짝 않나 의심했는데,
?過山際轉如飛 도리어 산을 지날 때는 날아가듯 옮겨 가네.
若非楚客蕭蕭入 만일 굴원이 쓸쓸하게 들어오지 않았다면,
定是漁船汎汎歸 반드시 고깃배 타고 둥실둥실 돌아갔겠지.
頃刻杳然何處去 잠깐 동안 아득하게 어느 곳으로 갔는지,
洞庭西望漸依? 尹推, <農隱遺稿> 卷一,『韓國文集叢刊』第143卷 197쪽,「瀟湘八景代洪陽從兄月課作」‘遠浦歸帆’.
동정호 서쪽을 바라보니 점점 흐릿해지네.

원포귀범(遠浦歸帆)은 3장에서 논의했던 바와 같이 현실에 대한 갈등에 대처하는 자아의 결단을 의미하고 있었다. 그 결단의 구체적 내용은 현실을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서사적 맥락이었다. 따라서 먼 포구로 돌아가는 배의 형상을 보고서도 그 떠남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었다. 부조리한 현실에 염증을 느끼고, 갈등과 대립에서 벗어나기 위한 떠남에서는 배가 미끄러지듯이 혹은 질주하듯이 떠나가는 형상으로 묘사된다. 때로는 새가 날아가듯 빠른 속도로 항해하는 형상을 다루고 있었다. 반면에 배가 떠나는 속도가 더디거나 멈춰있는 듯이 형용하는 경우는 그만큼 현실에 대한 미련이 크거나 갈등과 대립의 상황에서 선택한 귀향이 아님을 의미한다.
이 작품의 경우를 살펴보면 일엽편주(一葉片舟)로 떠가는 배에 걸린 돛은 지금 서편으로 지는 저녁노을을 두르고 있다. 멀리 보이는 포구에는 연기가 자욱하고 파도와 섬들은 흐릿하게 보인다. 하늘과 물이 맞닿은 지점에 배 한 척이 놓여 있는데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지 의심을 했건만 도리어 산(山)을 지날 때는 날아가듯이 옮겨간다. 그러면서 시인은 이러한 경물(景物)을 통해 초나라 대부였던 굴원(屈原)의 형상을 떠올린다. 만일 굴원이 쓸쓸한 모습으로 이곳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고깃배를 타고 둥실둥실 돌아갈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잠깐 동안 아득해지며 어디로 갔는지, 다시 동정 호수 서쪽을 바라보니 배는 점점 희미해진다.
이 작품도 역시 탈속(脫俗)과 구도(求道)의 삶을 형상화하고 있는 단계에 놓여있다. 특히 굴원의 경우를 예를 들어 그 의미를 한층 강화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시인은 내적 갈등이 해소되는 과정을 밟아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百里長江際白沙 백 리에 걸친 긴 강은 흰 모래밭을 접해 있고,
寒空落?數行斜 추운 하늘 내려앉는 기러기 몇 줄이 비끼었네.
紛紛叫斷離還合 분분한 울음소리 끊겨 헤어졌다 다시 합하고,
陣陣飛廻邇復遐 줄줄이 날아돌며 멀었다가 다시 가까워지네.
肯效率場求粟粒 기꺼이 이끄는 장소에서 곡식을 구해 주려고,
任敎遵渚喙蘆花 마음대로 물가 좇으며 갈대꽃을 물게끔 하네.
俄然矯翼向何處 갑자기 힘센 날개 짓으로 어느 곳을 향하는지,
薄暮閒雲天一涯 尹推, <農隱遺稿> 卷一,『韓國文集叢刊』第143卷 197-198쪽,「瀟湘八景代洪陽從兄月課作」‘平沙落?’.
초저녁 하늘 끝에는 한가한 구름만 오락가락.

평사낙안(平沙落?)의 형상과 함의는 3장에서 논의했던 바와 같이 평사(平沙)에 내려앉는 기러기의 형상을 통해 현실과 이상 사이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출처진퇴(出處進退)에 대한 어려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작품의 경우를 살펴보면 길게 펼쳐진 강을 따라 백사장이 닿아있다. 추운 하늘에는 따뜻한 모래밭으로 내려앉고 있는 기러기 행렬 몇 줄이 비낀 채로 날아가고 있는 형상을 제시했다. 어지럽게 울어대는 기러기 떼의 울음소리가 끊기고는 기러기들이 헤어졌다가 다시 합쳐지기도 한다. 진을 치듯이 줄줄이 날아오르며 도는 형상을 취하면서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지기도 한다. 무리가 이끄는 장소마다 곡식 구하기를 즐겨 하며 제 멋대로 물가를 따라 갈대꽃을 입에 물게 한다. 옛 사람들은 기러기가 이동할 때 갈대를 물고 날아간다고 믿었다. 진(晋) 나라의 최표(崔豹)가 쓴 『고금주(古今注)』를 보면, “기러기가 황하 이북에서 강남으로 건너갈 때는 비쩍 말라서 아주 높이 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쏘는 주살을 겁내지 않는다. 강남은 땅이 비옥하다. 매번 북쪽으로 돌아올 때면 뚱뚱해져서 높이 날지 못한다. 사냥꾼에게 잡힐까 염려해서 늘 몇 자 길이의 갈대를 물고서 날아오는 주살에 대비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외에도『회남자(淮南子)』에는 “기러기가 기력을 아끼려고 갈대를 물고서 주살을 피한다.”라고 기록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다양한 문헌에서 이와 유사한 맥락의 기록들이 확인된다. 정민,『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둘째권, 효형출판, 126쪽 참고.
그리고는 갑자기 놀라서는 힘차게 날개 짓을 하면서 어딘가로 날아가는 형상을 다루었다. 이때 기러기가 느닷없이 힘센 날개 짓과 함께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간 것은 어디선가 기러기를 노리고 있던 인간의 사악한 기심(機心)이 기러기를 공격했거나 기러기 스스로 그러한 인간의 기심을 감지하고서 화를 피하기 위해 몸을 피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급박했던 순간이 이렇게 수습이 된 뒤에야 해 저무는 초저녁 하늘 끝에는 한가하게 오락가락하고 있는 구름의 모습을 형상화할 수 있었다. 이러한 형상화 방식은 그림에 대한 해석이지 그림에 대한 묘사가 아니다. 이 말은 시인이 그림을 묘사한 부분과 달리 정지된 화면을 보면서도 시인 자신의 관점에서 독화(讀畵)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음을 뜻한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 작품에 형상화된 기러기는 인간의 기심(機心) 내지 사악한 이기심 앞에서 희생될 수도 있는 긴장과 갈등의 상황으로 내몰렸다. 그런 긴장과 대립의 순간에 스스로 그 자리를 벗어남으로써 안전과 생명을 도모할 수 있었다. 이는 인간의 이기심이 횡행하고 있는 속세(俗世)를 벗어남으로써 삶을 유지하고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또한 탈속(脫俗)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있는 단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凄凄西日下虞淵 쓸쓸히 지는 해가 우연으로 내려가니,
漠漠陰雲接遠天 막막한 뭉게구름 먼 하늘에 접하였네.
度夜寒風吹不盡 밤을 건넌 추운 바람 쉼 없이 불더니,
?空飛雪落無邊 온 하늘에 날리는 눈 끝없이 내려앉네.
時看獨釣人廻棹 마침 홀로 낚시를 하다가 노를 돌리고,
更有蹇驢客聳肩 절룩이는 나귀 탄 손 어깨가 솟아있네.
憶得剡溪尋友興 섬계 친구 찾는 흥취 얻음을 떠올리니,
停杯不飮思茫然 尹推, <農隱遺稿> 卷一,『韓國文集叢刊』第143卷 198쪽,「瀟湘八景代洪陽從兄月課作」‘江天暮雪’.
잔 들어 마시지 않고 망연히 사모하네.

강천모설(江天暮雪)의 형상과 함의에 대해서는 앞선 3장의 논의에서 언급했듯이 겨울날 저녁 강변에 내린 눈의 형상을 다루면서 세상사에 초탈한 달관(達觀)과 흥취(興趣)의 경지를 의미하고 있다고 정리했다.
이 작품의 의미맥락을 살펴보면 쓸쓸하게 해가 지고 있는 형상을 통해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막막하고 어두운 빛의 뭉게구름이 멀리 보이는 하늘에까지 닿아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밤새도록 차가운 바람이 쉬지 않고 불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하늘은 온통 휘날리는 눈이 끝없이 내리고 있다.
마침 이 순간에 바라보니 혼자 강변에서 낚시질을 하던 사람은 노를 저으면서 배를 돌리고, 또 절룩이는 나귀 등에 탄 채 시사(詩思)에 잠겨 있던 나그네는 흥에 겨워 한쪽 어깨가 솟구친다. 이러한 장면을 떠올리면서 그 옛날 산음에 살던 친구 왕자유가 섬계에 살던 친구 대안도를 찾아가던 흥취를 떠올리기에 이른다. 시인의 생각이 이 대목에 이르자 감정의 흐름도 절정에 도달하고 있다. 시인이 순간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잔들고는 마시지도 못한 채 그저 그들을 망연히 사모할 따름이라고 했다. 이 작품은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 전편에 흐르는 갈등 요소를 탈속(脫俗)의 경지를 제시함으로써 해소하는 과정에 놓인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다.


雨後山容特地淸 비 내린 후 산의 자태 땅은 더욱 맑고,
輕嵐一抹媚新晴 약간의 엷은 남기 맑은 날씨에 아름답네.
??初似曳長練 천지 기운 처음에는 긴 비단을 당긴 듯 하더니,
?洞俄驚?大瀛 갑자기 잇달아서 큰 바다로 나아감에 놀라네.
遠近峯巒無更出 멀고 가까운 봉우리는 다시 나오지 않고,
依?邨落沒還生 희미한 촌락은 사라졌다 도로 나타나네.
人間不有眞仙已 인간 세상에는 참된 신선 일찍이 존재하지 않으니,
如有應從此裏行 尹推, <農隱遺稿> 卷一,『韓國文集叢刊』第143卷 198쪽,「瀟湘八景代洪陽從兄月課作」‘山市晴嵐’.
만일 따를 수만 있다면 응당 그림 속으로 가리라.

산시청람(山市晴嵐)은 앞서 3장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산림(山林)과 성시(城市)라는 두 공간이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 공간이었고, 이와 같은 산시에는 늘 청람(晴嵐)이 둘러있었다. 때문에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형상이나 산시 내부를 향하고 있는 시인의 시선은 차단된 상태로 산시 내부를 투명하게 바라볼 수 없는 형상이었다.
이때 푸른 남기는 산시와 외부 세계를 구분 짓는 하나의 경계이자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사대부 문인들은 이러한 형상을 통해 성(聖)과 속(俗)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상적 공간을 제시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이 산시청람(山市晴嵐)의 전형적인 형상화 방식이었다.
이 작품의 경우는 비가 내린 후로 상황이 설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바탕 비가 내린 후에 산의 모습은 유독 맑아 보인다. 많지 않은 남기가 맑은 날씨에 아름답게 보인다. 천지의 기운이 서로 합하여 서린 기운이 처음 볼 때는 긴 비단을 당긴 듯 하더니 갑자기 연이어서 큰 바다로 나가는 모습을 보고 놀라고 있다.
시인의 시선이 그림 속을 향하자 가깝고 먼 곳의 봉우리들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고 희미한 촌락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 산시 내부로 향하는 시선은 청람(晴嵐)에 의해 차단되고 있다.
이와 같은 형상화 방식이 산시(山市)라는 공간을 탈속화 함으로써 속세와 구분된다. 시상이 마무리 되는 지점에 이르면 시인은 인간 세상에는 일찍이 진정한 신선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전제 아래 만일 자신의 소망대로 그림 속 산시에서 살고 있는 신선을 따를 수만 있다면 응당 그림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표현을 통해 구도(求道)와 탈속(脫俗)으로 내적 갈등을 해소하려고 했던 시인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에 배태된 갈등의 요소는 현실 인식에서 기인한다. 조화롭지 못한 세상에 부조리가 횡행하고, 불평지심만이 차고 넘친다. 어디를 둘러봐도 도무지 사태가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암울한 현실이 계속되고 있을 때, 선정(善政)을 통해 태평성대(太平聖代)가 재현(再現)되기를 소망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판단될 때, 사대부 문인들이 취할 수 있었던 최상의 선택은 구도와 탈속을 통해 인식의 경지를 끌어올리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구도와 탈속을 통해 내적 갈등을 해소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蕭條江岸數家村 쓸쓸한 강변 언덕 마을에는 몇 채의 집이,
伐荻爲籬竹作門 억새 베어 울 만들고 대나무로 문 지었네.
小渚浮煙橫翠帶 작은 물가 자욱한 안개 비취빛 띠 비꼈고,
半山殘照欲黃昏 산 중턱에 남은 햇빛 황혼녘에 물이 드네.
明波動處艇催返 밝은 물결 흐르는 곳 고깃배 서둘러 오고,
寒樹陰邊鴉亂? 찬 숲 그늘 가 까마귀 어지럽게 나는구나.
別是畵圖中面目 그림 속 면목들을 판별하고자 하였더니,
宛然如有彩毫痕 尹推, <農隱遺稿> 卷一,『韓國文集叢刊』第143卷 198쪽,「瀟湘八景代洪陽從兄月課作」‘漁村夕照’.
마치 화필(畵筆)의 흔적인 양 흡사하네.

어촌석조(漁村夕照)는 3장에서 논의했던 바와 같이 속세와 구별되는 어촌(漁村)이라는 탈속(脫俗)의 공간에서 자연의 이치에 따라 순리대로 살아가는 인물형상을 다룸으로써 삶의 의미를 관조하고 음미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한 상태를 형상화하고 있었다.
이 작품이 형상화된 모습을 살펴보면 쓸쓸하게 보이는 강변 언덕에 몇 채의 집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집을 자세히 보니 억새풀을 베어 울타리를 만들었고 대나무로 출입문을 삼았다. 작은 물가에는 자욱한 안개가 푸른빛을 띤 채 둘러있고, 산중턱에 남아있던 햇빛이 황혼녘에 물들고 있는 형상이다. 밝은 물결이 흐르는 곳으로 고깃배가 서둘러 돌아오고 추운 숲 속 그늘 가에서 까마귀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닌다. 그림 속에 형상화된 경물(景物)의 상태를 하나하나 판별해보니 흡사 그림 그리는 붓으로 채색한 듯한 흔적이 완연함을 알 수 있겠다고 형상화했다. 시인은 이 작품을 통해 속세(俗世)와 변별되는 탈속의 공간 형상을 제시하고 있다.


洞庭湖上岳陽樓 동정호(洞定湖) 위에 악양루(岳陽樓)는,
名勝由來冠九區 명승지 유래로는 천하에서도 으뜸일세.
誰是四時佳節序 누가 사시에 가절이 차례 한다 하였나,
最看明月一年秋 연중 최고 밝은 달 가을에 볼 수 있네.
波濤瑩澈東南遠 물결 맑고 투명해 동남쪽 멀어 보이고,
天地空虛上下浮 하늘과 땅 공허하여 위아래로 떠 있네.
笑爾寂寥韓杜句 한유 두보 시구에서 적막함을 웃었지만,
此間眞景?能? 尹推, <農隱遺稿> 卷一,『韓國文集叢刊』第143卷 198쪽,「瀟湘八景代洪陽從兄月課作」‘洞庭秋月’.
이 속에 참된 경치 어찌 능히 취하겠나.

동정추월(洞庭秋月)의 형상과 함의는 앞서 살펴본 3장에서 논의했던 바와 같다. 동정호(洞庭湖)에 높이 솟은 둥근 달의 형상을 통해서 최고의 정점 내지 절정에 도달한 상태를 의미한다고 언급했다.
이 작품도 그와 같은 형상과 함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동정호 주변에 위치한 악양루(岳陽樓)를 가리키며 명승지의 유래로는 천하에서도 으뜸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일년 사계절에 아름다운 절기는 차례가 있다고 했지만 1년 중 가장 밝은 달은 가을이 되어야만 볼 수 있다고 하면서 동정 호수에 비치는 가을달의 형상이 승경(勝景) 중에 승경임을 강조했다. 물결은 맑고 투명해서 오나라와 초나라의 동남쪽을 바라보면 멀어 보이고, 하늘과 땅이 텅 빈 채로 사라진 듯 위아래로 떠 있는 모습을 형용했다. 이러한 표현이 의도하는 바는 탈속(脫俗)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동정호에 비치는 가을 달의 풍경을 접하며 시를 지었던 한유와 두보에 대해 언급하면서 시를 통해 동정추월이라는 경물을 형상화하려고 했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진경(眞景)까지는 취하지 못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진경(眞景)은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며 언어 너머에 존재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형상화된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이 작품에서도 시인은 탈속의 경지를 형용하면서 구도(求道)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孤舟深夜泊瀟湘 깊은 밤 외딴 배가 소상강에 정박하니,
疎雨??客興長 봉창에 성긴 비 나그네 흥(興) 길게 하네.
蘆荻岸邊聲歷亂 갈대 억새 언덕 가에 소리 어지럽게 지나가고,
煙波渚上色蒼茫 안개와 파도치는 물가 위로 빛깔이 창망하네.
皇英斑竹含遺恨 아황과 여영의 반죽은 남긴 한을 머금었고,
騷屈秋蘭帶舊芳 시인 굴원의 ‘가을난초’는 옛날 꽃다움 지녔네.
千載無情惟有水 천년동안 무정하게 오로지 물만이 있다고,
賈生何事?悲傷 尹推, <農隱遺稿> 卷一,『韓國文集叢刊』第143卷 198쪽,「瀟湘八景代洪陽從兄月課作」‘瀟湘夜雨’.
가생은 무슨 일로 슬픈 상처 함부로 하는가.

소상야우(瀟湘夜雨)의 형상과 함의에 대해서는 3장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소상강(瀟湘江)이라는 공간에 내리는 밤비의 형상을 통해서 세계의 횡포에 휘둘린 채, 삶을 마감했던 아황과 여영 그리고 굴원을 등장시켜 그들을 위로하고 조문하며 안타까운 정서를 표출하는 의미맥락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 작품의 경우를 보면 외딴 배 한 척이 깊은 밤에 소상강에 정박한 상황으로부터 시상이 전개되고 있다. 봉창을 두드리는 성긴 빗방울이 나그네의 흥취를 오래도록 만들고 있다. 언덕 주변으로는 갈대와 억새풀 소리가 어지럽게 지나가고 수면 위로는 물안개와 파도가 치니 빛깔이 창망하다고 형용했다. 붉은 점이 찍혀 있는 반죽(斑竹)에는 아황과 여영이 남긴 한을 품고 있으며, 시인 굴원(屈原)이 쓴『이소(離騷)』라는 작품에 등장하는 ‘가을 난초(秋蘭)’라는 시어를 통해 타고난 품성과 뛰어난 재능을 빗대어 표현하고 있는데 屈原,「離騷」, “가을 난초를 꿰어 노리개를 만들어 찼네(?秋蘭以爲佩).”
그 부분을 인용한 것이다. 천년이라는 세월동안 무정하게도 오직 흐르는 물만 있건만 훗날의 가생(賈生)은 소상강에서 무엇하러 굴원의 슬픈 상처를 말하고 있는가! 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형상화했다. 가생이라는 인물은 폄적(貶謫)되어 오늘날 소상강이 흐르고 있는 장사(長沙)로 가서 왕의 태부로 있다가 33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사마천의『사기(史記)』열전 가운데 ‘굴원가생열전’이라는 제목으로 굴원과 함께 기록되어 있다. 굴원과 가생, 이 두 인물은 소상강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특히 굴원의 경우는 소상강의 지류에 투신하여 분열된 세계와 부조리한 세상에 저항하고자 했던 인물이었다.
심각한 투쟁과 갈등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선정을 구현하여 태평성대가 재현되기를 기대할 수 없는 현실을 접하게 된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취할 수 있었던 문제해결의 방안은 세계의 영역이 아니라 나 자신의 영역에서 문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선택이 필요했다. 말하자면 세계가 스스로 정화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할 때 인간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의 영역에서 해소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에 대한 방법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구도(求道)와 탈속(脫俗)을 통해서 내적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구도(求道)와 탈속(脫俗)을 통해 내적 갈등의 해소라는 의미 범주에 속해 있는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출처진퇴에 대한 고민과 갈등(4.1)이라는 현실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는 세계의 분열상,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진단에서 갈등상황이 유발된다. 사실 얼핏 보기에 세상은 안정된 질서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실상은 평화로워 보이는 정경 속에서도 심각한 투쟁과 갈등이 전개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 인간이 기대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바람은 훌륭한 정치를 통해서 어지럽고 혼란한 세상을 안정되고 평화로운 세상으로 바꿔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선정(善政)을 통한 태평성대(太平聖代)의 재현(再現)을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문제 해결 자세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대는 문제나 갈등의 해소방안을 타인의 영역, 세계의 영역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만일 훌륭한 지도자가 나타나서 다행히 그런 세상을 실현해 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지만 잘 알다시피 세상이 그렇게 쉽사리 변화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새롭게 대두된다. 그래서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의미맥락이 바로 구도(求道)와 탈속(脫俗)을 통한 내적 갈등의 해소(4.3)라는 방식이었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친 뒤에야 도달할 수 있는 궁극적인 지점이 바로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인 삶(4.4)이라는 의미맥락이다. 그럼 이제 다음 장에서는 이처럼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인 삶은 어떤 모습인가 하는 점을 구체적인 작품 분석을 통해 살펴보겠다.

4.4. 인간(人間)과 자연(自然)이 조화(調和)를 이루는 이상 공간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이상 공간이라는 맥락은 출처진퇴에 대한 고민과 갈등에서 출발하여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정을 통한 태평성대의 재현과 구도와 탈속을 통한 내적 갈등의 해소 과정을 모두 거친 후에야 도달할 수 있는 궁극적인 형상에 해당한다.
앞에서는 당대의 사대부 문인들은 소상팔경시를 통해 어떠한 의미맥락을 소통하고 있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 작품 내에 갈등 요소가 형상화되어 있는가 여부에 주목하였다.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삶이라는 의미맥락에서는 어떠한 갈등 요소도 작품에 개입되어 있지 않았다. 갈등요소는 물론이고 어떠한 불평지심(不平之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한 작품을 중심으로 의미맥락을 추출했더니 두 가지의 흐름으로 나눌 수 있었다. 하나가 바로 앞에서 논의했던 “4.2. 선정(善政)을 통한 태평성대(太平聖代)의 재현(再現)”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가 지금부터 살펴볼 “4.4. 인간(人間)과 자연(自然)이 조화를 이루는 이상 공간”이라는 의미맥락이다. 이에 해당하는 작품을 남긴 시인으로는 성종 임금, 소세양, 정사룡, 조욱, 이홍유, 정두경, 권두경, 숙종 임금, 이광정, 권상일, 권만, 정종로, 박영원, 김시락 등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모든 시인을 대상으로 살펴볼 수는 없기 때문에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룬 삶이라는 의미맥락을 지니고 있는 전형적인 작품 한 수를 통해 살펴보겠다.


宛轉山橫翠 부드러운 자태의 산에 푸른 빛 빗겨있고,
?微雨弄晴 희미하게 내리는 비 맑은 하늘 희롱하네.
羅紈輕掩映 펼쳐진 하얀 비단이 살짝 가렸어도,
岩樹乍分明 바위와 나무는 잠깐 동안 뚜렷하네.
日薄前村影 해가 저무니 앞마을에도 그림자가 지고,
溪喧何處聲 요란한 시냇물 소리 어디에서 울리는가.
隔林知有屋 숲 너머에 집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午時鳴 成宗,『列聖御製』第九篇,「瀟湘八景」‘山市晴嵐’.
닭들이 좇으며 한낮에도 울기 때문이네.
소상팔경시의 8수 가운데 첫 번째 작품으로 산시청람(山市晴嵐)을 형상화한 성종 임금의 작품이다. 곱고 부드러운 산세 그리고 비취빛이 비껴있는 산시(山市)에 희미하게 비가 내린다. 하지만 하늘은 맑기만 하다. 펼쳐진 남기가 산시(山市)를 살짝 가리고 있으나 바위나 나무만 잠깐 동안 분명하게 보인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니 산 그림자도 마을로 성큼 다가서는 모습을 형용하면서 어디선가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숲 너머로 집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대낮임에도 닭들이 서로 좇으며 울어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나라의 군주이면서도 그림을 해석하는 능력과 감상이 탁월함을 느낄 수 있다. 특히 그림을 대상으로 청각적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살림으로써 작품의 동적인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능력이 뛰어나다.


嵐翠千峯色 많은 봉우리들이 푸른 남기 빛깔인지라,
招提第幾層 사찰은 그 가운데에 몇 번째 층에 있나.
樹深催晩景 수목이 깊은지라 저녁 경물을 재촉하고,
山寂量寒? 산중이 적막하니 차가운 등불 헤아리네.
渺渺?鍾動 성긴 종소리가 아득하게 울려 퍼졌다가 ,
飄飄餘響凌 바람에 날려서는 메아리 되어 돌아오네.
石梯歸意倦 돌계단으로 돌아갈 마음이 게으른지라,
行脚在鳥藤 成宗,『列聖御製』第九篇,「瀟湘八景」‘煙寺暮鍾’.
스님 발걸음 새와 등나무랑 함께 있네.

성종 임금의 연사모종(煙寺暮鐘)으로 8수 가운데 두 번째 작품에 해당한다. 연사모종은 저물 무렵이라는 시간에 연기에 덮인 사찰은 보이지 않고 오직 종소리만 울린다. 행인은 그 종소리에 의지한 채 걸음을 재촉하며 구도(求道)와 수학(修學)의 공간인 사찰로 향하는 형상을 다루는 것이 연사모종(煙寺暮鐘)의 의취(意趣)에 부합한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형상화된 모습은 매우 평화롭고 해질 무렵 울리는 종소리에 의지하여 사찰에 이르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긴장감이나 이에 상응하는 갈등 요소가 전혀 개입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 작품에서는 여유로움이 넘쳐난다. 많은 산봉우리들이 푸른 남기의 빛을 띠고 있기에 사찰이 그 가운데 어디쯤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산이 깊은지라 해가 일찌감치 떨어지면서 저녁 어스름이 짙게 깔렸다. 적막하고 어두운 산 속에서 등불을 찾고 있는데 때마침 어디선가 거친 종소리가 아득하게 울려 퍼졌다가는 바람에 날려 메아리로 돌아온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절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해야할 스님이 무슨 일인지 돌아갈 마음이 없다. 전혀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스님 발걸음은 아직도 새와 나무랑 함께 하고 있을 따름이다.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삶의 모습이 구체화되어 있다.


遠樹?昏鴉 먼 숲은 저녁 까마귀 시끄럽고,
長洲三兩家 긴 모래섬 두서너 집이 있네.
斜陽明島嶼 지는 해가 섬들을 밝혀주는데,
夕霽映蘆? 저녁이 쾌청해 갈대를 비추네.
籬落橫?網 울타리엔 성긴 그물 빗겨있고,
江干點小車 강변에 작은 수레는 점이 되네.
微風?錦浪 은은한 바람이 금물결 뒤집고,
漁艇自?斜 成宗,『列聖御製』第九篇,「瀟湘八景」‘漁村落照’.
고깃배는 석양에 절로 기우네.

어촌낙조(漁村落照)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평화롭고 고즈넉한 어촌의 풍경을 형용하고 있다. 멀리 있는 숲에는 저녁에 깃든 까마귀들로 시끄럽다. 긴 모래섬에는 두서너 집이 자리를 잡고 있다. 지는 해가 여러 섬들을 비춰주는데 저녁이 맑아서인지 갈대를 비추고 있는 형상이다.
집집마다 울타리에는 거칠게 보이는 그물이 비스듬히 놓여진 채 햇빛에 말리고 있다. 강변에 있던 작은 수레는 한 개의 점으로 형상화했다. 은은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서 지는 해에 물든 금빛 물결이 가볍게 찰랑거리며 보는 이를 눈부시게 만든다. 석양에 돌아오는 고깃배가 기운다는 것은 고깃배 안에 고기들이 많이 쌓여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풍요롭고 넉넉한 어촌의 저녁 풍경이다.
이 어촌낙조(漁村落照)의 풍경 어디에도 갈등이나 걱정 근심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연과 어촌 마을이 하나의 형상을 이룬 상태에서 인간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納納乾坤大 하늘과 땅을 크게 감싸 안으니,
溶溶江水流 강물이 도도하게 흘러가는구나.
山川供遠眼 산천은 멀리로 눈에 들어오고,
風日送扁舟 해와 바람이 조각배를 전송하네.
一葉天涯影 일엽편주 하늘 끝에 그림자가,
多生水上? 수면 위로 거품을 많이 만드네.
落帆何處是 돛을 내릴 곳 어느 곳이 옳은지,
月白且停留 成宗,『列聖御製』第九篇,「瀟湘八景」‘遠浦歸帆’.
달이 밝으니 또 머무를까 싶네.

원포귀범(遠浦歸帆)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본래 3장에서 논의했던 원포귀범(遠浦歸帆)의 함의(含意)는 부조리한 현실을 떠나 아무런 미련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형상이었다. 따라서 현실에 대한 염증 내지 거부감이 강하면 강할수록 돌아가는 배의 속도가 빠른 상태로 형용되고 있었다. 자신이 몸담고 있었던 속세로부터 멀리 그리고 빨리 떠나가는 모습을 형용하는 것이 원포귀범(遠浦歸帆)의 의취(意趣)를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경우는 어떠한가를 살펴보면 우선 하늘과 땅을 의미하는 건곤(乾坤)을 크게 포용한다는 표현을 통해서 일국의 군주다운 광대한 기상이 느껴진다. 모든 것을 포용하고 용납하는 형상을 의미하는 납납(納納), 그리고 도도하게 흐르는 모양을 뜻하는 용용(溶溶) 등의 시어(詩語)에서 강건하고 굳센 기상을 느낄 수 있다. 멀리 있는 산천(山川)이 눈 안에 들어오고 해와 바람이 일엽편주를 전송한다. 하늘과 강물이 맞닿은 곳에 조각배 한 척이 수면 위로 물거품을 뿜어내며 어디론가 떠나가고 있는 형상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배가 향하고 있는 목적지이다. 3장에서 논의했던 바와 같이 원포귀범(遠浦歸帆)은 출처진퇴(出處進退)와 관련된 시제로 현실과 뜻이 맞지 않아서 미련 없이 현실을 박차고 고향(故鄕)으로 떠나가는 형상과 함의를 내포하고 있었음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러한 형상과 달리 구체적인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았다. 때문에 7행과 8행에서 돛을 내릴 곳이 어디인지 목적지도 없이 달이 밝으니 그대로 머무르는 것은 어떤가 하고 표현했다. 이는 현실에 염증을 느끼고 출처진퇴의 기로에서 과감하게 선택한 귀향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원포귀범의 함의와 변별된다고 하겠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현실과의 갈등 관계 속에서 출처진퇴에 대한 선택이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서정적 자아의 태도와 인식이 전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風定江天靜 바람이 정하니 강변 날씨도 맑아지고,
?窓羊夜眠 봉창에서 노닐다가 밤이 되어 잠자네.
?聲侵楚竹 성긴 소리 초나라 대나무에 침노하니,
亂點入吳船 점점이 어지럽게 오나라 배에 들이치네.
滴破三更夢 방울 져 깨져버린 한 밤중의 단꿈은,
寒凝一炷烟 온통 등잔불의 연기에 차갑게 엉겨 붙네.
苦吟應到曉 괴로이 읊조리며 응당 새벽에 이르러도,
遣興不須? 成宗,『列聖御製』第九篇,「瀟湘八景」‘瀟湘夜雨’.
부친 흥취 모름지기 두루 미치질 못하네.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의 8수 가운데 다섯 번째 자리에 배치된 작품으로 소상야우(瀟湘夜雨)를 형상화했다. 앞서 3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소상야우(瀟湘夜雨)는 순임금과 아황, 여영 그리고 초나라 굴원 등을 등장시켜서 세계의 횡포에 휘둘린 자아를 위로하고 위무하는 형상이 전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기본적 정서는 앞서 3장에서 논의했던 소상야우(瀟湘夜雨)의 함의와 어느 정도 상통하지만 많은 부분은 탈색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소상야우(瀟湘夜雨)의 전형적인 경물(景物)은 비바람이 몰아치는 형상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에 형상화된 모습은 바람도 잠잠하고 강변의 날씨도 고요하기만 한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나룻배에 뜸이나 띠 혹은 부들포 같은 풀을 이용해 비바람을 막기 위해 만들어 놓은 배의 창문을 봉창(?窓)이라고 하는데, 그 봉창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밤이 되어 잠을 이룬다. 그런데 갑자기 성긴 빗방울 소리가 초나라 대나무에 스며들다가 점점이 어지럽게 오나라 배에 들이친다고 했다. 그 소리에 놀라 단꿈에서 깨어난 서정적 자아는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새벽을 맞이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서정적 자아는 시적 대상을 초죽(楚竹)과 오선(吳船)이라 하여 초나라의 대나무와 오나라의 배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여타의 작품들과 달리 앞선 논의에서 살펴보았던 소상야우(瀟湘夜雨)의 서사적 맥락을 수용하여 작품을 형상화하되 서정적 자아가 적극적으로 서사적 맥락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서사에서 언급되고 있던 대상들을 구체적으로 명시함으로써 서정적 자아와는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있는 태도임을 알 수 있다. 현재 시인 자신의 심리 상태와 소상야우의 기본 서사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고 형상화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상야우가 지니는 기본 서사에 몰입하고 있기 때문에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소상야우를 통해 촉발된 흥(興)은 새벽녘이 되어도 가라앉지 않고 있는 상태로 형상화했다.


萬里衡陽? 만 리 형양(衡陽)으로 가는 기러기,
秋空一雨行 가을 하늘 한 줄기 비처럼 가는구나.
寒聲喧七澤 찬 소리에 칠택(七澤)이 소란스럽고,
斜影落三湘 비낀 그림자 삼상(三湘)에 떨어지네.
飮啄隨江渚 강 따라 물을 마시고 먹이를 쪼고,
生涯寄稻粱 생애는 벼와 기장에게 부치는구나.
低飛避殘照 나지막이 날며 남은 석양을 피하고,
點綴亦成章 成宗,『列聖御製』第九篇,「瀟湘八景」‘平沙落雁’.
점점이 이어지니 또 문장을 이루네.

소상팔경시의 8수 가운데 여섯 번째 작품으로 평사낙안(平沙落?)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평사낙안(平沙落?)의 형상과 함의에 대해서는 3장에서 논의했듯이 평사(平沙)라는 공간이 기러기들에게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생계와 휴식이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는 언제나 인간의 사악함과 이기심으로 표상된 기심(機心)만이 차고 넘치는 공간이었다. 때문에 곳곳에 함정과 위기가 도사리도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하늘을 나는 기러기가 평사로 내려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는 공간인 동시에 내려가서도 언제나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공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과 대립 그리고 출처진퇴의 문제를 다루고 있었던 것이 바로 평사낙안(平沙落?)이 지니고 있던 함의(含意)라고 언급한 바가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그와 같은 긴장과 갈등의 상황이 존재하지 않는다. 머나먼 형양 땅을 향하는 기러기가 가을 하늘에 줄지어 날아간다. 가을날 울어대는 기러기 소리에 칠택이 소란스럽고 날아가는 기러기 그림자가 삼상에 떨어진다고 형용했다. 강물을 따라 날아가며 물과 먹이를 쪼고 생애는 벼와 기장에 부친다고 했으니 아무런 갈등상황이나 긴장감이 조성되지 않는다. 낮게 날면서 석양을 피하는 모습이 점점이 이어지면서 마치 한 줄 문장을 이루는 듯하다고 형상화하고 있다. 이 작품 역시 평사낙안의 전형적인 형상화 함의에서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립과 긴장 갈등의 형상보다는 자연의 한적한 아름다움을 그대로 형용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작품이다.


風掃浮雲盡 바람이 뜬 구름을 모조리 쓸어가니,
天高滿目秋 하늘은 높고 눈엔 온통 가을이로다.
一輪初?上 둥근 달이 처음에 맷돌처럼 올라서,
萬里故遲留 만 리까지 짐짓 더디게 머무는구나.
夜永淸輝發 밤새도록 맑은 달빛 드러내고 있고,
波寒素影浮 차가운 물결에 밝은 달빛 떠있도다.
年年無限意 한 해 한 해마다 끝이 없는 생각은,
多少客登樓 成宗,『列聖御製』第九篇,「瀟湘八景」‘洞庭秋月’.
어느 정도 나그네가 누각에 오르나.

소상팔경시의 8수 가운데 일곱 번째 자리에 배치된 작품으로 동정추월(洞庭秋月)을 형상화하였다. 3장에서 살펴본 동정추월(洞庭秋月)의 형상과 함의는 동정 호수를 가득 비추고 있는 환한 보름달의 형상을 통해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최고의 정점(頂點) 내지 풍요(豊饒)와 풍성(豊盛)함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다. 이 작품에서도 동정추월이 지니고 있는 전형적인 특질과 그리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작품을 보면 바람이 뜬 구름을 모조리 휩쓸고 지나가니 높은 하늘과 한창인 가을의 기운이 느껴진다고 했다. 보름달이 떠올라 만리까지 환하게 비추고 있는 형상을 제시했다. 밤새도록 맑은 달빛을 드러내니 차가운 물결에도 밝은 달빛이 함께 떠있다. 이러한 경물(景物)을 접하고 있는 시인은 해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정호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 누각에 오르고 있을까? 하는 상념에 이르고 있다. 이 작품 역시 동정추월의 형상을 통해서 인간과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진 형상을 제시하고 있다.


天地洗?埃 하늘과 땅이 먼지 기운 씻어내니,
江山淨域開 강산 지경이 열리는 듯 깨끗하네.
雲容嬌不歇 구름 모습 쉬지 않고 교태부리며,
雪意浩難回 눈 생각 호탕하니 돌리기 어렵네.
?竹湘娥粉 대나무 속에 상강 계집 단장하고,
盈船賈客? 배에 가득 찬 장사치들 진기하네.
?橋詩興遠 장안 파교라면 시 흥취가 멀기에,
?臥只寒? 成宗,『列聖御製』第九篇,「瀟湘八景」‘江天暮雪’.
드러누워서 차가운 술만 마시네.

소상팔경시의 8수 가운데 마지막 작품인 여덟 번째 자리에 형상화된 강천모설(江天暮雪)이다. 3장에서 논의했던 바에 따르면 강천모설(江天暮雪)의 형상과 함의는 저물녘 눈에 덮인 강변의 형상을 통해 세상사에 초탈한 달관(達觀)과 흥취(興趣)의 경지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 작품에서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하늘과 땅의 속기(俗氣)와 먼지를 씻어내니 강산이 새롭게 열리는 듯 깨끗해졌다고 형상화했다. 구름의 모습도 쉬지 않고 교태를 부리는 듯, 제 형상을 바꾸고 있으며 눈(雪)도 계속 휘날리고 있는 모습으로 형용했다.
장안의 파교(?橋)를 언급한 것은『북몽쇄언(北夢鎖言)』에 유래하는 고사가 있다. 어떤 사람이 정경(鄭?)에게 묻기를, “요즘 시사(詩思)가 있습니까?”라고 하자, “시사는 파교 풍설 속 나귀 등위에 있다.(詩思在?橋風雪中驢子背上)”고 답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나귀 등이라고 하면 나귀 등에서 눈(雪)을 맞으면서 시상(詩想)을 떠올리는 행위로 인식되었다. 시상(詩想)을 떠올리는 데 가장 적당한 곳을 ‘파교려상(?橋驢上)’이라 하는데 위의 경우도 이와 유사한 맥락이다. 이 작품 역시 인간과 자연의 교감이라는 점에서 인간(人間)과 자연(自然)이 조화(調和)를 이루는 이상적인 삶의 의미맥락을 보이고 있는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제 지금까지 논의했던 내용을 전체적으로 정리할 단계에 이르렀다. 3장에서는 소상팔경(瀟湘八景)을 구성하고 있는 팔경(八景)을 대상으로 각각의 시제(詩題)들이 어떤 공통적 기반 위에서 존재하고 있는가 하는 점을 살펴보기 위해 각각의 형상(形象)과 그 이면에 담긴 함의(含意)에 주목한 논의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4장에서는 팔경(八景)에 대한 것이 아니라 팔경이 시인들의 의도에 따라 8수로 배열되어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라는 연작시의 개념으로 완성되었을 때 어떠한 의미맥락을 지닌 채 창작되고 있었는가 하는 점에 주목하였다. 4장의 논의를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 작품들을 대상으로 특정한 기준에 따라 유형화를 하는 작업이 먼저 요구되었다. 그래야 소상팔경시의 8수를 작가 나름의 의도에 따라 배열하여 완성된 형태를 보일 때 어떤 의미체계가 만들어지는가 하는 점을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유형화를 위한 기준으로는 갈등상황에 주목하였다. 작품 내에 갈등요소가 배태되어 있는가? 없는가? 에 따라서 우선 분류했다. 그랬더니 갈등요소가 배태되어 있는 경우는 다시 두 가지 갈래로 나뉘고 있었다. 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시상이 마무리되는 경우와 작품 내에서 탈속(脫俗)과 구도(求道)의 방식을 통해 갈등이 해소되고 있는 경우로 구분되고 있었다. 갈등요소가 없는 경우에도 두 가지 의미맥락으로 나뉘고 있었다. 하나는 선정을 통한 태평성대의 재현이라는 맥락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인 삶이라는 의미맥락이었다. 이처럼 네 가지로 정리된 의미맥락들이 어떻게 구조화되고 있었는가 하는 점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 네 가지 의미맥락은 무질서해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를 통해 드러낼 수 있는 의미의 양극단을 포함하여 다기한 맥락을 보여주는 동시에 오랜 시간 창작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만의 고유한 소통 체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 체계와 구조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4.1. 출처진퇴(出處進退)에 대한 고민(苦悶)과 갈등(葛藤)
: 우리나라에서 창작되었던 소상팔경시의 8수에 담겨 있는 갈등의 핵심이자 가장 많은 관심을 드러내고 있었던 맥락이다. 세계의 분열상과 모순 그리고 부조리를 체험하며 문인 사대부들이 고민했던 점이기도 하다. 사실 세상은 안정된 질서에 근거하고 있는 듯하지만 실상은 평화로운 정경 속에서도 심각한 투쟁과 갈등이 전개되고 있는 공간이다. 이러한 갈등과 고민은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라는 그림을 보면서도 끊임없이 투영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간이 기대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선정(善政)을 통한 태평성대(太平聖代)의 재현(再現)일 것이다.

4.2. 선정(善政)을 통한 태평성대(太平聖代)의 재현(再現)

: 이는 앞에서 제기된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였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소상팔경시의 8수에 담아서 표현했던 의미맥락이다. 그런데 이 방법은 갈등 해결의 주체를 자아의 차원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문제이자 타인의 영역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되었다. 만일 좋은 통치자를 만나지 못한다면 그럼 포기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세상이 변하지 않을 때는 세계와 단절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심성을 수련하여 인식의 수준을 높이는 방법이 요구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소상팔경시의 소통방식에 또 다른 변화가 필요했을 것이다.

4.3. 구도(求道)와 탈속(脫俗)을 통한 내적 갈등의 해소

: 자아의 의지가 개입되기 전에 세상이 스스로 변화하지 못할 경우에 요청되는 갈등해소의 방법이다. 세계의 변화를 기다려도 변화의 기미조차 포착되지 않는다면 이미 문제 해결의 관건은 세계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로 넘어섰음을 뜻한다.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방법, 나의 문제로 귀결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세계가 스스로 정화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했을 때 인간은 타인의 영역이 아닌 나 자신의 영역에서 갈등 해소 방안을 모색하게 된다. 그런 이유에서 성립하게 된 것이 바로 구도(求道)와 탈속(脫俗)을 통한 내적 갈등의 해소라는 의미맥락이다.
4.4. 인간(人間)과 자연(自然)이 조화를 이루는 이상 공간

: 최종적으로 모든 갈등상황이 해소되었을 때 인간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목표 지점이다. 언젠가는 현실세계에서 실현이 가능한 삶의 방식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의미맥락임을 알 수 있다.
소상팔경시의 8수를 창작했던 문인 사대부들은 각자가 처한 특수한 상황과 처지에 따라 4.1. ~ 4.4.까지의 선택이 가능했다. 그 지점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여 창작했던 것이다. 소상팔경을 통해 선택할 수 있었던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 시인 자신의 처지와 상황에 맞는 어딘가를 노래하고 있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5. 결론

지금까지 소상팔경(瀟湘八景)의 형상화(形象化) 양상(樣相)과 의미(意味) 맥락(脈絡)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 논문은 소상팔경(瀟湘八景)에 담겨 있는 의미와 내적 질서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 제기에서 출발했다. 소상팔경(瀟湘八景)이 어떤 방식으로 형상화(形象化) 되었으며 그 이면에 담긴 함의(含意)는 또 무엇인가 하는 점이 궁금했다. 아울러 서정(敍情)과 서사(敍事)의 구분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라는 문제 제기를 통해서 서정의 토대를 이루는 동시에 그를 지배하고 있는 서사적 맥락을 짚어보고자 하는 목적에서 출발했다. 이 논문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경로를 밟았다.
우선 제2장에서는 소상팔경(瀟湘八景) 시가문학(詩歌文學)의 자료를 개관하였다.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나라에서 형성된 소상팔경 관련 자료의 범주가 도대체 어느 정도 규모인지를 확인하고 정리하는 의미가 있었다. 아울러 소상팔경(瀟湘八景)이라는 공간이 지니고 있는 심상(心象)에 대해 살펴보았다. 세부적으로는 소상팔경의 형성 과정과 배경을 고증하였다. 이를 통해서 지금까지 알려진 바와 같이 소상팔경의 창시자가 북송(北宋)의 화가 송적(宋迪;1014-1083)이 아니라 당(唐) 나라를 이은 오대십국(五代十國) 시대였던 10세기 중반 이성(李成;919-967)이라는 문인화가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음을 고증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는 소상팔경의 창시자가 송적(宋迪)이 아니라 이성(李成)이었음을 규명한 동시에 소상팔경의 등장도 11세기가 아닌 10세기였음이 확인된 성과를 거두었다.
다음으로 제3장에서는 소상팔경(瀟湘八景)의 형상(形象)과 그 형상에 담긴 함의(含意)를 고찰하였다. 그 결과 산시청람(山市晴嵐)은 산시(山市)를 감싸고 있는 푸른 남기(晴嵐)의 형상을 통해 성(聖)과 속(俗)이 조화를 이룬 이상적(理想的) 공간(空間)이라는 함의(含意)를 지니고 있었다. 이는 자연(自然)과 문명(文明)의 조화(調和)를 끊임없이 모색하던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마련되었던 하나의 대안인 셈이었다. 동시에 산시청람(山市晴嵐)은 모체(母體)와 탄생(誕生)이라는 의미 맥락을 지니고 있었음을 규명하였다. 구체적인 작품 분석을 통해 살펴본 형상을 정리하면, 산시(山市)를 둘러싸고 있는 푸른 남기(晴嵐)의 모습은 마치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던 양수(羊水)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태아(胎兒)를 보호하고 출산을 할 때는 아이와 함께 흘러나와 분만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듯이 남기(嵐氣) 또한 산시(山市) 내부에 존재하는 인물들과 외부 세계의 시선을 차단하는 동시에 내부의 독립된 생활을 보장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외에도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다양한 인물의 형상에 주목한 결과 산시청람(山市晴嵐)에는 모체 내부와 탄생의 의미 맥락이 감춰져 있다고 정리할 수 있었다.
연사모종(煙寺暮鐘)은 연기에 가려진 산사(山寺)에서 울리는 저녁 종소리의 형상을 통해서 현실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의식을 지닌 사람들에게 구도(求道)의 과정과 방향을 제시한다는 함의(含意)를 지니고 있었다. 깊은 산속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는 산사(山寺)는 인간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사찰이 분명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절에서 울리는 저물녘 종소리를 통해 확인된다. 작품 분석을 통해 얻은 결론을 정리하면 등장하는 인물 형상 가운데 지배적인 경우가 스님이었다. 스님 외에도 구도자, 나그네 등등의 인물 형상들이 등장하고 있으나 이들의 공통적인 형상은 종소리에만 의지한 채 구도와 수학의 공간인 사찰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서 연사모종(煙寺暮鐘)에 담긴 의미 맥락은 수학(修學)과 구도(求道)의 삶이라고 정리할 수 있었다.
소상야우(瀟湘夜雨)는 소상강(瀟湘江)에 내리는 밤비(夜雨)의 형상을 제시하면서 세계의 횡포(橫暴)에 휘둘린 자아(自我)를 위로한다는 함의(含意)를 지니고 있었다. 소상야우에 등장하고 있는 인물 형상은 주로 순임금과 아황 그리고 여영이 절대적인 빈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초나라의 대부를 지냈던 초나라의 시인 굴 원(屈原)도 적지 않게 등장하고 있는 인물 형상 가운데 하나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세계의 횡포에 휘둘린 채 삶을 마감했던 인물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이 모두 평이하거나 원만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세계와의 대결에서 자아(自我)의 의지를 구현하지 못한 채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인물들이었다. 때문에 작품 속에서는 이들의 패배를 가엾게 여기면서 끊임없이 위로하고 위무하는 목소리가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소상야우에 감추어진 의미 맥락을 대결(對決)과 좌절(挫折)이라고 할 수 있었다.
원포귀범(遠浦歸帆)은 먼 포구로 돌아가는 배의 형상을 제시함으로써 고향(故鄕) 내지 태초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어머니의 모체(母體) 내부로 회귀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구현되고 있었다는 함의(含意)를 드러냈다. 원포귀범에 등장하고 있는 인물 형상은 진나라의 장한과 같이 현실에 아무런 미련도 두지 않고 고향을 향해 서둘러 떠나가면서 흥겨워 하는 인물 형상들이었다. 물론 군주(君主)가 창작한 작품에서는 더디게 떠나가는 형상을 통해서 현실을 버리고 고향으로 떠나가는 형상이 아닌 모습으로 창작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작품에서는 현실에서의 부조리나 갈등에 맞서 대결하기 보다는 즐거운 마음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형상을 제시함으로써 안정적이며 평온한 삶을 지향하는 서사적 맥락임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원포귀범(遠浦歸帆)에 감추어진 의미 맥락을 회귀(回歸)와 귀향(歸鄕)이라고 할 수 있었다.
평사낙안(平沙落?)은 넓은 모래밭인 평사(平沙)에 내려앉는 기러기(落?)를 통해 현실(現實)과 이상(理想)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라는 함의(含意)를 지니고 있었다. 평사낙안은 여타의 작품과는 달리 인물 형상이 중심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기러기와 인물 형상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기러기들은 종종 인간적 시각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품에서 기러기는 인간과 긴장과 대립을 유지하는 관계로 설정이 되어 있었다. 인간은 끊임없이 기러기를 잡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그것을 알면서도 기러기는 배고픔과 휴식이라는 생계(生計)를 위해서 인간이 머무는 평사(平沙)로 낙안(落雁)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형상을 통해서 출처진퇴(出處進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시인들의 시선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평사낙안(平沙落?)에 감추어진 의미 맥락을 출처(出處)와 진퇴(進退)라고 정리할 수 있었다.
동정추월(洞庭秋月)은 동정호(洞庭湖)를 비추는 가을 달(秋月)의 형상을 제시하면서 대립(對立)과 갈등(葛藤)이 해소된 최적(最適)의 상황이라는 함의(含意)를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정리했다. 동정추월에 등장하고 있는 인물 형상은 모두가 동정호(洞庭湖)를 밝게 비추고 있는 보름달의 형상에 도취되어 황홀감에 젖어 있는 인물들이다. 이러한 형상에는 어떠한 긴장이나 대립, 갈등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풍요로움을 즐기는 인물 형상뿐이었다. 그래서 등장하는 인물의 형상에서도 동정호(洞庭湖)와 악양루(岳陽樓)를 배경으로 구름을 제어하는 신선으로 활동했다고 전해지는 여동빈(呂洞賓)과 같은 신선(神仙)이나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고 달(月) 속에 존재한다고 믿는 항아(姮娥), 호수 속에 산다고 믿는 교녀(鮫女)와 같은 인물 형상이 등장하고 있었다. 이러한 인물들의 형상과 함께 이를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감탄하는 시적 화자의 언급을 통해 최고 극점에 도달한 단계의 의미 맥락을 말하고 있었다. 동시에 최고 극점에 달한 상태이므로 이제는 내려가야만 하는 지점에서 느끼는 항룡유회(亢龍有悔)의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러한 점에서 동정추월(洞庭秋月)에 감추어진 의미 맥락을 정점(頂點)과 풍요(豊饒)라고 정리할 수 있었다.
어촌낙조(漁村落照)는 어촌(漁村)에 해가 지는 형상을 제시하면서 순리(順理) 대로 살아가면서 세상과 적당한 거리 두기라는 함의(含意)를 지니고 있었다고 정리했다. 문학 작품에서 등장하는 어촌(漁村)만이 아니라 실제 사대부들의 삶에서 어촌(漁村)은 명철보신(明哲保身)의 공간이었다. 그래서 어촌낙조(漁村落照)에 등장하는 어부(漁父)의 형상에 주목할 때, 이들이 진어옹(眞漁翁)인지 가어옹(假漁翁)인지 하는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이들이 순리(順理)대로 사심(私心) 없이 살아가는 순진무구한 존재들로 형상화 된 것만은 분명하다. 어떠한 욕심도 없이 무욕의 경지에서 살아가는 인물 형상이다. 해질 무렵이 되면 그물을 걷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웃과 어우러져 행복하게 살아가며 술 한 잔에 하루의 피로를 말끔하게 잊고 살아가는 소박한 삶이 형상화되어있다. 그런 의미에서 어촌낙조(漁村落照)에 감추어진 의미 맥락을 순리(順理)와 관조(觀照)의 단계라고 정리할 수 있었다.
강천모설(江天暮雪)에서는 강천(江天)에 저물녘 내리는 눈(暮雪)의 형상을 제시함으로써 세상사에 초탈(超脫)하여 달관(達觀)과 흥취(興趣)의 경지에 도달한 인물의 정신적 경지라는 함의(含意)를 지니고 있다고 정리하였다. 강천모설에 등장하는 인물 형상은 다양하다. 그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인물은 어옹(漁翁)의 형상이다. 이들은 추운 겨울날 눈 내리는 상황 속에서도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흥취를 드러내는 인물들이었다. 눈 내리는 밤에 친구 생각이 간절해지자 배를 타고 친구의 집 앞에까지 갔다가 흥이 사라지자 그냥 배를 돌려서 돌아왔다는 왕자유(王子猷), 나귀를 타고 눈 쌓인 산 속 어딘가를 향해 가면서 시사(詩思)에 잠겨 있거나 시흥(詩興)에 도취된 인물 형상 등이 형상화 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삶의 이치를 깨닫고 삶의 마지막 단계에 도달해 있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인물 형상에 주목한 결과 강천모설(江天暮雪)에 감추어진 의미 맥락을 흥취(興趣)와 달관(達觀)의 단계라고 정리할 수 있었다.
이처럼 제3장의 논의는 그림의 형상(形象)과 함의(含意)에 주목한 논의였다. 그림에 담겨 있는 의미를 그림 자체만으로 이해하고 파악하기란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래서 그림을 노래한 문학 작품을 통해 그림의 온전한 의미를 읽어내는 동시에 온전한 전체 서사물(敍事物) 가운데 어떤 한 장면을 포착하여 시나 그림으로 형상화한 것인가를 파악하기 위해서 유용한 작업이 되었다.
다음 제4장에서는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 여덟 수를 대상으로 작품을 창작했던 문인들의 작품에 한정하여 팔경(八景)의 배열에 따라 감추어진 의미(意味)를 고찰하였다. 이는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를 구성하는 팔경(八景)이 각각 어떻게 배열되었는가에 따라 어떤 의미맥락을 감추고 있는가 하는 점을 중심으로 살펴본 결과였다. 그 결과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의 소통 범주는 ①출처진퇴(出處進退)에 대한 고민(苦悶)과 갈등(葛藤), ②선정(善政)을 통한 태평성대(太平聖代)의 재현(再現), ③구도(求道)와 탈속(脫俗)을 통한 내적 갈등의 해소, ④인간(人間)과 자연(自然)이 조화(調和)를 이루는 이상적인 삶이라는 의미맥락을 감추고 있었다. 당대의 문인들은 이처럼 나름대로의 처지와 심리 상태 등에 의거하여 팔경(八景)을 선택하고 조합하여 자기만의 고유한 인식의 체계를 소상팔경시의 8수를 통해 구조화 하고 있었음을 드러낼 수 있었다.
지금까지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의 형상화 양상과 의미 맥락에 대해 살펴본 논의 내용을 요약해 보았다. 이제는 연구 과정에서 대두되었거나 새롭게 인식한 문제 그리고 이 논문이 지니고 있는 한계를 서술하는 것으로 논문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 논문은 한국(韓國)과 중국(中國) 그리고 일본(日本)을 포함한 동아시아 각국에서 천년 넘게 유행하였던 문화적 현상의 하나인 소상팔경(瀟湘八景)에 주목한 연구 성과에 해당한다. 따라서 한국의 소상팔경에 대한 연구 성과가 마련되어야만 중국과 일본에서 형성된 소상팔경에 대한 연구 성과와의 비교연구가 가능할 것이다. 이를 통해 동아시아 삼국의 자연관 내지는 인생관 등을 비교 검토할 수 있는 하나의 잣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이에 대해서는 평생의 연구 과제로 삼을 것이다.
소상팔경(瀟湘八景)에는 다양한 인물 형상이 등장하고 있다. 그 가운데 주목되는 것이 바로 어부(漁父)의 형상이다. 고려시대 어부가나 중국의 시가문학에 등장하는 어부의 형상과 어떤 점이 같고 다른가 하는 점 등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검토와 연구가 필요하다.
또 하나는 시화(詩畵)에 대한 관심과 연구의 필요성이다. 시가문학(詩歌文學)과 회화예술(繪畵藝術)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문학적 성과를 토대로 회화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심도 있게 이해하려는 노력이 요청된다는 점이다. 이는 새로운 학문 영역의 탄생과 관련되기에 매우 조심스럽다. 하지만 이제는 문학과 회화의 영역을 넘나들면서 작품을 보다 세밀하고 심도 있게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학문 영역을 ‘회화서사학(繪畵敍事學)’ 혹은 ‘그림서사학’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어쨌든 이제는 문학 작품과 그림이 통합될 수 있을 때 문학 작품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그림에 대한 이해 역시 보다 수준 높은 차원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논문이 갖는 한계가 명확해진다.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의 구체적 화면을 대상으로 작품과 비교 검증하면서 논의가 이루어졌어야함에도 불구하고 회화(繪畵)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부족한 결과 깊이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은 이 연구가 갖는 한계이자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점에 대해서도 역시 앞으로 계속되는 배움의 과정과 연구 과정을 통해 조금씩 보충해 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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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 Study on the Figuration Aspect and the Meaning Coherence
of Sosangpalkyung(瀟湘八景) poetry


Konkuk University Graduate school
Jun Kyong Won

This thesis is the study on the Sosangpalkyung(瀟湘八景) poetry that was written in the East Asia, centering China, Korea and Japan over ten thousand years. The Main subject of the study was how Sosangpalkyung(瀟湘八景) poetry was figured in the korean classical literature and created in what meaning coherence. To attain its object, this thesis went through the following process.

In the second chapter, the formation background of Sosangpalkyung(瀟湘八景), the category of materials and the symbolic meaning of space was discussed.

In the third chapter, the figuration and the implicative meaning of Sosangpalkyung(瀟湘八景) were studied. Sansichungram's(山市晴嵐) implicative meaning is an ideal space where the nature harmonized with the civilization. Younsamojong(煙寺暮鐘) suggested the figuration presenting the process and direction of seeking after truth. Sosangyawo(瀟湘夜雨) suggested the figuration comporting the poetic subject who was defeated in confronting with the world. Wonpogyubum(遠浦歸帆) presented a desire returning to the peaceful and comfortable place like the womb, that is, inside of the mother-body that is home of the beginning of the world. Pyungsanakann(平沙落?) presented confrontation and conflict between reality and ideal. Dongjungchuwol(洞庭秋月) presented the ideal situation where confrontation and conflict was dissolved. Ochonnakjo(漁村落照) showed a living feature as reason was, with a proper distance from this world. Ganchunmosoel(江天暮雪) had the meaning showing a condition of a philosophic view and a interest keeping aloof from the world.

In the fourth chapter, the implicative meaning coherence in Sosangpalkyung(瀟湘八景) poetry was studied. How the meaning coherence changed based on the conflict factor's existence or not was studied. Through Sosangpalkyung(瀟湘八景) poetry this study could make clear the poets of that time could have mutual understanding based on what kind of meaning coherence. Four types could be summarized as follow. First, Meaning coherence of pursuing an ideal land. Second, the nature and the human lives in harmony with each other. Third, the inner conflict is dissolved through the unworldliness and the seeking after truth. The last, the agony and the intention about how to react the world about us.

Above studying result was limited to korean classical literature. Here after the meaning Sosangpalkyung(瀟湘八景) picture and Sosangpalkyung(瀟湘八景) poetry in the East Asia have will be studied through the comparative study on Sosangpalkyung(瀟湘八景) picture and Sosangpalkyung(瀟湘八景) poetry of China and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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